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와 본인 잘못이 아닌 화상흉터치료 BT침
욥기(-記 히브리어: יוֹב 욥, 그리스어: Ἰώβ 욥, 영어: Book of Job)는 기독교 구약성경 가운데에 있는 지혜 문학 대표라고 할 시극(詩劇)이다.
본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양하다. 첫째로 본서의 제목이 주인공 ‘욥’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저자를 욥으로 보는 견해. 둘째, 유대 전승이나 탈무드를 근거하여 모세로 보는 견해. 셋째, 본서 28장과 잠언 8장의 문체가 흡사하다 하여 솔로몬으로 보는 견해. 넷째, 문체의 흐름이 전반적으로 예레미야서와 비슷하다 하여 예레미야로 보는 견해. 다섯째, 본서와 시편 88편의 분위기가 유사하다 하여 시편 88편의 저자인 헤만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저자가 인간의 고난 문제 등에 매우 예민하고 종교성이 심오한 사람이며, 본서가 세계 문학의 걸작 중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한 문학성을 지닌 자이고, 동시에 당대의 뛰어난 지성인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본서의 시대적 배경은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 등의 활동 시기와 비슷한 족장 시대로 추정한다. 이런 맥락에서 본서 기록 연대를 족장 시대 직후로 보는 견해가 있다(B.C. 2,000-1,800년경). 이와는 달리 본서 기록 연대를 훨씬 후대로 보는 경우도 있다. 즉 출애굽 직후인 모세 시대로 보는 견해(B.C. 1400년경)가 있는가 하면 둘째, 지혜문학이 최고조에 달했던 솔로몬 시대로 보는 견해도 있다(B.C. 950년경).
제1장에서 제2장과 제42장 제7절 이하는 산문이고 의인 욥에 관한 전설이며, 제3장 이하의 시의 청취가 있는 부분은 전체에 걸쳐 윤곽이 고대에서 전래된 민화(民話)였다. 천상에서의 신과 사탄의 경쟁 때문에 전혀 이유도 없는 고난을 의연히 견디는, 사유 가능한 범위에서 가장 완전한 신앙자 욥과 그의 행복한 결말을 읊은 것이다.
제3장 이하는 기원전 6세기에서 저자의 현실상 고난을 주인공 욥을 이용해 표현한다. 제3장은 애가(哀歌)로서 생의 저주· 사망·허무를 향한 동경(독백)이며, 제4장에서 제27장은 세 친구간의 대담(對談)이고 제29장에서 제31장은 과거와 현재의 대비, 결백의 맹서로 내용이 되어 있으며, 제38장에서 제42장 제6절은 신과의 대화인데 이것이 줄거리이다. 그 발단은 생의 부조리의 문제로서 이유 없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생을 저주하고 세계의 파괴를 원하게 되며 사망을 동경하게 된다. 그 후에는 무상한 우정과 신을 향한 사랑의 좌절과 중보자(仲保者)를 요청하는 테마가 나타나서 신과의 대결로 향한다. 최후에 신은 창조자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승인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욥기는 욥이라는 사람의 비징벌적 고난을 이용해 시람의 고난을 대상으로 한 신학상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결국 욥의 고통을 바람직하게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보았다.
고통은 인간이 창조자를 기억하고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끔 우조한다 (1:21)
욥처럼 훌륭한 자조차 조물주의 훈육이 필요없을만큼의 겸손을 갖추진 못한다 (23:10)
인간이 창조자에게 변명하는 것은 자신이 신보다 더 잘 알고 더 의롭다고 믿는 교만에서 시작된다 (40:8)
<욥>
내가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져온 것 없었으니 죽을 때에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리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가져가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기 원하노라. (1:21)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23:10)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31:1)
내가 알기에는 내 대속자가 살아 계시므로 그가 마지막에는 땅 위에 서실 것이다. (19:25)
비록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할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분 앞에서 내 행위를 변명해야겠다.(13:15)
<하나님>
이제 허리를 동이고 대장부답게 일어서서, 묻는 말에 대답해 보아라.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40:7-8)
너는 내 종 욥을 잘 살펴 보았느냐? 이 세상에는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 (1:8)
<사탄>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1:11)
<욥의 아내>
당신은 아직도 요지부동이군요?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 버려요. (2:9)
욥[Job] "왜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가?" 구약성서 욥기의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부자이면서도 고결한 품성을 가진 욥은 신의 시험을 받는다. 신이 사탄을 시켜 욥에게 온갖 종류의 고통을 준 것이다. (여기서 사탄은 유혹자가 아니라 시험자다. 욥이 선한 이유는 부자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신에게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다.)
욥은 자식들과 재산을 잃고 피부에 종기까지 얻는다.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욥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또 다른 시험은 그의 세 친구가 가져온다. 이름도 괴상하다. 빌닷, 엘리바스, 소발이다. 이들은 욥을 위로하기 위해 왔으나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욥의 고통이 심해진다. 결국 그들은 모든 게 그가 자초한 일이라고 말한다. 친구들은 그의 고통에 뭔가 논리나 목적이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욥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노라고 주장한다. 신의 정의에 관해 토론하는 욥과 친구들의 대화는 매우 흥미롭다.
그들의 대화가 끝날 즈음 신이 '폭풍우 가운데에서' 출현한다. 신은 선한 사람들이 왜 고통을 받는지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그저 우주가 얼마나 경이롭고 복잡한 것인지 말할 따름이다. 욥은 경외하는 조물주를 만난 자리에서도 그 고통스러운 의문의 답을 얻지 못한다. 끝부분에서 신은 욥이 잃은 것들을 모두 되돌려주면서, 세 친구들을 향해 대화가 너무 깊이 들어갔다며 꾸짖는다. 신은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다만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나를 믿어라"는 식으로 말한다.
물론 끝은 '해피엔딩'이다. 욥은 재산을 되찾고, 새로이 자식들을 얻는다. 그의 세 딸들은 모두 미녀로 태어난다. 프리메이슨의 단체들 중에 여성을 지원하는 '욥의 딸들'이라는 국제 조직이 있다(욥의 이름은 영어로 '일(job)'을 의미한다).
(『바이블 키워드』, 도서출판 들녘)
욥은 잘못이 없이도 재앙이 닥쳐 불행이 연속되어 재산을 잃고, 가축을 잃고, 자식까지 죽어 하루아침에 사고를 당한다. 그런데 욥은 잘못을 해서 이런 설상가상의 재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운명자체가 고통스럽게 된 것이다. 필자는 질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과론적으로 따져 질병이 본인 잘못으로 생기기도 하지만 그냥 한번의 폭풍우처럼 불행이 쏟아지기도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화상으로 그 불에 데인 자국인 화상흉터가 그렇다고 본다. 왜냐하면 화상은 어렸을때[보통 1세-5세경] 죄가 없고 철이 없을때 보통 생기니 본인 부주의보다는 부모나 동반 어른의 책임인 것이다. 또한 한번 부주의로 발생하기에는 너무 고통이 크며 화상자국인 흉터는 그 이후에 수십년까지 마음고생도 시킨다. 이런 화상흉터는 이미지한의원의 흉터침인 BT침으로 진피 콜라겐을 자극 재생해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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