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6일 일요일

독립문은 이완용의 글씨? 독립의 말의 허구와 타인 시선에 신경쓰는 튼살치료

독립문은 이완용의 글씨? 독립의 말의 허구와 타인 시선에 신경쓰는 튼살치료


2017326일 오전 방영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1897년 건립된 독립문은 독립문은 건축가 심의석이 시공했지만, 현판은 누가 썼는지 알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완용이 썼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모았다
주장은 1999년 발표된 윤덕한 작가의 이완용 평전에도 기록되어 있었다. 사실 독립문이의미하는 독립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었다. 독립문은 1400년대부터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의 자리에 건립한 것.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닌 중국으로부터 독립이 뜻했다. 이완용은 뜻밖에도 독립협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또 그는 제일의 명필이었을 뿐만 아니라 건립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 하지만 친일 행각이 알려지자마자, 협회에서 재적당했다. 이완용의 글씨체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 당시 이완영의 지위, 그의 독특한 필체, 동아일보 기사 세가지를 제시했다.
이완용은 독립협회 위원장으로 협회 모금과 기부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으며, 이미 명필가로 명성이 높았다는 것. 필체 역시 이완용과 유사점이 많이 발견된다는 전문가의 견해가 제기됐다. 한 문서 감정가는 독립문 필체와 일정한 틀 안에 짜임새 있게 이완용의 글씨체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필자가 보기에도 글씨체가 두툼하고 느끼한 명필이라고 불렸던 이완용 글씨와 매우 유사했다.
논란이 되는 동아일보 기사도 언급했다. 19247월 게재된 기사에 이완용이 다른 이완용이 아니라 조선 귀족 영수 후작 각하올시다라고 쓰여져있다. 그러나 이는 독립문 건립 후 상당 시일이 지난 일제강점기라는 점에서 근거가 불분명하다고 조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이에 일각에서는 독립문 현판이 이완용이 아닌 김가진의 글씨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동농 김가진은 독립협회 회원이면서 대한협회 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문으로 활약했으며, 세로보다 가로로 길게 쓰는 중후한 느낌이 52세의 농익은 김가진 필체라고 한 전문가는 주장했다. 김가진 손자 김자동이 2010년 공개석상에서 집안에서 독립문 현판이 김가진의 글씨로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으며, 며느리 정정화의 회고록 長江日記장강 일기에 독립문에 걸 한글과 한문 현판을 정성스럽게 썼다고 쓰여져 있다는 것이 근거 이유다. 그러나 장강 일기 역시 독립문 건립 이후 100년 후인 1998년에 출간돼 역시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필자가 사적으로 보기에는 이완용 글씨가 맞는데 윤치호 애국가 작사설처럼 맞으면 현판 글씨를 파내야 하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같다.
친일파 이완용은 일본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이토 히로부미나 데라우치 마사타케 같은 일본인등과 대화할 때는 일본어를 구사 못하다보니 영어로 했다고 한다.
수구 내각은 갑신정변 때 쫓겨났던 개화파들 중에서도 윤치호, 서재필, 서광범 등 친미국파에 한해서만 독립협회에 가담시켜 이완용 등과 계몽강연 활동에 나서게 한다. 이완용은 특히 독립협회 내 정부측 인사로서 독립협회 제2대 위원장으로까지 활동했는데, 다음은 이완용의 연설 중 일부분이다.
 
독립을 하면 미국처럼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며 만일 조선 인민이 단결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거나 해치려고 하면 구라파의 폴란드라는 나라처럼 남의 종이 될 것이다. 세계사에서 두 본보기가 있는데, 미국처럼 세계 제일의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나 폴란드 같이 망하는 것 모두가 사람 하기에 달려 있다. 조선 사람들은 미국같이 되기를 바란다.”
점차 친미 개화파 계열의 윤치호(尹致昊), 서재필(Philip Jaisohn) 등이 국민 투표를 통한 미국식 참정권을 주장하며 황실과 유생(儒生)들의 경계와 이목을 끌자 독립협회 내에는 균열이 생기고 계속 파열음이 들렸다. 원래 왕정 지지자였던 데다가 자칫 역모의 죄까지 뒤집어쓸까 저어한 이완용은 협회 명단에 이름만 남긴채 모든 간부직을 자진 사퇴했다. 독립협회의 모토이자 하부 청년조직인 협성회(協成會)에는 장남 이승구(李升九) 도 창립회원으로 활동중이었는데 이완용이 캘리포니아의 무관학교로 도피 유학까지 보내 버렸다.
 
이완용은 조선 시대 중국 사신을 영접했던 모화관(慕華館)의 정문으로, 조선 사대주의 구태의 상징으로 지목됐던 영은문(迎恩門)을 허물고 독립문을 설립하도록 뜻을 모았다. 여길 보면 독립이 모든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나 홀로 섬이 아니라 오직 청나라인 중국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임을 알수 있다.
독립[ independence , 獨立 ]이란 사전적으로 종래에 식민지나 속령(屬領)으로 있던 지역 또는 어떤 국가의 한 지방으로 있던 지역이 자유와 독립을 되찾아 새로운 주권국가로 발족하는 일.(두산백과)
독립獨立이란 말은 멋있는 듯해도 dependence의존+ in 부정 접두어 이니 결국 외세에 맡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즉 속박이 있는 뒤에 자유를 주장함과 같다.
예를 들어 청소년이 사춘기 稚氣치기로 부모로부터 독립을 한다고 보자. 친구인 불량청소년은 자기 마음대로 하니 부럽다고 생각하고 아노미적인 일탈을 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부모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가출을 감행할 것이다. 좋은 자유를 찾으려다 오히려 범죄의 소굴로 들어가듯이 조선은 청나라란 늑대 입을 벗어나서 오히려 일제란 호랑이 입으로 들어간 것이다. 1894년의 갑오개혁 홍범 14조 중에 1조는 다음과 같다.
1. 청국에 의존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자주 독립 自主 獨立하는 기초를 확고히 할 것.
자주 독립이란 말은 정말 좋은 수식어 레토릭이지만 이 배경을 잘 보면 일제가 조선을 강제 병탄하려고 하는 씨앗이 내포되어 있음을 놓쳐서는 안된다.
일제가 현양사 흑룡회로 보수세력인 동학농민군을 후원했듯이 또한 개화파인 독립협회등을 뒷배경이 되었음을 이완용을 통해 알수 있다.
정말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독립을 외쳤던 흥선대원군은 역사가들은 쇄국정책을 펼쳤네 하면서 부정적이면서 다른 독립운동은 긍정적으로 묘사한것이 문제이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National Self-determination , 民族自決主義 ]로 촉발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3.1 운동도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실제로는 발칸반도 및 동유럽의 패전국 영토에 귀속되어 있던 소수민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는 전세계의 약소민족에 대한 자결원칙 적용을 의미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제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세력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광대한 영토를 민족에 따라 여러 국가로 분리해 잠재적인 적대세력을 무력화 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것이었다. 따라서 민족자결주의의 정신은 어디까지나 원칙일 뿐, 강대국의 정치적 군사적 힘 앞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존재하는 사례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필자는 3.1운동 평화정신이 잘못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제에 무장투장운동을 나이브하고 순진한 태도로 이용당하는것을 취하는 것이 문제이다. 독립문 건립을 위해 못 사는 사람, 백성들 여러 사람의 성금을 내었지만 오히려 대한제국의 독립이 일제만 좋은 짓을 하게 선물로 바쳐진 것이다.
선불교 승찬 대사에게 도신이란 11세 된 아이가 와서 물었다.
누가 너를 속박하였느냐(誰縛汝)?” 대답하기를, “묶은 사람이 없습니다(無人縛).”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무슨 해탈을 구하는가(何更求解脫乎)?”도 도신이 그 말 끝에 크게 깨닫고 9년 동안 힘써 모셨다. 이 정도는 되어야 독립한 인간이다.
하지만 사람은 절대 홀로 설수 없는 존재이다. 완전한 독립은 이상적이지만 사실 오히려 무인도에 살던 로빈슨 크루소도 프라이데이란 사람과 나중에는 같이 지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외쳐도 신을 항상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신에게 패배한 것처럼 독립이나 자유의 추상적인 개념을 주장하기보다는 실력을 키워 선동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필자는 아직도 대한민국이 외세에 독립하지 못했다고 보는데 싸드배치로 기인한 남남갈등과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쌍한 고래싸움에 새우등터지는 태도가 안타깝다. 실제 북한도 완전히 외세에 독립한듯 보이지만 중국에 어느정도 속박을 받고 미국의 최고의 후원을 받았다. 2017317일 미 국무부 홈페이지에 의하면 렉스 틸러슨 장관이 지난 16일 도쿄에서 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발언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20년간 실패한 접근을 했다. 그것은 미국이 북한이 다른 길을 가도록 독려하기 위해 135천 달러(15272억 원)를 제공한 기간을 포함한다.”
미국의 공식적인 후원을 15천억원이나 받았는데 북한이 독립국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정말 독립국이라면 외교관계를 끊고 완전히 쇄국정치를 해야하는데 흥선대원군도 청나라등과 관계가 있었으니 절대 독립은 완전 허구이다. 사람 인자를 보면 서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의식할수 밖에 없고 히키코모리나 대인기피증으로 완전 사람을 안 만나지 않는 한 타인과 관계속에서 살수 밖에 없다. 따라서 현대 사회는 외모가 더 경쟁력이 되어가고 암암리에 평가를 하고 받는다.
종아리나 허벅지 팔뚝, 배등에 생기는 튼살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절대 타인의 시선에 독립을 할수 없는 존재이다. 특히 한국인의 경우는 공동체 문화가 있어서 서양인과 달리 개인주의가 팽배하지 못해 예를 들어 튼살이 있거나 과체중인 상태로 비키니 입고 남의 눈치 없이 해변가를 활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튼살을 보건 말건 남의 시야에 홀로 떳떳함을 키움도 중요하지만 그냥 맞춰주는 것도 인간사회생활에 필수이다. 카카오톡 010-8632-6138 5image, 02-8432-0075 www.jahyangmi.co.kr 201744일 이후에강남역 8번출구에 있는 자향미 한의원을 방문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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