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2일 월요일

풍몽룡 정사유략의 과부와 흉터치료

풍몽룡 정사유략의 과부와 흉터치료

풍몽룡馮夢龍 (1574-1646) 중국 명대 말기의 문학자. 자는 유룡(猶龍), 이유(耳猶). 호는 향월거고곡산인(香月居顧曲散人), 고소사노(姑蘇詞奴), 전전거사(箋箋居士), 묵감재. 장쑤성(江蘇省) 우셴(吳縣)에서 출생, 후년에 푸젠성(福建省) 수령현(壽寧縣)의 지사가 되었으며, 명나라가 멸망하자 왕실을 따라 순사(殉死)했다고 한다. 그의 많은 필명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활동 범위도 매우 넓은 다재한 작가로서 경학(經學)에 관한 저술도 있으며, 가장 유명한 <삼언(三言)>의 편집·교정을 비롯하여 소설에서는 <평요전(平妖傳)> <열국지(列國志)> <정사유략(情史類略)> 등의 정보(訂補), 희곡에서는 자작인 수편을 포함한 <묵감재전기정본>, 쑤저우(蘇州) 민요를 채집한 <산가(山歌)>, 산곡(散曲)을 편찬한 <태하신주(太霞新奏)>, 소화집(笑話集)인 <소부(笑府)>, 일사(逸事)를 모은 <고금담개(古今譚槪)> <지낭(智囊)> 등 수없이 많다. 그의 저작 편집의 거의가 민간문학·구어문학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그의 본형이 통속문학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그의 편집태도 자체가 전통적인 예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되고 있다.

명나라 때의 유명한 이야기꾼 풍몽룡이 지은 ‘정사유략 情史類略’을 보면 81세에 정절을 지켜 나라에서 표창을 받은 과부가 자식 며느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수절이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집안에 과부가 생기면 재가를 시켜 수절하지 않게 하라” 말을 마친 늙은 과부는 왼손을 들어 자식들에게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큰 흉터가 있었다. 젊은 시절 한밤중에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마다 손바닥으로 탁자를 치다 실수로 잘못 촛대를 쳐서 상처가 생기며 흉터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런 흉터는 이미지한의원에 흉터침, 한약 재생약침, 침등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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