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2일 일요일

신촌 이미지한의원 추천책 쥐스킨트 향수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에요."
그녀가 좀 물러서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이 일이 악마와 관련되어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판단하세요. 테리에 신부님.
제게는 그럴 힘이 없으니까요. 제가 아는 건 단 한 가지,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그런 냄새가 없는 이 애가 무서울 뿐이에요."
테리에가 만족한 듯이 다시 팔을 내리면서 말했다.
"아하, 좋아요. 그럼 우리 악마 문제는 접어 두기로 합시다. 좋아요. 그런데
제발 말 좀 해 보시오. 도대체 아기들한테서는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요?
당신이 믿고 있는 아기 냄새는 도대체 어떤 거요? 자, 어서?"
"좋은 냄새지요."
테리에가 그녀에게 호통을 쳤다.
"좋다는 게 무슨 뜻이오? 냄새가 좋은 건 많소. 라벤더 꽃은 향기가 좋아요.
고기 수프에서도 좋은 냄새가 나고, 아라비아의 정원도 그렇소. 그렇다면
젖먹이는 어떤 냄새인지 알고 싶군."
유모는 우물쭈물했다. 물론 그녀는 젖먹이의 냄새가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말이다. 젖을 먹여 주고 돌보고 어르고 뽀뽀도 하면서
그녀의 손을 거쳐간 아이들이 벌써 수십 명이나 되는 것이다. 밤중에는 콜로
아이들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코로는 분명하게 젖먹이의 냄새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말로 설명해 본 적은 없었다.
"자, 어서!"
테리에가 더 참지 못하고 손가락을 딱딱 소리나게 꺾으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니까... 그걸 쉽게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왜냐하면...왜냐하면 몸
여기저기서 나는 냄새가 다 좋기는 하지만 똑같은 냄새는 아니니까요. 신부님,
아시겠어요? 예를 들면 밭에서는 매끄럽고 따뜻한 돌의 냄새가 나요. 아니,
오히려 농축 우유나...버터 같은 냄새예요. 맞아요, 바로 신선한 버터 냄새가
나요. 그리고 아기들 몸에서는 마치... 마치 우유에 적신 과자 같은 냄새가 나요.
그리고 머리 꼭대기에서는요, 가마가 있는 머리 뒷부분 말이에요. 아참,
신부님은 아무것도 없지...."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테리에 신부의 대머리를 가볍게 툭 건드렸다. 신부는
그녀의 턱없이 바보 같은 짓거리에 한 순간 할말을 잃어버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요. 여기가 가장 좋은 냄새가 있는 곳이에요. 여기서는 캐러멜 냄새가
나지요. 아주 달콤하면서도 놀라운 냄새라고요. 신부님은 상상도 못 하실
거예요! 여기서 나는 냄새를 맡게 되면 누구나 아기를 사랑하게 된다고요. 자기
아이든 남의 아이든 상관없어요. 아기라면 모두 그런 냄새가 있어야 해요. 어린
아기한테 다른 냄새는 없어요. 그런데 냄새가 전혀 없는 아기, 머리 꼭대기에서
찬바람이 돌 뿐 아무런 냄새도 없는 아기가 있다면 어떻겠어요? 여기 있는 이
사생아처럼요. 그렇다면 말이에요.... 신부님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그까짓 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팔짱을 낀 채 단호한 어투로 말을 하면서 그녀는 마치 두꺼비를 마주 대하고
있는 듯 구역질 난다는 눈빛으로 자신의 발 밑에 있는 아기 바구니를
내려다보았다.
"나, 잔느 뷔시는 더 이상 이 아기를 맡을 수가 없어요!"
테리에 신부는 숙였던 머리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머리를 매만지듯이
손가락으로 몇 번 대머리를 쓰다듬고는 우연인 것처럼 코밑에 손가락을 갖다 댄
채 코를 킁킁거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캐러멜 냄새라...?"
그가 다시 목소리의 위엄을 되찾으면서 물었다.
"캐러멜이라니! 도대체 캐러멜이 뭔지 알기나 하오? 그걸 먹어 본 적이 있냔
말이오?"
"직접은 아니에요. 그러나 언젠가 생 토노레 거리에 있는 큰 호텔에서 설탕
녹인 것과 크림으로 캐러멜을 만드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 냄새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난 결코 그 냄새를 잊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 그렇지."
테리에 신부가 코에서 손을 떼면서 말했다.
"제발 입 좀 닥치시오! 이런 식으로 당신과 계속 대화하는 건 너무 힘든
이이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지금 맡고 있는 갓난아기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를 더 이상 양육하기 싫다는 소리군. 그래서 잠시 그 아기의
후견인 역할을 맡은 우리 생 메리 수도원에 다시 돌려주겠다는 심산이고.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 것 같구려. 당신은 해고요."
그는 아기 바구니를 들고 그녀의 따뜻하고 솜털 같은 우유 냄새를 다시 한번
더 들이마신 후 문을 잠갔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3

테리에 신부는 교양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책도
읽었으며, 틈틈이 식물학과 연금술에도 몰두했다. 그는 어느 정도 비판 정신도
갖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엄격히 따져 보았을 때 이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거나, 심지어 이성에 직접 배치되기도 하는 기적이나 예언, 진리 등 성서의
내용을 문제삼을 정도로 극단에 흐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런
문제들에서 손을 떼는 편이었다. 그것은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이성을 사용하기 위해 확신과 평온이 필요한 순간에 오히려 그를 가장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은 바로 우매한 민중들의 미신적 관념이었다. 그들은
마녀나 카드점, 부적, 저주, 악령 불러오기, 보름달 밤에 주문 외우기 등을
여전히 행하고 있었다. 그런 이단적 풍습들이 천년 여에 걸쳐 기독교가 확고히
자리잡은 이후에도 여전히 뿌리뽑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소위 악령에 사로잡혔거나 사탄에 빠졌다는 소문은 대부분의 경우 더
자세히 확인해 보면 미신에 의한 소동에 다름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테리에 신부가 사탄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거나 사탄의 힘을 의심하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은 아니었다. 신학의 근원과 맞닿아 있는 문제들에 대한
판결은 한낱 보잘것없고 소박한 신부보다는 다른 기관에서 맡아야 할 일이었다.
어쨌든 방금 전의 그 유모처럼 소박한 누군가와 악마의 환영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는 결코 악마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분명했다. 그녀 같은
사람이 악마를 발견했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악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유모 잔느 뷔시에게 정체를 들킬 정도로
악마가 멍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코 문제만 해도 그렇다! 코라는
것은 냄새를 맡는 단순한 기관, 즉 가장 간단한 감각 기관이 아닌가!
지옥에서는 유황 냄새가 나고 천국에서는 몰약 냄새가 난다는 건가! 그건 가장
끔찍스러운 미신이었다. 그것은 인간이 아직 동물처럼 살면서 신앙을 모르던 그
어두운 선사 시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아직 제대로 된 시력을 갖추지
못해 색깔을 구별하지는 못하지만 피 냄새는 맡을 수 있다고 믿고 있던 시대
말이다. 그들은 친구와 적을 냄새로 구분할 수 있고, 잔인한 거인이나 늑대
인간이 다가오는 것도 냄새로 알아차릴 수 있으며, 복수의 여신 에리네의
냄새도 맡을 수 있다고 믿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무서운 신들에게
악취와 연기를 내뿜는, 불에 구운 제물을 갖다 바치기도 했었다. 그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바보는 눈이 아니라 '코로 보는' 사람이다. 이런 지경이니
신으로부터 받은 이성이 아직 천년은 더 빛나야 원시 신앙의 마지막 찌꺼기들을
몰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구, 불쌍한 어린 것 같으니라고! 죄에 물들지 않은 이 어린 생명체에게
그런 말을! 자신에게 어떤 구역질 나는 중상 모략이 쏟아지는 줄도 모르고
바구니에서 쿨쿨 잘도 자는구나. 그 뻔뻔스런 여자가 네게선 아기 냄새가 안
난다고 우겨댔단다. 도대체 그런 말에 뭐라고 대꾸할 수가 있겠니? 까꿍까꿍!"
그는 바구니를 무릎 위에 올려 놓고 부드럽게 흔들면서 손가락으로 그
갓난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는 가끔 '까꿍' 하면서 아이를 얼러
주었다. 그렇게 하면 갓난아기들이 온순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글세, 네게서 캐러멜 냄새가 나야 한다는구나. 그런 멍청한 소리가 어디
있겠니. 까꿍까꿍!"
얼마 후에 그는 손가락을 코에 갖다 대고 코를 벌름거리면서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러나 자신이 낮에 먹은 절인 양배추 냄새말고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잠시 망설임 끝에 그는 주위에 누구 보고 있는 사람이 혹시 없는지 빙 둘러본
후 바구니를 들어 자신의 뭉툭한 코밑에 갖다 대었다. 너무 바짝 갖다 대는
바람에 부드럽고 빨간 아기 머리카락이 그의 코를 간지럽혔다. 그는 뭔가
냄새를 맡게 되리라고 기대하면서 갓난아기의 머리에 코를 대고 벌름거렸다.
갓난아기의 머리에 원래 어떤 냄새가 있는지 그는 잘 알지 못했다. 물론 캐러멜
냄새는 아닐 것 같았다. 그건 확실했다. 캐러멜이란 그야말로 설탕을 녹인 것에
불과한데, 아직까지 젖만 먹은 아기한테서 어떻게 설탕 녹인 냄새가 날 수
있는가 말이다. 젖 냄새라면 또 모르지만. 유모의 젖 냄새 말이다. 그러나 젖
냄새는 나지 않았다. 머리카락이나 피부, 혹은 아기 땀 냄새 정도는 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테리에는 그런 냄새를 기대하며 코를 벌름거려 보았다. 그러나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젖먹이들은
아직 냄새가 없는 게 정상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것도 같았다.
젖먹이들은 깨끗하게 씻어 돌봐주면 아무 냄새도 안 나는 게 당연할 것 같았다.
그건 아기들이 말하기나 뜀박질, 혹은 쓰기를 못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나이가
들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인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인간은 사춘기가 되어야
비로소 향내를 풍기를 법 아닌가. 이건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일찍이
호라츠도 '총각한테서는 염소 냄새가 나고 처녀한테서는 하얀 수선화 향기가
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로만 인들은 그걸 벌써 이해하고 있었나 보다!
인간의 냄새라는 것이 언제나 육욕의 냄새--죄악의 향기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아직 꿈에서조차 한 번도 육체적 죄를 인식하지 못했을 갓난아기한테서
냄새가 날 턱이 있겠는가? 어떻게 냄새가 난단 말인가? 까꿍까꿍? 말도 안되는
소리!
그는 바구니를 다시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천천히 흔들어 주었다. 아직도 깊이
잠들어 있는 아기의 오른손 주먹이 포대기 밖으로 비어져 나와 있었다. 작고
빨간 손이었다. 아기의 뺨이 가끔 씰룩거리기도 했다. 테리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고, 갑자기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다. 한 순간 그는 자신이 이 아기의
아버지가 되는 공상에 빠져 들었다. 그는 자신이 신부가 안 되었다면 보통 사람,
그중에서도 어쩌면 성실한 장인이 되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솜털 냄새와 우유
냄새가 향긋한 마음씨 따뜻한 여자를 아내로 맞았을 것이고, 두 사람 사이에
아이를 올려 놓고 어루만지며 까꿍까꿍.... 이런 공상을 하는 동안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무릎 위에
앉히고 어르는 광경은 이 세상과 함께 시작된 일이자, 이 세상이 지속되는 한
언제나 새롭고 당연한 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테리에 신부는 약간
마음이 뿌듯해지면서 감상적인 기분이 되었다.
그때 아기가 깨어났다. 그는 코부터 먼저 깨어났는데, 작은 코가
움찔움찔하더니 위를 향해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숨을 한 번 들이마신 후
재채기를 미처 다 못 했을 때처럼 짧게 다시 내뱉고 나서야 코를 찡그리며 눈을
떴다. 눈은 딱히 어떤 색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굴의 회색과 오팔의 흰색이
섞인 크림색으로 점액질 같은 베일에 덮여 있어 아직 확실하게 보지 못하는
듯했다. 테리에는 아기의 눈이 자신의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코는 달랐다. 갓난아기의 흐릿한 눈이 아직 목표물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반면에, 코는 확실하게 목표물을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테리에 신부는 그 목표가 바로 자신의 몸인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아기의 얼굴 중앙에서 두 개의 구멍을 싸고 있는 콧방울이 피어나는 꽃잎처럼
벌어졌다. 아니, 오히려 왕의 정원에 있는 식충식물의 꽃받침처럼 그의 코가
뭔가를 기분 나쁘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코를 벌름거리면서 눈보다
더 예리하게 테리에를 탐색하는 듯이 보였다. 마치 코로 테리에에게서 뭔가를
휘감아 빨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을 막을 수도, 그걸 피해 숨을 수도
없었다... 그 자신은 아무 냄새도 없는 아이가 뻔뻔스럽게도 남의 냄새를 맡고
있다니! 냄새로 남의 존재를 알아차리다니! 테리에는 갑자기 자신의 몸에서 땀
냄새, 시큼한 체취, 절인 양배추 냄새, 그리고 빨지 않은 옷 냄새 등의 악취가
퍼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자기 쪽에서는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추한 모습이 발가벗겨진 것이다. 이 아기는 자신의 피부 속까지
뚫고 들어와 뱃속 가장 깊은 곳의 냄새까지 맡고 있었다. 가장 부드러운 감정,
가장 추악한 생각들까지 이 집요한 작은 코 앞에서는 완전히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아직 진짜 코라기보다는 단지 납작한 살덩이에 불과한 그 작은 기관이
지금 끊임없이 움찔거리고 벌름거리며 떨고 있었다. 테리에는 소름이 끼치면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이제 그는 자기 쪽에서 먼가 맡고 싶지 않은 악취를 맡은
것처럼 코를 찡그렸다. 고향에 돌아온 것 같던 편안한 기분은 사라졌다. 자신의
육체가 관련된 문제였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좋은 아내에 대한 감상적
환상은 깨어져 버렸다. 아기와 자신에 대해 펼쳤던 유쾌한 상상의 나래는
찢어졌다. 이제 자신의 무릎 위에 있는 존재가 낯설고 차갑게 느껴졌다.
적개심이 가득 찬 짐승 같았다. 만약 그가 신에 대한 외경심과 합리적 통찰력에
따라 행동하는 사려 깊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벌써 독사를 대하듯 구역질을 하며
아기를 내팽개쳤을 것이다.
테리에는 벌떡 일어섯 바구니를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는 되도록 서둘러,
가능한 한 빨리 이 악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아기가 눈을 찡그리며 빨간 목구멍이 보일
정도로 역겨운 쇳소리를 내며 소리를 질러대자 테리에는 혈관 속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그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손을 뻗쳐 바구니를 흔들며
'까꿍까꿍!'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아기는 울부짖다 터져 버리려는 듯이 얼굴이
사색이 되도록 점점 더 악을 써댔다.
꺼져 버려! 테리에는 한 순간 이 ...'악마'에게 꺼져 버리라고 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긴장으로 몸이 뒤틀렸다. ...괴물 같으니라고.
참을 수 없는 녀석아, 꺼져 버리라니까! 그러나 도대체 어디로 보낸단 말인가?
이 근처에 사는 유모라면 10명도 넘게 알고 있었고, 고아원도 있었다. 그러나
거긴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다들 엎어지면 코 닿을 데가 아니던가. 이 괴물을
더 멀리 떨어져야 했다. 더 이상 아이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 매시간 다시 문
앞에 가져다 놓을 수 없는 먼 곳으로 보내야만 했다. 가능하면 다른 교구나 강
건너라면 더 좋을 듯싶었다. 성벽 너머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렇다.
변두리 생 탕투안느로 보내는 거야! 이 악귀는 멀리 사라져야 한다. 동쪽 저
멀리, 밤에는 성문을 받아 버리는 바스티유 너머가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옷을 움켜쥔 채 여전히 울부짖고 있는 아기 바구니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지나고, 또 생 탕투안느 거리도 통과한 그는
동쪽으로 시내를 빠져 나가서 더 멀리 있는 샤론느 거리에 다다랐다. 거의 다
온 셈이었다. 이곳에 있는 마들렌느 드 트르넬 수도원 근처에 믿을 만한 유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이아르라는 이름의 그 여자는 비용을 대는 사람만 있다면
나이가 출신을 가리지 않고 어떤 아이라도 맡아 주었다.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도 여전히 울어대고 있는 아기를 가이아르 부인에게 맡긴 그는 일년치
양육비를 선불한 후 다시 도망치듯이 시내로 돌아왔다. 성당에 도착한 그는
뭔가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듯이 옷을 벗어 버리고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깨끗이
씻은 후 잠자리로 기어들어 갔다. 수없이 성호를 긋고 오랫동안 기도를 한
후에야 비로소 약간 가벼워진 마음으로 잠이 들 수 있었다.

4

가이아르 부인은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았지만 세상 풍파를 다 겪은
여자였다. 겉모습은 실제 나이와 비슷하게 보였지만 어떤 때는 두 배, 세 배,
혹은 백 배 정도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처녀 미라라는 표현이
적절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이미 죽어 있는 여자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부지깽이로 이마를 맞은 때문이었다. 코와 이마가 만나는 바로
그곳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후각을 상실했고, 그와 더불어 따뜻함이 냉정함 등
모든 인간적 감정도 잃어버렸다. 그 한 번의 매질로 인해 그녀에게는 친절과
혐오가 동시에 낯선 일이 되어 버렸다. 기쁨과 절망 역시 그녀는 느끼지
못했다. 후일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을 때조차 그녀는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았으며 아이들을 낳았을 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주위
사람이 죽어 갈 때도 슬퍼하지 않았으며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기쁨을 느껴 본
적도 없었다. 남편이 그녀를 때려도 위축되지 않았으며, 그가 시립 병원에서
콜레라로 죽었을 때에도 아무런 해방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단 두 가지 뿐이었는데, 매달 편두통이 찾아올 대 약간 우울해지는 것과
편두통이 사라졌을 때 기분이 다시 약간 회복되는 느낌 정도였다. 이미
무감각해져버린 그녀는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가이아르 부인은 이처럼 모든 감각이 완전히 마비되어
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동정심에 흔들리지 않는 질서 의식과 공평함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맡은 어떤 아이도 편애하지 않았으며 부당하게 다루지도
않았다. 그녀는 세 번의 끼니때 이외에는 전혀 더 주는 법이 없었다. 어린
아기의 기저귀는 낮에 세 번씩 갈아 주었는데 그것도 단지 두 돌이 될 때까지
만이었다. 그 후에는 바지에 똥을 싸는 경우 말없이 뺨을 때리고 한끼를
굶겼다. 그녀는 정확히 양육비의 절반을 아이들을 위해 사용했고, 나머지 절반은
자신의 몫으로 챙겼다. 물가가 쌀 때도 그녀는 자신의 몫을 늘리려는 생각을
품지 않았다. 대신 불경기에는 그것이 생명에 관계되는 경우라 해도 한푼도 더
쓰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이 일은 별로 수지맞는 돈벌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돈이 필요했고, 그것을 아주 정확하게 계산해 놓고
있었다. 그것은 나이가 들어 세를 놓을 집을 한 채 사는 일과, 남편처럼 시립
병원에서 죽지 않고 개인적으로 죽음을 맞을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모으는
일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 자체에는 냉담했다. 그러나 남편처럼 모르는
사람들이 수백 명 있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두려웠다.
그녀는 혼자만의 죽음을 맞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남겨야 했다. 물론
어느 해 겨울에는 그녀가 돌보고 있는 스물네 명의 꼬마 하숙생들 중 서너
명이나 죽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도 그녀는 대부분의 다른 유모들보다 훨씬 잘
견디어 냈는데, 9할 정도의 아이들이 죽어 간 국가나 교회가 운영하는 큰
고아원보다는 월등한 실적이었다. 물론 그런 일이 생기면 곧 보충이 되었다.
파리에서는 매일 만 명이 이상의 새로운 기아나 사생아, 또는 고아가 발생했기
때문에 곧 잃은 수만큼 충원이 되었다.
어린 그르누이에게 가이아르 부인의 집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
다른 곳이었다면 그르누이는 살아 남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
영혼이라곤 없는 여자의 집에서 그는 잘 자라났다. 그는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살아 남았던 아이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는 며칠 동안 계속 물같이 희멀건 수프만 먹고도 견딜 수가
있었고, 멀건 젖을 먹고도 그럭저럭 버텨 냈으며, 썩어 문드러진 야채와 상한
고기도 먹을 수 있었다. 자라나면서 홍역이나 이질, 수두나 콜레라에 걸리기도
했고, 6미터나 되는 우물에 빠지거나 끓는 물에 가슴을 덴 적도 있었지만 그는
살아 남았다. 물론 그로 인해 얼굴에는 공보 자국과 수두의 흔적이 남았고, 발이
약간 구부러져 절뚝거리며 걷게 되었지만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는 마치
박테리아처럼 끈질기게 저항했으며, 나무에 붙어 수년 전에 빨아먹은 극히
미량의 핏방울만 가지고도 살아 갈 수 있는 진드기처럼 아무 욕심도 부리지
않았다. 그가 육체를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최소한의 양분과 옷뿐이었다. 그의
정신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르누이는 보살핌, 애정, 다정함, 사랑 등
아이들에게 필요하다는 그 모든 것들이 없어도 견딜 수가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는 살아 남기 위해 애초부터 그런 것이 없어도 괜찮도록 자신을 길들인
것처럼 보였다. 태어나던 순간의 울음소리나 결국은 어머니를 단두대로 보내게
된, 자신의 존재를 알아 달라고 생선 좌판 밑에서 질러 댄 그 울음소리는
오히려 충분한 생각과 심사숙고 끝에 나온 비명이었다. 그렇게 소리를 질러
댐으로써 그는 오히려 사랑을 '거부하고' 생명을 '선택한' 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의 생존을 사랑이 없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그가 만약 그 두
가지를 다 요구했다면 틀림없이 금방 비참하게 죽어 갔을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 그가 또 다른 가능성, 즉 침묵을 선택함으로써 생명이라는 먼 길을
거치지 않고 탄생에서 바로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을 택할 수도 있었다.
그럼으로써 세상이나 자기 자신에게 일어날 무수한 재난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친절이라도 타고나야 하는데,
그르누이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었다. 그는 애당초 괴물로 태어났다. 그가
생명을 선택한 것은 오로지 반항심과 사악함 때문이었다.
물론 그가 그런 결정을 내릴 때, 어른들처럼 어느 정도의 이성과 체험을
바탕으로 한 여러 가지 대안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결정은 땅에 뿌려진 콩이 땅속에 그대로 머무를지, 아니면 싹을 틔워 밖으로
나갈지를 결정하는 것처럼 무의식적인 것이었다.
아니면 나무에 붙어 있는 진드기의 선택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이
진드기에게 있어 생명이란 끊임없이 겨울을 넘기는 것에 다름아니었다.
진드기는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신의 은회색 몸체를
공처럼 말고 살아가는 작고 기분 나쁜 벌레였다. 그는 제 몸에서 아무것도 빠져
나가지 않도록, 아무것도 발산되지 않도록 해주는 매끄럽고 단단한 피부를 갖고
있다. 게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극히 작게 몸을 유지함으로써 어느
누구한테도 발견되지 않고, 어느 누구한테도 밟히지 않는다. 진드기는 홀로 몸을
동그랗게 말고 나무에 웅크린 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고 단지 코로
냄새를 맡을 뿐이다. 그렇게 그는 수년 간 몇 마일이나 떨어져 있어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는 짐승들의 피 냄새를 맡고 있다.
그 동안 잘못해서 바닥에 떨어질 수도 있고, 숲에 떨어져서 여섯 개의 가느다란
다리로 몇 밀리미터 정도 기어가다가 나뭇잎 밑에 들어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별로 나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걸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구역질 나게도 진드기는 고집과 집념으로 몸을 웅크린 채 살아 남는다. 짐승의
피가 우연히 나무 바로 밑에 다가올 천재일우의 그 기회를 노리면서 말이다. 그
기회가 오면 비로소 그는 웅크렸던 몸을 펴고 나무에서 떨어진다. 그리고는 그
낯선 고깃덩어리에 달려들어 할퀴고 빨고 깨물고....
그르누이는 바로 그 진드기 같은 아이였다. 그는 자기 자신 속에 틀어박힌 채
더 좋은 대가 오기를 기다리며 살았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것이라고는
배설물밖에 없었다. 웃거나 비명을 질러 대지도, 또 눈을 반짝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결코 자신의 냄새를 풍기지도 않았다. 다른 여자들 같았으면
누구라도 이 괴물 같은 아이를 내쫓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이아르 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아이가 냄새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영혼이 마비된 그녀는 그 아이로부터 어떤
정신적 자극을 기대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그르누이가 어떤 아이인지 금방 눈치챘다. 첫날부터
그들은 새로 온 이 아이한테서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그들은 아기가 누워 있는
요람을 멀리했고 마치 방안이 더 추워지기라도 한 듯이 더 빽빽히 붙어서 잠을
잤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방안에 바람이 휘몰아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꾸
울어댔고, 좀더 큰 다른 아이들은 뭔가가 자신들의 목숨을 앗아 가는 악몽에
시달렸다. 한 번은 비교적 나이가 든 아이들이 작당을 하여 그를 질식시켜
죽이려고 헌 옷가지와 이불, 지푸라기 등을 그의 얼굴에 덮어 놓고 그 위를
벽돌로 짓눌러 놓았었다. 가이아르 부인이 다음날 아침 그것을 들추고 아기를
보았을 때, 그르누이는 얼굴이 찌그러지고 짓눌려서 새파랗게 질려 있었지만
목숨은 붙어 있었다. 아이들이 몇 번 더 죽이려고 애써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손으로 직접 그의 목을 졸라 죽이거나 입이나 코를 막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이었겠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그를 만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 다가가면, 직접 자기 손으로 눌러 죽이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게 되는
살찐 거미를 볼 때처럼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다.
그가 좀더 자란 후에는 그를 죽이려고 시도조차 포기해 버렸다. 그들은 그를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들은 그를 피해
도망다녔으며 어떤 경우에도 그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를 미워해서가
아니었다. 질투나 시기심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었다. 가이아르의 집에서는
그런 감정을 가질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단지 그가 그 집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들을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 아기가 두려웠다.

5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그를 두려워할 만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가
특별히 키가 크다거나 힘이 센 것도 아니었다. 물론 못생기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못생긴 것도 아니었다. 공격적이거나 뒤틀리지도
않았고 음험하지도 않았다. 도발적이기보다는 오히려 한 쪽으로 비켜서 있는
편이었다. 머리 역시 두려워할 정도로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는 세 살이 다
되어서야 두 발로 걷기 시작했고, 네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말을 시작했다.
그가 내뱉은 첫마디는 '생선'이라는 단어였다. 멀리서 한 생선장수가 샤론느
가를 올라오면서 생선을 사라고 외쳤을 때, 마치 메아리처럼 그가 갑자기
'생선'이라는 말을 터뜨렸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그가 내뱉은 단어는 '아욱',
'염소 우리', '양배추', '자크로뢰르' 등이었다. 맨 마지막 단어는 가까운 곳에
있는 수도원의 보조 정원사 이름이었다. 그는 가끔씩 가이아르 부인의 집에서
비교적 하기 힘들거나 거친 일들을 도와주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세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그르누이는 동사나 형용사, 혹은 조사 같은
것을 잘 몰랐다. 한참 뒤에서야 그는 '예', '아니오'라는 말을 익혔는데, 그때까지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명사뿐이었다. 사실상 그가 하는 말은 단지 구체적인
물건, 식물, 동물, 그리고 사람들의 이름들로서, 그것도 뜻밖에 냄새로 그것을
인식하게 된 경우에 그랬다.
그가 처음으로 '나무'라는 말을 한 것은 3얼의 햇살을 받아 딱딱 소리가 나던
너도밤나무 장작더미 위에 앉아 있을 때였다. 그전에도 벌써 수백 번이나 본
나무였고, 또 수백 번이나 들어 본 단어였다. 게다가 겨울에 장작 심부름을 종종
했었기 때문에 나무라는 말의 의미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무는
그의 관심을 끌 만큼 충분히 흥미로운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애써서 그
이름을 입밖에 내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3월의 어느 날 장작더미 위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그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 장작더미는
가이아르 부인이 헛간 남쪽 앞으로 튀어나와 있는 지붕 밑에 긴 의자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맨 위에 놓여 있는 장작에서는 타는 듯이 달콤한 냄새가
났으며 장작더미의 한가운데서는 이끼 냄새가 올라왔다. 그리고 가문비나무로
만든 창고의 벽에서는 햇빛을 받아 송진이 끓는 냄새가 났다.
등을 창고 벽에 기댄 채 장작더미 위에 다리를 쭉 뻗고 앉은 그는 눈을 감은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는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않았다. 단지 아래로부터
퍼져 올라오다가 뚜껑에 덮인 것처럼 지붕 밑에 갇혀서 그를 감싸고 있는 나무
냄새를 들이마실 뿐이었다. 냄새를 들이마시고 그 냄새에 빠져 자신의 가장
내밀한 땀구멍 깊숙한 곳까지 전부 나무 냄새로 가득 채운 그는 스스로가
나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나무 인형, 즉 피노키오가 된 것처럼 그 장작더미
위에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한참 뒤, 거의 30분쯤 지나서야 비로소
'나무'라는 말을 내뱉었던 것이다. 마치 두 귀까지 나무가 들어차고 목에도
나무가 들어차서 배와 목구멍과 코가 전부 나무로 꽉 막혀 버린 것 같은 그런
소리로 그는 그 말을 내뱉었다.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돌아왔다. 나무라는
강력한 대상, 즉 나무 향기가 그를 질식시키기 일보 직전에 구출된 것이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장작더미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리고는 마치 나무
다리로 걸어가는 것처럼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 그곳을 떠났다. 며칠 후까지도
그는 여전히 나무 냄새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때의 기억이 강하게
떠오를 때면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나무, 나무'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그런 식으로 말을 배워 나갔다. 그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냄새가 없는
대상을 지시하는 추상적 개념어들, 특히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뜻을 지닌
단어들을 익히는 일이었다. 그런 단어들은 지속적으로 기억할 수가 없었으며
서로 혼동되었다. 그는 다 자란 후에도 그런 단어를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했으며, 사용할 때도 종종 틀렸다. 권리, 양심, 신, 기쁨, 겸손, 감사 등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 그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그가 후각을 이용해 자신의 기억 속에 모아 둔 것들은 이제 일상적인
용어들로는 더 이상 충분히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곧 그는 냄새로 나무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나무의 종류까지 구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단풍나무,
떡갈나무, 소나무, 느릅나무, 배나무, 수령이 오래된 나무, 어린 나무, 썩은 나무,
곰팡이가 핀 나무, 이끼가 낀 나무를 구분할 수 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나무토막, 나무 조각, 톱밥까지도 그는 확실하게 구별했다. 다른 사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가이아르 부인이 매일 아침 젖먹이들에게 먹이는 그
희멀건 액체, 모두가 언제나 우유라고 부르는 그것도 얼마나 따뜻한가, 어떤
소의 젖인가, 그 소가 뭘 먹었는가, 유지방은 얼마나 들었는가... 등에 따라
그르누이의 후각에는 날마다 다른 냄새, 다른 맛이었다. 연기 역시 그랬다. 불이
타면서 나오는 것은 전부 '연기'라는 말로 불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수백 가지의
냄새가 섞여 타오르면서 매분, 매초마다 새롭게 혼합되어 하나의 냄새를
구성하고 있었다. 대지, 자연, 공기도 마찬가지였다.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혹은 숨을 한 번 들이쉴 때마다 그것들은 다른 냄새로 채워졌고 다른
냄새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대지, 자연, 공기라는 두루뭉실한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냄새로 인지할 수 있는 세계의 풍부함과 언어의 빈곤함으로
인한 그 모든 이상한 불균형들로 인해서 그르누이 소년은 말의 의미를 포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에 있어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마지못해 말을 사용하였다.
여섯 살이 되었을 때 그는 후신경을 통해 주변의 모든 사물들을 완전히
파악했다. 가이아르 부인의 집에 있는 모든 것, 북부 샤론느 거리에 있는 모든
장소, 모든 사람, 모든 돌과 나무, 숲과 나무 울타리, 심지어 작은 얼룩에
이르기까지 그는 냄새로 알아낼 수 있었다. 그는 구분할 수 없고, 다시 확인할
수 없고, 그때그때의 일회성 속에서 기억하지 못하는 냄새는 하나도 없었다.
그는 수만, 수십만 가지의 독특한 냄새를 수집했고 그것은 자유자재로 아주
정확하게 다룰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떤 냄새를 다시 맡는 경우 전에 그
냄새를 맡았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꾸로 어떤 냄새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그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심지어 그는 상상 속에서 냄새들을 서로 섞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냄새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체험한 모든 냄새의 색인이 실린 커다란 사전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걸 이용해 냄새의 단어로 이루어진 새로운 문장들을 얼마든지 마음대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것도 다른 아이들의 경우 어렵게 익힌 단어들을 이용해
세계를 묘사하기에는 지극히 불충분한 상투적인 문장들을 처음으로 떠듬거릴
그런 나이에 말이다. 그리고 절대음을 알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완벽하게 새로운 멜로디나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악의 신동에 비교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물론 냄새의 자모는 음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르누이라는 신동의 창조 활동은 오로지 그의
내면 세계에서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자신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다는 차이점은 있었다.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그는 점점 더 폐쇄적으로 되어갔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혼자서 생 탕투안느 북부 지역이나 채소밭, 포도 농장이나
초원을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가끔 그는 저녁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며칠씩 사라지기도 했다. 그는 지팡이로 얻어맞는 벌쯤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참아 냈다. 외출 금지, 굶기기, 벌 청소로도 그의 버릇을 고치지는 못했다.
일년 반 동안 노트르담 드 봉스쿠르의 수도원 학교에 가끔씩 나가기는 했지만
눈에 띄는 효과도 없었다. 약간의 철자법과 이름 정도를 익혔을 뿐 그 외에는
하나도 배우지 못했다. 선생님은 그를 아예 저능아로 간주했다.
거기에 비해서 가이아르 부인은 그가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것은 초자연적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주 드문 일이었다.
예를 들어 그는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밤이나 어둠에 대한 공포가
전혀 없었다. 다른 아이라면 램프를 들고서야 간신히 갈 수 있는 지하실
심부름이나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광으로 장작 심부름을 보내는 일은 그에게는
언제든지 시킬 수 있었다. 그는 촛불을 들고 간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길을 제대로 찾아가서 실수하지 않고 즉시 시킨 것을
가져왔다. 비틀거리거나 부딪치지도 않았다. 더 더욱 신기한 일은 그가 종이나
천, 나무, 심지어는 굳건한 벽이 둘러싸고 있거나 문이 잠겨 있어도 그 안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이아르 부인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는 방안에 들어가
보지 않고도 아이들이 몇 명이고 또 누구인지를 알아냈다. 잘라 보지도 않고
양배추 속에 벌레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한 번은 그녀가 돈을 너무 잘
숨기는 바람에--그녀는 비밀 장소를 자주 바꾸었다--자신도 다시 그것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그르누이가 단 일초도 걸리지 않고 굴뚝 대들보 뒤의 장소를
가리켰다. 이럴 수가, 정말 그곳에 돈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미래도 예측하는
듯이 보였다. 누군가가 집에 들어서기 훨씬 전에 그는 그 사람의 방문을
예연했으며, 구름 한 조각 없는 하늘을 보고도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예상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그는 눈이 아니라 점점 더 예민하고 정확해지는
후각으로 감지한 것이었다. 양배추 속의 벌레, 대들보 뒤에 감춰 둔 돈, 길을 몇
개나 지나야 하는 먼 곳이나 벽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들을
알아맞히는 일 등은 가이아르 부인이라면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부지깽이로 인해 그녀의 모든 후신경이 손상되지 않았다 해도 그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녀는 그가 저능아든 아니든 다른 얼굴을 하나 더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이 아이가
재앙과 죽음을 몰고 오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두려워졌다.
점점 더 그녀가 그르누이를 소름끼치도록 참을 수 없게 만든 것은 자신이
조심스럽게 숨겨 둔 돈을 벽이나 대들보를 통해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과
한 지붕 아래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르누이의 이
놀라운 능력을 알게 되자 그를 내보낼 궁리를 하게 되었다. 마침 다행스럽게도
이 무렵에--그르누이가 여덟 살이 되었을 때인데--생 메리 수도원에서 매년
보내 오던 양육비가 이유를 밝히지도 않은 채 끊어졌다. 그녀는 재촉하지 않고
예의상 일주일을 더 기다렸다. 기한이 지난 양육비가 그때까지도 여전히
지불되지 않자 그녀는 그르누이의 손을 이끌고 함께 시내로 들어갔다.
그녀가 모르텔르리 거리에 그리말이라는 이름의 무두장이(역주:짐승의
날가죽에서 털과 기름을 뽑고 가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어린 일꾼들을 정식의 도제나 견습공이
아니라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이 작업실에는
부패한 짐승의 날가죽에서 살덩어리를 제거하는 일, 무두질용 부식제나
염색제를 섞는 일, 부식된 날 가죽을 깨끗하게 손질하는 일 등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거리가 많이 있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에 가능한
한 도제 과정을 마친 견습공을 시키기보다는 만약의 경우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안부를 물어 올 가족이 없는 천민이나 부랑아, 혹은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을
이용하기 마련이었다. 물론 가이아르 부인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르누이가 그리말의 무두 작업장에서 결코 살아 남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주저할 여자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녀의
임무는 다한 셈이었다. 양육 관계는 끝이 났다. 이 아이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든 그녀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살아 남는다면 다행이고 죽는다고 해도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일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그리말로부터 아이를 넘겨주었다는 확인증을 받았고, 그년
편에서도 15프랑의 수수료를 받았다는 영수증을 써준 후 다시 샤론느 거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양심의 가책이라고는 털끝만큼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녀는 일을 합법적일 뿐만 아니라 공평하게 처리했다고 믿고
있었다. 더 이상 양육비를 지불할 사람이 없는 아이를 그대로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면 필연적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부담이 돌아가게 되며, 더 나아가
그녀 자신에게까지 부담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른 아이들의
장래를 위태롭게 하거나 그녀의 미래까지도 망칠 수가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한 소망으로 간직하고 있는 일, 즉 혼자만의 죽음을 맞이하려는
은밀한 계획이 틀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이아르 부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게 된다. 더 이상 그녀에 대해
언급할 기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녀의 말년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
지나가기로 하자. 어린 시절에 벌써 내면적으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불행스럽게도 너무 오래 살았다.
거의 일흔 살이 다 된 1782년에 그녀는 보모 일을 끝내고 계획했던 대로
집을 한 채 샀다. 그리고는 그 집에서 세를 받으면서 죽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죽음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세상의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전에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던 그런 일이 발생했다. 바로
프랑스 혁명이었다. 혁명으로 인해 그때까지의 모든 사회적, 도덕적 관계들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혁명은 처음에는 가이아르 부인의 운명에 개인적으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후--그녀가 거의 여든 살이 되었을 때--갑자기 그녀의 집을
세얻었던 사람이 이민을 가게 되고 몰수된 그 사람의 재산은 경매를 통해 바지
만드는 어떤 사람에게 넘어갔다. 이러한 변화 역시 한동안은 가이아르 부인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남자가 계속해서 세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받는 돈은 이제 더 이상 안전한 주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작게 인쇄된 지폐였는데, 그것이 그녀가 경제적 파멸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 후 또 2년이 지났을 때 그녀가 세로 받는 돈으로는 장작 값을 치르기에도
모자랐다. 가이아르 부인은 어쩔 수 없이 말도 안 되는 헐값으로 집을 팔아야만
했다. 그녀말고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집을 팔아야 될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집값으로 또 쓸모없는 지폐를 받았다. 또다시 2년이 흘렀을
때 이제 그 돈은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1979년이 되자 그녀는--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였다--평생을 힘들게
일해 모았던 전재산을 잃어버리고 코키유 거리에 있는 가구 딸린 작은 방에서
살게 되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10년이나 20년쯤 뒤늦은 죽음이 찾아왔다.
그녀의 식도에 만성적인 종양이 꽉 들어찬 것이었다. 그 병은 처음에는 식욕을
빼앗아 가더니 그 다음에는 목소리를 빼앗아 가서 그녀가 시립병원으로
옮겨졌을 때에는 단 한마디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전에 남편이 죽었던
그 방, 죽음을 앞둔 수백 명의 사람으로 가득 차있는 그 방으로 보내졌고
얼굴도 모르는 낯선 노파 다섯 명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 침대에 눕혀졌다. 물론
몸을 바짝바짝 붙인 채로 누워야 할 정도로 비좁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3주
동안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의 시신은
자루에 넣고 꿰매져 정각 새벽 4시에 쉰 구의 다른 시신들과 함께 손수레에
실려 은은하게 종소리가 계속 울리는 가운데 성문에서 1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새로 만든 클라마르 묘지로 옮겨졌다. 그녀는 그 공동묘지, 덩어리가 풀리지도
않은 채 그대로 뭉쳐 있는 두터운 석회석 밑에 마지막 안식을 위해 매장되었다.
그것이 1799년의 일이었다. 1747년의 그날, 그르누이 소년과 우리들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 때의 그녀는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앞에 놓인
이런 운명을 전혀 예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던
유일한 인생의 의미인 정당함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6

그루누이는 그리말을 처음 본 순간--아니, 그리말의 채취를 처음 들이마신 그
순간에 벌써 이 남지는 조금이라도 마을 안 듣는 경우 자신을 때려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부터 자신의 목숨은 일을 얼마나 잘해
내는가, 그리말에게 얼마나 쓸모있는 인물이 되는가에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루느이는 단 한 번도 반항할 어두조차 못 내고 순종했다. 그는 날마다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적개심과 반항심을 억누르고 진드기처럼 다가온 추운
겨울을 살아 남기 위해 애썼다. 끈질기게 참고 눈에 띄지 않게 애쓰면서 그는
삶에 대한 희망의 불꽃을--비록 작지만 꺼뜨리지 않고--잘 간직하였다. 이제
순종과 무조건적인 복종밖에 모르는 일벌레가 된 그는 시키는 대로 일하고,
어떤 음식도 달게 삼켰다. 저녁에는 작업 도구가 있고 소금을 뿌린 날가죽들을
매달아 놓은 작업실 옆 칸막이 방에서 용감하게 잠을 잤다. 아무 것도 깔지
않은 맨바닥에서 그냥 잠을 잤다. 해가 떠 있는 낮시간에는 계속해서 일을
했다. 겨울에는 8시간 정도였고 여름에는 14시간, 15시간,16시간이 될 때도
있었다. 그는 짐승의 악취가 베어 있는 날가죽에서 실을 긁어 내고 털을
제거하고 석회수에 담갔다가 다시 부식제에 옮겨서 부식시키고 그것을 표백시킨
후 염료에 담가 염색하는 일을 했다, 또 장작을 패고 자작나무와 주목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는 나무통에 들어가 견습공들의 지시에
따라 짐승 가죽과 나무 껍질을 차곡차곡 쌓기도 했다. 그 위에 으깬 오배자
즙을 뿌린 후 다시 주목나무 장작과 흙을 두텁게 덮는 일도 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는 다시 그 통 속에 들어가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가 손질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가죽들을 끄집어내야만 했다.
가죽을 담그거나 꺼내는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물긷는 일을 했다. 여러 달
동안 그는 한 번에 두 양동이씩 하루에 수백 통의 물을 강에서 길어 왔다.
무두질 작업장에서는 날가죽을 씻고 침지하고 끓이고 염색할 때마다 많은 물이
필요했다. 그의 몸은 마를 틈이 없었다. 밤이 되면 옷이 물에 흥건히 젖어
있었고, 피부는 물에 담근 가죽처럼 흐물흐물할 정도로 퉁퉁 부어 있었다.
인간의 생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동물의 생존과 유사한 이런 생활을 한 일년쯤
하자 그는 비탈저 병에 걸렸다. 무두장이들이 잘 걸리는 이 병은 보통
죽음에까지 이르는 무서운 병이었다. 그리말은 벌써 그를 포기하고 그를 대신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떤 일꾼보다 그르누이가 더
만족스럽게 일을 잘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남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르누이는 병을 이겨냈다. 단지 귀
뒷부분과 목, 그리고 뺨에 크고 얼룩덜룩한 흉터가 남았을 뿐이었다. 그로 인해
그의 얼굴은 한층 더 일그러졌고, 옛날보다 더 추악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탈저병에 대한 면역이 생겼기 때문에--이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장점이 되었다.--그 후로는 갈라지고 피맺힌 손으로도 다시 병에 걸릴 위험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가장 나쁜 살가죽에서 살점은 긁어내는 일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이제 정식 견습공이나 다른 동료들, 혹은 그의
뒤를 이을 뻔한 사람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게 되었다. 전처럼 쉽게 다른 사람이
그를 대신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가 하는 일의 가치가 높아졌을 뿐 아니라
그의 생명도 귀한 것이 되었다. 갑자기 그는 더 이상 맨바닥에서 잘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를 위해 창고에 나무 침대가 만들어졌고 그 위에 짚이 깔렸으며
이불도 얻었다. 지는 동안 그를 가두어 드는 일도 없어졌다. 먹을 것은 충분히
나왔다. 그리말은 그를 더 이상 짐승으로 다루지 않았다. 그는 아주 유용한
가축이 되 것이다.
그가 열두 살이 되자 그리말은 그에게 일요일에 반나절의 자유 시간을
주었다. 열세 살이 되자 주중에도 일과가 끝난 저녁에 한 시간씩 밖에 나가서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허락했다. 그가 이긴 셈이었다. 그는 살아
남았고, 더욱이 살아가는 데 충분할 정도의 자유까지 획득했기 때문이다.
겨우살이의 시간은 지나갔다. 진드기 그르누이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아침 공기를 들이마셨다. 돌아다니고픈 충동이 그를 사로 잡았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냄새의 영역이 그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파리였다.

7

그의 생활은 낙원의 삶 그 자체였다. 생 자크 드 라 부슈리나 생 퇴스타슈
지역 인근이 바로 낙원이었다. 사람들은 생 드니 거리나 생 마르탱 거리 옆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서 살고 있었다. 그곳에는 집들이 5. 6층 높이로 빽빽히
들어차 있었기 때문에 하늘이 보이지 않았으며, 바닥의 공기는 마치 습기 찬
하수구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갖가지 악취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는 사람
냄새와 짐승 냄새, 음식 냄새와 질병 냄새, 물과 돌 냄새, 재와 가죽 냄새, 비누
냄새, 갓 구워 낸 빵 냄새, 초에 끓인 계란 냄새,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은
놋그릇 냄새, 샐비어와 맥주와 눈물 냄새, 기름 냄새, 그리고 마르거나 젖은
지푸라기 냄새 등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수천, 수만 가지 냄새들이 희멀건
죽처럼 엉겨 골목 구석구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곳에서 어떤 특별한 냄새를 구분해 내지 못했다. 원래 그들 자신한테서 나온
냄새가 끊임없이 그들로부터 냄새를 빨아들이고 있었고, 또 그들은 그 공기를
숨쉬며 살아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아주 오랫동안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 냄새에 무감각해진 따뜻한 옷 같은 것이었다. 이제는 걸치고 있다는
감각조차 희미해진 옷 말이다. 그러나 그르누이는 그 모든 냄새를 처음인
것처럼 맡을 수가 있었다. 또한 그 냄새를 전체적으로 맡았을 뿐 아니라 냄새
덩어리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극히 미세한 냄새들을 분석하고 나눌 수도
있었다. 그의 예민한 코는 냄새와 악취로 뒤섞인 엉클어진 실타래 속에서도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냄새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가 있었다.
그는 엉클어진 실타래를 풀어 다시 감는 것에서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가끔 그는 담벽에 기대어 서거나, 혹은 어두운 구석으로 들어가서 눈을 감고
입을 반쯤 벌린 채 흘러가는 크고 어두운 강물 속의 육식어처럼 콧구멍만
벌렁거렸다. 그러다 마침내 한 자락 미풍에 부드러운 냄새의 실마리라도 실려
오면 그것을 빨아들여 가슴 속에 영원히 간직했다. 그것은 전부터 알던 냄새일
때도 있었고, 일종의 변형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보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알던 그 어떤 냄새와도 비슷한 구석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완전히 새로운 냄새인 경우도 있었다. 가령 다림질한 비단 냄새, 쿠엔델
차의 향기, 은실로 수를 놓은 비단천의 냄새, 진귀한 포도주병의 코르크 막
냄새, 자라 등껍데기로 만든 빗의 냄새 등이 그랬다. 그르누이는 낚시꾼처럼
열정과 인내를 가지고 알지 못했던 냄새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는 찾아낸
냄새들을 마음속에 간직해 두었다.
골목을 채우고 있는 그 진한 냄새를 실컷 마셨다. 싶으면 그는 냄새들이 좀
옅어지면서 바람과 하나가 되어 향수처럼 퍼져 나가는 환기가 되는 곳으로
갔다. 예를 들어 시장의 공터가 그랬다. 그곳에는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낮에
이어 밤에도 모든 냄새들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장사꾼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고 있고 야채나 계란이 가득 담긴 바구니들과 포도주와 식초가
들어 있는 통들, 양념 재료나 감자, 혹은 밀가루가 가득 든 자루들, 못과 나사가
담긴 상자들, 정육점의 고기 자르는 도마, 옷감이나 구두, 구두창, 혹은 낮에
팔던 수백 가지 다른 물건들로 가득 찬 판매대... 그 모든 활동들이 아주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공기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르누이는 그 냄새들을
통해 시장을 전부 다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냄새를 통해 보는 일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더욱이 그는 다른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세세한
것들까지 냄새로 알 수가 있었다. 모든 일이 다 끝난 후에 냄새로 인식하는
것은 보다 고차원적인 인식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소음이나 과장, 육체를 지닌
인간들의 구역질 나는 체취 등 그 당시의 통상적인 속성들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원래의 본질, 즉 정신으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가 단두대에서 참수를 당한 그레브 광장에도 가보았다. 그 광장은
마치 커다란 혓바닥처럼 강 쪽으로 쑥 들어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강기슭에
끌어다 놓거나 기둥에 매어진 배들이 있어서 석탄이나 곡식, 혹은 풀이나 물에
젖은 밧줄 냄새를 밭을 수 있었다.
그리고 도시 한가운데서 강을 나누고 있는 하나뿐인 이 숲을 통해
서쪽으로부터 거대한 기류가 다가오기도 했다. 그 기류에는 시골 냄새, 뇌일리
인근의 초원 냄새, 생 제르맹과 베르사이유 궁전 사이에 있는 숲의 냄새,
루앙이나 카엥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들의 냄새 등이 실려 있었다. 심지어
바다 냄새를 싣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바다에서는 물과 소금, 그리고 차가운
햇살을 품고 있는 돛단배의 냄새가 났다. 바다 냄새는 단순하면서도 거대하고
독특했기 때문에 그르누이는 그것을 생선, 소금, 물, 해초, 신선한 공기 등의
냄새로 나누기를 주저했다. 그는 그 냄새를 나누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전체로서 기억해 두었다. 바다 냄새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는
아무것과도 섞지 않고 순수하게 그것을 간직했다가 그 냄새에 완전히 취해
버리고 싶었다. 바다는 며칠씩 항해해도 육지가 안 보일 정도로 아주 넓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그가 가장 즐겨한 상상은, 배의 맨 앞쪽에 있는
돛대의 바구니에 앉아 사실 냄새라기보다는 하나의 호흡, 모든 냄새들의 끝인
마지막 호흡과 같은 그 끝없는 바다의 냄새 속을 날아다니다가 그걸
들이마시면서 용해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여기
강변에 있는 그레브 광장에 서서 바람에 실려 오는 한 가닥 바다 냄새를 코로
거듭 들이마시고 있는 그르누이에게 멀리 서쪽에 있는 바다, 그 커다란 대양을
보고 그 냄새를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일생 동안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생 퇴스타슈와 시청 사이에 구역에 배어 있는 냄새를 샅샅이 맡은
그르누이는 곧 그 지역 안에서는 칠흑처럼 캄캄한 밤에도 길을 걸어갈 수가
있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탐구 영역을 넓혀 나갔다. 처음에는 서쪽 생
토노레 방향으로 가보았고, 그 후에는 생 탕투안느를 거쳐 바스티유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강 건너편 부자들이 살고 있는 소르본느와 생 제르맹까지
가보았다. 거기서 그는 성문의 쇠창살을 통해 말을 몰 때 쓰는 가죽 회초리와
급사의 가발에 묻은 가루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높은 담이 둘러쳐진
정원에서는 금작화와 장미, 방금 꺾은 쥐똥나무의 향기가 퍼져 나왔다.
그르누이가 향수라는 말에 어울리는 냄새를 처음으로 맡은 곳이 바로 여기였다.
소박한 라벤더 향이나 장미 향기가 섞인 축제 때의 정원 분수대의 물 말이다.
그러나 등화유나 월하향, 노랑 수선화와 재스민, 혹은 계피향이 섞인 사향 염료
등 좀더 복잡하고 귀한 향기들도 저녁이면 호화로운 마차들 뒤에서 두터운
냄새의 띠를 이루며 퍼져 나왔다. 그는 일상적인 냄새들을 기억해 둘 때처럼 이
향기들도 받아들여 기억해 두었다. 그것들에 호기심을 느끼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향수의 목적이 사람을
도취시키고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향수의 구성
성분들이 좋은지 나쁜지도 알 수 있었다. 그가 보기에 그 향수들은 전체적으로
조악하고 서툰 솜씨에서 나온 것으로, 제대로 혼합되지 못하고 대충 엉터리로
섞어 놓은 것이었다. 자신이 그것과 똑같은 재료들을 가지고 있다면 훨씬 더
좋은 향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향수의 기본 재료들 중 많은 것은 그가 이미 시장의 꽃가게나 향신료
가게에서 냄새를 익힌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모르는 재료도 많이 있었는데,
그는 그것들을 혼합된 냄새에서 추출해 내어 이름도 모르는 채 그냥 기억해
두었다. 용연향, 샤향, 파출리향, 백단나무향, 감귤나무향, 페티버 향, 오포파낙스
향, 안식향, 호프 향, 해리 향....
그는 잘난 척 하면서 성급한 결론 내리지 않았다. 좋은 냄새, 나쁜 냄새라는
일반적 분류에 따르지 않았다. 아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아주
탐욕스러웠다. 그의 냄새 사냥의 목적은 이 세상에서 냄새라고 부를 수 있는
있는 모든 것을 소박하게 있는 그대로 소유하는 것이었다. 단 한 가지 조건은
오로지 그것들이 새로운 냄새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에게는 말의 땀에서 나는 냄새도 막 피어나는 장미꽃 송이의 부드럽고 푸른
냄새에 못지 않게 중요했다. 코를 쏘는 듯한 빈대 냄새도 귀족의 부엌에서
양념된 소고기를 구울 때 나는 연기보다 못할 것이 없었다. 그는 그 모든
냄새를 먹어 치웠고 빨아들였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상상 속에 마련된 냄새의
부엌에서 새로운 냄새를 혼합해 만들어 냈다. 물론 아직까지는 어떤 미학적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무 조각 쌓기 놀이를 하는 어린아이처럼
만들었다가는 금방 없애 버리는 그 냄새들은 아주 기이한 것들로서, 그것을
식별할 수 있는 창조 원리는 없지만 아주 독창적이면서도 파괴적이었다.

8

1753년 9월 1일, 파리의 루아이얄 다리 위에서는 왕위 계승일을 기리는
불꽃놀이가 있었다. 물론 그것은 왕의 결혼식 때처럼 장엄하거나 왕자가
탄생했을 때의 그 전설적인 불꽃놀이처럼 굉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아주
인상 깊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배의 돛을 황금빛 마차 바퀴로 장식했다. 다리
위에서는 마술사들이 강물을 향해 입에서 불을 뿜어 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귀를 멍하게 만들 정도로 시끄럽게 폭죽들이 터지면서 길 위로 불꽃들이 떨어져
내렸고, 하늘로 폭죽을 쏘아 올리면 검은 창공이 하얀 백합꽃밭으로 변했다.
강의 양쪽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다리 위나 강둑 위로 몰려들어 그 광경에
넋을 잃고 탄성과 감탄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즉위한 지 벌써 38년이나 흘러
한창 추앙받던 시절은 다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왕에 대한 만세까지 터져
나왔다. 불꽃놀이는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었다.
그르누이는 강둑 맞은편에 있는 오른쪽 강변의 플로라 정자의 어둠 속에
말없이 서 있었다. 그는 박수라곤 치지 않았으며 폭죽을 쏘아 올릴 때에도 고개
한번 들지 않았다. 뭔가 새로운 냄새를 맡게 되리라는 기대 속에 이곳에
나왔지만 불꽃은 냄새상으로는 별게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번쩍이며 불꽃이 튀고 큰소리를 내며 펑펑 터지기도 하고
휙 소리와 함께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유황, 기름, 그리고
질산염이 혼합된 단순한 냄새였을 뿐이다.
이 지루한 행사를 그만 보고 루브르 궁전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바람에 뭔가가 실려 왔다. 그것은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미세한 한 조각, 향기의 원자였다. 아니, 그보다도 더 작은 것으로서 진짜
향기라기보다는 오히려 향기에 대한 어떤 예감이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곧 그는 그것이 지금까지 맡아 본 적이 없는 냄새일 거라는 확실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다시 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코로 냄새를 들이마셨다. 그
향기는 너무도 약하고 미세했기 때문에 잘 포착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잡히지
않고 계속 달아나면서 폭죽의 연기에 의해 감추어지거나 떼거리로 몰려 있는
사람들에 의해 끊어지고 부숴지기도 했다. 그랬다가는 갑자기 또다시 나타나곤
했다. 극히 짧은 순간 은근한 암시처럼 아주 미세한 향기 한 조각이
나타났다가는... 곧 사라져 버렸다. 그르누이는 고통스러웠다. 그것을 갖고
싶다는 욕망으로 인한 괴로움 때문에 정말로 심장까지 아픈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향기는 다른 모든 향기를 정리할 수 있는 열쇠일 것만 같았다.
이 향기를 알아내지 못하면 향기에 대해서는 영영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이 냄새를 붙잡는 데 실패한다면 그르누이
자신의 인생은 실패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도 그는 그 향기를 차지해야만 했다.
그는 흥분으로 인해 몸이 아주 안 좋은 상태였다. 아직도 그 향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도대체 알아낼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다시 나타날 때까지의 간격이
너무나 길어서 향기의 조각을 다시 붙잡는 데 몇 분씩 걸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것을 영원히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무서운 공포가 엄습했다. 마침내 그는
여전히 미심쩍긴 하지만 그 향기가 강 건너편 남동쪽 어딘가에서 불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플로라 정자의 담벽에서 몸을 일으켜 사람들의 무리에 섞여 다리
반대쪽을 향해 걸어갔다. 두세 걸음 옮길 때마다 그는 멈추어 서서 발끝을 세운
채 사람들의 머리 위로 코를 벌름거리며 향기를 찾았다. 처음에는 너무
흥분했기 때문에 아무 냄새도 맡지 못했지만 마침내 뭔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숨을 들이쉬자 향기는 전보다 훨씬 더 진해졌고, 그는 그 향기가 오는 길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는 다시 발을 내리고 입을 벌린 채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불꽃이 터질 때마다 들고 있던 횃불을 치켜 올리는 군중 속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눈을 아리게 하는 진한 화약 연기 속에서 향기를
놓치고 무서운 공포에 빠지기도 하면서 그는 계속 사람들과 부딪치고 밀치면서
걸어 나갔다. 한참 후에야 비로소 강 건너편에 도달한 그는 마이 호텔을 지나고
말라케 강둑을 지나 세느 거리 입구에 이르렀다.
거기에 멈추어 선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냄새를 추적했다. 그 냄새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주 분명하게 띠를 이루어 부드럽고 섬세하게 세느 거리를 따라
불어오고 있었다. 그르누이는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뛰어왔기
때문이 아니라 그 냄새를 이렇게 마주 하고 있는 데서 오는 흥분 때문이었다.
그 냄새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나 비교하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우선 이 냄새는 신선했다. 그러나 그것은 레몬이나 유자의 신선함과는
달랐다. 몰약이나 계피 나뭇잎, 박하향이나 자작나무, 장뇌나 솔이파리의
향기와도 달랐으며 5월에 내리는 비나 차가운 바람, 샘물... 등 어느 것하고도
같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 온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감귤이나
실측백나무, 사향 냄새와는 달랐으며 재스민이나 수선화, 모과나무나 붓꽃의
향기... 등과도 다른 것이었다. 또 이 향기는 붙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움과
무거움이 혼합되어 있었다. 그것도 그냥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면서 말이다. 가볍고 연약하면서도 단단하고 지속적이었다.
얇지만 오색 영롱하게 반짝이는 비단처럼... 그렇지만 비단과는 또 다른
비스킷이 들어 있는 꿀이나 달콤한 우유 냄새와 비슷했다. 아무리 애써도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비단과 우유라니! 이 향기는 도대체 파악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으며, 어디에다 분류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그런
향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지극히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그르누이는 그 냄새를 따라갔다. 가슴이 불안으로 쿵쿵 뛰었다. 자기가 냄새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냄새가 저항도 못 할 정도로 힘차게 자신을 끌어들이는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그는 세느 거리를 따라 올라갔다. 길에는 인적이 없었고 건물들은 텅 비어
조용했다. 사람들이 모두 저 아래 강가에서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방해하는 분주한 사람들의 체취도 없었고,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도
없었다. 길에는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물과 오물, 쥐와 야채 쓰레기의 악취가
배어 있었다. 그러나 그 냄새들 위로 그르누이를 이끌고 있는 그 부드러운
향기가 퍼져 있었다. 몇 발자국 더 걸어가자 희미하던 하늘의 별빛이 높은
건물들에 막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르누이는 어둠 속을 계속
걸어갔다. 그는 아무것도 볼 필요가 없었다. 그 냄새가 그를 확실하게 인도하고
있었다.
50미터쯤 걸어갔을 때 그는 오른쪽의 마레 거리로 방향을 꺾었다. 그곳은
훨씬 더 어두컴컴했으며 팔을 뻗지도 못할 정도로 좁은 골목이었다. 이상스러운
것은 향기가 더 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단지 더 깨끗해질 뿐이었다.
훨씬 더 깨끗해짐으로써 훨씬 더 큰 흡인력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그르누이는
의지로서가 아니라 그냥 도취되어 걸어갔다. 어떤 지점에 이르자 그는 향기의
강력한 힘에 이끌려 오른쪽으로 돌아 어떤 집의 담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야트막한 통로가 뒤뜰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르누이는 몽유병자처럼
그 통로를 지나 뒤뜰로 들어갔고, 다시 모퉁이를 돌자 두 번째의 좀더 작은
마당이 나타났다. 마침내 불이 환한 곳에 이르게 되었다. 그곳은 가로세로
보폭이 몇 걸음 정도 되는 네모난 뜰이었다. 담 위로 나무 지붕이 비스듬히
덮여 있었다. 그 밑에 놓여 있는 식탁 위에 촛대 한 개가 세워져 있었고, 여자
아이가 그 식탁에 앉아 오이를 손질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왼손으로 바구니에서
오이를 꺼내서는 칼로 꼭지를 잘라 내고 씨를 제거한 후 통 속에 집어 넣었다.
열서너 살쯤 되어 보였다. 그르누이는 선 채로 있었다. 그는 반 마일이나
떨어진 다른 쪽 강가에서 맡았던 향기의 발원지가 어딘지 곧 알 수 있었다. 그
향기는 이 더러운 뒷마당이나 오이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 소녀가
향기의 원천이었다.
한 순간 그는 너무 당황했기 때문에 자신이 지금 이 세상에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게 보이는 것은 단지
촛불에 비치는 그녀의 뒷모습뿐이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소녀의
냄새는 맡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남자, 여자, 아이 등 수천
명의 냄새를 알고 있는 그로서는 이처럼 근사한 향기가 어떻게 사람에게서 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냄새는 보통 별 게 아니었고
초라했다. 어린아이의 냄새는 싱거웠고, 남자들한테서는 지린내, 땀내, 그리고
치즈 냄새가 지독했고, 여자들한테서는 부패된 기름과 상한 생선 냄새가 났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냄새는 전혀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거부감까지
불러일으키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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