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가 밀집지역이 아닐까 하는 염려는 금새 사라졌다. 악명 높은 로스앤젤레스 스모그는 과연 어떨까? 우리는 로스앤젤레스의 스모그가 주로 시의 동부와 남부 지역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들었다. 그러나 시의 서부 지역의 스모그는 태평양으로 발산된다. 잭 후프는 우리에게 서늘한 산들바람이 부는 서북향 가옥을 한 채 보여 주었다. 대부분의 방들이 서향이고 커다란 유리문이 나 있었다.
이방 저방 돌아다니면서 엘런의 눈은 시시각각 커져 갔다. 그녀가 부엌 중앙에 훌륭한 조리대와 넓은 찬장 그리고 드넓은 공간이 있는 커다란 현대식 부엌을 살필 때 나는 우리가 새로 살 새집을 구했다는 것을 느꼈다. 집값도 적절한 것 같았고 더구나 코네티컷의 부동산을 매각한 대금의 범위 안이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살 값을 제시했다. 아마 우리가 이 집 안으로 들어 온 지 5, 6분이나 지났을까? 우리의 제안은 수락됐다. 잭 후프는 후에 우리가 집을 구입하는 속도에서 기록을 수립했다고 말해 주었다.
≪블랜딩, 꿈의 집을 짓다(Mr. Blandings Builds His Dream House)≫의 저자인 에릭 홋긴즈(Eric Hodgins)는 부동산 구입자는, 집을 아무리 잘 조사하고 구입했더라도 나중에 뜻밖의 결과에 대해 놀라게 될 것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콜드워터 협곡의 상부 가까이에 위치한 이 집을 구입한 후에 엘런과 나도 수없이 놀랐지만 그것은 모두 즐거운 것들이었다. 우리는 가옥이 튼튼하게 지어졌고 대형 유리문과 유리창, 높은 천장 그리고 균형잡힌 방의 배치에 대해 만족했다. 또한 우리는 큼직한 방들과 그림을 걸기에 충분한 공간도 마음에 들었다.
특히 우리가 조류보호구역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흡족했다. 벌새들이 테라스 위에 피어 있는 히비스커스(hibiscus ; 무궁화속의 식물=역주)에 모여들었다. 힘센 어치들이 언제나 모이통을 독점하고 있지만 연약한 피리새(참새과의 작은 새=역주)들도 공존의 기술을 구사하며 모이통 옆에 엎질러진 모이를 찾아오곤 했다. 비둘기들도 많이 날아와 지붕의 낙수 홈통 위에 앉아 다른 새들이 날아다니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한 무리의 부엉이 가족이 집과 뜰을 가리고 있는 소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틀기도 했다. 우리는 또한 메추리 가족이 날마다 여기를 방문하는 것을 환영했는데 이들은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담쟁이덩굴의 우거진 잎새들, 선인장, 얼음나무, 오렌지나무와 레몬나무, 바나나나무 및 들꽃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때때로 사람이 살지 않는 로키산록의 남쪽 숲 사이로 사슴들이 뛰어 다니는 것도 목격됐다. 코요테(Coyote ; 북미 대초원에 사는 늑대=역주)들도 정기적으로 방문했는데 주로 목요일 밤의 정기 쓰레기 수거 때에 우리가 음식 찌꺼기를 내다 버리고 난 후에 야음을 틈타 찾아오곤 했다. 쓰레기를 수거하기 위해 시 당국은 수거 일자를 다르게 정했지만 코요테들은 용케도 이 스케줄과 시간을 잘 알고 때를 맞춰 야습하는 것이었다.
UCLA를 찾은 첫날에 나는 체격도 거인이지만 지적인 면에서도 거인인 웨스트 박사를 만났다. 그는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UCLA로 왔는데 그곳에서는 정신의학과의 학과장을 역임했다. 그는 국내의 저명한 교수와 연구원을 UCLA에 초빙함으로써 확과 규모를 크게 확장시켰는데 그 중에는 예일대학의 정신의학과장을 역임한 프리츠 레들리히(Fritz Redlich) 박사, 매사추세츠 주의 정신보건국 정신의학과장을 역임한 밀턴 그린블랫(Milton Greenblatt) 박사, 전에 토론회의 초청으로 나를 로스앤젤레스호 초청해 준 버나드 타워즈 박사, 정신과 육체에 관한 연구의 선구자이며 ≪정신 생물학(Psychobiology)≫의 저자인 허버트 와이너(Herbert Weiner) 박사, 노인 정신의학(geriatric psychiatry) 및 정신약학(psychopharmacology)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시(Lissy) 박사와 머리 야빅(Murray Jarvik) 박사 시카고 대학의 전(前) 정신의학과장인 대니얼 프리드먼(Daniel X. Freedman) 박사, 현재 UCLA에서 생물 정신의학(Biological Psychiatry) 교수인 저드슨 브라운(Judson Braun), 알코올 연구 센터의 이사인 어니스트 노불(Ernest P. Noble) 박사, UCLA의 신경정신의학연구소에서 알코올 연구를 하고 있는 파이크(Pike) 교수 등 다수가 재직하고 있다.
웨스트 박사는 또한 이 학과를 “정신의학 및 생물행동과학”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육체, 정신 및 사회가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그의 확신을 반영한 것이다. 그는 육체적 혹은 정신적 질환이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일어나는 결과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것에는 위장은 물론,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가족, 친구 및 외부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야망, 희망 및 공포 등이 있다고 한다. 의학은 언제나 이 모든 세력을 극복하거나 개선시킬 수 있어야 하며 최소한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어느 특정 개인에게 미치는 전반적인 영향을 평가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웨스트 박사는 복잡성과 기계적인 진단을 회피할 필요성과 인간에게만 있는, 다양한 질병의 원인에 대한 치료법을 역설하고 있다. 그가 지도하고 있는 UCLA의 신경정신의학연구소의 요원들은 인류학에서 동물학에 이르기까지 약 30여 개의 학문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며 200개의 병상이 있는 신경정신의학병원은 모든 연령층에 걸쳐, 모든 유형의 신경증 및 정신질환자를 다루고 있다.
다음 이야기는 ‘즐거운(Jolly)' 웨스트의 자서전이다. 그는 전에 존 에프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을 암살한 잭 루비(Jack Ruby)를 조사했다. 루비가 투옥되어 있는 동안 졸리 웨스트는 그와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후 그는 그 당시 가장 수수께끼 같은 성격 중의 하나인 잭 루비의 정신 상태와 인격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다.
또한 웨스트 박사는 미국 신문업계의 대부 중의 한 사람의 딸인 패트리셔 허스트(Particia Hearst) 양의 상담자로 정부의 위촉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몇 명의 행원을 사살하고 돈을 강탈한 혐의로 구속돼 있었다. 그의 관심분야는 그의 경험만큼 광범위했다. 그는 음악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 칼 융(Carl Jung)의 개념에 못지 않게 라흐마니노프(Rachmaninoff)의 작곡에 대해서도 강연할 정도로 정통해 있다. 만일 그가 자택에서 음악회라도 연다면 거기에 참석한 사람은 국내의 유명한 현악 4중주나 모나 골라벡(Mona Golab다) 같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치는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또한 동물의 세계와 자연계에 대해 심오한 지식을 갖고 있어 자택에서 로런 아이즐리(Loren Eiseley)나 조지프 우드 크루츠(Joseph Wood Krutch)와 같은 작가들과 담소하고 있을 때가 많았을 것이다.
졸리 박사도 멜린코프 학장처럼 나에게 의과대학과 일반적인 대학 생활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그는 현재 진행중인 연구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학부의 교직원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는 또한 내가 테니스를 칠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어떤 때는 자신이 직접 내 파트너 또는 상대가 돼 주기도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정말 기쁜 일이었다. 졸리는 빨랐고 경쾌했다. 우리의 실력은 거의 비슷했다.
내가 학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멜린코프 학장은, 정서에 관한 생물학 일반 분야를 탐구한다는 목적하에 나에게 적합한 ‘싱크 탱크(think tank ; 두뇌집단)’를 학부 교직원들 중에서 선발해서 소규모 연구 단체를 결성했다. 이 단체의 소장은 밀턴 그린블랫 박사였는데 그는 전술한 바와 같이 매사추세츠 주 정신위생국의 정신의학과장이었다. 그린블랫 박사는 정신신체의학(psychosomatic medicine)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이런 인사 이동은 아주 바람직한 것이었다.
1년 이상, 보통 1주일마다 한 번씩 우리 싱크 탱크 요원들은 신경정신의학연구소의 회의실에서 회합을 가졌다. 평상시의 구성 인원은 10명이었지만 우리는 수시로 토론에 상정될 주제에 관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진 학부 요원들을 증원했다.
“치료법으로서 웃음에 관한 당신의 소견은 많은 반대에 부딪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린블랫 박사는 그 뒤를 이어 말했다. “나는 당신의 소견이 오해를 받고 있으며 또한 당신이 웃음뿐만 아니라 모든 긍정적 정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친구로서 한마디해야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여기 있는 내 동료들은 당신이 의학상 육감과 일화를 혼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당신의 긍정적 정서가 바람직하다는 소견에는 동조하지만 환자의 태도도 질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소견에 대한 확고한 과학적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는 당신이 의사가 동정심이 많아야 하고 환자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상당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의사들이 환자의 태도와 질병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이 인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들은 현미경을 사용하고 확고부동한 사실과 숫자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작가와 편집자로서 이룩한 업적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그들의 잔디밭 위에 서 있으며 그들의 규칙에 따라 경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을 잘라낼 것입니다. 당신은 이 의과대학에서는 비전문가에 불과하며 또한 당신의 이러한 취약점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그린블랫 박사에게 내가 UCLA에 온 특별 목적은 그가 요구하는 바로 그런 증거들을 찾는 데에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의사들이 엄격한 과학적 조사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가 충고한 대로 그들의 규칙에 따라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주관적 경험을 객관화시키고 이것을 과학적 증거와 결부시켜야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나의 그러한 증거의 존재에 대한 확신은 그것을 찾아내기 위한 결심보다 강했다. 그린블랫 박사의 조언에 따라 나는 내 동료들이 신뢰할 수 있는 연구 계획을 작성하기로 결심했다.
그린블랫의 우정어린 충고는 UCLA의 ‘치어(CHEER)’ 계획의 최고 책임자인 찰스 클리먼(Charles Kleeman) 박사에 의해 강조됐는데 이 ‘치어’라는 말은 건강의 증진, 교육 및 연구 센터(Center for Health, Enhancement, Education, and Research)의 머리 글자다. 세계 각국에서, 영양, 운동 및 스트레스 대처법 등을 포함한 새로운 삶의 양식을 계발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치어’로 모여들 것이다. ‘척(Chuck)’ 클리먼은 그린블랫 박사의 경고성 지시 사항을 그대로 반영했다.
“의사들은 과학적으로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그는 계속 말했다. “당신이 알고 있는 특수한 경우나 당신 자신의 경우에 대해서 말할 때에 의사들은 당신이 과학적이 아니라 일화적(逸話的)으로 이야기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그날 밤에 나는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다. 클리먼 박사, 그린블랫 박사 그리고 머피 박사의 우정어린 경고가 밤새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과연 전문의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고정 관념에 대항해서 나의 신념을 계속 밀고 나가고 있었나? 태도와 감정이 실제로 생리적인 변화를 유발할 가능성이 많이 있더라도 역시 나는 여기에서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실은 내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과 이성은 나에게 “만일 부정적인 정서가 나쁜 쪽으로 생리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긍정적 정서는 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만약 멜린코프 박사, 웨스트 박사 그리고 히치흐(Hitzig) 박사(내 개인 주치의)와 같은 의사들의 계속 밀고 나가라는 격려가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염려할 만큼 뻔뻔스럽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내가 현재 활약하고 있는 의사들의 동조 없이는 그 신념을 견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머피 박사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또한 ‘일화’의 위험에 대해 한마디해 준 클리먼 박사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의사와 작가는 인생을 서로 다르게 보도록 교육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사들은 일화에 대해 불안한 것이다. 의사들이 단순한 체험을 불신하거나 경멸하는 방법 중에 가장 빠르고 확실한 것은 그것에 일화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의사들은 단순한 체험에 바탕을 두고 결론을 내리지 말고 다수의 실재적인 사례에 근거한 증거를 찾도록 교육받는다. 따라서 그들의 접근 방법은 통계적이다.
그러나 작가들은 더 넓게 말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일화를 찾는 것이며, 주의를 끄는 방법이 아니라 요점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일화나 개인적인 이야기는 작가의 자연스러운 언어이다. 의사와는 달리 작가는 통계를 피하려고 한다. 작가의 세계에서 통계는 영혼을 가릴 뿐이다. 모든 생명은 모든 숫자에 의해 침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의학 연구자에게 있어서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지 않는 한 아무것도 실재하지 않는 것이며, 작가에 있어서는 그것이 한 개인에게 일어나지 않는 한 어떤 것도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의학자는 그것이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는 한 결론을 내리지 말라는 교육을 받으며, 일반적인 것에서 특수한 것을 추론한다. 작가는 기꺼이 한 인간의 경험에 관심을 쏟고 특수한 것에서 일반적인 것을 추론하며, 대중 속에서 그 시대의 전기적(傳記的)인 인물을 찾는다. 소설 속에서 거대한 인간 집합체의 경험은 몇몇 개인의 삶을 통해 묘사됨으로써만 현실이 되는 것이다. 사회의 여러 분야에 침투돼 있는 악이나 가혹한 시련은 그들의 개인적 삶에 미치는 충격을 통해서만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바로 독자들이 소설 속의 그들을 보고 있기 때문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또한 현실은 바로 하나의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와 맺고 있는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작가와 과학자가 공통점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양자는 모두 진실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들은 단지 그것을 서로 다른 방법을 통해서 그리고 각각 다른 장소에서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대체로 과학자들은 궁극적 진리가 언젠가 발견된다면 그것은 실험실 안에서이며, 또한 증명할 수 있으며, 계량화할 수 있으며, 실험할 수 있는 동시에 그 반대 실험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를 비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어쨌든 작가는 궁극적인 진리--만약 그것이 자신을 내 보일 수 있다면--가 어떤 하나의 방정식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어린이가 찾아낸, 저 잃어버렸던 시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것 같다는 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진리를 실험할 수 없을 것이다. 동시에 실험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서서히 나는 새로운 생활 환경에 적응해 갔고 또한 의학계의 용어와 방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을 분명히 밝히려고 했지만 원칙을 꼭 증명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연구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도 나는 어떤 유용하고 새로운 방법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것을 어떤 경우에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믿을 만한 증거를 먼저 찾았다. 동시에 나는 의사들이 일화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종종 개인적인 경험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사실 교수들도 학생들에게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 이상으로 환자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작가로서의 어느 개인의 삶에 대한 호기심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개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경험한 그 개인에 대해서 되도록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개인의 질병에 대해서처럼 그 개인의 삶과 욕구에 대해서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의학계와 관련된 나의 경험을 차례대로 기술하고자 한다. 내가 중병에 걸렸지만 그 후 완전히 회복됐다는 이야기를 포함해서 몇 가지 에피소드도 이야기하겠다. 우선, 내가 10세 되던 해에 결핵 요양소에 입원하게 됐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하겠다. 두 번째는 내가 15세 때에 나타난 마비 증세에 대해서이다. 세 번째는 내가 UCLA에 온 지 2년 후인 내 나이 65세 때에 일어난 심장 발작에 관련된 것이다. 이 모든 경우에서 나는 인간의 살려는 의지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것이다. 결핵 요양소에서는 청소년을 제외한 성인들은 명확히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었다. 즉, 현실주의자와 낙관주의자로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쉽사리 어느 한쪽에 속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 그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이고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주의자’들은 20세기 처음 사반세기 동안 주요한 사망 원인의 하나로 생각했던 결핵의 파괴성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요양소의 젊은 낙관주의자들은 이런 기초적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그 당시 어떤 젊은이들은 이 시련을 ‘잘’ 극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증거가 사실인 이상, 그것은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었고 살려는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나는 이들 낙관주의자들이 ‘현실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많이 자신의 병을 극복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이 두 집단 사이의 차이는 단순한 이성적인 문제는 아니다. ‘현실주의자’는 단체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나에게 그들은 기쁨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낙과주의자들과 함께 있을 때는 나는 웃을 수도 있었으며 재미있게 놀 수도 있었다. 우리는 책을 서로 공유했다. 나의 ‘톰 스위프트(Tom Swift)’라는 연속 출판물을 다른 소년이 갖고 있는 ≪방랑 소년(The Rover Boys)≫이라는 책과 서로 바꿔 보기도 했다. 밤에 불이 꺼진 후에도 우리는 군용 담요 속에서 플래시 불빛으로 책을 읽었다. 내 플래시의 건전지가 다 닳으면 바로 내 옆에 있는 또래에게나 다른 병실에 있는 친구에게 빌려 오기도 했다. 우리는 함께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고 눈싸움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 있는 동안 줄곧 이렇게 하기로 정했다.
많은 세월이 흘러 내가 50세가 됐을 때, 결체 조직에 이상이 생겨 발을 절게 됐는데 이때 나는 살려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어렸을 적에 배운 교훈을 기억해 냈다. 이 교훈에 더불어 내가 새로 발견한 것은 몇 분 동안만이라도 통쾌하게 웃으면 한 시간 이상 고통에서 해방돼 편히 잠잘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고통을 해소시키는 작용을 하는 엔도르핀(endorphin)을 분비하거나 활성화시키는 뇌의 기능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리고 기분, 태도 및 정서 상태가 면역 체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몰랐다.
새로운 의학 연구 가운데 내가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것은 최근 급진전하고 있는 인간 뇌에 관한 개념인데, 뇌를 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곳 또는 신경계의 중추기관으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선(gland ; 생물체의 몸 속에서 액체 물질을 분비 및 배설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상피 조직성의 기관, 동물의 경우는 내분비선과 외분비선의 구분이 있다=역주)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르핀과 같은 분자 구조식을 갖고 있는 엔도르핀에 대해 한마디 덧붙인다면, 인간의 뇌는, 인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 및 주요한 약국 역할을 하고 있는, 몇십 종류의 분비물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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