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 이름과 우리의 삶
이제 음력설만 세면 돼지띠 을해(乙亥)년에서 쥐띠 병자(丙子)년으로 바뀌게 된다. 사실 세월이 바뀌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바뀌느냐가 중요함을 알지만 을해년을 맞이하며 새겼던 다짐들이 다시금 아쉬워지는 때이다. 얼마전에 전태일영화기념사업회에서 받은 붓글씨 선물인 ‘처음처럼’이란 멋들어진 말이 유난이 반가웠음은 그 때문이다.
언젠가 어떤 분과 ‘을해, 병자’ 등의 간지를 현대 사회에서 굳이 쓸 필요가 있느냐에 대해 가벼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진짜 의미가 없어서면 모르되 거추장스러워서(?) 반대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라는 게 나의 상식적인 생각이었다.
실제로 이런 말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들먹이는 것 외에 잊을 수 역사적 사건과 더불어 생생히 살아있다. 귀에 익은 것만 들더라도 ‘임신(임신서기석), 병자(병자호란), 임오(임오군란), 갑신(갑신정변), 임진(임진왜란), 갑오(갑오경장), 정유(정유재란),을사(을사5조약),정미(정미7조약),경술(경술국치), 계축(계축일기), 을묘(을묘왜변), 무오(무오사화), 기미(기미독립선언)······’ 등 너무나 많다. 그리고 더욱 진정한 의미는 간지에 의한 계산이 비과학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족과학자 박성래님은 “간지는 인류가 만들어 낸 어떤 계산 방법보다도 편리한 것으로 사람들의 계산과 기억을 돕는 데 아주 편리한 것이다.”고 하면서 옛 사람들은 ‘갑자, 을축, 병인...’의 차례를 외우기만 하면 자기 일생 동안 일어난 사건의 순서 따위를 손쉽게 기억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간지(干支)는 중국에서 넘어 온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삼국 통일기를 앞뒤로 하여 간지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간(干)’은 나무의 줄기를 뜻하며 ‘지(支)’는 나무 가지를 뜻하는 것으로 곧 각각 하늘과 땅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간지는 하늘과 땅 사이의 조화의 근본을 뜻한다. 그래서 천간 지지라 하며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천간(天干:10干)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
지지(地支:12支)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
이 천간과 십이지를 앞뒤로 배열하면 60번째에 가서 천간의 마지막(계)과 지지의 마지막(해)이 딱 맞아 떨어진다. 이것은 흔히 갑자, 을축, 병인···이라고 하는 것으로, 60갑자라 한다. 61번째는 다시 처음(갑자)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니 61살을 ‘회갑(回甲, 환갑)’이라 하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환갑이 지나 새로 출발하는 해 곧 환갑 그 다음 해의 생일을 진갑(進甲)이라 한다. 60갑자를 올해와 내년을 함께 표시해서 보이면 다음과 같다.
갑자 을축 병인 정묘 무진 기사 경오 신미 임신 계유
갑술 을해 병자 정축 무인 기묘 경진 신사 임오 계미
갑신 을유 병술 정해 무자 기축 경인 신묘 임진 계사
갑오 을미 병신 정유 무술 기해 경자 신축 임인 계묘
갑진 을사 병오 정미 무신 기유 경술 신해 임자 계축
갑인 을묘 병진 정사 무오 기미 경신 신유 임술 계해
이런 간지가 잘못 활용되온 인습도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간지(지지)와 음양오행론, 띠가 결합함에 따라 사람의 운수나 운명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지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음양 양 음 양 음 양 음 양 음 양 음 양 음
오행 수 토 목 목 토 화 화 토 금 금 토 수
띠 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닭 개 돼지
시각 23시 1 3 5 7 9 11 13 15 17 19 21
0 2 4 6 8 10 12 14 16 18 20 22
항간에 말띠 여자는 드세다고 하는데 그것은 말이 드세서가 아니라 말띠(오)는 오행론에서 ‘화(불)’에 속하므로 그렇게 된 것이다. 심지어 병오생(丙午生)은 불이 겹쳐 남편을 지나치게 학대해 남편을 잃을 팔자라고까지 하였다. 이런 속설에는 여자는 남자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데 여자의 기가 세어서는 안된다는 가부장 이데올로기와 뿌리깊은 성차별이 자리잡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속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마찬가지로 소띠는 느긋하다는 등 범띠 여자와 양(염소)띠 남자는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등의 속설도 모두 터무니없다. 소띠인 글쓴이는 성격이 너무 급해 늘 고민이다. 지지는 앞표에서 보듯이 시간 단위로 활용되었다. 지지는 열둘이므로 24시간제를 따질 때는 초시(初時), 정시(正時)로 가른다. 그래서 자초가 밤 23시가 되고 자정은 밤 0시가 된다. 낮 12시를 오정(午正) 또는 정오(正午)라고 하는 이치도 같다. 옛글을 읽을 때 자시, 축시 등으로 ‘초, 정’을 가르지 않았을 때는 두 시간의 폭으로 널널하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곧 자시는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축시는 1시에서 3시까지가 된다.
이와같이 간지에 관한 이런저런 말은 아직도 우리삶 깊숙히 살아 있다. 이런 말들을 어떻게 부려쓰느냐는 역시 우리 시대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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