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5일 수요일

신촌 이미지한의원 추천책 오만과편견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전6권 중 제5권


44

엘리자베드는 다아시 씨가 자기의 누이동생이
펨벌리에 도착하는 바로 다음날 그녀를 데리고 자기를
방문하러 올 것이라고 예정했기 때문에 그날 아침
나절은 여관에 머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녀의 결론은 잘못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램턴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아침에
그 방문객들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새로 사귄
친구 몇 사람과 더불어 시내를 거닐다가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옷을 갈아 입으러 마침 여관에
다시 돌아왔을 때 마차 소리가 들려 와서 창가로 다가가
보았더니, 신사 한 사람과 부인 두 사람이
마차로 거리를 치닫고 있는 것이 보였다. 종자의
옷차림을 금방 가려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뜻을
알아차리게 되어 자기가 예기하고 있었던 영광을
친척들에게 알려줌으로써 그들을 적잖이 놀라게 했다.
외삼촌과 외숙모는 온통 경악해 마지않았다. 말을 할
때 그녀가 어색해 하는 태도를 이 사태 자체와
전날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할 때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알아차리지를 못했지만 현재 그들은 그런
집안의 사람들한테 이와 같은 정중한 대접을 받는
것은 그들의 조카를 특히 좋아하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새로운 생각들이 그들의 머릿속을 스쳐 갔을 때
엘리자베드의 감정의 동요는 시시각각 더해 가기만 했다.
그녀는 자신이 불안해하는 것에 자못 놀랐지만 그러한
설레임의 원인 중에서도 다아시 씨가 자기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누이동생에게 자기를 지나치게 잘
말해 놓았을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
걱정이었다. 그리고 유별나게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려고
애쓰다가 혹시 헛돌지나 않을까 그녀는 걱정했다.
만약 상대방이 자기를 보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창가에서 물러섰다. 침착해지려고 노력하며 방 안
여기저기를 거닐고 있으려니까, 외삼촌과 외숙모의
얼굴에 호기심과 놀라움의 빛을 보게 되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다아시 양과 그녀의 오빠가 나타났고 소개라는 무서운
일이 행해졌다. 놀랍게도 엘리자베드는 이 새로운 친구도 역시 자기
못지 않게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램턴에 온 후로 다아시 양이 몹시 자만스런 사람이라고
이미 들어 알고 있었으나 잠시 몇 분간의
관찰로 그녀는 단지 매우 수줍어하는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다. 말을 걸어서 '예'거나 '아니'라고 하는
말 이상으로는 그녀에게 말 한마디를 시켜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아시 양은 키가 큰 편이며 엘리자베드보다는 몸집이
컸다. 열 여섯 남짓했지만 그녀의 몸은 성숙해
있었으며 얼핏 보아 여성답고 정숙하게 보였다.
오빠만큼 용모가 뛰어난 편은 못되었으나 얼굴에는
총명함과 상냥스런데가 있어 보였으며, 태도는 조금도
거만스런 데가 없었으며 온화한 인품이었다.
엘리자베드는 누이동생 역시 지금까지 알아 온 다아시
씨 못지 않게 예리하고 좀처럼 당황할 줄 모르는
관찰자려니 생각해 왔다가 이렇게 판이한 심정을 깨닫게
되자 매우 안도감이 들었다.
한 자리에 그리 오래 앉아 있지도 않았는데 다아시는
그녀에게 빙리도 방문해 오기로 되어 있다고
알렸다. 그녀가 기쁜 뜻을 밝히고 그러한 방문객을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채 하기 전에 벌써 빙리의
빠른 발걸음 소리가 계단 쪽에서 들려 왔고 순식간에
그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에 대한 엘리자베드의
노여움은 그 옛날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설사 그런
기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를 다시 보는 이 순간에
그가 꾸밈없이 성실하게 자기를 표현해 보이는
앞에서는, 그와 같은 감정을 계속 갖는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누구라고 지적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친절하게
그녀의 가족들의 안부를 물어 왔으며, 그때의
얼굴 표정이나 말하는 품은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부담 없게 대해 주는 것이었다.
가디너 부부에 있어서도 그가 흥미 있는 인물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를 보고 싶어했다. 물론
그들 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 사람은 많은 관심을
쏟았다. 다아시 씨와 조카 사이에 행여 무슨
일이라도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가졌던 터라
신중하면서도 진지한 탐색의 눈으로 두 사람을
관찰했다.
이 탐색에서 적어도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다는 충분한
확신을 이끌어 낼 수가 있었다. 여자 쪽의 감정에
대해서는 아직 미심쩍은 데가 있기는 했으나, 남자의
가슴에는 사모의 정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엘리자베드 쪽에서는 매우 할 일이 많았다. 방문객
각자의 기분을 확인하고 싶었으며 자신의 기분을
가라앉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상냥스럽게 대하고 싶었다.
나중 것의 목표는 혹시 실패나 하지 않을까
무척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 성공이 가장 확실했던
까닭은 그녀가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전부터 그녀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빙리와 조지아나는 기뻐했으며 다아시도
같이 기뻐했다.
빙리를 만나는 순간 그녀의 생각은 언니에게로
쏠려 갔다. 아! 그의 생각이 아직 얼마만큼이라고 같은
방향으로 향해지고 있을 것인가 아닌가를 얼마나 알고
싶었던 것일까. 때로 그녀 생각에는 그 사람의
말수가 그 전보다 더 줄어든 것 같기도 했고, 자기
얼굴을 쳐다봄으로써 언니와 닮은 점을 좇고 있는
듯이 보여, 한두 번 마음 속으로 기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록 상상에 불과하더라도 제인의 경쟁 상대
입장에 있는 다아시 양에 대한 그의 태도를 잘못
생각할 여지는 없었다. 양쪽 다 특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빙리 누이동생의 희망을
정당화시킬 만한 일은 두 사람 사이에서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았다.
이 점에 관해서 그녀는 곧 만족했다. 그들이 헤어지기
전에 일어났던 두세 가지의 사소한 사건이
그녀의 절실한 생각으로 해석한다면 그가 애정에 물들지
않고서는 제인을 기억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며, 그리고 그는 과감하게 많은 말을
함으로써 제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심정임이
분명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진정
유감스럽다는 어조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만나 뵌 지가 매우 오래된 것 같습니다. 네더필드에서
함께 춤을 췄던 11월 26일 이후로 서로 못
만난 셈이죠"
엘리자베드는 그의 기억이 그토록 정확한 것을 알게
되어 무척 기뻤다. 그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듣지 않는 틈을 이용해서 자매 여러분들이 다들 롱본에
살고 있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그 질문에도,
그에 앞서 한 말에도, 큰 뜻은 없었으나 그의 표정과
태도는 다른 뜻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자주 다아시 씨 쪽으로 향하지는
않았지만 힐끗 바라볼 때마다 누구에게나 공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고, 그가 하는
말에는 거만함이라든가 많은 사람들을 경멸하는
기분과는 거리가 먼 어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어제
목격했던 그의 태도 개선이라는 것이 결국
일시적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적어도 하루쯤은
지속되었다고 확신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사귀는 일조차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사귀려 하고
또 그가 이렇게 함으로써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그가
공공연하게 업신여기던 자기의 친척들에게까지
은근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또 지난 번 헌스퍼드
목사관에서 있었던 그토록 격렬한 최후의 장면을
상기해 볼 때, 그 변화가 너무나도 크고 그녀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에 놀라운 내색을
감출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가 네더필드에서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있었을 때나
로징즈에서 지체 높은 친척들과 같이 있었을
때도 지금만큼이나 상냥스럽게 굴려고 애쓰고, 자존심과
완강한 과묵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본 일이
없었다. 더우기 지금에 와서는 그의 그러한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온다 하더라도 어떤 중대한
효과가 있는 바도 아닐 테고, 그가 지금 관심을 쏟고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게 되면 네더필드와
로징즈의 비웃음과 비난만을 초래할 것이 아니겠는가.
방문객들은 반 시간 이상이나 그들과 함께
있었으나, 막상 그들이 자리를 뜨려고 일어섰을 때
다아시 씨는 누이동생을 통해서 가디너 부부와
베네트 양이 이 고장을 떠나기 전에 펨벌리로 식사하러
와 달라고 자신과 더불어 청해 주도록 부탁했다. 다아시
양은 평소에 사람을 초대하는 인사에 그다지
익숙해 있지 않아서 수줍은 듯했으나 곧 오빠의 뜻에
따르게 되었다.
가디너 부인은 그 초대에 가장 관계가 깊은 조카가
그것을 받아들일 기분이 되어 있는가 아닌가를
알고 싶어서 그녀 쪽을 바라보았는데 엘리자베드는
외면해 버렸다. 그러나 이 의식적인 회피는 제안을
싫어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순간적인 당황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남편 쪽을 보았을 때, 그는
아주 사교를 좋아하는 터라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했기
때문에 그녀는 용기를 내어 약속을 했고 그래서
다음 다음날로 정해지고 말았다.
빙리는 아직 할 말이 많았고 허어퍼드셔의 친구들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물어 볼 일도 있고 해서
엘리자베드를 틀림없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엘리자베드는 그것은 죄다 자기가
언니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듣고 싶기 때문이라고
해석되어서 기뻤다. 방문객들이 모두 떠나 버리고 나서
그녀는 이런 저런 이유로, 방금 지나간 반 시간을
만족스럽게 돼새겨 볼 수가 있었다.
비록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의 즐거움은 별것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혼자 있고 싶은데다가 외삼촌과
외숙모가 이것저것 묻거나 떠볼 것이 두려워서 그들이
빙리에 관해 좋게 말하고 있는 동안에 거기에
머물다가 곧 옷을 갈아입기 위해 급히 나가 버렸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가디너 부부의 호기심을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우격다짐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추측했던 것보다는
그녀와 다아시 씨와의 친분이 훨씬 두텁다는 것만은
명백해졌다. 그리고 그가 그녀를 대단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또한 명백해졌다. 그리고 그가 그녀를
대단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또한 명백해졌다.
이것저것 짐작되는 바는 많았지만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었다.
다아시 씨에 대해서는 이제는 좋게 생각하고 싶은
것이 그들의 소망이었다. 지금까지 교제해 온
바로는 그에게는 이렇다 할 결함이 없었다. 그의
정중함에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일
그들이 딴 이야기를 참고로 하지 않고 자기네의
기분이나 그의 하인의 보고한 바에 의해 그의 성격을
묘사해 보였더라면, 그를 알고 있는 허어퍼드셔의
사교계 인사들은 그것이 다아시 씨의 일이라고는
인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뭏든 지금으로서는 그 가정부를 믿는 게 이익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네 살 적부터 그를
알아 왔으며 본인의 태도로서는 훌륭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하인의 증언은 가볍게 물리칠 수
없는 것이라고 고려하기에 이르렀다. 램턴에 사는 그들
친구들의 정보로서도 그 증언의 무게를
실질적으로 덜하게 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자존심이 유별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비난할
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자존심을 가졌을지는
모를 일이나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그의
가족이 찾지 않는 작은 시장 도시의 주민들한테 어김없이
그와 같은 평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음이 넓은 사람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많은 선행을 베풀고 있다는 것은 인정받고
있었다.
위컴에 관해서는, 이곳에서는 그다지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행자들은 곧 알게 되었다.
내용인즉 후원자의 아들과 그와의 관계의 중요한 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더비셔를
떠나갔을 때 많은 빚을 남겨 놓아서 결국 그것을 다아시
씨가 나중에 갚아 주었다는 사실은 여러 사람이
아는 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드 편에서는 그녀의 생각이 오늘 밤은
간밤보다 훨씬 더 자주 펨벌리로 향해지는 것이었다.
저녁 시간이 긴 것같이 여겨졌으나 그 저택에 있는 한
사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결정지을 만큼
길지는 못했다. 그것을 명백히 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녀는 그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아니, 마음 같은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없어진 것이다.
그 오랜 기간을 거의 그녀는 미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정을 한 때 그에 대해 느낀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해 온 터였다. 그의 뛰어난 자질을 확인하는 데서
우러난 존경은 처음에는 마지못해 인정했던
것이지만, 얼마 전부터는 자기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았으며, 그러한 감정은 이제 그에 대한 칭찬
덕분에 좀더 친밀한 감정으로 승화되고 그의 성격을
아주 사랑스러운 각도에서 보게 되었는데, 그런
감정은 어저께부터 생긴 것이다.
그러나 자기 마음 속에 유달리 존경이나 존중을
넘어서서 호의를 갖게 한 빼놓지 못할 동기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감사였다. 단순히 전에 자기를 사랑해
주었다는 사실뿐만 아니고, 그를 거절하던 당시
토라져서 심하게 했던 자신의 태도나 그 거절에
덧붙여서 부당한 비난을 마구 퍼부었던 일들까지도
말끔히 용서해 줄 정도로 지금도 자기를 깊이 사랑해
주고 있는 데 대한 감사였다. 자기를 최대의
적으로 보고 필할 것으로 여겨졌던 그가 막상 우연한
만남에서는 다시없이 열렬히 교제를 계속해
나가고 싶어하고, 두 사람의 관계에서 야비한 속셈을
드러내 보이거나 기교한 태도를 취하는 일이 없이
그저 자기의 친지들에게 잘 보이려 했고 그의
누이동생을 자기에게 접근시키려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와 같이 거만했던 사람이 그렇게 변해 버렸는가
생각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며 감사할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랑 때문에, 뜨거운 사랑 때문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그 변화가
자신에게 주는 영향을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결코
불유쾌한 것은 아니므로 고무적인 성질의
것이었다. 자기는 지금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의 행복에 대해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의 행복이
자기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에게 재차 결혼 신청을 하게
할 힘이 아직도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되는 만큼 자기가
그 힘을 발휘하면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얼마나
보탬이 될 것인가, 주로 그런 일들이 알고 싶었다.
그날 밤 외숙모와 조카 사이에 결정지어진 사실은,
다아시 양아 펨벌리에 도착한 그날로 더우기 늦은
아침 시간에 도착하자마자 자기들을 방문해 준 것과 같은
큰 호의에 대해서는 이편에서 제아무리 예의를
다해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지만, 그와 같은
흉내는 낼 수 있는 일이어서 다음날 아침 펨벌리로
그녀를 방문하는 일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래서 가기로 했다.
엘리자베드는 기쁘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그 이유를
자기에게 자문하면 답변할 만한 일이 없었다.
가디너 씨는 아침 식사 후 그녀들보다 먼저 출발했다.
그 전날에 낚시 계획을 새로 꾸며서,
정오까지는 펨벌리에서 몇 사람의 신사들과 만나기로
약속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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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와서 엘리자베드는 빙리 양이 자기를 싫어하는
것은 질투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펨벌리에 나타나면 틀림없이
상대방에게 별로 달갑지 않은 인물이 될 것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쪽에서는 과연 어느 만큼의
정중함을 가지고 교제를 새롭게 할 것인지
궁금해졌다.
저택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현관을 통해서 응접실로
안내되었는데 그곳은 북향이어서 여름철에는
쾌적한 곳이었다. 정원 쪽 창문으로는 저택 뒤켠의
무성한 숲과 높은 언덕과 중간에 있는 잔디밭에
산재해 있는 아름다운 참나무와 스페인 밤나무와 같은
매우 상쾌한 광경을 내다볼 수 있었다.
이 방에서 그녀들은 다아시 양의 영접을 받았는데
그녀는 허어스트 부인과 빙리 양 그리고 런던에서
함께 사는 부인과 앉아 있었다. 조지아나의 대접은 사뭇
정중했지만 당황의 빛이 감돌았다.
물론 수줍음과 혹시 실수라도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나온 것이지만 신분이 낮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거만스럽고 사귀기
힘든 상대라고 생각하기에 안성마춤이었다.
그러나 가디너 부인과 조카는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고
걱정스럽게 생각했다.
허어스트 부인과 빙리 양은 그저 무릎을 조금 굽혀서
그녀들을 알아보았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는데, 그러한 침묵은 늘 어색하기
마련이다. 그 침묵을 처음 깨뜨린 사람은 무엇인가 화제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나머지 두 사람 중
누구보다도 바른 예절을 명백하게 보여 주었던, 앤즐리
부인이라는 고상하고 인상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그녀와 가디너 부인 사이에 그리고 때로는
엘리자베드가 가세해서 대화가 어어져 나갔다.
다아시 양은 마치 대화 속에 끼여들 만큼의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남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면 짧게 말을 꺼냈다.
엘리자베드는 얼마 안가 빙리 양이 자기를 자세히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으며 특히 자기가
다아시 양에게 한마디라도 말하면 어김없이 그녀의
주의를 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말하기 거북한 거리에 자리잡지만 않았어도 이러한 관찰
때문에 그녀가 다아시 양에게 말을 건네는
일이 방해받지는 않았겠지만, 그녀로서는 이야기를 많이
할 필요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유감스럽지는
안았다. 자기 생각만으로도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몇 사람의 신사들이 방 안으로 들어서기를
시시각각 고대하고 있었다. 이 저택의 주인이 그
속에 들어 있기를 바라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해서 그
소망과 두려움의 어느 편이 더 강한 것인지
자기로서는 결정짓기 못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태로
빙리 양의 소리를 듣지 않은 채 15분 가량 앉아
있다가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쌀쌀맞은 그녀의 질문은
받고 나서 깜짝 놀랐다. 그녀 역시 쌀쌀맞게
대답을 했더니 상대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방문으로 일어났던 다음 변화는 하인들이
냉육이나 과자나 계절 중 제일 가는 과일들을
골라 왔기 때문에 일어났으나, 이것 역시 앤즐리 부인이
다아시 양에게 몇 차례 의미 있는 눈짓이나
미소를 보냄으로써 그녀에게 그 역할을 상기시켜 준
후에 가서야 겨우 이루어졌다.
이렇게 해서 전원은 손이 심심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골고루 다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먹는 일에는 빠지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름답게 피라밋 형으로 쌓아올린
포도나 넥타린 복숭아와 여느 복숭아가 그들을 바로
식탁 주위에 모이게 했다.
그렇게 식사하고 있는 동안에 엘리자베드는 다아시
씨의 출현에 대해 자기가 두려움과 소망 중 어느
편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는가를 그가 방에 들어설 때의
압도적인 감정에 의해 결정지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그때가 오고
보니 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라는 감정
쪽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들어서자
그것을 후회하는 심정이 되고 말았다.
그는 저택에 와 있는 두세 명의 신사들과 강 기슭에서
낚시에 열중에 있던 가디너 씨와 잠시 함께
있었는데, 가디너 가의 숙녀들이 그날 아침 조지아나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는 말만을 듣고서 그를
남겨 두고 돌아와 버린 것이다. 그가 나타나자 금방
엘리자베드는 현명하게 완전히 평안한 마음으로
침착해 있으려고 결심했다. 그가 처음 방에 들어서자 두
사람에 대한 일동의 혐의가 일깨워진데다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지 않는 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보게 된 그녀로서는 그러한 결심은
더욱 더 필요한 것이기는 했지만 그래서 더욱 지키기가
힘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빙리 양의
얼굴만큼이나 호기심의 빛이 강하게 감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그녀가 그 호기심의 대상 중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넬 때는 언제나 미소가 얼굴에 흐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직 그녀는 질투에 의해 절망 상태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며 다아시 양에 대한 관심도 결코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아시 양은 오빠가 들어오자
더욱 입을 열려고 노력했다. 엘리자베드는 그가
누이동생과 자기를 접근시키려 많은 애를 썼고, 양편 다
고루 말을 시키기 위해 되도록 솔선하는 것을
보았다. 빙리 양도 이 상황을 완전히 알아차리고 화가
난 나머지 염치가 없어져서 첫번째 기회를
노리기가 무섭게 냉조의 빛을 띠었다.
"저어, 엘리자 양, ㅇㅇ주 의용군이 메리튼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게 아녜요? 귀댁에게는 아주 큰
손실이겠네요."
다아시 앞에서 상대편은 위컴의 이름을 입에 담을
용기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곧
상대방 마음 속에 떠오른 사람은 바로 그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그에게 얽혀 있는 여러
가지가 일순 그녀를 슬프게 했지만 악의에 찬 이 공격을
막으려 힘껏 노력하면서 이윽고 초연한 어조로
그 질문에 답했다. 이야기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를
힐끗 보니까 다아시는 상기된 얼굴로 열심히
자기를 바라다보고 있었으며, 그의 누이동생은 당황한
나머지 눈을 치켜 뜨지도 못하고 있었다.
빙리 양이 그때 둘도 없이 친한 친구에게 자기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고 있는가를 알았더라면
틀림없이 그런 비꼬는 말은 삼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로지 엘리자베드가 특히 호의를 갖고 있는
것이 것같이 보이는 남성의 이야기를 끄집어냄으로써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신경을 건드려서
그녀에 대한 다아시의 평가를 깎아 내리는 데만
급급했으며, 나아가 그녀의 가족 몇몇이 그 연대와의
접촉을 통해 저지른 모든 우행을 아울러 그에게
상기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미수로 그친
다아시 양의 줄행랑 사건은 한마디도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엘리자베드 이외에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오빠는 그것을 특히 빙리 집안 사람들에게는
감추려 고심하고 있었다.
사연인즉 엘리자베드는 전에도 추측해 왔던 바이지만,
다아시로서는 빙리의 집안이 누이동생의 집안이 되어지기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확실히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 일이 빙리를 베네트 양에게서 떼어버리려는
노력에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까지는 품지
않았겠지만 친구의 행복에 대한 그의 심려에 무언가
보탬이 될 것으로 여겼으리라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의 태연한 태도는 곧 그의 감정을
가라앉혀 놓았다. 더우기 빙리 양은 초조해지고
실망도 했던 터라 더 이상 위컴의 일에 가까이할 용기도
없어졌고, 조지아나 역시 더 이상 입을 뗄
엄두는 나지 않았지만 때맞춰 평안을 되찾았다. 눈이
마주칠까 가장 두려웠던 오빠는 이 문제에 그녀가
관계돼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생각을 엘리자베드에게서 돌려버리려는
꿍꿍이에서 나온 이 문제가 오히려 엘리자베드에 대한
그의 생각을 더욱 호감 가게 만든 것 같았다.
그들의 방문은 앞서 말한 문답이 끝난 뒤 그리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다아시 씨가 그들을 마차 있는
곳까지 배웅 나간 사이에 빙리 양은 엘리자베드의 인품,
태도, 의복 등을 비평해 가며 자기의 노여움을
풀고 있었다. 그러나 조지아나는 끼여들고 싶지가
않았다. 다만 오빠의 칭찬으로 충분히 그녀에게
호의를 품을 수 있었다. 오빠의 판단에 잘못이 있을 리
없었다. 더우기 오빠는 그녀로 하여금
엘리자베드에게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점 말고는
아무것도 찾아낼 여지가 없을 만큼 칭찬하지
않았던가. 다아시가 응접실로 되돌아왔을 때 빙리 양은
누이동생에게 투정했던 몇 가지를 다시 한 번
그에게 되뇌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소리 높여 말했다.
"오늘 아침의 엘리자 베네트는 그렇게 초췌해 보일
수가 없었어요, 다아시 선생님. 겨울 이래로
그토록 변해 버린 사람은 보다가도 처음이예요. 얼굴
빛이 검어지고 거칠어졌으니 말예요! 루이저와
저는 마침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 말 걸 그랬다고
말하고 있는 중이예요."
그런 말을 듣게 된 다아시로서는 별로 즐거울 게
없었지만, 그로서는 그녀가 약간 그을은 것 말고는
별로 달라진 것을 못 느꼈으며 그것도 여름철에
여행하다 보면 생기는,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냉랭하게 대답하는 걸로 만족했다.
그녀가 대답했다.
"저의 입장으로는. 사실대로 말해서 그 사람에게
아름다운 데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얼굴은
너무 말랐고 안색에는 광택이라곤 찾아볼 길이
없구요, 이목구비도 전혀 예쁘지가 못하지요. 그 사람의
코에는 개성이 없어요. 콧날이 뚜렷한 데가
없거든요. 치아는 그런대로 괜찮다 하더라도 그저
보통이구요, 눈은 말이죠, 때론 너무너무 이쁘다고들
남들이 말했다고 하지만 저에겐 그렇게
두드러진 데가 있다고 생각되지가 않아요. 날카롭고
심술궂은 인상이어서 전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어요. 더우기 도대체 그 사람의 태도에는 고상한
데도 없는 주제에 자신감은 있어서 이건 정말
참기가 힘들어요."
다아시가 엘리자베드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빙리 양으로서는 이것이 자기를 자천하는 최선의
방법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화가 난 사람은 늘
현명하지 못한 법이다. 그래서 그가 드디어 약간
짜증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그녀는 예기했던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단호히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입을 열게
하려고 마음먹고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잊지 않고 있지만, 우리들이 처음 허어퍼드셔에서
처음 그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미인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모두들
얼마나 놀랐다구요. 전 지금도 특별히 기억하고
있지만, 어느 날 밤에 그 사람들을 네더필드로
식사 초대를 하고 난 뒤에 선생님께서 '저 여자가
미인이라구! 이제부터 그 여자의 어머니를 재주 있는
여자라고 부르고 싶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나중에 가서 그 사람도 선생님께 점점 잘
보이게 되었나 보죠. 한땐 제법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셨겠죠"
"그렇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되어 다아시가 대답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처음 그녀와 알게 되었던 때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지
몇 달이 되니까요."
그리고 나서 그는 자리를 뜨고 말았다. 빙리 양은
혼자 남아서 자기에게만 고통을 주는 일을 그에게
억지로 말을 시켰다는 만족을 만끽하게 되었다.
가디너 부인과 엘리자베드는 돌아오는 길에 방문중에
일어났던 모든 일에 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특히 그녀들이 다 함께 관심을 갖게 한
일은 제외되고 말았다. 그녀들이 만났던
사람들의 용모나 행동은 모조리 논의되었으나 그
중에서도 그녀들의 주의를 끌었던 사람에
대해서만은 예외였다.
두 사람은 그 사람 자신을 빼놓고는 그 사람의
누이동생이라든가 친지들이라든가 가옥 또는 과일과
같은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서로 다 이야기했으나,
엘리자베드는 가디너 부인이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으며, 가디너
부인은 조카가 그 이야기를 끄집어 냈더라면 아주
기뻐했을 것이다. @ff
46

램턴에 도착했던 날 제인에게서 편지가 와 있지
않아서 엘리자베드는 크게 실망했지만 그 실망은
바야흐로 거기에서 아침을 보낼 때마다 새로움을 더해 갔다.
그러나 사흘째 아침에 언니한테서 편지를 두 통씩이나
받게 되어 그녀의 불평도, 또 그중 한 통에는
다른 곳으로 잘못 배달되었다는 표시가 있어 언니의
명분이 이럭저럭 서게 되었다. 제인이 수신인의
주소를 매우 서툴게 썼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편지가 배달되었을 때 그들은 막 산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때라, 외삼촌과 외숙모는 그녀가
조용히 남아 편지를 읽게 해주려고 자기들끼리 떠나
가고 말았다. 잘못 배달된 것부터 읽지 않으면
안되었다. 닷새 전에 씌어진 편지였기 때문이다.
서두에는 지방에서 있을 법한 소식과 함께 조촐한
파티라든가 초대 등에 관한 보고가 실려 있었는데,
뒷부분에는 날짜가 하루 늦게 되어 있었고
겉보기로도 동요된 심정에서 쓴 것이었으나, 더 중요한
정보를 전해 주고 있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사랑스런 리지, 전혀 예기치
못한 중대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어. 그러나 혹시
내가 널 놀라게 해주지나 않겠는지.... 안심해도
좋아요, 우린 모두가 잘 있으니까. 이야기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니라 바로 가엾은 리디어에 관해서야.
간밤에 모두들 막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 때
포스터 대령한테서 속달이 왔는데 리디어가 장교 한
사람과 스코틀랜드로 줄행랑을 쳐버렸다지 뭐냐.
사실대로 말하면 워컴과 함께 말이다! 내가 얼마나
놀랐겠는지 상상 좀 해봐라. 그런데 키티에게는
그다지 의외로 생각되지 않는 모양이더라. 정말
너무너무 유감이란다. 쌍방이 이토록 무분별하게
이럴 수가 있겠느냐 말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일이
최대한 잘되어지기를 바라고 있고 또 그의
성격이 오해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생각이 없고
경솔한 사람이라고는 쉽게 믿어지지만 이번
행위(우리들은 그것을 기뻐하기로 하자)는 마음 속
깊이 나쁜 마음에서 저지른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어. 리디어를 택한 것은 적어도 이익을 바라고
한 짓은 아니야. 왜냐하면 그는 아버님이
그애에게 넘겨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 가엾게도 어머님께선 몹시
슬퍼하고 계셔. 아버님께선 훨씬 더 잘 참고 계시다.
그 사람에 대한 나쁜 점을 양친께 알리지 않은
것을 난 여간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 우리들
자신도 그것을 잊어야 하는 거야. 두 사람은
토요일 밤 열두 시경에 떠나간 것이라 추측되지만
어제 아침 여덟 시까지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 그리고 곧 속달이 띄워진 거야. 사랑스런
리지, 두 사람은 10마일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을
통과했음이 틀림없는 거야. 포스터 대령께서 곧
이곳으로 올 눈치야. 리디어는 대령 부인에게 몇
줄의 글귀를 남겨 두고 자기네의 의향을 알려주었던
거야. 이만 줄여야 할 것 같아. 불쌍한 어머니
곁을 너무 오래 떠나 있을 수가 없으니까 말야. 네가
이 편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믿지만
그건 역시 내가 뭘 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란다.

자기 자신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동시에
자기의 감정을 알지도 못한 채로 엘리자베드는 이
편지를 다 읽고 나자, 또 한 통의 편지를 손에 들고서
무섭게 읽어 나갔는데 그것은 하루 후에 쓴
것이었다.

사랑하는 리지, 지금쯤은 내가 급히 써 보낸 편지를
받아 봤을 것으로 생각해. 이번 편지는 좀더
내용이 분명했으면 하는데 그러나 별반 시간의 제한은
받고 있지 않은데도 내 머리가 혼란스럽기
때문에 이론정연하기란 도저히 장담하기 힘들 것 같아.
사랑하는 리지, 난 지금 무엇을 쓰고 싶은가를
모를 지경이지만 너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게 되는구나.
그것도 지체할 수 없이 말야. 위컴 씨와 가엾은
리디어 사이의 결혼은 일단 경솔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제 와서 우리들로서는 그 결혼이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랄 수밖에 없게 됐어.
왜냐하면 두 사람이 스코틀랜드로 안가지 않았나 하는
이유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야. 포스터 대령님이 엊그제
브라이튼을 출발해서 속달이 도착한 지 몇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어제 이곳으로 오시게 된 거야.
리디어가 대령님 부인 앞으로 써서 보낸 짧은
편지로 두 사람은 그레트너 그린으로 가려고 한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데니라는 사람이 잠깐 들러
알리는 바에 의하면, 위컴은 거기로 갈 생각은 없었으며
리디어와 결혼할 생각도 전혀 없다는 거야.
대령에게도 그대로 전해지자 펄쩍 뛰시면서 두 사람의
뒤를 쫓을 생각에서 브라이튼은 출발했던 거야.
클래팸까지는 쉽사리 뒤쫓을 수가 있었지만 그 이상은
곤란했던 모양이었어. 그곳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임대 마차에 갈아타고 에프솜에서 타고 왔던
이륜마차를 돌려보냈기 때문이지. 그 다음에 내가
안 사실이라고는 두 사람이 런던 가를 치닫고 있는 것이
누군가의 눈에 띄었다는 일분이었어. 난 뭘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를 모르겠어. 대령님께선 런던
방면으로 모든 손을 다 써 가며 조사하고 난 뒤로
바아네트와 해트필드에 있는 통행세관문이고 여관이고
할 것 없이 샅샅이 추적해 보았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그런 사람들이 통과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다고들 했기 때문에 허어퍼드셔까지
가시게 됐다는 거야. 더할나위없이 친절하신 관심을
가지고 대령님께선 롱본까지 오시게 되었는데 정말
믿음직스러운 마음씨로 걱정의 빛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어. 난 그 내외분에게 진심으로 죄송하게
여기고 있어. 그 누구도 그 두 분을 나무랄 수가 없지.
사랑하는 리지, 우리들의 고통은 더할나위없이
크단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최악의 결과가 된 것으로
정해 버리고 계시지만 난 그분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가 않아. 여러 사정이 있어 두 사람은
당초의 계획을 추진시키기보다는 런던에서 내밀히
결혼하는 편이 적합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 그가 리디어 또래의 어린
여성에게 안 좋은 속셈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애가
그렇게나 모든 것을 팽개쳤겠니? 그럴 리가 없지!
그러나 대령님께서 두 사람이 결합되었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나서는
슬퍼지기만 해. 나 자신의 희망을 피력했더니 대령님은
고개를 저으시면서 위컴이란 사람은 신용할 수
없는 사나이라고 말씀하셨어. 가엾게도 우리 어머닌
정말 병이 나셔서 방에만 계시게 되었어.
어머니께서 건강을 되찾으시면 얼마나 좋겠냐만
기대하기가 어려워. 아버지에 대해 말하자면 이렇게나
마음 괴로와하시는 것을 난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
가엾은 키티는 두 사람이 애정을 감추어 온 사실에
대해 몹시 분개하고 있지만 본래 내밀적인 문제여서
이상하지는 않아. 귀여운 리지, 네가 이러한
통절한 장면은 얼마간이라도 보지 않은 것만도 난 정말
기쁘게 생각하고 있어. 그러나 이제는 최초의
충격도 가라앉고 해서 너의 귀가를 학수고대한다 해서
잘못일까? 그러나 사정이 허락하지 않으면 꼭
그렇게 해달라고 내 속만 차리고 싶진 않아. 그럼 잘
있어! 내가 다시 펜을 잡게 된 것은 조금 전에
정녕 말하지 않으려 했던 일을 말하기 위해서야. 사정이
이쯤 되고 보면 여러분이 다 되도록 빨리
이리로 와 달라고 간청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어. 나는
외삼촌과 외숙모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터라 주저 없이 부탁할 수가 있어. 그리고 외삼촌께는 그
밖에도 부탁드릴 일이 있어. 아버님께선
리디어를 찾기 위해 포스터 대령님과 같이 곧 런던으로
출발하시게 돼. 무슨 일을 하실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지만 과도한 심로로 고민하시는 중이라,
최선이며 확실한 수단을 취하기가 아마도 어려우실
거야. 게다가 포스터 대령님은 내일 밤에는
브라이튼으로 돌아가셔야 해. 이렇게 위급한 때일수록
외삼촌의 조언과 조력만큼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거야.
외삼촌께서도 내 기분을 금방 이해해 주시게 될
것이고 그리고 난 그분의 호의를 의지하고 싶어.

"아! 어디, 어디에 외삼촌이 계실까?"
편지를 읽고 나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엘리자베드가 외쳤다. 중요한 시간을 한시라도 헛되이
하지 않고 그의 뒤를 쫓으려 했지만 그녀가 문쪽으로
가자 다아시 씨가 거기에 서 있었다. 그녀의
창백해진 얼굴과 성급해진 태도를 보자, 그는 크게
놀랐다. 입을 뗄 만큼 그가 정신차리기도 전에
그녀는 리디어가 처해 있는 입장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어 황급히 소리쳤다.
"실례합니다, 용서하세요. 급한 볼일로 한시바삐
가디너 씨를 찾아야겠어요."
"이게 대체! 웬일이십니까?"
정중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열을 담아서 그가
외쳤다. 그리고 나서 정신을 가다듬으며,
"1초라도 붙들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가디너 씨
내외분을 찾는 데 저나 하인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군요. 그러니까 혼자선
못 가십니다."
엘리자베드는 주저했지만, 무릎이 덜덜 떨려서 두
사람을 추적한다 해도 제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하인을 다시 불러서 거의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를 모를 정도로 숨을
헐떡거리면서 곧장 주인 내외분을 모시고 오리고
명령했다.
하인이 방을 나가 버리자 그녀는 자기 몸을 가눌 수도
없이 주저앉아 버렸는데, 보기에도 딱할 정도로
기분이 좋지가 못한 것 같아서 다아시는 그녀 곁을 떠날
수도 없었고 부드럽고 동정에 넘친 어조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녀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힘을 내시기 위해 뭔가
좀 드실 것이 없을까요? 포도주 한 잔을
가져오게 할까요? 퍽 고통스럽게 보이십니다."
"아녜요, 괜찮아요."
그녀는 스스로 원기를 되찾으려고 애쓰면서 그녀는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어요. 전 괜찮아요. 단지 롱본에서 막
도착한 어떤 무서운 통지로 해서 괴로울
뿐이에요."
그 말을 하고 나자 그녀는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2, 3분
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아시는
불안 속에 사로잡혀 자신의 근심을 앞뒤가 맞지 않는
말로 지껄이다가 침묵 속에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가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전 제인 언니한테서 정말 무서운 편지를 막
받았어요. 누구에게도 감추지 못할 성질의 일인지요.
막내동생이 친구들한테 뛰쳐나와, 남자하고 눈이 맞아
도망을 치고 말았대요. 위컴인가 하는 남자가
하자는 대로 되고 말았다는 거예요. 그들은
브라이튼에서 함께 도망을 치고 말았어요. 그분을 잘
알고 계시는 선생님은 다음 사정을 잘 아실 테죠.
동생은 돈도 안 가졌고 이렇다 할 친척도 없고 해서
그분의 마음을 끌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앤 영원히 구제 받지 못하게 돼버린
거예요."
다아시는 너무 놀라서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더욱 혼란된 어조로 덧붙여 말했다.
"방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전 그분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 일의 얼마간이라도(제가 알고
있던 일을 얼마간이라도) 가족한테 알려 두었으면 좋을
텐데! 그분의 성격을 알았던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모든
일이 너무 늦어지고 말았어요."
"정말로 비통합니다."
다아시가 말했다.
"슬픔을 아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인가요.... 너무나도 정확한 사실인가요?"
"정말 그래요! 일요일날 밤에 브라이튼을 두 사람이
떠났는데 런던까지 수소문해 거의 알았지만, 그
이상은 안되었어요. 스코틀랜드로 안간 것만은
분명하지만서도"
"그래서 동생을 되찾을 어떤 조치라도 취하셨나요?"
"아버님께서 런던으로 올라가시고 제인 언니가
외삼촌께 곧 원조를 청하는 편지를 띄웠어요. 30분
내에 우리들이 출발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게 돼버렸지요.... 별 수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마음을 돌릴 수 있겠어요? 두 사람을 어떻게 찾을
수가 있겠어요? 전혀 희망 없는 것이지요. 이건 정말
지나친 일이에요!"
다아시는 그것을 인정하며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저의 이 눈이 그 사람의 정체를 꿰뚫었을
때... 아! 제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더우기 용기 내서
해야 할 일을 알았던들! 그러나 그걸 전 몰랐지요....
지나친 일이 아닐까 싶어 두려웠지요. 이건 너무너무 비참한
실수예요!"
다아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음울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가며 방 안
여기저기를 거닐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곧 그것을 보게 되자 금방 이해가 갔다.
그녀의 매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가족의
약점이 이토록 백주에 폭로되어 최악의 치욕이 이와
같이 확대되고 만대서야. 모든 일이 쇠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녀로서는 의아해 할 수도 책망할 수도
없었지만, 그가 자신을 억제하고 있다는 확신도
그녀의 쓰린 가슴을 조금도 달래 주지 못했으며, 고뇌도
가벼워지기란 어려웠다. 반면에 자기 자신의
소원을 이해시키기에 안성마춤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애정이 허망해지고 만 현재만큼 그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가 있다고 마음 속 깊이 느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은 그녀의 마음 속으로
침입해 들어갈 수는 있었으나 그것을 독점할
수는 없었다. 리디어(그녀)가 모두에게 날라다 준
굴욕과 불행이 이윽고 자기의 모든 사사로운
걱정을 삼키고 말았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며
엘리자베드는 이내 다른 모든 것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몇 분 동안 침묵이 흐른 후에 상대방
목소리로 겨우 제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상대편은 동정을 보여 주는 반면 자제하는 태도를
보여 가며 말했다.
"당신은 아까부터 내가 여기에 안 있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셨겠지만 내 입장으로서도 여기에 남아
있겠다고 간청할 만한 변명거리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쓸모 없는 걱정이나마 진정으로 하게
되는군요. 나로서는 그 고통을 덜어 드릴 수 있는
말이나 뭔가 할 수만 있다만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러나
당신한테서 감사하다는 말을 듣자는
의도에서라고 해석될지도 모를 허망한 소망을
말함으로써 당신을 만나지 못하게 되겠죠"
"예, 그래요. 다아시 양에게 우리들을 대신해서
사과 드려 주세요. 아주 급한 일로 집을 떠나게
되었다고요. 이 불행한 일은 되도록 오랫동안
감춰 두세요. 하긴 그다지 오래 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요."
그는 즉석에서 비밀로 하겠다는 것을 서약하고, 다시
한 번 그녀의 재난에 대한 유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바랄 수 있는 일보다 더욱 기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그녀의
가족들에 대한 인사말을 남기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가 방 밖으로 나갔을 때 엘리자베드는 더비셔에서
여러 차례 만났을 때와 같은 온정이 어린
관계에서 서로 다시 만나기는 이젠 틀린 일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처럼 모순과 변화에 찬 지금까지의 교제를
돌이켜 생각해 볼 때, 그전 같으면 교제가 끊어진
것을 기뻐했을 감정이 이제 와서는 그 교제를 잘 되길
바라게 된 전말에 그녀는 탄식했다.
감사와 존경이란 게 애정의 가장 좋은 기반이라면
엘리자베드의 그러한 감정의 변화는 있을 수 없는
바도 아니며, 잘못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가 못하다면... 다시 말해서 그러한 근거에서
생겨나는 애정은, 상대방과 처음 만나 얘기조차
나누기도 전에 생겨나는 것으로 흔히 묘사되는 애정에
비하여 불합리하거나 부자연스럽다고 한다면, 그녀가
위컴에 대한 호감에서 나중 방법을 약간 시도해
보았다가 그것이 별로 여의치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보다
덜 재미있는 애정의 방법을 추구하는 데 대한
변명거리가 된다는 것을 빼놓고는 어떤 사실로도
그녀에게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녀는 그가 떠나가 버린 것을 애석하게 여기면서
리디어의 비행이 이토록 빨리 가져다 준 이 실례를
염두에 두고 그 가증스런 행위를 곰곰 씹어 볼수록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제인에게서 온 두 번째의
편지를 읽고 난 후부터는 위컴이 리디어와 결혼할
것이라는 희망은 전혀 못 가지게 되었다. 그러한
기대감으로 자기의 기분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는 제인
이외엔 아무도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와 같은 진전에도 그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첫번 편지 내용이 아직 마음을 점하고 있는
동안에는 위컴이 돈을 목적으로 결혼했으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여자하고 결혼하려는 데 대해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으며, 리디어가 어떻게 해서
그런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처럼 보였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나도 자연스런 일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애정의 대상으로서는 리디어는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리디어
입장으로서도 결혼할 의사가 없이 고의적으로 줄행랑에
끼여들었다고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그녀 정도의 덕성과
지성으로는 값싼 희생물이 되는 일에서 몸을
지켜 나갈 힘이 없다고 믿는 것은 과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허어퍼드셔에 연대가 있었을 동안 리디어가 그를
좋아했었다는 사실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리디어는 유혹만 받게 되면 누구에게나 자기를 맡겨
버린다는 확신이 서게 되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자기에게 관심이 있다고 여겨지기만 하면, 때로는 이
장교가 또는 다른 장교가 그녀의 마음에 들곤
했던 것이다.
그녀의 애정은 끊임없이 변해 갔지만 그 대상이 없을
때라고는 없었다. 그러한 딸을 방임해 두고
자칫 뜻을 받아 주었다는 나쁜 일... 아! 그녀는 더할
수 없는 고통으로써 그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더 많은 일을 듣고 싶고 보고 싶었으며 또 발칵
뒤집힌 가정에서 지금으로선 전부 제인 한 사람의
어깨에 걸려 있기 십상인 그녀의 심적 수고를 그녀와
함께 나누기 위해 그 현장에 같이 있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집을 비우시고 어머니는 힘을 낼 수가 없어
늘 누군가가 붙어 있어야 할 판이었다.
리디어에게 어떤 조처를 하지 못하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외삼촌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졌으므로 그가 방에 들어올
때까지의 그녀의 초조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디너 부부는 하인의 말로 조카가 갑자기 병에라도
걸리지 않았나 싶어 놀라서 급히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녀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곧 두 사람을
안심시켰으며 불러오게 한 이유를 열심히 설명해 주고
두 통의 편지를 소리내어 읽었으며 두 통 째의 추신
부분은 떨릴 정도로 힘주어 가며 천천히
읽어 나갔다.
리디어는 가디너 부부의 마음에 드는 아이는
못되었으나, 크게 괴로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리디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 사건에 휩쓸려고 만
셈이다. 먼저 경악과 공포의 탄식 소리를
지르고 나서 가디너 씨는 힘닿는 데까지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엘리자베드는 그 정도의 일은
기대했으나 눈물어린 감사를 했다.
"그렇지만 펨벌리 일은 어떡하나?"
가디너 부인이 말했다.
"존이 그러는데, 네가 우리를 부르러 보냈을 때
다아시 씨가 여기에 있었다며... 그랬었니?"
"그래요. 그래서 제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말씀드렸어요. 그 일은 잘 해결 지었어요."
"아니 잘 해결 지었다구!"
상대방은 엘리자베드가 준비를 하기 위해 자기 방으로
뛰어갔을 때 혼자 되뇌었다.
"그래 두 사람 사이는 그애가 사실을 밝힐 정도가
돼버렸다는 건가! 아, 그게 어떤 사이인지
알았으면 좋겠다만!"
그러나 그 소원은 소용없었다. 아니, 고작해야 그
뒤에 계속된 바쁘고 혼란스러운 시간 동안 그녀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될 뿐이었다. 한편
엘리자베드는 게으름을 피울 만큼 여가가
있었더라면 자신과 같은 비참한 사람에겐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일은 없는 법이라고 믿은 채로
있었겠지만, 마침 그녀에게도 외숙모만큼이나 할 일이
있었다.
특히 급히 출발하는 데에 대한 거짓 구실을 말해 가며
램턴의 친구 모두에게 편지를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자 모든 일이 마무리
되었으며, 그 사이에 가디너 씨가 여관비 계산을
했으므로 이제는 떠나는 일밖에 남지가 않았다.
그리하여 오전 중의 비참했던 모든 일이 있었던 뒤로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짧은 시간에 마차에 몸을 싣고
롱본을 향하게 되었다. @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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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그 일을 생각해 보았다만, 엘리자베드야."
마차가 시내를 벗어나자 외삼촌이 말했다.
"사실인즉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 이 사건에 대해서는
그 전보다는 훨씬 너의 언니와 같은 판단을
하게 되는구나. 보호자도 친구도 결코 없지 않은 터라
현재 자기 부대의 대령 집에 체류 중인
소녀에게 제아무리 젊은 남자일지라도 그런 음모를
꾸민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나는 최선의
희망을 갖기로 했다. 그 친구도 그애의 친구들이
나서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겠니? 그리고 그 친구가
이토록 포스터 대령님에게 무례한 짓을
저질러 놓고서도 연대로부터 후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느냐 말이다? 그 친구의 유혹은 그런 위험을
저지를 만한 것은 못되는 것 같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엘리자베드는 일순 밝은 기분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정말이야."
가디너 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나도 외삼촌의 의견과 같게 됐어. 품위로나 명예로나
이익으로나 너무도 엄청나게 어긋나는
일이니까, 그 사람으로서도 도저히 그런 죄를
범하지는 못할 거야. 나는 또 위컴을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리지야, 넌 그 사람이
능히 그런 짓을 할 사람이라고 단정해 버릴 만큼
전적으로 그 사람을 불신할 수 있겠니?"
"자기의 이익을 무시해 버릴 수야 없겠지요. 그렇지만
딴 일 같으면 뭐든지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사람으로 알아요. 정말 말씀하신 대로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전 그렇게 생각할 용기는 못
가졌어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두 사람이 왜 그
길로 스코틀랜드까지 가 버리지 않았을까?"
"첫째로"
가디너 씨가 대답했다.
"두 사람이 스코틀랜드에 가 있지 않다는 절대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는 거다."
"어! 그러나 두 사람이 이륜마차에서 임대 마차로
갈아타고 간 사실은 그러한 가정을 가능케
하거든요! 더우기 바아네트 길에서도 두 사람이
지나갔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지요."
"그렇다면 두 사람이 런던에 가 있는 것으로 하자.
런던에 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물론
피신하려는 목적이지 달리 각별한 목적은 없겠지만.
쌍방 서로가 돈을 푸짐하게 가졌을 리는 없는
형편이라, 별로 급한 건 없지만 스코틀랜드보다는
런던에서 결혼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야."
"그러나 왜 이토록 비밀에 부쳐 두지요? 왜 알려지기를
두려워할까요? 무슨 이유로 결혼을 내밀하게
덮어두려는 건지요? 아, 아니, 아니 그럴 턱이 없어요.
그 사람하고 제일 친한 친구분도 제인의
설명에 따를 것 같으면 그 사람은 리디어 하고는
결혼할 의사가 없다고 믿고 있어요. 위컴이란 사람은
얼마간 돈이 없는 여자하고는 절대로 결혼하지를
않습니다. 그런 짓을 할 수가 없는 위인이에요.
게다가 리디어에게는 어떠한 자격이
있나요.... 젊음과 건강과 명랑한 성품 외에, 그
사람이 좋은 혼처 자리를 얻어 득볼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그애를 위해
저버릴 만한 어떤 매력이라도 그애에게 있단
말예요? 연대 내에 있어서의 불명예가 된다는 걱정이
그애와의 파렴치한 줄행랑을 억제하는 데
얼마만한 힘이 됐는지 저로서는 판단이 서질 않아요.
왜냐하면 이런 일을 저지르게 되면 어떤 결과가
되는지를 전 전연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외삼촌의 또 하나의 반대 의견에 대해서도 그게 잘
맞아떨어질 것 같지 않아 걱정이군요. 리디어에게는
간섭하고 나설 만한 오빠가 하나도 없는 터이고,
그 사람은 또 우리 아버지의 태도와 그리고 자기
가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한가한 채로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점 등을 미루어 보아서 이런
결과가 돼버려도 아버지가 여느 부친처럼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모를 일이죠"
"그러나 리디어가 그 사람의 사랑을 차지하는 것을
빼놓고는 모든 것을 죄다 잃어 가면서까지 그
사람하고 결혼 아닌 다른 조건으로 동거하는 데
동의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니?"
"아무래도 그렇게 여겨져서 정말로 가슴이 아파져요."
엘리자베드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대답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내 동생의 품위라든가 도덕에 대한
관념은 의심받을 만하지요. 그러나 사실은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를 모르겠어요. 혹시 제가
동생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구요. 그러나
그애는 매우 어리기 때문에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배우지 못했거든요. 더우기 반 년 동안은
아니 일 년 동안에는 쾌락과 허영에 몸을
내맡기다시피 했었죠. 정말 게으름이나 피우고 천박하게
시간을 보냈었고, 그저 되는대로, 생각나는 대로
지내도록 방임되다시피 한 거예요. ㅇㅇ주 의용군이
메리튼에 주둔한 후부터는 연애나 시시덕거리는
일이나 장교들 일 이외에는 동생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동생은 그런 일만 생각하고 입에
담았고 타고난 강렬한 감정을 더 한층 강하게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는지요. 다정다감하기 위해
정신이 없었던 거예요. 더우기 위컴은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모든 인간적인 매력과 말솜씨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저희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죠"
"너도 알고 있겠지만"
외숙모는 그렇게 말했다.
"제인은 위컴이 능히 그런 짓을 할 걸로 단정할 만큼
나쁘게 보질 않던데"
"제인 언니가 누굴 나쁘게 보는 적 있나요? 과거의
행위야 어떻든 간에, 확실한 증거가 나타났을
때까지는 그런 짓을 할 만하다고 제인 언니가 단정할
사람이 어디 있나요. 그러나 제인 언니도 나
못잖게 그 사람이 어떤 위인인가를 알고 있어요. 우리
둘이는 그 사람이 모든 의미에 있어서 방탕한
사람이며, 성실성도 염치가 없고, 게다가 남에게 아첨
잘하는 것에 못지 않게 거짓되고 기만성인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런 일들을 넌 정말 샅샅이 알고 있느냐!"
그녀가 어떤 연유로 그러한 일을 알게 되었는지 자못
호기심에 마음 태우며 가디너 부인이 물었다.
"정말 알고 있어요."
엘리자베드가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며칠 전에 그 사람이 다아시 씨에게 파렴치한 해동을
취했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지요. 더우기
외숙모님께선 그 전에 롱본에 오셨을 때 자기에
대해서 그토록 인내와 관용을 가지고 대해 주었던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했던가를 직접 듣지
않으셨어요. 게다가 저로선 자유로이 말 못할
일... 말할 만한 값어치도 없는 일도 여러 가지가
있지요. 펨벌리 가문에 대한 그 사람의 거짓말은
끝이 없구요. 그 사람이 다아시 양에 대해서 말한
걸로 보아서는 전 다아시 양이 거만스럽기에
느낌이 좋지 못한 여자인 줄만 알았죠. 그러나 그
사람은 아주 반대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지요.
저희들이 봤던 것처럼 상냥스럽기만 하고 뽐낼 줄
모르는 분이란 사실을 그 사람도 알고 있어야 해요."
"그러나 리디어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냐? 너나
제인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을 그앤들
모르고 있으란 법은 없을 테지."
"아, 있지요. 바로 그 점이 가장 잘못된 거지요. 저도
켄트에 가서 다아시 씨와 친척이 되시는
피츠윌리엄 대령님 두 분을 만날 때까지는 그 진실을
전혀 몰랐지요. 그래서 집에 돌아와 보니 ㅇㅇ주
의용군이 한 주일이나 두 주일이 지나면 메리튼을
떠나기로 돼 있었어요. 사정이 그쯤 되고 보니
제가 모든 사실을 다 말해 주었던 제인 언니나 저로선
그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죠. 내용인즉 그 근처에서 그의
평판은 썩 좋았었기 때문에 그 당시로는 우정 그것을
뒤엎어 봤댔자 그 누구에게도 덕될 리가 없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거예요. 그래서 리디어가
포스터 부인과 함께 가기로 결정되었을 때도 그의
눈을 뜨게 해서 그 사람의 정체를 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애가
누구에게 속아넘어갈 위험성이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지요. 이런 결과가 되고 말 것이라고
외숙모님께선 쉽게 믿어 주시겠지만 저로선
생각조차 싫은 일이었어요."
"그렇다면 모두가 브라이튼으로 떠나갔을 때는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고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지?"
"조금도 없었어요. 두 사람 중 어느 편이고 애정의
징후는 전혀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만약 그런
징후가 조금이라도 보였던들 우리 가정은 그것을 본
체하고 지나칠 리가 없다는 것을 외숙모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거예요. 그 사람이 처음 연대에
입대했을 땐 그애는 지금 당장이라도 연애를 할
것같이 보였어요. 그러나 저희들 모두 그랬는걸요.
메리튼이나 근처에 살고 있는 처녀란 처녀는 처음
두 달 동안은 그 사람에게 정신이 푹 빠졌었지만. 그
사람이 특별한 관심으로 그애를 눈여겨 본 적은
없어요. 그렇게 해서 터무니없이 미친 듯이 찬양만
하던 시기도 어느 정도 지나가고 나자 그에 대한
환상도 사라져 버리고 자기를 좀더 알아 주는 연대
안의 딴 사람들이 대신 그애의 마음에 들기
시작했던 거예요."
이 중요 관심사에 대해 몇 번이고 의견을 서로
주고받았지만 그들이 불안, 희망, 추측에는 새로운
사실을 추가하지 못했으나 여행 중 사뭇 그들을 오래도록
잡아 놓을 만한 화제가 달리 없었다는
사실만은 쉽사리 믿어질 것이다. 엘리자베드의 머리에서
이 문제가 떠난 일은 결코 없었다. 더욱 더
고민과 자책감에 사로잡힌 채 그녀는 안락과 망각의
틈을 전혀 가질 수가 없었다.
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여행을 계속하고 차 위에서
하룻밤을 지새워 가며 다음날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롱본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제인이
기다리다 못해 지치기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엘리자베드의 마음은 한결 위안 받을 수가 있었다.
가디너 집안의 아이들은 이륜마차가 다가오는 광경을
보고 마음이 팔려 집으로 오르는 계단에 서서
일행이 소목장으로 타고 들어오는 것을 맞아들였다.
마차가 현관에 도착하자 기쁨과 놀라움은 그들의
얼굴을 밝게 했고, 좋아 날뛰는 그들의 몸 전체에도
나타났다. 그것은 또한 일동을 환영하는 최초의
진지한 기쁨이기도 했다.
엘리자베드는 뛰어나와서 그들에게 급히 입맞춤을
해주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서는 마침
어머니 방에서 아래층으로 뛰어내려 오던 제인이 곧
그녀를 맞아들였다.
엘리자베드가 애정 어린 포옹을 했을 때 두 사람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찼으나 잠시 여유도 없이
도망자들에 관한 무슨 소식이나 없었나 하고 물었다.
"아직 없어."
제인이 대답했다.
"그렇지만 외삼촌께서 와 주셨으니까 모든 일이 잘돼
나갈 거야."
"아버지께선 런던에?"
"그래 아버지에게서 자주 소식이 있었어?"
"한 번 뿐이야. 수요일에 편지를 두세 줄 써
보내셨단다. 무사하게 도착하셨다는 내용과 내가 특히
부탁을 드렸더니 주소를 써 주셨더라.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없으시면 편지를 안하시겠다고 덧붙여
놓으셨어."
"그래 어머니는 어떠세요? 모두들 잘 있구?"
"어머니는 이럭저럭 지내셔. 그런데 많이 낙심하시고
계시단다. 이층에 계시는데 여러분과 만나시면
흡족해 하실 거야. 화장실에서 꼼짝도 안하셔.
메어리와 키티는 고맙게도 잘들 있어."
"그런데, 언닌 어떠세요?"
앨리자베드가 외쳤다.
"안색이 좋지 못해요. 정말 괴로왔을 거야!"
그러나 언니는 자기가 아주 원기왕성하다고 했다.
가디너 부부가 어린아이들과 대면하는 사이에
나누던 두 사람의 대화는 그들이 다가오자 중단되고
말았다. 제인은 외삼촌과 외숙모 곁으로 가서
미소와 눈물을 보이며 두 사람을 환영하고 감사를
표했다.
그들이 모두 응접실로 들어서자 엘리자베드가 이미
물었던 질문이 물론 외삼촌과 외숙모에 의해
되풀이되었는데, 제인에게서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제인은 그토록 선의에 찬 마음에서 나온
낙관적인 희망을 아직 못 버리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모든 일이 잘 풀려 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으며, 아침마다 꼭 리디어한테서나 부친한테서
편지가 날아들어 일 진행을 설명해 줄 것이고, 아마도
결혼했다고 알려 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몇 분 동안 대화를 나누고 나서 일행은 베네트 부인
방으로 갔는데 영접 받는 것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후회의 눈물로 위컴의 악랄한 행위를 마구
욕하고 자신의 고통이나 비운을 늘어놓으면서,
딸의 실수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자신이 잘못
판단한 방임은 제쳐놓고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마구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때었다.
"내가 만일 말이지. 내 의견을 내세워서 가족과 함께
브라이튼으로 갈 수만 있었더라면 이런 꼴은
안 봤을 텐데. 가엾게도 우리 리디어는 돌보는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왜 포스터 내외분은 그 아이가
사라지도록 내버려두었단 말이야? 아뭏든 그분들에게
큰 실수가 있었던 거예요. 원래 그애는 누가 잘
지켜 주기만 하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아이니까.
그분들은 그애를 돌볼 만한 사람들이 못된다고
생각했었지만, 언제나 그런 것처럼 내 의견은 꺾어
버렸지. 가엾어라, 우리 애기야! 더우기 주인께서도
나가시고 안 계시니, 어디서든 위컴을 만나기만
하면 결투를 하실 게고 그렇게 되면 세상을
떠나시게 될 테니 우린 모두가 어떻게 되겠느냐 말야?
주인이 묘 속에서 몸이 채 식기도 전에 콜린즈
가에서도 우리들을 쫓아낼 테니 동생네마저 우릴
친절하게 돌봐 주지 않으면 우린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모르겠군"
좌중의 사람들은 그러한 무서운 일을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외쳤다.
그리고 가디너 씨는 부인과 가족 여러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확실히 표명한 후에 내일이라도 곧바로
런던으로 올라가서, 베네트 씨를 도와 리디어를
되돌려 오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하겠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불필요하게 두려워해서 항복하셔서는 안됩니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지만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만도 아니니까요. 두 사람이
브라아튼을 떠난 지 아직 일 주일이 못됩니다.
2, 3일만 지나면 그들에 관한 어떤 소식을 얻게
되겠지요. 그들이 결혼하지 않았다든가 결혼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이젠 다 틀렸다고 단념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런던에 도착하는
대로 곧 형님을 찾아서는 함께 그레이스처치 가에
있는 집에까지 오시게 해서 그 다음에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의논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어, 정말 좋은 동생이야."
베네트 부인이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바야. 그리고 런던에
가거든 그애들이 어느 곳에 있든 꼭 찾아내도록
해요. 그리고 만약 결혼 안하고 있거들랑 틀림없이
결혼을 시켜 버리도록 하구. 결혼 예복 같은
문제로 두 사람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돼요.
리디어에게는 식 올리고 난 후에 물건 사고 싶은 만큼의
돈을 주겠다고 전해 주고. 그리고 특히 주인에게는
결투는 하지 말도록 일러 줘요. 그리고 내가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는가를 주인에게 말씀
좀 해주는데...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고,
오장육부가 와들와들 떨리기만 하고 옆구리엔 경련이
일어나며 두통이 나고 심장이 뛰어서 밤낮 쉴
새도 없다고 전해 줘. 그리고 귀여운 우리
리디어에게는 나를 만날 때까지는 의상 주문을 하지
말아 달라고 전하고. 그애는 원래가 어느 가게가 제일
좋은가를 모르고 있으니까 말이야. 아, 동생은 정말
친절한 사람이야! 동생 같으면 모든 일을 잘 처리해
나갈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가디너 씨는 그 목적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재차 보증했지만, 걱정을 하든 희망을
갖든 중용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식사 준비가 될 때까지 이런 식으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딸들이 없을 때 부인을
돌봐 주는 가정부에게 부인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퍼붓게 하고 모두 방을 나와 버렸다.
동생 부부는 누님이 그런 식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믿었지만, 그렇다고
반대해 볼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식사 시중을 들고 있는 하인들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을 만한 신중성이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는데다가, 이 가정에서 단 한 사람, 더구나
그들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단 한 사람만은 이
문제에 대한 그녀의 불안이나 염려를 죄다 받아 주는
편이 낫다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식당에서는 곧 메어리와 키티가 합세하게 되었는데
그녀들은 저마다 자기 방의 일로 바빴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타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 사람은 독서를
중지하고, 또 한 사람은 하던 화장을 그만두고
나왔다. 그런데도 두 사람의 얼굴은 제법 침착했고 두
사람에게는 어떤 변화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좋아하던 동생을 잃어서인지 또는 이 사건으로
해서 직접 분노를 느꼈기 때문인지 키티의
어조에는 여느 때와는 달리 초조한 데가 있어 보였다.
메어리 쪽은 모두가 식탁에 앉자 곧 자못
심각하게 생각해 잠긴 표정으로 어른스럽게
엘리자베드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이건 가장 불행한 사건으로 아마 꽤나 남의 입에
오르게 될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들로서는 악의의
흐름을 저지해 버림으로써 상호간의 상처 입은
가슴에다 여자 형제다운 위로의 약을 넣어 주도록 해야
할 줄 알아요."
그리고 나서 엘리자베드에게 대꾸할 흥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리디어에게는 이번 사건이 불행한 일임엔 틀림없겠지만
우리들은 이번 일에는 유익한 교훈을 얻게 된
셈이죠. 여성이 정조를 잃게 되는 날에는 그땐 벌써
돌이킬 수 없는 것이고, 한 걸음 잘못 디디고
나면 끝내 파멸로 빠져들고, 여성의 평판이란 건
아름다움에 못지 않게 깨지지 쉬우며, 가치 없는
이성에 대해선 제아무리 경계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교훈 말예요."
엘리자베드는 매우 놀라 대답도 제대로 못했다.
그럼에도 메어리는 쉬지 않고 당면한 재앙에서
그러한 교훈을 끌어내서는 자기를 위로하기에 바빴다.
오후에 두 사람의 언니들은 반 시간 가량 둘이서만
있을 수가 있게 되었다. 엘리자베드는 곧바로 그
기회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 제인
쪽도 상대방에 못지 않게 열심히 대답해 주었다.
엘리자베드가 거의 확정적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이
사건의 끔찍한 전망에 대해서는 제인 쪽에서도
전혀 안 일어난다고 단정할 수도 없어서 함께 슬퍼하고
나서 엘리자베드는 그 화제를 계속해 나가며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직 듣지 못한 일까지도 하나 빼놓지
말고 들려 주세요. 상세한 것을 더 듣고
싶으니까 말예요. 포스터 대령님은 뭐라고
하셨던가요? 두 분께선 두 사람이 뛰쳐나가기 전에 뭔가
그럴 만한 낌새를 못느끼셨던가요? 그분들께서는 두
삶이 있는 것을 봤을 테니까 말예요." 포스터
대령 말씀으로는 아무래도 좋아하는 눈치를, 특히
리디어 편에서 가끔 느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경계할 만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는 거야. 정말 그분은
가엾기만 해. 그분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주의
깊고 친절하셨어. 두 사람이 스코틀랜드로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시기 전부터 그분은
자기의 걱정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여기로
오시려는 중이었어. 그 걱정거리가 소문으로
파다해지자 급히 뛰어오시게 된 거야."
"그런데 데니는 위컴이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는 거예요? 두 사람이 도망치겠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던가요? 그리고 포스터 대령님께선 직접
데니를 만났던가요?"
"그랬어, 그렇지만 대령님의 질문을 받자 데니는 두
사람의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서 마음 속의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으려고 했던
모양이야. 두 사람이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그 이상 되풀이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런
점에서 볼 때 데니는 원래 판단을 잘 못하지
않았나 하고 믿고 싶어."
"그래서 포스터 대령님이 오셨을 때까지는 우리
집에서는 누구 한 사람 그 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데
대한 의심은 하지 않았던 것이 아녜요?"
"그런 의심이 들다니, 있을 수는 있는 일이니? 난
다소 불안하기까지 했어. 동생이 그 사람하고
결혼하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어. 그
사람의 행동이 반드시 좋은 편은 못된다는 것을
난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버님 어머님도 그 점은
모르셨기 때문에 얼마나 경솔한 결혼인가 하는
정도만 느끼신 모양이야. 키티는 그때 누구보다도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관계로 인지상정이겠지만
우쭐대면서 고백하는 바로는 리디어에게서 온 마지막
편지 속에서 이러한 일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애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몇 주 전부터 알고 있었던가 봐"
"그러나 그들이 브라이튼으로 떠나기 전부터는
아니겠지요?"
"그럼, 그렇지는 않다고 봐"
"그래서 포스터 대령님 자신께서도 위컴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진짜 성격을 알고 계시는 걸까요?"
"그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분도 전에 비해서 위컴의
말을 좋게는 하시지 않으셨어. 경솔한데다가
소비성이 많다고 말씀하셨거든. 이 슬픈 사건이
일어난 후부터는 그 사람이 많은 빚을 진 채로
메리튼을 떠났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하지만 그것만은
헛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아, 언니, 우리들이 말요. 지금까지 감추질 말고서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을 말했더라면 이런
일은 안 일어났을 텐데!"
"그랬으면 더 좋았을 뻔하지."
언니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현재의 그들의 감정이 어떤가도 모른 채 남의
과거를 들추어낸다는 것은 올바른 일이 못되는
것 같아. 우린 선의의 입장을 지켰던 거야."
"포스터 대령님은 리디어가 부인께 보냈던 편지에
대해 상세히 말씀해 주셨어요."
"우리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가지고 오셨더랬어."
제인은 지갑에서 편지를 꺼내어 엘리자베드에게 넘겨
주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친애하는 헤리에트 님
제가 어디로 가 버렸는지 아시게 되면 부인께선
웃으시겠지요. 내일 아침에 제가 없어진 사실을
아시게 될 때 깜짝 놀라실 것을 생각하니 저도 웃지
않을 수가 없군요. 지금부터 그레트너
그리인으로 향하게 되는데 누구하고 함께 가는가를
모르신다면 얼간이로 보겠어요. 제가 사랑하는
남성은 이 세상에서는 오직 한 사람, 그리고 그이는
천사와도 같아요. 그이가 없이는 저는 절대
행복해질 수가 없기 때문에 제가 집을 뛰쳐나왔다고
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마음이 내키지 않으시거든 제가 집을 나가 버린
사실을 굳이 롱본에 알리실 필요는 없어요.
그렇지만 제 손으로 편지를 써서 리디어 위컴이라고
써서 보내면 모두가 놀라게 될 것이니까요.
얼마나 좋은 장난이 되겠어요! 어떻게나 우스운지 이
편지를 써 나갈 수가 없어요. 프래트에게는
약속한 대로 오늘 저녁에 함께 춤을 못 추게 된 점을
제발 사과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우리가 서로
만나게 될 무도회에서는 기꺼이 춤추겠다고 전해
주세요. 의상은 롱본에 도착하면 받으러 사람을
보내지요. 그런데 짐 챙기기 전에 제가 수놓았던
머슬린 가운에 생긴 터진 곳을 손질해 두도록
샐리에게 부탁해 두시기 바라며 아울러 포스터
대령님께 안부 전해 주세요. 저희들이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건배를 올려 주세요.
당신이 사랑하는 벗
리디어 베네트

"아, 리디어는 너무너무 철이 없어!"
편지를 읽고 나자 엘리자베드가 소리쳤다.
"도대체 그런 순간에 쓴 편지가 이게 뭐람! 그러나
적어도 그애가 여행의 목적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이는 보여. 나중에 그 사람이 어떤 식으로
설득을 했든 간에 그애 쪽에서는 불명예스런 짓을
획책한 것은 아냐. 불쌍하신 우리 아버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그렇게 충격 받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거의 10분
동안에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셨다니까. 어머닌 그
자리에서 병자가 돼버리시고 집안이 온통 벌집
쑤셔 놓은 것같이 돼버린 거야!"
"아, 언니"
엘리자베드가 또 소리쳤다.
"그날이 다 가기 전에 이 집 하인 치고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었겠어요?"
"잘 모르겠어.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때에
조심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어머닌
히스테리가 나 계셨고 난 내 힘껏은 도와 드리고
싶었지만 내가 할 만큼은 못한 것 같아. 그리고 어떤
무서운 일이 생겼더라도 난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태였어."
"어머니 시중드는 일은 언니로서는 힘겨웠을 거예요.
언니 안색이 별로 좋지가 못해요. 아, 내가
언니와 함께 있었더라면 좋을 뻔했어! 언니 혼자서
간호와 걱정을 도맡아 했으니까 말예요."
"메어리와 키티가 너무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고
어떤 노고라도 꼭 함께 해주겠다는 생각은
있었겠지만, 그애들에게는 그런 일을 시키고 싶지가
않았단다. 키티는 여윈데다가 몸이 약한 편이고,
메어리는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어서 휴식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아버지께서 떠난 뒤로
화요일에는 필립스 이모님께서 롱본까지 오셔서
친절하시게도 목요일까지 머물러 계셨어. 이모님께선
우리 모두를 곧잘 도와 주셨고 위로도 해주셨어.
그리고 루커스 부인께서도 매우 친절하게 해주셨어.
수요일 아침에 우리를 위로해 주시기 위해 여기까지
걸어오셔서는 도움만 된다면 자기나 따님 중의
누구라도 돕겠다고 하셨어."
"그분은 자기 집에 그대로 있는 게 나았을걸"
엘리자베드는 강하게 말했다.
"아마 호의에서 그러셨겠지만, 이런 불운한 경우엔
이웃 사람들의 얼굴을 안보는 것이 상책이에요.
힘을 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위안 받는 것도 견디기
힘들거든요. 먼데서 승리의 눈초리로 우리들을
바라보고 만족하고 있으면 될 텐데"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가 런던에 체류하는 동안에 딸을
빼앗아 오기 위해 어떠한 수단을 취하려는가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으론 아버지께선"
제인이 대답했다.
"두 사람이 마지막 말을 갈아탔던 장소인 에프솜에
가서 마부를 만나서 혹시 무슨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을까 노력해 보실 참이신가 봐. 주된 목적은
틀림없이 클래팸에서 그들을 태우고 간 임대 마차의
번호를 찾는 일일 거야. 그 마차는 런던에서 어떤
승객을 태워 왔는데 남자가 여자를 데리고 한
마차에서 다른 마차로 옮겨 탄다는 것은 남의 눈에
뛰었을 것이라 생각하시고 클래팸에서 수소문해
보실 참인가 봐. 마부가 전에 손님을 내렸던 곳이
어느 집이었던가를 이럭저럭 알게 될 것 같으면
거기를 찾아가기로 정하셨던 모양인데, 그렇게 하면
그 마차의 주차장과 번호를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하지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서 그랬을
거야. 그 밖에 어떤 계획을 하셨는지는 난
모르겠지만 너무 급히 떠나셨고 침착성도 몹시 잃고
계셨기에 이 정도로 생각해 내는 것도 나로선
겨우 할 수 있었어." @ff
48

이튿날 아침 그들은 베네트 씨로부터 소식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그에게서는 한 줄의 소식도
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여느 때 같으면 그가 편지 쓰는
데는 게으르고 더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겠지만, 때가 때인 만큼 그의 분발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렇다 할 반가운 소식이 없는 모양이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렇더라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을 성싶다. 이리하여 가디너 씨는
출발시까지 편지를 마냥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게
되었다.
그가 가기만 하면 적어도 일의 진행 상황을 끊임없이
알려 올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외삼촌은
작별할 때쯤 해서, 베네트 씨를 설득해서 되도록 빨리
롱본으로 되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말은 그의 누님인 베네트 부인의 마음을 대단히 위로해
주는 결과가 되었다. 그녀로서는 그 길만이
남편이 결투로 살해당하지 않는 단 하나의 안전책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디너 부인은 아이들과 함께 며칠 더 허어퍼드셔에
체류하기로 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조카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카들과 교대로 베네트 부인의 시중을 들었으며
여가가 있을 때는 조카들에게 큰 위안이 되기도 했다.
또 한 사람의 이모가 뻔질나게 그들을 방문해
주곤 했는데 그녀의 말인즉, 조카들의 마음을 북돋아서
힘을 내게 해준다고 했지만, 찾아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위컴의 낭비벽이나 품행이 좋지 못한
새로운 예를 보고하곤 했기 때문에 그녀가 돌아가고
난 후면 그녀가 오기 전에 비해 그녀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어 놓고 마는 일이 많았다.
메리튼의 모든 사람들은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빛의
찬사 같은 존재였던 그 사람의 얼굴에다 마구
먹칠을 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바야흐로
그는 그곳 어느 상인에게도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고 선언 당했고 그이 간사함은 글자 그대로 유혹이란
이름의 명예로운 호칭을 받기에 이르렀으며
모든 상인의 가정에까지 확대돼 나갔다. 누구나가 그를
세상에서 제일 나쁜 청년이라고 불렀고, 그리고
겉치레 만인 그의 선량함을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고
빠짐없이 주장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엘리자베드는
소문난 사실의 반도 믿지 않았지만, 그 사실만으로도 그
전부터 동생은 파멸이라고 생각해 왔던 기분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녀만큼은 믿지 않고
있던 제인마저 거의 희망을 잃고 말았다. 두
사람이 스코틀랜드로 가 버렸다는 희망을 그 전에는 결코
버리지 않았지만 정말 갔다면, 아무런들
무언가 두 사람에 대한 소식을 들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 생각하니 절망적인 마음은 더해 가기만 했다.
가디너 씨는 일요일에 롱본을 떠났으며 화요일엔 그의
부인에게 편지가 왔다. 그 편지 속에는 런던에
도착하자 곧 자형을 찾게 되었고 그를 설득해서
그레이스처치 가로 데리고 왔다고 씌어 있었다. 베네트
씨는 자기가 런던에 도착하기 전에 벌써 에프솜이나
크래팸을 답사했지만 만족할 만한 정보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며, 또 베네트 씨 의견으로서는 두 사람이
런던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하숙을 찾기 전에
호텔을 들었다고 보는 것이 옳아서 그는 런던 시내의
주요한 호텔을 찾아보기로 마음먹고 있다고 했다.
가디너 씨 자신의 소견으로서는 그 방법이
성공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자형이 열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돕기로 했다. 베네트 씨가
당분간 런던을 떠날 심산이 아님을 추가로 써 놓고
다시 편지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추신이 붙어 있었다.

내가 포스터 대령에게 편지를 내서 가능하다면 연대
안에 있는 그 청년의 친구들한테 위컴이 현재
런던의 어느 근처에 숨어 있을 것인가를 알고 있을
만한 친척이 있는가를 수소문해 주도록 부탁해
두었소. 문의해 본 결과로 그러한 단서를 주게 될
사람이라도 있게 된다면 다시없는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오. 당장으로서는 무엇 하나 우리를
인도해 줄 만한 일이라고는 없소. 이 점에 대해선
포스터 대령이 우리를 만족시켜 줄 만큼 모든 일을
다해 주시리라 믿고 있소. 그러나 재고해 볼 때,
그 사람에게 어떤 연고자가 아직 살아 있는 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리지가 잘 알고 있을 것
같으오.

엘리자베드는 어떤 연유로 자기에게 그러한 권위가
있다고 경의를 표하게 되었는지 이해 안되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 칭찬에 어울릴 만큼 만족스런 정보를
제공해 낼 수는 없었다. 몇 해 전에 별세한 부모
이외에 어떤 연고자가 있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ㅇㅇ주 연대 내의 그의 동료
중의 어떤 사람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줄지 누가
알겠는가.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너무 낙관할
수는 없었으나 문의를 해보았다는 점에서 이럭저럭
기대해 볼만도 했다.
롱본의 나날은 걱정 없는 날이라곤 없었으나 그
중에서도 으뜸가는 걱정거리는 우편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우편의 도착이 아침마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최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좋은 소식이든
하찮은 것이든 간에 편지에 의해서만 전달되는 것이므로
밝아 오는 날이면 무슨 중대한 정보라도
전해 올까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디너 씨로부터 두 번째 소식이 있기 전에
아버지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전혀 다른 곳에서
즉 콜린즈한테서 날아들었다. 제인은 아버지의 부재중에
그에게로 오는 편지는 다 뜯어보도록
지시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읽기로 했는데, 엘리자베드도
그의 편지는 항상 기묘한 것이라고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깨 너머로 함께 읽게 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삼가 올립니다.
어제 허어퍼드셔에서 온 편지로 소식을 알게
되었사옵니다마는 현재 선생님을 고뇌 속에 빠뜨리고
있는 그 재앙에 대해서 위로 말씀을 올리는 것은
인척 관계와 더불어 소생의 지위가 그렇게 하기를
명하는 바입니다. 처와 소생은 선생님을 비롯해
귀댁의 현재 처해 있는 고통에 대하여 지심으로
동정의 말씀을 올리게 된 것을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 고뇌야말로 시간이 경과해도 명분을 벗어날
수 없으니 가장 비통한 게 아니겠습니까. 이토록
격렬한 불행을 경감시켜 드리기 위해, 아니 부모의
심정으로 더할 수 없이 비통한 상황에 놓여 계신
선생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 소생은 논의를 다해
그칠 줄을 모르는 바입니다. 영애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해도 이것에 비할 땐 오히려 축복할 만한
일일 것입니다. 소생의 처 샬로트의 말에 의하면
영애의 이와 같은 방종한 행위는 지나치게 너그럽게
해주신 실책의 소치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더 한층 한탄스러운 일이옵니다. 물론
동시에 선생님 내외분을 위안 드리기 위해서는 영애의
성질이 선천적으로 나쁘지 않았던가 하고
생각하고 싶으며,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젊은
사람으로서는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선생님을 애처롭게 동정해
드려야 되겠지만, 이 소생의 이 건에 대해
말씀드린 바 있는 캐더린 부인과 그분의 따님도
의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딸 한 사람의 이와 같은
과오의 첫걸음은 나머지 따님 전부의 운명에까지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두 분 역시
소생과 같은 의견이올시다. 왜냐하면 캐더린
부인께서 고맙게도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러한 집안과
누구인들 인연을 맺을 생각을 갖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할 때 소생은 작년 11월에 있었던 어떤
사건을 회상해 보면 더욱 만족감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이유인즉 결과가 그렇게 되지 않았던들
소생도 어김없이 선생님과 같은 비탄과 치욕 속에
빠져들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는
되도록 위안을 스스로 찾아 보시고 선생님의 버린
자식에게는 영원히 애정을 포기하여 가증스러운
죄의 결과를 내버려 두시기를 감히 충고 말씀드려 두는
바입니다....

가디너 씨가 재차 편지를 보내 온 것은 포스터
대령한테서 회답 받고 난 후였지만 반가운 소식이라고는
하나 들어 있지 않았다. 인연을 끊지 않은 친척이
위컴에게 아직도 있다는 사실은 알려진 바 없으므로
생존에 있는 근친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은 명백했다.
옛날의 지기들은 적잖게 있었으나 의용군에
입대하고 난 후로는 누구 하나 그와 특히 친밀히 지내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짐작 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경제적으로도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었으며, 리디어의
권속들에게 발견된다는 두려움 이외에도 몸을
숨길 만한 매우 강한 동기가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최근에 발각된 일이지만 상당한 액수가 되는
도박의 빚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포스터 대령이 믿는 바로는 브라이튼에서 그의 빚을
가리자면 1천 파운드 이상 필요한 것이라 했다.
시내에서도 많은 빚을 짊어졌지만 도박에서
신용 차용했던 금액은 더욱 가공한 액수였다. 가디너
씨는 이러한 소상한 사정을 롱본의 사람들에게 감추려 들지
않았다. 제인은 그 사실을 듣자 모을 치떨었다.
그녀가 외쳤다.
"노름꾼이라구요! 이건 정말 몰랐어요.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이에요."
가디너 씨는 그 편지 속에서 여러분들은 다음날인
토요일에 아버지의 귀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여 써 두었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의기소침해진 아버지는 처남의 간절한 뜻을 굽혀서
자기 가족들한테로 돌아가기로 하고, 그들의 추적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은 무엇이든 처남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베네트 부인은 이 소식을 듣자 남편의
생명을 전에 그렇게도 걱정한 것에 비하면
자녀들이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의 빛을 나타내지 않았다.
"뭐! 돌아오시게 된다구, 가엾은 리디어도 안 데리고
오신다더냐?"
그녀가 소리질렀다.
"두 사람을 찾아낼 때까지는 런던을 떠나지 않으실
거다. 아버지가 그곳에 안 계신다면 누가 위컴 하고
결투를 벌여서 그애하고 결혼시킨다더냐?"
가디너 부인이 귀가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베네트 씨가
런던을 떠나는 같은 시각에 그녀와 자제들이
런던으로 떠나기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마차는 그들을
첫번 역까지 태워다 놓고서 주인을 태워서
롱본으로 되돌아 왔다.
가디너 부인은 엘리자베드와 그녀의 더비셔의 친구
일에 관해서는 더비셔에서부터 품어 왔던 모든
수수께끼를 지닌 채 돌아갔다. 모두들 앞에서 조카가
자진해서 그의 이름을 입에 담은 일은 없었으며
뒤미처 그로부터 무슨 소식이 있으리라고 가디너 부인이
반쯤 기대했던 일도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귀가하고 나서 엘리자베드는 팸벌리에서 오는 편지는
한 통도 받아 보지 못했다.
현재 가족들이 불행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녀의 마음이 침체해져 있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구실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까 침체해져 있는
일에서는 아무것도 추측해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이제 와서는 이미 자기 감정을 상당히 알 수
있었던 엘리자베드로서는 다아시를 전혀
몰랐더라면 리디어의 불명예를 좀더 잘 견디어 낼 수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그렇다면 불면에 시달리는 밤도 두 밤 중에 한 밤만으로
족했으리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베네트 씨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완전히 철학가적인 차분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말수가 적은 것도 전과 다름없었으며, 여행을 떠났던
목적의 용건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어서 한참
후에 딸들 쪽에서 용기를 내어 허두를 떼게 되었다.
엘리자베드가 과감하게 그 화제를 끄집어낸 것은
오후가 되어서 아버지가 차 시간에 함께 모였을
때였다. 바로 그때 아버지가 견디어 온 일에 대한 그녀의
유감의 뜻을 짤막하게 나타냈더니 그가 대답했다.
"그 얘긴 아무것도 말하지 말아 다오. 괴로와도 나
혼자 당하는 일이 아니겠느냐? 내가 한 일에 대한
응보니 내가 그걸 겪어야 한단 말이다."
"너무 지나치게 자신을 꾸짖지 마셔야 해요."
엘리자베드가 대답했다.
"그런 폐단에 빠져들지 말라는 너의 경고도 달게
받겠다. 원래 인간성이란 것이 그런 것 같구나!
아냐 리지, 평생에 꼭 한 번만 자기가 얼마나
잘못했던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 다오. 난 그런 느낌에
압도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단다. 곧 소멸해
버리고 말 테니까 말이다."
"아버지께선 두 사람이 런던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래. 런던 말고 그렇게 잘 숨어 살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겠니?"
"그리고 리디어는 늘 런던에 가고 싶어 했었죠"
키티가 덧붙였다.
"그렇다면 행복할 게야."
아버지는 냉담하게 받는다.
"아마 거기서 한참 머물게 될 거다."
그리고 잠시 침묵하다가 그가 말을 이었다.
"리지야, 지난 5월에 네가 나한테 했던 충고가
옳았었다고 해서 너에게 유한 같은 것은 모르고
있다. 이번 사건을 생각해 보니 너의 충고는 어떤
마음의 위대한 것을 보여 주는 것 같구나"
베네트 양이 어머니의 차를 가지러 왔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이야기가 차단되고 말았다.
"이것 보라고 들이대는 건가"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좋기도 하겠지. 불행에다 그렇게나 흥취를 더했으니
말이다! 언젠가 나도 한번 해보련다.
나이트캡을 쓰고서 분칠할 때 입은 가운 차림으로
서재에 앉아서 되도록 귀찮게 굴어 볼 테다. 아냐,
키티가 줄행랑을 칠 때까지 연기하도록 할까."
"아버지 전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
키티는 뾰로통해지며 말했다.
"제가 브라이튼으로 간다 해도 리디어 같이 서투른
짓은 하지 않을 거예요."
"네가 브라이튼으로 간다구! 그 근처인 이이스트
본까지도 50파운드를 준다 해도 못 보낸다! 아냐,
키티, 난 이제 적어도 경계한다는 것을 배웠으니까 넌
그 효과를 실컷 맛보게 될 거다. 앞으로는
장교가 이 집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할 것이고 우리
동네 앞을 통과도 안시킬 테다. 무도회까지도
너의 언니 중 한 사람이 동반하지 않는 한은 절대로
금지다. 그리고 매일 십 분 동안 이성을 가지고
행동했다는 증명 없이는 한 걸음도 밖에는 못 나가"
키티는 이런 식의 위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왈칵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그래, 그래, 스스로 슬퍼할 것까진 없다. 앞으로
10년간 네가 좋은 딸 노릇만 해보렴, 그 대신에
열병식에 데려다 주마" @ff
49

베네트 씨가 돌아와서 이틀이 지난 후에 제인과
엘리자베드가 집 뒤의 관목 숲을 거닐고 있으려니까
가정부가 그들에게 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와 필시
어머니 곁에 와 달라는 전갈을 하러 오는
것이라고 단정지으며 그쪽에서 걸어나갔다. 그러나
가까이 가 보았더니 예기했던 것이 아니었다.
가정부가 베네트 양에게 말했다.
"방해가 돼서 죄송스럽습니다만 런던에서 좋은
소식이라도 받으시지 않으셨나 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여쭤 보러 왔어요."
"무슨 말이오, 힐? 런던에서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어요."
"아가씨."
힐 부인은 몹시 놀라 큰 소리로 말했다.
"가디너 씨로부터 주인님께 속달을 보내 오신 걸
모르시고 계세요? 배달부가 다녀간 지가 반 시간쯤
됐는데 주인님께서 편지를 받으신 거예요."
딸들은 곧바로 뛰어갔다. 어찌나 열심히 뛰어왔는지
이야기를 할 겨를조차 없었다. 현관 홀을 빨리
통과해서 식당과 서재로 달음질쳤다. 아버지는 어느
곳에도 있지 않았다. 그래서 2층에서 어머니하고
함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찾으러 갈까 했을 때
집사하고 마주쳤는데, 그가 말했다.
"주인님을 찾고 계시다면 작은 숲 쪽으로 걸어가고
계십니다."
그 말을 듣자 그녀들은 즉시 다시 한 번 현관의 홀을
통과해서 잔디밭을 질러서 아버지를 뒤쫓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때마침 소목장의 한켠에 있는 작은
숲 쪽으로 천천히 걸어나가고 있었다.
제인은 원래 엘리자베드 만큼 잽싸거나 달리는 데
익숙해 있지 못해서 곧 뒤떨어지고 말았지만 동생은
몹시 헐떡거리며 아버지를 따라 붙여서는 열심히 고함을 쳤다.
"아, 아버지, 어떤 소식 왔어요? 어떤 소식 말예요?
외삼촌께서 소식 보내 오셨어요?"
"그래, 속달을 받았다."
"그런데 어떤 소식이 왔지요. 좋은 소식 아니면 나쁜 소식?"
"좋은 소식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냐?"
호주머니에서 편지를 끄집어내면서 그가 말했다.
"그렇지만 읽고 싶겠지."
엘리자베드는 조급하게 그에게서 편지를 받아 들었다.
제인도 따라왔다.
"오다 큰 소리로 읽어보렴"
아버지가 말했다.
"어떻게 된 건지 나도 잘 모르겠구나"

그리이스처치 가에서
마침내 조카에 관한 소식을 어느 정도 전해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대체적으로 만족이 가시기를
빕니다. 형님께서 토요일에 귀가하시고 난 직후에
저는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이 런던의 어느 곳에
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만나 뵙고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두 사람을 찾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두 사람을 다
만나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전부터 바라고 있었던 바와 같군요."
제인이 외쳤다.
"그들은 결혼하고 만 것이에요!"
엘리자베드는 계속 읽어 나갔다.

두 사람을 다 만나 보았습니다. 그들은 결혼을 안하고
있었고 결혼할 의사도 없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형님 입장에 서서 감히 언약해 버린
약속을 형님께서 실행에 옮길 의사가 만약
있으시다면 두 사람은 곧 결합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형님께서 하실 일이라고는 형님 내외분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 후에 자녀들에게 나눠 주실 수 있는
5천 파운드 액수를 증여재산으로서 동등하게
분배해 주실 것을 리디어에게 보증해 주시고, 나아가
형님 생존 중에는 1년에 100파운드씩
송금하신다는 약속을 하셔야겠습니다. 이러한 조건들은
모든 것을 잘 고려하였다가 저에게 권한이
있다고 생각되는 범위 내에서 형님을 대신해서 주저하지
않고 승인했던 사항입니다. 곧바로 회신을
주실 수 있도록 속달로 보내드리는 바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보면 위컴군의 상태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만큼은 절망적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되시라고
믿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세간에서는 잘못들
알고 있는 것 같으며 그 사람의 부채를 전부 갚아
버린다 해도 조카에게는 그녀 자신의 재산에 추가해
다소나마 돈을 증여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저로서는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만 이 문제 전체에 뻗쳐 형님의 대행으로서
행동하는 전권을 위임해 주신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해거스튼에게 명령해서 적절한 재산증여의 준비를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형님께서 다시 런던으로 오실
필요는 없으므로 편히 롱본에 계셔서 저의 정면과
배려에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빨리 회신을 쓰시도록 주의를 환기시켜 드립니다.
저희들 의견으로서는 조카를 이 집안에다
시집보내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만
형님께서도 그렇게 인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애는
오늘 여기에 오게 돼 있습니다.
어떤 결정이 있는 대로 다시 편지를 하겠습니다.
8월2일 월요일
가디너 올림

"그럴 수가 있어요?"
편지를 다 읽고 난 후 엘리자베드가 외쳤다.
"그 사람이 그애하고 결혼하는 것이 가능하겠어요?"
"그렇게 돼버린다면 위컴이란 사람은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던 것만큼 값어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예요."
언니가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려요."
"그래서 회답을 하셨나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아니다. 그러나 곧 회신을 내야겠구나"
그래서 그녀는 하루 빨리 회신을 쓰도록 열심히
부탁했다.
"아, 아버지. 곧 돌아가셔서 편지를 쓰시도록 하세요.
이런 경우엔 일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셔야 해요."
"제가 대신해서 써 드릴까요."
이번에는 제인이 말했다.
"귀찮은 일을 하시기가 싫으시거든"
"정말 싫구나"
그가 대답했다.
"그러나 써 보내야지."
그 말을 하고 나서 그는 그녀들과 함께 발걸음을
되돌려서 집 쪽으로 향했다.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그리고 묻겠는데요. 조건은 승낙하셔야 하잖겠어요."
"승낙하다니! 네 애비는 그 사내가 요구를 적게 해 온
것을 부끄러워 할 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결혼을 해야 되는 거구요!
그렇지만 그 사람은 그런 유의 남자이니까요!"
"그래, 그래, 두 사람은 결혼해야 하구말구. 별수가
없게 됐거든. 그런데 내가 꼭 알아두어야 할 두
가지 일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너의 외삼촌이 일을
여기까지 끌고 오는 데 돈을 얼마나 들였는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떻게 해야 그 돈을 그
사람에게 갚느냐 하는 문제다."
"돈이라뇨! 외삼촌께서!"
제인이 외쳤다.
"어떤 의미에서 하시는 말씀이세요?"
"그 말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 같으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매년 100파운드, 죽고 난 뒤로는
5천 파운드라는 하찮은 돈에 눈이 떨어져서 리디어와
결혼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그건 정말이에요. 아까까진 그런 생각을 못해
봤지만. 빚 청산을 다 한다 해도 여전히 얼마간은
남다니! 아, 틀림없이 외삼촌께서 하신 일이야!
그토록 너그럽고 훌륭한 분이시니까 꽤 많은 희생을
하셨겠지요. 적은 돈으로는 이만한 일을 못하셨을
것이니까."
아버지가 말했다.
"못하구말구. 1만 파운드에서 한 푼이라도 덜한
액수로 그애를 얻겠다고 한다면 위컴은 바보지.
그리고 인척 관계를 맺게 되는 것부터 그 사람을
바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1만 파운드라구요! 너무 하시다! 그 반의 금액이라
해도 어떻게 갚는다지?"
베네트 씨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저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집에 도달할 때까지
침묵이었다. 아버지는 그 길로 편지를 쓰려고 서재로
갔고 딸들은 식당으로 들어섰다.
"정말로 결혼하게 되다니!"
둘이서만 있게 되자 곧 엘리자베드가 외쳤다.
"너무나 이상하단 말야! 그런데도 이것을 우리들은
고맙게 생각해야 하단. 두 사람이 결혼한다 해도
행복해질 가망은 없어 뵈고 그 사람의 성격은 돼먹지
않은데도 우린 억지로라도 기뻐해야 하다니!
에잇, 리디어년!"
"난 이렇게 생각해서 위로하고 있는 거야."
제인이 대답했다.
"그 사람이 리디어에게 진정한 애정을 갖고 있지
않다면 틀림없이 결혼을 안할 것이라고. 친절하신
외삼촌께선 그 사람의 빚을 갚아 주기 위해 어떤 일을
하셨겠지만, 1만 파운드까지 선불해
주셨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당신 자신의 아이들도
있고 또 더 생겨날지 누가 알아. 그런 터에
어떻게 1만 파운드의 절반이라도 냈을 거야?"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위컴의 빚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네.
게다가 그 사람 쪽에서 지참금으로 그애에게
얼마만한 재산을 분여할 수 있는가를 알게 되면 그
사람에겐 돈이 한 푼도 없는 처지이니까 가디너
숙부님께서 얼마나 내셨는지 확실히 알 수가 있게
되는 거예요. 그애를 집으로 데려다가 직접
해주신데 대해서는 몇 해를 두고서 감사해도 다 못할
입장 같아요. 지금쯤은 그애도 그분들과 함께
있을 거야! 그토록 친절을 다 받으면서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애는 행복해질 자격이 없는
거예요! 처음 외숙모님을 만났을 때 무슨 염치로 만날
수 있었을까!"
제인이 말했다.
"우린 지금까지 서로에게 생긴 일을 되도록 잊도록
해야 하는 거야. 난 두 사람이 아직도
행복해지기를 희망하고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 싶어.
그애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한 사실이 곧 그
사람이 올바르게 생각했다는 증거로 믿고 싶어.
상호간의 애정의 힘으로 두 사람은 확고해질 거야.
나는 낙관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조용히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어 이성적인 태도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면 이럭저럭 두 사람의 경망했던 지난 일들은
다 잊어버리게 될 거라고 생각해"
"그들의 행동은 언니나 나나 누구나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런 말을 했댔자 다 소용없는 일이지."
바로 그때 어머니가 어떤 일이 생겼던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딸들의 머리를
스쳐 갔다. 그래서 서재로 가서 어머니에게 알릴 필요가
있겠는가 없겠는가를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는
마침 편지를 쓰고 있었는데 머리를 들지 않은 채 차갑게
대답했다.
"좋도록 하려무나"
"외삼촌의 편지를 가지고 가서 읽어 드릴까요?"
"뭐든지 마음대로 가지고 가도록 해라."
엘리자베드는 필기용 테이블에서 편지를 꺼내 들고
둘이서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마침 메어리와
키티도 베네트 부인 곁에 있었기 때문에 한 번 읽어도
모두에게 다 들려 줄 수 있었다. 좋은
소식이라고 전제를 약간 해 두고서 소리 높여 읽어
내려갔다. 베네트 부인은 설레는 마음을 달래지를
못했다.
리디어가 곧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가디너 씨가 말한
부분까지 제인이 단숨에 읽어 나가자, 그녀는
환희의 고함을 터뜨렸고 그것은 계속해서 낭독됨에
따라서 범람의 도를 더해 가기만 했다. 여태까지는
놀라움과 근심으로 안절부절못했지만 이번에는 기쁨
때문에 그에 못지 않은 격렬한 흥분 상태에
빠져들었다. 딸이 결혼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 족했던 것이다. 딸의 행복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은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으며 딸의 못된 소행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의기소침해진 것도 없었다.
"귀여운, 정말 귀여운 내 자식아!"
그녀가 외쳤다.
"결혼하게 된다니 얼마나 기쁜 일이냐구! 다시 만나게
된다구! 열 여섯 살에 결혼하게 된다니! 정말
친절하고 좋은 동생이야! 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고
있었단다. 동생이 모든 일을 잘 해낼 줄 알고
있었어! 그애를 만나 보고 싶구나! 그리고 위컴도 함께
말야! 그렇지만 결혼 예복은! 그 일에 대해선
곧 동생 댁에서 편지를 내야지. 리지야, 너 지금 곧
아래층에 계시는 너의 아버지에게 달려가서
그애에게 얼마나 내실 수 있으신지 물어 와 다오. 여기
있어, 가지 말고, 내가 가기로 하지. 키티야,
초인종을 울려서 힐을 부르도록 해라. 금세 옷을 입을
테니까. 귀여운, 정말 귀여운 리디어! 우리가
다 함께 모이게 되면 얼마나 즐겁겠니?"
장녀는 가디너 씨의 조처로 말미암아 자기네 모두가
지게 된 신세로 어머니의 생각을 돌림으로써,
그와 같이 행복한 기분을 얼마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하긴 이와 같은 행복한 결말도"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대체적으로 외숙부님의 친절 덕분이라 생각해야지요.
돈으로 위컴 씨를 돕겠다고 서약한 것은 확실하니까요."
"그래"
어머니가 외쳤다.
"그건 옳은 생각이다. 육친인 외삼촌 외에 누가 그런
일을 해주시겠느냐 말이다. 자기 가족이
없었더라면 나하고 내 아이들이 그 사람 돈을 받게
되었을 텐데, 불과 몇 번 선물을 받은 일을
제외하고는 그 사람한테서 무엇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그런데 정말 난 행복해! 얼마 안 있어
딸 하나를 시집보내게 되니까. 위컴 부인!.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소리냐! 더우기 그애는 지난 6월로
겨우 열 여섯이 됐거든. 얘, 제인아, 난 지금 가슴이
뛰어서 정말 글을 쓰지 못할 것 같구나.
그러니까 내가 부르는 대로 내 대신 네가 써 주렴. 돈
문제는 나중에 아버지하고 결정짓기로
하자꾸나. 그러나 물건들은 지금 당장 주문해 두는
것이 좋겠구나"
그리고 그녀는 캘리코, 모슬린, 흰 린넬 따위의
세세한 것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아버지가 틈이
생겨서 의논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자고 제인이
어렵게나마 설득하지 않았으면 당장에 수많은 물건
주문서를 쓰게 했을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루쯤
지체한다 해서 큰일이 아니라고 그녀가 말했고,
어머니는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에 평소 때처럼
완고하지만은 않았다. 다른 계획들이 그녀의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옷을 입기가 무섭게 메리튼으로 가야겠어. 난 이
길로 내 동생 필립스에게 가서 이 좋은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해.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루커스
부인과 롱 부인을 방문할 수가 있는 거야. 키티야,
너 말야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가서 마차 준비를
시켜 두도록 해라. 바깥 공기를 쐬는 것은 틀림없이
몸에 이로울 거다. 너희들 혹시 메리튼에 부탁할
일이라도 없느냐? 아, 힐 마침 오는구나! 힐, 자네
좋은 소식 혹시 들었나? 리디어 양이 결혼하게 돼.
그땐 자네에게도 펀치 술 한 사발 줄 테니 그리 알게"
힐 부인은 그 자리에서 기쁨을 표하기 시작했다.
엘리자베드도 모두 함께 축사를 받게 되었는데,
이내 그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 자기 방으로 돌아와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리디어의 처지는 가엾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으며 더 이상 나빠질 수가 없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녀는 적어도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앞날을 내다볼 때 동생에게는 행복이라든지
세속적인 번영도 도저히 기대하기가 어려웠지만 불과 두
시간 전만 해도 자기네가 걱정했던 상태를
돌이켜볼 때 이만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할
일이었다. @ff
50

베네트 씨는 이 연배가 되기까지 여러 차례 생각했던
일이지만, 전수입을 다 써 버리지 않고 자녀의 장래나 처가
지기보다 오래 살 경우 장래에 대비해서 매년
얼마간이라도 저축해 두었으면 하고 원했던 것이다.
지금 와서는 더 간절하게 바라게 된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의무를 다해 두었더라면 이번에 리디어를
위한 어떠한 명예나 신용을 돈으로 사들이는데 있어서도
외삼촌에게서 은혜를 입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영국에서 제일 무가치한 남자를
그녀의 남편이 되어 달라고 설득하는 만족감도
당연히 부친으로서의 자기가 맛보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그 누구의 이익도 되지 못하는 목적을
처남에게만 폐를 끼쳐 가며 추구케 하는 것이 몹시
안타까와서 가능하다면 어느 정도로 처남이 원조해
주었는가를 알아냄으로써 가능한 한 빨리 그 채무를
갚겠다고 결심했다.
베네트 씨가 처음 결혼했을 때는 검소 같은 것은 전혀
무용지물이라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도
물론 사내아이가 태어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사내아이가 성년이 되면 아버지와 아들이 합세하여
한사상속을 폐기할 수 있기 때문에 미망인이나 아래
아이들도 그것에 의해 아무런 부자유도 없이
생활해 나갈 수 있으리라. 딸 다섯이 잇달아 태어났지만
사내아이는 끝내 태어나지를 않았다.
베네트 부인은 리디어를 낳고 난 후 몇 해 동한 꼭
사내아이가 태어날 줄 생각했었다. 이 일도
이윽고 체념하게 되었지만, 이미 그때는 저축하기에는
한 걸음 늦어 버렸다. 베네트 부인은 절약하는
소질이 전혀 없어서 남편의 독립 애호의 기질이 그들의
수입 이상의 지출을 막아 주었던 것이다.
결혼 당시의 계약으로 베네트 부인과 아이들에게는 5천
파운드를 분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나뉘어질 것인가는 양친의
의사에 달려 있었다. 적어도 리디어에
관해서는 바로 이 한 점만을 처리해 두면 되었기 때문에
베네트 씨로서는 처남이 내놓은 제안에
응하기를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매우 간결하기는
했으나 처남의 친절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고 나서
그는 취해진 조처를 전면적으로 승인한다는 취지와
자기를 대신해서 체결해 준 계약을 기꺼이
수행하겠다는 취지를 썼던 것이다. 설사 위컴을
설득해서 딸과 결혼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조처처럼 자신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해결이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다.
두 사람에게 1백 파운드의 돈을 지불한다고 하더라도
일년에 10파운드를 손해볼 이유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식비나 잡비가 어머니를 통해 나가는 현금의
선물 등으로 리디어가 쓰던 비용은 그 액수
한도와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으로서는 조금밖에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도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도 또 하나의
바람직한 놀라움이었다.
왜냐하면 당장 그가 주로 바라고 있는 소원은 이
문제에 있어서 되도록 귀찮은 일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서 딸을
찾아 헤매는 행동을 취했지만 그 노여움도 이제는
가라앉게 되자, 그는 예전대로의 태만 상태로 되돌아갔다.
그의 편지는 곧 발송되었다. 그가 일을 착수
하기까지는 느렸지만 처리하는 데는 빨랐기 때문이다.
처남에게 얼마만큼 빚을 지고 있는가를 더욱
상세하게 알려 달라고 부탁했지만 리디어에게는 너무나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말도 전하지 않았다.
기쁜 소식은 곧 집안 전체에 퍼져 갔고, 이웃에도
퍼져 나갔다. 이웃에서는 꽤 냉정하게 그 사실이
받아졌다. 리디어 베네트 양이 런던 시에 보호받고
감추어져 있다든가 하는 식의 일 같았더라면 확실히
화제로 하기에는 편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이 있었다.
전에 메리튼의 입심 사나운 모든 노부인들의
입에서 나온 리디어의 선행을 바라는 선의의 소망들은
사정이 달라진 이번 경우에도 그 기세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러한 남편을 얻게 되면
그녀의 불행은 틀림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베네트 부인은 아래층에 있고 난 후부터 2주일이
경과했지만 이 축하해마지 않는 날에 다시 한 번
식탁의 상좌에 앉게 되었으며, 남들을 압도할 만큼
원기에 차 있었다. 부끄러운 감정이 그녀의 자랑스런
얼굴을 어둡게 하지는 못했다. 딸의 결혼 문제가
제인이 열 여섯이 된 후부터 그녀의 염원이 되어
왔지만 바야흐로 그것이 성취될 단계에 살게 된 것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바를 말할 때는 전적으로 우아한
결혼의 참석자라든가 훌륭한 의상이라든가 새
마차며 하인들에 관한 일들 뿐이었다. 딸이 살기에
적합한 장소를 쉴새없이 부근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부부의 수입이 얼마 정도인가를 알지도 못한 채 크기가
쓸모 없다는 둥하며 이것저것 거절해 버리곤 했다
"헤이 장원 같으면 좋을지도 몰라. 굴딩 가족이
이사를 간다면, 아니면 응접실이 크다면 스토우크에
있는 큰 저택도 좋겠지만. 그러나 애시워드는 너무
멀지. 나하고 10마일이나 떨어져 살다니 안될 말이지
펄비스로지 같으면 다락방이 형편없고"
하인들이 있는 동안은 남편은 개입하지 않고 부인이
말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들이 물러가자 그가
부인에게 말했다.
"여보, 딸네 부부를 위해 아무 집이고 전부고간에
그것을 갖기 전에 우리 서로가 올바르게 이해는
해놓고 봅시다. 이 근처 어떤 집이고 간에 두 사람은
들여놓지 못할 거요. 나로선 그애들을 롱본의
집으로 들임으로써 둘 다 버릇 나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거요."
이 말이 있고 난 뒤 긴 논쟁이 벌어졌으나 베네트 씨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문제는 곧 다른 문제로
옮겨져서 베네트 부인은 딸 예복을 사들이는 데 남편이
한푼도 주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서는 한편
놀라고 무섭기까지 했다.
그는 막상 결혼식을 치른다 해도 애정 표시를
딸에게는 보이지 않겠다고 단언했던 것이다. 베네트
부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딸의
결혼을 떳떳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거의 없어서는
안될 그 특권마저 거절하고 나설 만큼 남편의 분노가
격심해져 있는 것은 부인으로서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딸이 줄행랑을 치고 아직 결혼도
하기 전에 2주일 동안이나 위컴 하고 동서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기보다도 아주 멋있는
예복이 없는 일로 해서 딸의 결혼에 수치를
당하지나 않나 그것만 걱정하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일시적인 고통 때문에 다아시 씨에게
동생에 대한 가족들의 근심을 털어놓은 사실을
지금으로서는 마음 속 깊이 후회하고 있었다. 동생은 곧
결혼하게 되므로 이내 줄행랑도 제대로 해결될
것이고 그 달갑잖은 발단도 그때 그 장소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감출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입을 통해 그 말이 더욱 퍼져 나가리라는
두려움은 우선 없었다. 비밀을 지키는 데 있어서 그
사람만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성싶었으나
동시에 동생의 과오가 그에게 알려지는 것만큼
한스러운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녀
개인에게ㄱ 불리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두 사람 사이에는 아뭏든 건너기 힘든 간격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리디어의 결혼이
설령 가장 명예로운 형태로 결말지어졌다 하더라도,
본래부터 이런저런 다른 장애가 있는데다가
이번에는 그가 당연히 경멸해 마지않던 사람과 가장
가까운 인척 관계를 맺게 된 집안과 그가 인연을
맺으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그러한 관계에서 그가 몸을 사린다고 해도 그녀로서는
이상하게 여길 수가 없었다. 더비셔에서는 그녀의
애정을 얻기 바라던 그의 감정을 그녀
자신으로서도 잘 알 수 있었지만, 그러한 소원이 이러한
타격이 있고 난 후까지 남아 있으리라고는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수치감을 느꼈고
슬퍼져 갔다. 뭔지 뚜렷하지는 못해도 후회도 했다. 그
사람한테서 존중받고 있다 해도 이제 와서는 이롭게
될 리 만무였으며 그것이 애석하기 그지 없었다.
소식을 듣게 될 희망은 전혀 없어 보였는데도 그
사람의 일이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이제는 서로가
얼굴을 마주칠 것 같지가 않은데도 그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녀는 가끔 생각해 보았지만, 불과 4개월 전만 해도
자기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물리쳤던 그 제안도
지금 같으면 기쁨과 감사로써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이 알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얼마나
승리감에 취해 버릴 것일까! 그가 그 어떠한 남성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매우 관대한 위인이라는
것을 그녀는 믿어 의심치 않겠지만, 그도 인간인 이상
승리감이란 것은 있게 마련인 것이다.
성격으로나 재능으로나 이만큼 자기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이제야 이해
하기 시작했다. 설령 그의 지성과 기질은 자기와는
딴판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소원만은 풀어 줄
것이다. 그 결합은 서로에게 이점으로 갖다 줄 결합이
될 것이다. 자기의 여유 있고 쾌활한 기질에 의해
그의 마음은 한결 부드러워지겠고 그의 행동거지는
훨씬 나아질 것이다. 더우기 그의 판단력, 지식,
그리고 세상사에 밝은 점 등에서 틀림없이 자기는 더욱
중대한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결혼에 감탄할 많은
사람들에게 결혼 생활의 행복이란 이런 것이라고
가르쳐 줄 수는 없었다. 이와 다른 결합이, 이 결합의
가능성을 제거해 가면서 얼마 안 있어 자기의
집에서 거행될 것이기에.
위컴과 리디어 두 사람이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 나갈 것인지 그녀에게는 상상 못할
일이었다. 다만 정열이 도덕심보다 강하기 때문에
맺어지는 부부에게는 영원한 행복이 뒤따르지
못한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쉽사리 추측이 가는
일이었다.
가디너 씨는 곧 다시 자형에게 소식을 보내 왔다.
베네트 씨의 감사하다는 말에 간단하게 답하고, 가족
여러분의 누구나 할 것 없이 행복이 더해 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보증하고 나서, 이번
문제에 대해서는 재차 논의되지 안기를 간청하면서 끝을
맺고 있었다. 편지의 주된 내용은 위컴 씨가
의용군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가디너 씨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전 크게 바랐던
겁니다. 결혼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말입니다.
더우기 형님께서도 그의 제대가 그 사람 자신뿐만
아니라 조카에게도 매우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점에
있어서 저에게 동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위컴 군은
정규군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옛날 친구 중에서
군에 입대하면 원조를 해줄 수 있으며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이 더러 있는 모양입니다. 현재
북부에 주둔하고 있는 ㅇㅇ장군의 연대에서 기수가 될
약속을 받았습니다. 주둔지가 이 지방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주 편리한
일입니다. 그의 전도는 매우 밝은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는 저마다 평판을 나쁘지 않게 해야
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지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확약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형님께서도
귀찮으시겠지만 메리튼 채권자들에게 같은 식으로
보증해 주어서 납득이 가도록 해달라고 의뢰해 두었는데
그 변제는 제가 확약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형님께서도 귀찮으시겠지만 메리튼
채권자들에게 같은 식으로 보증해 주실 수
없으시겠는지요? 채권자의 명단은 당사자의 보고에 의해
제가 추가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는 채무 건수를
전부 제출했습니다. 그는 적어도 우리를 속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해거슨에게도 그와 같이
지시해 놓았으니 한 주일만 지나면 만사가 완료될
것입니다. 먼저 롱본으로 초대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입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집사람의 말로는 조카는
남부로 떠나기 전에 여러분을 몹시 만나고 싶어한다
합니다. 그애는 몸 건강히 잘 있으며 아버지 어머니께
안부 전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네트 씨와 그 딸들은 위컴이 ㅇㅇ의용군에서
물러나는 것이 여러 모로 유리할 것이라는 것을 가디너
씨와 다름없이 명백히 감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네트 부인은 그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로서는 두 사람을 허어퍼드셔에서
거주하게 한다는 계획을 결코 버리지 않았고, 나아가
리디어를 자기 옆에 있게 하는 데에 최선의 기쁨과
자랑을 기대하고 있었던 판에 딸이 북쪽에서 자리잡는다는
것은 몹시 실망을 초래했다. 더우기 리디어가
모든 사람들과 친숙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그토록 많이 있는 연대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애는 포스터 대령 부인을 제일 좋아하지. 그애를
딴 곳으로 보낸다는 것은 큰 충격일 거야!
게다가 그애가 무척 좋아하는 청년도 몇 사람 있고
해서 ㅇㅇ장군의 연대에선 장교들이 훨씬 재미없는
친구들일 테니 말이다."
북부로 출발하기 앞서 다시 한 번 가정에 들여보내
달라는 딸의 요구는 고려해야 할 문제였지만,
처음에는 절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제인과
엘리자베드는 동생의 기분을 위해서나 장래를
위해서도 그 결혼은 양친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의견을 같이했으므로 결혼하는 즉시
동생 부부를 롱본으로 맞아들여 달라고 열심히 그리고
합리적이면서 상냥스럽게 설득했기 대문에
아버지도 솔깃해서 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 소원에 따르자는 심정이 되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결혼 딸이 북쪽으로 몰려나기 전에
근처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그래서 처남에게 여러 번
편지를 내면서 베네트 씨는 두 사람이 오는 것을
허락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 결과로 결혼식이 끝나는 대로 두 사람을
롱본으로 데리고 오도록 일이 진행되었다. 그러면서도
위컴이 그와 같은 계획에 동의했다는 것 자체부터가
엘리자베드를 놀라게 만들었다. 만약 자기
의사대로 하게 된다면 그와는 얼굴을 마주치지 않은
것이 그녀의 소망이었다. @ff
51

동생 결혼식이 닥쳐오자 제인과 엘리자베드 두 사람은
동생의 일에 아마도 당사자 이상으로 신경을
썼다. 그들을 맞으려고 마차를 보냈으며 두 사람은 그
마차를 타고 정찬 때까지는 오기로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도착을 손위 두 언니들은 몹시 두려워했는데
특히 제인이 더 심했다.
그녀가 만일 죄지은 당사자 같으면 당연히 그런
심경을 리디어도 가지게 될 것이라 생각될 때, 동생의
심정은 오죽하랴 싶은 심정이 드니 가엾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그들이 왔다. 가족들은 식당에 모여서 그들을
맞았다. 마차가 문간까지 다가오자 베네트
부인의 얼굴은 미소가 감돌았다. 남편은 완고할 만큼
자못 엄숙한 표정이었고, 딸들은 겁먹은 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리디어의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려 왔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그 길로 그녀가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모친은 몇 걸음 다가서더니 그녀를 포옹하고 나서 아주
기쁘게 환영했다.
뒤를 따르던 위컴에게 환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두
사람의 기쁨을 표시했다.
그리고 다서 두 사람은 베네트 씨 쪽을 향하게
되었는데 그의 영접하는 자세는 그다지 따뜻한 편은
못되었다.
얼굴 표정은 엄한 기색이 더해 갔으며 도무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젊은 부부가 태연스러운
기분에 잠겨 있는 것은 그의 격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엘리자베드는 정나미가 떨어졌고 미스
베네트마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리디어는 변함없고
세련되지 못하고 뻔뻔스럽고 방종하며
소란스럽고 두려워 할 줄도 몰랐다. 차례 차례로
언니들을 향하여 축하의 말을 종용했다.
이윽고 일동이 자리를 잡게 되자 방 안을 열심히
돌아다보면서 조금 변한 곳을 찾아내고서는 웃음
소리를 내면서 이 방에 들어서는 것도 오래간만이라고 했다.
위컴도 그녀 못지 않게 조금도 괴로와할 줄을 몰랐다.
그리고 그의 태도가 너무나 쾌활했기 때문에 만
일 그의 성격과 결혼이 바람직한 것이었더라면
친척 관계를 강조할 때의 그의 미소와 부드러운 언변은
모든 사람을 다 기쁘게 해주었을 것이다.
엘리자베드는 설마 그 사람이 이 정도로 뻔뻔스러운
짓을 해내리라곤 상상조차 못했지만, 자리를 잡고
나서 앞으로는 뻔뻔스러운 사람의 파렴치에는 한계를
두지 않으리라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그녀도
얼굴이 달아올랐고 제인도 그러했지만 정작 그녀들을
당황하게 만든 두 사람의 얼굴은 조금도 변해
있지 않았다.
할 말은 매우 많았다. 신부와 신부의 어머니는
제아무리 빨리 말을 해도 부족한 상태였다. 위컴은
이따금 엘리자베드 옆에 앉았지만 그는 자못 명랑하며
태연했었고 예의 그 지방의 그의 친지의 안부를
물어 오곤 했는데, 그녀는 어찌 같은 기분으로 대답할 수
있으랴 싶었다. 두 사람은 제각기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즐거운 회상 거리를 지니고 있는 듯이 보였다.
과거의 일을 생각해 보아도 고통이 느껴지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리디어는 언니들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낼 화제를 먼저 끄집어냈다.
"생각해 보기나 해요. 내가 집을 나간 지 석 달이나
돼요! 똑바로 말해서 두 주일밖에 안되는 것
같아요. 그 동안에 여러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어요.
어머나! 내가 떠나갔을 땐 결혼해서 돌아오게
된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었거든요! 그렇게 되면
재미있는 일이 될 줄은 알았지만"
아버지는 눈을 부릅떴고 제인은 낙담했고
엘리자베드는 리디어를 뚫어지게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원래 자기가 알고 싶지 않은 일은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는 성미여서 쾌활하게 말을
계속해 나갔다.
"아, 어머니. 이 근처 사람은 제가 오늘 결혼한 것을
알고들 있어요? 혹시 모르고 있는 게 아닌지
몰라요. 이륜마차를 타고 가던 윌리엄 굴딩을
따라붙게 됐을 때 아려 버리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을 향한 쪽의 유리창을 내리고선 장갑을
벗고서 창틀에다 손을 얹어서 반지가 보이게 했지요.
그리고 고개를 숙여 보이면서 그럴 듯하게 미소를
보내 줬지요."
엘리자베드는 그 이상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뛰쳐나가서는 모두 홀을 지나서
식당으로 가서는 제일 큰언니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 제인 언니, 내가 언니 자리를 차지해야겠어요.
언닌 그 아래로 가셔야 해요. 왜냐하면 난
기혼 여성이니까요!"
처음엔 전적으로 제 뜻대로 할 수가 있었던 리디어도
시간이 흐르면 나중엔 당황해지리라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경박스러움과 우쭐한 기분은 더해 가기만
했다. 필립스 부인이나 루커스 가의 사람들, 그리고
그밖에 이웃 사람들을 모조리 만나서 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위컴 부인'이라고 불러 주기를 몹시
바랐지만, 그 동안에는 반지를 보여줌으로써 결혼했다는
사실을 자랑하려고 힐 부인과 두 사람의
가정부를 찾아갔다.
"그런데, 어머니"
일동이 식당으로 되돌아오자 그녀가 말했다.
"저의 주인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매력 있는 남자
아니에요? 언니들은 틀림없이 절 부러워들 할
거예요. 언니들이 저의 반만큼이라도 행복해 줬으면
해요. 남편감 구하기에는 그곳이 제일이거든요.
정말 유감스런 일이지요. 우리 모두가 그곳에 안간
것은 말예요!"
"그렇다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더라면 우린
모두 갔어야 했는데. 그러나 리디어야, 네가
그렇게 멀리 가 버린다는 건 반대다. 왜 꼭 가야만 하니?"
"아, 괜찮아요.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 얼마
안가서 좋아하게 될 거예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언니들도 놀러와 주세요. 우린 겨울엔
뉴우캐슬에 있게 될 것이고 무도회도 있게 될 테니
언니들에게 좋은 상대를 만날 수 있게 노력해 보겠어요."
"그거 정말 다시없이 고마운 일이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돌아오실 땐 언니 한두 사람을 남겨 두고
떠나셔도 돼요.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제 힘으로
남편감을 구해 드릴 수가 있으니까요."
"나에게까지 친절히 해줘서 고맙구나. 그렇지만 네
식으로 남편을 구하는 것은 난 아무래도 싫구나"
엘리자베드가 그렇게 말했다.
그들의 방문객들은 열흘 이상은 묵을 수가 없게
되었다. 위컴 씨는 런던을 떠나기에 앞서 장교로
임명되어 있었고 2주일 뒤면 연대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체류 기간이 그토록 짧은 것을 유감 되게
생각했던 사람은 베네트 부인 혼자만으로 그녀는
그 기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딸을 데리고 이곳
저곳을 방문하고 다녔으며 집안에서는 줄곧 파티를
열곤 했다. 그 파티는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받았다.
집안끼리 모이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것은 사리를
고려하지 않는 편보다 차라리 고려하는 편에서 원했었다.
위컴의 리디어에 대한 애정은 엘리자베드가 예기했던
대로였고 그에 대한 리디어의 애정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줄행랑은 그의 애정보다는 차라리 그녀의
애정에의 힘에 의에 실현되었다는 것은 사리로
판단해서도 분명한 사실로 지금에 와서 일부러 관찰해
볼 필요도 없었다. 더우기 그가 도망친 것도
따지고 보면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게
분명하지 않았다면 그녀를 죽도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도망가기를 택했는지 엘리자베드는
의아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궁지에 빠져
있었더라면 그 청년은 동행자를 가질 기회를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리디어는 그가 죽도록 좋았다. 어떤 경우에도 위컴은
사랑하는 존재였다. 그 누구도 감히 그의
경쟁자가 될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제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또 9월이 되면 이
지방의 누구보다도 많은 새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믿고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직후 어느 날 아침에 두 언니와 함께
앉아 있을 때 그녀가 엘리자베드에게 말을 건넸다.
"리지 언니, 언니에겐 아직 내 결혼 때 얘기를
들려 드리지 않은 것 같아요. 어머니와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할 때 언닌 마침 곁에 있지
않았거든요. 어떤 식으로 진행됐던가 언니는 알고 싶지 않수?"
"응, 조금도 그런 문젠 되도록 말 안해 줬으면 해"
엘리자베드가 대답했다.
"어머! 언닌 이상하시다! 그렇지만 난 어떻게
됐었던가를 꼭 들려 줘야 할 것 같아요. 언니도
아시겠지만 우린 세인트 클레멘트 교회에서 결혼 했던
거예요. 위컴의 숙소가 그 방면의 교구에
있었으니까요. 우리 모두가 열한 시까지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돼 있었고 외삼촌 내외분과 내가 함께
가고 다른 사람들은 교회에서 우릴 만나기로 돼
있었던 거예요! 또 무슨 일이 생겨서 식이
연기되지나 않을까 하고 매우 걱정을 했었죠. 그렇게
됐었더라면 아마 난 미치고 말았을 거예요.
게다가 외숙모께서는 내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내내
마치 설교를 읽고 있는 것처럼 사뭇 충고하고
연설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한 마디도 내 귀에
안 들어왔어요. 왜냐하면 말예요. 아시겠지만 난
사랑하는 위컴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분이
혹시 푸른 연미복을 입고 결혼식에 나오지나 않나
하고 알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죠. 그래서 우리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열 시에 아침 식사를 했었죠.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를 지경이었죠. 그건 그렇고,
나하고 함께 있었을 땐 외삼촌과 외숙모께선 사뭇
지긋지긋하게 불쾌히 여기더란 말을 언니에게
해줘야겠어요. 내 말을 믿어 주리라 생각하지만 난 두
주일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단 한 발짝도 바깥 출입을
못했었죠. 파티라곤 한번도 없었고 어떤
계획이나 다른 일도 없었어요! 런던은 틀림없이
여름을 타서 쓸쓸했었지만 '소극장'만은 열렸어요. 이럭저럭해서
마침 마차가 문턱에 도착했을 때 외삼촌은 무슨
용건으로 보기 싫은 스토운인가 하는
사람에게 불려 가고 말았지요. 그래서 말예요, 일단
서로가 만나게 되자 끝이 나질 않지 뭐예요. 이젠
난 너무나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외삼촌께서 날
신랑에게 넘겨 주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대지 못하는 날이면 그날 하루는 공치고 말
테니까 말예요. 그렇지만 운좋게 10분이 지나서
돌아오시게 돼서 우린 모두 떠날 수가 있었죠.
그렇지만 나중에 가서 생각해 보니 만일 그때
외삼촌께서 못 가셨다 해도 결혼식을 연기할 필요는
없었어요. 다아시 씨께서 대신하실 수 있었으니까 말예요."
"다아시 씨라구!"
엘리자베드는 혼비백산해서 되받았다.
"아, 그래요! 위컴과 함께 식장으로 오시게 돼
있었어요, 아시겠지만. 그러나 내 정신 좀 봐! 난
까맣게 잊고 있었네! 그 일에 대해선 한마디도 말
않기로 돼 있었는데, 그렇게 굳게 약속했던
일이었는데! 위컴이 뭐라 하실까? 일급
비밀이었는데!"
"비밀이라면 그 일에 대해선 더 하지 마라. 나도 더
이상 묻지 않겠어."
제인이 말했다.
"우린 더 이상 안 묻기로 하면 되니까."
"고마워요. 만일 물어 오신다면 난 있는 대로 말해
버릴 게고 그렇게 되면 위컴이 너무너무 나에게
화를 낼 테니까 말예요."
리디어가 말했다.
이와 같이 물어 오라는 식이고 보면 엘리자베드로서는
그 자리를 뜸으로써 물을 기회를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초점에 손이 닿지 않고 지내기란
불가능했다. 아니 적어도 정보를 구하지 않으려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분으로서는 분명히 갈 이유가 없고
가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는 곳엘 가서 엄연히
사람들 뜸에 낀 것이다.
그 의미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이 매우 빨리 그리고
사납게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무엇 하나
만족할 만한 회답은 얻지 못했다.
그의 행위를 더욱 고결한 것으로 빛나게 해주고
그녀에게 보다 큼 기쁨을 갖다 줄 수 있는 추측은
애당초 있을 성싶지가 않았다. 그녀는 그러한 불안
상태에서 계속 고통 당하기가 어려워서 급히 종이 한
장을 손에 잡고서는 외숙모 앞으로 짧은 편지를 썼는데,
리디어가 실토한 사실이 본래 의도했던 비밀
방침에 상반되지 않는 한 설명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외숙모님께서는 우리들 누구하고도 관계가 없는 분,
따지고 보면 우리 가정하고는 상관없는 분이
그와 같은 때에 어떤 연유로 여러분 가운데 있었던가
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저의 호기심을
쉽사리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제발 곧 회신을
쓰셔서 저에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리디어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비밀에 부쳐 두어야
할 움직일 수 없는 사유가 없는 한에서 하는
말입니다. 이유가 그러하다면 저는 모르는 채로
만족하려고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난 그렇게는 안할 참이야 하고 편지를 마치고
나서 그녀는 혼잣말로 덧붙여 말해 보는
것이었다. 외숙모님, 만일 공정하게 말씀 안해 주신다면
전 꼭 하는 수 없이 어떤 책략이나 술책에
호소해서라도 그것을 찾아내고야 말겠어요.

섬세한 명예 의식을 가진 제인은 리디어가 어쩌다가
내뱉은 것을 엘리자베드에게 살짝 말해 줄
심정은 도저히 될 수가 없었다. 엘리자베드도 그것이
기뻤다. 편지로 문의할 사실에 대해 만족한 답을
얻을 때까지는 차라리 털어놓을 상대가 없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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