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인간에게 여러 가지 질병도 주셨지만, 그와 더불어 질병을 물리칠 수 있는 약도 함께 주셨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약이란 광대한 대자연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생약 일 것이다.
식물과 동물, 광물 등에서 얻은 천연 약재와 이것들을 약간 가공하여 건조시킨 약재들을 통털어 생약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물성 생약과 광물성 생약은 극히 적은 편이고, 생약의 대부분은 식물성 생약이 차지하고 있자.
인간이 자연 속에서 생약을 채취하여, 이를 의료 목적에 사용한 것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이다. 역사상의 여러 기록과 발견물 등에 따르면, 고대의 슈메르인들은 B.C 2500년에 이미 약초에 대해 알고 있었고, 앗시리아인들은 약 260종의 식물성 생약과 약용식물의 재배법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또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우황, 돼지기름, 올리브 기름, 사프란, 석류껍질, 유황, 안식향, 꿀벌 등을 생약으로 사용했다고 하며, 고대의 그리스 사람들 역시 겨자, 계피, 코니움열매, 대황, 아라비아 고무, 미르라 등 수많은 생약들을 약재로 써왔다는 기록도 있다.
한편 중국에서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자연 속에서 얻은 생약이 약재로 쓰여 왔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인 후한시대에 도홍경에 의해 '신농본초경'이 쓰여졌는데, 여기에는 365종의 천연 약물이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후 수정과 증보를 거듭하여 명조에 이르러서 이시진이 '본초강목'을 완성함으로써 본초학은 거의 완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한방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각 약재, 즉 생약 하나하나마다 독특한 약성이 있고, 미,기,색 등 약재의 특성도 각기 다른 것으로 보아 왔다.
또 많이 먹어도 몸에 해롭지 않고 오히려 몸에 이로운 약재, 몸에 해롭지는 않으나 병이 치유되면 곧 사용을 중단해야 할 약재, 너무 많이 쓰면 오히려 몸에 해로운 약재, 특성이 있는 약재 등으로 분류하여 왔다.
그러나 한방에 있어서의 약은 어떠한 약재 하나만으로 조제하는 경우란 거의 없고, 여러 가지 약재들을 서로 배합하여 약을 만든다. 이것도 아무 약재나 서로 배합하는 것이 아니라 선현들의 오랜 경험과 연구 등에 따른 처방에 입각한 것이며, 약재마다 다름 약성과 특성, 독성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약성과 특성이 각기 다른 약재들이 서로 배합되어 어떠한 약효를 나타내고, 부작용과 독성이 있는 약재를 쓸 때는 어떠한 약재를 함께 써야만 부작용과 독성을 다스릴 수 있고, 또 여러 가지 약재를 배합하여 만든 약이 인간의 체질 및 체력과 어떠한 상관성이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 약으로 쓰고 있는 것이 한방약의 원리이다.
마황의 예를 들어보면, 마황과 행인을 배합하면 천해에 효과가 있고, 마황과 계지를 배합하면 발한작용을 하고, 마황과 백출을 배합하면 부종에 효과가 있으며, 마황과 석고를 배합해서 쓰면 지한 작용을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또한 한방약에서 감초가 널리 쓰이고 있는 것도 감초가 다를 약재의 독성을 제거하고 여러 약재의 작용을 조화시켜 약효를 상승시켜 주기 때문이다.
특히 한방약은 특이한 약효를 지닌 천연 약재를 그대로, 혹은 약간만 가공한 상태에서 쓰는 것이므로 자연이 처방하여 자연이 조제한 종합적인 약물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한방약은 일반 화학 의약품에 비해 부작용이 적다.
뿐만 아니라 한방약의 유효 성분의 인체 내에서 부담을 주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복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그 효과 또한 복합적이다.
또한 천연 약재는 특정한 질병치료에 유효한 성분말고도 여러 가지의 성분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약재 스스로의 부작용을 막아 주는 역할도 한다.
그 예로 대황이라는 약재는 설사를 일으키게 하는 성분(옥시안트라퀴논)과 약한 지사작용을 하는 성분(대황탄닌)이 함께 들어 있어, 변비에 좋은 완화제 역할을 하는 동시에 오래 복용해도 병적인 설사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만 보아도 천연 약재가 대자연의 고귀한 선물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삼국시대 때 중국으로부터 한방의술과 더불어 각종 천연약재의 약효, 특성 등에 대한 지식도 함께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방의술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좀더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특히 백제 성왕 31년에는 채약사 제도를 마련하여 천연 약재의 채약과 더불어 저장방법, 약성의 감별, 약미의 조절 등 약재 연구를 활발히 하였으며, 신라의 의인들도
약재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여 상당한 진전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신라산 약재가 중국에 소개되는 한편 신라의 인삼이 당나라에 선사품으로 보내졌다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고려 공민왕 16년(1367년)에는 안동약원이 설치되었고, 지방에도 여러 종류의 약국이 있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태조 이성계가 의약 정리에 힘썼으며, 세종 14년(1432년)에는 경기도의 내원에서 약초 재배가 행해졌다.
그후 약초 재배는 만간에도 널리 보급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나는 약재를 파악하고 그 특성을 연구하는 작업도 꾸준히 진행되었다.
우리나라는 비록 그 면적은 좁으나 위도상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서 식물의 종류는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물 가지수는 약 4,500여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약 500여 종이 약용식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인삼,은행잎,산수유,황기,복령,오배자,당귀,길경 등은 한국산이 최상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천연 약재, 즉 생약에 대한 연구가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이와 함께 신비에 싸여 있던 생약의 우수한 약효가 과학적으로 속속 입증되고 있다. 약효가 확실히 규명된 생약만 해도 상당수에 달한다.
이렇게 되자 생약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지고 있다. 종래 단순한 민간약 정도로 취급받던 생약이 중요한 의약품으로 부각되고 있으며, 예로부터 쓰여 오던 한방약이나
생약을 활용한 민간의 비방들이 재평가를 받으며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생약제제'임을 애써 강조하는 약광고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많은 제약회사들이 생약제품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우황청심환 같은 생약으로 만든 한방 약품들이 세계에 널리 수출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생약의 신비한 약효에 대한 과학적 규명이 아직은 잘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고, 따라서 여러 가지 생약들을 배합하여 만든 한방약의 신비한 약효 또한 과학적으로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에 싸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 한 예로 30여 가지의 생약재들로 만든 우황청심환이 강심,혈압강화,진정작용 등에 응급약으로서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는 것은 인정되면서도 그 원리는 아직 신비한 베일 속에 감춰져 있음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이런 것들도 한방적인 견해에서 볼 때 충분히 극거가 있는 것이며, 한약방은 이러한 한방적 견해에 입각해서 조제하고 있다.
아무튼 그 신비한 약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속에 가려져 있는 생약의 정체를 명확히 파악하여, 이를 질병퇴치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생약 연구가 좀더 활발히 진행되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대자연이 인간에게 준 고귀한 선물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길이며, 또 그렇게 되었을 때 인간은 그 무서운 질병에서 구원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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