2014년 10월 6일 월요일

편견과 경청 히말라야와 먼지 흉터치료

편견과 경청 히말라야와 먼지 흉터치료


그대를 방해하는 것, 그대가 경청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모든 것이 편견이다. 그대가 힌두교인으로 여기에 왔다면 그대는 내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그저 건성으로 들을 뿐이다. 그대는 마음속으로 판단하고, 비판하고, 평가하고, 비교한다. 그대가 이슬람교인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 공산주의자로서 여기에 왔다면 그대는 내 말을 경청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저 건성으로 들을 뿐 주의 깊게 경청하지 않는다. 자기 마음속의 일에 열중할 뿐이다. 편견이 그대를 밀폐시킨다.
편견을 갖고 있다면, 이미 결정된 선입견을 갖고 있다면 그대는 아주 제한적인 방식으로 내 말을 들을 것이다. 그대는 자신의 편견에 맞는 것만 골라 들을 것이다. 그 편견에 맞지 않는 것은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듣고 보는 방식이다. 심지어는 보는 것까지 편견에 차 있다. 그대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자신의 편견에 따라 계속 해석을 가한다. 편견의 감옥에서 나와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밝은 빛의 세계로 들어설 수 없다. 편견은 감옥이다.
수많은 편견이 있다. 사회적 편견, 정치적 편견, 종교적 편견, 철학적 편견 등 헤아릴 수도 없는 편견이 있다. 그렇게 많은 편견이 겹겹이 그대를 에워싸고 있으면 스승의 말이 그대에게 가 닿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 편견들을 버려라.
피타고라스는 ‘내가 말하는 것은 무조건 믿어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경청하라!’라고 말한다. 믿고 안 믿고의 문제는 없다. 바로 이것이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말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진리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주의 깊게 듣는 자세만이 필요하다. 일단 주의 깊게 들으면 진리는 그대의 것이 된다. 그것을 믿을 필요가 없다. 믿음은 그대 스스로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에 한해서 적용될 뿐이다. 이때 그대는 믿음에 의존한다.
주의 깊게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은 믿거나 불신할 필요가 없다. 그의 투명함이 즉시 모든 것을 결정한다. 눈과 귀를 열고 주의 깊게 듣는다면 투명함과 명확성을 갖고 경청한다면 진리는 즉시 진리로 이해되고, 거짓은 즉시 거짓으로 이해된다. 거기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심사숙고할 필요가 없다.
투명한 마음속에서 옳은 것은 옳은 것으로 알려지고, 그른 것은 그른 것으로 알려진다. 투명한 마음이 모든 것을 판가름한다. 즉각 어떤 결정이 나온다. 이것은 논리적 과정에 따른 결론이 아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편견을 지니고 다닌다. 사소한 편견도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아주 작은 먼지 하나만 눈에 들어가도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대는 눈을 뜰 수 없을 것이다. 히말라야를 보고 있는데 작은 먼지 하나가 눈에 들어갔다고 하자. 즉시 히말라야가 사라진다. 먼지는 아주 작다. 그런데 그 거대하고 엄청난 히말라야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대의 눈은 작은 먼지가 끼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산더미 같은 편견들로 가득 차 있다. 제자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모든 편견을 벗어 던지는 것이다. 모든 편견과 선입견을 버려라. 그대는 스스로 경험하지 못했다. 그대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하는지 세뇌되었다. 그 모든 것을 버려라. 그저 순수한 거울이 되어라. 그리고 주의 깊게 경청하라. 
오쇼 라즈니쉬 책, 젠토피아,  <피타고라스 2> 30- 32페이지 중에서 

성경 마태복음에도 남의 눈의 티는 볼줄 알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 얼굴에도 먼지만한 흉터가 있을 경우에는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얼굴 흉터는 대표적으로 베이거나 긁힌 흉터가 있지만 점뺀 흉터나 긁힌 흉터 베인 흉터등이 존재한다. 이런 흉터는 이미지한의원의 흉터침, 한약 재생약침, 침등으로 같이 더불어 치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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