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4일 목요일

선덕여왕은 정치를 잘하지 못함과 백색튼살치료

선덕여왕은 정치를 잘하지 못함과 백색튼살치료


 우리는 선덕여왕을 성군으로 진덕여왕을 나쁜 군주로 생각하지만 선덕여왕때는 백제나 고구려의 침입을 자주 해와 잘 막아내지 못하고 겨우 당나라에 조공을 바쳐서야 나라를 유지하는등 신라 건국 이래로 가장 위기적인 상황으로 백성이 힘들어했다.

건복 50(633) 정월에는 8월에 백제가 서쪽 변경을 침공했다.

인평 3(636) 5월에 백제 장군 우소가 여근곡에 쳐들어오자 알천, 필탄 두 장군을 보내 이를 무찔렀다.

인평 5(638) 10월에는 고구려가 칠중성을 공격해 왔고, 다시 대장군 알천을 파견해 이를 격퇴하고 불안한 민심을 달랬다.

인평 9(642) 정월에 다시 당에 조공하였다. 7월에 백제의 의자왕이 이끄는 군사들이 신라의 서쪽 40여 개 성을 함락시키고, 여기에 고구려까지 당과의 외교 거점이었던 당항성을 공격해오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11월에 백제가 대야성을 함락시켰고, 이찬 품석(品釋) 등이 죽었다. 왕은 패배를 만회하고자 자신의 조카이자 김품석의 장인인 이찬 김춘추를 고구려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고구려 보장왕은 신라를 구원해주기는커녕 김춘추를 감금하였다. 이를 안 여왕이 김유신을 보내 한강 북부까지 진격하니 보장왕은 김춘추를 풀어주었다.

인평 10(643) 정월에도 당에 토산품을 바쳤다. 9월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청하였으나 당 태종은 이를 거절하였고, 인평 11(644) 정월에 신라는 다시 당에 조공을 바쳤다. 이에 당 태종이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공격을 멈추라고 종용하였다. 이에 연개소문은 일전에 고구려와 수나라가 전쟁을 벌일 때 그 틈을 타서 신라가 빼앗아간 우리의 영토 500리를 돌려주기 전에는 싸움을 멈출 수 없다며 거절하였다. 9월에 왕은 김유신을 대장군으로 삼고 백제를 공격하여 일곱 성을 빼앗았다.

인평 12(645) 정월에도 당에 조공을 바쳤다. 백제와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재위 마지막 해인 647년 정월, 상대등 비담이 염종(廉宗)과 함께 여자 군주는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女主不能善理)”는 기치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다. 왕은 월성에 진을 치고 김유신을 파견하여 비담을 상대하게 하였다. 그러나 반란 와중인 정월 8일에 여왕은 승하하였다.

선덕여왕은 한번도 백제나 고구려를 공격도 못했고 잘 막아내지 못하고 여근곡 고사를 보아도 백제군(百濟軍)의 싸움이 벌어진 여근곡(女根谷)은 경주(慶州) 건천 (乾川)에 있다고 하니 거의 수도가 함락될 위기까지 처했던 것이다.

 

삼국유사선덕여왕조에는 선덕여왕이 미리 깨달은 일 세가지(지기삼사(知幾三事))가 수록되어 있다

1. 선덕여왕의 즉위년인 632, 당 태종은 빨강, 자주, 하얀색의 모란 그림과 그 씨앗을 선물로 보냈다. 왕은 이를 보고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씨앗을 심어보니 과연 그랬다. 훗날 신하들이 이 일을 물어보니 왕은 "꽃 그림에 나비가 없었다. 이는 남편이 없는 나를 희롱한 것이다."라고 답했다. 일연은 이 고사를 소개한 뒤, 당 태종이 신라에 세 여왕(선덕, 진덕, 진성)이 있을 것으로 짐작한 점도 함께 칭찬하고 있다.삼국사기에서는 이 일이 진평왕 말년에 벌어진 일로 묘사되어 있다.

2. 왕은 즉위 4년인 635, 영묘사(靈廟寺)를 세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겨울날, 영묘사 옥문지(玉門池)에 개구리가 사나흘 동안 운 일이 있었다. 이에 왕은 각간 알천(閼川), 필탄(弼呑)에게 병사 2천을 주어 서라벌 서쪽 부산(富山) 아래 여근곡(女根谷)을 습격하게 하였다. 여근곡에는 백제 장수 우소(亏召)가 매복해 있었는데, 알천과 필탄은 이를 쳐서 모두 죽였다. 훗날 신하들이 이 일을 물어보니 왕은 "개구리가 심히 우는 모습은 병사의 모습이요, 옥문이란 여자의 음부를 가리킨다. 여자는 음이고, 그 빛은 백색인데, 이는 서쪽을 뜻한다. 또한 남근이 여근에 들어가면 죽는 법이니 그래서 쉽게 잡을 수 있었다."라고 답하였다. 삼국사기에서는 옥문지에서 개구리가 운 때가 즉위 5년인 6365월로 기록하고 있다.

3. 어느날 왕이 신하들을 불러 "내가 죽으면 도리천(忉利天)에 장사지내도록 하라. 이는 낭산(狼山) 남쪽에 있다."고 하였다. 이후 왕이 죽은 뒤 신하들은 왕을 낭산 남쪽에 장사지냈다. 이후 문무왕 대에 이르러 선덕여왕의 무덤 아래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웠다. 이는 불경에 '사천왕천(四天王天) 위에 도리천이 있다'는 내용이 실현된 것이었다.

 

 

여자는 음이고, 그 빛은 白色백색인데, 이는 서쪽을 뜻한다.” 위 내용은 한의학의 기본인 음양오행설에서 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한의학적으로 금인 서쪽은 해가 지는 곳이며, 가을을 가리키며,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다 죽는 숙살지기가 있기 때문에, 백색이 서쪽을 의미한다. 또 한의학적으로 금은 폐인 허파를 의미하는데 도라지, , , 율무, 인삼, 더덕등 폐를 보하는 음식이나 약은 백색으로 폐를 보한다. 남근이 여근에 들어가면 죽는 법이란 말을 살펴보면 죽기는 하지만 아이를 가지게 되며 임신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백색이란 것이 순결함을 의미하겠지만 습격하는 군사의 죽음의 의미가 들어 있다. 우리 몸에서 발생한 튼살도 처음에는 붉은색으로 시작하지만 백색으로 정착되게된다. 이미지한의원에서는 튼살침인 ST침으로 적색 튼살 뿐만 아니라 흰색 튼살도 치료가 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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