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1일 토요일

신촌 이미지 한의원 02-336-7100 말의 힘

불평하고 싶은 마음속의 깊은 욕구 때문에 말이 발달된 것이다.
- 제인 와그너 Jane Wagner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이 얼마나 자주 불평을 하며 사는지 알지 못한다. 그건 우리가 불평의 문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불평과 불만들‥‥ 감사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 같은데 불평은 끊이질 않는다. 더 많이 가질수록, 생활이 더 편리해질수록, 어쩌면 우리는 더 많은 불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이 가진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가진 것이 ‘완벽’에서 줄어들자마자 코멘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아니라고? 자, 자신이 불평하는 상황을 접해볼 수 있도록 내가 하나의 과제를 내도록 하겠다. 이 과제는 1972년에 처음으로 내가 가르치는 대학과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내주었고, 이제는 내 이야기를 듣는 모든 청중들(아이부터 어른까지)에게 주고 있다. 팔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이 과제를 준 셈이다. 이것은 ‘브루스 디아소 기념도전’이라고 불리는데, 바로 ‘스물 네 시간 동안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해서도! 자, 지금부터 바로 시작해보라. 내가 학생들에게 이 과제를 내주었을 때 반응은 어땠을까? 모두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불평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제를 완벽하게 해냈을까? 아쉽게도 총 합계는 다섯 명뿐이다. 그 첫 번째 사람을 찾아내는 데는 23년이 걸렸고,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여전히 나는 그 과제를 해내는 사람들을 찾고 있다. 다섯 명 중 두 명은 고등학생이었고, 두 명은 중학생, 그리고 한 명은 어른이었다. 그것은 과제를 받은 1만 6천 명 중 한 명 꼴로 그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율을 계산하려했지만 너무 작아서 포기해버렸다. 수천 명의 사람은 그 과제를 해보는 것조차 거절했다. 왜냐고 묻자 누군가가 대답했다. “오, 어떻게 불평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죠?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과제를 해냈느냐’가 아니라, ‘이 과제를 통해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배웠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말할 수 있다.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을! 자, 여기 30년이 넘는 동안 과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내게 한 말들을 보라.

∙ 처음 10분 동안 난 불평을 했어요.
∙ 불평하지 않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믿을 수가 없어요.
∙ 난 내가 그렇게 많이 불평하는지 몰랐어요.
∙ 모든 사람들이 많은 불평을 하는군요.
∙ 난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걸로 불평을 해왔어요. 이젠 그렇게 시시콜콜한
일들로 불평하지 말아야겠어요.
∙ 불평은 단지 습관이에요.
∙ 난 이제 수많은 불평을 늘어놓는 일을 그만둬야겠어요.

자, 당신은 궁금해 하고 있을 것이다. “왜 이 과제를 ‘브루스 디아소 기념도전’이라고 부르지?” 하고 말이다. 이제부터 이 과제가 처음 시작된 작은 배경과, 이 이름의 이유에 대해 알려주겠다.
브루스는 샌프란시스코 대학 시절 내 후배였고, 그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이들 중 가장 놀라운 사람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 소아마비로 몸이 마비되고 말았다. 그 때는 그의 고향에 소아마비 치유약이 들어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고칠 방법도 없었다. 그가 샌프란시스코 대학에 입학할 때는 휠체어에 앉은 채였다. 몸에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양 손(팔이 아니라)과 머리뿐이었다. 그러나 그 머릿속에는 위대한 두뇌가 있었고, 그의 가슴속에는 위대한 자질이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가 불평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우린 모두 브루스의 낙관적인 모습에 경외심을 가졌다. 어느 점심시간에 난 그에게 물었다.
“넌 항상 긍정적인 모습이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의 대답은 간단했고 현명했으며 감동적이었다.
“난 남은 내 삶을 나 자신을 연민하거나 내 모습에 화를 내며 살고 싶지 않았어. 대신 그 모든 걸 감사하며 살기로 결심했지.”
난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다시 이렇게 물었다.
“네가 가장 감사하는 게 뭐지?”
“사랑하는 주님과 나의 가족, 나의 교회, 친구들, 대학교, 나의 교수님들, 내게 주어진 두뇌‥‥ 그리고 기회로 가득 찬 내 인생이야.”
나는 샌프란시스코 대학의 강의실에서 충실한 교육을 받았지만, 그 짧은 점심시간의 대화에서 얻은 것이 내가 받은 수업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이었다. ‘삶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에 감사하라‥‥.’
브루스는 훌륭한 성적과 아주 명예로운 모습으로 졸업했고, 법과 대학의 학위를 받기 위해 그리고 변호사로서의 성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의 일과 삶은 너무 일찍 끝나고 말았다. 약해진 몸 때문에 31세를 끝으로 생을 마감해야만 했으니.
그러나 그는 위대한 유산을 남기고 떠났다. 그는 자신이 만난 모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 나 또한 그 중의 한 명으로서, 이렇게 두 가지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먼저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 그래서 내가 내 삶의 좋은 면에 초점을 맞추고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는 것. 두 번째로 그는 ‘결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는 것. 당신은 단 하루라도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브루스가 사용할 수 있는 건 양손과 머리뿐이었다.
그러나 그 머릿속에는 위대한 두뇌가 있었고, 그의 가슴속에는
위대한 자질이 있었다. 그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결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3. 잔인하고 고통을 주는 말

막대기와 돌은 나의 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
그러나 말은 내 마음을 깨뜨릴 수 있다.
- 로버트 풀검 Robert Fulghum

굳이 묻지 않더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쓰는 데 있어 이 부분이 가장 어렵고 불편한 부분이란 것을.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말을 흉기처럼 사용하고, 고의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오랫동안 고통스런 기억을 남기는 해로운 말을 하는 것을 난 정말 죽기보다 싫어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런 이야기를 쓰다보면, 오래 전 누군가가 내게 고의적으로 던진 나쁜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던 때를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글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누군가의 저장고에 있는 아픈 곳을 건드리게 된다면 사과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이런 고통스러운 경험들로부터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어떤 사람이 내게 했던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됐는지를 염두에 둔다면, 똑같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는 덜 하게 되지 않겠는가.
수천 년 전 공자는 말했다. “우리 자신에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이 현명한 충고에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말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 조사에 의하면 과거보다 현재의 사람들이 훨씬 더 상처주는 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체 왜 그런 걸까?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는 ‘오락 매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후반, 거친 말을 마구 내뱉던 영화 속 배우들의 모습은 점점 현실이 되어갔다. 텔레비전, 코미디, 음악 산업에까지‥‥ 마치 수문이 열리기라도 한 듯 퍼져나갔다. 그리고 우리가 ‘추악하다’고 했던 말들을 거칠게 내뱉으면서 상대방을 무력하게 만드는, 소위 ‘언어폭력’이 생겨났다. 이것은 나중에 오락의 한 형태가 돼서, 텔레비전을 켤 때마다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가 가장 자주 접하는 시간대의 시트콤에서도 이런 식의 말들을 아주 쉽게 들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우린 모두 ‘재밌다’ 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스트레스 증가’다. 단추만 누르면 모든 것이 단번에 해결되는 세상. 이제 사람들은 잠이나 휴식, 자기를 되돌아볼 시간을 빼앗기면서까지 너무 많은 것들을 하려고 든다. 그래서 항상 바쁘고, 닳을 대로 닳은 정신 상태를 가지고, 언제든지 툭-하고 꺽여버릴 듯한 모습을 한 사람들. 그들은 자신들이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좌절하고, 화를 내고, 입으로 독 같은 말을 마구 내뱉는다. 그리고 수많은 희생자가 생겨난다. 우리는 매일 상점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운동 경기에서, 공항에서, 차 안에서‥‥ 어렵지 않게 그들의 말을 듣는 희생자가 되고, 동시에 희생자들을 만들어간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런 쓸데없는 말들의 결말을 경험해왔다. 당신은 알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막대기나 돌보다 더 많은 상처를 준다는 것을. 어떤 말은 영혼을 관통하기도 한다. 그런 말들은 내 영혼 속으로 들어와 큰 부상을 입히고, 종종 치유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흉터를 남긴다‥‥.
자, 나는 당신에게 꼭 당부하고 싶다. 특히 감정적으로 격한 상황일 때 ‘혀를 제어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말이다. 말은 한번 내뱉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말을 내뱉는 데는 단 몇 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수년 동안, 아니 수십 년 동안 지속되는 고통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 잠언 15:4


벤자민 플랭클린 스타일로 나쁜 버릇 없애는 방법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할 때 나는 벤자민 플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자서전을 읽고는 그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한 가지는, 그가 책 속에서 가르쳐준 ‘나쁜 버릇을 없애는 방법’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기장에 ‘바꾸었으면’ 하는 행동의 목록을 쭉 적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매일 그 일기장에다 점을 찍었다. 물론 목표는 몇 주 동안 일기장에 어떤 점도 찍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 ‘추악한 서른 가지 말’을 하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이것을 시도해보았다. 물론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먼저 학생들에게, 앞에서 말했던 추악한 서른 가지의 말에 대한 목록을 보여준 후, 이중 몇 가지라도 쓰지 않으려고 애써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가장 많은 대답은 “아주 조금 보단 더요.”였다.
“자, 이중 가장 그만 말하고 싶은 세 단어를 골라보렴. 그리고 이 세 장의 카드에 각각 그 말들을 적고, 이제부터 그 말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거야. 대신 그 말을 할 때마다 카드에 점을 표시하는 거지.”
우린 이것을 닷새 동안 계속했다. 내가 ‘우리’라고 하는 건 나도 그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이 이 시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함께 했던 학생들은 아주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다. 특히 그들은 ‘언어 습관’을 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고, 이 도전을 즐겼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나 또한 생각보다 까다로운 이 실험을 통해 언어 선택에 대한 내 인식을 바꿔가게 됐고, 내가 몰랐던 나의 언어 습관 속에서 정기적으로 튀어나오는 불쾌한 말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갔다.
자, 추악한 서른 가지의 말에 덧붙여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첫째, 우리는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따라서 때로 언어로 혹은 다른 것으로 실수를 했다고 해서 자신을 지나치게 몰아세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 실수들을 줄여나갈 수 있다면, 그리고 남에게 말하는 방식을 개선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발전할 수 있다!
둘째, 항상 모든 상황에서 긍정적이고 좋은 말만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 비평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불평해야 할 때도 있고, 화를 내는 것이 적절할 때도 있다. 중요한 건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법을 행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외의 나머지 것들도 목록에서 하나씩 제거해나가도록!



진정한 대화의 기술은 적절한 곳에서 적절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말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적절치 않은 말을 하지 않고 남겨두는 것이다.
- 도로시 네빌 Dorothy Nev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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