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서의 죽음과 눈 매달아 놓으라는 유언 시각과 튼살치료
오자서(伍子胥, ? ~ 기원전 485년)는 중국 춘추 시대 오나라의 정치가로, 자서(子胥)는 자이며, 이름은 운(員)이다. 본래 초나라 출신이나 아버지와 형이 평왕(平王)의 노여움을 사 처형된 뒤 초나라를 떠났다. 그 뒤 오나라의 약진에 크게 공헌하였으나, 점점 오나라 왕 부차(夫差)와 사이가 벌어져 목숨을 잃었다.
오자서의 부친 오사는 초 평왕의 태자 스승으로, 평왕과 태자의 사이가 나빠지고, 태자가 폐위되면서, 오사와 장남 오상은 평왕에 살해됐다. 홀로 남은 오자서는 복수를 맹세하고, 태자와 함께 정나라로 탈출한다. 정나라로 간 태자는 진나라의 부추김으로 반역을 하려고 했지만, 역으로 정 정공에게 살해된다. 오자서는 태자의 아들과 함께 이번에는 오나라로 도망했다. 오나라로 간 오자서는 오나라 왕의 종친 광(光)을 섬겼다. 광은 원래 왕이 되었어야 되는 사람이었는데, 이복 동생 요에게 왕위를 빼았긴 사실을 알고 광의 쿠데타 때에도 협력하여, 광은 즉위를 해서 오왕 합려가 된다.
손무와 함께 합려를 보좌하여 강대국으로 만든 뒤, 기원전 506년에 초나라에 병사를 일으켜, 그 수도를 함락시켰다. 평왕은 이미 죽은 뒤였기 때문에 오자서는 묘를 파헤치고 평왕의 시체를 300번이나 채찍질하여 원한을 풀었다. 사기 오자서열전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예전의 친구였던, 신포서는 너무 가혹하다고 비난했지만, 오자서는 “나의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머니, 도리를 역행할 수밖에 없다.(吾日莫途遠,吾故倒行而逆施之。)”고 하였다고 한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의 사자성어 일모도원(日暮途遠)은 여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 후, 강대해진 오나라는 패권 야욕으로, 월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지만, 월왕 구천의 참모 범려와 지혜 대결에서 패하고, 오군은 월나라에 대패하게 된다. 이 때의 상처로 합려는 사망하게 된다.
합려의 아들 부차가 후사를 잇고, 부왕의 복수를 맹세하면서 오자서도 그를 보좌하였다. 기원전 494년 월나라와 싸워 대승하게 된다. 이때 오자서는 구천을 죽일 것을 강력하게 주창하지만, 부차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간신 백비의 말을 따라 월나라를 속국으로 삼는 것으로 끝을 내었다. 월나라에 대한 지속적인 경계를 강력 주창한 오자서와 중원 진출을 통해 패자를 바라는 부차와의 골을 메꿔지지 않았다. 한편 월나라의 범려는 간자인 서시와 오나라 간신 백비를 사용하여, 부차의 귀에 오자서를 중상모략하게 된다.
그 후도 부차는 북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국력을 급속하게 소모하고 있었다. 오자서는 “제나라가 피부병이라면 월나라는 속병이니, 패권주의를 접고 내실을 다지시라”라고 진언하지만, 부차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재상 백비는 성실하고 정직한 오자서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다양한 수단으로 부차와 오자서를 이간질한다.
부차는 북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국력을 급속하게 소모하고 있었다. 오자서는 “제나라가 피부병이라면 월나라는 속병이니, 패권주의를 접고 내실을 다지시라”라고 진언하지만, 부차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재상 백비는 성실하고 정직한 오자서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다양한 수단으로 부차와 오자서를 이간질한다.
이 상태로는 언젠가 월나라에 화를 입을 수 있다고 판단한 오자서는,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아들을 제나라에 맡겼다. 그러나 스스로는 오를 버리지 않겠다고 돌아오고, 이 일이 본국에 돌아온 후에 알려져 문제가 되고, 오자서는 부차로부터 자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 때, 오자서는 자신의 목을 베어 월나라 방향의 성문에 걸어두고, 월나라가 오나라를 없애는 것을 보겠다는 저주를 남기고 자결하게 된다.
그 말에 격노한 부차는 오자서를 가죽 자루에 넣어 강물에 버리지만, 사람들은 그를 불쌍히 여겨 근처에 사당을 지어주었다. 오자서가 죽고 월나라를 경계하는 자가 없어지자 오는 파멸의 길로 나가게 된다. 오자서의 예언대로 와신상담한 구천의 월나라는 오를 쳐서 없앤다. 부차는 구천에게 잡혀 죽게 된다.
<伍子胥>仰天歎曰 : “嗟乎! 讒臣嚭爲亂矣, 王乃反誅我.
오자서앙천탄왈. 차호! 참신비위난의 왕내반주아.
오자서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했다.“아! 참소를 일삼는 신하 백비가 나라를 난리나게 하는데, 왕은 도리어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我令若父霸. 自若未立時, 諸公子爭立, 我以死爭之於先王, 幾不得立.
금령약부패 자약미립시 제공자쟁립 아이사쟁지어선왕 기부득위.
“나는 그의 아버지 합려를 제후의 패자로 만들었다. 부차가 임금이 되기 전 여러 공자들끼리 태자의 자리를 놓고 다툴 때 나는 죽음을 무릅쓰고 선왕에게 간언해 그를 후계자로 정하게 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는 태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若旣得立, 欲分<吳國>予我, 我顧不敢望也.然今若聽諛臣言以殺長者.”
약기득위 욕분오국여아 아고불감망야. 연금약청유신언이살장자.
“그가 이미 왕위에 오르고 나서 나에게 오나라를 나누어 주려고 하였을 때도 나는 감히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아첨하는 신하의 말로써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乃告其舍人曰 :
내고기사인왈.
그리고는 가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必樹吾墓上以梓, 令可以爲器 ; 而抉吾眼縣<吳>東門之上, 以觀<越>寇之入滅<吳>也.”
필수오묘상이재 령가이위기. 이결오안현오동문지상 이관월구지입멸오야.
“나의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왕의 관을 짤 목재로 쓰도록 하라. 내 눈을 도려내 오나라 동문 위에 매달아 월나라 도적들이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하라.”
乃自剄死.
내자경사.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吳王>聞之大怒, 乃取<子胥>尸盛以鴟夷革, 浮之<江>中.
오왕문지대노 내감자서시성이치이혁 부지강중.
오나라 왕은 이 말을 듣고 몹시 화가 나서, 오자서의 시체를 취해다가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담어 장강 물속에 띄워 버렸다.
<吳>人憐之, 爲立祠於<江>上, 因命曰<胥山>.
오인린지 위립사어강상 인명왈서산.
오나라 사람들은 그를 가엽게 여겨 강언덕에 사당을 세워 서산이라고 불렀다.
위 내용을 보면 오자서는 눈을 매달아 오나라가 멸망함을 목도하고야 말리라는 강한 소망을 품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눈만 달랑 달려 있으면 대뇌와 신경이 끊어지기 때문에 볼수 없게 된다. 세상에는 공리주의자 밴덤이 말한 판옵티콘과 같은 피라미드 꼭대기 위의 모든 것을 보는 全視眼전시안[all seeing eye]가 존재한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오자서는 눈으로 봄으로써 왕인 부차의 재앙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영어에서도 보는 것이 믿는것이다라는 속담처럼 시각을 중시하고 시각이 정보의 80-90%를 차지한다.
현대인은 과거 사람에 비교하여 깊이 사람을 사귀지 않고 속사람이 아닌 겉사람만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시각적인 외모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게 되었다. 이와 비례하여 성형수술이 각광을 받게 되는데 성형수술의 문제점은 바로 성형 부작용과 수술 이후 후유증이다.
성형 후유증의 대표는 성형수술 흉터인데 이미지한의원의 성형 수술후 흉터침으로 치료하며 치료 대상은 콧볼 축소등 코나 앞트임등 눈 흉터, 지방흡입수술등 온 몸 전체, 가슴확대수술의 겨드랑이등 부위와 종류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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