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5일 수요일

신촌 이미지한의원 추천책 명상에 대하여

크리슈나무르티:오늘은 어떤 문제를 토의할까요? 여러분께서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질문:우선 지성과 사고 그리고 침묵과 죽음의 관계에 대해 토의하고 싶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저는 지성과 사고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가를 고찰함으로써 의식의
문제를 좀더 깊이있게 토론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는 침묵의 문제와
그 침묵과 죽음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몇
가지 토론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문화와 환경, 음식물, 의복, 종교 등에
의해서 조건지워져 있습니다 조건이라는 것은 의식의 내용이며 의식은 곧 조건입니다
그러한 조건에 대한 사고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조건이 있는 곳에 지성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요?
만일 여러분이 어떤 비판이나 편견도 갖지 않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관찰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피상적으로 그리고 대단히 깊숙하게 조건이 지워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가족과 인종적 집합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깊숙히 내재해 있는 뿌리깊은 조건이 있습니다 과연
정신이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정신이 조건지워져 있을 때 그것은
그것은 스스로를 그 조건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킬 수 있을까요? 또는 정신은 저항을
통하지 않고서도 자신이 조건지워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오늘 아침 이
두 가지 문제를 지성과 사고와 관련해 그리고 침묵과 죽음과의 관계에서 조사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것들을 파고들어 전 분야를 살펴볼 것입니다
왜 정신은 조건이 지워지는 것일까요? 정신은 그토록 민감하며 상처를 받기 쉬운
것일까요? 그것은 부드럽고 미묘한 것이며 여러가지로 상처를 받으며 조건이
지워집니다 그렇다면 그 조건을 일소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요? 우리는 정신 즉
두뇌 그 자체가 조건이 지워져 있으며, 수 세기에 걸쳐 진화한 기억의 창고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그 사실을 알 수 있으며 구태여 철학책이나
심리학책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적어도 저는 읽지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읽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해 온 뇌, 곧 과거의 기억과 경험,
지식의 집합체인 뇌는 그것에 부과된 조건에 따라서 어떠한 자극에 대해서도
피상적으로 또는 심오하게 즉시 반응합니다 저는 이것이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과거로부터의 반응이라는 것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약간의 시간적 간격을
가질 수 있도록 지연될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매우 피상적인 조건 한 가지를 들려고 합니다 사람은 특정한 문화와 특정한
신념 또는 특정한 양식 속에서 성장을 하며 따라서 그것에 대해 이의가 제기될 때는
즉시, '당신은 다른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배경에 따라서 반응을 하거나 또는 자신에
대해 화를 내거나 합니다 그렇다면 만약 여러분이 저를 바보라고 부른다면, 그때
제가 그 말에 반응을 하기 전에 약간의 시간적인 간격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뇌가
다른 식으로 반응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조용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질문:또는 그 자체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서 말이죠?
크리슈나무르티:뇌는 언제나 그것에 지워져 있는 조건 즉 각가지 형태의 자극에
따라서 반응을 합니다 그것은 언제나 활동적입니다 뇌는 시간의 반응이자 기억의
반응입니다 뇌 속에는 모든 과거가 담겨져 있습니다 만약 뇌가 자신을 억제함으로써
즉시 반응을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때는 새로운 반응의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뇌는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와 과거의 인종적 유산 등에 의하여 형성된 옛날의
습관 속에서 작용을 합니다 그것은 어떤 자극에 대해서 항상 판단하고 평가를 내리며,
믿거나 믿지 않으며, 토론을 하고 보호를 하거나 또는 거부하는 등의 반응을 합니다
뇌로부터 과거의 지식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뇌는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낡은 뇌가 자신의 새로운
부분이 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고요하게 가라앉힐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저에게 아첨을 할 때 저의 낡은 뇌는 '이거 아주
기분 좋은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하는 말을 듣고서도 제 낡은 뇌가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도록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자신을
돌이켜볼 때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아무 흥미도 없는 것일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위해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낡은 뇌는 언제나 제한된 지식과 전통,
인종적 유산에 따라 반응을 하고 있으며 그 낡은 뇌가 작용을 하고 있을 때는 어떤
새로운 것도 생겨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제 저는 과연 그 낡은 뇌가
새로운 움직임이 생겨날 수 있도록 조용해질 수 있는지의 여부를 규명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제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낡은 뇌가 작동하고 있는 것을 지켜볼 때
그리고 낡은 뇌가 새로운 작용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조용해져야만 한다는
진리를 이해할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뇌는 그 자체가 조용해지도록 자신을 강제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자신을
조용해지도록 강제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과거의 작용 속에 있게 됩니다 그 속에는
분열과 갈등이 일어나며 징계 등이 따릅니다 그러나 낡은 뇌가 어떠한 자극에
대해서도 일정한 반응을 나타내는 한, 과거의 노선에 따라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거나 또는 그러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뇌는 조용해지는
것입니다 고요를 가져다주는 것은 조용해지려는 의도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진리의
발견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이러한 문제는 여러분들이 결코 조건이 지워져 있지 않은 특정한
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흥미로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말할지 모릅니다 저는 단지 그런 일이
저에게 일어났었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믿어도 좋고
믿지 않아도 좋습니다만 사실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뇌는 왜 언제나 이렇게 낡은 양식으로 기능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묻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낡은 양식으로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뇌가 갖고
있던 낡은 기억과는 반대되는 기억에 따라서 새로운 양식을 생성해 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뇌 가운데에서 아주 적은 부분만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적은 부분은
바로 과거입니다 뇌에는 지금까지 한번도 기능해 본 적이 없는 열려 있고 텅비어
있는 새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제 말에
무조건 동의하지는 마십시오 여러분이 뇌의 활동을 조금 의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단지
그 낡은 뇌가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밖에는 알고 있지 못할 테니까요 이제 저는 과연
그 낡은 뇌가 새로운 반응을 나타날 수 있도록 자극에 대하여 잠잠해질 수 있는지
묻고자 합니다 그 다음 문제는 지금까지 그토록 조건이 지워져 왔던 뇌가 어떻게
해서 자신이 조금이나마 억제할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질문:무슨 말인지 분명히 알겠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우리가 지금까지 전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성격의 정신과
뇌가 작용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우리는 어떤 문제가 긴급을 요하며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닐 때 뇌가 스스로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같은 일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며 나 자신만의 경험은 아닙니다 성공이나 출세라는 욕구로부터
해방된 모든 과학자들은 틀림없이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들이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낼 수 있었겠습니까? 만일 낡은 뇌가 항상
작용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떤 새로운 것도 전혀 발견해 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직 낡은 뇌가 잠잠해져야만하며, 그같은 조용한
상태에서만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럼 이제 뇌를 강제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러한 정적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뇌가
자발적으로 조용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낡은 뇌는 아무런 새로운
것도 발견해 낼 수가 없으며 따라서 잠잠해져야만 한다는 진리를 깨달을 때에만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낼 수가 있습니다 진리가 그것을 잠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낡은 뇌는
스스로 조용해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면 그러한 정적은 언제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지식에 대한 낡은 조건은 필요한 때만 작용을
할 수 있을까요?

질문:언제나 작용을 한다면 갈등이 생겨나지 않을까요?
크리슈나무르티:제 말을 들으십시오 저는 사실을 밝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의문을 제기할 뿐이지 '그것은 잠잠해져야만 한다'고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낡은 뇌는 작용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는
말도, 운전도 할 수가 없으며 여러분들을 알아보지도 못할 테니까요 낡은 뇌는
기능적으로 작용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또한 그것이 조용히 있지 않는 한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제 말을 알아 들으시겠습니까? 저는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정정속에서 기능하는 새로운 뇌의 특질과 낡은 뇌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낡은 사고입니다 그렇습니다 낡은 뇌는 기억의 집합체이고 이러한 기억에
따르는 모든 반응은 사고입니다 사고는 기능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질문:선생님께서는 그 두 가지를 나누시지 않습니까?
크리슈나무르티:아니지요 그것은 구분이 아닙니다 그 성은 집과 같아서 하나의
전체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따로따로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낡은 뇌는--당분간 이렇게 부르기로
하겠습니다--오랜 시간에 걸쳐 지식을 모아 놓은, 조건이 지워진 뇌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낡은 것과 새로운 것으로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여기 뇌의 전체적인 구조가 있는데 그 중 한 부분은 낡은 것이며--이
말은 그것이 새로운 것과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그것은
여타의 부분과는 다르다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이제 저는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만일 낡은 뇌가 작용을 하고 있으면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입니다 새로운 것은 오직 낡은 것이
잠잠하게 있을 때에만 발견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낡은 뇌는, 새로운 것은 낡은
뇌에 의해서는 발견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잠잠해질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낡은 것은 자연스럽게 잠잠해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질문:발견은 새로운 뇌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아니면 낡은 것에
의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까?
크리슈나무르티:여러분들이 대답해 보십시오 저의 뇌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정말 모른다 나는 지금 그것을 알아내려고 한다 당신은 지금 이렇게 질문을 한
것입니다 즉 낡은 뇌가 새로운 뇌를 인식하는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뇌가 낡은
뇌를 이용하는 것인가?
낡은 뇌는 자기가 새로운 것을 절대로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에 조용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발견'이라는 용어도 쓰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낡은 뇌가 언제나 작용을 하고 있다면 어떤 새로운 움직임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낡은 뇌는 그 사실을 깨닫고 조용히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움직임, 새로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사건은 낡은 뇌에 의하여 인식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낡은
뇌가 새로운 뇌가 자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은 것일까요? 이건 혹시
여러분들이 이해를 못하실지는 몰라도 정말이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비참하고 추하고 낡은 생활방식이 잔인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낡은 뇌와는 관련이 없는 새로은 차원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낡은 뇌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차원을 발견해 내기 위한 어떠한 움직임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낡은 뇌는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그 정적 속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이제 그쪽 방향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도록 합시다 낡은 뇌가 자신은
새로운 차원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질문:미지의 것이 아닐까요?
크리슈나무르티:아니, 말을 만들어 내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것을 경험해 보지
않은 이상 상상을 하지 마십시오

질문:공간이 있겠지요
크리슈나무르티:낡은 뇌가 잠잠해질 때 공간이 생겨난다 우리 그것을 한번 검토해
보기로 합시다 공간이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질문:비어 있다는 뜻이지요
크리슈나무르티:제발, 말을 만들어 내지 말라니까요 추측을 해서도 안 됩니다
관찰을 하십시오 당신의 뇌는 잠잠합니까?

질문:아뇨 만일 뇌가 잠잠하다면 선생님께서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요?
크리슈나무르티: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질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우리는 밝혀내야만 합니다

질문:사용되지 않던 뇌의 부분이 작용을 시작하겠지요
크리슈나무르티:낡은 뇌가 잠잠해질 때는 어쩌면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았던 뇌의
새로운 부분이 작용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뇌의 극히 일부분만 갖고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 일부분의 뇌가 잠잠해질 때
뇌의 다른 부분들도 사실 계속 활동을 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뇌의
다른 부분들도 사실 계속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지식과 전통 시간을 축적해 놓고
있던 그 한 부분이 항상 활동적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고 따라서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즉 다른 부분 역시
나름대로의 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정말이지 매우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 여러분의 마음을
조금만이라도 할애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걸'
하고는 그 문제를 내팽개치지 마십시오 이 문제에 여러분 자신을 적용시켜 보십시오
우리는 지금까지 낡은 뇌를 너무나 많이 사용해 왔기 때문에 뇌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를 하지 않았으며, 어떤 부분이 다른 차원의 특질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고려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다른 차원의
특질은 낡은 뇌가 정말로 잠잠할 때에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제 말의
요점입니다 낡은 뇌가 완전히 잠잠해질 때, 잠잠해지도록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잠잠해져야 한다는 것을 자연적으로 이해함으로써 그 결과 잠잠해질 때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알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아닌 제가 조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들이 지니고 있는 낡은 뇌는 잠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낡은
뇌가 어떤 자극 아래서도 완전히 잠잠해야 할 필요성을 거의 이해 못했습니다
물론 물리적 자극의 경우는 예외입니다 다시 말해서 만약 여러분이 내 다리에 핀을
꽂으면 그것은 반응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내 다리에 핀을 꽂는 사람이
없으므로 저의 낡은 뇌는 잠잠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뇌의 특질, 낡은 뇌가 인식할 수 없는 그 특질이 무엇인지 밝혀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낡은 뇌는 자기가 경험해 보지 않은 것, 자신의 산물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인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낡은 뇌가 인식하는 것은 여전히
낡은 것입니다 저는 묻습니다 새로운 것이란 무엇인가? 낡은 뇌는 그에 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므로 단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정말이지 나는
모르겠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제 말의 뜻을
알아들어시겠습니까? 낡은 뇌는 말합니다 '나는 이것을 만질 수가 없다 따라서
나는 정말로 알지 못한다' 내가 그것을 만질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의해
현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뇌의 새로운 차원에 대해서 아는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낡은 뇌는 잠잠해 인식을 할수 없을 때 그것은 단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정말이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낡은 뇌는 그렇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일생 동안 나는 지식과
인식으로 기능을 해왔다 그런 식으로 기능하면서 그것은 '나는 안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 말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내가 그것을 배울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배움의 양식 내에서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정말이지
나는 모른다'라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은 인식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아직 저는 그것과 관계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그것을 규명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알지 못한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알지 못하는 상태--곧
죽음--가 존재할 때 두려움이 따릅니다 낡은 뇌가 실제로 '나는 모른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모든 앎을 포기한 것입니다 아울러 그것은 모든 알고자 하는
의도를 포기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때는 낡은 뇌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능을 할 수
없는 분야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런 분야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낡은 뇌가 그것을 인식하고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언어화할 때
비로소 묘사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낡은 뇌가 치범할 수 없는 분야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어낸 것도 아니고 이론도 아니며 낡은 뇌가 '정말이지 나는
이것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하 때 하나의 사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은 곧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차이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따라서 이제 저는 말로 나타내지 않고 규명을 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언어를 사용하는 순간, 나는 다시 낡은 것으로 되돌아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지도 않고 또 그것을 포착하고 간직하기 위해서
그것을 묘사할 의도가 없다는 뜻에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것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제 저는 단지 질문을 할 뿐이며, 정신은 그것이 전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지금까지 정신은
언제나 무언가에 대해 배우거나 저항하거나, 도피하거나 또는 극복을 하는 관점에서
무언가를 들여다 보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정신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다른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낡은 뇌가 이해하지도 따라서 알 수도 없고 그것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도 없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단순히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낡은 뇌가 만들어낸 것일까요?
만일 그것이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낡은 뇌라면 그것은 여전히
낡은 뇌의 일부분입니다 저는 이미 그것을 철저하게 조사했고, 낡은 뇌는 그것의
구조와 본질을 이해했으므로 따라서 그것은 전적으로 잠잠해져 있어 알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려운 부분입니다
상상 속의 것도 아니고 지어낸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이론도 아닌, 실제적인 그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요? 낡은 뇌가 이해를 할 수도 없으며, 이해하고자 바라지도
않으며 그 무엇 말입니다 그런 것이 과연 있을까요, 그런 것이 있지만 그것은 아무
가치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단지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바로 여러분이라는 의미에서만 가치를 갖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새로운 습관--만일 여러분이 새로운 뇌를 볼 수 있다면
^36 36^ 과 낡은 뇌와의 관계는 무엇이며 둘 중에 어떤 것이 삶에 있어서 객관적으로
건전하고 비개인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작용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밝혀내야만 합니다
낡은 것은 다른 삶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새로운 것을 포착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것은 낡은 것이 인식할 수 없는 따라서 그 작용이 곧 새로운 방법인
생활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일까요?
보십시오 의식을 갖고 있는 이 낡은 뇌는 수천 년 동안 살아왔습니다 이 낡은
뇌와 의식은 곧 그것의 내용물입니다 그 내용물은 피상적으로 혹은 깊이 고찰하여
얻어진 것이며, 모든 지식과 수 세기에 걸친 인간의 노력과 진화의 경험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의식의 한계 내에서 기능을 할 때 그것은 절대로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사실이며 결코 이론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사랑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낡은 내용물의 일부인 시기와 질투, 공포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 다음에 이 낡은 뇌는 자신의 완전한 한계를 인식하고 잠잠해집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에게 아무런 자유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혀 자유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뇌의 새로운 부분이 작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제 말을 알아들으셨는지 모르겠군요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저는 제가 북쪽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실제로는
남쪽으로 가고 있었으며 어느 순간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발견한 순간
거기에는 완전한 역전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것은 낡은 것의 역전이 아닌 철저한
반전입니다 움직임의 방향은 북쪽도 남쪽도 아닌, 전혀 다른 방향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전적으로 다른 방향이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질문:선생님께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자 하는 강도와 낡은 것의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와의 차이점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크리슈나무르티:낡은 것의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낡은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 또는 새로운 것의 경험-당신이 원한다면 계몽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은 여전히 낡은 것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낡은 것입니다

질문:크리슈나무르티, 당신은 가장 고귀한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기에 있는
우리들은 가장 작은 관계조차 가질 수가 없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누구입니까?
크리슈나무르티:우리는 이미 그것을 극복했습니다 우리는 남의 흉내를 내는
사람들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가장 고상한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수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론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서로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왜냐하면 낡은 뇌는 이미지와
영상, 그리고 과거의 사건들 속에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사건과 이미지,
영상, 지식이 강하면 관계는 끝이 나고 맙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만약
내가 여러분들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구축한다면-나의 아내 또는 친구, 애인
또는 그 무엇이든-이미 과거인 그러한 이미지, 그러한 지식은 분명히 관계를
가로 막는 것입니다 관계란 지금 현재 똑같은 수준에서, 서로 똑같은 강도와 열정을
지니고 즉시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가 여러분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여러분도 저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동일한 수준에서의
열정과 강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다른 사람이 대해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분명히 여러분은
그러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 힘을 기울여, 여러분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하는지를 알아내고자 노력하십시오 제가 생각하기에 여러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원한다면 이러한 과거의 전체적인 구조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거가 존재하지 않을 때 비로소 여러분은 언제나 완전한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관계는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낡은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면 새롭고 미지의 것으로 낡은 것에 의해서는 포착될 수 없는 그런 특질, 그런
차원과 나의 일상생활과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런 차원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낡은 뇌는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따라서 무엇이 진리인지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따라서 낡은 뇌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의 모든 구조는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는 단지 시간을 갖고 있는
것-기구나 언어, 그리고 기타 모든 것-과 관련해서만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그쪽 부분은 완전히 잠잠해질 것이다' 그럼 양자 사이의 관계는 무엇이겠습니다?
낡은 것이 자유와 사랑 그리고 미지의 것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것 역시 낡은 것의
일부인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미지의 것이 낡은 것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명제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제 질문은 이런 뜻입니다 이 양자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리고 누가 관계를
원하고 있는가? 누가 이러한 관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인가? 만약 낡은 것이 그것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낡은 것의 일부가 되며 따라서 서로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의 아룸다움을 알고 계신지 모르겠군요 낡은 것은 자유와 사랑
그리고 새로운 차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새로운 차원 즉 사랑은
낡은 것과 관계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반대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이렇습니다 낡은 것은 새로운 것과 관계가 없고 새로운 것이
생활 속으로 들어옴에 따라 관계를 설정할 때, 일상생활 속에 나타나는 행동은 어떠한
것인가? 정신은 이미 새로운 그 무엇을 발견했습니다 낡은 뇌가 모든 기력을 다해
기능을 발휘하는 미지의 분야에서 새로운 뇌는 어떻게 기능을 하게 될까요?

질문:그렇다면 그곳이야말로 바로 지성이 나타나는 곳이 아닐까요?
크리슈나무르티:당신 말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낡은 뇌가 자신은 절대로 자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또 자신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바로 그러한 지각이 지성의 씨앗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이 지성이 아닙니까? 전적으로 새로운 방향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바로 그런 발견이 지성입니다
그렇다면 지성과 다른 것과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지성의 다른 부분은 지성의 이상한
의식일까요? 저는 우리가 지성이라는 말을 쓸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규명하고자 합니다 정신은 언어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낡은 뇌는
지금까지 스스로 신과 자유를 가질 수가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것은 낡은 뇌의 모든
움직임은 여전히 낡은 뇌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따라서 지성이란, 낡은
뇌가 단지 알려져 있는 분야 안에서만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발견이 지성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뜻으로 지성을 말합니다
지성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며 논쟁이나 믿음, 의견이나 이성의 산물이 아닙니다
지성은 뇌가 자신의 오류를 발견할 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가를 발견할 때에 비로소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지성과 새로운 차원과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다른 차원은 오직 지성을 통해서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지성이 없으면 그것은
작용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일상생활 속에서 그것은 오직 지성이 기능하고 있는
곳에서만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지성은 낡은 뇌가 활동을 하고 또 어떤 종류의
믿음이나 뇌의 특정 부분에 집착이 있을 때에는 가능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은 지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을 믿고 '주는 오직 한 분뿐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성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이 집단의 일원이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지성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낡은 뇌의 한계를 발견할 때, 바로 그러한
발견이 지성이며 오직 그러한 지성이 기능을 하고 있을 때 새로운 차원이 그것을
통해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정지되어 있는 상태지요

질문:저는 당신과 전적으로 의견을 달리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지성이란 일차적인
지성에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이차적인 지성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것을 낡은 것과 통합시킬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그런 일은 지성이 없을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통합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새로운 뇌는 일차적일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지성이
있을 때에 작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하지만 오늘 당신이 말한 것 중에서 나는 언제나 일차적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새로운 것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일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동전을 던지는 놀이를 한다고 할 때 나는 어느 면이 나타날지
예언할 수 없으며, 사람들은 이러한 놀이를 무작위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당신이 말하는 '완전히 새로운 것'과 제가 설명한 의미에서의 무작위와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우리의 삶에 있어서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무작위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건은 새롭게 즉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조사하지 못한 즉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사건의 결과일까요?
저는 우연히 여러분을 만납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우연일까요? 아니면 의식하지
못하는 특정한 미지의 사건들이 모이게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일까요? 우리는 이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나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여러분을 만나고, 우리가 만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다른 수많은 사건들의 결과인지도
모르며, 그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것은 무작위 사건이며 미처 예기치
못한 우연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인생에 있어서 원인이 없는 사건,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인생의 모든 사건들은 각각 기본적이며 복잡한 원인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미처 모르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히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작위 사건입니다 원인은 그것이 결과를 지닐 때 변화를
수반합니다 그 다음엔 결과가 원인이 됩니다 원인이 있어 결과가 생기면 그 결과는
다시 다음 결과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과는 끝없는 연쇄관계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원인과 결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끝없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각각의 원인과 결과는 그 다음의 원인과 결과를
변화시키는 것이지요 인생에 있어서 이러한 일이 계속된다면 예기치 못한 우연,
무작위 사건이 있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무작위의 개념은 인과관계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인과관계라고요? 저는 인생이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인은 결과가 되고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됩니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이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절대로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까 그분은 미지의 것-새로운 차원에서가 아니라-과
우연적인 사건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한 것입니다

공포에 대하여

질문:나는 공포와 죽음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지성, 사고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서 토론하고 싶습니다 다음과 같은 말, 즉 세상은 나이고 나는 세상이다라는
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또 죽음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도
토론해 볼까요
크리슈나무르티:공포라는 것은 복잡한 문제이며 우리는 그것을 검토해 봐야
합니다 그러나 편견을 가져서는 곤란하고 전체적으로 공포의 문제를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공포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집합적 공포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서 집단요법을 써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공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것의 성질과 구조는 어떤지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합니까? 여러분들은 육체적이든 심리적이든 공포를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에 심리적인 공포를 경험한 적이 있다면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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