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잔다르크의 바지와 치마를 못 입는 튼살과 흉터 여성

잔다르크의 바지와 치마를 못 입는 튼살과 흉터 여성





필자가 즐겨보는 MBC 오전의 서프라이즈란 프로그램 안에는 ‘익스트림 서프라이즈’가 있다. 1412년, 프랑스의 한 소작농이 딸로 태어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는 1429년 어느날,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은 잔 다르크는 샤를 왕세자를 찾아가 군대를 내어줄 것을 요청해서 매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1430년 5월,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고 프랑스군은 수적으로 열세, 영국군에게 패배한 뒤 잔 다르크는 포로로 영군군에 잡히고 말았다. 영국의 원수가 된 잔 다르크는 결국 종신형에 처했고 채 1년도 되지 않아 '마녀'라는 죄목으로 그녀는 1431년 화형대 위에 서게 됐다. 영국 종교 재판정에서 그녀에게 내린 죄목은 '풍기문란 죄'였다. 실제로 잔 다르크는 남장을 하고 참전했으며 체포 당시 의상도 주홍색 반바지에 회색 재킷이었다. 15세기에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은 '신성 모독행위'로 간주됐다. 당시만 해도 종교와 성경에 의해 인간이 엄격하게 지배당했으며 성경에서는 여자가 바지 입는 행위를 '신성모독'이라고 표현했다. 영국 종교 재판정에서는 잔 다르크에게 치마를 입으라고 회유했으나 잔 다르크는 재판정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다. 그녀가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바지를 고집한 이유는 순결을 지키고 싶어서였고 그녀는 '순결한 처녀'라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조사해보니 잔다르크는 국가주의경향의 사람으로, 프랑스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그녀는 왕세자 찰스의 계승을 지지하는 인물이었으므로 당시 프랑스의 왕 계승에 관련된 정치적 대립에서의 희생양이었다. 또 그녀는 신성모독죄와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었다는 두 이유로 화형에 쳐한다는 기록이 있다.





여성들이 언제부터 바지를 입기 시작했는지 알수 없지만 여성들은 바지를 입는 것이 활동에는 편할 수 있지만 한의학적으로는 좋지 않다. 왜냐하면 여성은 음의 기운이 지배하며 같은 음인 땅의 기운을 받아야만 건강해진다. 땅의 기운을 받으려면 여성은 허리가 잘록하고 밑이 넓은 치마가 어울린다. 또 여성은 음이라 습하고 차갑기 때문에 여성의 음부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예전에는 아궁이에 불을 때가면서 살았는데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부인병이 적었다. 지금은 그러기 어렵기 때문에 여성은 아랫배에 열기인 쑥뜸을 떠야 한다. 같은 이유로 고대에서는 남성은 바지를 입었고 대님을 매서 하늘기운이 새지 않게 했던 것이다. 물론 현대에는 유니섹스 시대이니 남성과 여성의 옷차림이 비슷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마더 쉽튼 (1488∼1561)이란 여성의 다음과 같은 섬뜩한 예언이 있다.





  “여자들이 사내 같은 옷을 입고 바지를 입고 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릴 때 …그림이 살아있는 듯 자유롭게 움직일 때[TV] 배가 물고기처럼 바다 밑을 헤엄칠 때[잠수함] 사내들이 새를 앞질러 하늘을 날아오를 때[비행기] 세계의 절반은 피로 흠뻑 젖어 죽게 되리라.”





물론 필자는 이런 종말론적 예언을 믿지 않지만 중세시대만 해도 여성이 바지 입는 것은 대단히 쇼킹했을 것이란 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현대에도 조선시대나 빅토리아 시대도 아닌데 치마를 못입고 바지만 입는 여성이 있다. 이 사람들도 잔다르크만큼 잔혹한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치마란 여성이 누릴수 있는 권리이며 특히 짧은치마와 긴 다리로 주위 시선을 받는 것은 여성이라면 한번쯤 꿈꿔봤을 것이다. 바로 튼살과 화상 및 사고 흉터가 있는 분들이다. 튼살과 화상흉터가 있으면 우선 우울증을 걸리게 되며 대인관계가 장애가 생기며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이미지한의원에서 침만으로 흉터나 튼살 치료가 가능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무 자기 패션을 고집하여 죽은 잔다르크처럼 되지 말자. 왜냐하면 현대는 자기 패선은 자기 표현이므로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특히 20대 꽃다운 여성은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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