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2일 일요일

신촌 이미지한의원 추천책 우리는 다시 만나기 위해 태어났다

불꽃처럼
우주를 함께 연결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우주는 생기 없는 물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사라담마
아씨시의 성 프라치스코와 글라라 수녀는 서로를 사랑했다. 하지만 수도원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프란치스코 성인은 글라라 수녀를 다른 수도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글라라가 떠나는 날, 수도원 밖에는 눈이 내리고 추운 겨울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녀를 배웅 나간 프란치스코는 눈에 덮여가는 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마침내 글라라는 작별인사를 하고 눈길로 돌아섰다. 짧은 작별이 말 외에 그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가 갑자기 글라라가 돌아서서 프란치스코에게 물었다. "언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이제 다시는 만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는 프란치스코는 말없이 눈 쌓인 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저 산에 눈이 녹고 꽃이 필때쯤이면." 그 말이 끝나자, 갑자기 눈이 녹고 산마다 꽃이 피었다. 어느날 프란치스코 성인이 수도원으로 글라라 수녀를 방문했다. 바로 그날 마을에서 바라보니, 수도원에 화재가 발생한 것처럼 수도원 지붕 전체가 불빛으로 환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불을 끄기 위해 물동이를 들고 순식간에 달려왔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불길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간소한 식탁 앞에 앉아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과 글라라 수녀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와 그녀의 머리 위에는 불꽃처럼 밝은 빛이 커다란 동심원처럼 비추고 있었다.
2.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것이
곧 너였다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내 육체 속에, 영혼 속에 있는 것은
언제나 너였다.
이 세계안에서 나는
너에 대한 증거를 물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세계 전부가
너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잘랄루딘 루미 수피즘(회교 신비주의)의 시인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
살아 있는 세계와 죽어 있는 세계를 연결해 주는 다리는 바로 사랑이다. 그것이야말로 유일한 생존이며, 유일한 의미이다. -쏜턴 와일더
많은 연인들은 살아 있을 때나 죽을 때나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을 맹세한다. 하지만 나는 이시도르 스트라우스 부인만큼 변치 않는 사랑과 헌신적인 마음을 가진 여성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다. 때는 1912년이었다. 스트라우스 부인은 남편과 함께 그 운명의 타이타닉 호에 타고 있었다. 사실 그 배와 함께 침몰한 여성들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어린이와 여성들은 구명 보트에 올라타 목숨을 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트라우스 부인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몇 안 되는 희생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 이유란 그녀가 남편과 헤어지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 엄청난 재난에서 살아남은 스트라우스 부인의 하녀 마벨버드는 구조된 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타이타닉이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공포에 질린 여자들과 아이들이 맨 먼저 구명 보트에 올라타기 시작했어요. 스트라우스 부인과 그 남편은 침착하게 승객들을 안심시키면서, 많은 사람들이 구명 보트에 옮겨 타는 것을 도와주었어요" 마벨은 또 말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난 물에 빠져 죽었을 거예요. 나는 네번째인가 다섯번째인가의 구명보트에 올라탔어요. 스트라우스 부인이 나를 먼저 보트에 올라타게 하고는, 두꺼운 옷으로 나를 감싸 주었어요." 그런 다음 스트라우스 씨는아내에게도 어서 구명 보트에 올라타라고 재촉했다. 마침내 스트라우스 부인도 보트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녀는 뱃머리에 한 발을 올려놓다 말고, 갑자기 마음을 바꿔 가라앉고 있는 배 위로 돌아갔다. 남편이 애원하듯이 말했다. "여보, 어서 보트에 올라타요." 스트라우스 부인은 자신과 함께 평생을 보냈으며,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자신의 진정한 동반자였으며, 언제나 자신의 영혼을 위로해 준 그 남자의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떨고 있는 그의 몸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예요. 난 저 보트에 타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함께 많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이제 우리는 늙었고, 난 당신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가는 곳에 나도 가겠어요."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들은 두 손을 꼭 잡고, 그렇게 갑판 위에 서 있었다. 충실한 아내는 남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면서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에 서 있었다. 영원히 함께. -마크 빅터 한센-

치료
사랑은 사람들을 치료해 준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받은 사람 둘 다를. -칼 메닝거-
일주일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스물네 시간이 넘도록 나는 척추 교정 수술을 받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오직 고통뿐이었다. 진통제 주사를 끝없이 맞아도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이러다가 죽고 말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언어도 잊어 버리고, 내가 누군지도 잊어 버린 상태가 되었다. 머릿속에 이성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마구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내가 모든 것을 대항해 싸우던 시기였던 것 같다. 나는 마치 전쟁을 하는 사람처럼 끝없이 소리와 비명을 질러대고, 팔과 목과 다리에 꽂혀 있는 주사 바늘과 링거 관들을 떼어 내겠다고 협박하면서 옆에 있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때렸다. 남편은 내 곁에 붙어서서 손을 붙잡고 고통을 함께 나누려고 애를 썼다. 내 몸부림에 무력해진 남편은 신에게 내 고통을 없애주거나 차라리 자기가 대신 고통을 겪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노련하고 경험 많은 간호사는 내게 몸을 구부리고 깊이 숨을 들이쉬라거나 몸부림을 중단하라고 명령하곤 했다. 그녀는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몸부림치다간 상처를 입을 수가 있어요. 수술한 것도 소용없게 되구요. 그러니 이제 그만 몸부림을 중단하세요. 안 그러면 우리가 중단시킬 수밖에 없어요." 그것은 마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과 같았다. 내 몸 속 어디선가 분노의 불길이 치밀어올라, 그녀가 한 말은 나를 더욱 격렬히 저항하게 만들 뿐이었다. 마침내 간호사가 남편에게 말했다. "잘 들으세요. 이것이 매우 힘든 일이라는 건 알아요. 당신은 잠시 집으로 가서 눈을 붙이세요. 우리가 당신의 아내를 보살피겠어요.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남편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어떻게 하려는 거죠? 더 이상 주사약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남편분께서는 그냥 자리를 피하세요. 우리가 이 환자를 침대에 묶어 놓겠어요. 더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알면 환자도 몸부림을 멈출 거예요." 남편은 그 말을 들으며 내 침대 곁에 서 있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아내이며, 자신의 친구이고, 자신의 연인인 나를.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안됩니다. 그건 안 됩니다. 내 아내를 묶어 놓을 순 없어요. 차라리 내가 아내의 몸 위에 누워 두 팔을 누르고 있겠어요. 나라는 걸 알아보면 아내도 몸부림을 중단하고 진정할 겁니다." 간호사는 놀라서 입을 벌리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녀는 말도 안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녀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절대로 환자의 침대에 누워서도 안되고, 게다가 환자의 몸 위에 올라타고 눕는다는 것은 더욱 안 돼요! 그렇게 하다간 주사 바늘과 링거 관이 빠지게 되고, 어쨌든 그건 병원 규칙에 심히 위반되는 일이예요." 그녀는 너무 충격을 받았는지 고개를 흔들며 덧붙였다. "그런 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요." 키가 180센티미터인 내 남편은 그 간호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거의 속삭이듯이 말했다. "안됩니다. 내 아내를 묶을 수는 없어요. 나는 내가 말한 대로 할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해요." 그리고 나서 그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리고 나는 내 위에 누워 두 팔을 누르고 있는 남자가 내 남편이라는 것을 알고는 마침내 저항을 멈추었다. 그리고 편안히 잠들었다. 사랑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은
당신을 이용할 생각은 없어요. 당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예요. 당신을 껴안고 싶고, 당신을 알고 싶고, 당신을 느끼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성장하기를 원해요. 당신과 함께 춤을 추고 싶고, 당신과 함께 웃고 싶어요. -레오 버스카글라아-
에드워드 웰먼은 미국으로 가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가죽 주머니에 감춰 두었던 가족의 전재산을 건네 주었다. 그는 아들을 껴안으며 작별의 말을 했다.
"이곳은 살기가 어렵구나. 넌 우리의 희망이다." 에드워드는 대서양을 건너는 화물선에 올라탔다. 그 배는 한 달이 넘는 긴 항해 동안 기관실에서 석탄을 퍼넣는 일을 해주는 젊은이에게는 무료로 배를 타게 해 주었다. 만일 에드워드가 콜로라도 로키 산맥에서 금광을 발견하는 행운을 갖기만 한다면, 나머지 가족들도 머지 않아 그와 합류할 수 있을 것이었다. 몇 달 동안 에드워드는 쉬지 않고 온갖 일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발견한 금광은 작긴 해도 꾸준한 수입을 안겨 주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방 두 개짜리 통나무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이 자기를 맞아 주기를 소망했다. 정식으로 초청할 수 있을 때까지 사랑하는 스텔라를 뒤에 남겨 두고 온 것이 이 미국 모험에서 유일하게 후회되는 일이었다. 웰먼 가족과 헨더슨 가족은 여러 해 동안 친구로 지내왔으며, 그는 어렸을 때부터 헨더슨 가문의 딸 스텔라를 아내로 맞이하기를 희망해 왔다. 어깨 너머로 흘러내리는 긴 머리카락과 눈부신 미소는 그녀를 헨더슨 씨의 딸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게 했다. 그는 가족 소풍에서 그녀 곁에 앉아 눈짓을 주고 받았으며,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엉터리 구실을 만들어 그녀의 집에 들르곤 했다. 매일 밤 통나무집에서 홀로 잠들 때마다 에드워드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 마침내 그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이 꿈이 이뤄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거의 일 년쯤 지났을 때, 드디어 그의 인생을 완벽한 것으로 만들어 줄 전보 한장이 도착했다. 헨더슨 씨가 자신의 딸을 미국에 있는 에드워드에게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부지런하고 사업에 필요한 현명한 머리를 가진 딸을 보내 에드워드의 금광사업을 돕겠다는 뜻이었다. 그런 다음 일 년 뒤 그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양쪽 집안이 미국에 오겠다는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너무 기뻐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 다음 한 달 동안 그는 통나무집을 멋진 가정으로 꾸미기 위해 온 정성을 쏟았다. 간이침대 하나를 사서 자기는 거실에서 자고, 자기가 침실로 쓰던 방을 그 여성에게 알맞도록 바꾸었다. 더러운 창문에 매달려 있던 푸대 자루 같은 커튼도 꽃무늬 커튼으로 바꾸었다. 침대 옆에는 들판에서 꺾어 온 마른 풀들을 양철 화병에 꽂아 두기까지 했다. 마침내, 그가 손꼽아 기다려온 그날이 되었다. 새로 꺾은 데이지 꽃다발을 손에 들고 그는 기차 정거장으로 갔다. 증기를 뿜어대고 레일에 바퀴 미끌어지는 소리를 내며 기차가 도착했다. 에드워드는 스텔라의 빛나는 머리카락과 미소를 찾기 위해 모든 창문마다 두리번거렸다. 기대에 넘쳐 마냥 두근거리던 그의 심장이 갑자기 무겁게 가라앉았다. 스텔라가 아니라, 그녀의 언니인 마르타가 기차에서 내린 것이다. 그녀는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에드워드는 할 말을 잃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마침내 할 수 없이 악수를 청한 뒤 그는 마르타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당신이 나를 초청했다는 얘기를 아버지에게서 듣고 무척 기뻤어요." 마르타는 고개를 들어 잠깐 그의 눈을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바닥에 떨구었다. 에드워드는 여전히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방을 이리 주시죠. 제가 들고 가겠습니다." 두 사람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함께 에드워드의 통나무집으로 돌아왔다.
헨더슨 씨와 아버지의 판단이 옳았다. 마르타는 사업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광산에서 일하는 동안 그녀는 사무실에서 일했다. 거실 한 구석에 임시로 만든 책상에 앉아 그녀는 사업에 관련된 모든 사항들을 꼼꼼히 기록했다. 불과 여섯 달만에 그들의 재산은 두 배가 되었다. 그녀가 만들어 내는 맛있는 음식과 조용한 미소는 그 작은 통나무집을 우아한 장소로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여성이 아닌걸' 매일 밤 간이침대에 쓰러져 누울 때마다 에드워드는 혼자서 한숨지었다. '도대체 왜 마르타를 보낸 걸까?' 다시 스텔라를 만날 수 있을까? 그녀를 아내로 맞으려는 일생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진 걸까? 일년 동안 두 사람은 함께 일하고, 함께 지내고, 함께 웃었다. 하지만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 한 번은 자기 방으로 자러 들어가기 전에 마르타가 에드워드의 뺨에 키스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그 다음부터 그녀는 둘이서 함께 하는 즐거운 등산이나, 저녁을 먹은 뒤 현관에 앉아 나누는 긴 대화에 만족하는 듯했다. 어느 봄날 오후, 갑작스런 폭우가 산 위에 퍼붓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간 그들의 금광 입구가 물에 잠길 위험이 컸다. 에드워드는 정신없이 모래 주머리를 채워 물길을 막기 시작했다. 비에 흠뻑 젖으면서 온 힘을 다했지만, 그의 그 필사적인 노력도 헛수고가 되는 듯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그의 곁에 마르타가 마대 자루를 벌리고 서 있었다. 에드워드가 그 안에 모래를 담자, 어떤 남자보다도 강한 힘으로 마르타는 그것을 옮긴 뒤 또 다른 자루를 벌렸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그들은 무릎까지 잠겨 오는 흙탕물 속에서 사력을 다해 물길을 막았다. 그리고 마침내 비가 멎었다. 그들은 손을 잡고 통나무집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수프를 앞에 놓고 에드워드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신이 없었다면 광산은 구하지 못했을 거예요. 고마워요. 마르타."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뭘." 마르타는 평소처럼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 헨더슨 씨와 웰먼 씨의 가족이 미국에 도착할 것을 알리는 전보가 날아왔다. 기쁨을 억누르려고 애를 썼지만, 스텔라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에드워드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에드워드와 마르타는 함께 기차 정거장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저쪽 플랫폼 끝에서 자신의 가족들이 기차에서 내리는 걸 바라보았다. 마침내 스텔라의 모습이 나타나자, 마르타가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말했다. "어서 스텔라에게로 가세요." 놀란 에드워드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하죠?"
"에드워드, 난 당신이 원한 헨더슨 집안의 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가족 소풍 때 당신이 스텔라와 눈짓을 주고받는 것도 보았어요." 기차에서 내리는 동생을 바라보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아내로 삼고 싶어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스텔라에요. 난 그것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마르타는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막았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에드워드, 언제나 당신을 사랑해 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행복이예요. 어서 스텔라에게로 가세요." 그는 마르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처음으로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여서인가를 깨달았다. 그녀와 함께 들판을 걷던 일이 떠올랐다. 모닥불가에서 맞이하던 평화로운 저녁, 그리고 퍼붓는 빗속에서 함께 모래 주머니를 채우던 일이 떠올랐다. 그제서야 그는 지난 여러 달 동안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그녀의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오, 마르타, 내가 원하는 사람은 당신이오." 그는 자신 속에 타오르는 모든 사랑의 감정으로 그녀에게 입맞춤을 해싸. 그들의 가족이 어느새 두 사람을 에워싸고 축하를 던지고 있었다. "우린 자네들의 결혼식을 보러 이곳에 왔다네." -레안 티먼-
나의 집은 나의 사랑이 있는 곳
내가 지나온 모든 길은 곧 당신에게로 향한 길이었다. 내가 거쳐온 수많은 여행은 당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조차도 나는 당신을 행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당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당신 역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랄루딘 루미-
세계적인 무용가 마고트 폰테인은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렇게 말했다.
"난 결혼 서약을 지켰습니다. 부자일 때나 가난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남편과 함께 있었습니다.
영국 왕실 발레단의 프리마돈나인 그녀는 갈색 피부를 가진 파나마 미남 외교관 로베르토 아리아스와 1955년에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어떤 시험을 겪게 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1937년 영국 케임브리지의 한 파티에서 처음 만났을 때 폰테인은 스무 살의 발레리나였고, 아리아스는 영국에 유학을 온 스물한 살의 법학도였다. 폰테인은 훗날 그들의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튿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걸어가는데 처음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사랑에 빠지면 공중을 걸어다닌다고 하는 말을 그 순간에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어요."
그후 두번의 여름 동안, 두 사람은 대학가 근처에서 만나 강둑을 따라 오랫동안 산책하곤 했다. 그곳에서 '티토'라는 별명을 가진 그 말수 적은 청년은 수줍은 얼굴로 자신의 아버지가 파나마의 대통령을 지낸 적이 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39년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티토는 고국으로 불려갔다. 그 이후 14년 동안 폰테인은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영국 담배 회사의 고위직 관리인 아버지와 브라직 혈통을 이어받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고트 폰테인은 젊었을 때부터 화려하고 부족함이 없는 삶을 누리기 시작했다. 당대의 대스타인 로렌스 올리비에와 선상파티를 즐기기도 하고, 유명 인사들과 저녁을 먹느라고 바빴다. 무용 공연이 끝나면 그녀의 분장실은 꽃으로 넘쳐흘렀다.
1953년 어느 날, 마고트 폰테인은 왕실 발레단과 함께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청 공연을 하고 있었다. 첫 공연이 끝난 뒤 그녀는 한 신사의 명함을 전해 받았다. 명함에는 '유엔 파나마 대사, 로베르토 아리아스'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체격이 건장해진 티토가 그녀의 분장실로 안내되었다. 그는 6년 전에 아내와 이혼을 했고, 세 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였다.
폰테인은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 사람은 긴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냥 날 쳐다보기만 했지요."
이튿날 아침 아리아스가 그녀를 찾아와 함께 아침을 먹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가 말하더군요. '당싱이 나와 결혼하면 무척 행복할 거요'라고 말예요. 그래서 난 '당신 제정신이 아니군요'라고 말해 주었죠.
하지만 아리아스는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미국 순회 공연 동안 줄곧 그녀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꽃을 보냈다. 폰테인이 1976년에 펴낸 자서전에서 썼듯이, 그 열렬한 청혼자는 마침내 '발레리나의 가슴 속에 갇혀 있는 인간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1955년 2월, 그녀는 파리에 있는 파나마 영사관에서 로베르토 아리아스와 결혼식을 올렸다. 수십 개의 꼬마 전구들이 반짝이는 가운데.
바하마 군도로 신혼 여행을 갔다가 돌아온 뒤, 아리아스는 대영 제국의 파나마 대사로 새 직책을 부여받았다. 폰테인은 분주한 공연 일정에도 불구하고 대사의 부인 역할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훗날 그녀는 말하고 했다.
"내 생애 최초로 난 진정한 내 자신이 된 걸 느꼈어요."
그리고 폰테인이 세계 어느 곳에 가서 공연을 하더라도 남편이 보낸 장미꽃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1964년 유월, 그녀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 놓을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파나마에서 선거 유세를 벌이던 아리아스가 정적의 총에 맞아 목 아래가 마비된 것이다.
폰테인은 당장에 그의 병실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간호사와 함께 열이 40도를 오르내리는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까운 친구이자 무용가인 조이 윌리암스 브라운은 이렇게 전한다.
"폰테인이 남편을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남편이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그녀가 그에게 삶의 의지를 되돌려 주었으니까요."
저격을 당한 지 여덟 달 뒤, 마고트 폰테인이 <로미오와 줄리엣>공연을 마치고 마흔세 번의 커튼 콜을 받는 장면을 아리아스는 비행기 안의 침대에 누워서 지켜보았다.
그후 폰테인은 수많은 무용 공연을 가졌다. 그 중에는 루돌피 누르예브와의 세기적인 공연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폰테인의 주된 관심사는 언제나 남편에게 머물러 있었다. 저격 사건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뛰어난 지성을 조금도 잃지 않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에게 일어난 비극을 무거운 십자가로 표현했다. 하지만 폰테인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말했다.
"난 그것이 공정한 분할이라고 느껴요. 그가 생각하고, 나는 움직이지요."
한 친구가 어떻게 그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느냐고 묻자, 폰테인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난 그 사람을 사랑하니까."
1980년, 예순 살의 나이로 마침내 폰테인은 무대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주름 잡힌 양철 지붕이 있는 방 네 개짜리 단순한 집에 정착했다. 파나마 시 외곽에 있는 그곳에 그들은 작은 목장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다섯 마리의 사랑하는 개들, 그리고 4백 마리의 소떼와 함께 지내며 폰테인은 온전히 아리아스에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생활에 더없이 만족했다. 훗날 그녀는 한 기자에게 말했다.
"내가 한 번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지요.'당신이 떠나면 난 누굴 돌볼까요?'하고 말예요."
그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아리아스가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두 해가 지난 1991년, 폰테인은 일흔한 상의 나이에 골수암으로 세상과 작별했다.
그보다 이십여 년 전쯤, 뉴욕 시에서 열린 <백조의 호수>공연이 끝난 뒤 한 기자가 폰테인에게 은퇴를 하면 어디에 집을 정할 것인가를 물은 적이 있다.
그때 폰테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 남편이 있는 곳이 곧 나의 집입니다." <피플>지

사랑하는 이에게 미소를
마더 테레사는 종종 사람들에게 예기치 않은 조언을 들려주곤 했다. 한번은 교사 직업을 가진 미국인들이 캘커타로 마더 테레사를 방문했을 때, 그들은 그녀에게 가족을 위한 몇 가지 조언을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마더 테레사는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의 아내에게 미소를 지으세요. 여러분들의 남편에게도 미소를 지으세요."
그 조언이 너무 단순하다고 느낀 사람 하나가 물었다.
"수녀님도 결혼을 하셨나요?"
그러자 놀랍게도 마더 테레사는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나도 결혼을 했지요. 그리고 나 역시 예수님께 미소를 짓는 것이 때로는 무척 어렵다는 걸 압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너무 요구하는 것이 많으니까요." -아일린 에간

부르클린 지하철에서 생긴 일
위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 언제나 기적이 있다. -윌라 캐더
헝가리 출신의 마르셀 스텐베르거는 쉰 살에 가까운, 헝클어진 흰 머리카락과 다정한 갈색 눈을 가진 남자였다. 규칙적인 사람인 그는 날마다 뉴욕 근교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9시9분 전철을 타고 뉴욕 퀸스 타운으로 와서, 그곳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1948년 1월 10일 아침,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마르셀은 9시 9분 전철을 탔다. 도중에 그는 갑자기 마음을 바꿔 부르클린에 사는 병이 든 헝가리 친구를 방문하기로 했다.
마르셀은 부르클린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고 친구의 집으로 가서 오후가 절반쯤 지날 때까지 머물렀다. 그런 다음 그는 맨하탄 5가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가기 위해 맨하탄 행 지하철에 올라탔다. 여기서 마르셀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하철은 만원이었다. 빈자리를 발견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보였다. 그런데 내가 들어서자마자 문가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허둥지둥 내렸다. 그래서 나는 얼른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내가 뉴욕에 산 지도 이제 제법 오래되었기 때문에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말을 걸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사진작가인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분석하는 특이한 습관을 갖고 있었다. 내 왼쪽에 앉은 승객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30대 후반쯤으로 보였는데, 그의 눈동자 속에는 어떤 깊은 슬픔이 자리잡고 있는 듯 했다. 그는 헝가리어로 된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헝가리어로 말을 걸게 되었다.
"괜찮으시면 신문 좀 함께 읽어도 될까요?"
모국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그 남자는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는 공손하게 말했다.
"원하시면 다 읽으셔도 됩니다. 저는 나중에 읽으면 되니까요."
신문을 읽는 대신 우리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타고 절반쯤 갔을 때 나는 그의 이름이 벨라 파스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을 때 2차 세계 대전이 터졌고, 그는 독일군의 근로 대대에 차출되어 우크라이나 지방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는 러시아군에게 포로로 붙잡혀 독일군 시체를 묻는 일을 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수백 킬로 미터를 걸어 헝가리 동부의 가장 큰 도시인 데브레센에 있는 자기 집에 도착했다.
집에 있을 때, 그가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살던 아파트는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의 가족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슬픔에 차서 그가 발길을 돌리는데 한 소년이 그에게로 달려오며 외쳤다.
"파킨스 박시! 파키슨 박시!"
그것은 '파키슨 아저씨'라는 뜻이었다. 그 소년은 이전에 그의 이웃집에 살던 사람의 아들이었다. 그는 소년을 따라 집으로 가서 소년의 부모와 얘기를 나눴다. 그들이 그에게 말했다.
"가족들은 전부 죽었어요. 독일군이 그들을 전부 아우슈비츠로 데려갔어요."
아우슈비츠는 나치의 강제수용소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곳이었다. 이 말을 듣고 파스킨은 모든 희망을 포기했다. 며칠 뒤, 가슴이 아파 더 이상 헝가리에 남아 있을 수가 없게 된 그는 다시 걸어서 몰래 국경과 국경을 넘어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1947년 10월 미국으로 이민을 올 수가 있었다. 그것이 내가 그를 만난 석 달 전의 일이었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내내 나는 줄곧 이 이야기가 왠지 처음 듣는 게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최근에 친구가 사는 집을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만난 한 젊은 여성도 자신이 헝가리의 데브레센에서 왔다고 했다. 그녀는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독일군 탄약 제조 공장으로 끌려가 일을 했다고 했다. 그녀의 친척들은 모두 가스실에서 처형되었다. 나중에 그녀는 미군들에 의해 구조되었으며, 1946년 최초의 난민 보트에 올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나는 그녀의 주소와 전화 번호를 수첩에 적어 놓았었다. 언젠가 그녀를 초대해 우리 집 식구들과 시귀게 하고, 그럼으로써 그녀의 삶에 생겨난 커다란 공백을 조금이라도 메워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두사람 사이에 전혀 어떤 연결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내가 내릴 정거장이 다가오는 순간 나는 서둘러 내 수첩을 뒤졌다. 나는 마음 속의 어떤 희망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혹시 당신 아내의 이름이 마리아 아닙니까?"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소리치듯이 말했다.
"맞습니다! 어떻게 제 아내의 이름을 아십니까?"
그는 거의 실신할 것처럼 보였다. 내가 말했다.
"우리 여기서 내립시다."
나는 그의 팔을 부축하고 다음 정거장에 내렸다. 그리고 그를 공중전화 박스로 데려갔다. 내가 그녀의 전화번호를 돌리는 동안 그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참 동안 전화벨이 울린 다음에야 마리아 파스킨이 전화를 받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의 방은 전화기가 있는 바로 엎에 있었으나 그녀는 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친구가 없었고, 항상 다른 사람에게 걸려온 전화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는 집에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한참 동안 벨이 울린 다음에 그녀가 전화를 받은 것이다.
마침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그녀에게 내가 누구라는 걸 말하고, 그녀의 남편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말했다. 그녀는 질문에 놀란 듯했지만 나에게 자신의 남편에 대해 묘사를 했다. 그런 다음 나는 그녀에게 데브레센에서 어디에 살고 있었는가를 물었고, 그녀는 내게 주소를 말해 주었다.
그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나는 파스킨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당신은 아내와 함께 이러이러한 주소에서 살았습니까?"
벨라 파스킨이 소리쳤다.
"맞습니다!"
그는 얼굴이 종잇장처럼 창백해지고 몸이 떨리기까지 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잠시 마음을 진정하세요. 당신에게 뭔가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 전화로 당신의 아내와 통화해 보세요."
그는 말없이 머리를 끄떡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하는 얼굴이었다. 그의 눈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는 수화기를 받아들고, 잠시 아내의 목소리를 들은 뒤,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마리아가 맞아요! 내 아내 마리아가 맞습니다!"
그는 몸이 떨려 제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이 불쌍한 친구가 너무 흥분이 되어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나는 그의 떨리는 손에서 수화기를 받아들였다.
나는 역시 흥분해 있는 마리아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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