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가 없어질뻔한 폭격과 화상흉터치료
여유만만이란 프로그램을 보니 우리나라 옛 그림은 읽는다의 讀畵독화를 하는 것이다.
「세한도」에 얽힌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완당과 이상적이 모두 세상을 뜬 뒤 평양감사가 소장했던 행방이 묘연했던 이 그림을 발견한 것은 일본인 후지스카였다. 후지스카는 동경제대를 나온 역사학자였다. 고화점에서 그림을 발견한 그는 큰 감동을 받았고 김정희를 깊이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추사에 빠져들었다. 그는 곧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진도 갑부로 고서화 수집가이기도 했던 손재형이 이를 알고 곧장 일본으로 달려갔다. 귀중한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오기 위해서였다. 1944년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고 일본 전역이 미군의 폭격을 받고 있을 무렵이었다. 손재형은 포탄 속에서 100여 일을 거의 매일 후지스카 집에 찾아가 무릎꿇고 「세한도」를 돌려줄 것을 간청했다. 처음에 완강하게 거절하던 후지스카도 자신이 죽고 나서 주겠다고 했지만, 마침내 그 지성에 감복하여 「세한도」를 넘겨주었고 그림을 무사히 고국으로 가겨올 수 있었다. 손재형선생은 일부러 일본인 복장을 해서 감시를 피하며 당시 조선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지스카의 집은 폭격을 맞아 불에 탔다. 하마터면 우리나라 최고의 문인화가 타국에서 잿더미로 사라질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후지스카의 집안에서 남아있던 유물을 한국에 다 기증했다고 한다.
현재 국보 180호로 지정되어 있는 「세한도」는 뒤에 개성 갑부 손세기의 손에 넘어갔으며 지금은 그 아들인 손창근이 소장하고 있다.
손철주 선생은 방송에서 세한도를 100억에라도 뼈를 깍아서라도 구입하리라는 대단한 작품으로 보았는데 패널들의 처음 분위기는 집도 정면과 측면이 동시에 있고 못그린 그림에 속한다고 하다가 설명을 듣고 이해하게 되었다.
한번 잘못으로 폭격맞아 유실될뻔햇던 국보 세한도가 한 개인의 노력으로 보전된 것이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화재가 발생하면 모든 것이 불타게 되고 몸이라고 해도 화상을 입게 되어 화상흉터가 남게 된다. 화상흉터가 오래되면 치료법이 전무하다고 여길수 있지만 이미지한의원의 화상흉터침인 BT침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