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게바라, 손문, 코난 도일과 의사의 외도
‘금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 이건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쿠바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체 게바라에 대해 내린 평가다. 쿠바에는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사진 초상화 판화 동상에서 티셔츠에 이르기까지 많다.
체 게바라는 1928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에서 스페인-아일랜드계 중류 가정의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다. ‘체’는 기쁨 슬픔 놀라움 등을 나타내는 감탄사로, 어원은 ‘나의’라는 뜻을 가진 인디언 토속어다. 체 게바라는 5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의과대학에서 알레르기에 관한 연구로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평소 여행광이던 그는 공부를 끝내고 중남미 대륙을 탐사하는 본격적인 여행길에서 민중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54년 민중을 위한 개혁을 단행한 콰테말라의 아르벤스 정권이 미국의 사주와 지원을 받은 용병대의 쿠데타로 무너지는 걸 목격하면서 제국주의의 횡포에 분노했고, 그 분노를 못 이겨 아르벤스의 편에서 싸움에 뛰어들었다. 그것에 실패하여 멕시코로 망명하였고, 체 게바라의 혁혁한 전공에 힘입어 게릴라전을 편지 2년여만인 59년 1월 1일, 드디어 쿠바는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장악했다. 체 게바라는 혁명정부에서 상공부 장관 겸 중앙은행 총재직을 맡았다. 체 게바라는 콩고를 거쳐서 볼리비아에서 혁명에 별 성과도 없이 채 1년도 버티지 못한 채 포로로 잡혀, 67년 10월 9일에 총살당했다
체 게바라가 남긴 책들은 당시 급진 성향의 대학생들 사이에 널리 읽히는 필독서였다. <게릴라 전쟁>(1961), <쿠바혁명전쟁의 회상>(1963), <사회주의와 인간>(1966), <볼리비아>(1969) 등이 유명하다. 체 게바라는 혁명의 기본적인 원동력이 젊은이라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에 대학생들로부터 더욱 큰 인기를 누렸는지도 모르겠다.
체게바라는 시가를 문채로 콧수염을 기르고 혁명가의 모습으로 티셔츠 등이 잘 팔리면서 유명하다. 최근 얼짱거지도 그의 얼굴을 닮았다고 아직까지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공산주의 좌익운동의 문제점을 발견한다. 그가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이었건 간에 현재 쿠바는 물질적으로 궁핍하며, 카스트로의 독재에 미국에 경제봉쇄를 당해서 어렵다. 음모론자인 내 시각으로는 미국은 쿠바라는 코 밑에 공산주의의 적을 육성하여 그 위협을 과장하면서 이용해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아는 의사들만 해도 삼민주의의 손문과 아큐정전을 쓴 노신 모두 의사였지만 혁명가와 작가가 되었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쓴 코난 도일도 의사였는데 워낙 추리소설 반응이 좋아서 환자를 보기 위해서 홈즈를 소설에서 죽이기 까지 하였다. 아톰을 만든 데스까 오사무도 1928년 11월 3일 오사카부 도요나카에서 태어나서 6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유명한 만화를 그렸지만 원래는 의사였다.
필자는 한의사로써 거창한 혁명이나 구호를 외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체 게바라의 이미지와 카스트로의 포장술 마케팅 전략등은 배우고 싶다. 또한 필자는 한의원에서 업무 이외에 관상공부나 번역, 소설가로써의 글 작업 등을 하고 싶다. 필자는 진료실이란 감옥안에서 탈출과 혁명을 꿈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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