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5일 수요일

신촌이미지한의원 추천책 카프카 변신

어느 날 아침, 잠자던 그레고르는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개어나자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각질로 된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밑으로 하고 위를 쳐다보며
누워 있던 그가 머리를 약간 쳐들자, 볼록하게 부풀어오른 자신의
갈색의 배가 보였다. 배 위에는 몇 가닥의 주름이 져 있고, 주름
부분은 움푹 패여 있었다. 그 배의 불룩한 부분에는 이불의 끝다락이
가까스로 걸려 있었으며,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른 부분에 비해 비참할 정도로 가는 수많은 다리가 그이
눈앞에서 불안스럽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진정 꿈은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작가는 하지만 어쨌든 사람이 사는
평범한 방. 틀림없이 자신의 방이었다. 사방의 벽도 낯익고 아늑한
바로 그 벽으로 둘러져 있었다. 탁자 위에는 따로따로 묶어 놓은 옷감
견본들이 여기저기 잡다하게 흩어져__그레고르는 외판
사원이었다__탁자 위의 벽에는 얼마 전에 ㅎ에서 오려내어 예쁜 금박
액자에 넣어서 걸어 놓은 그림이 걸려 있다. 그것은 어떤 부인의
자태를 묘사한 것으로, 그녀는 모피 모자와 모피 목도리를 두르고
커다란 모피 토시 속에 푹 집어 넣은 양팔을, 보는 이를 향하여 추켜든
자세로 단정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음 순간 그레고르는 창 밖을 보았다. 창틀의 양철판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음산한 날씨가 그의 기분을 몹시
우울하게 했다. '잠이나 좀더 자 두기로 하고 더 이상 이런 허튼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레고르는 늘 오른쪽으로
돌아누우려 해도, 그 때마다 몸이 흔들려서 결국 위를 향해 똑바로
누운 본래의 자세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짓을 백 번도 더
시도해 보았으리라. 그는 그 동안에도 허우적거리는 다리들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은 채로 있었다. 그런데 지금가지 느껴 보지 못했던
허리춤의 가벼운 통증으로 인해 오른쪽으로 돌아누우려던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제기랄! 나는 어째서 이렇게 고된 직업을 선탯했을까! 날이면
날마다 출장 또 출장이다. 사무실에서의 근무도 여러 가지 귀찮기는
하지만, 외관에 따르는 고충은 훨씬 더 각별한 것이다. 기차 시간에
대한 걱정과 불규칙하고 무성의한 식사,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오래 지속되지 않고 진정으로 가까워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배 위쪽이 좀 가려웠다. 그는 쉽게 머리를 쳐들 수 있도록 몸을 침대
끝의 기둥 쪽으로 밀어 갔다. 조그마한 하얀 점들이 오글오글 붙어
있는 가려운 그 자리가 보였다. 그 점들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리 하나를 뻗쳐서 그 자리를 만져 보려고 했으나, 이내 다리는
움츠러들고 말았다. 다리가 슬쩍 그 곳에 닿자 오싹 소름이 끼쳤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몸을 이끌고 이전의 위치로 되돌아갔다. '사람이 너무
일찍 일어나면 이렇게 멍청해지는 법이야. 사람은 충분한 수면이 꼭
필요한 법이야. 다른 외판원들은 마치 후궁(後宮)의 궁녀들처럼 지내고
있지 않은가. 가령 내가 밖에서 한 가지 일을 끝내고 오전 중에 숙소로
돌아와서 주문받은 것을 정리하고 기입해 둘 때에서야 비로소 그들은
아침 식사를 시작하지 않던가. 만약 내가 사장 앞에서 그런 짓을
한다면 그는 나를 당장 해고시킬거야. 그런 생활이 이로운지 어떤지 잘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여유 있게 살고 깊어. 부모님만 아니라면 이렇게
참고만 있지는 않았을 거야. 벌써 사표를 던지고 말았을 걸. 사장
앞으로 걸어가서 내가 생각하고 있던 바를 거리낌없이 털어놓을
것이다. 그러면 틀림없이 그는 놀라서 책상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리라. 하여튼 책상 위에 걸터앉아 어개 너머로 사원들을 내려다보며
이야기하는 것이라든지, 귀가 멀어서 말할 때마다 사원들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되는 등 매우 이상한 버릇의 소유자야.
그러나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야. 부모님이 진 빛을 청산할 수
잇을 만큼 돈을 모은다면__아마도 5,6년은 걸리겠지만__그렇게만
된다면 꼭 결행할 테다. 그것이 내 일생 일대의 전환기가 되겠지.
그것은 그렇다 치고, 우선 지금은 일어나야만 돼. 기차는 5시에
출발하니까.'
그리고 그는 책장 위에서 째깍거리는 자명종 시계를 바라보았다.
'하느님 맙소사!'
시계는 6시 반이었다. 조용히 계속 움직이는 시계 바늘은 이미
30분을 지나, 거의 45분에 육박하고 있었다. 종이 울리지 않았단
말인가. 침대에서 보아도 정각 4시에 울리도록 맞추어져 있었다.
틀림없이 울리긴 울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요란하게 울려대는
종소리에도 깨지 않고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실은
밤새도록 편안하게 잘 자지도 못한 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이 울린
후에 더욱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저러나 이제
어떻게 한다? 다음 기차는 7시에 있으니, 그것을 타려면 미친 듯이
서둘러야만 할 텐데.' 아직 견본들을 꾸려 놓지도 못한 데다가 기분도
결코 개운하거나 유쾌하지 않았다.
'만약 그 기차를 탄다 해도 결코 사장의 불벼락을 피할 수는 없을
거야. 왜냐하면 5시 기차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급사 녀석이 내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사실을 이미 보고했을 테니까. 그 녀석은
아첨꾼으로, 줏대도 없고 분별력도 없는 사장의 앞잡이니까. 그렇다면
몸이 아프다고 말하면 어떨까? 그러나 그것은 더없이 괴로운 일이야.
더욱이 수사쩍게 생각할 것이 틀림없어. 나는 지난 5년 동안 외판원
생활을 하면서 단 한번도 아팠던 적이 없으니까. 아마 아프다고 말하면
시장은 조합 주치의를 데리고 올 것이다. 태만한 자식으로 인해
부모님까지 욕먹을 지도 모른다. 그 의사에게 일단 진찰을 받게 되면
아무리 발뺌을 해도 통할 리가 없을 것이다. 사실 그 조합 주치의가
본다면 건강하면서도 단지 일하기 싫어 꾀부리는 사람으로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지금 나의 경우 주치의가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그레고르는 여전히 피곤하긴 했으나 잠을 푹 자고
나면 머리가 상쾌하고, 다소 강한 식욕까지도 느껴 온 터였다.
이런 순간적인 생각들에 빠져 있다가, 그만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되겠다고 결심한 채 하기도 전에__그 때 자명종 시계가 6시 45분을
쳤고__침대 머리맡 쪽에 있는 문에서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레고르야, 6시 45분이다. 일하러 안 나가니?"
하고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저 부드러운 목소리! 그러나
그기에 대답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레고르는 깜짝 놀랐다. 물론
틀림없는 자신의 목소리였지만, 어쩐지 밑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듯한
찍찍거리는 괴로운 신음 소리가 섞여 나오는 것이었다. 처음에
튀어나온 말소리는 명확했지만 그 다음 말소리는 이 찍찍거리는 소리가
말 끝머리를 흐려 놓아 자칫 상대방이 이쪽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조차도 의심스러울 지경이였다. 그레고르는 상세하게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네! 네! 어머니 곧 일어납니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문 바깥쪽에 있는 사람은 문이 나무
판자로 되어 있었으므로 그레고르의 목소리가 변했다는 것을 아마
몰랐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의 대답에 안심하고 다리를 끌며 가
버렸다. 그러나 이 간단한 대화로 다른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아ㅣㄱ
출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가 다른 쪽의 문을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레고르, 그레고르! 도대체 왜 그러느냐?"
하고 아버지는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한층 낮은 목소리로,
"얘야, 그레고르야!"
하고 재촉을 했다. 그ㄹ 맞은편 문 밖에서는 누이동생이 작은 소리로
걱정스럽게 애원하고 있었다.
"오빠, 몸이 어디 불편하세요? 무슨 일이 있난요?"
"이제 준비 다 되었어요."
하고 대답하며, 한 마디 한 마디 말과 말 사이를 오랜 간격을 두어
조심스럽게 발음했다. 그러므로 목소리가 변질되어 울리는 것을
감추려고 애썼다. 아버지는 아침 식사를 하려고 되돌아갔으나,
누이동생은 아직 문 뒤에 서서
"오빠, 제발 문 좀 열어 주세요, 네. 부탁이에요."
하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레고르는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오히려
출장중에서 얻은 습관대로 밤이면 모든 문의 빗장을 잠궈 버리는
자신의 조심성에 감사할 정도였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 옷부터 입고, 무엇보다도 아침을 먹은 후, 비로소 그
다음 일을 생각하고 싶었다. 침대 속에서 아무리 고민을 하고 있는다
해도 별다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불편한 잠자리에서 몇 번인가 가벼운 통증
때문에 일어나 보면__아마 그것은 잠을 험하게 잤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__고통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멀쩡했던적이 이전에도 자주
있었다. 그러므로 그레고르는 오늘의 여러 가지 일들도 점차로
어떻게든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긴장해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가 변한 것도 지도간 감기 때문에, 즉 자주 출장을
떠나야하는 외판원의 고질적인 직업병의 전조한 불과한 것이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이불을 걷어치우는 일은 매우 간단하였다. 그저 숨을 약간 들이마셔
배에 힘을 주기만 하면, 이불은 자연히 밑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그런데 몸을 일으키려면 팔과 손의 도움을 받아야 했으나, 도리어 그
다리는 먼저 쭉 뻗어 버리는 형편이었다. 마침내 그 다리를 사용해서
목적했던 일을 끝마치면, 그 동안 다른 모든 다리들이 마치 해방이라도
맞은 것처럼 요란스럽게 꿈틀거리는 것이었다.
'침대 속에서 더 이상 꾸물거려야 아무 소용이 없겠는데......'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우선 그는 하반신부터 침대 밖으로 끄러내려고 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의 눈으로 보지도 못했으며, 또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하반신을 움직이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일은
많은 시간이 걸렸고 매우 힘이 들었다. 그래서 약간 화가 난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정신없이 하체를 마구 앞으로 밀고 갔다. 그런데 방향을
잘못 잡아 침대 다리 쪽 기둥에 다리를 심하게 부딪쳤다. 후끈거리는
심한 통증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몸에서 가장 감각이 예민한
부분이 하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상체를 먼저 침대 밖으로 끄러내려고 조심조심
머리를 침대 가장자리로 돌렸다. 그 일은 별로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몸통은 그 폭이나 무게가 볼품없이 컸지만, 그래도 머리가
돌아가는 방향으로 같이 움직여 주었다. 그러나 머리가 막상 침대
밖으로 나가려니까 불안했다. 이런식으로 침대 밖으로 나가다가는
결국엔 그대로 침대 밑으로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머리 부분이 무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라리 이대로 침대에 있는 편이 났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앞서와 같이 애를 쓴 후에야 한숨을 몰아 쉬면서 본래의
자리에서 다시 누울 수가 있었다. 그는 눈앞에서 조금 전보다 더 약이
오른 듯이 서로 엉클어져 허우적대는 자신의 가냘픈 다리들을 보면서,
이 혼란 속에서 휴식과 질서를 찾을 방법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그냥 침대에 누워 있을 수도 없고, 설령 침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희망이 거의 없다고 할지라도, 모든 희생을 각오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현명할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동시에 그는
자포자기하는 것보다는 심사숙고하는 쪽이 훨씬 낫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순간 순간 날카로운 시선을 창 쪽으로
집중시켰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좁은 골목 건너편에 늘어선
집들까지도 뒤덮고 있는 아침 안개 때문에 밖을 바라보아도 자신감이나
상쾌함 같은 것은 느낄 수가 없었다.
자명종 시계가 7시를 치는 소리가 듣자 그는 중얼거렸다.
"벌써 7시인데 아직 저렇게 안개가 짙다니, 참!"
그리괴 그는 이 완전한 정적에 의해 혹시라도 평소의 자신의 상태로
되돌아가지나 않을까, 혹 기대라도 하듯 잠시 동안 숨을 내쉬며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중얼거렸다.
"7시 15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침대에서 일어나야만 된다. 그
때쯤이면 아마 위쪽으로 치켜들면 아마도 머리는 안전할 수 았을
것이다. 등은 딱딱하니까 카펫 위에 떨어져도 별일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걱정이 되는 것은 추락할 때 나는 쾅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식구들을 크게 놀라는 하지는 않았겠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그들에게 불안감을 안겨 줄 것이다. 그러나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레고르가 이미 절반쯤 몸을 침대에서 일으켰을 때__이 새로운
동작은 힘든 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장난 같아서 몸을 좌우로 조금씩
흔들면 그만이었기 때문에__누군가가 조금만 도와주면 일은 매우 쉽게
끝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힘센 사람이 두 명만 와
준다면__부친과 하녀가 생각났다__충분할 것이다. 그들이 둥글게
솟아오른 나의 등 밑에다 팔을 집어넣고 침대에서 몸을 굽혀 방바닥에
내려놓으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방바닥에서 몸을 뒤집을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면 된다. 그렇게만 되면 이 조그만 다리들도 제구실을
할 것이다. '문이 모두 잠겨 있지만 않다면 구원을 청할 수도 있을
텐데.' 그는 이런 곤경 속에서도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벌써 몸을 너무 세게 흔들어 균형을 잃고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기 직젖의 상테에까지 와 있었다. 우물쭈물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최후의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5분만
지나면 7시 15분이다. 그때 현관문에서 벨이 울렸다. '회사에서 누가
왔구나' 하는 생각에 그는 온몸이 뻗뻗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다리들은 더욱 분주하게 꿈틀거렸다. 그 순간 온 집안이
매우 조용했다.
"아무도 문을 열어 주지 않는구나."
하고 중얼거리면서, 그레고르는 그 어떤 부질없는 희망에 매달려
보았다. 그러나 잠시 후 언제나처럼 하녀가 침착한 걸음걸이로 나가서
문을 열어 주었다. 그레고르는 방문객의 인사말만 듣고도 그것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지배인이었다. 도대체 왜 자기는
잠깐 게으름을 피웠다고 해서 금방 의심을 사는 그런 회사에서
근무해야 하는 팔자를 타고났을까? 도대체가 너나할것없이 고용인들은
모두 쓸모없는 건달들이란 말인가? 그들 중에는 아침에 두서너 시간
정도 일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얼까지 빠질
지경이 되어 침대 신세를 지게 된, 그런 충실하고도 희생적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인가? 형편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면 급사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__물론 그 '형편을 알아본다'는 일이 필요할
때의 말이지만__? 그런데 꼭 지배인 자신이 와야 한단 말인가? 이
수상쩍은 사건의 조사를 지배인 이외의 사람에게는 맡길 수 없기
때문에 죄 없는 가족에게까지 알려야 한단 말인가? 그레고르는
침대에서 힘껏 몸을 굴려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것은 확고한
결단에서가 아니라, 이런 저런 생각에 너무 흥분을 했기 때문이다.
쾅하고 큰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다지 요란한 것은 아니었다.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놀랄 만큼 둔탁한 소리는 나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등 껍질도 탄력이 있었다. 다만 고개를
조심스럽게 쳐들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를 바닥에 약간 부딪쳤다. 그는
화가 치밀어 아픈 머리를 카펫에다 비벼 댔다.
"저 안에서 무엇인가 떨어진 모양이군요."
왼쪽에 있는 옆 방에서 지배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레고르는
오늘 자신에게 일어난 일과 똑같은 일이 언젠가는 지배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레고르의 그런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옆방에서 지배인이 에나멜 장화로 몇 발짝 거닐면서
삐걱거리는 구두 소리를 냈다. 그 때 오른쪽 방에서 그레고르에게
지배인이 온 것을 알리는 누이동생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오빠, 지배인님이 오셨어요."
"알고 있어."
하고 그레고르는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은 누이동생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았으나 감히 목소리를 높일 수도 없었다.
이번에는 왼쪽 방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레고르야, 지배인께서 네가 왜 아침 기차로 출발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계신다. 어떻게 대답을 해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하여튼
너와 직접 말씀을 나누고 싶다고 하신다. 그러니 문을 열어라. 뭐,
다소 방안이 어수선해도 그것은 이해하실 것이다."
"여보게, 잠자군."
하고 지배인이 다정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애는 몸이 아파요."
아버지가 아직 문 앞에서 그레고르에게 말을 걸고 있는 사이게,
어머니가 지배인을 향해 말씀하셨다.
"몸이 편치 않을 거예요. 지배인님, 믿어 주세요. 그렇지 않다면
그애가 기차를 놓치거나 할 리가 없습니다. 그애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몰라요. 때로는 기분 전환을 위해서 밤에 외출이라도 하라고 이쪽에서
먼저 잔소리를 할 정도이니까요. 오늘까지 벌써 일주일 동안이나
시내에 와 있으면서도 매일 저녁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테이블 앞에 앉아서 조용히 신문을 읽거나 기차
시간표를 점검하곤 합니다.그애에게 취미라면 오로지 톱으로 무엇인가
만드는 일 뿐이에요. 저번에는 이삼 일 저녁 계속해서 조그마한 액자를
하나 만들었답니다. 그것은 매우 훌륭한 액자로 그애 방에 걸려
있어요. 저애가 방문을 열면 곧 보실 수 있을 거예요. 하여튼 이렇게
직접 찾아 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우리 식구끼리만 있었더라면
문을 열라고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대단한 고집쟁이거든요. 아침에
물어 보았더니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분명히 아픈
모양이에요."
"곧 가겠어요."
하고 그레고르는 천천히 말했으나, 밖의 대화를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꼼짝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있었다.
"그렇겠죠, 부인 아무래도 달리 생각할 수가 없겠군요."
이번에는 지배인이 말했다.
"대단한 병이 아니길 바랍니다만 한가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장사하는 사람들은__행인지 불행인지 간에__사소한 병쯤은
대개 장사에 대한 열성으로 극복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지배인께서 들어가셔도 되겠느나?"
아버지가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씀하시며 다시금 문을
두드렸다.
"안 돼요!"
그레고르의 대답에 왼쪽 방에서는 숨막힐 듯한 침묵이 흘렀다.
오른쪽 방에서는 누이동생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이동생은 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는 것일까?
틀림없이 방금 일어나서 아직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울기는 왜 울까? 내가 일어나지도 않은 데다가 지배인을 방에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일까? 내가 실직당할 것 같아서? 만일 그렇게
되면 사장이 다시 옛날의 빚을 가지고 부모님을 괴롭힐까 봐 두려워서
우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지금으로서는 쓸데없는 걱정인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있으며, 가족들을 저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잠시 동안 그는 양탄자 위에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현재 그의
상태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를 향해서 지배인을 이 방으로
들여보내라고 강요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무례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에 적당히 변명할 수 있는 사소한
것이며, 그것이 당장 그를 해고시킬 만한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사정사정하며 지배인에게 애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배인을
그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라고 그레고르는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들은 불안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변명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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