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이야기 맡겨놓은 돈
스페인 남자 한 사람이 메카로 가던 도중 이집트에 들렀다. 그는 인적이 드문
마을이나 사막을 지나다가 도둑을 맞거나 위험한 일이 생길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여행 경비에 필요한 돈만 남겨놓고는 믿을 만한 이집트인에게 돈을 맡겨 놓기로
작정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이집트인이 정직하고 의리 있고 깨끗한 성격을 가졌다고
했다. 스페인 남자는 그 말을 믿고 은화 이십 마르코스를 그에게 맡기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리고는 메카에서 돌아오자마자 그 이집트 인을 찾아가 자기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집트인이 음흉한 마음을 먹고는, 이런 사람은
본 적도 없다면서 자기한테 돈을 맡기지 않았다며 잡아떼는 것이었다. 스페인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고민하다가 동료들에게 돌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 남자가 얼마나 정직하고 덕이 많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인데
그런 짓을 하겠냐면서 오히려 그가 하는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집트인을 다시 찾아가 더욱 겸손하고 정중한 태도로 사정을 했다.
그렇게 하면 자기 돈을 돌려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 예를 갖췄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기꾼은 그가 사정을 하면 할수록, 자기가 돈을 맡아두었다는 사실을 더 완강히
부인했다. 오히려 한술 더 떠 스페인 남자가 자기 명예를 더럽힌다며 그를
고소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스페인 남자는 기가 푹 죽어 돌아가다가 어느 노파를 만나게 되었다. 수녀복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있던 노파는 외국인이 정신이 나가 헛소리를 하면서 걸어가는
것을 보고는 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스페인 남자는 노파에게, 사람
좋기로 소문난 그 이집트인과 자신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설명했다.
마음씨 좋은 노파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하늘이 도와줄 테니 희망을 가지라며
그를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자기도 사실을 밝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노파는 우선 남자에게 믿을 수 있는 고향 친구를 데려오도록 하고는 그에게
자기의 묘안을 일러주었다.
"당신은 상자 네 개를 고급스럽게 색칠한 다음에 안은 조약돌들로 채우고 위는
은과 비단으로 덮어서, 당신 돈을 가로채려 했던 그 사람 집으로 가져가도록 하세요.
당신 친구가 그 이집트인에게 보물로 가득 찬 상자를 맡기려고 한다는 것을 믿게
해야 해요. 그리고는 사람들이 상자를 다 운반했을 때 당신이 그 집에 나타나 돈을
요구하는 거예요. 하느님이 도우시면 당신은 돈을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스페인 남자는 노파가 시킨 대로 일을 준비했다. 노파는 그의 친구와 함께
이집트인의 집으로 상자를 옮겨놓고 그 사기꾼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 여기 이 사람들이 금은 보화를 잔뜩 가지고 온 스페인 상인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메카로 가려던 차에, 어르신이 정직하고 의리 있으며 성실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네가 돌아올 때까지 상자 네 개를 어르신께 맡기려고 합니다. 이
보물들을 가지고 사막을 통과하다가 도둑맞을까봐 두려운 거지요. 어르신께서 부디
이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건 우리들만 아는 비밀로
했으면 합니다. 이 사람들이 자기네가 그렇게 엄청난 재물을 가지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는 걸 바라지 않으니까요."
그들이 상자를 방에 집어넣고 있는데 갑자기 먼저 돈을 맡겼던 스페인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노파가 시킨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자기 돈을
돌려달라고 공손히 요구했다. 돈을 맡긴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었던 이집트인은
그가 보물상자를 맡기러 온 사람들에게 자기 얘기를 나쁘게 하거나, 소동을
피울까봐 덜컥 겁이 나 이렇게 말했다.
"아이구, 나한테 은을 맡겨놓고 가서는 이제야 오시면 어떡합니까! 당신이 너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하던 차였습니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스페인 남자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그는 스페인 남자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보물 상자를 맡기러 온 사람들이 자기를 믿지 못해
보석을 맡기지 않고 그냥 돌아갈까봐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노파는 그 불쌍한
남자가 돈을 되찾는 걸 보고는 안심한 기색으로 사기꾼에게 보물 상자들을 맡겼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노파는 이렇게 재치와 속임수로 스페인 남자가
은을 되찾도록 도와주었다.
* 주위와 평판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늘 기대에 어긋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ff
세번째 이야기 시인과 꼽추
어느날 현자가 아들에게 말했다.
"일을 조금 그르쳤다고 해서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라. 잘못된 줄 알면 빨리
손을 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꼴이 되느니라."
그리고는 아들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옛날에 학문을 아끼는 왕이 살았다. 한 시인이 그 왕의 공적과 업적을 칭송하는
기가 막힌 글들을 써서 세상의 감탄을 자아냈다. 왕은 시인의 노고를 치하하고 싶은
마음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줄 테니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시인은 한
달 동안 성 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지키는 수문장을 시켜달라고 청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어 있었다. 성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 신체적 결함에
한 냥씩 벌금을 물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시인의 글에 푹 빠져 있었던 왕은
흔쾌히 승낙을 했다.
시인이 자신의 새 직업에 우쭐해져서 성문을 지키고 있을 때 꼽추 한 명이 망토를
푹 뒤집어쓰고 손에는 지팡이를 든 채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꼽추가 성 안으로
들어오려 했지만 시인은 그가 꼽추이기 때문에 돈을 내야 한다면서 그를
가로막았다. 돈을 안 내려는 꼽추와 시인은 실랑이를 벌였다. 그 바람에 꼽추의
망토가 벗겨졌다. 가만 보니 꼽추는 애꾸눈이기도 했다.
그것을 본 시인이 말했다.
"당신은 애꾸눈이기 때문에 두 냥을 내야 하오. 꼽추에 해당하는 한 냥까지
합쳐서 말이오."
하지만 꼽추는 한푼도 못 내겠다며 완강하게 버텼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는 통에
시인이 꼽추의 모자를 벗기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꼽추는 두창까지 앓고
있었다.
그래서 시인이 말했다.
"이제 세 냥을 내야 하오. 당신이 두창을 앓고 있으니 말이오."
하지만 꼽추는 그 돈도 안 내려고 끝까지 버텼다. 그러자 시인이 완력을 써서라도
돈을 받아내겠다며 덤벼들었다. 꼽추도 질세라 소매를 걷어부치고 싸울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팔목을 걷어올리자 옴에 걸려 사방이 쭈글쭈글한 팔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시인이 네 냥을 내야 한다고 우겼다.
왕의 허락을 받고 요구하는 것이니 돈을 내야 된다는 시인과 자기를 욕보이는
일이니 그럴 수 없다는 꼽추는 결국 주먹질을 하며 싸우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꼽추가 땅바닥으로 뒹굴면서 탈장에 걸린 배가 그대로 다 드러나버리고 말았다.
이를 본 시인이 다른 신체적 결함까지 합해서 이제는 다섯 냥을 내야 된다고
우겼다.
결국에는 꼽추가 시인의 요구대로 다섯 냥을 내고서야 싸움은 끝이 났다. 처음에
아무 말 않고 한 냥을 냈으면 일이 그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
* 무슨 일이든지 처음에 조그만 손해를 보더라도 막을 수 있으면 괜한 고집을
부리지 말라. 일을 크게 확대시키다가 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ff
네번째 이야기 양을 데리고 강을 건너는 방법
어느 왕이 옛날 이야기를 너무 좋아해서 이야기꾼을 한 명 데리고 있었다. 그
이야기꾼은 왕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때마다 왕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다섯
가지의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어느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왕이 이야기꾼을 불러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상시처럼 이야기를 다섯 가지만 할 게 아니라 더 해달라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이야기꾼은 다른 짤막한 이야기 세 편을 더 해주었다.
그러자 왕이 말했다.
"그 이야기들은 너무 짧구나. 그러지 말고 좀 긴 이야기 하나만 더 해주고나서
자러가거라."
왕의 명령에 이야기꾼이 긴 이야기 하나를 시작했다.
"어느 시골 사람한테 찬 리브라가 생겼습니다. 그 남자는 장에 가서 이천 마리의
양을 샀지요. 그런데 그가 양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나서 여울목은 물론이고 다리 위로도 강을 건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시골
사람이 어떻게 강을 건널까 고민하고 있는데 사람 한 명과 양 한 마리에다가
가까스로 끼워넣으면 양 한 마리 정도는 더 탈 수 있는 배 한 척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양을 두 마리씩 태워서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양 두 마리, 양 네 마리, 양 여섯 마리^5,5,5^"
그런데 이야기꾼은 이런 식으로 양들을 세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왕은 급히
그를 깨워서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이야기꾼은 이런 재치 있는 대답으로 왕을 만족시켰다.
"오, 고귀하신 전하. 이 강이 워낙 넓은 데다가 배는 작고 양들은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전하, 불쌍한 시골 사람이 그 많은 양들을 데리고 강을 다 건널 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나서 하던 이야기를 마저 끝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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