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조각가 로댕의 위대성과 인체의 미학

조각가 로댕의 위대성과 인체의 미학





필자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서 로댕이 왜 훌륭한 인물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 공부를 해보니 서양조각사의 판도를 바꾼 인물이었다. 조각가는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처럼 자기 조각상을 실제처럼 조각하여 사랑에 빠진 인물일 것이다. 아니면 성경의 신처럼 아담을 흙으로 빚는 것과 같은 숭고한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조각을 하는 것은 신성모독의 행위로 표현되는 듯했고 그전의 조각은 거의 신화의 신이나 인물을 이상적인 황금비율로 조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조각가 클레젱제의 ‘뱀에 물린 여인’. 뱀에 물려 고통스럽게 쓰러진 여인의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이면서도 관능적으로 표현된 작품이 뜨거운 이슈의 이유가 고상한 이념(이데아)은 온데간데없고 육체적 열정만을 자극할 뿐이다.’ 이 논란의 핵심은 놀랍게도 이 조각이 너무나 ‘사실적’이라는 데 있었다. 몸을 사실적으로 조각한 게 도대체 무슨 문제란 말인가? 서양 미학과 서양 철학은 항상 눈에 보이는 사물보다 그 이면에 존재하는 궁극적인 실재, 다시 말해 이데아를 우위에 두었다. 그래서 조각상이 실물과 너무 비슷하면 그 가치는 오히려 평가절하되었던 것이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년 11월 12일 - 1917년 11월 17일)은 프랑스의 조각가이다. 근대 조각의 시조이며, 근대 조각 사상 가장 위대한 조각가이다. 프랑스 파리 중산층 가정에서 그의 어머니 메리 체퍼와 경찰청 사무원이었던 그의 아버지 진 밥티스트 로댕 사이에서 출생했다. 르코크 드 브아도드랑은 그의 학생들이 그들이 생각하고 관찰한 것을 그리는 것이 그들의 인격이 발전할 수 있게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사상은 로댕의 조각품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57년 로댕은 프티 에콜을 떠나게 된다. 그 후에는 생활비를 위하여 조각가의 조수 등을 지냈는데, 이는 오히려 관학의 형식주의적 타락을 막아주는 결과가 되었다. 20여년간을 장식품들과 건축장식들을 제출하는 일을 하는 장인으로 살았다.




일그러진 사나이를 출품해서 낙선하자 로댕은 결국 조각을 그만두고 로마 가톨릭 교회 신앙을 가졌는데, 로마 가톨릭 교회 사제인 피터 주리안 데이말드(Peter Julian Eymard)신부는 로댕이 다시 조각을 하도록 격려하였다. 데이말드 신부가 보기에는 로댕은 교회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조각을 하는 게 맞는 사람이었다. 로댕은 장식품들을 조각하는 일을 다시 시작했으며, 동물 조각가였던 안토니 루이즈 베리(Antoine-Louis Barye)의 수업에 참여했다. 동물들이 움직일 때의 정교한 근육조직들을 훌륭히 표현했던 안토니 루이즈 베리의 작품들은 로댕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875년 이탈리아 여행은 자연으로부터의 새로운 출발로서 그가 <청동 시대>를 제작하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다.1875년부터 이탈리아에서 체류했고 1877년에 프랑스로 귀국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칼레의 시민》, 《지옥문》, 《생각하는 사람》 등이 있다. 1881~1882년 자신의 제자이자 동업작가인 카미유 클로델(작가 콜로델의 누이동생)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클로델은 16년 뒤 그와의 결별 후 정신이상자가 되었지만, 로댕은 <칼레의 시민들>, <빅토르 위고>, <발자크> 같은 중요한 여러 작품의 주문을 받는다. 이 중 마지막 두 작품은 거절을 당한다. 1900년에 로댕은 조각가로서 대성공을 거둔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1905년 그의 비서로 활동했으며 1917년에 세상을 떠났다.




로댕은 ‘청동시대’의 정교한 인체 묘사로 인체에서 직접 주물을 뜬 것이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다른 작품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도시를 구한 영웅의 기념비였던 ‘깔레의 시민’은 그 어둡고 고통스러운 모습 때문에 깔레시 위원회로부터 극렬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또 발자크를 위한 기념비는 건립되지 못했다. 영웅적인 정감을 고취하는 구성과 과장된 표정이 들어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보면 가장 위대한 조각 작품은 인간의 몸일 것이다. 그래서 화가들은 인간의 몸을 그렸고 조각가들도 나신을 만든 작품이 많을 것이다. 더욱이 여성의 몸중에 가슴과 엉덩이 허벅지에서 종아리까지의 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신이 내린 완벽한 몸매의 그녀라고 해도 유방과 뒤태에 만약 튼살이나 흉터가 있다면 깨진 조각이나 얼룩이 뭍은 그림처럼 작품성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튼살이나 흉터인 안 좋은 것부터 먼저 치료를 한 이후에 완벽한 몸매를 가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필자는 예술가가 석고 조각상을 깍는 마음으로 튼살과 흉터를 치료한다. 조각가가 끌을 내리쳐 완벽한 작품을 만들듯이 필자도 침만으로 정교하게 시술 작업을 한다. 물론 필자는 예술 행위라기 보다도 의료행위를 통해서 예술적인 몸을 회복하는 일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인체를 작은 우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우주의 예술적 가치들이 몸에서 발현한다고 생각하며 그 몸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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