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次
* 序 1
* 들어가는 말 3
1. 太極圖 및 太極圖說에 관하여 6
2. 無極과 太極에 관하여 22
3. 陽動陰靜에 관하여 39
4. 五行 各一性에 관하여 63
5. 乾道成男 坤道成女에 관하여 78
6. 萬物化生에 관하여 92
7. 사람과 人類社會에 관하여 97
8. 中正仁義에 관하여 107
9. 修之吉 誖之凶 (修養하면 吉하고 道理에
어긋나면 吉하게 됨) 에 관하여 121
10. 天道, 地道, 人道에 대하여 124
* 찾아봅시다 129
序
北宋中期에 학문을 가르치는 풍조가 점차 성해졌는데 周敦頤, 邵壅, 張載, 程顥, 程頤는 모두 ‘義理之學’(宋學의 別稱, 經書의 해석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聖人의 道理를 연구하는 학문, 理學, 性理學)으로 당시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맨 먼저 한 개의 비교적 완전한 이론체계를 세운 사람은 周子였다. 二程(程伊川, 程明道)兄弟는 일찌기 젊은 시절때 周子로부터 학문을 이어 받았다고 하는데 程明道가 ‘孔顔樂處’를 宣揚했던 것과, 程伊川이 젊은시절 顔子所好何學論를 저술한 것으로 보아 二程兄弟는 확실히 周濂溪의 깨우침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南宋初期에 朱熹는 伊樂淵源錄(宋의 朱熹가 지은 周茂叔(周敦頤)이하 二程子에 이르는 交游와 弟子의 言行을 수록한 책)을 고찰하여 周子가 理學의 기초를 잡은 사람이라고 확정했다. 이는 역사적 실제에 符合하는 것이다. 周敦頤의 著書에는 太極圖說 및 通書가 있다. 太極圖說에 대해 歷代로 논쟁이 많았는데 그 첫구절인 ‘無極而太極’은 서로 다른 전하는 版本마다 문장도 달랐다. 朱子는 ‘無極而太極’이라고 정했는데 太極圖說의 내용으로 보건데 응당히 이는 정확한 것이다. 그러나 朱子가 ‘太極’을 ‘一理’로 해석했는데 이는 반드시 周敦頤의 원뜻에 符合하는 것은 아니다. 南宋初期以後 周子思想의 淵源에 대해 전해오는 說들이 많았다. 周子는 道家思想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太極이라는 한 단어가 周易大傳에 근본을 두고 있고, 通書 또한 ‘誠’을 기본개념으로 삼고 있고 ‘誠’의 개념은 中庸에 근본을 두고 있다. 周子思想은 비록 ‘援道入儒(도가의 사상을 끌어와 유가에 사용함)’라고 불릴 수도 있지만 그 중심사상은 실제로 周易, 中庸에 근본을 두고 있다. 이는 매우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 太極圖說에 대한 논쟁을 조리있게 정리하며 周子哲學의 본뜻을 상세히 살피는 것이 哲學歷史硏究에 있어 중대한 임무일 것이다. 梁紹輝는 周子의 책을 깊이 연구하여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근래에 梁紹輝가 연구하여 쓴 太極圖說通書義解란 책은 太極圖說의 명칭에 대해 ‘太極’, ‘無極’의 개념에 대한 문제등에 대해 깊은 고찰과 설명을 해놓았으며 심오한 道理를 탐구하고 깊이 숨겨져 있는 것을 찾아냄과 동시에 여러 說을 평정하여 비교적 정확한 결론에 이르고 있다. 이는 가히 칭찬할 만한 것이다. 梁紹輝가 序文을 써 달라하니 여기에 간략히 그 느낌을 써 그의 기특함을 표시하려한다.
1990年 3月 北京大學에서
張 岱 年
들어 가는 말
太極圖는 宋代 理學의 창시자 周敦頤가 우주생성과정에 대하여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며, 아울러 간단한 문자로 된 설명이 있으니 그것을 太極圖說이라고 한다. 太極圖는 모두 5개의 단계로 나뉘며, 크고 작은 10개의 원으로 되어 있고 상하좌우로 10개의 연결선이 있다. 그외에 圖題로 26字가 더 있다.(그림은 다음 장에 있음)
太極圖說은 모두 249字이며 그 全文은 다음과 같다.
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靜而生陰, 靜極復動.一動一靜, 互爲其根. 分陰分陽, 兩儀立焉. 陽變陰合, 而生水, 火, 木, 金, 土.五氣順布, 四時行焉. 五行, 一陰陽也; 陰陽, 一太極也; 太極, 本無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 而變化無窮焉. 惟人也得其秀而最靈. 形旣生矣, 神發知矣, 五性感動而善惡分, 萬事出矣. 聖人定之以中正仁儀而主靜, 立人極焉. 故聖人與天地合其德, 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 君子修之吉, 小人悖之凶. 故曰: 立天地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又曰: 原始反終, 故知生死之說. 大哉易也 斯其至矣!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체계적인 일련의 圖와 說이 있어서 중국학술사상 전대미문의 反響을 불러 일으켰는데, 지금까지도 說이 분분하여 定說을 이루기가 어렵다. 저명한 선배 철학가 張岱年선생이 일찌기 32년전에 편찬한 宋元明淸哲學史提綱중에서 말하였다.
“太極圖說은 ‘無極而太極’에서 시작하여 인류에 대한 설명에까지 이른다. ....太極은 곧 혼연의 총체이다.그러나 ,周敦頤가 無極과 太極이 포함하는 뜻을 명확하게 해석하지 않음으로 인해 후인이 그의 학설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하게 되었다. ”
(“太極圖說從;無極而太極:說到人類. .... 太極就是渾然的總體. 但是周敦頤沒有明確解釋無極和太極的含義, 因而后人對他的學說作了不同的解釋.” )
太極圖 및 太極圖說은 소위 ‘晝不盡言圖不盡意 ’이라 하여 그 자체가 지나치게 간략한데, 이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학술계에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달라서 각기 그것이 옪다고 하는 쟁점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思想을 800년 동안 통치해온 宋明理學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周敦頤의 철학사상을 깊이 탐구하고 토론해야 하며,周敦頤의 철학사상을 탐구하는 관건은 또한 太極圖 및 太極圖說에 대해서 모두 실제에 부합할수 있는 해석을 만드는데 있다.
필자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개척한 우월한 조건과 선배들이 장기간 연구한 커다란 성과에 의지하여 스스로 깨달은 견해를 보이고자 한다.
1.太極圖와 太極圖說에
대하여
太極圖와 太極圖說은 두 종류의 것이나, 합하면 하나요 나누면 둘이되는 긴밀한 연계를 가지면서도 서로 구별되는 周敦頤의 著作이다.‘圖’는 無極과 太極을 가리키는 說明圖이며 그의 直觀을 표현한 것으로서, 朱熹가 말한 ‘其可以象告者’이다. ‘說’은 說明圖의 문자설명이며 그의 이론을 개괄한 것이니, 두 가지는 구별되는 것이다. 단 ‘圖’는 ‘說’을 떠나서 그 뜻을 밝히지 못하고, ‘說’은 ‘圖’를 떠나서 그 象을 세우지 못하니, 따라서 그것들은 또한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이다. 그 관계가 긴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왕왕 ‘圖’로써 ‘說’을 포괄하여 말하곤 했다.(혹은, 作者가 원래 이런 식으로 제목을 붙였을 수도 있다.)
周敦頤가 太極圖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周敦頤의 친한 친구 潘興嗣가 만든 濂溪先生墓誌銘에서 최초로 보인다. 墓誌銘에서 潘興嗣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더욱 名理를 잘 말했고 易學에 심취했다. 太極圖,易說,易通,數十篇과 詩十卷을 지었는데 , 지금 가문에 보관돼 있다.” ( 尤善談名理 深于易學 作 太極圖易說易通 數十編 詩十卷 今藏于家 )
或者는 潘興嗣가 말한 太極圖는 단지 ‘圖’만을 가리키고 ‘說’은 포함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張栻는 朱熹가 편찬한 太極通書의 「後跋」중에서 말하였다.:
“소위 太極圖는 강령이다. 動靜의 起源을 미루어 밝혔고, 이로써 낳고 변화하는 것이 다함이 없고, 天命이 흘러 행하는 본체가 없는 곳이 없음을 나타내었다. 문맥을 잘 살피면 本末이 반드시 一貫된다. 미묘하고 깊음을 상세히 밝히지 않으면, 그 要旨를 알 수 없다.”
( --- “所謂太極圖, 乃其綱領也, 推明動靜之一源, 以見生化之不窮, 天命流行之體, 無乎不在. 文理密察, 本末該貫, 非闡微極幽, 莫能識 其指歸也.” )
그것(太極圖)을 강령이라 칭할 수 있고 또한 ‘文理密察 本末該貫’이라 할수 있는 것은 절대로 간단한 說明圖가 담당하거나 완성할 수 없는 것이다. 張栻가 단지太極圖로써 그 것을 개괄한것은 ‘圖’로써 ‘說’을 포함한다는 實證인 것이다.
다시 宋史本傳에서 周敦頤가 학문을 한 것에 대한 기록을 보면, “널리 학문을 하고 힘써 행하였으며, 太極圖를 지어 天理의 근원을 밝히고 만물의 終始를 窮究하였다. 그 說에서 말하길 ‘無極而太極 ‧‧‧‧‧‧‧.’이라 하였다.(博學力行 箸太極圖,明天理之根源,究萬物之終始.其說曰;無極而太極.----)’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로써 宋史작자 또한 太極圖說을 太極圖속에 포함했음을 알 수 있다.
太極圖說이 또한 어떻게 太極圖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는가? 최초로 ‘圖’,‘說’이 나란히 나오는 것은 朱熹부터이다. 그가 再定太極通書後序(南康本)中에서 말하였다.:
“오른쪽 周子의 太極圖 와 說一篇 通書四十章은 세상에 舊本으로 전해졌다. 遺文 九篇 遺事 15條 事狀 一篇은 내가 편집했다. 모두 교정하였으니 고쳐 쓸만 하다. 내가 여기에 견해를 붙였으니 학자들은 얻어 참고하시오.”
( ----- 右周子 太極圖幷說一篇 通晝四十章,世傳舊本遺文九篇 遺事十五條.事狀一篇,熹所集次 皆已枚定 可寫? 熹令附見于此. 學者得以考焉 )
朱熹가 어째서 습관상 太極圖說을 포함하여 말하는 太陽圖를 배척하고 ‘太極圖 幷 說’이라고 말하여야 했는가? 그 이유를 헤아리면 아래 몇가지 점으로 집약된다.
첫째, 합해서 하나로 말하는 불명료한 습관적 설명 태도를 싫어한 것이다. 宋史本傳에서 太極圖라고 말한 뒤에 부득이하게 ‘其說日’이라고 그 說과 圖를 구별하였는데, 이것이 명확한 예이다.(周敦頤 本傳은 宋史에 나오는데, 朱熹가 편집하기 조금 전에 만들어졌다.)
둘째로, 說의 비중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실로 바른 강령을 잡고 미세한 부분을 밝히고 심오한 뜻을 나타내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문자이지, 그림으로써 象을 표시하는 단순한 太極圖와 같은 說明圖가 아니다.
세째, 圖와 說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수 있다. 太極圖는 第 一層에서 五層으로 되어 있고 宇宙本體와 萬物生成의 순서를 전적으로 설명하는데, 太極圖說에서 ‘惟人也得其秀而最靈’以下 126字는 仁, 義, 中正等 人生論範疇의 문제에 속한다.(張岱年先生은 宇宙論과 相對的인 人生論을 中國哲學의 중심부분으로 보았고, 天人關係論, 人性論, 人生理想論 및 人生問題論의 諸方面을 총괄 하였다.)
이렇듯 說은 本體論에서 人性論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스스로 체계를 이루는 강령이다.그래서 說을 단지 그림(太極圖)에 대한 문자 설명으로 삼아 그림 뒤에 덧붙이는 것 보다는 차라리 독립된 篇, 章(설)으로 만드는 것이 나으니, 이는 朱熹가 용의주도하게 안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圖’와 ‘說’은 어찌하든 응당 하나로 합하여 져야 하지만 또한 둘로 나눌 수도 있는 것이니, 이는 진실로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
우선 ‘圖’와 ‘說’의 작자에 대해 마땅히 먼저 확정 해야한다. 太極圖說과 太極圖가 모두周敦頤의 著作인지의 여부는 역대로 爭論이 되어왔다.潘興嗣의 濂溪先生墓地名에서는 太極圖(說을 포함)가 周敦頤의 작품이라는 것을 긍정했다. 그러나 조금 後代의 朱震은 著書 漢上易解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陳摶은 先天圖를 种放에게 전하였고, 种放은 穆修에게 전하고, 穆修는 李之才에게 李之才는 邵壅에게 전하였다. 种放은 河圖와 洛書를 李漑에게 전하였고, 李漑는 許堅에게 전하고, 許堅은 范諤昌에게, 范諤昌은 劉牧에게 전하였다,. 穆修는 周敦頤에게 太極圖를 전하였고, 周敦頤는 程顥, 程頤에게 이를 전하였다.( --- “陳摶以 先天圖 傳種放, 放傳穆修, 修傳李之才, 之才傳邵雍. 放以 河圖, 洛書 傳李漑, 漑傳許堅, 許堅傳范諤昌, 顎昌傳劉牧. 穆修以 太極圖 傳 周敦頤, 敦頤傳程顥, 程頤.”)
( 宋史 朱震傳) )
朱震의 說은 周敦頤가 太極圖說의 작자임을 부정했다. 潘興嗣는 周敦頤의 生前의 친한 친구이고, 朱震은 謝良佐의 門下生으로 李程의 2代 弟子이다. 淸나라 사람 毛奇齡의 考證에 의하면, 朱震이 일찌기 ‘친히 그 그림을 보고 매만졌다(親見其圖而摩畵之)’고 하였으며, 아울러 그림 뒤에 다음과 같이 注釋을 붙였다고 하였다.
“오른쪽 太極圖는 周敦頤 茂叔이 二程선생에게 전수한 것이다.”(“右太極圖, 周敦頤茂叔傳二程先生”)
理致상 潘興嗣,朱震 두사람의 說은 모두 가히 믿을만하다. 그러나 이 두가지 說은 이처럼 모순되어서 마침내 오랜 쟁론의 실마리가 되었다. 朱震보다 조금 후대의 朱熹는 太極通書后序중에서 朱震의 관점을 반박하여 말하였다.:
“내가 또 일찌기 朱內翰震의 進易說表를 읽은 일이 있다. 이책에서 이 그림의 전수과정이 陳摶으로부터 种放, 穆修로 이어졌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五峰胡公仁仲이 쓴 通書序에서 또 말하기를 선생은 단지 种放, 穆修에서 그치는 학자가 아니었으며 이들은 다만 그가 배운 한 스승일 뿐 그 지극한 학자들은 아니었다고 하였다. 무릇 선생의 학문의 오묘함은 이 太極圖를 벗어나지 않았는데, 그것을 다른사람에서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种放, 穆修에서 언급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지극히 뛰어난 학자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선생의 학문이 또 이‘太極圖’에 어떻게 덧붙일 수 있었겠는가? 이렇기 때문에 가만히 의심해 보았다. 그런데 ‘誌’의 문장(潘興嗣가 지은 墓誌를 가리킨다)을 얻어 고찰해보고서야 과연 선생의 自作이며 남에게 전수받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誌’를 보지 않고 말했을 따름이다.”
( ----- “熹又嘗讀朱內翰震進易說表, 謂此圖之傳, 自陳摶, 種放, 穆修而來, 而五峰胡公仁仲作 通書序, 又謂先生非止爲種, 穆之學者, 此特其學之一師耳, 非其至者也. 夫以先生之學之妙, 不出此圖, 以爲得之于人, 則決非種, 穆所及. 以爲非其至者, 則先生之學, 又何以加于此圖哉! 是以竊嘗疑之. 及得 ‘志’ 文(指潘興嗣所作墓志-- 引者) 考之, 然后知果先生之所自作, 而非有所受于人者, 公盖皆未見此‘志’而云云耳.”)
朱熹는 周敦頤를 가장 추앙한 사람으로 周敦頤가 孔子를 계승한 이후의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스승의 전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은연중에 道體에 뜻이 통했으니, 실로 하늘이 내린바이다.(不由師傳, 黙契道體, 實天之所畏)’라고 하여 그에게 스승과의 계승관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潘興嗣와 朱震의 두 학설은 보편성이 결여된 것으로 생각된다. 전자는 단지 周敦頤의 獨創性에 치중하였고 그의 연원을 소홀히 했다. 반대로, 후자는 周敦頤의 연원에 치중하였고,그의 독창성을 소홀히 했다. 이러한 문제상에 있어서 두 방면을 살피고 아울러 이 두 방면에 긍정적인 평가를 최초로 내린 사람으로 明나라 末의 黃宗炎(黃宗羲의 동생)이 있는데, 그의 저서 太極圖辨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고찰해 보건대,河上公은 본도를 無極圖라 명하고, 魏伯陽은 이를 얻어 參同契를 지었고 鍾離權은 이를 얻어 呂洞賓에게 주고 洞賓은 후에 陳圖南과 華山에 은거하여 陳圖南에게 전수하였고, 陳圖南은 이를 華山의 석벽에 이를 세겨놓았다.陳圖南은 또 先天圖를 麻衣道者에게서 先天圖를 얻어 모두 种放에게 전수하였고, 种放은 穆修와 승려 壽涯에게 주었고 穆修는 先天圖를 李挻之(子才)에게 전수하였고 挻之는 邵天叟에게 전수하였으며 天叟는 아들 堯夫(雍)에게 전수하였다.穆修는 無極圖를 周子(周敦頤)에게 전수했는데, 周子는 또한 먼저 天地의 게송(偈)을 壽涯에게서 얻었다.”
( --- “考河上公本圖名 ≪無極圖≫, 魏伯陽得之以著≪參同契≫, 鍾離權得之以授呂洞賓. 洞賓后與陳圖南 (摶) 同隱華山, 而以授陳,陳刻之華山石壁. 陳又得 ≪先天圖≫ 于麻衣道者, 皆以授種放, 放以授穆修與僧壽涯. 修以 ≪先天圖≫ 授李挺之 (子才), 挺之以授邵天叟, 天叟以授子堯夫 (雍). 修以 ≪無極圖≫ 授周子, 周子又得先天地之偈于壽涯.”)
(宋元學案卷 12)
이 말의 대강은 朱震과 동일하나 朱震의 설과 비교하여 맥락이 더욱 분명하고 朱震이 無極圖를 太極圖라고 한 착오를 바로잡았다. 이와 같은 말로보면 周敦頤는 순전히 답습한 것이지 결코 자기의 독창성은 없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黃宗炎은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하였다.
“그 圖는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간 것으로 거슬러서 成丹하는 法을 밝혔다.‧‧‧‧‧‧‧ 周敦頤는 이 그림을 얻어 그 순서를 바꾸었고 또 그 이름을 바꾸었으며, 大易에 붙여 儒家의 秘傳이라고 생각했다. 대개 道士들의 비결은 거슬러서 成丹하는데에 있으므로, 아래로부터 위에 이른다. 周敦頤의 뜻은 이치에 순종하여 사람을 생하는고로 위로 부터 아래에 이른다.”
( --- “其圖自下而上, 以明逆則成丹之法. --- 周子得此圖, 而顚倒其序, 更易其名, 附于≪大易≫, 以爲儒者之秘傳. 盖方土之決, 在逆而成丹,故從下而上; 周子之意, 以順而生人, 故從上而下.”)
周敦頤의 독창성은 우선적으로 道士들의 ‘逆而成丹’을 자기의 ‘順而生人’으로 고친데에 있다. 다시 말하면, 道士의 아래로부터 위로 이르는 煉丹圖를 빌어 위로부터 아래로 이르는 萬物生成圖로 만들었다는 것이다.圖名이 바뀌고 순서가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사용되는 개념과 이론체계가 모두 바뀌었다. 黃宗炎의 비교에 의하면 原圖에서 맨윗 원의 ‘煉神還虛 復歸無極’은 ‘無極而太極’으로, 두번째 원의 ‘取坎塡離’는 ‘陽動陰靜’으로, 세번째원의 ‘五氣朝元’은 ‘五行各一性’으로 네번째 원의 ‘煉精化氣 煉氣化神’은 ‘乾道成男 坤道成女’로, 맨 아래원의 ‘玄牝’은 ‘萬物化生’으로 周敦頤가 바꾸었다.
明末淸初의 저명한 사상가인 王夫之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에서는 周子가 陳圖南에게서 그것을 얻었다 하나, 내가 생각컨대 陳圖南이 전한것은 이 그림 하나 (즉 두번째 圖-작자)뿐이고 상하의 도는 周子가 마음으로써 얻어 덧붙인 것이요, 陳圖南이 전한 것은 아니다.”( “世傳周子得之于陳圖南, 愚意陳所傳者此一圖(則第二圖---引者), 而上下四圖則周子以其心得者益之, 非陳所及也.”)(思問綠外篇)
이로 보건대 周敦頤는 단지 原圖의 형식을 이용했을뿐이고 보충한 것은 전적으로 자기의 참신한 내용이었다.
이러한 정황에 기초하건데 太極圖가 周敦頤의 著作 인지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이러하다. 즉 ‘圖’의 형식에서 말하자면 빌어쓴것이거나 혹은 사제 계승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상체계로 말하자면 독창적이며 전수받은 것이 아니다.
太極圖說이 周敦頤의 著作인지는 朱熹와 육씨형제의 논쟁의 주제였다. 陸九韶는 朱熹의太極通書后序를 보고 朱熹에게 편지를 써서 다른 견해를 보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 太極圖說은 通書와 비슷하지 않으므로 周子가 쓴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학문이 아직 이루어지기 전에 쓴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타인의 글을 전수한 것인데 후인이 가리지 못 한 것이다.”( --- “太極圖說 與 通書 不」類, 疑非周子所爲. 不然, 或是其學未成時所作. 不然, 則或時傳他人之文, 后人不變也.” )
아울러 周敦頤의 著作인 通書에는 ‘無極’이라는 말이 제시되지 않았는데, 이를 증거로 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령 太極圖說이 전해져 온 것이라고 하거나, 혹은 少時때의 著作이라고 하는데, 通書에 ‘無極’이라는 말을 안한것을 보면 그 說이 그르다는 것을 이미 알게 된다.”
朱熹는 回信하여 반박했다.
“‘無極’을 말하지 않으면 太極은 하나의 물체와 같아서 만물화생의 근본이 되기에 부족하다. 太極을 말하지 않으면 無極은 空寂에 빠지게 되고 만물화생의 근본이 될 수 없다.”( “不言無極, 則太極同于一物, 而不足爲萬化根本; 不言太極, 則無極論于空寂, 而不能爲萬化根本”)
후대에 陸九淵이 그형 陸九韶를 이어 받아 재차 논쟁을 일으켰다. 즉 ‘太極圖說은 無極이라는 두자로 시작하고 있는데, 通書에는 종편까지 한번도 無極이라는 말을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二程의 말씀과 글이 역시 지극히 많으나, 역시 한번도 ‘無極’이라는 말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太極圖說以無極二字冠首, 而通書終篇未嘗一及無極字.二程言論,文字至多,亦未嘗一及無極字)’라는 이유로 다음과 같이 朱熹를 비평했다.
“형(朱熹)이 교정하고 주석을 달아 존경과 신뢰를 드러냄이 이와 같이 지극하나, 스승의 道를 본받아 잘쓴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兄今考訂註釋, 表現尊信, 如此其至, 恐未得爲善祖述者也.”)
또한 潘興嗣의 墓誌가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고 지적하여 말했다.:
“潘淸逸(興嗣)이 어찌 濂溪의 뜻을 아는 사람이겠는가!”
아울러 周敦頤의 후대가 潘興嗣에게 墓誌를 쓰도록 청한 것이 부당하다고 책망하여 말했다.:
“明道와 伊川이 친히 濂溪을 스승으로 삼았으나 당시 潘興嗣를 숭배하는 자가 적지 않았으므로 濂溪의 뜻은 마침내 潘興嗣에게 속하게 되었다.이로보아 그래서 그 자손들이 그 학문의 대를 잇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 “明道, 伊川親師承濂溪, 當時名賢居潘右者亦復不少, 濂溪之志卒屬于潘, 可見其子孫之不能世其學也.”)
朱熹는 뜻밖의 일격을 받았으나 오히려 그 뜻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오히려 周敦頤 사상을 잘 표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가 말했다.:
“만약 無極의 두자를 논하자면 이는 周子의 명철한 道를 바라보는 견해이다. 일상의 정을 벗어나 주변사람들의 시비를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득실을 계산하지 않고 용기있게 앞으로 나아가 사람들이 감히 설명하지 못하는 근본 도리를 설명하였고 후학들로 하여금 뚜렷이 太極의 오묘함을 알 수 있게 하였다.”
(“若論無極二字, 乃是周子灼見道體, 逈出常情, 不顧旁人是非, 不計自己得失, 勇往直前, 脫出人不敢說底道理, 令后之學者소然得太極之妙.”)
朱熹와 陸氏兄弟의 논쟁은 양대학파간의 쟁론이 되었고 각각 세력이 웅후한 문인의 지지를 받았는데, 소위 ‘入者主之 出者奴之’라 하듯이 그 시비를 가리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사실 그 자체는 필경 是是非非가 있는 것으로, 근래의 呂思勉이 그 저서인 理學大綱에서 말하기를 ‘通書는 周子의 인생관이요 太極圖說은 그의 우주관이다. 인생관은 우주관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다. 太極圖說을 제외시키면 通書는 그 근본바탕을 잃어버린다.’(通書 者, 周子之人生觀; 太極圖說, 則其宇宙觀也.人生觀由宇宙觀而立. 廢 太極圖說, 通書亦無根柢矣.)라고 하였다.이는 가히 통달한 논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太極圖說이 周敦頤 著作인가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黃宗炎이 朱熹에 대해 ‘未免過于標榜( 너무 치켜 세웠다.)’이라고 평가한 것에 동의하는 것를 제외하고는, 朱熹의 견해를 찬성해야한다.
太極圖와 太極圖說을 둘러 싸고 전개된 논쟁이 지금은 종식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논쟁이 제시되었다. 근래에 출판된 有關學術著作들은 太極圖說을 太極圖‧易說로 쓰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연히 나온 것이라고 소홀히 넘길 수도 있으나, 필경 하나의 관점과 일종의 학술을 이루므로 판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太極圖‧ 易說이라는 표현은 宋明理學史에 처음 보인다. 작자는 상권 46 항에서 周敦頤 약력을 소개하면서 ‘주요著作에 太極圖‧ 易說이 있다.’ 고 했으며, 49 항에서 潘興嗣 墓誌의 원문을 인용하면서 ‘ 더욱 名理를 잘 말했고 易學에 심취했다. 太極圖‧易說 易通 수십편과 수십편을 지었는데,지금 가문에 보관되어 있다. (“尤善談明理, 深于易學, 作太極圖‧易說, 易通 數十篇, 詩十卷, 今藏于家.”)’고 하였다.같은 항에서 작자는 周敦頤의 著作을 총괄하여 ‘이에 근거하면 周敦頤의 저작은 太極圖‧易說 易通 姤說 同人說 時등이 있다(“据此, 則周敦頤的著作有: 太極圖‧易說, 易通, 姤說, 同人說, 詩等.”)’고 말했다.연이어서 太極圖‧易說의 유래에 대해 고증하여 말하였다.:
“ 朱熹는 周敦頤의 著作에 대해 논의를 한 적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周子의 太極圖와 說 1편,通書40장은 세상에 舊本으로 전해졌다. 遺文 9편 遺事15조 事狀1편은 내(朱熹)가 편집했다.모두 교정하였으니 고쳐 쓸만하다.’‘무릇 선생의 학문이 심오함은 象으로써 알릴 수 있는 것이지, 太極圖 하나에 갖추어진 것은 아니다. 通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속뜻을 밝히는 것이다.’‘따라서 淸逸潘公은 선생의 墓誌를 쓰고 그 지은 책을 적었는데,특히 太極圖를 처음에 두고, 다음에 易說, 易通을 두었는데 그로써 이를 알게 된다.’( 그 뒤에 朱熹는 스스로 주를 달아 말했다.‘선생의 易說은 오래되어 세상에 전해지지 못했다. 예전에 판본 두 개를 본 적이 있는데 모두 이것이 아니었다. 그 하나는 卦說인데, 陣忠肅公이 지은 것이다. 또 하나는 系辭說인데, 佛家나 老者의 진부한 이야기요, 그것은 아주 조잡하고 웃기는 것이었다. 이는 易의 이름으로 천하의 道를 속인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비유컨대 원숭이 기르는 사람이 원숭이들을 속이는 것과 같다. 이로 보건대 그것들은 선생이 지은 것이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易通이 곧 通書가 아닐까 생각한다. 무릇 易說은 대개 경전에 의거함으로써 뜻을 풀었는데, 通書는 경전의 큰 뜻 전체를 통틀어 논했으나, 경전에 억매이지 않은 것이다. 다만 그것이 易을 떠나 현 이름(通書)으로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모를 뿐이다.’)‘그런데 모든 판본이 太極圖說을 通書뒤에 붙여 놓아서, 독자들이 마침내 太極圖說이 책의 마지막 장으로 잘못 알게 되었고, 선생이 상을 세운 미묘한 요지를 어둡고 밝지 못하게 했다. 무릇 通書를 말하는 사람이 또한 종종 그 강령이 여기(태극도설)에 있음을 알지 못한다.’ ”
( --- “朱熹于周敦頤的著作, 有過一番議論, 云: ‘周子 ≪太極圖≫ 幷說一篇, ≪通書≫四十章, 世傳舊本. 遺文九篇, 遺事十五條, 事狀一篇, 熹所集次, 皆已校定, 可繕寫.’ ‘盖先生之學之奧, 其可以象告者, 莫備于太極之一圖. 若 通書 之言, 盖皆所以發明其蘊.’ ‘故淸逸潘公志先生之墓而敍其所著之書, 特以作 太極圖爲 首稱, 而后乃以 易說, 易通 系之, 其知此矣.’ (其下, 朱熹自注云: ‘先生易說, 久矣不傳于世. 向見兩本, 皆非是. 其一 卦說, 乃陳忠肅公所著; 其一 系辭說, 又皆佛老陳腐之談, 其深陋而可笑者, 若曰易之冒天下之道也, 猶狙公之罔衆狙也. 觀此,則其決非先生所爲可知矣. 易通, 疑則 通書, 盖 易說 旣依經以解義,此則通論其大旨, 而不系于經者也. 特不知其去易而爲今名 始于何時耳.’) ‘然諸本皆以 ≪太極圖說≫ 附于 ≪通書≫ 之后, 讀者遂誤以爲書之卒章, 使先生立象之微旨, 暗而不明, 驟而語夫 ≪通書≫者, 亦不知其綱領之在是也.’) (太極圖說通書書後)
위의 단락에 있는 복잡한 인용문은 실제로 太極圖說通書書後 즉 再定太極通書後序의 앞부분이다. 작자가 인용할때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어구를 생략하고, 또 성실하게 생략부호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일률적으로 인용부호를 새로운 문장마다 사용하였기 때문에 복잡하고 어지러워 아주 읽기에 어렵게 되었다. 원문에서는 ‘可繕寫’밑에 ‘熹按’이란 두자를 놓아서 이것이 그 뒤의 주해에 붙어 있음을 나타냈다. 그리고, 주해중 ‘其知此矣’아래에 ‘按’자를 또 끝에 써서,潘誌에 제시된 易說,易通에 대해 설명하고 있음을 표시했다. ‘然諸本皆附于通書之後’에서 비로소 큰 주해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
宋明理學史의 저자는 윗 문장 뒤에 평론하였다.
“ 朱熹의 이러한 말은 좋은 견해이다.그러나 이것은 결코 실제와 완전히 부합되지는 않는다. 周敦頤의 著作은 潘志의 첫머리에 있는 太極圖‧易說 에 의거 해야 한다. 소위 太極圖 幷說 一篇은 곧 太極圖‧易說이다. 說은 易說이다. 太極圖幷說이외에 달리 이른바 易說이란 것은 없다. 易說이 없는 바에야 朱熹가 말한 바 ‘易說久矣不傳于世’는 진짜로 ‘오래되어 세상에 전해지지 않은’것이 아니고,실제로 이러한 易說이 있지 않은 것이며, 따라서 그것이 세상에 전해지지 않은 것은 이상할 게 없다. 太極圖說은 무릇 易으로써 도를 설명한 것이다. 문장에서 ‘太極’ ‘日月’ ‘動靜’ 운운한 것은 모두 易傳에 근거한 것이다. 문장 끝에서도 또한 易을 인용함으로써 다음과 같이 결말을 지었다.“그러므로 이렇게 말한다. 하늘이 도리를 세우면 일컬어 陰과 陽이요,땅의 도리를 세우면 일컬어 부드러움과 강함이요, 사람의 도리를 세우면 일컬어 仁과 義이다. 또 이렇게 말한다. 근원에서 시작하였다가 되돌아와서 마친다. 따라서, 삶과 죽음을 아는 말이다. 크도다. 易이여, 그 지극함이여!”
이처럼 태극도설이 역으로 도를 설명했다는 증거가 뚜렷하니 易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 ---- “朱熹的這番話, 亦有見地, 但是幷不完全符合實. 周敦頤的著作, 應」依潘志, 首 太極圖‧易說. 所謂 太極圖 幷說一篇, 則是 太極圖‧易說. 說則 易說. 非 太極圖幷說之外, 別有所謂 易說. 旣無 易說, 則朱熹所謂‘ 易說 久矣不傳于世’者, 非眞是 ‘久矣不傳于世’,, 而是實未賞有此 易說, 故無怪其于世無傳. 太極圖說 盖則以 易 說圖, 文中‘太極’ ‘陰陽’ ‘動靜’云云, 都根据 易傳. 文末又引 易以作結曰: ‘故曰, 立天之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又曰,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大哉易也, 斯其至矣! ’ 證据昭著, 不可移易.”)
이상의 글에서 근거하면 宋明理學史의 작자는 太極圖說을 太極圖‧易說로 고쳤는데, 그 이유는 네가지임을 알 수 있다.
1.潘志에 있는 太極圖,易說은 마땅히 太極圖‧易說 로 읽어야 한다.
2.朱熹가 쓴 書後에 있는 太極圖 幷 說은 곧 太極圖‧易說이며 결코 太極圖 외에는 따로 說이 없다.
3.이른바 ‘易說이 오래되어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 실제로는 없어서 세상에 전해지지 않은 것이다.
4.太極圖說이 易으로써 그림을 설명했고,易을 인용하여 결말을 지었으므로 당연히 太極圖‧易說이라고 해야 한다.
필자는 이런 네가지 이유가 모두 성립되기 어렵다고 보는데, 이제 순서대로 다음과 같이 논한다.
1. 潘志에 관하여 .
이 속엔 끊어 읽는 문제가 있으니 곧 습관상의 문제이다.
潘志의 원문은 ‘尤善談名理深于易學作太極圖易說易通數十篇時十卷今藏于家’이다.이 27字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데, ‘太極圖易說易通’의 7자를 잘 처리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글자의 전체를 살펴볼 때, 세가지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첫째는 세 단어를 병립하여 세가지 사항으로 간주하고,‘太極圖,易說,易通’으로 읽는 것이다. 둘째는 앞의 두 단어를 합쳐 읽어서 두 사항으로 간주하고 ‘太極圖易說,易通’으로 읽는 것인데, 위 책이름에 괄호를 치면 太極圖易說,易通이 된다. 셋째는 뒤의 두 단어를 합쳐서 두가지 사항으로 간주하여, 太極圖易說易通으로 하는 것이다.세가지의 읽는 방법중에서 자연히 첫번째 방법이 가장 좋은데,앞의 것은 그림이고 뒤의 두개는 책으로서,세 단어가 병립하여 매우 확실하다.두번째의 읽는 방법이 가장 불합리하다. 고인의 관념에 도와서는 엄격히 구별된 때문인데 이는 소위 ‘河圖洛書’,‘左圖右書‘란 것에서 볼 수 있다. 세번째 방법은 사실상 이같이 처리한 사람이 없었다. 다만 두번째 방법보다는 합리적인데, 易說,易通이 모두 책으로 같은 부류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모두 글자의 배열에 따라 착안하여 말한 것이므로,당연히 易說이 太極圖說이 되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문제다. 그러나 易說이 太極圖說이 되는 아니든 상관없이 끊어읽는 그 자체에 있어 太極圖‧易說은 옳지 않다. 더우기 ‘道’字와 ‘易’字 사이에 사이띄기부호 (‧ )를 넣은 것은 이것을 이도 저도 아니게 만들었다.
2. 朱熹書后의 “太極圖 幷 幷說” 에 관하여
宋明理學史의 작자가 이르기를 ‘소위 太極圖 幷說一篇은 즉 太極圖‧易說이며, 說이 즉易說이다. 太極圖幷說 이외에 별도로 소위 易說은 없다.’라고 하였다.이러한 설명은 확실히 매우 부족하다.작자가 潘志의 原文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는 작자의 개인적인 일이나,자신의 주관적 판단이 자구해석이나 장구해석을 朱熹보다 잘 했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불가하다.이것이 그 첫번째 이유이다.
朱熹의 “太極圖 幷 설 一篇”은 실제상 “太極圖와 太極圖說一篇” 이며 太極圖說의 “太極圖” 석자는 앞에서 이어 생략한 것이다. 古人이 문장을 씀에 반복되는 것을 피하려고 이와같이 한 것이 많다.이것이 그 두번째 이유이다.
‘太極圖 幷 說一篇’은 朱熹의 원문인데, 이제 ‘太極圖 幷 說’을 ‘太極圖‧易說’로 해석한다면, 이 ‘易’字는 어디서 온것이고 원문중의 ‘幷’字는 어디로 간것인가?
어떻게 이런식으로 원문에 편의에 따라서 글자를 더하고 뺄 수 있는가? 이것이 그 세번째 이유이다.
潘志에서 太極圖‧易說이라고 분명히 말했고, 朱熹 또한 “圖”에서 “圖說”이 나왔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어째서 이런 사실을 돌아보지 않고 진짜인 것처럼 ‘太極圖와 說 이외에 별도로 소위 易說이 없다’고 하는가? ” 이것이 네번째 이유이다.
3. “不傳于世” 與 “于傳無傳”에 관하여
宋明理學史의 작자가 朱熹의 원문에 대해 정곡을 찔러 말하였다.:
“易說이 없는 바에야 朱熹가 말한 바 ‘易說 久矣不傳于世者’는 진짜로 ‘오래되어 세상에 전해지지 않은’것이 아니고 실제로 이러한 易說이 있지 않은 것이며, 따라서 그것이 세상에 전해지지 않은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여기서 ‘세상에 전해지지 않은 것이 이상 할 게 없다.’는 말로부터 작자가 ‘세상에 전해질 것이 없기 때문에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사실 각각의 正史藝文志를 보면, 고서가 목록은 있으나 그 책이 실전된 것이 심히 많다. 고로 전해지지 않았다고 하여 그 책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하다.周敦頤의 易說에 대해서도 또한 이같은 견해가 적용되어야 한다.
4. 易을 인용하여 ‘圖’를 설명한 것과 易을 인용하여 결말을 만든것에 관하여
漢나라 이후로 사람들 마음속에는 易이 이론의 최고 권위였고, 대개 이론문장에서 자주 인용하여 이 論을 세웠다.
때로는 易으로써 서두를 만들었는데, 예를들어 명나라 사람 王鰲이 쓴 親政篇의 開篇을 보면 다음과 같다.
“易之 泰曰 : 上下交而其志同. 易之否曰 :上下不交而天下無邦”
또는 易으로써 결말을 지었는데, 阮禹가 쓴 爲曹公作書與孫權을 보면 다음과 같다.
“愿人君及孤, 虛心回意, 以應時人補袞之嘆, 而愼周易牽復之義”
문장중에 인용한 것에 있어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韓愈의 爭臣論에 ‘是 易 所謂恒其德貞,而夫子凶者也.’라 했다. 柳宗元의 箕子碑에 ‘故在 易曰 : 箕子之明夷,正蒙難也’라 했다. 范仲淹의 嚴先生祠堂記에 ‘在 蠱之上九, 衆方有爲, 而獨不事王侯, 高尙其事’라 했다. 이것들은 모두 그 증거이다.
太極圖通書에 이르면 본래 易을 해석하여 만들었는데 어찌 易의 내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만일 太極圖說이 易을 인용하여 ‘圖’를 설명한다고 하여 반드시 太極圖‧易說로 써야한다면, 通書도 易으로 말미암은 책이므로 또한 반드시 通書‧易說로 써야 한다.이러한 이치에 의거한즉 옛날부터 내려오는, 易을 인용하여 말한것은 모두 ××․易說이라고 해야한다.이렇게 하면 천하의 책이 어찌 크게 혼란스럽지 않겠는가?고로 이 네 번째 이유는 더욱더 성립할 수 없다.
상술한 이유 때문에 우리들이 말하는 太極圖說는 곧 太極圖說이지, 어떠한 太極圖‧易說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易說이라는 책이 있는지 없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며 별도의 고증을 해야함이 마땅하다.
太極圖와 太極圖說의 作者에 있어서, 이미 앞 문장에서 말했듯이, 모두 周敦頤가 만든것이며, 周敦頤가 만든 두 종류이면서 합하면 하나요 나누면 둘이되는, 관계가 있으면서 또한 구별이 되는 著作이다.
2. 無極과 太極에 관하여
太極圖의 第 一層은 가느다란 흑선으로 큰 흰원을 그려서 宇宙萬物이 생겨나는 바를 표현하였다. 이러한 하나의 간단한 설명도는 본래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太極圖說은 시작하는 편에 ‘無極而太極’이라고 다섯자의 해석을 붙였는데 이 다섯자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無極而太極’이라는 말은 정말로 복잡하고 난해한 것으로 주돈이 철학사상의 근본적 특징을 이루며,우주생성에 관한 중국 儒家들의 연구의 실마리를 열었고, 宋나라 이후의 理學에 無極‧太極등 우주본체론의 범주와 모형을 제공하였으며, 중국철학사상사에 있어서 새로운 한 종목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이 간단한 흰원이 無極을 표시하는가, 또는 太極을 표시하는가, 혹은 無極을 표시하면서 아울러 太極을 표시하는가라는 문제에 귀속된다. 그것과 관련하여 ‘無極而太極’이라는 말이 無極으로 말미암아 太極이 되었다는 말인가, 또는 無極이 곧 太極이라는 것을 말하는가, 혹은 無極이 있으면서 동시에 따로 太極이란 것이 있다는 말인가라는 문제로 귀속된다. 이러한 몇가지 다소 우주본체론에 대한 중대한 문제를 언급하는데 있어, 太極圖 와 太極圖說이 생긴 이래 학자들의 견해가 분분했고 격렬한 논쟁이 있어왔다. 이러한 견해차이와 논쟁을 개괄하면 다음의 세가지가 있다.
첫째, 흰원은 太極을 표시하고, ‘無極而太極’이라는 말은 無極으로 말미암아 太極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흰원은 비록 太極을 표시하지만, ‘無極而太極’이라는 말은 無極이 곧 太極이라는 의미이다.
셋째, 흰원은 無極을 표시하고 또한 太極을 표시하며, ‘無極而太極’이라는 말은 無極은 無極일 따름이고 太極은 太極일 따름이다라는 의미이다.
첫번째 관점은 통상 ‘無極而太極’이라는 말을 有가 無에서 생긴다는 것으로 삼는데, 객관유심주의가 비판하였으나 근대 諸家들은 대부분 이 이론을 지지하였다.
南宋時代 朱熹는 陸九淵형제와 논쟁하였는데, 陸氏 형제 또한 이 관점을 일찌기 지지한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자기 관점을 설명하는 反證으로 사용하는데에 그쳤다. 그들은 두번째 관점을 견지하였고, 宇宙의 本體가 태극이고 따라서 太極의 앞에 다시 無極을 첨가하는 것은 쓸 데 없고 중복되는 것으로 ‘重床疊’이라는 것이며, 希夷 ‧老氏의 학문일 뿐이라고 여겼다.
朱熹는 세번째의 관점을 견지하는데, 無極은 無極이고 太極은 太極이며 또한 ‘無極而太極’이라는 말이 있어야만이 周敦頤의 본래사상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朱熹와 陸씨 형제의 論爭중에서 朱熹는 ‘無極而太極’이라는 말로 周敦頤가 儒家思想을 풍부하게 하고 발전시켰다는 것을 더욱 인정했다. 소위 ‘伏犧가 太極을 말한 적이 없는데 孔子는 이를 말하였고, 孔子가 아직 無極을 말한 적이 없는데 周敦頤는 이를 언급하였다. (包犧未賞言太極而孔子言之, 孔子未賞言無極而周子言之) (宋元學案 十二卷)’라고 하여 결국 朱熹는 周敦頤와 孔子를 나란히 배열하였고, 육씨형제가 聖人이 한 말이 아니라고 배척한 ‘無極而太極’을 주돈이의 독창적인 지력있는 說이라고 생각했으며, ‘사람들이 감히 설명하지 못한 근본 道理를 설명해 내었다.’고 여겼다.
그는 無極을 하나의 철학적 범주로 사용하였는데, 周敦頤 이전에는 儒家에서도 사용한적이 없을 뿐더러 다른 思想家들 또한 사용한 적이 없으며, 陸氏형제가 無極이란 단어가 나왔다고 생각하는 道家에서조차 아직 사용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朱熹는 陸氏의 말을 반박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老子의 ‘復歸無極’에서 無極은 無窮(끝이 없음)의 의미이며, 莊生이 ‘無窮之門에 들어가서 無極의 들판에서 노닌다.’라고 말한 것과 같고, 周敦頤가 사용한 의미가 아니다. 지금 곧 이를 인용하여 周敦頤의 말이 실제로 그로부터 나온 것이라고한다면, 이는 또한 理致가 아직 명확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말한 뜻을 자세히 하지 못함이다.”(上同)
(“『老子』‘復歸于無極’, 無極乃無窮之義, 如莊生‘入無窮之
門, 以游無極之野’云稱, 非若周子所言之意也. 今乃引之, 而爲周子之言實出乎彼, 此又理有未明而不能盡人言之意也.”) (上同)
‘無極’이라는 한 단어를 이해하는데에 있어서 朱熹의 말이 정확한 것으로 인식한다. 정확하다는 이유는 無極을 語詞義와 範疇義로 엄격하게 구분했기 때문이다.
소위 老子 ‘無極乃無窮之義 (無極은 끝이 없음을 의미함)’에서 가리키는 것은 無極의 語詞義이지 範疇義는 아니다. 당연히 語詞義와 範疇義에 있어서 구분을 가하지 않은 것은 단지 陸氏형제 뿐만 아니고 일찌기 적지 않은 이름난 思想家들도 이 문제에 있어서 오류를 나타내었고, 이로써 적지 않은 經典을 잘못 해석 하였으며, 周敦頤의 원래 사용한 의미를 왜곡하였다.
無極의 語詞義는 범위를 표시하는데 사용한 것이 가장 많이 보인다. 예를들면 老子 知其雄章의 ‘항상 德을 행하고 어긋나지 않으면 다시 無極으로 돌아간다.(常德不慝 復歸于無極)’에서 王弼이 無極의 두글자 밑에 ‘다함이 없다.(不可窮也)’라고 하였다. 不可窮이란 極限이 없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넓고 크다는 의미이다.또 예를들면 莊子‧地宥 ‘ 나는 장차 너를 버리고 , 無窮之門에 들어가 無極의 들판에서 노닐겠다.(余將去汝 入無窮之門 以游無極之野)’에서 이렇게 無極과 無窮은 서로 댓구를 이루면서 들판과 문의 아득하게 넓음을 나누어 수식 설명하고 있다. 王先謙의 莊子集解에서 成玄英의 말을 인용하여 주석하기를 ‘고요하고 아득함의 근본으로 돌아와 無窮之門으로 들어간다; 마땅히 天地의 사이에서 변화하여, 無極의 들판에서 한가로이 노닌다.(反歸冥寂之本, 人無窮之門; 應幷天地之間, 閑游無極之野)’고 했는데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 확대해서 類推해보면 僧肇의 涅槃無名論‧通古17篇에서 ‘물체와 나는 다르지 않으며 ,나는 물체와 다르지 아니하다. 물체와 나는 玄妙하게 화합하고 無極으로 돌아간다.(物不異我, 我不異物. 物我玄會, 歸乎無極.)’고 하였는데 노자의 ‘復歸于無極’과 유사하다.大正藏‧超日明三昧經의 ‘그때에 釋迦世尊이 다함이 없는 수많은 군중들과 친족들에게 둘러싸여 說法을 하는데 大乘과 無極의 지혜를 업삼기를 힘주어 강의하였다.(稱時世尊, 與無央數百千之衆, 眷屬圍繞, 以爲說法, 講大乘業無極之慧)’ 에서 無極의 상태는 지혜가 끝이 없음을 形容한다. 또 말하기를 “지혜를 크게 행하여 無極에까지 헤아린다.(行大智慧度于無極)”라고 한 것은 크나큰 지혜를 끝없는 無限의 정도에 이르게 함을 의미한다.
다시 예를들면 大正藏‧九箴篇 ‘無上大道君은 五十겹이나 되는 無極大羅天中玉京위에서 다스린다.(無上大道君, 治在五十五重無極大歲天中玉京之上)’라고 하였다.
여기서의 無極은 天中玉京의 높이를 말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마찬가지로 범위에 속한다. 또 堵藏의 上方大洞眞元妙經品‧唐明皇御制序에서 ‘上方開化無極太上靈寶天尊’이라 했는데 無極을 天尊의 寶號(고귀한 호칭)로 삼았다. 道藏‧寶玄經에서는 ‘一號自然,二號無極’라 했고 道藏靈寶自然經訣에서 ‘太上玄一眞人曰 : 太上無極大道’이라고 했는데, 無極을 범위로 표시하는 데 있어서, 비할데 없이 광대하다는 의미로 썼다. 이외에 列子湯問에서 無極이란 낱말을 가장 많이 언급한 단락을 들 수 있는데, 표면상으로는 宇宙의 본원을 설명하는듯 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無極을 범위로 표시하는 의미로 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 殷나라 湯王이 夏革에게 물었다. “옛날에 物이 없었읍니까?” 夏革이 말하였다. “옛날에 物이 없었으면 어찌 지금 物이 있겠습니까? 後代 사람들이 지금 物이 없다고 한다면 옳겠습니까?” 殷나라 湯王이 말하였다. “그러면 物에 先後가 없습니까?” 夏革이 말하였다. “物의 끝과 시작에 있어 처음은 無極일 따름이며, 처음은 혹 끝이 되고 끝은 혹 시작이 되니, 어떻게 그 법도를 알겠습니까? 그런즉 物에서의 바깥과 일에서의 처음은 짐이 모르는 바 입니다.” 殷나라 湯王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上下八方에 다함이 있읍니까?” 革이 말하였다. 湯王이 간곡히 묻자 革이 말하였다. “无는 無極이요 有는 有極인데 짐이 어찌 그것을 알 수 있으리오. 그러나 無極之外는 다시 無極이 없고 無盡之中에는 다시 無盡이 없습니다. 無極은 다시 無極이 없고 無盡은 다시 無盡이 없으니 짐은 이로써 그 無極‧無盡함을 알 수 있으나, 有極‧有盡함은 모릅니다.” -------------------
(殷湯問于夏革曰: 古初有物乎? 夏革曰: 古初無物, 今惡得物? 后之人將謂今之無物, 可乎?殷湯曰: 然則物無先后乎? 夏革曰: 物之終始, 初無極已, 始或爲終, 終或爲始, 惡知其紀? 然自物之外, 自事之先, 朕所不知也. 殷湯曰: 然則上下八方有極盡乎? 革曰: 不知也. 湯固問, 革曰: 無則無極, 有則有極, 朕何以知之? 然無極之外, 復無無極; 無盡之中, 復無無盡. 無極復無無極, 無盡復無無盡, 朕以是知其無極無盡也, 而不知其有極有盡也)
이러한 대화형식으로 전개한 논술에는 앞뒤로 모두 6개의 無極을 쓰고 있는데, 모두 시간적 無限, 공간적 無極을 설명하며 모두 범위에 속한다. 宇宙本源에 있어 作者는 제일 첫 물음에서 답을 내렸는데, 즉 ‘古初無物 今惡得物’라 하여 맨 처음에 物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빈도를 표현하는데에 사용한다.
가령 淮南子‧要略의 ,‘위로는 天時로 말미암고 아래로는 地力을 다하여 法度를 따르고 마땅함을 행하며 사람에게 合한즉, 十二節을 이루고 이로써 法式으로 삼는다. 마치지만 다시 시작하여 無極으로 轉한다.’(上因天時, 下盡地力, 据度行當, 合諸人則, 形十二節以爲法式, 終而復始, 轉于無極)에서 高秀가 注하길,‘ 一月은 사람에 있어 一節이 되며 한해의 끝은 十二月이며, 正月로 부터 시작된다.(一月爲人一節 歲終十二月 從正月始也)’ 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轉于無極’이 가리키는 의미는 一月에서 十二月로 無限循環하는 의미인 것을 알수있다.
無極이란 낱말을 범주로 사용한 것은 실로 周敦頤가 처음인데 그의 ‘無極而太極’에서 無極이 가리키는 바가 비로소 宇宙萬物의 本源이다. 다시 말하면 그 이전에 쓰여진 글의 無極은 모두 語詞義지 範疇義는 아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사람으로 朱熹이전에 王弼이 있다. 그가 老子를 注하여 ‘無極’을 無窮으로 여겼는데, 이는 아주 훌륭한 설명인 것이다.
근대의 저명한 철학자 張岱年선생이 일찌기 西周에서 北宋에 이르는 有關한 資料를 두루 조사하여 각 分期別로 나누어 정리하였는데 열거해 보면,
‘西周로부터 春秋時期까지의 개념과 범주, 孔子哲學범주, 孟子哲學범주, 周易大傳중의 哲學범주, 荀子哲學범주, 禮記中의 哲學범주, 老子哲學범주, 莊子哲學범주, 管子라는 책과 法家의 哲學범주, 墨家 및 각가의 개념과 범주, 漢儒學者의 常用한 補充범주, 魏晉衒學의 범주, 隋唐佛敎 범주, 周敦이 철학범주’등 모두 14조목이고, 儒, 道, 法, 墨, 名, 釋各家의 개념과 범주 153개를 열거하였으나 無極은 단지 周敦頤 항목에 한 번 나타난다. 張先生이 열거한 ‘周敦頤철학범주’에는 ‘無極‧太極‧陰陽‧五行‧中正‧人極‧誠‧神‧几‧剛善‧柔善’이 있고 老子哲學범주에는 ‘道‧一‧朴‧器‧有‧無‧常‧玄‧虛靜‧反復‧自然‧無爲‧勢’가있다. 張先生은 매우 엄격히 無極을 語詞義와 範疇義로 구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張岱年의 中國古代哲學範疇에서 볼 수 있는데, 중국철학사 1958년 第 4期에 실려있다.)
그런데 周敦頤는 어째서 無極이라는 하나로 여러가지 뜻을 지닐수 있는 단어를 택해서 범주를 표시했어야 했을까? 이는 당시의 사상적 영향과 언어관습의 양방면에서 고찰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無極’이 비록 道家의 범주는 아니나 확실히 道家에서 常用한 단어에 속한다. 위에서 제시한 列子는 그 좋은 例證이라 할것이다. 이 책은 晋人이 남의 이름을 빌어 위탁한 책으로 唐代以後에 여러번 황제의 총애를 받아왔다. 天寶‧元年(서기742)에 詔가 名하여 沖虛眞經이라 했고, 北宋景德四年 (서기 1007年 周敦頤 태어나기 10年前)에 晋이 명하여 沖虛至德眞經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欽定(황제의 명을 받들어 제정) 經典을 周敦頤가 당연히 읽었을 것이요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無極’이란 단어를 채택하여 철학적범주로 삼은 것은 언어의 차용뿐 아니라 사상적 계발 또한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周敦頤가 ‘無極’을 빌어 표현하고자 한 궁극적인 것은 무엇인가? 이 점에 있어 朱熹와 王夫之가 일찌기 훌륭한 해석을 하였다. 朱熹가 ‘無’의 방면에서 해석하였다.
“周子가 그것을 無極이라 일컬은 까닭은 다음과 같다. 바야흐로 그것이 존재하는 곳이 없고, 형상이 없으므로 이로써 無物之前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有物之後에는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없으므로 이로써 陰陽의 밖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陰陽의 가운데에 運行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로써 전체를 꿰뜷는다. 없는 곳이 없은 즉, 또한 소리‧냄새‧그림자가 처음엔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 ------ 周子所以謂之無極, 正其無方所, 無形狀, 以爲在無物之前, 而未賞不立于有物之后 以爲在陰陽之外, 而未嘗不行乎陰陽之中, 以爲通貫全體, 無乎不在, 則又初無聲臭影響之可言也)
朱熹는 또한 ‘極’의 방면에서 해석하였다.
“極이란 至極일 뿐이다. 형체가 있는 것으로써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四方八面을 合하고 合하면, 곧 떠날 곳이 없는 이러한 구조에 이르게 된다. 이로부터 미루어보면, 四方八面은 모두 앞과 뒤가 없이 두루 고르다. 따라서 極이라 일컬었을 뿐이다.”
(宋元學案卷五十八)
(------ 極者, 至極而已, 以有形者言之, 則其四方八面, 合轃將來, 到此築底, 更無去處, 從此推出, 四方八面都無向背, 一切停勻, 故謂之極耳)
王夫之는 氣의 형태적 측면에서 해석하였다.
“만약 周子가 無極을 말한 것이 道에는 주체가 없고 변화에는 규칙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면 그것을 極이라고 이름 지울수가 없으나, 실제로 太極이 존재하니 또 이로써 소위 無라는 것은 없고 사람들이 없다고 보는것은 실은 모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 若周子之言無極者, 言道無適主, 化無定則, 不可名之爲極而實有太極, 亦以明夫無所謂無, 而人見爲無者皆有也) (莊子正蒙注‧大易篇)
동시에 다시 설명하였다.
“陰陽이 나뉘지 않고 두 氣가 하나로 合하여 기운이 왕성한 太和의 진면목은 눈이 미치지 못하므로 볼 수 없다.”
( ---- 陰陽未分, 二氣合一, 絪縕太和之眞體, 非目力所及, 不可得而見也) (莊子正蒙注‧太和篇)
周敦頤가 이를 빌어 표현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일종의 無方所, 無形狀, 道無適主, 化無定則, 非目力所及하는 존재형식이었다. 이러한 존재형식을 ‘無極’이라고 불렀다.
朱熹는 더 나아가 ‘無極’을 ‘無形’으로 해석했다.(周子語類 卷九十四참조) 이 점은 곧 周敦頤의 취지를 한층 더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朱熹나 王夫之가 말한 無方所, 無形狀, 道無適主, 化無定則, 非目力所及등등은 모두 ‘太極’을 말한 것이다. 朱熹는 ‘太極’을 ‘理’로 삼았다. 따라서 그 無方所, 無形狀을 말한 것이다.王夫之는 ‘太極’이 陰陽으로 나뉘지 않고 두 氣가 하나로 합한 ‘太和’라는 眞體이고 눈이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이들은 모두 ‘太極’의 전에 無極이 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無極’이 독립된 하나의 존재 형식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것이 宇宙生成에 있어서 한 개의 순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朱熹가 그랬다. 그는 周敦頤의 無形的 존재형식을 그 자신의 ‘理’로 이해하는 잘못된 해석을 하였다.
그가 ‘以爲在無物之前而未嘗不立于有物之後, 以爲在陰陽之外而未嘗不行乎陰陽之中’에서 말한 것은 無形의 物體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通貫全體, 無乎不在’하는 ‘理’를 가리킨다.
그는 심지어 완전히 긍정하여 설명하였다.
“無極而太極이란, 어떤사물이 그 안에 눈부시게 빛나며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속에는 맨 처음엔 사물이 하나도 없었고, 이런 ‘理’만 있었을 뿐이란 것을 설명할 따름이다.”
(無極而太極, 不是說有個物事光輝輝地在那里, 只是說這里當初皆無一物,只有此理而已) (周子語類 卷九十四)
朱熹가 이론상 두가지를 힘써 구분하여 無極은 太極이 아니며 太極은 無極이 아니라고 설명하였다 하더라도, 실제상으로는 전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太極으로 말하면 이것은 理이고 따라서 형체가 없다. 無極으로 말하면 이것은 형체가 없는데 太極을 설명하는 것이다. (朱子語類 卷 九十四 “無極者無形, 太極者有理也”참조) 朱熹의 이론체계안에서는 無極, 太極은 곧 하나의 다른 두 이름일 뿐이다. 실제상 無極은 有理의 太極이다. 그리고, 이러한 ‘有理’의 太極은 ‘그속에 어떤 것이 번쩍번쩍 빛나며 있다.’는 것이 결코 아니며 단지 ‘그 속에 처음엔 사물이 하나도 없었고, 이런 理만 있었을 뿐이다.’라는 것을 설명한다. 이상이 그의 이론체계를 後世사람들이 客觀的唯心論이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無極而太極’이란 말은, 宋代 史館이 쓴 宋史‧周敦頤傳에는 ‘無極而爲太極’으로 되어있다. (宋史‧周敦頤傳의 現代版本에는 ‘無極而太極’으로 되어 있다.)
朱熹는 宋史가 原本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고 여겼고, 문장속에 ‘自‘와 ‘爲‘가 있는 것이 옳지 않다고 극력 반대하였다. 하지만, 淸代 毛奇齡의 考證에 근거하면 宋史의 내용은 믿을만 하고, 근거를 둔 바가 당연히 原本일 수 밖에 없다. 朱熹는 어째서 극력 반대해야 했을까?
그는 ‘無極而太極’이란 말이 ‘自無極而爲太極’으로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 했는데, 왜냐하면 이렇게 된다면 無極은 ‘淪于空寂’이 되어서 ‘儒學’의 금기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자신의 ‘無形有理論’을 그럴듯하게 꾸며대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사실, ‘自’ 와 ‘爲’ 두 글자를 없애더라도, 그 겉에 나타나는 뜻은 명현히 존재한다. 현재 전해지는 모든 版本은 모두 ‘無極而太極’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各家의 해석이 ‘自無極而爲太極’과 결코 다르지 않다.
張岱年선생은 증거를 대면서 周敦頤의 本體論을 개괄하였다. :
“有象有形의 二氣五行과 萬物은 모두 原始統一體인 ‘太極’에서 나왔고 太極은 無象無形의 無極에서 나왔다. ‘無極’은 宇宙萬物의 가장 근본적인 實體이고, 天地萬物은 ‘無極’에서 유래한다.”(有象有形的二氣五行和萬物, 都出于原始統一體 ‘太極’, 而太極出于無象無形的‘無極’. ‘無極’是宇宙萬物最根本的實體, 天地萬物從‘無極’來) (中國哲學史史料學)
張先生은 太極이 無極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긍정했을 뿐만 아니라, ‘無極’의 특징이 ‘無象無形’이라는 것도 긍정했다. 이는 朱熹의 ‘無極便是無形’과 비교할 때, 모순이 없을 뿐더러 더욱 치밀하고 정확하다. 無象無形에서 나왔다는 無極은 ‘無’에서 나왔는가? 이에 대해 張先生이 쓴 中國哲學大綱‧道論에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따라서 道는 오로지 황홀하여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다. 실제로 있으나 형체가 없으며 비록 존재하지만 感覺器官이 느낄 수 없다.”(故道惟惶有忽, 亦有亦無, 有實而無形, 雖存在而非感官所能賞察.) ( 1958年 商務版 )
이러한 ‘비록 존재하나 감각기관이 느낄 수 없다.(雖存在而非感官所能觀察)’는 것은 ‘無形’이 존재하는 형식에 대한 가장 좋은 표현이다.
그는 ‘無形’의 근본적인 특징이, 첫째,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 둘째, 감각기관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前者는 그 實存性을 나타내고 後者는 그 無形性을 나타낸다.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客觀的으로 존재하게 된다. 형체가 없기 때문에 감각기관이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周敦頤의 ‘無極而太極’에 대해 간단히 해석해 보면 곧 無形으로부터 有形에 이른다는 것이며 또는 有形이 無形으로 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有形이 無形에서 나온다는 생각은 결코 周敦頤의 독창이 아니며, 일찌기 西漢初에 만들어진 淮南子라는 책에 유사한 기재가 있다. 그 책의 俶眞訓의 開篇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有始者, 有未始有有始者, 有未始有夫未始有有始者.‧‧‧‧‧‧有始者는 무성하지만 아직 發하지 않은것이며 兆朕은 있으나 아직 형태의 경계도 없고, 꿈틀거림도 없으며 장차 生興하고자 하지만 아직 物類를 이루지 않은 것이다. 有未始有有始者는 天氣가 비로소 내려오고 地氣가 비로소 올라가서 陰陽이 섞여서 서로 더불어 宇宙之間에서 優游競暢하며, 德을 받고 和을 함유하여 繽紛蘢蓯(빈분농총:너저분하게 우거진 모양)하고 物과 더불어 접하고자 하나 아직 兆朕이 이루어지지 않은것이다. 有未始有夫未始有有始者는 天이 和을 함유하였으나 아직 내려오지 않았고 땅이 氣를 품고 있으나 아직 떨치지 않은 것으로 虛無寂寞하고 쓸쓸하면서도 험하고 높으며 어렴풋함이 없는데 氣가 따라서 은은하게 크게 통한 것이다.”
( ----- 有始者, 有未始有有始者, 有未始有夫未始有有始者.……所謂有始者, 繁憤未發, 萌兆牙蘗, 未有形 埒垠堮, 無無蠕蠕, 將欲生興而未成物類; 有未始有有始者, 天氣始下, 地氣始上, 陰陽錯合, 相與優游競暢于宇宙之間, 被德含和, 繽紛蘢蓯, 欲與物接而未成兆朕; 有未始有夫未始有有始者, 天含和而未降, 地懷氣而未揚, 虛無寂寞, 蕭條霄雿, 無有傍佛, 氣遂而大通冥冥者也)
소위 ‘有始者,有未始有有始者 有未始有夫未始有有始者’가 설명하는 것은 우주생성이 無形으로부터 有形에 이르는 3개의 순서이다. ‘有始者’가 가리키는 것은 ‘將欲生興而未成物類’라는 싹이 트는 단계이며 ‘未始有有始者’ 가 가리키는 것은 陰陽이 섞이는 氣化段階인데, 이것은 모두 有形的이다.
‘未始有夫未始有有始者’가 가리키는 것은 ‘天和(氣)未降 地氣未揚’하는 虛無寂寞의 단계이다. 여기에서의 ‘虛無寂寞’은 결코 無가 아니고 어떤 物(氣)이 아직 降거나 떨치지 않은 것이며, 곧 感覺器官이 미치지 못하는 無形의 단계이다. 이러한 無形으로부터 有形에 이른다는 생각은 東漢代에 쓰여진 易緯乾鑿圖에 이르러 표현이 더욱 명현해진다.
이 책의 卷上에서 이르기를,
“무릇 有形은 無形에서 生하는데 乾坤은 어디서 나옵니까? 고로 말하기를 太易,太初,太始,太素가 있습니다. 太易은 아직 氣가 나타나지 않은것입니다. 太初는 氣의 시작입니다. 太始는 形의 시작입니다. 太素는 質의 시작입니다”라고 하였다.
(夫有形生于無形. 乾坤安從生? 故曰: 有太易, 有太初, 有太始, 有太素也. 太易者, 未見氣也, 太初者, 氣之始也; 太始者, 形之始; 太素者, 質之始也)
이 안의 未見氣(則無形), 氣之始,形之始,質之始의 四分法은 淮南子의 三分法에 비해 더욱 치밀하고 세밀한데 이로 인해 有形이 無形에서 생긴다는 觀點이 또한 더욱 분명해졌고 그 단계도 더욱 명료해졌다. 그러나 지나치게 간단하게 묘사하여 淮南子처럼 生動感이 있고, 구체적 형상으로써 直觀的으로 느끼게 하지 못했다. 최초의 순서를 예로들면, 乾鑿圖에 단지 ‘未見氣’라는 말만이 있는데 淮南子에서는 오히려 “天含和而未降 地懷氣而未揚 虛無寂寞 蕭條霄雿 無有彷佛”등 일련의 形象描寫가 있다. 乾鑿圖의 두번째, 세번째 순서에는 단지 ‘氣之始’, ‘形之始’라는 3字만이 나오지만, 淮南子에서는 오히려 두번째 순서에서 氣의 交合過程을 생동감 있게 묘사했으며, 소위 ‘天氣始下 地氣始上 陰陽錯合 相與优游競暢于宇宙之間’이라고 하여 形象을 구체화하여 이해하기 쉽게 하였다. 자세히 연구해보면 여기에서 周敦頤의 ‘動而生陽 靜而生陰’하는 ‘太極’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듯하다.
周敦頤사상의 순서중에서 ‘五行’은 質이고, ‘陰陽’은 氣이고, ‘太極’은 陰陽二氣가 품어져서 降揚하기 시작하는 過程이다. ‘無極’은 곧 아득히 먼 과거로 짐작하게 되는데, 다시말하면 陰陽二氣의 앞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서가 허다하게 있다는 것이다.
周敦頤의 이러한 抽象이 합리적인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恩格斯가 反杜林論에서 康德의 星雲假說을 해석하여 말했다.
: “原始星雲은 한 방면으로는 현존하는 天體의 起源이고, 또 다른 방면으로는 지금까지도 최초의 물질형식을 거슬러 오를 수 있게 하는 바 이다. 이는 절대로 배제하지 못하고 마땅히 말해야 하는 이러한 조건을 요구한다. 즉 물질은 原始星雲 ( 氣 - 지은이 ) 이전에 이미 기타 형식의 無限順序를 경과한다는 것이다.”
( ---- 原始星云, 一方面在于它是現存的天體的起源, 別一方面在于它是我們迄今所能追溯的最早的物質形式. 這絶不排除, 而更應當說是要求這樣的條件: 物質在原始星雲(氣---引者) 之前已經經過了其他形式的無限序列)
(馬克思恩格斯選集 人民衛生出版社 1972年末 第三卷 第 97項).
그러면 恩格斯의 견해 또한 정확한가?
宇宙學의 진일보한 발전은 그것이 정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세기 40년대에 미국 국적의 소련물리학자 G 伽莫夫(G.Gammow, 1904-1968)는 우주가 膨脹하는 것을 宇宙가 진화하는 것이라고 파악하는 이론의 측면에서 연구를 하여 宇宙形成에 대하여 일련의 直觀的인 描寫를 하였다. 伽莫夫는 전체적인 宇宙膨脹의 進化歷史중에서 物性으로써 표준을 삼아 대체로 3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여겼다.
第 1 段階는 우주의 極早期이며 그때 우주의 온도는 백억도 이상에 달하였다. 이런한 조건하에서는 비단 지구나 태양 및 어떤 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어떤 화학원소조차 없었다. 단지 양자, 중성자, 전자, 광자 및 중미자등의 기본 입자형태의 물질만 있었다. 학설에 근거하면 우주가 이 1 단계의 시간에 처해 있는 시간은 매우 짧아서 일분도 미치지 못했다.
第 2 段階는 중성자가 자유로이 존재하는 조건을 잃게 되어, 쇠퇴의 변화가 발생하거나 양성자와 결합하여 중수소와 헬륨등 핵물질을 생성하여서 화학원소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온도 하강이 백만도에 도달한 이후에는 화학원소 형성과정 또한 종결되었다. 이시기에 우주간의 물질은 주로 양성자와 전자 및 이러한 가벼운 원자핵들이었으며, 빛 복사는 전과 다름없이 매우 강하였으며, 여전히 천체의 세계는 없었다. 그 온도하강이 몇천도에 이르렀을때 2단계는 끝나게 되는데, 이 시기에 걸린 시간은 대략 수만년이다.
제 3단계는 우주에서 주로 氣狀物質이 만들어진다. 온도하강이 사천도쯤에 이름으로 인해 plasma가 복합하여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체를 이루는 조건을 가지게 되었다. 뒤이어 氣의 구름이 차츰 응취하여 각종의 별과 별의 체계를 이루었고 우주에 있어 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억만개의 항성중에서 하나가 태양이다. 태양계의 수억만년의 진화중에 지구가 출현하여 萬物을 생성하고 宇宙를 인식할 수 있는 人類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우리들의 지금 생활하고 있는 단계이다. 이러한 종류의 관점이 그가 말한 進化하는 膨脹宇宙論이다.
물론, G.Gamow의 열 대폭발에 관한 이론(혹은 熱宇宙模型,火球模型,大爆發模型이라고도 한다)이 비록 이후의 몇십년에 이르기까지 매우 많은 학자의 지지를 얻었지만 결국 이는 현대우주학이 가정한 다종의 우주모형의 하나일 뿐이며, 그것과 대립하는 것으로 영국의 H.Bondi, T.Gold, F.Hoyle의 세사람이 제시한 穩恒態宇宙模型(연속창조설,정상우주론)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형과 進化宇宙模型은 완전히 대립되는 模型이지만 周敦頤의 ‘無極而太極’이라는 추상과 여전히 서로 대응하는 관계에 있다. ‘穩恒態理論’에 근거하면 宇宙는 개시한 적이 없고 ,그것은 이미 소위 과거라는 것이 없고 또한 미래라라는 것도 없으며, 자연히 끝없이 순환하는 대폭발도 존재하지 않고, 연속적인 창조과정중에 있다. (熱大爆發理論에 근거하면, 宇宙膨脹이 最大 體積에 이르면 수축하고, 물질과 에너지 또한 모여 응집되기 시작하여 온도가 더욱더 높아져 최초의 ‘原始火球’의 상태로 되돌아가 그 후 대 폭발을 하게 되어 이처럼 순환 왕복하게 된다.)
穩恒態理論에서는 우주가 膨脹할 때 총체적 밀도는 감소하지만, 어떠한 下限値가 존재하며 우주는 이러한 下限値 이하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고 인식한다. 밀도가 한계치에 접근할 때 우주는 곧 새로운 물질을 창조하여 밀도를 높게 하는데, 이로써 부단히 膨脹함으로써 나타나는 빈 공간을 채우며 이 새로운 물질이 星團을 구성하는 수소이다.그렇다면 이러한 물질은 또 어느 곳에서 오는가?
F.Hoyle가 대답하였다.
“그것은 어떤 곳에서 온 것이 아니고, 간단하게 생산된 것이고 창조된 것이다. 어느 한 때에 實物을 구성하는 각종 원자가 결코 존재하지 않았으나 단지 그후에 존재한다.”
(它不是從任何地方來的, 是簡單地産生出來的, 是創造出來的, 在某一個時候, 組成實物的各種原子幷不存在, 但以后它們更存在了)
H.Bondi가 보충하여 말하였다.
“반드시 명확하게 이해해야 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창조는 물질이 복사로 인해 형성하는 것이 아니고 無에서 有가 생기는 것이다.”
(必須淸楚地理解到, 我們所說的創造, 不是物質由輻射形式, 而是無中生有)
물질이 만약 능히 ‘無中生有’할 수 있다면, 과학이 반복하여 증명한 물질에너지의 불가변의 법칙을 부정하기 때문에 많은 학자의 날카로운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이 해석하였다. :
“만일 물질의 창조를 물질이 未知의 형태에서 已知의 형태로 전변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응당 합리적인 것이다.”
(如果把物質的創造理解爲物質的未知形態傳變爲已知形態, 那應當說是合理的)
이렇듯 ‘無中生有’의 말을 ‘由無形到有形’의 思想에 가깝게 해석하였고, 현대과학의 색체를 띤 개념으로 이루었는데, 周敦頤의 ‘無極而太極’ 또한 현대 과학의 實證을 어느정도 얻게 외었다.
(李烈炎의 時空學說史를 참고하라.)
이로써 알 수 있듯이 周敦頤의 ‘無極而太極’은 습관적으로 간단히 無에서 有가 생긴다고 이해해서는 안되고, 또한 마치 朱熹처럼 無極을 無形으로 삼고 太極을 有理로 삼을 수 없다. 이는 宇宙가 氣의 전단계인 無極의 단계로 부터 장차 氣가 나타났으나 아직 보이지 않는 太極의 단계에 진입하는 것을 가르키며, 곧 萬物生成의 예비단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圖’의 第 1원은 太極이지 無極이 아니다. 無極은 周敦頤의 本體論에서 최고의 범주이며, 일종의 ‘감각기관으로 느끼거나 관찰할 수 없는’ 無形의 존재형식으로서, 즉 恩格斯가 말한 ‘물질은 原始 星雲이 있기 전에 이미 다른 無限한 순서를 경과 하였다.’에서의 일종형식이며, 혹은 또 ‘未知의 형태에서 이미 아는 형태로 轉變된다.’는 일종의 과정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無極은 無形이기 때문에 ‘圖’중에서 有形의 선을 사용하여 표시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할수없이 太極의 앞에 無極을 덧붙임으로써 太極이 저절로 나오는 바를 표현하였다. 太極圖說의 原文이 ‘無極而太極’인지 혹은 ‘自無極而爲太極’인지에 있어서는 그 기본적 문맥상의 뜻이 결코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논쟁할 필요가 없다.
3. 陽動陰靜에 관하여
太極圖의 두번째 원은 陽動陰靜이다.
가운데의 작은 하얀 원이 太極이다. 太極은 左右로 두개의 반원으로 나뉘어 지는데, 左側이 陽이며 動이고, 右側이 陰이며 靜이다. 두 개의 반원은 각각 黑白이 번갈아 있으며 左右로 대칭적인 반원이 3개의 層으로 되어 있는데 白은 陽이며 動이고, 黑은 陰이며 靜이다. 左側으로 두개의 白層과 한개의 黑層으로 되어 있는 것은 陽中有陰, 動中有靜으로 설명하고 右側으로 두개의 黑層과 한개의 白層이 있는 것은, 陰中有陽, 靜中有動으로 설명한다. 이로써 太極은 陰陽을 총괄한 것으로, 합하면 太極이 되고 나누면 陰陽이 되고 간단히 말하면 黑과 白이다는 것을 알수 있다.
太極圖說에서 圖의 뜻을 해설하기를, ‘太極이 動하면 生陽하고 動이 極하면 靜이 된다. 靜은 生陰하고, 靜이 極하면 다시 動한다. 動靜은 相互 근원이되는 것이다. 陰과 陽으로 나눔으로써 兩儀가 세워진다(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 分陰分陽, 兩儀立焉.) ’라고 하였다.
이렇게 ‘나누면 단지 두 개의 陰陽이 되는데 天下의 事物을 모두 포괄한다(朱熹의 말)’는 것이 太極圖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그것이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一. 太極은 氣와 非氣와의 사이에 있는
宇宙萬物 生成의 原始物體이다.
윗글에서 이미 언급하기를, ‘物質은 원시 星雲(별)의 이전에 이미 기타형식의 무한한 순서를 경과해 왔다.’(物質在原始星雲之前已經經過了其他形式的無限序列) 고 하였다.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宇宙萬物의 起源은 필경 하나의 基本點(대개 현대 우주학의 奇點(특이점)에 해당)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그 基本點 혹은 ‘奇點’을 周敦頤의 思想體系중에서 칭하자면 ‘太極’에 해당하는 것이다. ‘太極’이란 단어는 최초로 周易‧系辭의 ‘이러한 연고로 易은 太極을 가지고 있고, 兩儀를 생한다.(是故易有太極 是生兩儀)’는 말에서 보인다. ‘太極’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易傳자체에선 해석하지 않았다. 韓康伯이 다음과 같이 註釋하였다.
“무릇 有는 반드시 無에서 시작된다. 고로 太極은 兩儀를 낳는다. 太極은 稱할 수 없는 稱號이고, 얻어 名할 수 없으며, 그것이 極하는 바가 있음을 취하여 이에 그것이 太極이다.”
(“夫有必始于無 故太極生兩儀也 太極者 無稱之稱 不可得而名 取有之所極 況之太極者也”)
韓康伯의 註釋은 앞뒤에 모순이 있다. 제일 첫 구절에서 보이는 ‘무릇 有는 반드시 無에서 시작되고, 고로 太極은 兩儀를 낳는다.(夫有必始于無 故太極生兩儀)’라는 문장에서는 無形의 物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서 ‘取有之所極 況之太極者也’라고 하였다.그런데 높고도 높은 것을 極이라 하였으니, ‘有之所極’의 의미는 즉 시작하는 바가 있다는 것,바꿔말해 萬物生成의 起始點이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有形의 物質임을 가리키는 것임이 확실하다. 孔潁達이 지은 正義에서 이에 대하여 비교적 명확한 해석을 하였다.
“太極은 天地가 아직 分化되기 이전에 元氣가 혼재되어 하나가 된 것임을 말함이요, 즉 太初요 太一이다. 고로 老子에서 말한 ‘道는 하나를 낳는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太極이며, 혼재되어 있는 元氣가 이미 나뉘어지면 곧 天과 地가 있으니, 고로 太極이 兩儀를 낳는다고 하는 것은 즉 老子가 말한, ‘하나는 둘을 낳는다’는 것이다. 天地라고 말하지 않고 兩儀라고 말한것은, 그 물체가 아래로는 四象과 더불어 상대되는 것으로, 兩儀라 말하고 兩體儀容을 이른다.”
( ----- 太極謂天地未分之前, 元氣混而爲一, 則是太初, 太一也, 故『老子』 云: 道生一, 則此太極是也. 混元旣分, 則有天地, 故曰太極生兩儀, 則 『老子』 云一生二也. 不言天地而言兩儀者, 指其物體, 下與四象相對, 故曰兩儀, 謂兩體儀容也)
‘太初’ 즉 易緯乾鑿圖에서 말한 太初는 著者 자신이 해석하기를 ‘太初는 氣의 始作이다.(太初者 氣之始也)’라고 했다. ‘太一’에 관해서는 孔子家語‧禮運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禮는 반드시 그 근본이 太一이며 나누면 天地가 되고, 傳하면 陰陽이되고, 變하면 四時가 되고, 列하면 鬼神이 된다.”
(“夫禮必本于太一, 分而爲天地, 轉而謂陰陽, 變而謂四時, 列而謂鬼神”)
이에 太極, 太初, 太一은 모두 동일 사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天地가 아직 분화되기 이전의 혼재되어 하나로 되어 있는 일종의 元氣이다. 九家易에서 ‘元은 氣의 始作이다.(元者氣之始)’라고 했다. 고로 ‘元氣’ 그 자체가 이미 氣의 起始란 뜻을 품고 있다. 周敦頤의 해석은 대체로 이와 같은 것이다.그가 太極圖說에서 직접 ‘太極’ 을 언급한 곳이 4곳 있는데 다음과 같다.
“無極而 太極”,“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陰陽 一太極也”,“太極本無極也”
通書중에도 직접 언급한 곳이 있는데, 즉 動靜章의 ‘五行陰陽,陰陽太極’이며, 간접적으로 언급한 곳이 3곳 있는데, 즉 「理性命章」의 ‘五殊二實, 二本則一,一實萬分 萬一各正’의 3개의 ‘一’이다. (이외에, 朱熹는 「理性命章」의 “匪靈弗瑩”의 “靈”을 太極이라 했고, 陸九淵은 「理性命章」의 “中焉止矣”의 “中”을 太極이라 했는데 모두 잘못된 것이다.)
太極生陰陽, 陰陽一太極, 一實萬分, 二本則一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모두 동일한 뜻이다. 그러므로 周敦頤가 ‘太極’을 사용하여 표시한 부분이 모두 가리키는 것은 ‘混而爲一’한 元氣이다. 즉 氣와 非氣사이에 끼여있는 宇宙萬物 생성의 原始物體를 나타낸 것이다. ‘氣와 非氣사이에 끼여있는 原始物體이다’라고 말하는 까닭에 대해 아래의 두 개 방면에서 논해 보려 한다..
첫쨰, ‘太極’의 來源說에 따라.
‘太極’은 ‘無極’으로부터 발전 하여 나온 것 이라는 것은 또한 韓康伯이 주석한 ‘有는 반드시 無로부터 시작된다(有必始于無)’는 말과 같은 것으로, 그것(太極)은 無形으로부터 有形에 도달하는 연결점이다. 이러한 無에서부터 有로의 과정(혹자가 말한 未知形態에서 已知形態로의 과정)을 周敦頤가 간단히 말해 ‘無極而太極’이라고 한것이다.
이렇듯 太極은 無極으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우주 생성 순서중의 太極은 자연히 無形에서 有形으로 도달하는 연결작용을 담당하게 된다.그 구체적 이유는 윗 절에서 자세히 기술했으므로 여기에선 생략한다.
둘째, 太極의 發展說에 따라.
太極은 ‘陽動陰靜’의 출발점이고, 또한 ‘分陰分陽’의 起始點이다. 철학의 원리에서 말하면 太極은 陰陽보다 상위범주이고, 宇宙生成의 차례에서 말하면, 太極은 陰陽에 앞서는 물질이다. 고로 周敦頤의 이론체계에서는 太極이 있은 연후에 비로서 陰陽이 있고, 太極이 陰陽으로 분출할수 있는 까닭은 太極 자체의 動靜에 있으니, 太極이 자신의 운동을 통해 陰陽으로 나뉘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太極은 動靜의 실체일 뿐 아니라 陰陽의 ‘母體’이기도 하다. 陰陽이 太極으로부터 나온 것은 마치 太極이 無極으로 부터 來源하는 것과 같다. 太極이 物質(無形의 物, 혹 未知形態의 物)에서 나온다고 한 이상, 또한 다른 物質로의 轉化가 가능하다. ‘太極’ 그 자체가 또한 物質이며, 일종의 특수한 物質로 氣와 非氣사이에 끼여 있는 일종의 원시물질이다.이는 구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朱熹처럼 ‘理’라고 해석하는 것은 더더욱 될 수 없다.사실 朱熹도 太極이 物質임을 완전히 부정하진 않았고, 특정한 정황하에서 ‘太極動而陽, 靜而陰’은 일종의 ‘氣化’의 物質 進化 과정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일차로 朱熹는 그의 제자들에게 張載의 ‘太虛’와 ‘氣化’에 관해 강의 했는데 어떤이가 묻기를, ‘ 太虛는 곧 太極圖 위쪽의 원(그림 중의 첫 번째의 흰 원을 가르킨다-작자)이고, 氣化는 곧 원 안의 陰靜陽動 입니까?’ 하자, 朱熹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하였다.
그러나 朱熹는 그의 ‘理’를 소홀히 할 수 없어서 張載의 말을 인용하여 보충해석하여 말하였다.
“‘合虛與氣有性之名’이니 이 氣가 있으면 도리가 따라서 裏面에 존재하나, 이러한 氣가 없으면 도리는 편안히 거할 곳이 없어진다.”
(‘合虛與氣有性之名’, 有這氣, 道理便隨在裡面;無此氣, 則道理無安頓處) (모두 周子語類 卷六十에 보인다)
이로써 자기학설을 그럴듯하게 둘러대었다.
朱熹가 ‘太極은 理이다’라고 강력히 주장함으로 인하여 宋明理學家가 수백년동안의 변천과 발전을 거치면서 ‘太極’을 宇宙萬物 생성 순서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과, 動靜 陰陽의 실체의 개념으로써 생각하는 것은 날로 희박해져갔다. 이에 대신하여 발생한 것이 결국 존재하지 않는 바가 없고 포괄하지 않는 바가 없는 신비적인 ‘理’이다. 명나라 儒生인 曹端이 그의 著作인 太極圖說集解에서 심지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太極은 理의 다른 이름이다. 孔子 이후에 太極을 논한 자는 모두 氣로써 말하였다. 周子는 천년동안 전해지지 않은 비밀을 미약하게 깨우쳤지만 太極이 理이지 氣가 아니라는 것을 누가 깨달았는가?”
(太極, 理之別名也. 孔子而后, 論太極者皆以氣言, 微周子啓千載不傳之秘, 則孰知太極之爲理而非氣也哉!)
曹氏는 朱熹를 그에 비교하여 靑出於藍而勝於藍(푸른것은 쪽빛에서 나왔는데 쪽빛보다 낫다)이라 했으니, 그리하여 周敦頤의 ‘太極’의 본 뜻 또한 전혀 달라지게 되었다.
明代뿐만 아니라 과학이 이미 고도로 발달한 현대까지, ‘太極’을 ‘理’라고 해석한 것을 堅持한 사람은 여전히 있었다.예를들면 저명한 학자인 錢穆은 그의 著書인 朱子新學案에서 말하였다.
“濂溪, 橫渠 두사람 모두 宇宙造化는 一氣가 陰陽으로 나뉘어짐으로써 온다고 했으나, 모두 氣의 위에 한결 수준높은 명사를 내놓았다. 그것을 濂溪는 太極, 橫渠는 太虛라 했다. 이 두 명사는 사실 道家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뜻은 또한 각각 다른데, 朱子가 이를 추스려 하나로 하고 理라 말했다. 이 ‘理’자는 주로 二程의 思想에서 온 것이다. 太極이라 하고 太虛라 하는 것은 결국 하나의 헛된 이름이다. 太極‧太虛를 理라고 말하는 것이 실제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된다.”
(濂溪, 橫渠兩人皆以宇宙造化爲一氣之分陰分陽而來, 然皆復在氣之上安放一更高之名辭. 濂溪謂之太極, 橫渠謂之太虛, 此兩名辭, 實皆淵源自道家. 而兩人亦意各有異, 朱子乃綰合而一之, 幷稱之曰理,. 此理字主要乃從二程思想中來. 曰太極, 曰太虛, 終是一虛稱. 曰太極, 太虛則理, 則成爲實指)
錢先生의 이러한 논의에 대해 의문이 없을 수 없다. 그 중 하나로, 濂溪의 太極, 橫渠의 太虛를 자세히 연구해 보면 결코 많은 모순이 없으며, 아울러 ‘意有各異(뜻이 각기 다르다)’한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의 말을 시험삼아 비교해보자면,
濂溪는 ‘太極이 動하면 陽이 生하고, 動이 極하면 靜이 되며, 靜은 陰을 生하고, 靜이 極하면 다시 動이 된다.(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라고 하였고, 橫渠는 ‘太虛는 形體가 없고 氣의 本體이다. 모아지기도 흩어지기도 하는데, 변화의 客形일 뿐이다.(太虛無形, 氣之本體‘氣聚氣散, 變化之客形稱)’라고 하였다. 濂溪의 표현을 근거로 보면 太極은 動靜의 實體이고 陰陽의 母體이며, 太極이 없으면 動靜이 없고, 動靜이 없으면 陰陽도 없으니, 陰陽은 聚散之氣를 가리키는 것이다. 氣는 有形이고 太極은 ‘有之所極’으로, 有無의 사이에 끼여있는 연결점이다. 橫渠의 표현에 근거하면 太虛는 물질적 氣의 前段階이다. 그것은 본래 無形이며 氣의 본래의 상태인 것이다. 氣는 모일수도 흩어질수도 있으며 변화를 발생하는 일종의 不定形態이다.
兩家의 차이점을 비교해보면, 濂溪의 말은 보다 세밀한데, ‘太極’의 위에 ‘無極’이 있고, ‘太極’의 아래에 陰陽이 있으며, 陰陽의 원천은 動靜이다. 橫渠의 말은 비교적 총괄적인데, 단지 ‘太虛’와 ‘氣’의 두개의 큰 단계로 나누었고, 게다가 氣는 陰陽으로 나누지 않고 聚散으로만 말하였다. 고로 濂溪,橫渠의 총체적인 觀點은 일치하는데 그 표현의 상세함과 간략함이 다를 뿐이다.
두번째 의문점은 錢先生이 濂溪, 橫渠 두사람 모두 ‘氣의 위에 한 단계 높은 명사를 내놓았다.’(皆復在氣之上安放一更高之名辭)라고 했는데, 이 문장이 ‘然’자로 부터 시작하므로써(원문참조) 그것(기의 위에 한 단계 높은 명사를 내놓는 것)이 결코 불필요하다는 뜻처럼 보인다. 錢先生이 우주생성의 연구에 있어 氣가 起始點이라는 전통적 관점에 의거해 구애되었기 때문에, 氣 이전에 존재하는 모든 순서에 대해서는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세번째 의문점은 錢先生은 ‘太極’, ‘太虛’를 虛라고 여기고 朱熹가 그것들을 하여 ‘理’라고 한것을 實이라 여겼는데, 사실은 전혀 상반되는 것이다. ‘太虛’, ‘太極’은 모두 객관적인 물질의 존재 형식으로 實體적인 것이요, 결코 虛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理’는 사람이 객관적 사물에 대해 인식하는 일종의 반영으로 實體的인 것이 아닌 虛한 것이다. 이에 근거하면 錢先生의 논술은 완전히 朱熹 사상의 발전이요, 周敦頤의 원뜻과는 符合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상의 문제에 대한 토론을 통하여 ‘太極’은 氣와 非氣 사이에 존재하는 宇宙萬物 생성의 원시물질이라는 점은 더욱 뚜렷해진다.
二. 太極의 動靜은 宇宙萬物이 繁殖 發展 하는 基礎이다.
周敦頤가 太極圖說에서 말한 ‘太極’은 일종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일 뿐 아니라, 일종의 영원히 운동하는 物質(상대적인 靜止를 포괄하며)인 것이다. 운동때문에 비로소 존재할 수 있고 발전 변화할 수 있다.
그가 말한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에서의 ‘太極’은, 動的인 것과 靜的인 것 두 개 방면을 겸하고 있다. 動은 太極 자체의 動이며, 靜도 太極 자체의 靜이다. 太極자체가 이미 부단히 운동하는 일면과 상대적으로 정지하는 일면이 있다는 것이다. 太極의 動靜은 모두 자체의 動靜이며 내부의 動靜으로, 결코 여기에서 저기로 가는 이동이 아니며, 또한 外物이 작용하는 彼動도 아니다.
이와같기 때문에 ‘太極’의 動靜은 서로 나눌 수 없으며, 상호關聯‧轉化‧促進‧制約하는 것이다. ‘動極而靜 靜極復動’이라고 말하는 것은 動이 轉化하여 靜이 되며,靜이 轉化하여 動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動이 極하면 반드시 轉化하여 靜이 되며 靜도 極하면 반드시 轉化하여 動이 된다는 것이다. ‘太極’이 動하는 이유와 靜하는 이유는 모두 內部의 고유한 것이지 밖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內部의 고유한 것은 이른바 ‘一動一靜 互爲其根’이 된다. 根은 柢(根本 基礎)이며 基礎 條件의 뜻이 있다. ‘互爲其根’의 뜻은 즉 相互 基礎가 되며, 相互 條件이 된다는 것이다. 動은 靜으로써 존재의 基礎나 條件으로 삼고, 靜은 動으로써 존재의 基礎와 條件으로 삼는다. 이와 같기 때문에 그것은 動하면 靜할 수 있고, 靜이 極하면 반드시 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朱熹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動靜은 순환이 끝이 없고 動이 없으면 靜을 이루지 못하고 靜이 없으면 動을 이루지 못한다. 呼吸에 비유해 보면 아무때나 내쉬지 못하고 아무때나 들이쉬지 못하니, 내쉼이 끝나면 들이 쉬고 들이쉼이 끝나면 내쉬게 되는 것과 같다.”
(--- 一動一靜, 循環無端. 無動不成靜, 無靜不成動, 譬如鼻息, 無時不噓, 無時不吸; 噓盡則生吸, 吸盡則生噓)
(周子語類卷 九十四)
그렇다면 일체의 動靜이 모두 ‘動極復靜 靜極復動’하는 것으로 朱熹가 말한 “내쉼이 다하면 들이쉬고 들이쉼이 다하면 내쉰다(噓盡則生吸, 吸盡則生噓)”는 것과 같은 것인가?
이것 또한 완전히 옳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運動形式이 上級일수록 이러한 위치 이동은 더욱더 微小하다 (運動形式愈高級, 這種位置移動就愈微小)’했기 때문이다.(馬克思恩格斯選集 第 三卷 第 536項)
周敦頤는 위치이동의 크기로 인하여 動靜의 미약함과 현저함에 반영되어 나타나니, 動靜을 2종류로 나누어 하나는 ‘物’의 動靜이요, 또 하나는 ‘神’의 動靜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그는 通書‧ 動靜 第十六에서 말하기를 ‘動하면서 靜이 없고 靜하면서 動이 없으니 物이다. 動하면서 動함이 없고 靜하면서 靜함이 없는 것이 神이다’라고 하였다.
소위‘物’의 動靜은 朱熹가 太極圖를 해석할 때 ‘현저한 것을 바라본 즉 動靜이 같은 때가 없고 陰陽이 같은 위치에 있지 않다.(自其著者而觀之, 則動靜不同時, 陰陽不同位)’라고 말한 데 있어서의 動靜이다. (周子全書 卷一. 以下 모두 周子全書를 인용한 것으로 모두 注하지 않는다) 朱熹의 ‘현저한 것을 바라본다(自其著者而觀之)’는 것이 가르키는 것은, 動靜이 분명하여 눈으로 볼 수 있는 운동형태로 항상 볼 수 있는 기계적운동이다. 이런 형태는 눈앞에 펼쳐지는 것으로 動이면 動이지 動이 아닌 것이 없으며, 靜이면 靜이지 靜이 아닌 것이 없다. 動은 靜이 아니고 靜은 動이 아니다. 朱熹의 말을 인용하면 “方其動時 則無了那靜,方其靜時 則無了那動. 就人言之 語則不黙 黙則不語. 以物言之 飛則不植 植則不飛”라 하였다. 動靜이 이와같이 확실하게 나뉘는 까닭은 動靜不同時(動靜이 同時에 존재하지 않는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周敦頤는 ‘動而無靜 靜而無動’이라고 말하였다.
소위 神의 動靜은 朱熹가 말한 ‘미약한 것을 바라본즉 沖穆하여 어떤 조짐도 없으며 動靜陰陽의 이치가 이미 모두 그 안에 있다(自其微者而觀之, 則衝穆無朕, 而動靜陰陽之理已悉在其中)’는 말에서의 다른 종류의 動靜이며, 물질운동의 上級形態를 가리킨다. 이런 형태의 위치 이동은 지극히 미소하여, 눈앞에 펼쳐지는 운동과 정지된 사이의 連接이 매우 긴밀하여 근본적으로 구별할 방법이 없다. 그것이 動한다고 말하는데 정지해 있는 듯하고, 靜하다고 말하는데 움직이는듯 하다. 動과 靜의 분별이 안 갈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이곳에 있는지 저 곳에 있는지, 이 物인지 저 物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王夫之의 말을 인용해보면 ‘質日代而形如一’이다. 이렇듯 表面은 같은 형체이고 내부는 날마다 질이 바뀐다는 것에 있어서는 肉眼으로 관찰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王夫之가 이어서 말하였다.:
“손톱이 날로 자라고 오래된 것이 없어지는 것은 사람이 아는 바이다. 기육이 날로 생기고 오래된 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바이다. 사람은 형체가 변하지 않은 것을 보고 質이 이미 바뀌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여, 지금의 日月이 옛날의 日月이 아닐까 의심하고, 지금의 肌肉이 初生의 肌肉이 아닐까 의심하니 어찌 날로 새로워지는 변화를 충분히 말할 수 있겠는가!”
(爪發之日生而舊者消也, 人所知也. 肌肉之日生而舊者消也, 人所未知也. 人見形之不變而不知其質之已遷, 則疑今玆之日月爲邃古之日月, 今玆之肌肉爲初生之肌肉, 惡足以語日新之化哉!)
(모두思問錄‧外篇에 있음)
당연히 지금의 日月은 옛날의 日月이 아니며, 지금의 기육도 初生의 기육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하늘에 걸려있는 日月이 어떻게 지금의 日月이 되고, 또 어떻게 옛날의 日月이 되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으며, 성장하면서 자기 몸의 肌肉이 어떻게 초생의 肉과 지금의 肉으로 구분되어 나오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쉽지 않으며 또 그다지 가능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動而無動 靜而無靜’의 형태에서 점차적으로 변하는 형식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발전한 것이다.
이런식으로 육안이 미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하여 周敦頤는 그것을 ‘神’이라 칭하였으니, 이는 神妙하여 예측하지 못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韓康伯이 易傳‧系辭에 注를 달아서 ‘不知所以然而況之神(그렇게 된 까닭을 알지 못하니 그것을 神에 비유한다.)’라고 말했는데,이는 比喩의 神이며, 인격화된 意志의 神은 결코 아니다.몇몇의 학술 著作은 이런 점을 오해하여 ‘況之爲神’의 ‘況’을 소홀히 하여 周敦頤의 動靜觀은 단지 變位만 있지 發展이 없다고 하였다. 혹시 變位와 發展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變位는 ‘物’에 의지하고 發展은 ‘神’에 의지하게 된다. 이것은 완전한 오해이며 가장 먼저 이러한 오해를 만든 것은 周敦頤를 추종하는데 전력을 다한 朱熹였다.
그는 周敦頤의 動靜을 큰 두 단계로 파악하였는데 하나는 형이상적 動靜이며, 나머지 하나는 형이하적 動靜이다. ‘物’의 動靜은 형이하학에 귀속되고, ‘神’의 動靜은 형이상학에 귀속된다고 파악했다. 그는 通書‧動靜장에서 ‘物’의 動靜아래 注를 달아 말하기를 ‘此言形而下之器也 形而下者 則不能通’이라 했다.또한
‘神’의 動靜을 해석하여 말하기를 “此言形而上之理也 理則神而莫測”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한 진일보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動하면 陽을 生하고 陽이 極하면 靜하다. 靜하면 陰을 生하고 靜이 極하면 다시 動한다. 이는 저절로 神이 그 사이에 끼여 있어 陰에 속하지도 않고 陽에 속하지도 않으니 陰陽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神이라 말한다.”
(“此說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此自有個神在其間, 不屬陰, 不屬陽, 故曰陰陽不測之謂神”)
이처럼 朱熹는 장차 ‘神의 개념을 표면적 神秘化로부터 실질적인 神學化로 이끌었다. 후인들은 판별하지 아니하고 朱熹의 생각으로 周敦頤를 해석하여 周敦頤의 본 뜻을 오해하였다.
周敦頤의 動靜觀은 運動과 物質의 存在‧發展‧變化의 관계를 설명하고 사물자체에 존재하는 동력과 활력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일차적으로 고대에서는 人生論的 動靜을 통상적으로 本體論에서 운용하여 사용했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있다. 宋나라 이전의 오랜 기간에 있어 고대 철학자들은 宇宙의 形成‧發展‧變化에 대한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게 지극히 중요한 범주인 ‘動靜’을 명확하게 사용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발전 변화의 本質을 설명할 수 없었다.
易傳‧系辭에서 “이런 까닭으로 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연마하고 八卦가 서로 움직인다. 천둥번개로써 두드리고 비바람으로 적신다. 해와 달이 움직여 추위와 더위가 있다. 乾道는 男을 이루고 坤道는 女를 이룬다.(是故剛柔相摩, 八卦相蕩. 鼓之以雷霆, 潤之以風雨. 日月運行, 一寒一暑. 乾道成男, 坤道成女)”라고 한 바와 같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대자연중에서 하나로 연결된 변화 발전현상의 描述이며, 그것들의 변화발전의 원인은 볼수없고 변화발전의 동력이 존재하는 곳도 볼 수 없다. 또 老子‧道生一章을 보면 ‘道는 하나를 生하고, 하나는 둘을 生하고, 셋은 萬物을 生成한다.(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고 하였는데 단지 순서에 의해 서로 생성하는 것을 상상하기만 하였을뿐 그것이 어떻게 생성될 수 있는가는 알지 못한다.
바꿔서 말하면 명확하게 動靜이라는 것은 宇宙의 起源과 發展을 언급한 것이 아니고 모두 人生論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말하였다. 예를들면, 易傳‧系辭에서 ‘動靜有常 剛柔斷矣’라고 말한 것은 剛柔動靜의 상호를 설명하며 아울러 剛柔와 動靜의 알맞은 수양의 원칙을 끌어내었다. 따라서 正義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天陽은 動이고 地陰은 靜이다. 각각이 보편적 법도가 있은즉 강하고 부드러움이 정해진다. 움직이면서 常道가 있으면 강함이 있고, 가만히 있으면서 常道가 있으면 柔가 생긴다. 따라서 剛柔가 정해지는 것이다. 만약 움직임이 常道가 없으면 강함의 道가 성립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음의 常道가 없으면 부드러움의 道가 성립되지 못한다. 이로써 剛柔가 문란하게 되고 動靜이 常道가 없은즉 剛柔가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天陽爲動, 地陰爲靜, 各有常度, 則剛柔斷定矣. 動而有常則成剛, 靜而有常則成柔, 所以剛有定矣. 若動而無常, 則剛道不成; 靜而無常, 則柔道不立, 是剛柔雜亂, 動靜無常, 則剛柔不可斷定也. 此 『經』論天地之性也. 此雖天地動靜, 亦總兼萬物也)
이 經은 天地의 本性을 논하였다. 이는 비록 天地의 動靜이나 역시 총체적으로 萬物을 兼하여 하는 말이다. ‘總兼萬物’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윤리적 三綱五常을 겸하는 것이다. 系辭에서 또 말하기를 ‘夫乾 其靜也專 其動也直 是以大生焉 夫坤 其靜也翕 其動也辟 是以廣生焉’이라 하여 다시 乾坤의 靜專動直을 빌어 인간의 수양방법을 설명하였다. 오직 周敦頤의 우주생성의 動靜觀은 전통적인 인생방법론중에서 끌어들인 것이기 때문에 그의 通書중에는 대량의 이러한 흔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어떤것은 심지어 原句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聖學章에서는 “無欲則 靜虛動直, 靜虛則明,明則通; 動直則公,公則薄”이라 했다. 여기에서의 靜虛動直은 易傳‧系辭에서의 ‘靜專動直’중의 ‘專’字를 바꾼 것이다. 쓰인 뜻 또한 易傳의 방법론과 일치하여 宇宙生成과는 무관하다. 周敦頤의 動靜觀을 탐구하는데 있어 반드시 우주생성론적인 動靜觀의 표현과 인생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動靜觀을 엄격하게 구별해야 한다.
이처럼 우주생성론의 動靜과 인생문제론의 動靜을 구별해야 하는 까닭은 양자가 본질적으로 다르기 떄문인데 前者는 물질에 대한 固有屬性으로 말한 것이고, 後者는 사람의 修養行爲에 대해 말한 것이다. 즉 前者는 물질의 존재와 발전을 가르키고, 後者는 사람과 주위환경과의 조절하는 관계를 가르킨다. 그것들은 실제상 서로 다른 성질에 대한 두 範疇이며 서로 구별되어야 하고 혼동되서는 안되며, 더우기 바꿔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식으로 문제를 제시하는 것은 太極圖說 通書의 動靜中에서 흩어져 보이기 때문인데, 왕왕 글자는 같은데 그 의미가 다른 것이 있어 잘못하면 兩者의 한계가 뒤섞이게 된다. 通書‧誠下第二에서의 ‘靜無而動有’라 하는것은 ‘誠’이라는 수양의 최고 경지를 가르킨다. ‘誠’은 사람에 있어서 하나의 心理活動의 상태이므로, 당연히 이 ‘靜無而動有’라는 말이 객관물질의 靜無而動有인지 아닌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通書‧誠 第四에서는 ‘적막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은 誠이다. 感應하여 비로소 通하는 것이 神이다. 움직이나 형태가 아직 없고 有無의 사이에 있는 것이 兆朕이다.(寂然不動者誠也;感而遂通者神也;動而未形 有無之間者 기也)‘라 했는데 여기서 말한 것은 인간 심리활동의 不同한 단계이지 物質運動의 단계를 말한 것은 아니다.
또 通書‧愼動第五에서는 ‘움직이는데 바른 것을 道라 하고, 힘씀에 있어 조화로운 것이 德이다. .... 邪가 움직이면 困辱을 당하고, 심하면 害를 받는다. 따라서 君子는 움직이는데 愼重해야 한다.(動而正曰道, 用而和曰德. ……邪動, 辱也; 甚焉, 害也.故君子愼動)‘하여 인간의 思想行爲는 신중해야함을 가르키고 있고 물질의 운동과는 서로 관계가 없다.
총괄해서 말하면, 대개 太極圖說 通書‧動靜 第十六이외에서 動靜이라고 말한바는 모두 人生問題論的인 動靜이지, 결코 宇宙生成論的인 動靜이 아니다. 우리들은 이런식으로 구별함으로써 비교적 객관적으로 周敦頤의 動靜觀을 비판할 수 있다. 바꿔서 말하면, 확실한 뜻을 모르고 글자만 보고 대강의 뜻을 짐작한다면 周敦頤의 본 뜻에 어긋남을 면할 수 없다.
예를들면 宋明理學硏究에서 작자는 ‘動과 靜에 관하여’라는 節中에서 太極圖說에 있는 動靜에 관련된 원문을 인용하여 분석하였는데 두종류의 서로 다른 動靜觀의 자료를 적지않게 혼동하여 인용하였다. 著者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通書에서 ‘動靜’을 말한 부분은 12곳이 있다.‘靜無而動有 至正而明達也 ’(誠下第二,周子全書 卷七) ‘寂然不動者 誠也 感而遂通者 神也. 動而未形 有無之間者 几也 ’(聖第四,周子全書 卷八) ‘無思, 本也 思通 用也 几動于彼 誠動于此 無思而無不通 爲聖人’ 思第九,周子全書卷八)” (기타의 9곳은 생략함)
著者는 위에서 말한 문구들을 인용한 후 뒤에 덧붙여 분석하여 말하기를, ‘위의 문장에서 볼 수 있듯이 周敦頤는 각방면으로 動과 靜에 관하여 논술하고 그것이 ‘太極’에서 ‘陰陽’의 과정중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하였다. 아래의 몇가지 점은 주의할 가치가 있다.‘라고 하고, 이것의 아래 부분에 작자는 3가지의 결론에 가까운 분석을 하였다.
첫째, 저자는 周敦頤가 논리 구성상의 필요에 의하여 ‘動靜’을 ‘誠의 動靜’,‘神의 動靜’,‘物의 動靜’등의 3가지의 단계로 나누어 파악했다고 설명하였다. 그런 연후에 결론을 지어 말하기를 ‘物과 神의 動靜觀에 周敦頤의 唯心主義 形而上學的인 성질이 나타난다. 그(周敦頤)는 운동의 源泉을 순수한 抽象主義的 觀念인 無極의 안으로 이동시켰다. 또, 물질과 운동은 서로 나누어지지만, 스스로 떨어지지 못한다고 인식하였다.’라고 하였다.
둘째, 著者는 周敦頤가 그의 動靜觀에 기초하여 운동에서 얻은 상대적인 안정과 현격한 변화의 두 가지 형식에 이르렀다고 인식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운동의 형식은 마땅히 현저하지 않은 ‘化(量的인 變化)’로 인하여 현저한 ‘變(質的인 變化)’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周敦頤의 이론에서는 運動으로 말미암아, ‘變’하고, ‘變’으로 말미암아 ‘化’하니 ‘變’과 ‘化’의 관계가 서로 바뀐 것이다. 이로 인하여 어떤 합리적인 요소를 갖추지 못하였다.”
셋째, 著者는 道德倫理上으로 말하면 周敦頤 이론에 있어서 동정 또한 서로 나뉘는 것이다고 인식하였다.
이상의 것으로 볼때 저자는 글자는 같으나 속뜻이 각기 다른 두가지의 부동한 動靜에 대하여 혼동함으로 말미암아 周敦頤의 動靜觀에 대한 결론에 있어서 객관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표현도 일정한 영향을 받았다.
三. 陰陽은 太極 자체의 動靜 분화를 거친 결과이다.
陰陽은 動靜보다 먼저인가 아니면 動靜이 陰陽보다 먼저인가? 動靜이 陰陽을 생기게 하는가 아니면 陰陽이 動靜을 생기게 하는가 ? 이러한 것들은 周敦頤의 太極圖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또 하나의 근본성을 띤 문제이다.
먼저 周敦頤 자신이 어떻게 표현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周敦頤의 動靜‧陰陽에 대한 서술은 아래의 네 방면으로 고찰할 수 있다. 즉 太極圖에 나타난 記述, 太極圖說중에 順抽한 記述, 太極圖說중에 逆抽한 記述, 通書에 有關한 篇과 章에 나타난 記述등이다.
첫째, 太極圖에 나타난 記述.
太極圖의 제 2층(즉 두번째 원)은 陽動陰靜圖이다. 그림 가운데 조그만 흰원은 太極(즉 제 1층의 흰원인 太極) 이고, 그 후에 나뉘어져 두 개의 반원이 되는데, 왼쪽 半圓은 흰색 반원 둘과 검은색 반원 하나로 되어 있다. 半圓의 左上方에 ‘陽動’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 半圓은 검은색 반원 둘과 흰색 반원 하나로 되어있다. 반원의 右上方에 ‘陰靜’이라고 표시되어있다. 左右의 양쪽으로 표시된 것으로 볼때 ‘陽動’과 ‘陰靜’은 확실하다. 그러면 이것은 먼저 陰陽이 있은 연후에 動靜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陽은 움직임에 있고 陰은 고요함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動할 수 있고 靜할 수 있는 것은 左右 兩半圓의 陰陽이 아니라 가운데에 있는 작은 흰 원인 太極때문이다. 太極이 動하면 비로소 左側의 半圓으로 표시한 陽이 있게 되고, 太極이 고요하면 비로소 右側의 半圓으로 표시한 陰이 있게된다. 이 속에서 陰陽의 생성에는 두 개의 전제가 확실히 존재한다. 첫째, 반드시 太極이란 本體가 있어야 한다. 둘째, 반드시 太極의 動靜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림의 뜻으로 볼때 動靜으로 인하여 비로소 陰陽이 있는 것이지, 陰陽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動靜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림에 표시되어 있는 것은 어째서 ‘動陽’‧‘靜陰’이라고 쓰지 않고 ‘陽動’‧‘陰靜’이라고 써야 했을까? 이것은 그림 자체의 특징에 근거하여 된 것이다. 왼쪽 半圓에는 흰 색 반원 둘과 검은 색 반원 하나가 있는데, 흰 원은 陽이고 검은 원은 陰이므로 이것이 陽이라는 것을 보자마자 알게 된다. 오른쪽 半圓은 검은색 반원 둘과 흰색 반원 하나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陰이라는 것을 보자마자 알게된다. 이미 그림에서 이것이 陽이고 이것이 陰이라는 것이 나타나는 바에야, 자연히 실제와 같이 陰과 陽을 먼저 표시하는 것이 당연하다. 動과 靜에 있어서 이는 太極 자체의 특유한 속성으로서 단지 마음속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지, 일반적인 平面圖上에 구체적으로 나타낼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들은 설명이 필요하므로 陽의 아래에는 動을 표시하게 되었고, 陰의 아래에는 靜을 표시하게 되었다. 전체의 그림 구성은 중간에 있는 ‘太極’이 핵심적이기 때문에 太極이 動하고 있고, 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陽이 動하고 있고, 靜하고 있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둘째, 太極圖說중에 順으로 類推하여 나타낸 記述.
周敦頤는 太極圖說 제 2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太極이 움직여서 陽을 生하고 움직임이 極에 달하여 靜이 되고, 靜이 陰을 生하고 靜이 極에 달하면 다시 動이 생긴다. 動靜은 서로 그 뿌리가 된다. 陰으로 나뉘어지고 陽으로 나뉘어져 兩儀가 성립된다.”
이 제 2단의 문장은 陰陽動靜의 先後關係를 가장 잘 설명한 문장이다. 나누어서 말하면, 動이 陽을 生하고 靜이 陰을 生한다. 합쳐서 말하면, 한번은 動하고 한번은 靜하여 陰과 陽으로 나뉘어 진다. 순서대로 말하면, 太極이 있은 연후에 動과 靜이 있고 動靜이 있은 연후에 陰陽이 있다. 陰陽이 있은 연후에 天地가 있다.(兩儀)
셋째, 太極圖說중에 逆으로 類推하여 나타낸 記述.
周敦頤는 太極圖說 第3段에서 말하기를 ‘五行 一陰陽也, 陰陽 一太極也, 太極 本無極也’라고 하였다. 여기서 周敦頤는 먼저 動靜이 있은 연후에 陰陽이 있음에 관하여, 動靜이 陰陽을 生成한다는 것을 逆으로 類推하여 말하였다. 廣韻에서 말하길 “一者 數之始也”라고 하였다.따라서 ‘一’은 起始의 뜻이다. ‘五行 一陰陽也’라고 한 것은 五行이 陰陽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陰陽 一太極也’라는 말은 陰陽이 太極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太極 本無極也’라는 말은 太極의 근본이 無極에 있다는 뜻이다. 周敦頤가 이러한 개념들을 順으로 類推하여 말한 것이 ‘無極而 太極’,‘太極動而生陽 靜而生陰’,‘陽變陰合而 水火木金土’이다. 周敦頤의 이론체계중에서, 하나의 순서에서 다른 하나의 순서로 넘어갈때 모두 ‘動’,‘變’,‘合’,‘生’등의 사물의 운동을 표현한 말들로 연결 되어 있음을 가히 볼 수 있다. 철학적 개념으로 ‘變’,‘合’,‘生’은 각기 물질의 運動과 停止의 상대적인 성질을 표현하는 속 뜻을 갖고 있다. 이것으로 볼때 太極은 動靜으로 인하여 陰陽을 생성하고, 또한 陰陽은 動靜으로 인하여 五行을 생성하며, 五行도 動靜으로 인하여 萬物을 化生한다. 太極에는 太極의 動靜이 있고, 陰陽에는 陰陽의 動靜이 있으니 이것들은 우주의 생성순서에서 서로 차원이 다른 動靜이다. 陰陽이 움직이고 고요하다는 것을 부인할수 없으나 단지, 陰陽의 動靜을 가지고 太極의 動靜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陰陽은 太極이 動하고 靜한 결과이다.
넷째, 通書와 有關한 篇과 章의 記述.
通書중에 陰陽動靜이 반영된 곳은 두 곳이 있다. 하나는 「動靜第十六」에 있는 ‘五行陰陽 陰陽太極’으로,이는 逆推法이다. 그외 「理性命 第二十二」에 있는 ‘二氣五行 化生萬物 五殊二實 二本則一 是萬爲一 一實萬分’이라고 한 부분으로, 이것은 多推法이다. 여기서 ‘二氣五行 化生萬物’은 太極圖說中의 順推인 ‘陽變陰合而 生水火木金土’에 해당하고, ‘五殊二實 二本則一’은 太極圖說의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라는 명제에 해당한다.(소위 ‘五殊二實’이라는 뜻은 즉 나누면 다섯이 되고 갈무리 하면 둘이 된다는 것으로 설명이 아래의 편인 「理性命 第二十二」에 보인다.)
‘是萬爲一, 一實萬分’에서 前句는 逆推이며, 萬物로부터 太極에 이른 것이다. 後句는 順推이며 太極으로부터 萬物에 이르기까지이며 중간의 陰陽五行의 모든 순서를 생략한 것이다. 만일 조금 더 세밀하게 연구해 본다면, 太極이 어떻게 ‘一’ 자체의 轉化로써 무수한 객체인 ‘萬’을 이룬다는 것인가? 그 근본 원인은 太極이 動할 수 있고 靜할 수 있는 것에 있지, 太極의 ‘動而陽 靜而陰’이나, ‘陽이 變하고 陰이 이에 合하여 水火木金土를 生成한다(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거나, 또는 ‘五行이 化하여 萬物을 生成한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化生’으로 비로소 萬物이 있고, ‘變合’으로 五行이 있고, ‘動靜’으로 비로소 陰陽이 있다. 고로 動靜이 陰陽보다 먼저 있는 것이지 陰陽이 動靜보다 먼저 있는 것은 아니다.
周敦頤의 原著에서 먼저 太極의 動靜이 있은 연후에 陰陽이 있다는 것을 반복하여 논증하는 그 목적은, 太極으로부터 陰陽에 이른다는 것이 周敦頤의 사상체계중에서 두가지의 서로 다른 생성단계이고, 太極이 능동적으로 분화하여 陰陽을 出하게 하는 이유 또한 太極자체에 動할 수 있고, 靜할 수 있는 고유속성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太極으로부터 陰陽이 出한다는 것은 太極의 動靜에 의하여 될 뿐 아니라, 陰陽으로 부터 五行이 出한다는 것 또한 陰陽자신의 動靜에 의한 것이다(陽變合陰). 그리고 五行으로부터 萬物이 出한다는 것 또한 五行자신의 動靜에 의한 것이다(化生)
이와같이 말한 것은 恩格斯가 일찌기 ‘운동이 없는 물질과 물질이 없는 운동은 똑같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周敦頤 자신의 사상이 명백하고 착오가 없으며 표현이 확실한데 있다. 이것은 천년전에 생활한 周敦頤가 현대 과학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周敦頤의 추측이 현대과학의 발전에 의해 실증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周敦頤 사상의 귀중한 것이며, 또한 바로 太極圖가 모종의 과학성을 갖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太極’에 관한 것은 周敦頤의 우주생성론의 핵심문제이자 또한 太極圖의 핵심문제이지만, 朱熹의 사상체계 속에서는 상당히 문란한 것이었다.
그는 때때로 ‘太極’은 物質이다라고 말하였다 : “太極은 나뉘면 단지 두개의 陰陽이나, 天下物事을 다 總括한다” 왜냐하면 “太極은 陰陽에서 離脫되지 아니하니, 즉 陰陽이며 그 본체를 가리키고 陰陽에 섞여있지 않다고 말한다.”
(太極)非有離乎陰陽也,則陰陽而指其本體, 不雜乎陰陽而爲言也)”
(모두 朱子語類券 九十四에 있다.)
그는 또한 때때로 ‘太極은 理이다’라고도 하여, ‘太極은 一物이 아닌즉 陰陽이요 陰陽이 있은 즉 五行이요, 五行이 있은즉 萬物이니 萬物이 존재한다(太極非是一物,則陰陽而在陰陽,則五行而在五行,則萬物而在萬物 -上同-)’라고 하였으며, ‘太極’은 動할 수도 있고 靜할수도 있다고 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
“太極이 動하면 陽을 생하고 靜하면 陰을 生하는 것이지 動한후에 바야흐로 陽을 生하는 것이 아니다. 動이 곧 陽에 속하고, 靜이 곧 陰에 속한다.” (“太極動而生陽,靜而生陰,不是動後方生陽,盖在動變屬陽,在靜變屬陰”)
그는 또한 動靜은 모두 太極이 아니라고 때때로 말하였다. :
“動靜陰陽은 모두 形而下學的인 것이다. 그러므로 動 또한 太極의 動이고, 靜 또한 太極의 靜이지, 動靜이 太極은 아니다.”
(“動靜陰陽,皆是形以下者,然而動亦太極之動,靜亦太極之靜,但動靜非太極耳.”
朱熹가 이런식으로 모호하며 동요한 이유의 관건은, 太極에 動靜이 있기 때문에 轉化하여 陰陽이 된다는 것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데 있으며, 이로써 太極,陰陽, 動靜 3가지의 합리적 위치를 적절하게 배치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太極’을 ‘理’로 해석하여 ‘理’에 動靜의 속성이 있음을 부여했고, ‘太極’은 비록 物과 非物사이의 것 일지라도 이미 太極圖에서의 우주생성 원시물체의 ‘太極’은 더우기 아니다. 그는 ‘太極動而生陽, 靜而生陰’을 해석하기를 “太極動屬陽, 靜屬陰”이라 하였으니, 여기서 動靜은 太極圖안에서의 生陰生陽의 動靜은 더우기 아니고, ‘太極’이 陰에 속하고, 陽에 속하는 지표를 이루게 된다. 陰陽 또한 太極圖에서 나누면 5개가 되고 합하면 2개가 되는 객관 존재 형식의 陰陽이 아니고, 각각 動靜의 속성을 이룬 것이다. ‘太極’ ‘陰陽’ ‘動靜’ 3가지를 인위적으로 일체를 총괄하기 위해 朱熹가 심지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陽動陰靜은 太極의 動靜이 아니며 단지 理만이 動靜이 있을 뿐이다. 理는 볼 수 없고, 陰陽으로 인하여 後에 안다. 理는 陰陽위에 존재하니 사람이 말을 탄 것과 같다.(陽動陰靜, 非太極動靜, 只是理有動靜. 理不可見, 因陰陽而后知. 理搭在陰陽上, 如人騎馬相似)” (朱子語類 卷九十四)
그야말로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어둡고 어지럽다.
陰陽五行等 전통사상의 영향으로 인해 중국고대의 宇宙起源에 관한 연구는 항상陰陽을 뛰어넘어 氣 前段階에까지 이르러 탐구‧토론하지 못하고, ‘陰陽五行, 일곱가지가 섞여서 物을 생성하는 材料가 된다.(陰陽五行 七者滾合 便是生物的材料)’에 그쳤고, ‘일곱가지(七者)’의 이전에 이러한 재료를 생성하는 材料가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따라서 周敦頤가 太極圖중에 기술한 사상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걸출한 사상가인 王夫之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王夫之는 일찌기 자기의 잘못된 견해로써 다른 사람의 정확한 해석을 교정하려고 했었다. 그는 말하였다.
“太極圖를 잘못 이해하는 자는 ‘太極’이 본래 陰陽이 없다고 말하고, 動하므로써 陽이 生하고 靜하므로써 陰이 生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動靜을 생성하는 陰陽이, 寒暑 潤燥 男女의 性質등, 즉 사물 고유의 본성이 되며, 動靜의 앞에 충만하게 있음을 알지 못한다. 動靜이라는 것은 즉 陰陽의 動靜이며, 動하면 陰이 陽으로 變하고 靜하면 陽이 凝聚하여 陰으로 된다. 辰,巽,坎,離,艮,兌의 하나 하나는 乾,坤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動한 후에 陽이 생기고, 靜한 후에 陰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본래 陰陽二氣가 없고, 動靜으로 말미암아 생성된다는 것은, 老氏의 말과 같은 것이다.”
(“ 誤解 『太極圖』者, 謂“太極”本未有陰陽, 因動而始生陽, 靜而始生陰. 不知動靜所生之陰陽, 爲寒暑, 潤燥, 男女之情質, 乃固有之蘊, 其絪縕充滿在動靜之先. 動靜者則此陰陽之動靜, 動則陰變于陽, 靜則陽凝于陰, 一 震, 巽, 坎, 離, 艮, 兌之生于 乾, 坤也;非動而后有陽, 靜而后有陰, 本無二氣, 由動靜而生, 如老氏之說也“)
(壯子正蒙注‧太和篇)
매우 명료하게, 王夫之는 萬物을 構成하는 ‘材料’는 단지 陰陽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動靜이라는 것도 또한 단지 陰陽의 動靜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動靜이 있은 후에 陰陽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는 陰陽의 전에 다른 물질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老氏의 말에 해당하게 되는 것이다. 王夫之는 儒家들의 견해를 堅持하였기 때문에, 陰陽動靜의 해석 또한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라 하는 儒敎經典의 오랜 이야기를 지지한 것이다. 王夫之는 위대한 사상가이며 중국사상사의 지위 또한 周濂溪보다 뛰어나지만 우주생성론적 문제상에 있어서는 도리어 융통성을 잃어서 周敦頤가 여러 사람의 말 중 우수한 것만을 취한 것만 못하였다.
그렇다면, 결국 어떻게 周敦頤의 ‘動而陽 靜而陰’의 명제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은 과학적인 馬克思主義의 도움을 빌지 않을 수 없다. 恩格斯는 그의 著書 自然辨證法중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平衡은 運動과 不可分한 것이다. 天體의 운동에 있어서 평형중의 운동과 운동중의 평형은 상대적이다.”(平衡是和運動分不開的. 在天體的運動中是平衡中的運動和運動中的平衡 (相對的))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물체의 상대 정지의 가능성, 잠시의 평형상태의 가능성은 물질 분화의 근본 조건이며 또한 생명의 근본 조건이다.”
(又說: 物體相對靜止的可能性, 暫時的平衡狀態的可能性, 是物質分化的根本條件, 因而也是生命的根本條件)
(모두 馬克思‧恩格斯選集第 三券 第 56項에 보인다.)
恩格斯의 運動과 平衡 즉 상대정지의 논술에 관한 단락과 물질분화의 근본조건에 관한 논술은 周敦頤의 ‘動而生陽 靜而生陰’사상의 과학적 해석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마땅히 참조할 만한 것이다.
4. 五行 各一性에 관하여
太極圖의 제 3層은 太極圖說의 ‘五行之生也 各一其性’에 해당하는데, 水火木金土 5字와 6개의 작은 원, 11개의 길고 짧은 연결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周敦頤는 太極圖說에서 비교적 긴 설명을 하였다:
“陽이 변화하고 陰이 화합하여 水火木金土를 생성한다. 五氣가 순조로이 布散되니, 四時가 움직인다. 五行은 陰陽에서 기원하고, 陰陽은 太極에서 기원하며, 太極은 無極에 근본을 둔다. 五行이 생성되고 각기 그 본성을 갖춘다.”
(“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 五氣順布, 四時行焉. 五行, 一陰陽也; 陰陽, 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
朱熹는 太極圖의 뜻에 근거하고, 이 단락의 글(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五行之生也, 各一其性)을 대조하여 아래와 같은 해석을 하였다:
“‘\’은 陽의 변화를 의미한다. ‘/’은 陰이 합하여지는 것이다. 水는 陰이 盛한 것이므로 오른쪽에 위치하고; 火는 陽이 盛한 것이므로 왼쪽에 위치한다. 木은 陽이 미약한 것이므로 火다음에 위치 하고; 金은 陰이 미약한 것이므로 火다음에 위치한다. 土는 沖和之氣이므로 가운데에 위치한다. 水火가 ?모양으로 위에서 맺어져서 陰은 陽을 근본으로 삼게 되고, 陽은 陰으로써 근본을 삼게 된다. 水에서 木, 木에서 火, 火에서 土, 土에서 金, 金에서 다시 水로 고리처럼 끝없이 五行의 氣가 布散되어 四時가 運行한다.”
( ---“ \者陽之變也, /者陰之合也. 水陰盛, 故居右; 火陽盛, 故居左. 木陽雉, 故次火; 金陰雉, 故次水. 土沖氣, 故居中, 而水火之 交系乎上, 陰根陽, 陽根陰也. 水而木, 木而火, 火而土, 土而金, 金而復水, 如環無端, 五氣布, 四時行也.”)
朱熹의 해석은 세 방면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太極圖說의 “陽變陰合”의 뜻을 고려한 것이고, 둘째는, “三五一元”의 옛 학설을 답습한 것이고, 셋째는 五行의 相生순서를 답습한 것이다. 그는 “陽變陰合”을 가지고 윗그림과 연접하는 두개의 사선( \,/ )을 해석하였고, “三五一元”을 가지고 五行의 縱軸배열을 해석하였으며, 五行相生을 가지고 서로 교차하는 연결선을 해석하였다. 이는 매우 주도 면밀하게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周敦頤의 본뜻인가?
이에 대해 王夫之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張載의 正蒙에서 ‘土는 사물과 끝을 이루는 까닭이다.’(“土者物之所以成始而成終”)라는 단락 아래에 주석을 가했다:
“水,火,木,金은 모두 土와 함께 體를 이룬즉, 萬物이 생하여 形과 質이 있게 될때 土는 모두 體에 겸하여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周敦頤의 太極 第 1圖는 太極의 본체이다; 第 2圖는 陰陽二氣로 하늘의 속 내막이다.; 第 3圖는 五行이 순조롭게 布散하는 것으로 땅이 갖추고 있는 바이다. 第 2圖에서 陰陽이 좌우로 나뉘고 가운데에 太極이 있는 것은, 陰陽이 太極에서 나뉘었으나 太極 자체는 난잡하지 않음이요, 하늘에 있어서의 지극함이다. 第 3圖에서 土가 가운데 위치하고 水火木金이 주위를 도는데 별도로 太極이 없는 것은 土가 땅에 있어서의 지극함임을 밝히는 것이다. 土는 水火를 기다리지 않고 생기지만, 水火는 土에 의지한다.; 木金은 土의 열매와 꽃으로, 土를 벗어나서는 木金이 있지 않다. 張載의 이 말은 물리의 극치를 다한 것으로 周敦頤의 뜻에 부합한다. 그런데 점술가들이나 하는 말로 火生土, 木克土라 하는 것은 周敦頤의 뜻을 더럽힌 것이다.”
(“水, 火, 木, 金, 皆與土爲體, 則萬滙之生, 有形有質, 土皆兼體而不遺矣. 周子 太極 第一圖, 太極之本體; 第二圖, 陰陽二氣, 天之蘊也; 第三圖, 五行順布, 地之撰也. 第二圖陰陽分左右, 而中有太極, 陰陽分體太極, 而太極自不雜, 在天之極也. 第三圖位土于中, 周行水, 火, 木, 金而別無太極, 明土爲在地之極也. 土不待水火而生, 而水火依土; 木金, 土之華實, 非土外之有木金, 張子此論, 究極物理, 與周子吻合. 而朮家之言, 謂火生土, 木克土者, 其陋明矣.”)
(張子正蒙注․參兩篇)
王夫之는 張載의 “土者物之所以成始而成終”이라는 관점으로부터 시작하였으며, 위의 그림(太極圖 第 2層)에서 太極이 中心이 된다는 것에 근거하여, 본 그림(太極圖 第 3層)에서는 土가 中心이 된다는 것을 유추해 냈다. 아울러 太極은 ‘在天之極’이고 土는 ‘在地之極’이라는 것을 명확히 지적하였다.
이처럼 天과 地를 분명히 하였으니, 독창적인 이론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이미 형성된 우주에 대한 해석과 우주 생성에 대한 연구와 토론, 이 두 가지의 한계를 혼동하였다.
張載가 말한 것은 五行이 이미 이루어진 후이며, 周敦頤가 말한 것은 五行이 비로소 生하는 때이므로 두 說은 결코 부합되지 않는다. 그러나 王夫之는 相生相克類의 논법이 결코 周敦頤의 本意가 아니라 하여 단호히 버렸는데, 이는 진취적인 의의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朱熹 또한 전적으로 ‘五行相生’을 말한 것이 아니고, 단지 五行이 생성되는 순서를 명료하게 말하려고 시도했을 뿐이었다. 그는 더 나아가 해석하였다:
“陽이 변화하고 陰이 화합하여 처음에 水火를 生한다. 水火는 氣로서 流動하고 번쩍번쩍 빛나며 그 體는 비어있고 그 이루는 形도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 다음에 木金을 生하면 확실하게 形이 정해지게 된다.” (“陽變陰合, 初生水火. 水火氣也, 流動閃煉, 其體尙虛, 其成形猶未定. 次生木金; 則確然有定形矣.”)
그러나 木金은 土에서 떨어질 수 없는 까닭에 朱熹가 또한 이르기를 ‘水火는 처음에 스스로 生하나 木金은 土에서 도움을 받는다.’(水火初是自生, 木金則資于土)라고 하였다. 이렇게 水火自生의 說을 세워서 五行相生의 순서가 비록 혼란스럽게 되었지만, 木金은 土의 도움을 받아 생하게 된다고 하여 또한 확실하게 相生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그렇다면 그림중의 水火金木土의 상호관계 및 아래의 작은 흰원 위로 교차하는사선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가능한 한 圖意를 완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太極圖의 來原을 한번 되돌아 보는 것도 괜찮다. 윗글에서 이미 제시했듯이, 黃宗炎의 고증에 근거하면 周敦頤의 太極圖는 穆修가 전한 無極圖를 모방한 것이다. 황종염(黃宗炎)은 太極圖辨에서 無極圖의 大意를 소개하였다:
“가장 아래원을 ‘玄牝(老子에서 말하는 道의 오묘한 곳)之門’이라고 名한다. 玄牝은 谷神인데, 牝은 竅이고 谷은 虛이다. 이는 사람의 命門인 兩腎의 틈을 가리키는 것으로, 氣가 이곳으로 말미암아 生하면 祖氣가 된다. 무릇 사람의 五官百骸의 知覺運用은 모두 이것에 근본을 둔다. 여기(玄牝之門)에서 祖氣가 上升하면 점차 위의 원이 되는데, 名하여 ‘煉精化氣 煉氣化神’이라 한다. 有形의 精을 달구어서 흐릿한 기운으로 만들고 어렴풋한 呼吸之氣를 달구어서, 出은 있으나 入이 없는 神으로 만들고 그것으로 하여 五臟六腑를 관철하게 하면, 中層(第 3層)에 있어서 왼쪽의 木火, 오른쪽의 金水, 가운데의 土가 서로 연락되는 한 원이 되는데, 名하여 ‘五氣朝元’이라 한다. 行하여서 얻는 것이니 즉 水火가 交媾하여 孕胎함이 있는 것으로, 이로서 그(五氣朝元) 위에 있는 속이 흑백 둘로 나뉘어 서로 섞여서 복잡한 한 원이 된다.名하여 ‘取坎塡離’라 하니 이로서 ‘聖胎’가 된다.”
(“其最下圈名爲‘玄牝之門’. 玄牝則谷神, 牝者竅也, 谷者虛也, 指人身名門兩腎空隙之處, 氣之所由以生, 最爲祖氣. 凡人五官百骸之運用知覺. 皆根于此. 于是提其祖氣上升, 爲稍上一圈, 名爲‘煉精化氣, 煉氣化神’. 煉有形之精化爲微芒之氣, 煉依希呼吸之氣化爲出有人無之神, 使貫徹于五臟六腑, 而爲中層之左木火, 右金水, 中土相聯絡之一圈, 名爲‘五氣朝元’. 行之而得也, 則水火交媾而爲孕. 又其上之中分黑白兩相間雜之一圈, 名爲‘ 取坎塡離’, 乃爲聖胎.”)
(宋元學案 券十二)
無極圖의 “五氣朝圓”은 아래원에서 달궈진 “氣” “神”이 한 단계 올라가 五臟六腑를 관철하는 것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최후에 “水火交媾”에 이르면 다시 상층의 “取坎塡離”로 진입하여 “聖胎”가 된다. 五臟은 肝 心 肺 腎 脾를 가리키며 木火金水土에 나뉘어 속하는데, 白虎通‧情性에 이렇게 씌어 있다.
“눈은 肝이 부린다. 肝은 木의 精華로서 蒼蘢(28宿중 동방의 개 별자리)의 위치이다. 코는 肺가 부린다. 肺는 金의 精華로서 나누어 정하며 판가름한다. 귀는 心을 살피는 곳이다. 心은 火의 精華로서 위로 張星(28宿의 하나)이 된다. 淫氣는 腎이 부린다. 腎은 水의 精華로서 위로 虛宿(28宿중 하나)이 된다. 입은 脾의 문호이다. 脾는 土의 정화이다. 위로 北斗七星이 되고 변화를 주관하는 것이다.”
( ----- “目者肝之使 肝者目之精 蒼龍之位也;鼻者肺之使, 肺者金之精 制割立斷; 耳者心之候 心者火之精 上爲張星;陰者腎之寫, 腎者水之精 上爲虛氣;口者 脾之門戶 脾者土之精 上爲北斗 主變化者也”)
“五氣朝元”의 圖式은 모두 이런 순서와 木東, 金西, 火南, 水北, 土中의 방위분포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서로간의 연결선은 서로 관통함을 설명한다.
앞에 “煉有形之精化爲微芒之氣, 煉依稀呼吸之氣化爲出有入無之神, 使貫徹于五臟六腑” 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가장 아래의 작은 흰원 및 작은 흰원과 각각의 水火木金土를 연락하는 연결선이 곧 “微芒之氣”와 “出有入無之神”으로 하여금 五臟六腑를 貫徹하게 한다는 것을 표현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水火가 위에서 서로 교차하여 윗 그림과 이어지는 연결선은 黃宗炎이 말한 “行之而得也, 則水火交媾而爲孕”을 나타낸 것이며, 또한 “五氣朝元”의 圖題中에서 “朝元”이라는 두글자의 핵심을 요악하여 나타낸 것이다. 이로서 알 수 있듯이 周敦頤의 太極圖에서 “五行各一性”의 圖面은 사실상 無極圖의 “五氣朝元”의 도면이며, 이는 매우 확실한 사실이다.
周敦頤가 이러한 圖面을 빌린 요지는, 우주생성의 序列이 陰陽二氣로 말미암아 진행하여 木火土金水의 五行으로 되는 것을 설명하는 데에 있다. 서로간의 연결선은 또한 단지 옛 그림을 답습하여 五行 서로간의 영향을 설명한데 지나지 않고 반드시 생성의 先後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圖面의 표시와 太極圖說에서 “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의 해석을 대조해 보면, 陰陽으로 인해 五行이 된다는 이러한 총체적 뜻은 마땅히 명확해진다. 고인들은 습관적으로 五行이 우주간의 최초의 원시물질이라고 칭하였는데, 朱熹는 심지어 또 이렇게 말하였다.
“天地之間에 五行이 아닌 것이 무엇이 있는가? 陰陽五行의 일곱가지가 섞이고 합하여지면 곧 사물을 生하는 근본 재료가 된다.”
(“天地之間, 何事而非五行? 陰陽五行七者滾合, 便是生物底材料.”)
이러한 것들은 모두 가히 본 圖面에 대한 간접적이거나 직접적인 해석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太極圖說에서 ‘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의 뒤에 연이어서 말하기를 ‘五氣順布,四時行焉.’이라고 했다. 朱熹가 이를 해석하여 말하였다:
“金木水火는 春夏秋冬에 각기 배속되며, 土는 사계절에 의탁하여 왕성하나 여름의 18일에 있어 土氣가 가장 왕성하게 된다. 그림의 형상으로 고찰해 보면, 木生火 金生水의 종류는 각기 작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火生土 土生金은 土의 안을 관통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土의 옆으로 지나가고 있음을 가히 알 수 있다.”
( ----- “金木水火, 分屬春夏秋冬, 土則寄旺四季, 惟夏季十八日, 土氣爲最旺. 以圖象考之, 木生火, 金生水之類, 各有小劃牽朕. 而火生土, 土生金 獨穿乎土之內, 餘則從旁而過, 爲可見矣.”)
朱熹는 太極圖說과 圖面을 결합하여 해석하였는데, 木火金水는 春夏秋冬의 사계절에 배속하였으나 남은 土를 잘 처리하지 못하여 부득이 “兼旺”의 說을 답습하였다. 명나라 유학자 曹端은 朱熹의 說에 근거하여 더 나아가 해석하였다.
“木氣가 봄이 되면 만물이 生한다.; 火氣는 布散되면 여름이 되고 만물이 성장한다.; 金氣가 포산되면 가을이 되고 만물이 수렴한다. ; 水氣가 포산되면 겨울이 되고 만물이 갈무리된다.;土氣가 사계절 순서의 사이에 의탁하니 四時가 行한다.”
(--- “木氣而爲春, 萬物以生; 火氣布爲夏, 萬物以長; 金氣布而爲秋, 萬物以斂; 水氣布而爲冬, 萬物以藏. 土氣則寄于四序之間, 而四時行矣.”)
이렇게 五行과 四時의 관계는 비록 표면적으로는 대응할지라도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는 모순은 결코 해결되지 못하였다. 黃宗炎은 날카롭게 맞서서 지적하였다:
“陰陽이 이미 합하면 만물이 함께 生하는 것이지, 어찌 먼저 水火木金土가 생겼다가 한 번 막히고 그기운이 포산되기를 기다려 그 후에 四時가 運行되겠는가?”
( ---- “陰陽旣合, 萬物齊生, 豈有先生水火木金土自爲一截, 待水火木金土之氣布, 而后四時得行乎?” ) (宋元學案 卷十二)
王夫之는 더욱 깊이 있게 설명하였고, 또한 자신 나름의 해석을 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五氣의 포산이라는 것은 단지 땅을 말한 것이다. 만약 七曜(日,月,水星,木星,火星,金星,土星)이상의 天에 있어서 끝없이 올라가고 끝없이 들어가 보면 五行이 미치지 않을 뿐더러 所謂 말하는 四時라는 것도 없다. 그러한즉 四時의 運行은 역시 땅과 하늘의 맞닿는 곳에서 기운이 서로 감응하는 것이지 천체가 본디 그러한 것은 아니다.”
( --- “五氣布者, 就地而言. 若七曜以上之天, 極于無窮之高, 人于無窮之深, 不特五行之所不至, 且無有所謂四時者. 然則四時之行, 亦地天之際氣應所感, 非天體之固然矣.” ) ( 張子正蒙注․參兩篇 )
五行과 四時는 본디 무관하다. 그리고 四時의 運行 또한 땅과 하늘의 맞닿는 곳에서 기운이 서로 감응한 것이 아니다. 王夫之는 周敦頤 이론중에 존재하는 모순을 간파하였으나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哥白尼의 天體運行論이 1543년에 간행되었으나 당시 중국에 전입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王夫之는 단지 張載의 “氣一元論”에 근거하여 四季를 이렇게 본래 간단한 자현현상에 속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여기에서 또한 외래문화의 즉각적인 흡수의 중요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周敦頤의 “五氣順布,四時行焉”이라는 논리는 완전히 陰陽五行의 옛설을 답습한 것이고, 결코 前人의 인식상에 어떠한 새로운 합리적인 사항을 제공한 것이 없다. 오히려 자기 이론이 문란해 졌으므로 마땅히 버려야 한다.
周敦頤의 이론은 이렇듯 약간의 부족함이 존재하지만, 결코 그의 전체 宇宙生成論에 대한 중대한 공헌을 덮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四時行焉”의 뒤에 연이어 말하였다:
“五行, 一陰陽也; 陰陽, 一太極也; 太極, 本太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
이것은 서로 관련된 일련의 명제이다. 앞의 세 구절( 五行, 一陰陽也; 陰陽, 一太極也.; 太極, 本太極也.)은 우주생성순서에 대한 逆推로서, 無極에서 太極으로 太極에서 陰陽으로 陰陽에서 五行으로 되는 우주생성의 모든 순서를 명확하게 설명한 것이다. 뒤의 두 구절(五行之生也, 各一其性)은 앞의 각 구절에 대한 보충으로, 우주생성발전이 五行으로 말함으로써 氣의 상태의 단계에서 有形有質의 단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며, 五行이 구성되면 각자의 質이 규정된다는 것을 말한다.따라서 “五行之生也, 各一其性”이라 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五行이 이미 생성되면, 공통적으로 陰陽의 二氣와 구별될 뿐만 아니라 개별적으로도 서로간의 질적인 구별이 있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구별은 白虎通에서 “水曰潤下, 火曰炎上, 木曰曲直, 金曰從革, 土爰稼穡.”라고 말한 不同한 성질과 같다. ‘各一其性’은 즉 각기 그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서, 一은 分을 의미한다. ( 呂氏春秋‧擧難의 ‘故擇務而貴取一也.’에 대해 高誘가 註하기를 “一, 分也”라고 注를 달았다.) 周敦頤의 이러한 명확하고 분명하며 또한 본디 합리적인 일련의 명제에 대하여 여태껏 서로 달리 이해를 해 왔다.
특히 전 단락의 ‘五行, 一陰陽也; 陰陽, 一太極也’에 대해서는 잘못된 해석이 더욱 많았다. 오해의 주요원인은 周敦頤의 이론에서 無極, 太極, 陰陽, 五行이 우주생성의 서로 다른 순서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의적이거나 무심코 네가지를 한 덩어리로 섞어 하나의 순서로 본 데에 있다.
그 다음으로 ‘一’과 ‘性’의 서로 다른 어의를 마음대로 취사선택한 것이 또한 이러한 오해를 깊게 하였고, 심지어는 언어의 배경을 돌아보지도 않고 강제로 자기의 이론에 꿰어 맞추기 까지 하였다. 다음은 각각을 나누어 간단하게 분석한 것이다.
하나의 順序인가 많은 順序인가에 대하여.
우주의 생성은 본래 몇 단계로 구분되는데, 周敦頤의 이론체계에 의하면 無形의 無極段階, 渾然一體의 太極段階, 分陰分陽의 氣化段階, 各一其性의 五行段階가 있다. 여기서의 段階는 보통 말하는 順序이다. 마땅히 우주 생성의 어떤 한 순서에는 모두 근원과 진화와의 관계가 문제된다. 저 순서는 이 순서의 근원이 되며, 진화하여 이 순서로 된다. 이 순서가 저 순서의 허다한 原始成分을 여전히 포함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저 順序가 이미 다른 새로운 순서로 진입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質과 量이 서로 변하는 문제(質量互變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朱熹의 사상체계에 있어서 매우 혼란되어 있다. 그의 사상에는 이 순서에서 저 순서로 가는 질적 비약은 결코 없고 모두 太極으로 일관하고 있어, ‘사람마다 하나의 太極이 있고, 사물마다 하나의 太極이 있다.(人人有太極,物物有一太極)’라고 하였고 심지어 이렇게 말했다.
“홀연히 봄이 오면 각각 모두 밖으로 발산하고 뻗어 나간다. 이렇듯 산에 푸르름이 가득한 것은 이런 太極일 따름이다.”
(“忽然一下春來, 各自發越條暢. 那個滿山靑黃碧綠, 無非是這太極.”)
( 周子語類 卷 94 )
어째서 모두 太極이라고 설명했는가? 왜냐하면 太極은 理이고, ‘이런 理가 있어야 비로소 사물이 있다.(有是理才有是物)’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 비유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소위 ‘乾道變化, 各正性命’은 모두 하나의 理일 따름이다. 이러한 理는 곳곳마다 혼재해 있는데, 마치 조 한 톨이 싹을 틔우고, 싹이 꽃을 내고, 꽃이 열매를 맺으면 다시 조가 되어 본형으로 되돌아 가는 것과 같다 .이삭 하나에는 수 많은 좁쌀이 있는데, 좁쌀은 각각 모두 완전한 것이다. 또 이 많은 좁쌀의 씨를 뿌리면 모두 각각 수많은 좁쌀을 만들어낸다. 生하고 生함이 끝없이 계속되지만 처음에는 단지 조 한 톨만이 뿌려졌을 따름이다. 사물마다 각각 理가 있으나 결국은 하나의 理일 따름이다.”
( ---- “所謂‘乾道變化, 各正性命’, 然總又只是一個理. 此理處處皆深淪, 如一粒粟生爲苗, 苗便生花, 花便結實, 又成粟, 還復本形. 一穗有百粒, 每粒個個完全; 又將這百粒去種, 又各成百粒, 生生只管不已, 初間只是這一粒分去. 物物各有理, 總只是一個理.”) (上同)
이렇게 모두가 결국 하나의 理라면, 이 사물과 저 사물의 구별이 없어지고 이 순서와 저 순서의 구별이 없게 된다. 그는 周敦頤 이론의 모든 순서의 근본을 깊이 연구하여 이치를 밝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五行은 서로 質이 다르며 四時는 氣가 다르지만 모두 陰陽을 벗어나지 않는다. 陰陽은 위치가 다르고 動靜은 때가 다르지만 모두 太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 “盖五行異質, 四時異氣, 而皆不能外乎陰陽. 陰陽異位, 動靜異時, 而皆不能外乎太極.”)
이는 결국 五行이 곧 陰陽이며 陰陽이 곧 太極이라는 말이다. 이렇듯 周敦頤가 말한 네가지의 순서는 朱熹의 해석으로 말미암아 서로 자르거나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순서로 되었다. 朱熹는 다른 사람의 周敦頤의 원문을 연구하여 자기와 상반되는 생각을 하게 될까 두려워 하여, 나아가 周敦頤의 원문을 곡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五行一陰陽, 陰陽一太極’은 즉 太極의 다음에 陰陽五行이 따로 생기는게 아니고, 陰陽五行의 위에 먼저 太極이 있는 것이다. ‘無極而太極, 太極本無極’이란 즉 無極의 다음에 太極을 따로 生하는 것이 아니고, 太極의 위에 먼저 無極이 있는 것이다.”
( --- “五行一陰陽, 陰陽一太極, 則非太極之后別生」二五, 而二五之上先有太極也. 無極而太極, 太極本無極, 則非無極之后別生太極, 而太極之上先有無極也.”)
무엇을 ‘非太極之後別生二五而二五之上先有太極’이라 했는가? 또한 무엇을 ‘非無極之後別生太極而太極之上先有無極’이라 했는가? 이는 분명치 않은 같은 뜻의 말을 반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은 매우 간단하다여 그의 제자 陳淳이 말했다:
“총괄해 말하면 섞여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理일 따름이요, 하나의 太極일 따름이다. 나누어 말하면 천지만물은 각각 이런 理를 갖추고 있고 각각 이런 太極을 가지고 있는데, 또 모두 섞여 있어서 빈 틈이 없다. 나누어 말해 보면 이미 수 많은 것을 이루므로 道理가 흩어진 것 같다. 그러나 만물을 총괄하여 논하면 만물의 총체는 섞여 구분되지 않아서 또 하나의 太極일 뿐이다.”
( --- “總而言之, 只是渾淪一個理, 是一個太極. 分而言之, 則天地萬物各具此理, 是各各有一太極, 又都渾淪無欠缺處. 自其分而言, 旣成許多, 此道理似散了; 然就萬物上總論, 則萬物統體渾淪, 又只是一個太極.”)
그러므로 朱熹 및 그 학파의 이론체계에서는, 우주 생성의 최초에서 최후까지 모두 한 개의 순서와 형식만이 있는데 이것이 곧 ‘太極’이다.
“一” 과 “性”에 대하여.
朱熹의 학파가 周敦頤의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라는 逆推를 반복한 까닭은 글에 쓰인 ‘一’이 가진 多義性 때문이다. ‘一’의 주요한 뜻은 셋이 있다.
첫째는 始의 의미이다.
說文에 ‘惟初太始,道立于一’이라 했고, 廣韻에 ‘一,數之始也’라고 하였다.
둘째는 同의 의미이다. 廣韻에 ‘同也’라고 하였고, 禮記‧樂氣에 ‘禮樂刑政, 其極一也’라고 하였다.
셋째는 專의 뜻이다. 禮記‧禮運에 ‘欲一以窮之’라고 하였고, 王夫之의 張子正蒙注에 ‘無不貫之謂一’이라고 했다.
만약 첫번째 뜻으로 해석하면 ‘五行은 陰陽에서 비롯하고, 陰陽은 太極에서 비롯한다.’가 되며, 두번째 뜻으로 해석하면 ‘五行은 陰陽과 같고, 陰陽은 太極과 같다.’가 된다. 세번째 뜻으로 해석하면 ‘無極은 太極보다 일관되며, 太極은 陰陽보다 일관되며, 陰陽은 五行보다 일관된다.’가 된다.
‘五行一陰陽, 陰陽一太極’의 ‘一’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는 周敦頤의 원작에서 고증해야 한다. 周敦頤의 太極圖說에서 陰陽과 五行이 모두 제시된 곳은 두 곳이다.
하나는 順推로 ‘分陰分陽, 兩儀立焉, 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이다. 또 하나는 逆推로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이다. 通書에도 두 곳이 있다. 하나는 動靜第十六의 ‘五行陰陽, 陰陽太極’인데 매우 당연하게 이것은 확실히 太極圖說에서 “五行, 一陰陽也; 陰陽, 一太極也”라는 逆推의 생략 형태이다. 또 하나는 理性命第二十二의 “二氣五行化生萬物”인데, 이는 곧 太極圖說에서 順推의 생략 형태이다. 같은 章에 또 “五殊二實, 二本則一”, “是萬爲一, 一實萬分”이란 부분이 있는데, 모두 順推와 逆推 두가지 표현의 생략 형태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이 무릇 周敦頤가 順推하여 표현할 때, ‘分’이나 ‘生’을 사용하거나 또는 모두를 쓰지 않았고, 심지어는 “二氣五行”이라고 까지 간략화 하였다. 逆推하여 표현할 때 ‘一’을 쓰거나 쓰지 않았고 간략화하여 “二本則一”이라고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표현이 逆推인지 順推인지, 또는 번잡하든지 간단하든지는 상관없이, 無極에서 太極, 太極에서 陰陽, 陰陽에서 五行이라는 차례대로 서로 발생하는 그 순서는 변하지 않는다. 이에 근거하면 “五行一陰陽, 陰陽一太極”에서의 “一”은 “數之始也”라는 것에 근거한 起始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同으로 풀이할 수 없고 均으로 풀이 할 수 없는데, 그렇지 않으면 周敦頤가 표현하려한 본 뜻에 符合하지 않게 된다.
이렇듯 시작이라는 뜻의 ‘一’과 동일하다는 뜻의 ‘一’을 혼동하는 것은 朱熹가 앞서서 시작했는데, 陳淳등이 뒤이었고 결국 습관적으로 되기에 이르렀다. 근대에 이르러, 어떤 책에서는 본래보다 격식화하여 마침내는 아예 “等一”로 해석하였다. 예를 들어 宋明理學史上卷 68項을 보면 다음과 같다.
“五行은 陰陽과 同等하다. 陰陽은 太極과 同等하다. 여기서의 ‘五行, 陰陽; 陰陽, 太極’은 太極圖‧易說에서 말한 ‘五行, 一陰陽也; 陰陽, 一太極也’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말은 곧 周敦頤 사상의 본면목에서 보면 그른 것이 된다.
그 다음은 ‘性’이다. ‘性’은 기본 사전적 의미와 철학적 개념으로 볼 때는 모두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中庸에 ‘하늘이 부여한 것을 性이라고 일컫는다.(天命之謂性)’라 하였고, 孝經說에서 ‘性은 生의 바탕이다.(性者生之質)’라 하였다. 董仲舒는 ‘바탕이 소박한 것을 性이라고 일컫는다.(質朴之謂性)’고 하였다. 王夫之는 ‘天理 그대로가 太和의 氣로 되어 이루어졌으나 事物에 남겨지지 않은 것이 性이다.(天理之自然,爲太和之氣所體物不遺者爲性)’라고 하였고 또 ‘性은 하늘의 도리이고, 마음은 사람의 도리이다.(性者天道,心者人道)’라고 하였다.
총괄하여 말하면, 性은 ‘天道’에 속하는 것으로, 어떤 사물의 어떤 자연속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또 ‘人道’(사회속성)가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둘은 한 곳에서 얽혀서 매우 복잡성을 띠게 된다. 예를 들면 孝經說에서 ‘性者生之質也’라는 부분의 바로 뒤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木의 性은 仁, 金의 性은 義, 火의 性은 禮, 水의 性은 知(智), 土의 性은 信인 것과 같다.”(--- “若木性則仁,金性則義,火性則禮,水性則知(智),土性則信.”)
이렇게 自然物質의 五行과 윤리규범의 五常을 한 곳에 관련시켰고, ‘人道’와 ‘天道’를 합해 하나로 하여 나누기 어렵게 하였다. 朱熹는 바로 이 점 떄문에 周敦頤의 ‘五行之生也 各一其性’이라는 명제에서 빗나가게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各一其性이므로 곧 渾然의 太極 全體가 事物 하나에 각기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다.” “周子가 이른바 ‘各一其性’이라 했는데,만약 원래 本然의 性이 없다면, 氣質의 性이 어느곳으로 부터 나오겠는가? (向使元無本然之性, 則氣質之性從何處得來?)”
朱熹의 관점에 따르면, 五行은 ‘그것이 생기고 각기 본성을 갖춘다.(其生也各一其性)’가 아니고, 완전히 상반되게도 오로지 그 “一性”(本然之性)만이 五行 각각을 生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向使元無本然之性, 則氣質之性從何處得來?’는 이것을 명확하게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朱熹는 어째서 저렇게 불합리하게 해석해야 헀을까? 그 목적은 그의 ‘理一元論’적 체계를 견지하려는 데에 있다. 太極은 理이고, 太極에서 나온 陰陽도 理이며, 陰陽에서 나온 五行 또한 마땅히 理여야 한다. 하지만 五行은 또한 實在하는 事物이므로, 太極이 理로서의 ‘本然之妙’라고 풀이하거나 陰陽이 ‘理在氣中’이라고 풀이한 것 처럼 잘 처리 하지 못할 것 같아, 여기에서 어떠한 ‘本然의 性’과 ‘氣質의 性’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사실 周敦頤의 ‘五行各一其性’이란 ‘水潤下, 火炎上, 木能曲直, 金可以革, 土爰稼穡’에서 말하는 類의 자연속성을 가리킬 뿐이다. 오로지 五行이 각자의 자연 속성이 있어야만 轉化하여 다른 만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周敦頤가 太極圖說에 이 한 구절(五行之生也,各一其性)을 삽입해야했던 이유는 아래의 “化生萬物”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5. 乾道成男 坤道成女에 대하여
『太極圖』의 第 4層의 제목으로써 ‘乾道成男 坤道成女’라하여 한 개의 큰 흰 원을 그려 놓고 있다. 太極圖說에서는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이라고 풀이하였다. 이는 太極圖說에서 가장 神秘하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가장 쉽게 오해를 일으킬만한 구절이다.
周敦頤의 본뜻을 헤아려 보건데 이 층의 요지는 種의 起源을 설명하는 것이다. 種은 어떻게 起源하는 것일까? 周敦頤의 해석에 의하면 그 基本點은 ‘無極之眞 二五之精’의 신비한 交合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精’은 氣이다. ‘無極’은 氣의 前段階이므로 아직 氣를 이루지 못한다. 따라서 眞이라 일컫는 것은 氣의 眞元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혹자는 道藏‧上方大洞眞元妙經圖의 ‘眞元’에서 취했다고 생각하나 실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皇帝內經 素問上古天眞論의 ‘天地始生眞元之氣’가 上方大洞眞元妙經圖의 ‘天地分太極 萬物分天地 人資天地眞元一氣之中以生成長養’에 비해 더욱 적절하다. 그러므로 ‘眞’은 아마 內經에서 나온 것 같다.
그다음 周敦頤는 ‘誠’을 최고 단계의 것으로 여겼는데, 莊子‧漁父篇의 ‘眞者 精誠之至也’를 보건대 周敦頤가 眞字를 선택하여 사용한 것은 ‘精誠之至’의 思考에서 나왔다고도 할 수 있다. 氣의 原始를 ‘無極’이라 했다. ‘太極’의 動靜으로 인해 陰陽으로 분화하였으므로 ‘二五’라고 말하였고 太極은 말하지 않았다. ‘五’는 五行之氣를 가리키니, 白虎通‧五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五行이란 무엇인가? 金木水火土이다. 行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늘이 行하는 氣를 말하려는 것이다.”
(“五行者 何爲也? 爲金木水火土也. 言行者 欲言爲天行之義也.”)
이렇듯 ‘無極’의 眞元에 陰陽五行의 精氣가 神妙한 융합을 통하면 여기서 생명의 起源이 있게 된다. 만약 생명이란 것이 모두 雌雄牝牡의 교배에 의해 이루어 진다면, 이러한 雌雄牝牡란 것은 또한 어떻게 생겨 나는가? 여기에서 乾天爲父 坤地爲母의 논리에 근거하여 雌雄牝牡을 형성하는 乾道와 坤道를 생각해냈고, 아울러 易傳의 “乾道成男 坤道成女”라는 原文을 빌려서 덧붙여 표현했다. 乾坤二道가 있으면 이에 二氣가 交感하여 萬物을 化生한다. 周敦頤의 이러한 소박한 생각은 자연히 種의 起源에 대한 과학적 결론과 매우 거리가 멀다. 그는 생명의 근원이 단백질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고 아울러 단백질 자체의 구조적 화학식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대체적인 절차는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즉, 無極이라는 眞元에서 陰陽五行之氣가 만들어지고 陰陽五行之氣로부터 性差別이 있는 乾坤의 道를 만들어 내고 그런 연후에 乾坤 二氣의 交感으로 萬物을 만들어 낸다. 만일 그의 說을 더욱더 상세하고 명료하게 하려면 예컨대, 도대체 어떻게 ‘妙合而凝’하는가와, 도대체 어떻게 性別을 구별하여 표시하는 乾道와 坤道가 만들어 지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古人이 난해하게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현재에 이르러서도 근본적으로 단백질의 화학식을 확정시킬 수 없고, 화학상으로 다른 단백질이 얼마나 되는 지도 모르며 단지 대략 10년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전하게 구성되지 않은 단백질이 생명의 일체 주요한 기능인 소화‧배설‧운동‧수축‧자극에 대한 반응‧번식을 수행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因爲直倒現在我們還根本不能確定蛋白質的化學式, 我們還根本不知道, 化學上不同的蛋白體窮競有多少, 而且只是在大約十年前知道, 完全沒有結枸的蛋白質執行着生命的一切主要機能:消化, 排泄, 運動, 收縮, 對刺戟的反應, 繁殖) (馬克思恩格斯選集 第 三卷 第 456項)
유감스러운 것은 周敦頤의 표현이 이상적인 완벽함에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이 아니고, 周敦頤 이후 역대 학자들이 그의 과학적이며 정확한 사상에 대하여 오해한 데에 있다. 그중 일부는 심지어 고의적인 曲解까지 하였다. 예로, 朱熹가 ‘無極之眞’을 해석함에 ‘眞’字를 理로 억지로 해석함으로써 그의 이론 체계에 포함시킨것을 들수있다.
그의 答黃道夫書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詩에서 말하길 ‘하늘이 사람을 생하여 보좌하는데 物이 있으면 반드시 法則이 있다.’고 했으며, 周子가 말하길 ‘無極之眞 二五之精’이라고 했다. 소위 眞은 理이고 소위 精은 氣이다. 소위 物은 形이고 소위 則은 性이다.”
(“詩曰:‘天生丞民, 有物有則.’ 周子曰: ‘無極之眞, 二五之精.’ 所謂眞者理也; 所謂精者氣也. 所謂物者形也; 所謂則者性也.”)
그는 결국 당시 陸氏 형제와 토론시 ‘無極無形 太極有理’의 처음 먹은 생각을 견지 하는 것을 바꾸었는데, 즉 ‘無極’을 理로 하고 詩經의 ‘有物有則’과 관련시켜 理에서 氣로, 氣에서 物로, 物에서 性으로 가는 완전 체계를 만들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심지어 그의 제자에게 해석하여 말하길, ‘‘無極之眞’은 이미 太極이 그 안에 있으니 ‘眞’字는 곧 太極이다.(‘無極之眞’ 已該得太極在其中, ‘眞’字便是太極)’라고 하였다.
‘眞’이 理라고 할 수 있는 이상 無極도 될 수 있고 太極도 될 수 있는데, 그러면 無極과 太極의 경계는 다시 존재 하지 않게 된다. 그는 陸氏형제와 토론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無極 二字를 논하자면 이는 周子의 道를 바라보는 명철한 견해이다. 日常의 情을 벗어나 주변 사람의 是非를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得失을 계산하지 않고 용기있게 앞으로 나아가 사람들이 감히 설명하지 못하는 근본 道理를 설명하였다.”
(“若論 ‘無極’二字, 乃是周子灼見道體, 逈出常情, 不顧旁人是非, 不計自己得失, 勇往直前, 說出人不敢說底道理.”)
이것은 理致가 정당하고 말과 글이 날카롭고 엄숙한 논술이지만 한 푼 가치도 없는 것이다.
만일 朱熹가 ‘眞’字의 자구해석상에서 고의적인 왜곡이 있다고 말한다면, ‘男女’ 二字상에 있어서는 응당 무심코 한 오해라고 해야 할 것이다. 朱熹는 ‘乾道成男 坤道成女’의 男女는 하나의 구체적인 男子와 女子라고 인정하였으며 심지어는 매우 절대적으로 말하기에 이른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天地의 처음에 어떻게 人種을 초래하였는가하면 氣의 蒸結로 말미암아 두 사람을 만든 후에 바야흐로 많은 사물을 生하게 된다. 이런 연유로 먼저 ‘乾道成男 坤道成女’를 말한후에 ‘化生萬物’을 말했다. 당초에 만약 두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같이 어떻게 많은 사람이 있겠는가? 그 두사람은 지금 사람들 몸의 虱와 같이 자연히 변화되어 나온 것이다.”
(“天地之初, 如何討個人種, 自是氣蒸結成兩個人后, 方生許多物事. 所以先說‘乾道成男, 坤道成女’后方說‘化生萬物’. 當初若無那兩個人, 如今如何有許多人? 那兩個人便如而今人身上虱. 是自然變化出來的.”) (周子語類 卷九十四)
朱熹는 또한 단지 사람만이 최초에 男女 둘이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떠한 생명이 있는 것이라도 최초엔 모두 男女와 유사한 하나의 對對關係가 있었다고 인식하였다.
그는 학생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太極(太極圖-譯者)에서 말하는 바는 곧 사물을 생하는 시초에, 陰陽의 精이 스스로 맺혀 두개를 이루고 후에 점차 점차 生하고 죽게 되니 萬物이 모두 그러하다. 예를들면 牛羊艸木이 모두 숫컷과 암컷이 있으며 하나는 陽이 되고 하나는 陰이 된다. 萬物이 처음 생길때 각각 두가지를 가지고 있다. 고로 이르기를 ‘二五之精 妙合而凝’이라 하였다.”
(“『太極』 所說,乃生物之初, 陰陽之精, 自結成兩個, 后來方漸漸生去, 萬物皆然. 如牛羊草木, 皆有牝牡, 一爲陽, 一爲陰, 萬物有生之初, 亦各自有兩個.故曰‘二五之精, 妙合而凝’.”) (上同)
그는 ‘두가지’의 유래를 진일보 해석하여 말하였다.
“楞嚴經 後面에서 말하였다.‘大劫後에 세상에 사람이 모두 죽어서 다시 人類가 없는데 일반 곡식이 生하여서 길이가 一尺 남짓하였다. 天上에서 仙人이 내려와서 먹어보고 좋은 것을 안뒤에 마음대로 와서 먹고는 몸이 무거워져 이에 올라가지 못하여 세상에 또한 人種이 있게 되었다.’ 이 말은 진실로 우습다. 단, 어떤 사람이 이로 인하여 세간에 처음에 人種이 있었음을 그와같은 식으로 말하였다”
(“大劫之后, 世上人都死了, 無復人類, 却生一般禾谷, 長一尺餘. 天上有仙人下來喫, 見好后,只管來喫, 喫得身重, 遂上去不得, 世間方又有人種. 此說固好笑, 但某因此知得世間却是其初有個人種, 如他樣說.”) (上同).
朱熹의 ‘討種論’은 실제상 上帝가 사람을 만들었다는 論이다. ‘乾道成男 坤道成女’을 잘못 해석한 것은 자연히 朱熹에만 그친것이 아니라 著名한 사상가 王夫之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張子正蒙注‧乾稱篇上에 제시한 것중에서 써보면 다음과 같다. “濂溪周子는 먼저 太極圖說을 만들고 이로써 天人合一의 根源을 궁구했는데 그로써 무릇 사람들의 生도 모두 天命이 세상에 널리 행하여진 결과임을 밝혔으며, 神의 造化중 순수한 것을 性으로 삼았다. 매일 사용하는 事物의 당연한 理致는 모두 陰陽이 변화하는 자연의 질서가 아님이 없고 위배될 수 없는 것이다. 의심스러운 것은 太極으로부터 나뉘어 兩儀가 되고 運行하여 五行이 되는데 ‘乾道成男 坤道成女’는 모두 乾坤의 大德이 始生하는 것을 돕는 것이니 즉 사람은 모두 天地가 生한 것 이고 父母는 다만 祭를 지내는 틀이 되는 바인즉 사람은 그 아비를 아비라하지 않고 하늘을 아비라 하고, 그 어미를 어미라 하지않고 땅을 어미라 한다. 六經,語,孟의 말과 상반되고 불교의 眞如緣起의 說과 비록 다르면서도 같은 것이다.”
(“濂溪周子首爲 『太極圖說』, 以究天人合一之原, 所以明夫人之生也, 皆天命流行之實, 而以其神化之粹精爲性, 乃以爲日用事物當然之理, 無非陰陽變化自然之秩敍而不可違, 然所疑者, 自太極分爲兩儀, 運爲五行, 而‘乾道成男,坤道成女’, 皆乾坤之大德, 資生資始, 則人皆天地之生, 而父母特其所襌之幾, 則人可以不父其父而父天, 不母其母而母地, 與 『六經』, 『語』, 『孟』之言相爲跖盭, 以與釋氏眞如緣起之說雖異而同.”)
이 글은 王夫之가 西銘의 注釋을 만들면서 제시한 것으로 자연히 人倫道德에 착안한 것이다. 그는 인간들이 몸을 낳아준 父母를 한쪽으로 제쳐두고 ‘不父其父而父天 不母其母而母地’라 하여 三綱五常을 문란하게 한데 특별히 관심이 있었다.
王夫之와 朱熹가 제시한 문제에서 前者는 人倫道德을 말하고 後者는 物種의 起源을 말하여 각도가 비록 다르지만 두 사람의 ‘男女’의 함축된 의미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다.
王夫之이후 또 오해한 사람이 있는가? 있다. 淸代康熙 四十八年에 儀封 張伯行이 지은 濂洛關閩書(濂은 周濂溪, 洛은 李程, 關은 張橫居, 민은 朱熹를 가리킨다.)에‘ 無極之眞’아래 注를 달아 말하였다:
“二氣五行의 精醇한 氣가 기묘하게 자연히 융합되고 가로세로로 섞여 각각 비슷한 것끼리 모여 凝結되어서 형을 이룬다. 사람과 사물의 생함에 있어 陽을 얻어 健壯한 것이 男子를 이루고 乾道이며 또한 父道이다. 陰을 얻어 온순한것이 女子를 이루고 坤道이며 또한 母道이다. 이것은 萬物이 氣化로써 생긴것이다. 이미 男女가 있으면 男陽女陰의 二氣가 만나 感應하여 萬物을 化生한다. 이것은 萬物이 形化로써 생긴 것이다.”
(“二氣五行精醇之氣, 妙于自然融合而經緯錯綜, 各以類凝聚而成形, 于是人物之生得陽而健者以成男, 乾道也, 亦父道也; 得陰而順者以成女, 坤道也, 亦母道也, 此萬物之以氣化而生也. 旣有男女, 男陽女陰, 二氣交感而化生萬物, 此萬物之以形化而生也.”)
이는 張伯行이 朱熹의 문인인 陳埴의 ‘氣化’ ‘形化’의 說을 흡수한것에 불과한데, 朱熹의 說과 비교해볼때 약간 융통성이 있다. 陳埴이 일찌기 말하였다.
“氣化는 아직 종류가 있지 않은 처음으로 陰陽의 氣가 合하여 生하는 것을 말한다. 形化는 이미 種類가 있는 後로 암컷과 수컷의 形體가 合하여 生하는 것을 말한다.”
(“氣化, 謂未有種類之初, 以陰陽之氣合而生. 形化, 謂旣有種類之后, 以牝牡之形合而生.”)
그러나 陳埴의 ‘氣化’는 朱熹의 ‘自是氣蒸結成兩個人’을 여전히 가르키며, 여전히 처음엔 하나의 구체적인 男子와 女子가 있었다는 것이니 上帝가 인간을 만들었다는 說을 결코 뛰어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오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여태껏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淸代乾隆 21年에 만들어진周子全書湖南道州版의 編輯者는 朱熹가 ‘以氣化而生者也’라고 注釋한 아래에 注를 달았다:
“사람과 사물이 처음 생길 때 아직 종류가 있지 않았고, 天地의 도타운 기운을 받아야만 자연히 변화하여 생긴것이다. 男女는 암수를 비유하여 말한 것으로 무릇 사람과 사물을 통칭한 것이다.”
(人物始生, 未有種類, 不得不受天地之醇氣而自然化生者也. 男女猶曰牝牡雌雄之類, 盖通人物而言之也)
『全書 編輯者(以下周子全書編輯者의 注釋을 인용할 때 이와같이 한다)의 注釋은 실제상 朱熹의 說을 교정한 것이나 여전히 뒷부분에 또한 ‘通人物而言之也’라고 하여 애매한 말을 하였다. 周子全書가 나온후 男女를 雌雄牝牡로 여기는 사람이 날로 많아졌고, 朱熹의 說(上帝가 人間을 만들었다--譯者注)로 周子의 논리를 해석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朱熹의 설로 周子의 논리를 비판하는 일이 빈번히 생겼다.
따라서 80년대에 출판된宋明理學史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朱熹의 말을 인용하여 周敦頤의 논리에 대해 비판을 했다. 예를 들면 이와 같다.
“周敦頤의 이런 萬物化生論은 마치 약간有物主義의 냄새가 나는 듯 하지만 실질적으로 唯心主義를 잡다하게 긁어 모은 것이다. 周敦頤의 이러한 萬物化成論을 朱熹가 해석하기를 ‘종자가 없고 기운이 쪄서 스스로 변화하여 나왔다’고 했다.... 이 최초의 두 사람은 여호와가 흙으로 빚어 이룬 바가 아니고, 虱가 생기듯이 기운이 찌는 것에 따라 나온 것이다. 理學家의 萬物化生論은 이와 같을 뿐이다.”
(“周敦頤的這套萬物化生論, 好像有点唯物主義的味道, 實質却是唯心主義的雜진溱. 周敦頤的萬物化生論, 朱熹解釋爲無種而氣蒸, 出于自然變化. ……那最初的兩個人, 不是女媧氏摶土做成的, 而是虱子那樣從氣蒸出來的. 理學家的萬物化生論, 如是而已.”)
이 속에서 總稱한 모든 理學家는 자연히 周敦頤를 포함시키고 있지만, 周敦頤는 결코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이 내용은 매우 공평타당하지 않다.
또는 ‘妙合而凝’과 ‘二氣交感’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과정이라고 설명하는데, 陳埴의 설명을 인용하면 ‘氣化’와 ‘形化’의 과정이다. 소위 ‘氣化’란 種類가 있기 전의 始初로 朱熹가 말한 ‘이 기운이 쪄서 맺혀 두 사람을 이룬다’는 것을 가리키고, 또 太極圖說의 ‘乾道成男, 坤道成女’이다. 소위 ‘形化’란 種類가 있은 후에 人類가 번식하는 것을 말함이요, 또 太極圖說의 ‘二氣交感, 化生萬物’을 가리킨다. 이는 실제상 周敦頤 사상을 더 한층 오해한 것인데, ‘乾男坤女’를 오해한 것에 기초하여 더둑더 오해를 한 것이다.
글자에서 보면 太極圖說은 확실히 두 개의 進化過程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無極之眞, 二五之精’의 進化이고, 또 하나는 ‘二氣交感’의 進化인데, 여기에 의문점이 있는것 같다. 이에 대하여 黃宗炎은 일찌기 의문을 제기 하였다. 그는 太極圖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乾男坤女는 분명히 形質이다. 이 때에 만물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 어찌 또 ‘二氣交感而化生萬物’이라 말하였는가? 나는 이 男女속에 사물의 雌雄牝牡를 합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또 사람만 가리켜 말한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만약 雌雄牝牡를 합친 것이라면 ‘圖’에서 나누어 속한 것과 같지 않다. 만약 사람만 가리킨다면, 사람이 다른 종류의 사물을 낳는 일이 없다.”
(“乾男坤女, 顯然形質. 此時萬物無不備俱, 何故又言二氣交感而化生萬物也, 吾不知此男女合物雌雄牝牡俱在內? 又不知專指人言. 如合雌雄牝牡, 則與‘圖’之所分屬者不侔; 如專指人, 人無化生異類之事.”)
(宋元學案 卷 十二)
사실 黃宗炎의 질문은 이미 답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사람이 다른 종류의 사물을 낳지 않으므로, ‘化生萬物’하는 것은 절대로 단순히 사람이라고 볼 수 없고, 이는 사람속에 갖추어진 생명의 물질을 포괄하는 것이다. 둘째, ‘化生萬物’은 만물의 ‘二氣交感’에서 비롯하여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二氣交感’은 단순히 人類男女의 짝으로 이해할 수 없다. 셋째 ‘二氣交感’이 이미 사람만을 가리키지 않으므로, 그 근원인 ‘乾男坤女’는 자연히 또 그 속에 사물의 雌雄牝牡를 合한하여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사람의 男女가 아니다.
그 외에 黃宗炎의 질문속에는 또 의문점이 있다. 이미 그 속에 사물의 雌雄牝牡를 합하여 말했는데, ‘圖’는 어째서 사물의 ‘雌雄’이라고 개괄하지 않고 사람만을 가리키는 ‘男女’를 사용해야 했고, 이로써 ‘說’과 ‘圖’가 서로 같지 않게 하였는가?
이 문제는 답하려면 우리는 ‘乾男坤女’란 말의 起源과 본 뜻에 대해 더 考證할 필요가 있다. 두 구절은 易傳‧系辭上에서 인용한 것이다. 原文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까닭으로 剛柔가 서로 연마하고 八卦가 서로 움직인다. 천둥번개로 두드리고 비바람으로 적신다. 해와 달이 움직여 추위와 더위가 있다. 乾道는 男을 이루고 坤道는 女를 이룬다.”
(“是故剛柔相摩, 八卦相蕩, 鼓之以雷霆, 潤之以風雨, 日月運行, 一寒一暑. 乾道成男, 坤道成女.”)
이 속의 ‘男女’는 남자와 여자를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다. 周易正義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이는 上經(앞 책)의 변화 및 剛柔相摩 八卦相蕩의 일을 밝히고 있다. 八卦가 이미 서로 미루어 움직이면 각기 쓰이는 바에 힘쓴다. 또 震인 천둥과 離인 번개로써 고동시키고, 巽인 바람과 坎인 비로써 滋潤시키며, 또는 離인 해와 坎인 달이 움직여 행하니 한 계절은 춥고 한 계절은 덥다. 震‧巽‧離‧坎은 직접적으로 말하였지만, 乾‧坤‧艮‧兌는 말하지 않았는데, 乾‧坤은 위아래에 갖추어 말하였고 艮‧兌는 고동하거나 運行하는 사물이 아니므로 따라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은 또한 겸비한 것이다. 雷電風雨는 또한 산과 못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乾道成男 坤道成女에서 ‘道’란 자연히 스스로 생기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乾은 자연히 男이되고 坤은 자연히 女가 된다.”
(“此明上經變化及剛柔相摩, 八卦相蕩之事. 八卦旣相推蕩之, 各有功之所用也. 又鼓動之以 震雷離電, 玆潤之以 巽風坎雨, 或離日 坎月, 運動而行, 一節爲寒, 一節爲暑. 直云震巽離坎, 不云乾坤艮兌者, 乾坤上下備言, 艮兌非鼓動運行之物, 故不言之. 其實亦兼言. 雷電風雨, 亦出山澤也. 乾道成男, 坤道成女者, 道, 爲自然而生, 故乾得自然而爲男, 坤得自然而成女.”)
여기서 男女는 雷電風雨와 한가지로 모두 8卦의 작용을 설명하는데에 쓰인 것이요, 어떠한 구체적인 남자와 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周易正義에서 卦象을 설명했는데, 艮은 산이요 兌는 못인데 이 둘은 ‘鼓動하는 事物’이 아니므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乾,坤과 男女가 중복되어 王夫之가 해석한 것처럼 명확하지 못하다.
王夫之는 『周易稗疏‧系辭上傳』에서 ‘八卦相蕩’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鼓之以雷霆’은 震이다. ‘潤之以風雨’는 巽이다. ‘日月運行, 一寒一暑’는 坎과 離이다. ‘乾道成男, 坤道成女’는 艮과 兌이다. 이것이 소위 八卦相蕩이다.”
(“‘鼓之以雷霆’, 震也; ‘潤之以風雨’, 巽也; ‘日月運行, 一寒一暑’ 坎離也; ‘乾道成男, 坤道成女’, 艮,兌也. 此所謂八卦相蕩也.”)
(周易稗疏卷三)
八卦가 모두 나타나게 되었고 또한 모두 대자연 속에서 각자의 작용을 나타내게 되었다. 艮, 兌 두 卦가 乾男坤女를 대표하게 되는데에 있어서 王夫之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사람과 사물이 생길때, 陰陽을 고루 받았는데, 위에 이고 있는 것이 개체의 性質을 이루며 각 맨 위의 하나가 그 개체의 이루는 바가 된다. 艮은 一陽이 바깥에서 이루므로 따라서 男을 이룬다. 兌는 一陰이 바깥에서 이루므로, 따라서 女를 이룬다.”
(“人物之生, 陰陽均受, 而戴之在上者成乎體質, 致一者其所成也. 艮一陽外成, 故成男; 兌一陰外成, 故成女.”)
艮의 괘는 로서, 陽이 위에 있다. 兌괘는 로서 陰이 위에 있다. ‘위에 이고 있는것이 個體의 性質을 이룬다’는 원칙에 근거하면, 따라서 艮은 男으로 해석할 수 있고 兌는 女로 해석할 수 있다. 王夫之는 이어서 또 설명했다. “따라서 咸卦는 사람의 몸에서 取象했다.(是以咸卦取象于人身)” 咸의 卦는 艮下兌上( )으로써, 이는 마치 男女가 몸을 합한 것과 같고, 따라서 사람에서 取象헀다고 설명한 것이다. 이로써 ‘乾男坤女’는 단지 艮과 兌 두 卦의 卦象을 해석하는 한가지 방법일 따름이지 (또한 艮은 山이고, 兌는 澤도 될 수 있다.) 구체적인 남자와 여자와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船山先生이 太極圖를 해석할 때, 마침내 그 道理에 스스로 모순되고, 易의 정확한 뜻의 해석을 굳게 지키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易傳은 乾男坤女 長男少女等의 象으로써 卦를 푸는 思想을 내놓았을 뿐 아니라 사람과 萬物生成의 구체적 순서 또한 설명한 바가 있다. 易傳‧서괘 “ 天地가 있은 연후에 萬物이 있고, 萬物이 있은 연후에 男女가 있다. 男女가 있은 연후에 夫婦가 있고, 夫婦가 있은 연후에 父子가 있고, 父子가 있은 연후에 君臣이 있고, 君臣이 있은 연후에 上下가 있고, 上下가 있은 연후에 禮義가 섞이는 바가 있다.”
(“有天地然后有萬物, 有萬物然后有男女, 有男女然后有夫婦, 有夫婦然后有父子, 有父子然后有君臣, 有君臣然后有上下, 有上下然后禮義有所錯.”)
「序卦」의 이 단락의 논술은 周敦頤의 太極圖중에서 ‘二氣가 交感하여 萬物을 化生한다’는 것과, ‘萬物化生中에서 그 빼어남을 얻어서 가장 영활한 것이 사람이며 人類가 있은 후에 人類社會가 있다’는 표술과 그 순서가 완전히 일치한다. 周敦頤는 이 太極圖, 太極圖說 및 通書에 이르기까지 易에 근거하여 쓴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易傳』에서 卦象으로 여긴 乾男坤女를 고쳐서 구체적인 남녀로 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는 易과 합치하지 않을 뿐더러 자기 이론체계에도 정리할 수 없는 문란함을 가져왔다. 男女를 卦象으로 풀이하는데 있어서 혹 , 의 代稱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易傳중에 곳곳에서 보이며 ‘故爲長男’,‘是爲少女’,‘一索得男’,‘再索得女’等이 모두 그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周敦頤의 人種에 관한 起源은 결국 어디서 시작하는가? 가장 아래 원의 “萬物化生”에서 시작하는데, 왜냐하면 人類는 萬物의 하나이므로 萬物化生은 자연히 人類의 化生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朱熹가 먼저 人類가 있고 후에 萬物이 있다고 한 때 해석한것처럼 인류가 만물보다 먼저 화생할수는 없다. 따라서 사람의 문제에 관해서 周敦頤는 근본적인 것을 아직 圖式중에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았고 太極圖說의 ‘惟人也得其秀而最靈’중에서야 비로소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사람이 결국 어떻게 進化되어 형성되었나에 있어서 先賢들은 그것의 대체적 윤곽을 直觀에 의해 추측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러한 역사적 임무를 완성한 것은 획기적인 馬克思主義에서 창출한 과학결론인 것이다. 恩格斯가 그의 著書 自然辨證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또 몇만년이 지나서 비로서 진일보한 발전의 조건을 형성할 수 있었고, 이런 종류의 일정한 형태가 없는 단백질은 核과 膜의 형성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세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첫번째 세포의 형성에 따라 有機整體的인 형태 형성의 기초 또한 만들어졌다. 이는 古生物學的 기록에 근거하여 類推한 가정과 같다. 최초로 발전하여 나타난 것은 많은 종류의 세포가 없는 原生生物인데 이들 原生生物중에서 단지 加拿大假 原生生物이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原生生物중 어느 한 종류는 점차 최초의 식물로 분화하였고 다른 한 종류는 최초의 동물로 분화했다. 최초의 동물중에서 진일보하게 분화 발전하여 많은 강‧목‧과‧속‧종의 동물이 주로 되었고, 최후로 발전하여 신경계통이 가장 충분히 발전한 어떤 종류의 형태 즉, 척추동물의 형태가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최후에는 이러한 척추동물중에서 또 발전하여 이런 종류(신경계통이 있는 종류)의 척추동물이 생겼는데 그 몸체 에 자연계가 自我意識을 달성하였는데 이것이 사람이다.”
(“也許經過了多少萬年, 才造成了可以進一步發展的條件, 這種沒有定形的蛋白質能夠由于核和膜形成而産生第一個細胞. 但是, 隨着這第一個細胞的産生, 整個有機界的形態形成的基礎也産生了; 正如我們可以根据對古生物學的記錄所作的全部類推來假定, 最初發展出來的是無數種無細胞的原生生物, 在這些原生生物中只有加掌大假原生物傳到了現在; 在這些原生生物中, 有一些漸次分化爲最初的植物, 別一些漸次分化爲最初的動物. 從最初的動物中, 主要由于進一步的分化而發展出無數的綱, 目, 科, 屬, 種的動物, 最後發展出神經系統獲得最充分發展的那種形態, 則脊椎動物的形態, 而最後在這些脊椎動物中, 又發展出這樣一種脊椎動物, 在它身上自然界到達了自我意識, 這就是人.”)
(馬克思恩格斯選集, 第三卷 第456項)
마땅히 거의 천년전에 생활했던 周敦頤는 恩格斯의 이러한 과학적 지식과 판단력을 갖추는 것이 불가능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추상은 현대우주학의 연구결과와 같아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움을 자아내게 한다. 男女 性別의 기반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있어서는 恩格斯조차도 제시한 적이 없으니, 周敦頤가 그 이유를 다 말하지 못한 것을 책망할 필요는 없다.
6. 萬物化生에 관하여
太極圖의 맨 마지막 한 層은 하나의 큰 흰 원으로 표시하고, 하단에 ‘萬物化生’ 4字가 제목으로 붙어있다. 그리고 太極圖說에서는 ‘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이라 하였다.
‘萬物生生而變化無窮’은 말투상 ‘二氣交感化生萬物’에 연이어 있어서 마치 동일한 단계를 말하는 듯 하다. 그런데 어투상 ‘二氣交感’이 또한 ‘乾道成男, 坤道成女’에 뒤이어서 말한 것 이어서, 두문장(二氣交感 化生萬物)이 위로 이어지지 않으면 ‘乾道’이하의 두 구절(乾道成男 坤道成女)이 의미 표현상 불완전한 것 같다.그러나 만약 이처럼 위로 이어지면 ‘萬物生生’이라는 문장이 또한 의미상 시작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모든 문자의 형세를 보건데 ‘無極之眞’으로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變化無窮’에 까지 이어진 다음에 비로소 끊어야 한다. 단락을 가장 세밀하게 나눈 周子全書에서 조차도 이런식으로 처리하였다. 이런 식으로 처리한 까닭은 朱熹의 註釋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
朱熹는 ‘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의 아래 注를 달아 말하였다:
“陽으로 건장한 것이 남자를 만드니 父의 道이다. 陰으로 온순한 것이 여자를 만드니 母의 道이다. 人과 物의 시초는 氣化로서 생기는 것이다. 氣가 모여서 형체를 이루고, 形과 氣가 交感하니 이에 形이 변화함으로써 人과 物이 生生하고 變化가 끝이 없다.” ( --- “陽而健者成男, 則父之道也; 陰而順者成女, 則母之道也. 是人物之始, 以氣化而生者也. 氣聚成形, 則形交氣感, 遂以形化, 而人物生生, 變化無窮矣.”)
여기서 朱熹는 위의 全 文章(無極之眞 ~ 變化無窮)을 하나의 단계로 간주한 것을 볼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圖式과는 완전히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圖式에서는 ‘乾道成男,坤道成女’로 확실히 한 層을 만들었고,‘萬物化生’으로 다른 한 層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文意에 근거하여 한 層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圖式에 의거하여 두 개의 層으로 보아야하는가?
이에 대해 各家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朱熹 注釋의 영향으로 동일한 層으로 간주한 사람이 많았다. 예를 들면 저명한 歷史學者 呂思勉은 ‘乾道成男 坤道成女’와 ‘萬物化生’은 두 원(層)이 중복되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는 理學綱要‧濂溪之學중에서 말하였다:
“아래 한 원은 ‘乾道成男 坤道成女’가 되고 만물이 生하는 연유를 밝힌것이다. 또한 아래 한 원은 ‘萬物化生’이라고 말했는데 사람은 또한 萬物中의 하나이니 실제로 두 圓으로 나눌 수 없는데 周子가 道家의 옛 圖를 따르고 있어 고치지 않은것이다.” (---- “下一圈爲‘乾道成男, 坤道成女’, 明萬物所由生也. 又下一圈曰 ‘萬物化生’. 人亦萬物之一, 實不可分作兩圈, 周子盖沿道家舊圖,
夫之改也.”)
그러나 呂先生은 자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까봐 이에 또한 괄호를 사용하여 명확하게 註釋하기를 ‘周子의 뜻은 乾道成男 坤道成女가 추상적인 말이지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周子之意, 或以 ‘乾道成男, 坤道成女’爲抽象之言, 不指人.”)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乾男坤女’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두 원이 중복됐다는 것인가? 여선생은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서로 다른 두 단계로 생각한 견해도 있다. 예를들면 宋明理學硏究라는 책의 작자는, 朱熹의 原注를 인용한 후 분석하여 말하였다.
“‘陽’으로 건장하면 男을 이루고 ‘陰’으로 온순하면 女를 이루니 이것은 人과 物의 始生이 되고, 이 男, 女는 어떤 구체적인 남자 여자가 결코 아니라 남성특징 혹은 여성 특징을 갖춘 것을 일반적으로 말한 즉, 牝牡․雌雄의 類이다. 이때 인류 및 자연계 만물은 ‘氣化’단계에 있으니 아직 形을 이룬것은 아니다. ‘氣聚成形’은 ‘氣化’로서 人과 物의 다른 종류를 이루는 것이고, 그 후에 ‘人物生生 變化無窮’은 곧 ‘形化‘의 단계이다. 주희가 ‘氣化’,‘形化’라는 아주 큰 수준에서 설명했지만, 太極圖는 분명히 ‘成女’‘成男’와 ‘萬物化生’ 두 개의 단계로 나누고 있다.”
( ----- “ ‘陽’而健成男, ‘陰’而順成女, 這是人與物的始生, 此男, 此女幷非某一具體的男人, 女人, 而是就具有男性 (陽性) 特徵或女性 (陰性) 特徵的一般而言, 則牝牡, 雌雄之類. 這時人類及自然界萬物還處在‘氣化’階段, 還夫成形. ‘氣聚成形’, 則‘氣化’成人與物的不同種類, 然后人,物生生, 而變化無窮, 便是形化階段. 盡管;‘氣化’, ‘形化’ 很大程度上是朱熹的發揮, 但 太極圖 顯然是把‘成女’, ‘成男’與‘萬物化生’分爲兩個階段的.”)
두 개의 단계는 곧 두 개의 層次이며, 두 개의 다른 序列이니, 이것이 매우 식견있는 말이다.
‘萬物化生’은 만물생성의 하나의 독립된 단계이지만,太極圖說에는 단지 ‘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이라는 말밖에 없다. 이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圖, 題, 說 3개 방면을 결합하여 고려해 보면, 이 하나의 단계(萬物化生)가 말하는 것은 만물생성 과정의 맨 마지막 한 부분으로, 또한 原生生物이 점차 분화되어 최초의 식물과 동물이 되는 과정이며, 최초의 동물로부터 분화 발전하여 무수한 綱, 目, 科, 屬, 種을 이루는 것을 포괄한다. 최초 原生生物의 분화를 포괄하기 때문에 고로 圖題를 ‘化生萬物’로 삼았다. 또한 物種의 繁殖, 발전과 변화가 있기때문에 太極圖說중에 ‘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이라고 말하였다.
周敦頤의 이러한 한 폭의 宇宙萬物 생성도에 대하여 우리들은 어떠한 평가를 해야하는가? 논리적이며 유물론적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비논리적이며 유심적인가? 이에 대해 우리는 宋明理學硏究의 결론에 동의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周敦頤의 철학적 논리구조를 개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周敦頤의 철학적 논리구조는 無極에서 시작한다. ‘太極’의 ‘動靜’을 빌어 ‘陰陽’을 생성하며 ‘陽變陰合’으로 말미암아 五行을 낳고, 二氣五行의 妙合과 交感으로부터 男女, 萬物을 생성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윗 단계에서 아랫 단계로 유추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五行은 陰陽에 근본을 두고, 陰陽은 太極에 太極은 無極에 근본을 두고 있다.’라고 했는데, 이는 아랫 단계에서 윗 단계로 유추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공식은 다음과 같다. 無極-太極-陰陽-五行-男女(牝牡雌雄‧‧‧저자 )-萬物.
또는, 萬物-男女(牝牡雌雄‧‧‧저자)-五行-陰陽-太極-無極
이것들은 사실상 한개의 圓과 같은 것으로, 하나의 폐쇄된 체계이다. 그 宇宙生成論, 萬物化生論, 男女構成論은 모두 이런 圓의 진화과정인 것이다. 만일 이러한 원을 깨뜨리고 無極이란 덮개를 제거해 버린다면 물질의 성질을 가진 氣만이 운동 변화하고 만물을 생산하고 있을 뿐 이어서, 唯物主義的 요소가 있게 된다. 이 때문에 無極이 외계에 변화되어 나타날때 그 논리적 구조의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無極은 순수 추상적 관념으로서 肉身이 없는 理性과 같은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따라서 無極이 없는 원에 있어서 諸順序는 단지 똑 같은 것을 되풀이 할 뿐이서, 제 위치에 놓았다가, 마주 놓았다가, 결합등을 할 뿐이다. 여기서 그는 우선 한 개의 객관물질세계의 앞에 먼저 존재하는 無極이라는 실체를 둔 후에 그로부터 자연계 만물 및 인류를 구성하였다. 이것이 그 논리구조의 비밀인 것이다. 따라서 周敦頤 철학의 논리구조는 결코 唯物主義가 아닌 객관적인 唯心主義다.”
( ------ “周敦頤哲學的邏輯結枸, 是從‘無極’開始, 借助‘太極’的‘動靜’而生‘陰陽’, 由‘陽變陰合’而生‘五行’(‘五氣’), 再由‘二氣’(‘陰陽’), ‘五行’的妙合和交感, 而生‘男女’, ‘萬物’, 這可謂自上推而下來;‘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 這可爲茨下推而上來. 其公武爲: ‘無極’->‘太極’->‘陰陽’->‘五行’->‘男女’->(牝牡雌雄--引者) ->‘萬物’, 或‘萬物’->‘男女’(雌雄牝牡--引者) ->‘五行’->‘陰陽’->‘太極’->‘無極’. 它實質上是一個圓圈, 是一個封閉的體系. 它的宇宙生成論, 萬物化生論, 男女構成論, 都是在這個圓圈中演化着. 如果打破這個圓圈, 剝去‘無極’這個盖子, 那麽, 便是物質性的‘氣’在運動變化産生萬物, 則有着唯物主義的因素. 因此, 當‘無極’需變顯外界時, 便暴露了其邏緝結枸的混亂. ‘無極’作爲純粹抽象的觀念, 猶如無人身的理性, 只能自己把自己顚來倒去, 沒立安置, 對置, 結合等等層次, 在這里, 他首先沒置了一個在客觀物質世界之前, 之先就存在的‘無極’這個實體, 然后由它來枸造自然界萬物及人類. 這便是其邏緝結枸的秘密, 所以, 周敦頤哲學邏緝結枸幷非唯物主義, 而是客觀唯心主義.”)
宋明理學硏究에서의 상술한 周敦頤에 대한 비판을 보건데, 이는 無極을 순수 추상관념으로 삼는 것을 기본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無極은 순수추상적 관념인가? 이에 대해 본편의 유관한 章,節에서 상세한 토론을 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無極’을 朱熹가 말하는 ‘無形’이라는 것으로 인정하고, ‘無形’이 王夫之가 말하는 ‘非無形也,人之目力窮于微,遂見爲無也’라는 것으로 인정하며, ‘遂見爲無’라는 말이 恩格斯가 말하는 ‘物質在原始星雲之前經過了其他形式的無限序列’라는 것으로 인정한다면, 宋明理學硏究에서 서술된 내용은 오히려 周敦頤 철학의 논리구조상 합리성을 띠게되며, 자연히 유물관을 명백히 증명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합리적이며 유물론적이므로 국내(중국)외의 유명한 물리학자들은 일찌기 周敦頤의 太極圖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고, 이것이 중국역사상 최초의 유명한 한 폭의 宇宙萬物生成圖라고 말하곤 하였다. 또한 無極에서 陰陽, 陰陽에서 水火및 金木土까지의 五行이 生하며, 五行의 상호작용으로 物이 만들어 졌고, 物은 부단히 넘쳐서 지금의 세계에 이르렀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해석은 현대 우주학의 연구결과와 같아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자아내게한다.
7. 사람과 人類社會에 대하여
太極圖는 비록 ‘萬物化生’에서 끝나고 있지만 圖意는 아직 끝난게 아니다. 왜냐하면 周敦頤가 太極圖를 쓴 목적이 宇宙觀과 人生觀을 결합시키고 宇宙發生論에서 그의 人生論을 이끌어 내는데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圖는 끝나지만 太極圖說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本章에서는 人類道德의 起源說을 제시한다. ‘惟人也得其秀而最靈 形旣生矣 神發知矣 五性感動而 善惡分 萬事出矣’라고 하였는데 ‘萬物化生’過程중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어떻게 만물과 구별되어 직립할 수 있게 되었는가에 대해 周敦頤는 귀납하여 한 句로 설명하여 “惟人也 得其秀而最靈” 이라고 했다. 이는 문맥상 太極圖의 네 번째 원의 설명인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에 이어진다. 그 뜻은 二五之氣의 凝聚過程중 사람만이 眞‧精중의 빼어남을 얻었고 이로써 사람이 萬物중에 靈活한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朱熹는 해석하였다. “단지 陰陽五行之氣가 天地중에 섞여있는데 精微하고 빼어난 것이 사람이 되며 찌꺼기가 事物이 된다.”
(“只一個陰陽五行之氣, 滾在天地中, 精英者爲人, 渣滓者爲物.”)
이러한 해석은 周敦頤의 원뜻과 符合된다.
朱熹는 자기의 해석이 추상적이 될까봐 또 진일보하여 설명했다. “二氣五行이 交感하여 萬가지로 변하는 고로 사람과 사물의 낳음에 精微함과 粗粕함이 있다. 동일한 氣로 말하면 사람이나 사물이 모두 이러한 氣를 받아 生한다. 精微함과 粗粕함으로 말하면 사람은 그 氣의 바름과 통함을 얻었고 사물은 그 氣의 치우침과 막힘을 얻었다. 오직 사람이 그 바름을 얻은 고로 그 이치가 통하여 막힘이 없으며 사물은 그 치우침을 얻은 고로 그 이치가 막혀 아는바가 없게 된다.”
(“二氣五行, 交感萬變, 故人, 物之主, 有精粗之不同 自一氣而言, 則人, 物皆受是氣而生. 自精粗而言, 則人得其氣之正且通者, 物得其氣之偏且塞者. 惟人得其正, 故是理通而無所塞. 物得其偏, 故是理塞而無所知,”)
이렇게 동일한 氣로부터 精粗가 나뉘어지고 精粗로 부터 偏正이 나뉘어지며 偏正으로 인해 通塞이 있게 된다. 이 또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朱熹는 또 董仲舒의 理論을 빌어 설명하였다: “또한 사람의 머리가 둥글어 하늘을 본땄고, 다리는 네모나서 땅을 본따 평평하고 곧으며 端正한 것과 같다. 이로써 天地의 바른 기운을 받는데 이 때문에 道理를 알며 知識이 있다. 사물은 天地의 치우친 氣를 받는 고로 동물이 옆으로 다니며 草木의 머리가 아래로 향하고 꼬리는 위로 향한다. 事物중 간혹 知識을 가진 것이 있으나 한가지만 통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새가 孝를 아는 것, 수달이 제사를 아는 것, 개가 집을 지키는 것, 소가 능히 밭을 가는 것일 따름이다. 사람은 모르는 바가 없고, 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
(“且如人頭圓象天, 足方象地, 平直端正. 以其受天地之正氣, 所以識道理, 有知識. 物受天地之偏氣, 所以禽獸橫牲, 草木頭生向下, 尾反在上. 物之間有知者, 不過只通得一路, 如烏之知孝, 懶之知祭, 犬但能守御, 牛但能耕而已, 人則無不知, 無不能.”)
여기에서 또한 偏正 通塞으로부터 知能을 이끌어 내었다. 심지어 사람이 능히 평평하고 곧으며 端正할 수 있는 것과 짐승이 옆으로 자라며 초목이 머리가 아래로 꼬리가 위로 가는 것 모두를 氣의 精粗․偏正의 결과로 간주하였다.
萬物生成過程中 동‧식물의 나뉨에 대하여 先賢들은 일찌기 각종의 소박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周敦頤와 동시대의 사람 張載는 그 나름대로의 체계적 해석을 하였다. “동물은 모두 하늘에 근본을 두고 호흡으로서 聚散한다.; 식물은 모두 땅에 근본을 두고, 陰陽昇降으로써 聚散한다.”
(“動物本諸天, 以呼吸聚散之漸; 植物本諸地, 以陰陽昇降爲聚散之漸.)
王夫之는 이에 근거하여 설명하였다:
“동물은 모두 땅위로 나와서, 五行의 아직 형체를 이루지 못한 氣를 받아 生한다, 氣의 往來는 호흡에 있다. 어려서 부터 壯年에 이르기까지 호흡이 왕성하여 날로 聚하고; 壯年에서 老年에 이르면 호흡이 衰하여 날로 散한다. 形이 神으로써 이루게 된다. 고로 각각은 그 性을 지니고 있다. 식물은 땅에 근본을 두고, 五行의 이미 형체가 이루어진 氣를 받아 成長한다. 陽이 下降하고 陰이 上昇한 즉 聚하여 榮華롭고; 陽이 昇하고 陰이 降한 즉 散하여 말라 비틀어진다. 形으로써 氣를 받기 때문에 質이 있으나 性이 없다.”
(“動物皆出地上, 而受五行未成形之氣以生. 氣之往來在呼吸, 自稚至壯, 呼吸盛而日聚; 自壯至老, 呼吸衰而日散. 形以神而成. 故各含其性. 植物根于地, 理受五行已成形之氣以長. 陽降而陰升, 則聚而榮; 陽升而陰降, 則散而槁. 以形而受氣, 故但有質而無性.”)
(莊子正蒙注‧動物篇)
당연히 周敦頤와 朱熹는 人類의 起源에 중점을 두었고 張載와 王夫之는 동물과 식물 및 사람과 동물의 구별에 있어 중점을 둔것 같다. 그렇지만 모두 사람이 사람이 되는 이유와 사물이 사물이 되는 이유를 해석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착오를 하였다.
동물과 식물이 도대체 어떻게 나뉘어 졌는가는 우리들은 이미 第 5章中에서 恩格斯의 말을 빌어 설명 한 바 있다. 사람이 동물중 맨 나중에 나뉘어 졌다는 것에 대해, 恩格斯는 自然辨證法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몇 만년의 오랜 노력과 손과 다리가 分化를 거쳐 직립하여 걷게 되어서 최후로 명확히 나오게 되었다. 여기에서 사람과 원숭이가 구별이 되고, 여기에서 音節이 분명한 言語의 발전과 頭腦의 거대한 발전의 기초가 다져졌다. 이는 사람과 원숭이 사이의 차이를 더욱더 좁혀질 수 없게 하였다. 손의 전문화는 도구의 출현을 의미하는데, 도구는 사람만이 가지는 활동을 의미하고, 사람이 자연에 대한 개조를 한다는 반작용을 의미하고 생산을 의미한다. ”
(“經過多少萬年之久的努力, 手和脚的分化, 直立行步, 最後確定下來了, 于是人就和猿區別開來, 于是音節分明的語言的發展和頭腦的巨大發展的基礎就奠定了, 這就使得人和猿之間的鴻溝從此成爲不可逾超的了. 手的專門化意味着工具的出現, 而工具意味着人所特有的活動, 意味着人對自然界進行改造的反作用, 意味着生産.”)
(馬克思 恩格斯 選集 第 三卷 第 456-457項)
사람과 동물의 최후의 구분이 부여 받은 기의 精微함고 거침에 있지 않고 人類 자신의 노동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이 되는 이유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周敦頤는 ‘得其秀而最靈’의 간단한 명제를 제시했고 朱熹는 그 나름대로의 의견을 제시하였지만 진정 人類로 하여금 人類 자신을 인식하게 한 것은 馬克思主義의 學說이다. 여기에 이르러 宇宙起源과 萬物生成, 人類出現에 대하여 대체적이고 과학적인 이해를 하게 되었고 太極圖와 太極圖說이 어떻게 역사상에서 거대한 영향을 주었는가를 한층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있으면 人類社會가 있게 되는 것으로, 따라서 周敦頤는 ‘惟人也得其秀而最靈’의 뒤에 덧붙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形體가 이미 생기면 神이 發하여 알게 된다. 五性이 感하여 動하므로 善惡을 나누게 되고 萬事가 出한다.”
(“形旣生矣, 神發知矣, 五性感動而善惡分, 萬事出矣.”)
사람의 形體가 이미 갖추어지면 그의 知覺과 그의 思維가 이어 출현한다. 周敦頤는 언어의 人類思維에 대한 절대적 의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형체가 있으면 곧 思維가 있다고 생각했다. 思維가 이미 존재하면 자연히 필연적으로 認識上, 行爲上, 道德上의 각종 다양한 차이가 생기는데 여기에서 善惡이 나누어지고 萬事가 出하기 시작하며 人類社會가 하나의 지극히 복잡한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당연히 周敦頤의 이 말은 매우 포괄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 말이 간략하기 때문에 보는 견해에 따라 의견이 다른 자가 매우 많았다. 예를 들어 靈과 性의 문제에 관하여 各家들이 각기 자기나름대로의 이해를 하였다. 어떤 사람이 朱熹에게 ‘神靈이 거처하는 곳이 心입니까 ?, 아니면 性 입니까 ?(靈處只是心, 不是性. 性只是理)’라고 물었다.
朱熹가 回答하여 말하였다:
“神靈이 거처하는 곳은 단지 心이지 性이 아니다. 性은 단지 理이다.” (靈處只是心, 不是性. 性只是理)
‘心之官則思(心의 기능은 생각)’라는 것은 古人이 일관되게 ‘心’을 思維器官으로 오해한 것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보면 ‘得其秀而最靈’의 ‘靈’을 ‘心靈’으로 말하면 자연히 옳은 것이다. 그러나 朱熹는 血氣와 知覺이 있는 동물과 生氣가 있는 植物 및 形質뿐인 말라 시든 것을 구별할 때에 도리어 스스로 모순되게 말하였다:
“血氣와 知覺이 있는 것은 사람과 짐승이다; 血氣와 知覺이 없고 生氣만 있는 것은 草木이다; 生氣가 이미 끊어지고 血質과 臭味만 있는 것이 枯槁(말라 시든것)이다. 비록 그 나뉘는 차이가 있지만 理는 과연 같다. 그러나 그 나뉘는 차이로써 그 理가 여기에 있는 것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사람이 가장 영특하며 五常之性을 구비하고 있다.”
(“有血氣知覺者, 人獸是也; 無血氣者, 枯槁是也. 是雖其分之殊, 而其理則未嘗不同. 但以其分之殊, 則其理之在是者, 不能不異. 故人爲最靈, 而備有五常之性.”)
이렇듯 靈은 또한 性을 이루고, 또 사람과 동물을 구별하는 유일한 표지인 ‘五常의 性’을 이룬다. 사실 사람과 동물의 구별은 결코 단지 ‘五常之性’에 있지 않다. 사람은 자연을 인식할 수 있으나 짐승은 그러하지 못하다; 사람은 자연을 개조할 수 있으나 짐승은 불가능하다. 자연을 인식하는 것과 자연을 개조하는 것은 실천에 달려있는 것이다. 실천중에 있어 ‘心(腦)’의 思維를 떠날 수 없고 ‘性’과 무관하다.
周敦頤의 ‘惟人也得其秀而最靈’이란 관점에서 보면, ‘靈’은 사람이 선천적으로 소유하는 총명한 智慧를 가리키는 것 같고, 후천적으로 주입되는 三綱五常을 가르키는 것 같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뒤에 나오는 몇 구절을 해석할 방법이 없다. 당연히, ‘心’이 ‘性’을 統攝 包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朱熹의 학파가 아닌데, 張載가 말하기를 ‘性과 知覺을 合하면 心이란 이름이 있게 된다.(合性與知覺 有心之名)’고 했다.(正蒙‧太化篇) 그가 말한 ‘心’은 ‘性과 知覺’을 포괄 하는 것이다.
또 形과 神에 관한 문제를 들 수 있다. 이른바 形成而神發은 현대 사람의 발육과정에서 보면 合理的이다. 사람이 형체를 갖추면 신체의 끊임없는 성장에 따라 가정과 학교의 교육 및 사회의 영향을 받아서 자연히 思維를 하게된다. 그러나 人類의 이러한 최초의 思維能力은 또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인가? 朱熹는 완전히 陰陽二氣의 反影이라고 여겼다. 그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形旣生矣’에서 形體는 陰으로 된 것이다. ‘神發知矣’에서 神知는 陽으로 된 것이다. 무릇 陰은 주로 닫힌 것을 主하고, 대개 거두고 모아서 이루는 것은 陰이 하는 바다. 陽은 주로 여는 것을 主하고, 대개 펴고 떨쳐 일으키며 흩는 것은 陽이 하는 바이다.”
(“‘形旣生矣’, 形體, 陰之爲也. ‘神發知矣’, 神知, 陽之爲也. 盖陰主翕, 凡斂聚成就者, 陰之爲也. 陰主벽, 凡發揚揮散者, 皆陽爲之也.”)
당연히, 朱熹가 설명한 陰陽은 太極의 理를 포괄하는 것이다, 하지만 陰이 形體가 되고 陽이 神知가 된다는 理致를 생각해내기는 아주 어렵다. 張載가 말하길 ‘ 太虛가 맑게 된다. 맑은즉 막힘이 없고 막힘이 없으므로 神이다. 맑지 않으면 濁하게 된다. 濁하면 막히며 막히면 形이다.(太虛爲淸, 淸則無碍, 無碍故神; 反淸爲濁, 濁則碍, 碍則形.)’라고 했다.
王夫之가 이것에 주석을 달았다:
“그것이 사람에게 있어서, 太虛란 心속에 神이다. 濁하고 막히는 것은 耳目口體 각각의 形을 이룬다.”
(“其在于人,太虛者,心涵神也; 濯而碍者, 耳目口體備成其形也.”)
(모두 莊子正蒙注 太和篇을 보라)
이런 해석은 朱熹의 說에 비해 理를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상은 한가지로, 모두 氣의 관계를 원인으로 삼는다. 소위 ‘神知’는 太虛의 淸氣로 말미암은 것이고, 소위 ‘形體’는 濁氣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렇다면 形體가 이미 생긴 다음에, 사람의 思維能力(神)은 마침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恩格斯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손의 발전에 따라 頭腦는 차례로 발전해 왔다. 우선 個別 實際에 대한 효과와 이익이 되는 조건적 의식이 있게 되고, 후에 그를 둘러싸는 상황이 비교적 좋으면 이로 말미암아 이런 효과와 이익을 제약하고 있는 자연규범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된다.”
(“隨着手的發展, 頭腦也一步一步地發展起來, 首先産生了對個別實際效益的條件的意識, 而后來在處境較好的民族中間, 則由此産生了對制約着這些效益的自然規律的理解.”)
(馬克思恩格斯選集 第三卷 第457項)
이로써, 人類가 自然을 인식하고 자연을 개조하는데 의지하는 腦는 손의 발전에 따라 발전 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이 동물과 구별되는 집단을 구성했다는 점에 대하여 恩格斯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종의 능히 계획적인 생산과 분배를 할 수 있는 자각적 사회생산 조직이 있어야만 비로소 사회적인 측면에서 사람을 기타의 동물에서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마치 種의 관계의 측면에서 일찌기 사람을 기타의 동물에서 끌어 올렸던 것과 같다.”
(위와 같은 책 第458項)
(“只有一種能够有計劃地生産和分配的自覺的社會生産組織, 才能在社會關係方面把人從其余的動物中提升出來 正像一般生産曾經在物種關係方面把人從其余的動物中提升出來一樣.”)
이로써 위에서 제시한 ‘五常之性’은 인류가 동물과 구별되는 집단을 구성할때 비로소 작용을 나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五性感動’의 문제를 들수있다. 무엇을 ‘五性感動’이라고 하는가? 朱熹가 해석하기를 ‘五常의 性은 사물에 感하여 움직인다.(五常之性, 感物而動)’라고 하였다. 또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天地의 性은 理인데 陰陽이 행하는 곳에 이르면 곧 氣質의 性이 있게 된다. 여기에서 곧 어둡고 밝음, 두텁고 엷음의 다름이 있게 된다.”
(“天地之性, 理也. 再倒陰陽行處, 便有氣質之性, 于此便有昏明厚薄之殊.”)
黃宗炎은 일찌기 朱熹의 해석이 옳지 않다고 여겼고, 또 周敦頤의 설명 또한 옳지 않다고 여겼다. 그는 太極圖辨에서 반박하였다:
“性은 하나인데 天命과 氣質로 나누어 둘로 만든 것은 이미 臆測이다. 하물며 또 다섯으로 나눈 것에 있어서야! 感動은 事에 있는 것이지 性에 있지는 않다. 四端의 흐르고 맺힘은 物에 접촉해서야 이루어진 것이다. 즉, 어린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얼핏 보고서, 참지 못하는 것은 그 仁이 發함이요, 가서 구함은 그 義가 發함이요, 구하고서 마땅히 여김은 그 禮가 發함이요, 마땅히 구해야 함을 아는 것은 그 智가 發함이요, 몸과 마음이 相應하는 것은 그 信이 發함이다. 먼저 五性이 나뉜후에 感하고 動하는 理가 어찌 있겠는가?”
(“性, 一也, 分天命, 其質爲二, 已屬臆說, 況又析而爲五! 感動在事, 不在性, 四端流露, 觸物而成. 則以乍見孺子入井論之, 發爲不忍乃其仁, 往救乃其義, 救之而當乃其禮, 知其當救乃其智, 身心相應乃其信, 焉有先分五性然後感動之理?”) (宋元學案 卷十二)
朱熹는 걸핏하면 理와 性을 나누었는데, 黃宗炎이 이를 臆說이라고 배척하였지만 黃宗炎 또한 그르다. ‘五性感動’을 파악할 때 먼저 五性이 나뉜후 感動하는 것으로 이해한 점에 있어서 黃宗炎의 陳腐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王夫之는 일찌기 아주 훌륭한 논의를 하였다. 그의 설명이다.
“太虛와 氣가 잘 따르고 서로 적셔주는 實體를 잡으면, 이로써 五行의 빼어남이 사람이 道理를 굳게지키는 데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사람에게 性이 있는 까닭이다. .... 사람에게 性이 있는데, 心속에 있으며 物에 感하여서 通하게 된다. 象이 드러나면 數가 펼쳐지며, 이름이 서면 뜻이 일어나고, 그 까닭을 익히면 마음에서 그것을 깨우친다. 形, 神, 物 셋이 서로 만나면 깨달음이 생긴다.
(“秉太虛和氣健順相涵之實, 而五行之秀以成乎人之秉彛, 此人之所以有性也. ……人之有性, 函之于心而感物以通, 象著而數陳, 名立而義起, 習其故而心喩之. 形也, 神也, 物也, 三相遇而覺乃發.”)
(莊子正蒙注‧太和篇)
王夫之가 비록 ‘五性’을 ‘五行’으로 귀속시켰고, 아울러 사람이 道理를 굳게 지키는 性으로 이끌어 내었지만, 어쨌든 ‘感動’의 문제에 있어, 즉 認識이 만들어내는 조건상에서의 이 설명은 확실하다. 感動은 形(감각기관), 神(心 즉 大腦), 物(객관사물) 셋이 서로 만나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합리적이다. 朱熹가 말한 五常之性과 黃宗炎이 말한 仁義禮智信에 이르면, 이러한 것들은 感動의 한참 후에야 만들어진다. 왜냐하면 周敦頤의 논리를 살펴보면 五性感動이 있은 후에 善惡이 나뉘고, 善惡이 나뉜 후에 聖人이 道理를 세우며, 聖人이 道理를 세운후에 中正仁義가 있고, 朱熹가 말한 ‘五常之性’ 및 黃宗炎이 말한 仁儀禮智信이 있게 된다. 朱熹나 黃宗炎등은 모두 너무 조급하여 넘어서는 안되는 단계를 넘어서 周敦頤의 사상을 이해했다. 이상으로 周敦頤 사상의 깊은 모습을 또 한 번 드러냈다.
그런데 王夫之도 ‘五性’을 ‘五常之性’으로 해석한 적이 있었다. 예로써 思問錄,內篇에서의 그의 설명을 들 수 있다:
“‘五性感而善惡分’하므로 天下의 惡은 善이 되지 못하는 것이 없고, 天下의 惡은 善에서 비롯하지 않는 게 없다.”
(“‘五性感而善惡分’, 故天下之惡無不可善也, 天下之惡無不因乎善也.”)
이 속의 ‘五性’은 확실히 ‘五常之性’이고, 또 확실히 周敦頤의 원문을 인용했다. 이는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王夫之가 ‘五性感動’에 대하여 활용할때, ‘感’을 바깥의 느낌에서 비롯하여 속에 미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고, 또한 속의 생각에서 비롯하여 바깥에 미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善惡이란 비교되어 존재하는 것이므로 善이 없으면 소위 惡이란 것이 없게된다. 善의 기준은 仁義禮智信이고 또 ‘五常之性’이다. ‘五常’으로 사상을 재고 행위의 표준을 삼는 봉건사회에서, 사람은 머리속에 항상 생각이 ‘五常’에 미쳤고 이로써 무엇이 善이고 무엇이 惡인지를 구분할 수 있었다. 따라서 ‘五性이 感하고 善惡이 나뉜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王夫之는 또 이어서 ‘따라서 天下의 惡은 善이 되지 못하는 것이 없고 天下의 惡은 善에서 비롯하지 않는게 없다 ’고 말한 것이다.
王夫之의 이 말과 周敦頤의 “五性感動而善惡分”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8. 中正仁儀에 대하여
善惡이 이미 나뉘어진 후 萬事가 아울러 나오면, 修道의 가르침이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周敦頤는 윗 구절(善惡旣分 萬事幷出)에 이어 ‘聖人定之以中正仁儀而主靜, 立人極焉 ,故聖人與天地合其德, 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이라는 말을 덧붙었다.
이는 周敦頤 인생론의 대강이다. ‘中正仁儀’는 수양의 핵심내용이며 ‘主靜’은 최고의 원칙이다. ‘與天地合其德, 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이란 말은 이러한 ‘中正仁義’,‘主靜’등의 방법론적 지도하에 수양하여 성공하는 본보기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聖人定之 ....... 鬼神合其吉凶”) 은 총체적 강령이기 때문에 간략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一. 聖人에 대하여
사람은 氣로 말미암아 진화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면 聖人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여기서 두 개의 완전히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수양에 의해서 聖人에 이르는 것이며, 또 하나는 하늘이 내려서 聖人이 되는것이다.
전자는 尙書‧洪范의 ‘思를 睿라 하며 睿가 聖人을 만든다.(思曰睿,睿作聖)’에서 볼 수 있다. 程頤가 해석하기를 ‘思慮를 오래한 후에 슬기는 자연히 생기는 것이다.(思慮久後, 睿自然生)’라 하였고 또 ‘태어나서 처음부터 알면 진실로 학문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聖人은 모름지기 반드시 학문을 해야 한다.(生而知固不待學, 然聖人必須學)’고 했다. 따라서 그는 ‘사람은 모두 그로써 聖人에 이를 수 있고, 君子의 학문은 반드시 聖人에 이른 후에 그쳐야 한다. 聖人에 이르지 않고 끝나는 것은모두 스스로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人皆可以至聖人, 而君子學必至于聖人而後已. 不至于聖人後已者, 皆自棄也.)’이라 했다.
(모두宋元學案 卷十五에 나옴)
후자의 관점은 論語‧子罕篇에서 보이는데 다음과 같다.
“大宰가 子貢에게 묻기를: ‘孔子’는 聖人인가? 어떻게 모든 사람보다 뛰어난가? 子貢이 말하길 :진실로 하늘이 내린 聖人으로 모든 사람보다 뛰어난것입니다.( “大宰問于子貢曰: 夫子聖與? 何其多能也. 子貢曰: 固天縱之將聖, 又多能也.” )”
子貢이 말하길 공자가 ‘ 하늘이 내린 聖人 ’이라 했는데, 이는 약간의 과장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마치 그가 陳子禽가 제시한 질문에 답할 때 ‘공자에게 미칠수 없는 것은 하늘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갈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夫子之不可及也 猶天地不可階而升也)’라고 한 것과 똑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사상은 朱熹가 만물생성의 원리를 관련시켜 해석을 가함으로써 오히려 선험적 유심론이 되었다. 朱熹가 말하였다:
“氣의 정미로움과 영화로움이 사람이 되고, 찌꺼기가 사물이 되었다. 정미로움과 영화로움중에서 또 정미롭고 영화로운 것이 聖人이 되며 賢人이 된다. 정미로움과 영화로움중 찌꺼기와 같은 것이 愚人과 不肖人이 된다.”
(“(氣之) 精英者爲人, 渣滓者爲物. 精英之中又精英者爲聖爲賢, 精英之中渣滓者爲愚不肖.”)
상술한 朱熹의 논리에 비추어 보면, 이른바 聖, 賢, 愚, 不肖는 모두 稟氣의 정미로움과 거침, 맑음과 탁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방법론과 思想, 道德的 修養이라는 것들이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주희는 이러한 생각이 불완전한 것 같아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열몇 살때에 맹자에서 ‘聖人과 내가 똑같은 종류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읽었다. 聖人 역시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라 여겼고, 기쁨을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에 있어서는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某十數歲時, 讀孟子, 言聖人與我同類者. 喜不可言, 以爲聖人亦易做. 今方覺得難” )
여기서 말하는 어려움이라는 것은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그가 말하였다:
“하늘은 단지 허다한 사물과 사람 및 도리를 만든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이룰 수는 없다. 고로 반드시 聖人으로 하여금 修道立敎케 하여 백성을 교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소위 天地의 道에 알맞게 처리하여 일을 이룬다는 것은, 天地의 마땅함을 보좌하는 것이다. 대개 天地의 行함이 밑바탕까지 이르지 못하여 일을 할수 없고, 聖人이 天地를 위해 行한다.”
(“天只生得許多人物, 與許多道理, 然天却自做不得, 所以必得聖人爲之修道立敎, 以敎化百姓. 所謂裁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盖天地做不得底, 却須聖人爲他做.”)
그는 심지어 ‘옛날의 聖人과 賢人은 쉽게 이루어졌으나, 후세의 聖賢은 어렵게 이루어 진다. 옛날에는 단지 이렇게 자연에 순응하여 일을 해 나갔으나, 지금은 많은 수고로움만 있을 뿐이다.(“古時聖賢易做, 後世聖賢難做, 古時只是順那自然做將去, 而今大故費手)’라고까지 생각했다.
이로 보건대 그는 聖人과 賢人이 됨이 쉽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 것 같다. 왜냐하면, 朱熹의 관점에서 볼때 聖賢은 반드시 생활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佛家에서 ‘오늘 밤의 뼈져린 이야기에 갑자기 훌륭한 자질이 있는 자가 마땅히 문득 깨닫는다.(今夜痛說一頓, 有利根者當下便悟)’라고 하는 것과 비슷할 수 없기 때문이다.
周敦頤의 聖人觀은 자연히 ‘睿作聖’ 즉, 수양에 의해 聖人에 이른다는 것으로, 아울러 뚜렷한 목표와 主旨를 제시하였다. 그는 通書에서 이르길 ‘士希賢, 賢希聖, 聖希天(선비는 현인을 바라고, 현인은 성인을 바라며, 성인은 하늘을 바란다.’이라 했다. 여기에 聖人은 비단 하늘이 만드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가장 높고 가장 완성된 인격체도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聖人 또한 자기가 분발할 목표 즉, 希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무엇을 가르켜 希天이라 하는가?
여기에서, 중대한 토론을 해야하는 다른 하나의 문제, 즉‘主靜’의 문제가 나오게 된다.
二. 主靜에 대하여
‘主靜’은 周敦頤 인생론의 최고 원칙이며, 그의 우주관이 방법론에 있어서 반영된 것이다. 우리들은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周敦頤에 있어 우주본체의 최고 범주는 無極인데, 이는 朱熹가 ‘ 以其無方所, 無形狀 ’이라 해석한 無極이며, 또한 王夫之가 ‘道無適主, 化無定則, 不可名之爲極而實有太極, 亦以明乎無所謂無, 而人見爲無者皆有也’ 라고 한 無極이다.이러한 ‘無方所, 無形狀,道無適主, 化無定則’한 無極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이는 우주 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특정한 단계 혹은 현우주의 어떤 특정 단계에서, 그의 형태는 아마 상대적인 靜虛일 것임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론의 최고원칙 또한 마땅히 靜虛한 것이라야 하기 때문에 ‘主靜’함이 필요한 것이다. 朱熹의 논리를 살펴보면, ‘聖人全動靜之德, 而常本之于靜(聖人의 動靜의 德을 온전히 하지만 항상 靜에 根本을 둔다)’라고 했는데, 이는 ‘진실로 이처럼 마음이 적막하고 욕심이 없으며 고요하지 못하면, 사물의 변화와 온 천하의 움직임에 응대하지 못하기(苟非此心寂然無欲而靜, 則無以酬酢事物之變而一天下之動)’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생성발전 과정중에 운동으로 인해 출현하는 상대적 정지, 즉 靜虛의 상태가 있는 것인가? 恩格斯는 反杜林論중에서 杜林이 말한 ‘우주의 매개체 상태는 설령 현대적 의미로의 純粹靜態로 이해할 수 없다할지라도 또한 動態로 이해할 수도 없다.’라는 말이 틀린 명제라고 비판하였는데, 여기서 그의 착오가 ‘자기 자신이 동일시한 상태가 설령 靜態가 아니라 할지라도 또한 動態가 아니며, 설령 평형중에 있지 않다 할지라도 또한 운동중에 있지 않다’고 한 데에 있다는 것을 지적해 내었다.
(“自身等同的狀態旣不是情態的, 也不是動態的, 旣不處在平衡中, 也不處在運動中”)
(馬克思恩格斯選集 第3卷, 第177項) 그러나, 恩格斯는 또 동시에 말하였다.:
“평형은 운동과 불가분한 것이다. 천체 운동중에는 평형중의 운동과 운동중의 평형(서로 상대적)이 있다. 그러나 어떤 특수한 상대적 운동,즉 이러한 운동하고 있는 천체상에서 개별물체가 하는 어떠한 개별운동은, 모두 상대적 정지 즉 평형을 이루어 내려는 일종의 노력(혹은 경향)이 된다.”
( ---- “平衡是和運動分不開的. 在天體運動中是平衡中的運動和運動中的平衡 (相對的). 但是, 任何特殊相對的運動, 則這里在一個運動着的天體上的個別物體的任何個別運動, 都是爲了産生相對靜止則平衡的一種努力 (一作傾向)” )
(馬克思․恩格斯選集第 3卷, 第 563項) 恩格斯의 논술은, 모든 天體가 운동하고 있지만 또한 평형을 이루며, 심지어 ‘天體上의 개별물체가 하는 어떠한 개별운동은 모두 상대적 정지, 즉 평형을 이루어 내려는 일종의 노력이 된다.’(“天體上的個別物體的任何個別運動, 都是爲了産生相對靜止則平衡的一種努力”)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천체상의 개별물체의 개별운동은 전체상에 있어 일종의 상대적 평형상태를 형성한다. 이러한 현상을 현대과학자들은 우주전체의 균일성이라고 칭한다. 과학자들은 최근 10년동안 새로운 관측수단을 사용하여 더욱 정확하게, 우주의 大尺度가 균일한 것임을 확인했다. 과학자들이 쉽게 비유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우리들이 현미경하에서 모래흙을 연구하여 보면 우리들은 그것이 한알 한알 다른색과 다른형상 및 부동한 특징이 있는 모래알로 구성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육안으로 관찰해보면, 모종의 균일한 물질을 보게 된다. 우주중의 정황도 이와 유사하여, 그 중 별들은 앞에서 말한 모래알에 해당한다.] 이 비유는 우주의 小尺度 안에서의 비균일성과, 大尺度內에서의 균일성을 설명하고 있다. (참고 천문학과 철학 중국사회과학 출판사 1984년판)
우주의 대척도가 균일한 것이며 상대적으로 정지한 것이라 한다면 인생론의 방법론적 대척도 또한 마땅히 균일하고 상대적으로정지한 것이어야 한다.그러므로 朱熹는 ‘常本之于靜(항상 靜에 근본을 둔다.)’고 하였고, ‘非如此無以應對事物之變而一天下之動(이와 같지 않으면 사물의 변화와 온천하의 움직임에 응대할 수 없다.)’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상은 마땅히 周敦頤의 원뜻에 부합되는 것이며 또한 합리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朱熹의 사상은 결코 周敦頤의 사상과 같지는 않다. 周敦頤의 ‘主靜’은 인생론의 최고원칙이 우주의 가장 높고 심원한 靜虛상태와 마땅히 서로 일치해야 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朱熹는 太極의 一動一靜으로 부터, 靜의 기원을 추측하여 내놓았다. 그에 있어서 ‘主靜’은 마음속에 하나의 완전한 太極이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周敦頤의 이단락의 말을 해석함에 있어 강조하여 말하기를 ‘이는 聖人이 동과 정의 德을 온전하게 함(全動靜之德)에 있어 항상 靜에 근본을 두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此言聖人全動靜之德, 而常本之于靜也)’라고 하였다. ‘全動靜之德’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는 ‘動’과 ‘靜’의 양방면을 함께 포함하는 전체사상을 가져야 하고, 太極과 마찬가지로 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靜할 수 있으며, 마땅히 動할 때 動하고 靜할 때 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太極이 한 번은 동하고 한 번은 정하는데, 또 어떻게 ‘常本之于靜’하게 되는가? 왜냐하면 太極圖에서 ‘動而生陽, 靜而生陰’, ‘一動一靜, 互爲其根’이라 하였고, 動이 있음에 먼저 靜이 있어야 하고 陽이 있으려면 먼저 陰이 있어야 하므로, 따라서 朱熹는 이에 근거하여 ‘聖人 常本之于靜’을 유추에 내었으며, 또한 항상 靜에 근본을 두어야만 마땅히 사물의 변화와 天下의 움직임에 응대할 수 있다는 것을 유추해 내었다.
이렇듯 이치는 비록 비교적 세밀하게 말하였지만, 周敦頤가 우주생성순서로 생각한 太極을 理라 하여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周敦頤의 ‘主靜’의 근거를 왜곡하였다.
三, 中正仁儀에 관하여
숩관적인 해석에 따르면 中正仁儀는 곧 禮智仁儀이다. 왜 中正은 말하였는데 禮智는 말하지 않았는가 ? 周子全書에서는 朱熹의 語類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묻되 ‘ 周子는 禮智를 말하지 않고 中正을 말하였는데 왜 그렇습니까?’
朱子가로되 ‘ 禮智는 오히려 포괄적으로 말한 것이고, 中正은 즉 아주 적절하게 말한 것이다. 禮라 말하면 혹 적당하지 못한 면이 있을 수도 있다. 만약 中이라 말한즉 過不及이 없어서 禮가 아닌 禮가 없으니, 적절하며 꼭 알맞은 것이다. 智라고 말하면 혹 바름과 바르지 않음이 있으나, 만약 正이라고 말하면 옳고 그름이 확실하고 분명한 것으로 智의 실체이다.’ ”
( ---- “問: 周子不言禮智而言中正, 如何? 朱子曰: 禮智說得猶寬,中正則切而實矣. 且謂之禮, 尙或有不中節處. 若謂之中, 則無過不及, 無非禮之禮, 乃節文恰好處也. 謂之智, 或有正不正, 若爲之正, 則是非端的分明, 乃智之實也.”)
또 ‘ 中은 禮가 적절한 바를 얻은 것이요, 正은 智의 정당한 바이다. 中은 禮의 극치이며 正은 智의 실체이다.(“中是禮之得宜處, 正是智之正當處. 中者禮之極, 正者智之體.”)’라고 하였다. 朱熹의 해석에 따르면, 禮智라고 말하는 것은, 범위가 지극히 넓고 확실히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또한 禮에는 지극히 적당하지 않을 수 있는 문제점이 있는데, 다시 말하면 이는 ‘절도에 맞는가,맞지 않는가?’의 문제이다. 智에는 적당한가,적당하지 않는가의 문제가 있는데, 다시 말하면 이는 正義에 합당한가, 합당하지 못한가의 문제이다. 中이라고 말하면 禮의 지나침과 부족함의 양극단을 배제하게 되며, 正이라고 말하면 바르지도 적절하지도 않은 부적당한 방면을 부정하게 된다. 따라서 ‘中은 禮의 極이요 正은 智의 體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朱熹의 이러한 해석은 정확한 것일까 ?
설문에 ‘中, 內也, 從口곤, 下上通也’라 했다.
段玉裁가 注를 달아 말하였다.:
“內는 入이다. 入은 內이다. 그러한즉 中은 外와 구별되는 말이며, 偏과 구별되는 말이며, 또한 宜라는 말에 합당한 말이다. 下上通이라고 말한 것은 가운데가 곧으면서 끌어 올라가기도 하고 끌어내려오기도하여, 모두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 --- “內者入也, 入者內也. 然則中者別于外之辭也, 別于偏之辭也, 亦合宜之辭也. 云下上通者, 謂中直或引而上, 或引而下, 皆入其內也.”)
段玉裁의 주석에 따르면, ‘中’은 外와 구별된다는 일반적인 의미( 즉 內 )뿐만 아니라, 偏과 구별되고 宜에 합당하다는 특정한 속 뜻이 있는 것이다. “不偏之謂中(치우치지 않음을 中이라 한다.)”, 이것이 꼭 알맞은 최상의 표현이다.
무엇을 正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 說文 에 ‘ 從一, 一以止’라고 해석하였다. 段玉裁가 江沅의 說文音韻表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주석하였다.
“ 一이 그치게 한다는 뜻으로 되는 까닭은, 예를 들어 ‘乍’字가 止亡의 뜻,‘毋’字가 止奸의 뜻으로 되는데, 여기서 모두 ‘一’로써 ‘그치게 한다’라는 뜻으로 쓰인 것과 같다.”
‘如乍止亡, 如毋止奸’은 무엇을 말하는가? 段玉裁는 ‘乍’字 아래 注를 달아 말하기를, ‘ 毋字는 사람이 여자를 범하려 하면 그것을 그치게 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이를 毋라 말한다.乍字는 달아나면 그것을 그치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를 乍라 말한다.모두 의외의 일에 놀라 소리를 내어 사람을 핍박하는 말이다.(“毋者, 有人奸女而一止之, 其言曰母. 乍者, 有逃亡而一止之,其言曰乍. 皆咄咄逼人之語.”)’라고 하였다.
이에 근거 하여 유추해 보면, 사람의 행동이 지나치면 그것을 그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니, 그것을 正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개 운동장에서의 구령으로 ‘立正(제자리 서)’이라는 말을 하게된 최초의 기원이다.
이런 이유로 正은 바르지 못한 것을 금지하고, 마땅히 그쳐야 할 것을 그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에 근거한 즉 朱熹의 中,正의 해석이 모두 적절하고 합리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太極圖說로부터 시작하여, 仁儀中正을 말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졌다. 王夫之는 壯子正蒙注에서 ‘陰陽이 치우치지 않고, 순환이 그치지 않으며, 올바름을 지키고 감응하기를 기다린다. 物이 그 마땅함을 얻으면 항상 일정하여 바뀌지 않는 道가 되는데, 이는 仁儀中正의 이치가 따라 나오는 바이다.(“陰陽不偏, 循環不息, 守正以待感, 物得其宜, 爲經常不易之道, 此仁義中正之理所從出.”)’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곧 그 例이다.
그렇다면 周敦頤의 中正仁儀가 가리키는 것이 禮智仁儀라는 것이 맞는가? 그 대답 또한 긍정적이다.
첫째, 仁儀禮智는 지금까지 儒家道德의 최고원칙이다. 禮記에 ‘仁義禮智는 사람의 道가 모두 갖추어진 것이다.(仁義禮知(智), 人道具矣)”라고 하였다. 周敦頤도 聖人이 도덕의 표준을 세운다고 말하였으니, 자연 仁儀禮智를 가리키는 것이다.
둘째, 周敦頤는 通書‧誠几德 第 三 에서 德의 속 뜻를 해석하여 말하기를 ‘愛曰仁, 宜曰義, 理曰禮, 通曰智, 守曰信’이라 하였다. 그리고 道第六章에 더욱 명확하게 말하기를 ‘ 聖人之道는 仁義 中正일 뿐이다.(聖人之道, 仁儀中正而已矣)’라 하였으니, 모두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四. “與天地合其德, 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 에 관하여
이 말은 易傳‧文言의 ‘大人은 天地와 더불어 그 德에 合하고 日月과 더불어 그 밝음에 합하고 四時와 더불어 그 순서에 합하고 鬼神과 더불어 吉凶에 합한다.(“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라는 말에서 나온 것인데, 文言의 이 단락의 말은 어떤 의미이며 어떤 이유로 나왔는가? 孔潁達이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이것은 九五의 爻辭를 밝힌 것으로 大人의 德은 부합하지 않는 바가 없음을 論한 것이다. 天地와 더불어 그 德에 합한다는 것은 壯子가 말한 것처럼 覆載(하늘은 덮고 땅은 싣는다는 뜻으로 天地를 말함)를 말한다. 日月과 더불어 밝음에 合한다는 것은 照臨( 照臨:日月이 위에서 사방을 비춤)을 말한다. 四時와 더불어 그 순서에 合한다는 것은 봄, 여름으로써 상을 주고 가을, 겨울로써 형벌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鬼神과 더불어 吉凶에 合한다는 것은 선행에 복을주고, 음탕함에 재앙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 ---- “此明九五爻辭, 論大人之德無所不合. 與天地合其德者, 莊氏云: 爲覆載也. 與日月合其明者, 謂照臨也. 與四時合其序者, 若賞以春夏, 刑以秋冬之類也. 與鬼神合其吉凶者, 若福善禍淫也.”)
원래 이 문장은 周易‧乾卦에서의 九五爻辭에 대한 해석이다.乾卦‧九五에 ‘飛龍이 하늘에 있으면 이롭게도 大人이 나타난다.(飛龍在天,利見大人)’ 라고 하였다. 이는 周易에 있는 卦, 爻辭중에서 가장 吉하고 이로운 卦중의 하나로서 나중에는 ‘九五’로써 황제의 자리를 대신 칭하게 된다. 그래서 大人은 자연히 황제본인이 되었다. 王夫之가 또 말하였다.:
“九五는 하늘의 위치에 올라서, 中正을 강건히 함으로써 행동에 應하니, 故로 그 德의 성대함이 이와 같다 .”( “九五履天位, 而剛健中正以應于行, 故其德之盛如此.”)
( 周易內傳 券 一) 황제가 백성에게 은덕을 베품에 있어 하늘이 덮고 땅이 싣는것과 같은 심후함을 본받아야 하고, 천하의 백성을 다룸에 있어 日月과 똑같이 光明이 고루 비춤을 본받아야 하며, 政務를 처리함에 있어 春夏秋冬과 같이 조리정연하고 문란하지 않은 것을 본받아야 하며, 선한 자에게 상을 주고 악한 자를 벌함에 있어 鬼神과 같이 반드시 믿음이 있고 속임이 없음을 본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이것이 文言의 본뜻이다.
周敦頤는 단지 ‘ 大人’을 ‘聖人’으로 고쳤을 뿐, 나머지는 한 글자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한 글자의 차이가 도리어 본질적으로 구별되게 하는 데, ‘大人’은 권세로 이르게 된 바이고 ‘聖人’은 덕행을 수양하여 되는 바이다. 곧 대인을 聖人과 비교해서 말하면, 대인은 聖人이 될수 있으나 대인은 절대로 聖人과 동등하지는 않다. 聖人은 人生論上에서 사람에게 ‘主靜’하라고 가르킬뿐만 아니라 道德規範上에서도 백성을 위해 도덕의 표준을 세우니, 이는 다만 권세만 있는 ‘大人’이 달성하기 매우 어려운 바이다. 고로 周敦頤가 비록 易傳의 원문을 답습했지만, 속뜻에 있어서는 그것의 본래의 의미와 멀어져 있는 것이다.
이밖에, ‘定之以中正仁儀’와 ‘主靜’은 결코 기원이 같지 않은데, 周敦頤는 이것들을 ‘聖人’에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는 전례에 따르는 假托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상 이는 周敦頤가 ‘道家의 말을 끌어서 儒家에 사용한’ 하나의 예증이다.어떤 사람은 ‘儒家와 道家를 결합한’예증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中正仁儀’는 儒家의 핵심사상이고, ‘主靜’은 道家의 핵심사상이기 때문이다. 老子 道德經 三十七章에 ‘하고자 하지 않아서고요하면, 天下가 장차 스스로 안정된다.’(“不欲以靜, 天下將自定.”)고 쓰여있는데, ‘不欲以靜’이 어떻게 天下를 스스로 안정되게 할 수 있는가? 老子는 道德經 五十七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내가 내버려두면 백성이 스스로 변화한다.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은 스스로 바르게 된다.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백성은 스스로 부유해진다. 나에게 욕심이 없으면 백성은 스스로 소박해 진다.”
( ---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朴.”)
老子는 ‘슬기로움을 끊어버리고 지혜를 버려라.(絶聖棄智)’고 주장하는데, 仁儀禮智는 그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버려야할’ 대상이었다. 그의 사상 속에는 오직 無爲, 好靜, 無事, 無欲 함으로써, 백성으로 하여금 自化, 自正, 自富, 自朴하게 하는 바른길만이 있다. 만약 老子의 ‘主靜’이 일종의 無爲 無欲의 정치사상이라고 한다면, 壯子에서의 ‘主靜’은 더 발전하여 정치와 인생방법의 사상을 함께 말한 것이다. 壯子天道에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 ‘聖人’의 靜은, 단순히 조용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善하므로 마음이 고요한 것이다. 만물이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는 고로 고요하다. 물이 고요하면 밝아서, 수염이나 눈썹같은 미세한 것을 살필 수 있고, 수평을 잡는 기준이 되어 대장장이가 법을 취할 수 있다. 물이 고요하면 오히려 밝은데, 하물며 정신이라야! 聖人의 마음은 天地와 萬物의 거울에 비추어 고요하다. 무릇 비어있고 고요하며 깨끗하고 담박하여 조용히 간섭하지 않은것은 天地의 평탄함이요 道德의 지극함이다. 따라서 제왕과 聖人이 쉬는 것이다. 쉬면 비우고, 비우면 가득차게 되며, 가득차면 윤리가 있게 된다. 비우면 고요하고, 고요하면 움직이며, 움직이면 얻게 된다.고요하면 無爲하는데, 무위란, 일을맡으면 책임이 있는 것에 반해, 兪兪함을 말한다.(釋文廣雅:兪兪,喜也---옮긴이) 兪兪함은 우환이 있을 데가 없어서, 오래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무릇 비워 고요하고 깨끗하고 담박하며 조용히 無爲하는 것은 만물의 근본이다.”
( ----- “聖人之靜也, 非曰靜也, 善故靜也, 萬物無足以전뇨心者故靜也. 水靜則明, 燭須眉, 平中準, 大匠取法焉. 水靜猶明, 而況精神? 聖人之心, 靜乎天地之鑑也 , 萬物之鏡也. 夫虛靜恬淡, 寂寞無爲者, 天地之平, 而道德之至, 故帝王聖人休焉. 休則虛, 虛則實, 實則倫矣. 虛則靜, 靜則動, 動則得矣. 靜則無爲, 無爲也剛任事者責矣. 無爲則兪兪(釋文廣雅: 兪兪, 喜也 --- 引者), 兪兪者, 憂患不能處, 年壽長矣. 夫虛靜恬淡, 寂寞無爲者, 萬物之本也.”)
壯子의 윗 문단을 자세히 감상하면, 周敦頤의 ‘主靜’이란 사상이 여기에서 나왔다는 흔적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朱熹가 ‘진실로 이렇게 마음이 조용하고 욕심이 없이 고요하지 않으면, 사물의 변화와 온 천하의 움직임에 응대할 수 없다.(苟非如此心寂然無欲而靜,則無以酬酢事物之變而一天下之動)’라고 주석한 것 또한 여기에서 근거했음을 알 수 있다. 壯子와 周敦頤가 생존한 시기는 아주 멀지만, 唐 玄宗때 李隆基가 서문을 쓴 道藏‧上方大洞眞元妙經品를 보면, 周敦頤의 ‘定之以中正仁儀而主靜’이라는 사상의 직접적 기원이 莊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後序에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그 속을 조용히하고, 沖和之氣를 움직이며, 먼저 道德仁義에 나아간다. 禮를 갖추면 밝고, 밝으면 욕심이 적어진다. 욕심이 적어지면 어찌 爲,不爲가 있겠는가!”
(“其內靜也, 運冲和之氣, 先進道德仁義, 禮則明, 明則寡欲, 寡欲則奚爲以奚不爲!”)
여기에서 ‘主靜’의 사상에 대하여 설명한 것은 莊子의 세밀함에 미치치 못하나, ‘主靜과 道德仁儀’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나타내었으며, 周敦頤가 道家의 사상을 이용하여 儒家에 사용 하기전에, 儒家의 사상을 끌어와서 道家에 사용한 선례가 있음을 설명하였다. 儒家와 道家가 서로 싸우며 발전하는 역사의 긴 흐름속에서, 서로 보충하고 서로 영향을 주어, 마침내는 경계가 이렇듯 분명하지도 엄격하지도 않게 되었다.
9. 修之吉 誖之凶(수양하면 吉하고 도리에 어긋나면 凶하게 됨)에 관하여 .
仁儀禮智 四德(四端이라고도 함)은 이미 ‘聖人’이 정한 인간의 道德的 표준으로서 사람들이 성실히 지키고 위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周敦頤가 덧붙여 말하기를 ‘君子는 수양하여 吉하고, 소인은 도리에 어긋나므로 凶하게 된다(君子修之吉,小人誖之凶)’고 했다.
소위 ‘君子修之吉, 小人誖之凶’의 뜻은 다음을 말한다.
君子는 엄격히 자기를 언제 어디서든지 仁儀禮智와 서로 부합하도록 요구하고 이로써 일을 행함에 吉함이 많고, 소인은 자기를 방종되게 하여 언제 어디서든지 仁儀禮智와 서로 어긋나서 흉함을 많이 만난다. 여기에서의 君子와 소인이란 修와 패의 결과인 것이다.
바꿔 말하면, 수양할 수 있기 때문에 비로소 吉하고 비로소 君子가 완성되며,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비로소 凶하게 되어 小人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말은 ‘思曰睿, 睿作聖’의 사상과 부합하고, 또한 周敦頤의 ‘士希賢, 賢希聖, 聖希天’의 주된 취지에도 부합한다.
王夫之는 ‘良知良能(천부적 지능, 능력)’의 각도에서 해석하여 말하였다:
“수양하는자는 吉하다는 것은 본성의 천부적 능력을 수양한다는 것이고 , 거스르는 자는 凶하다는 것은, 본성의 불변의 진리를 거스린다는 것이다.”
( ---- “修之者吉, 修其性之良能也; 悖之者凶, 悖其性之定理也.”)
(周易內傳券五)
王夫之의 ‘修’와‘誖’는 비록 사람의 본성에 대한 발휘여부를 가리키는 것이지만,여전히 일종의 수양,또는 공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周敦頤의 말과 결국 같은 것이다. 한편 朱熹는 완전히 先驗論的 唯心主義에서 출발하여 周敦頤의 사상을 왜곡하였다. 그는 주석을 붙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聖人은 太極의 전체로, 動과 靜이 中正仁儀의 지극함에 알맞지 않은 것이 없는데 이는 대개 수양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이에 아직 이르지 못했으나 수양하는 것은 君子가 吉하게 되는 까닭이며, 이를 알지 못하고 거스르는 것은 小人이 凶하게 되는 까닭이다.”
( --- “聖人太極之全體, 一動一靜, 無適而非中正仁義之極, 盖不假修爲而自然也. 未至此而修之, 君子之所以吉也. 不知此而悖之, 小人之所以凶也.”)
朱熹는 사람을 3등급으로 나누어 파악했는데, 즉 聖人과 君子,그리고 小人이다. ‘聖人’은 하늘이 내린것으로 수양하지 않고도 스스로 도달할 수 있고, 따라서 道德의 표준(仁儀禮智)을 세울 수 있으며, ‘君子’는 비록 天性이 아직 이르지 않았지만 능히 수양하여 이에 이를 수 있으므로,따라서 吉하게 된다. ‘小人’은 근본적으로, 무엇을 仁儀禮智라 부르는 지도 몰라서 곳곳에서 도리에 어긋나서 凶하게 된다.
朱熹의 논리에 비추어보면, 사람의 道德은 수양에 의해 차등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이와 완전히 반대로 차등이 있은 후에 비로서 수양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朱熹는 결국 위대한 교육자였기 때문에, 덧붙여 ‘소인’을 위안하며 말하였다:
“수양함(修)과 道理에 어긋남(誖)은 역시 공경함과 방자함의 차이일 뿐이다. 공경하게 되면 욕심이 적어져 理가 밝게되고, 욕심을 적게 또 적게하여 하나도 없음에 이른즉, 고요하여 마음에 번거러움이 없고 움직임이 바르게 되어 聖人을 배울 수 있다.”
(“修之悖之, 亦在乎敬肆之間而已矣. 敬則欲寡而理明, 寡之于寡, 以之于無, 則靜虛動直, 而聖加學矣.”)
그러나, ‘小人’이 이러한 聖人이 되기 위한 공부는 고통스럽고 그 댓가가 크고, ‘공경함’을 요구할 뿐 아니라 ‘욕심을 적게함’이 필요하며 또한 ‘적게 또 적게 하여 욕심이 하나도 없게함에 이르러야함’이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굶어죽는 것은 작은 일이고, 절도를 잃는것은 큰 일이다.(餓死事小,失節事大)’등의 구체적 信條들은 仁義禮智라는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봉건사회의 무덤에 ‘小人’의 하찮은 목숨이 수도없이 유용되게 하였다.
한편 ‘君子’는 天性이 아직 이르지는 않았지만, 결국 ‘君子’는 조금만 수양하면 가능한 것이다.
‘聖人’에 있어서 ( 실제로 “大人”을 말하며 최고 총치자 및 집단을 포괄한다.) 그들은 ‘太極의 전체’이고, ‘수양을 거치지 않고도 저절로 이르게 되고’, 動과 靜이 알맞지 않은 바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仁儀禮智의 화신이며 상, 벌을 주는 주체이며, 따라서 능히 ‘立極(道德의 표준을 세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程朱理學이 직접적으로 봉건통치에 사용될 수 있는 실질적인 근거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周敦頤는 宋明理學의 시조이지만 宋明理學이 모두 周敦頤의 사상은 결코 아닌 것이다.
10. 天道, 地道, 人道에 대하여
周敦頤 太極圖說의 末尾에서 말하길 ‘故曰 立天地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又曰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大哉易也 斯其至矣!’라 했다.
위의 이러한 문장은 ‘大哉易也 斯其至矣’라는 周易에 대한 찬사의 말을 제외하고는 모두 易大傳을 인용하였다.
周易‧說卦에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옛날에 聖人이 易을 지었고 이로써 性命의 이치를 따랐다. 天之道를 세워 陰과陽이라 하며, 地之道를 세워 柔와 剛이라 하고, 人之道를 세워 仁과 義라 하였다. 三才를 겸하여 둘로 하였는데 따라서 易은 六劃으로 卦를 만들었다. 陰과 陽을 나누며 剛柔를 서로 번갈아 사용하였는데 따라서 易은 六位로써 형체를 이룬다.”
(“昔者聖人之作 『易』也, 將以順性命之理, 是以立天之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兼三材而兩之, 故『易』六畵而成卦. 分陰分陽, 迭用柔剛, 故『易』六位而成章.”)
이 원뜻은 周易의 卦가 어떻게 六爻가 있고 六位가 있는 것인가를 해석한 것이다. 周敦頤는 이를 인용하여 도리어 天地仁 셋의 본질적 특징을 설명했다. 즉 天이 天이되는 이유가 陰陽二氣에 있음에 있으며, 地가 地가 되는 이유가 剛柔二性이 있음에 있고, 仁이 仁이 되는 이유가 仁義二德이 있음에 있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陰陽二氣가 아니고는 天을 이룰 수 없고, 剛柔二性(山岳河流)이 아니면 地를 이룰 수 없고, 仁義二德이 아니고는 人이 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렇게 설명한 것은 모두 각자의 근본을 말한 것이다.
앞절에서 말한 ‘人極’에는 仁義禮智의 四端이 있는데, 여기서의 ‘人道’에는 어떻게 해서 仁義만 있고 禮智는 보이지 않는것일까? 朱熹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仁義禮智 네가지중 仁義는 대립되는 關鍵(서로대립되는 중요한것)이다. 대개 仁은 仁也라, 禮는 仁이 드러내는 것이다. 義는 義也라, 智는 義가 갈무리한 것이다. 이는 마치 春夏秋冬이 각기 四時지만 春夏는 陽에 속하고 秋冬은 陰에 속하는 것과 같다. 天地之道는 둘이 아니면 설 수 없다. 고로 端이 비록 넷이나 세우면 둘일 따름이다.”
(“仁義禮智四者之中, 仁義是個對立關鍵. 盖人, 仁也, 而禮則仁之著; 義, 義也, 而智則義之藏. 猶春夏秋冬, 各爲四時, 然春夏皆陽之屬也, 秋冬皆陰之屬也. 天地之道 不兩則不能立, 故端雖有四, 而立之者則兩耳.”)
朱熹의 해석에 근거하면 禮는 仁의 표현이고 따라서 禮는 仁에 포함되며, 智는 義가 갈무리한 것이고 따라서 智는 義에 포함되는 것이다. 또한 ‘天地之道不兩則不能立’은 복잡다단한 사물에 관계없이 간략히 말한 것으로 모두 대립되는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周易正義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立人之道에 두 종류의 性이 있는데 일컬어 愛惠之仁과 斷刮之義이다.” (“立人之道有二種之性, 曰愛惠之仁與斷刮之義也.”) 이렇듯 四端은 二德으로 귀납되는데 마치 陰陽과 剛柔가 상대되는 것과 같다.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은 周易‧系辭上에서 나오는데 原文은 다음과 같다.
“易은 天地를 모범으로 삼았다. 고로 능히 天地之道를 두루 포괄한다. 우러러 天文을 살피고 고개 숙여 地理를 살피면 그 밝음과 어둠의 까닭을 알 수 있다. 始함에 原하고 終함에 反하면 死生之說을 알 수 있다.”
(“易與天地準, 故能彌綸天地之道, 仰以觀于天文, 俯以察于地理, 是故知幽明之故; 原始反終, 死生之說.”)
全文은 易理의 심오함을 찬미하는 것이다. 周易正義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이란 易의 이치를 이용해서 事物의 初始를 原窮하고 事物의 終末을 반복해 본다. 始終吉凶이 모두 포괄되니 이런 연고로 死生之數를 알 수 있다”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者, 言用『易』理原窮事物之初始, 反復事物之終末, 始終吉凶, 皆悉包羅. 以此之故, 知死生之數也.”)
正義의 ‘原窮事物之初始 反復事物之終末’은 결코 ‘原始反終’과 비교해 볼 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여기에 朱熹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陽은 剛이며 仁이며 事物의 始이다. 陰은 柔로 義이며 事物의 終이다. 능히 起始를 原窮하여 生하는 까닭을 알 수 있으므로 終을 돌이켜 死하는 까닭을 안다. 이는 天地之間의 綱紀造化로 고금을 통해 행하여 온 말하지 않은 오묘함이다. 聖人이 易을 지었는데 그 뜻은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陽也, 剛也, 仁也, 物之始也. 陰也, 柔也, 義也, 物之終也. 能原其始而知所以生, 則反其終而知所以死矣. 此天地之間, 綱紀造化, 流行古今, 不言之妙. 聖人作易, 其大意皆不出此.”)
朱熹의 해석은 완전히 윗 문장(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을 억지로 맞춘것으로, 소위 陰陽, 剛柔, 仁儀는 실제상 위에서 설명한 天道, 地道, 人道이다.
그의 제자가 그의 공허한 가르침에 불만을 갖고 단도직입적으로 문제를 제시하였다:
“天地의 造化가 비록 生하고 生하여 다함이 없으나 모이면 반드시 흩어지고 生하면 반드시 死한다. 능히 始初을 原窮하여 모여서 生함을 알 수 있은즉 그 후에 반드시 흩어져 死함을 알 수 있다. 그 生이 氣化之自然에서 얻은 것으로 처음에 정신이 없었고 太虛之中에 임시 거처함을 능히 알 수 있다면 그 死가 氣가 없이 모두가 흩어지는 것으로 형상은 돌아오지 않고 막막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무름을 알게 된다.”
(“天地之化, 雖則生生不窮, 然而有聚必有散, 有生必有死, 能原始知其聚而生, 則必知其后必散而死. 能知其生也得于氣化之自然, 初無精神寄寓于太虛之中, 則知其死也, 無氣而俱散, 無復更有形象尙留于冥漠之內.”)
이러한 질문은 문제의 실질에 접근하고 있다. 소위 ‘原始反終 必知死生之說’은 다시 말하면, 처음에 氣가 聚함으로 말미암아 生하게 됨을 알고나면 최후에 氣가 散함으로 말미암아 死함을 반드시 알게 된다는 것이다. 확대해서 말하여 종류(種)의 연속으로 말하면 生生不息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구체적 생명으로 말하면 聚하면 반드시 散이 있고 生하면 반드시 死가 있는데 머무르게 하여도 머무를 수 없고 내쫒아도 떠나지 아니한다. 응당 이는 周敦頤 사상의 實質이다. 그리고 이는 옛부터 통달한 사람들이 가졌던 사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은 결코 세속을 버리는 소극적 無爲가 아니며 자연에서 알고 자연에 순응하며 마땅히 행해야 할 일과 섬겨야 할 일을 알아 행하고 섬기며, 吉凶禍福이 마음에 구애되지 않게 하고 死生聚散으로 말미암아 뜻이 구애받지 않게 하고 가슴을 터놓고 도량을 넓게하는 것이다.
따라서 王夫之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吉凶 得失 生死가 天地의 常然임을 알아 그 의심을 품을 필요가 없으니 가이 개운하다 할 것이다”
(“吉凶, 得失, 生死, 知爲天地之常然而無足用其懷疑, 易可以釋然矣.”) (思問錄‧內篇)
이상으로 太極圖說은 열단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표면적으로 보면 太極圖說 곳곳은 모두 易을 설명하는데 있고 거의 모두 易傳의 原文을 인용하였으며 ‘天地가 開闢하고 陰陽이 運行하고 寒暑가 서로 갈마들고 日月이 이에 나오고 萬物을 부양하고 새로나와 그치지 않고 생하여 서로 이어진다. (“天地開辟, 陰陽運行, 寒暑迭來, 日月更出, 孚蔭庶類, 亭毒群品, 新新不停, 生生相續”)’라는 易經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周易자체의 체계를 부수고, 周易의 사상자료와 개념범주를 이용하여 周敦頤는 자기의 宇宙觀과 人生觀을 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周敦頤는 理學의 始祖가 되었으며 儒學의 旗手가 되었다.
찾 아 봅 시 다
* 哥白尼 ( 코페르니쿠스 , Copernicus Nicolaus, 1473 - 1543)
* 孔顔樂處
“敦頤每令尋孔顔樂處所樂何事, 二程之學源流乎此矣” ( 周敦頤는 항상 그들에게 孔子와 顔子가 어떤일에 대해서 즐거워 하였나 ? 그 즐거워하는 찾도록 하였으니, 二程學問이 여기에서 근원하여 흘러나왔다. )
- 宋史道學列傳 -
* 孔穎達
唐의 大儒. 字는 仲達. 孔子의 32대손. 太宗의 명을 받아 五經正義를 지었다.
* 管子( ? - 645 )
중국춘추시대의 齊의 정치가. 法家의 祖. 이름은 夷吾, 字는 仲. 潁上출생. 친구 포 숙아의 권유로 桓公을 섬기고, 재상으로서 공을 도와 覇子가 되게 하였다. 포숙아와의 특별한 친교는 오래 계속되어, ‘ 管鮑之交 ’로서 후세에까지 전하여오고 있다.
* 內經
中國最初의 醫書. 素問, 靈樞의 兩經으로 나누어짐.
* 老子
周代의 철학자. 性은 李, 이름은 耳, 字는 伯陽, 諡號는 聃. 道家의 시조로서 자연법칙의 기초를 둔 도덕의 절대성을 역설하였다.
* 楞嚴經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능嚴經”의 약칭. 唐 般刺密帝가 번역한 佛經. 心性의 본체를 밝혔으며 10卷으로 되어 있다.
* 丹
巴蜀지방에서 나오는 일종의 광물로서 水銀과 硫黃이 화합한 것. 辰砂‧丹砂 라고도 한다. 도가에서 이것을 원료로하여 長生不死의 약을 만들려고 하였으므로 精煉한 長生不死의 영약의 뜻으로 쓰인다(外丹). 이 뜻이 전하여 養身하는 道家의 법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內丹).
* 段玉裁 ( 1735 - 1815 )
中國淸代의 학자. 乾隆時代의 대표적 고증학자. 字는 若膺, 號는 茂堂. 江蘇省 金壇출생. 대 동원의 제자. 小學, 文字의 學文에 특히 정통했다. 저서에 “古今尙書撰異 32卷” “春秋左氏經 12卷” “經韻樓文集” “詩經小學” “詩經韻譜” “周禮漢讀考” “儀禮漢讀考” 등이 있다.
* 道藏
佛敎에 관한 一切의 典籍
* 董仲舒 ( B.C 200 - 140 )
중국 前漢시대의 公羊學者. 信都國 廣川縣 출생. 景帝때 春秋博士가 되고 武帝때 儒敎에 의해 사상계를 통일할 것을 주장, 유교가 국교가 되는 기초를 만들었다. 또 학교교육의 실시, 과거제도의 제정을 주장하고 群國에 명하여 우수한 인물을 천거케 했는데 , 이 인재등용 방법은 정치에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저서에 “春秋繁露八十二篇”이 있다.
* 馬克思 ( 마르크스, 1818 - 1883 )
독일의 사회주의자. 국제노동자 운동 및 그 이론, 과학적 사회주의 ( 마르크스 주의 )의 창시자.
* 毛奇齡 ( 1623 - 1716 )
중국청대의 古典학자. 通稱은 西河선생, 初名은 신, 字는 大河‧齊于, 號는 秋晴‧晩晴. 肅山출생. 청년시절에 조국이 멸망하자 산곡에 은거하여 독서로 소일하고 강희제때 한림원의 초대로 “明史”편찬에 종사, 곧 퇴관하여 저술에 전념했다. 奇異함을 좋아하고, 異說을 제창, 自說論證을 위하여는 문헌의 捏造, 改竄도 불사하여 독자의 비난을 받았다. 그 정력적인 업적은 책 “西河合集”에 수록되어 있는 외에 “元劇西廂記”의 우수한 주석도 했다. 저서로는 “古今通韻” “仲氏易”이 있다.
* 墨子 ( B.C 480 - 390 )
中國魯나라의 철학자. 전국시대의 사상가. 이름은 翟. 제학파의 하나인 묵가의 시조라고도 하나 불명하다. 그의 사상은, 난세의 원인은 사랑이 결여된데서 유인되며 사람들이 평등하게 서로 사랑하고 타인에게 이롭게 하면 하늘의 의지에 일치하여 천하의 쟁란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이것이 그의 “兼愛說”이다.
* 白虎通
白虎通義의 略稱. 後漢의 班固가 칙명에 의해 여러 유학자를 白虎觀에 모아 五經의 異同을 각론한 것을 수록한 책. 4卷.
* 范仲俺
송나라 인종시대의 名相. 字는 希文. 벼슬이 參知正事에 이르렀음. 문집을 지었는데, 그 중 岳陽樓는 잘 알려졌음. 皇祐 4년에 죽음. 諡號는 文正이라고 하였다.
* 尙書
書經의 다른 이름. 上古에는 書라 하였으며 漢에 이르러서는 尙書라 하였고 宋代에는 書經이라 하였다. 五經 및 十二經의 하나.
* 西銘
東銘과 상대하여 말한것으로 張橫渠가 學文을 강의할때 동쪽창에는 “砭愚”, 서쪽창에는 “訂頑”이라고 격언을 써놓았다. 정이천이 이를 고쳐서 東銘, 西銘이라 하였다. 西銘은 萬物一體와 理一分殊의 뜻을 논했다.
* 聖胎
도교에서 생명력을 胎中에서 수양하는 일.
* 邵康節(1011 -1077)
중국 송대의 유학자. 이름은 雍, 字는 堯夫, 강절은 諡號이다. 李挺之에게 道家의 “圖書先天象數”의 學을 배워 신비적인 數理學說을 세우고, 이에 의해 우주관과 자연철학을 설파하였으며, 이를 기본으로 한 경륜을 주장하였다. 저서로 “皇極經世書”와 “擊壞集”, “邵子全集”이 있다.
* 呂洞賓
唐代의 京兆사람. 이름은 암, 字는 洞賓‧呂祖, 號는 純陽子‧回道人. 黃巢의난 때 집을 終南으로 옮겼으나 간곳은 알수 없다. 저서에 呂祖全書가 있다.
* 呂氏春秋
呂不韋가 賓客을 모아 편집한 史論書. 八覽, 六論, 十二經으로 분류하였고 儒家, 道家를 주로하고 兵家, 農家, 刑名家의 說과 春秋全國時代의 時事등을 논술하였다. 26卷 呂覽이라고도 한다.
* 열 대폭발이론
1956년 Gamow가 허블의 팽창설을 기초로 하여 우주의 모든 물질을 포함한 초원자가 폭발하여 지금까지 팽창한다는 설.
* 列子
周나라때 列禦寇가 지은책. 東晉 張湛의 注書가 있다. 8卷으로 되어 있다.
* 穩恒態 宇宙論 ( 연속창조설, 정상우주론 )
1948년 본디와 골드가 주장한 설로 우주는 항상 현재와 같은 모양으로 존재한다는 설이다. 우주가 팽창하여 우주의 밀도가 작아지면 이를 보충하기 위해 공간에서 새로운 물질 (수소)가 생겨나서 우주의 밀도는 항상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설.
* 王夫之
明末 淸初의 학자이며 사상가. 號는 船山. 民本主義 처지에서 쓴 정치론으로 유명하다.
* 王先謙(1842 - 1918)
淸의 학자. 字는 益吾, 벼슬은 國子監祭酒. 저서에 續皇淸經解,荀子集解, 後漢書集解등이 있다.
* 王弼(226 -249)
삼국시대의 魏의 학자. 저서에 老子註, 周易註등이 있다.
* 劉牧 ( ? - 1064 )
北宋태생. 주렴계보다 6살 연상. 저서로는 “易數鉤隱圖”가있는데 대체로 진전의 설을 계승한 것이다.
* 柳宗元( 773 - 819 )
당의 문인. 唐宋八大家의 한사람. 字는 子厚. 韓愈와 함께 古文의 부흥을 제창하였다. 저서에 “柳河東集”, “永州八記”, “龍城錄” 등이 있다.
* 陸九淵
宋나라 金谿사람. 九齡의 아우. 字는 子靜, 號는 象山, 諡號는 文安. 心卽理의 유심론을 주장하여 주자의 主知的 철학에 대치하였다. 저서에 ‘新語’가 있다.
* 恩格斯 ( 엥겔스, 1820 - 1895 )
독일의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와 더불어 과학적 사회주의 창시자.
* 子貢
孔子의 弟子. 性은 端木, 이름은 貝易, 字는 子貢, 또는 子贛.
* 張載 (1020 - 1077)
북송의 학자. 字는 子厚, 橫渠선생이라고 불리었다. 諡號는 明,뒤에 獻이라고 고쳤다. 그의 학문은 易을 宗으로 하고 中庸을 的으로 하고 禮를 體로 하여 孔孟의 學을 최고로 삼았으며 우주의 본체를 太虛라고 하였다. 저서에 東銘, 西銘, 易說등이 있다.
* 程明道
1032 -1085. 북송의 대학자. 洛陽사람. 字는 伯淳, 諡號는 純公,明道선생이라 불리었으며, 아우인 頤와 함께 周濂溪의 문인. 이들 형제를 二程이라고 부른다. 저서에 “識仁篇”,“定性書”등이 있다.
* 程伊川( 1033 - 1107)
북송의 대학자. 洛陽사람. 字는 正叔, 諡號는 正公. 顥(정명도)의 아우. 伊川伯을 지냈으므로 정이천선생이라고 불리었다. 주렴계의 제자. 처음으로 理氣의 철학을 제창하여 유교도덕에 철학적 기초를 부여하였다. 저서에 “易傳”, “經說”, “語錄”, “伊川文集” 등이 있다.
* 周敦頤 (1017년 -- 1073)
중국 북송의 유학자. 화남성의 사람. 字는 茂叔, 號는 濂溪, 그는 비록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벼슬의 길에 올랐으나, 벼슬이 오르지 않았음으로 오로지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학문에만 힘을 기울렸다. 그의 저서에 “太極圖說”, “通書” 등이 있는데, 이 책은 남송의 朱子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학문은 程 顥(程明道), 程 頤(程伊川) 형제가 이어 받았으며, 宋學의 시조가 되었다.
* 朱子(1130 - 1200)
중국 宋의 儒子. 이름은 熹 ,字는 元晦, 號는 晦庵. 經 史 哲에 있어서 程伊川을 이어 북송의 유학을 모아 대성했고, 그 학문을 주자학이라 하며, 儒敎의 주류인 理氣心性, 居敬窮理의 學을 제창하였다.
* 參同契 ( 周易 參同契 )
漢代 魏伯陽이 지은 책. 周易의 爻象을 빌어 쇠불리는 법을 논하였다. 3卷.
* 湯王
중국 고대 殷나라의 초대왕. 成湯이라고도 한다. 본명은 履, 또는 天乙. 夏의 桀 王이 포악하여 제후들이 덕망이 있는 탕을 섬기게 되자, 드디어 군사를 이끌고 하를 멸망시켜 걸왕을 南巢로 추방하였다. 天子의 位에 올라 殷나라를 세웠다. 전설적인 요소가 많다.
* 漢上易解
“漢上易集傳”이라고도 한다. 朱震이 漢나라 魏나라 이래로 周易을 풀이한 갖가지 설들을 잡다하게 기술한 것이다. 여기에서 “先天圖” 및 “太極圖”가 진단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하였다.
* 韓愈( 768 -824 )
中唐의 문호. 字는 退之. 昌黎선생으로 불리어 졌으며, 柳宗元과 함께 古文의 부흥에 힘썼다. 당송8대가의 한사람. 저서에 韓昌黎집 50권이 있다.
* 黃宗炎(1616 - 1686)
중국淸初의 經學者. 字는 晦木, 號는 자고, 浙江省 餘姚사람. 송나라 주렴계의 太極圖가 道家의 無極圖로 부터 나온것이라고 논하여 송대역학의 根底을 뒤 흔들었다. 저서로 憂患易學이 있다.
* 黃宗羲
淸初의 유학자. 字는 太沖, 號는 梨洲. 저서에 宋元學案, 明儒學案등이 있다.
* 淮南子
漢高祖의 孫子인 淮南王 劉安이 幕下의 학자들에게 命하여 각각 그 道를 講論시켜 만든것. 書名은 淮南鴻烈이었으나 후에 淮南子로 고쳤다. 사상은 道家의 경향이 짙다. 21卷.
참 고 서 적
* 中國哲學史 馮友蘭 螢雲出版社
* 中國哲學史 ( 宋明篇 ) 勞思光 探 求 堂
* 世界人名大辭典 李秉燾 玄 文 社
* 現代中韓辭典 高麗大學校 民族文化 硏究所
* 生物學槪論 Enger 探 求 堂
* 辭源
* 地球科學 東亞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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