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30일 목요일

러시아 부동항과 말랑말랑해지는 흉터치료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어: Владивосто́к, 중국조선말: 블라지보스또크, 문화어: 울라지보스또크, 중국어: 海参崴)는 러시아의 도시이며, 러시아 극동의 군사기지이며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행정중심지이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시발점이며,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의 문호이다. 인구는 2013년 기준으로 603천명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세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며 개인 사업과 국제 무역, 관광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국제 심포지움과 학술 회의가 자주 열리고 태평양 함대의 모항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해군 함대들이 친선 사절로 온다. 주된 산업은 조선업과 포경·게 등 어업, 어류·해산물 가공업, 군항 관련 산업이다. 선박수리, 목재가공, 식료품 공업도 있다. 남동쪽의 나홋카는 제2차대전 후에 열린 상·어항으로 러시아의 극동을 향하는 제2의 문호이다.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본부가 있는 군항(軍港)도시이기 때문에 소비에트 연방시대에는 폐쇄도시였다.
러시아는 1700년에 발발한 대북방 전쟁 중인 1703, 핀란드 만 안쪽에 항구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 발트해 함대(발트 함대)의 본거지가 되었다. 러시아는 1712, 항괴 해전에서 스웨덴을 격파해 발트 해의 패권을 획득했다. 이것을 기회로 러시아는 해군의 정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해군이 해군력을 과시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는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18세기까지는 스웨덴 해군에 패배하는 등 치졸한 면은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러일 전쟁 발발 전까지는 풍부한 국력에 의해서 10척이 넘는 전함을 보유하는 대규모 해군을 보유하게 되었다.
러시아 해군은 그 발전에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러시아에는 부동항(不凍港:겨울에 얼지 않는 항구)이 없었던 것이다. 러시아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서 아시아에 세력을 늘리려 해 러일 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나, 황해 해전이나 뤼순 공방전, 울산 해전 등 많은 전투의 패배에 의해서 극동 함대는 거의 괴멸되었고, 동해 해전에 의해서 발트 함대 소속이었던 주력함들도 거의 잃었기 때문에 러시아 해군은 거의 괴멸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에서는 전함 포툠킨 호나 순양함 오카코프 호에서 연달아 반란이 일어나 장병들의 충성심 저하도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러시아가 우리 나라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러청북경조약(露淸北京條約, 1860)으로 약 40만 평방 마일이나 되는 연해주지역을 획득함으로써 국경을 서로 맞대면서부터이다. 그리고 이 무렵 러시아의 주 관심은 우리 나라 영내에서 해군함대를 위한 부동항(不凍港)을 얻는 데 있었다.
1854년에는 일본과 개항교섭업무를 맡았던 푸티아틴(Putiatin,E.) 제독이 거의 한달 가량 동해상에 머물면서 두만강 입구를 측량하고 영흥만도 답사하여 그 내만(內灣)인 송전만(松田灣)을 포트 라자레프(Port Lazarev)라고 명명한 일이 있다. 이어 1857년에는 영토문제 해결을 위하여 청나라로 가던 도중 거문도에 정박한 사실이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한반도의 부동항에 대한 관심표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부동항이 절실히 필요하게 된 것은, 러시아가 연해주라는 광대한 지역을 얻기는 하였지만 중심지역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육로로 이 지역과 통교하기 위해서는 2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었다. 대지가 황폐하여 식량도 자급자족할 수 없을 뿐더러 강마저도 연평균 173일이나 얼어붙어서 하천교통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들로서는 아시아 영토와의 왕래 및 교역업무는 해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 러시아는 연해주의 유지와 나아가 아시아 침략을 위해서도 해군력을 증강해야 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함대의 근거지가 될 수 있는 항만이 필요하였다. 물론, 1860년에 건설한 블라디보스토크항이 있기는 하였지만 연간 4개월(123)이나 얼어붙어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크게 부족하였다.
러시아는 부동항 대상지를 일본령으로 정하고, 1855년 러시아영토가 된 쿠릴열도(Kuril列島, 千島列島)와 일본령인 남부 사할린과의 교환계획을 추진하는 한편, 1861년에는 대마도(對馬島)를 점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영국과 일본의 견제로 좌절되었으며, 진출방향도 한반도로 바뀌게 되었다. 18645명의 러시아인이 경흥으로 찾아와 통상을 요구하기도 하였고, 1866년에는 러시아군함이 원산만에 들이닥친 일도 있었다. [Russia, Russian Federation]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러시아가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얼지 않는 항구인 부동항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볼수 있다. 러일전쟁에 패배한 이유도 유태인 야콥시프가 일본을 돈을 빌려준 이유도 있지만, 흑해 함대가 아프리카를 돌아 현해탄까지 거의 지구 반바퀴를 돌아와서 지쳐서 패배한 것이다.
우리 피부도 말랑말랑한 것이 아니라 동태처럼 단단히 얼어붙게 되는 경우가 있다. 피부에 심도 2도 이상 3도의 화상을 입으면 단단한 자동차 타이어처럼 매우 단단한 느낌을 준다. 즉 화상자국은 보이게도 좋아져야 하지만 만졌을때 질감상에도 흉터의 단단한 언 느낌이 아닌 말캉말캉한 촉감도 줘야 한다.
그런데 황태 덕장에서 얼었다가 녹았다가 하면 육질이 부드러워지듯이 이미지한의원의 화상흉터침인 BT침으로 치료를 반복하면 진피 피부도 말랑말랑해지고 겉보기에도 좋아지고 탄력도 생기며 울퉁불퉁한 것도 개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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