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2일 금요일

페트라르카 내면과 성형흉터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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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는 이탈리아 시인·인문주의자이다.
아레초에서 출생하여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이전하자 부친을 따라 그곳으로 옮겨 살았다. 그곳에서 중세의 삼학(三學)을 이수한 후 몽펠리에와 볼로냐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327년 봄 아비뇽의 성 크레르 교회에서 최초로 라우라를 만났다. 그의 서정시는 주로 그녀의 미를 찬미하고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였다. 교황을 비롯하여 상류층의 특별한 대우를 받아 그들의 외교사절로 활약한 바도 있으나 보클뤼즈에 은거하면서 라틴어 저술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니발을 격파한 스키피오를 찬미하는 장시 <아프리카>1341년 봄, 로마에서 계관시인(桂冠詩人)이 되었다. 이것은 그의 학식과 애국심을 짐작하기에는 족하였으나 시적 가치는 낮은 것이었다. 1343년 콜라 디 리엔초(1313-1354)를 알게 되어 그의 로마 공화정 부흥이라는 대망에 공명하였으나 1350년 콜라는 실각되고 라우라의 부음을 접했다. 1350년 피렌체에서 보카치오를 만나 평생토록 친교를 맺었다. 말년에는 파도바 근교의 아르콰에서 살았다. 1374719일 애독하던 베르길리우스의 시집을 베개 삼아 떠났다.
그는 단테에 이어 출현한 이탈리아 최고의 시인으로서 후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가 특히 페트라르카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이는 페트라르카주의(pétrarquisme)이라 명명되기도 하였다. 또한 14행시는 13세기 시칠리아 파()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나, 그가 이 형식으로 쓴 300여 장의 운조(韻調)나 시상이 모두 아름다웠으므로 그가 사용한 이 형식은 유럽 제국(諸國)에 있어서 표준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탈리아어 작품을 중시하지 않았으므로 <서정시집>과 연애, 명성, 정절, 죽음, 시간 등이 각기 소멸하고 영원한 것만이 최후의 승리를 얻는다는 구상의 장시 <개선(凱旋)>이란 작품이 있을 뿐이다. 그 밖의 것은 모두 라틴어로 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금욕생활을 찬양한 <고독한 생활에 관하여> <종교자의 무위에 관하여>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빌어 마음의 괴로움을 풀려고 한 <나의 비밀> 등이 중요한 것이다. 그는 세속적 쾌락이나 명성을 구하는 한편 종교적 고독에 묻혀, 상충하는 두 가지 욕구로 번민한 근대인이었다. 또 그에 의하여 발견된 고전들의 고본(稿本)도 많으며 등산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산에 오른 유럽 최초의 등산가이기도 하다.
EBS에서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7강 인문학 강의를 하시는 김상근 교수는 단테를 기점으로 중세와 르네상스가 갈린다고 말했다. 단테는 9살때 만난 베아트리체로부터 평생 창조적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글을 쓸 때마다 그녀를 떠올리면서 기분좋고 감미롭고 부드러운 즉 '돌체'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페트라르카는 인간의 본질을 강조함으로써 르네상스를 전파시킨 인물로 인간 내면이 아닌 대상에 대해서만 천착하던 당시 지식인의 시선을 인간 내면의 본질적인 측면으로 이끈 인물이다. 페트라르카로 하여금 르네상스인들은 비로소 인간 내면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페트라르카는 소위 인문학(Studia Humanitatis)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연세대 김상근 교수님은 그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페트라르카는 어느날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에 있는 빵두 산에 올랐다. 페트라르카는 산 정상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을 읽었다. 그는 10장에서 이런 구절을 만난다. ‘인간은 산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굽이 치며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휘몰아치는 큰 대양을 바라보면서,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들의 운행을 바라보면서 넋을 잃지만, 정작 인간 내면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르네상스를 시작하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책을 덮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인간의 내면세계 영혼의 세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는데 말이다. 나는 내면의 눈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산 아래로 내려올 때까지 단 한마디도 입술에서 내뱉지 못했다.’
필자는 이 생각에 동의하는데 예를 들어 사람을 평가할때도 미남미녀를 바라볼때는 외면에 넋을 잃지만 정작 인간의 안의 마음에 대해서는 들여다보지 않고 선입견을 가진다고 본다. 요즘에 성형수술에 대한 기사를 보면 원색적인 비난 댓글은 존재하지만 성형수술자체에 대해서 철학적인 접근은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먼자 마취(痲醉) anesthesia, give an anesthetic, anesthetize 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마취 부작용은 전신 마취 후 있을 수 있는 부작용은 가볍게는 기도부위()의 이물감으로부터 치아 손상, 폐렴, 사망에 이르기까지 나타날 수 있다. 부위 마취의 경우, 가볍게는 시술 부위의 통증, 일시적인 배뇨곤란, 마취부위의 일시적인 근력 약화에서부터 효과적인 마취의 실패, 경막천자로 인한 심한 두통, 감염, 사망에 이르기까지 나타날 수 있다. 가능성은 가벼운 증상은 흔하고, 심한 부작용은 그 가능성이 낮다.
재미있는 사실은 에스테틱이란 피부 관리샵이란 이름에도 있지만 마취는 부정접두어인 an+esthetic[ 감각의 미용의, 심미의, 심미적, 미학적, 미적인, 미를 살려 만든]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름답지 않다는 의미이다. 즉 마취를 하는 것 자체가 아름답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마취된듯한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보고 아름다움에 반해 왕자는 키스를 했지만 죽어 있는 듯한 마취에 대해서 미적 감각을 느끼기 어렵다. 또한 유교적 인이란 한의학적으로는 복숭아씨인 桃仁도인, 살구씨인 杏仁행인이란 말이 있듯이 우물에 빠지는 어린 아이를 구하듯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을 측은지심이다. 한의학적으로는 마비를 뜻하는 麻木不仁마목불인이란 질병이 있는데 뇌중풍으로 마비되고, 감각이 떨어져 통증을 못느끼는 질병인데 만약 싸이코 패스처럼 사람을 칼로 찔러도 양심의 가책이나 상대방의 아픔 공감을 느끼지 않으면 불인한 것이다. 즉 성형 마취는 점점 不仁불인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형외과 의사들은 사람 환자를 위하려는 양심이나 생각은 점차 마비되어 가고 인술인 의술을 방기하고 있다.
아무튼 이미지한의원에서는 성형수술보다는 그 후유증인 흉터침의 흉터치료를 위주로 치료하고 있다. 가장 많이 하는 성형흉터치료는 코 성형으로 콧볼등에 발생한 흉터이며 그 밖에 가슴성형수술 흉터나 지방흡입수술 흉터등이 존재한다. 의료사고로 성형흉터는 늘어나지만 이런 아름답지 않은 anesthetic의 마취가 판치는 사회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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