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8일 목요일

팔레스타인 분쟁의 불씨와 분할통치 수술흉터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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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민족과 유대민족은 같은 샘계 종족으로서, 같은 셈어계 언어를 사용하며 오랜 역사저 유대관계를 맺어 왔다. 두 민족은 성서적으로도 아브라함을 공동조상으로 하는 형제일 뿐만 아니라, 유대왕국이 70년경 로마에 의해 멸망당한 후에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2천 년 가까이 아랍인과 함께 평화롭게 공존해 왔다.
그럼에도 왜 오늘날 아랍과 유대, 두 민족이 화합할 수 없는 적대관계로 변모하고, 그들의 종교인 이슬람교와 유대교가 상호 배타적으로 이단시하게 되었는가? 이는 결론적으로 제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 국가들이 중근동에 대한 식민지 경영으 본격화하면서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 두 토착민을 분히, 갈등관계를 유발시켰던 비도덕적인 정치음모에 절대적으로 기인한다.
19471129일 유엔총회장.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운명이 결정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날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리하여 아랍과 유대, 두 개의 독립 국가로 분할하자는 안이 통과된 것이다. 찬성 33, 반대 13표였다. 당초 아랍인이 중심이 되는 팔레스타인 연방안이 우세했으나, 미국의 집요한 제3세계 회유 작전으로 결국 연방안 대신 분할안이 통과되었따. 말이 분할안이지 당시 인구비율에서 아랍인의 1/3, 전체 면적의 7%만을 소유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전역의 56% 분할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경작 가능한 대부분의 금싸라기 ᄄᆞᆼ은 유대인 차지가 되어 있었다. 2천 년 동안 그 땅의 주인으로 살아 온 아랍인으로서는 이주해 온 유대인을 모두 받아들이는 연방안 자체도 억울한데 분할안 통과라니……. 아랍인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과 좌절을 맛보았다. 지난 2천 년간 조상의 피와 땀이 맺힌 불모의 땅을 겨우 경작지로 바꾸어 놓았는데 말이다. 아랍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순간에 행햇던 미국의 존재와 역할을 똑똑히 목도했다. 미국이란 존재를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다. 씻을 수 없는 반미 정서가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1947년 그날, 아랍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유엔 표결의 현장에 영국은 없었다. 이 표결에서 영국은 기권을 택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은 독일에 대항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 식민치하의 아랍인들을 끌어 들였다. 영국과 함께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워주는 대가로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지역에 독립을 보장해 준 것이다. 191512, ‘후세인-맥마흔 서한으로 알려진 비밀협상이 바로 그것이다. 아랍과 오스만 투르크는 같은 이슬람 형제로서 이미 지하드를 선포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슬람 사회의 비난과 종교적 율법을 어긴다는 엄청난 심리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독립이라는 현실정치를 택했던 것이다.
아랍과의 비밀협상에 따라 영국은 로렌스 대령을 급파하여 효과적인 대 오스만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오스만 제국의 전략적 요새인 아카바를 함락함으로써 남부전선에서 연합국은 겨우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영국은 미국의 참전유도와 독일에 대한 내부 혼란과 정보탐지 측면 공격을 위해 유대인의 지원을 필요로 했다. 이에 영국외상 발포오는 1917년 영국의 은행 재벌 로스 차일드 공과 비밀리에 회동 소위 발포오 선언이라는 비밀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서 영국은 유대인의 전쟁참여 대가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국가 창설을 약속해 주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이 한창 진행중인 1916515일 정확하게 아랍과 유대인과 맺은 두 비밀조약의 중간에 또 다른 비밀조약을 체결했다. 영국 대표 사이크스와 프랑스 대표 피코 사이에 비밀리에 체결된 사이크스-피코 협정의 골자는 전후 중동지역의 분할에 관한 것이었다. 이 비밀협정에 따르면 프랑스는 시리아의 해안지대와 그 북부를, 영국은 팔레스타인과 바그다드를 점령하기로 한 것이다.
팔레스타인이라는 한 지역에 아랍인에게는 아랍국가의 독립을, 유대인에게는 유대 민족국가의 창설을 약속해주고, 실상은 영국과 프랑스가 이미 그곳을 점령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다. 상호 모순적인 3개의 비밀조약과 강대국의 비도덕적인 정치 음모가 바로 오늘날 중동분쟁의 불씨를 가져온 본질적인 핵심이다.
 
이희수 이슬람 문화, 016 살림 지식총서, 살림, 80-83 페이지
 
즉 한 남자가 두 여자와 이중 결혼을 사기 결혼을 한 결과 두 처가 서로 가정의 주도권을 가지고 싸우게 된 것인데 사실 남자는 쏙 빠져버리고 두 여자만 싸움을 하게 되는 이상한 결과가 바로 팔레스타인 문제이다. 이와 비슷하게 한국의 운명도 독립이 아닌 신탁통치로 분할통치되어 결국 비극적인 6.25가 일어나게 되었다. 필자가 생각한 이스라엘과 한반도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스라엘 히틀러 시대 유태인 표식으로 쓰였던 육망성 다윗의 별과 한국 태극기의 태극을 보면 대립적인 두 가지가 서로 존재한다. 이스라엘은 이슬람종교에 대적하고 한국은 공산주의와 대립시킬 운명이었던 것이다. 둘째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과 한국은 적지에 알박기가 당한 것이다. 셋째 실제 이스라엘에 간 유태인인 카자르인과 한국인은 혈통상으로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다.
얄타회담에서 소련의 여순조차권 회복, 만주철도의 중소 공동운영 등이 비밀리에 협약되었다. 한반도문제는 이 회담에서 공식 거론되지 않았으나, 루스벨트가 제안한 미··3국의 신탁통치안이 재확인되었다. 모스크바 삼국 외상 회의(-三國外相會議) 또는 모스크바 삼상 회의(-三相會議)19451216일부터 26일까지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국 · 영국 · 소련의 외무장관 회의이다. 2차 세계대전 뒤의 일본 점령지구에 대한 관리 문제를 비롯하여 얄타회담에 따른 대한민국의 독립 문제를 거론하였다. 한국에서 라이벌인 미국과 소련군 사령부는 한국에서 단일 자유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공동위원회를 설치한다. 이 위원회는 처음부터 양측의 의심을 사게 된다. 가장 중요한 사항은 4개국 열강에 의한 5년간의 신탁통치가 한국의 독립 이전에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임시정부 수립없이 5년에서 최대 10년동안 4개국이 신탁통치하자고 제안하였고, 소련은 임시정부 수립과 공동 위원회 개최, 조선의 정당, 사회단체의 참여를 제안하였다.
신탁 분할 통치는 서양의학 수술의 절개 수술 흉터와 같다. 절개만 하면 나중에 봉합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우선 봉합 흉터가 남고 또 양쪽으로 장력의 힘에 의해서 벌어지게 되면 흉터가 커지게 되어 있다. 특히 입 주위나 관절주위 흉터의 경우 더 벌어져 징그러운 모양이 되는데 이런 서양의학적인 수술적 흉터는 이미지한의원의 흉터침과 한약 재생약침, 침등으로 치료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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