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5일 수요일

신촌이미지한의원 추천책 나무를 심는 사람

어느 날 나는 고도 1200 ∼ 1300미터의 인적없고 단조로운 곳에서 긴 산책에
나섰는데 이곳은 야생
라벤더 외에 자라고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였다. 나는 폭이
가장 넓은 곳으로 이 지역을 가로질러 걸었다. 사흘을 걸은뒤 나는 어디에서고
찾아볼수 없을 만큼 황폐한 지역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뼈대만 남은 버려진 마
을 옆에서 야영했다. 전날 마실 물이 바닥났기 때문에 나는 물을 찾아야만 했다.
페허가 되어있기는 하지만 낡은 말벌통처럼 촘촘하게 붙어있는 집들을 보니 옛
날엔 이곳에 샘이나 우물이 있었을것이라고 생가되었다. 과연 샘이 있긴 했지
만 바싹 말라붙어 있었다. 지붕이 없어져버리고 비바람에 바싹 말라 붙어 있었
다. 지붕이 없어져버리고 비바람에 사그러진 대 여섯 채의 집들, 종탑이 무너져
버린 작은 교회는 마치 사람들이 사는 마을속의 집이나 교회처럼 서 있었다. 그
러나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그날은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유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러나 하
늘높이 솟아 있는 이 고지위에 따가운 햇살을 피할곳 없는 땅 위에는 견딜수 없
을 만큼 난폭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뼈대만 남은 집들속으로 불어닥치는 바람
소리는 마치 식사를 발해받은 야수가 부르짖는 소리 같았다. 나는 캠프를 철수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곳에서부터 다섯 시간이나 더 걸어 보았어도 여전히 물
을 찾을수 없었고 또 물을 찾으리라는 희망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방
이 똑같이 모두 메말라 있었고 거친 풀들만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저멀리에서
검은 작은 그림자가 서 있는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실루엣을
홀로 서 있는 나무의 둥지로 착각했다. 어쨋든 나는 그것을 향해 걸어갔다. 그것
은 한 양치기 목자였다. 그의 곁에 불타는 듯한 뜨거운 땅위에는 30여 마리의
양들이 누워 쉬고 있었다.
그는 물병을 꺼내 내게 물을 주었다. 그리고 잠시후 고원의 우묵한 곳에 있는
양의 우리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는 간단한 도르래를 설치해 놓고 깊은 천연의
우물에서 아주 좋은 물을 긷고 있었다. 그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지만 그러나 자신감이 있고 확신속에 자부심
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모든것을 빼앗겨버린 이런곳에 그런 사람이
살고 있다는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그는 오두막이 아니라 돌로 만든 제대로 된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 집은 그가 이곳에 왔을때 발견된 폐가를 어떻게 혼자
힘으로 수리해 놓았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었다. 지붕은 튼튼했고 물새는 곳도
없었다. 바람이 지붕을 두두려 기와 위에서 내는 소리가 마치 바닷가의 파도소
리 같았다. 살림살이는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릇은 깨끗하게 씻겨 있었고 마루
는 잘 닦여 있었으며 총은 반질반질했다. 불위에는 수프가 끓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그 역시 산 뜻하게 면도한 얼굴을 하고 있고 옷에 단추가 단단히 달려 있
으며 기운것이 눈에 보이지않게 옷이 세심하게 수선돼 있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는 수프를 나누어 주었다. 식사후 담배쌈지를 권하자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
는다고 했다. 그의 개 또한 주인처럼 조용했으며 거칠지않고 상냥했다.
내가 여기서 그날 밤을 묵어야 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가장 가까운 마
을이라도 하루 하고 반이상을 더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지역에는 마
을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곳 고지대의 기슭에는 서로
멀리 떨어진 너 댓 개의 촌락이 흩어져 있을 뿐이었는데, 그 마을들은 차가 다
니는 길의 맨끝에, 떡갈나무 숲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엔 숯을 만드는 나무
꾼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곳이었다. 여름에도 겨울만큼이
나 날씨가 혹독한 곳에 촘촘하게 모여 살면서 모든 가정들은 닫힌 세계 속에서
의 이기심만을 키워 가고 있었다. 분별없는 야심은 이곳을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욕망 속에서 정상을 벗어난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남자들은 트럭으로 시내
에 숯을 운반하러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아무리 굿센 품성을 지닌 사람일지라
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실망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곤 했다. 여인들은 또
한 가지가지 원한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놓고 경쟁했다. 숯을 파는 것을 놓고, 교회의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미덕들을 놓고, 악덕을 놓고, 그리고 선과 악이 뒤엉클어진 것들을 놓
고 끈임없이 경쟁했다. 게다가 바람 또한 쉬지 않고 신경을 자극했다. 그래서 자
살이, 그리고 거의 언제나 죽음으로 몰고가는 정신병들이 전염병처럼 번졌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그 목자는 조그만 자루를 찾아 들고와서 도토리 한 무더
기를 테이블 위에 쏟아 놓았다. 그는 그 도토리 하나하나를 아주 주의깊게 조사
하기 시작하더니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로 구별했다. 나는 파이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자기가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가
이 일에 기울이는 정성을 보고 나는 더 고집할 수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그것
이 전부였다. 그는 아주 굵은 도토리 한 무더기를 모으더니 그것들을 열 개씩
세어 묶음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작은 것이거나 조금이라도 금이 간 것들
을 제쳐놓았다. 더 자세히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완벽한 상태의 도
토리가 백 개 모아졌을 때 그는 일을 멈추었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평화가 있었다. 다음날 나는 그의 집에서 하루종일 쉴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는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것도 그를 방해할 수 없다는 인상을 나는 받았다. 그 휴식이 나에
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호기심을 느꼈고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는 양떼를 꺼내어 풀밭으로 데리고 갔다. 떠나기 전에 그는 세심
하게 골라 갯수를 세어 모은 도토리 자루를 물양동이에 담갔다.
나는 그가 지팡이 대신 대략 길이가 1.5미터 정도 되고 엄지 손가락만큼 굵은
쇠막대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산책하며 쉬며 그가 간 길을 나란히
따라갔다. 양들의 목장은 작은 골짜기 아래에 있었다. 그는 작은 양떼를 개가 돌
보도록 맡기고는 내가 서 있는 곳을 향해 올라왔다. 나의 무례함을 꾸짖으려 오
는 것 같아 두려웠으나 전혀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가는 길이었다. 그는
내게 달리 할 일이 없으면 자기를 따라 오라고 청했다. 그는 거기서 산등성이를
향해 200미터를 더 올라갔다.
그가 가려고 한 곳에 이르자 그는 땅에 쇠막대기를 박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
서 구멍을 만들어 그안에 도토리를 넣고 다시 구멍을 덮었다. 그는 떡갈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곳이 그의 땅인지 나는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그 땅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곳이 공
유지이거나 아니면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겠
냐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백 개의 도토리를 심었다.
그리고 점심식사후 그는 다시 도토리 고르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었으므로 나는 그에게 여러가지를 끈질기게 물어보았다고 생각한
다. 3년 전부터 그는 이런 식으로 고독하게 나무를 심어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
는 십만 그루의 도토리를 심었다. 십만 개의 씨에서 2만 그루의 싹이 나왔다. 그
러나 산짐승들이 나무를 갉아먹거나 예측할 수 없는 신의 섭리에 속한 일들이
일어날 경우, 이 2만 그루 가운데 또 절반 가량이 죽어버릴 것이라고 그는 예상
했다. 그렇게 되면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이 땅에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살아남아 자라게 될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그이 나이가 궁금했다. 그는 분명히 50세가 넘어 보였다. 55세
라고 했다.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였다. 지난 날 그는 평지에 농장 하나를 갖고 있었고 그곳에서 인생을 가
꾸며 살았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었고 뒤이어 아내를 잃었다. 그후
그는 고독 속에 물러앉아 양들과 개와 더불어 한가롭게 살아가는 것을 기쁨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이 곳의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달리 중요한 일거리도 없었으므로 이런 상태를 개선해 보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그 때는 나 역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독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고
독한 사람들의 영혼에 섬세하게 접근할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정확히 말해서 내 젊은 나이는 나 자신과 관련지어서만
그리고 어떤 행복의 추구만을 염두에 두고 미래를 상상케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삽십년 후면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아주 멋진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
고 만 것이다. 그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만일 삼십년 후에도 하느님이 그에
게 생명을 주신다면 그 동안에도 나무를 아주 많이 심을 것이기 때문에 이 1만
그루는 바다속의 물방울 같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벌써부터 너도
밤나무를 번식시키는 것을 연구해오고 있으며 그의 집 근처에 이 나무의 열매에
서 길러낸 묘목원을 갖고 있었다. 울타리를 세워 양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잘 보
호해 놓은 묘목들, 즉 그의 연구 재료들은 아주 아름다웠다. 그는 또한 지면에서
몇 미터 지하에 어느 정도 습기가 고여있을 것 같은 땅에는 자작나무를 심으리
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우리는 헤어졌다.
다음해 1914년에 전쟁이 일어나 나는 5년 동안 이 전쟁에 참가했다. 나는 한
낱 보병 병사의 몸이었으므로 나무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할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한다면 그런 일 자체는 나에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하
나의 화재거리라든가 우표수집 같은 것으로 여겼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전쟁에
서 벗어났을때 나는 아주 적은 액수의 제대 보너스를 받았으며 신선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마시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았다. 인적없는 그황무지로
가는 길을 다시 찾아들었을 때 나에게는 그런 바람 이외에는 다른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곳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폐허가 된 마을 너머 멀리에서 무슨 회색빛 안
개 같은 것이 카페트처럼 산등성이를 덮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실 난 여기 오
기 전날부터 나무를 심던 그 목자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1만 그루의 떡
갈나무라면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꺼야” 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노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에제아르 부피에 역시
역시 죽었으리라고 쉽게 상상했다. 게다가 20대의 나이에는 50대의 인간들이란
죽는 것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늙은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어서 더욱 그러했
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아주 활력이 넘쳐 보였다. 그는 생업도 바꾸었
다. 양들을 네마리만 남기고 대신 100여개의 벌통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린 나
무들을 위협하는 양들을 치워버린 것이다. 그동안 그는 전혀 전쟁 때문에 불안
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 그는 태연하게 여는
때와 다름없이 나무를 계속 심었던 것이다.
1910년에 심은 떡갈나무들은 그때 10살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무들은 나보
다, 그리고 엘제아를 부피에보다 더높이 자라 있었다. 그것은 인상적인 모습이었
다. 나는 문자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엘제아르 부피에도 말이 없었기 때문에 우
리는 침묵속에서 그가 키원 놓은 숲을 산책하며 하루를 보냈다. 숲은 세구역으
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가장 폭이 큰것은 11 킬로미터나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아무런 기술적인 장비도 지니지 못한 한 인간의 손과 영
혼에서 나온 것임을 기억할 때마다 나는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느님처럼 유능할 수 있다고 깨닫곤 한다. 그는 자기 생각을 꾸준히 실천해
가고 있었다. 내 어깨 높이에 와닿는 너도밤나무들이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
는 광경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떡갈나무는 빽빽히 자라 있었고, 들짐승
에게 갉아먹혀 피해를 입는 나이를 넘어 있었다. 신 자신이 이 피조물을 파괴하
려는 섭리를 갖고 있다면 앞으로는 태풍에게나 도움을 청해야 할 것이다. 그는
또 감탄할 만큼 잘 가꾸어진 자작나무 숲을 보여 주었다. 5년 전 그러니까 1915
년 내가 베르덩 전투에서 싸우던 시기에 심은 나무들이었다. 밑에 습기가 있으
리라고 정확하게 짐작했던 모든 땅에는 그는 자작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자작나
무들은 젊은이 같이 부드러웠고 아주 단호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창조란 연달아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하지만 엘제아르 부피
에는 그런데는 관심이 없었 아주 단순하게 저신의 일을 고집스럽게 추구할 뿐이
었다. 마을로 다시 내려왔을 때 나는 사람들의 기억속에는 늘 말라붙어 있던 시
내에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주 오랜 옛날 어느 때는 이 말라 붙었던
시내에 물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내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 소개했던 쓸쓸한 마
을들 가운데 몇몇은 옛갈로 로망의 터전 위에 세워져 있었느데 아직도 그 시대
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낚시 바늘을 찾아내곤 했다. 그러나 20세기에는
약간의 물을 얻기 위해서도 저수통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바람도 몇가지 씨앗들을 흩어 놓았다. 그래서 물이 다시 나타나자 그와 함께 버
드나무가, 골풀이, 풀밭이, 전원이, 꽃들이, 그리고 삶의 이유같은 것이 되살아났
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는 아주 천천히 일어났기 때문에 습관처럼 익숙해져 아
무런 놀라움도 가져다 주지 않았다. 산토끼나 멧돼지들을 잡으려고 외롭게 산을
타는 사냥꾼들은 작은 나무들이 많이 번식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으나 그
것은 그저 땅이 자연스럽게 부리는 변덕 탓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아무도 이사
람의 간섭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에게 의심을 두었다면 그들은 그에게 반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는 의심을 느끼게 할 만한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훌륭하고 고
결한 그의 인격 속에 이처럼 끈질긴 고집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과 관리들 가운
데 누가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1920년 이래 나는 1년에 한 번씩 엘제아르 부피에를 방문했다. 그 동안 그가
좌절하거나 회의에 빠지는 것을 나는 전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 자신
은 그를 그런 어려움 속으로 종종 밀어 넣었던 것을 아실 것이다. 나는 그가 겪
었을 곤란에 대해서는 헤아려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두기 위
해서는 역경과 싸워 이겨내야 했을 것이고, 그러한 열정이 확고한 승리를 거두
기 위해서는 절망과 싸워야 했을 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는 1년 동안에 1만 그루가 넘는 단풍나무를 심었는데, 모두 죽어버린 일도 있
었다. 그래서 그 다음 해가 되자 그는 단풍나무를 포기하고 너도밤나무를 다시
심었으며, 그리하여 떡갈나무들보다 더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보기드믄 인력을 가진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
면 우리는 그가 철저한 고독 속에서 일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는 너무
나도 완전한 고독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생의 마지막 시기에는 말하는 습관을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아니, 어쩌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1933년 엘제아르 부피에는 깜짝 놀란 산림관리인의 방문을 받았다. 이 관리는
<<천연>> 숲의 성장을 위태롭게 할까 두려우니 집밖에서 불을 피우지 말라는
명령을 이 목자에게 통고했다. 그 관리는 순진하게도 숲이 스스로 혼자 커가는
것은 생전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 시기에 엘제아르 부피에는 집에서 12킬로미
터 떨어진 곳에 너도밤나무를 심으러 가곤했다. 그때 그는 이미 75세였기 때문
에 매일 오고 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나무심는 바로 그 장소에 오두막 돌집을
하나 지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다음 해에 그 집을 지었다.
1935년에는 정부는 진짜 대표단이 <<천연의 숲>>을 시찰하러 왔다. 산림수자
원청의 고위관리와 국외의원, 전문가들도 함께 왔다. 그들은 쓸데없는 말들을 많
이 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하기로 결정했는데,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단 한가지
유익한 일을 제외하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즉 숲을 국가의 관리 아래 두
고 사람들이 숯을 만들러 오는 일을 금지한 것이다. 그들 역시 건강이 넘치는
젊은 나무들의 아름다운 숲은 국회의원에게까지도 유혹의 힘을 발휘한 것이다.
대표단의 산림관리관들 가운데 내 친구가 한 사람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 숲
의 비밀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어느 날 우리 두 사람은 엘제아르
부피에를 찾아갔다. 우리는 대표단이 시찰한 지점에서 2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
에서 한참 일하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 산림관리관은 쓸모없는 친구가 아니
었다. 그는 가치있는 것을 알아볼 줄 알았고 침묵할 줄도 알았다. 나는 선물로
가져간 달걀 몇 개를 내놓았다. 우리 셋은 함께 점심 식사를 했고, 말없이 경치
를 바라보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지나온 언덕 길은 6~7미터 높이의 나
무들로 뒤덮혀 있었다. 1913년에 보았던 이곳의 모습이 생각났다. 황무지가 떠올
랐다...
평화롭고 규칙적인 일, 고산지대의 살아 있는 공기, 소박한 음식, 그리고 무엇
보다도 영혼의 평화가 이 노인에게 거의 장엄하리만큼 훌륭한 건강을 주었다.
그는 하느님의 운동선수였다. 나는 그가 아직도 얼마나 많은 땅을 나무로 덮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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