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3일 일요일

필자가 보는 아름다움의 조건

필자가 보는 아름다움의 조건














필자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와 같이 아름다움을 보는 조건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았다.







첫째는 아름다움에는 흠이나 결점이 없어야 한다. 보석으로 비유하자면 다이아몬드에 홈이나 잡석등이 섞이면 안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얼굴에는 점이나 사마귀 흉터 주름이 없어야 하며 몸에는 화상이나 사고 흉터 튼살등이 없어야 한다. 얼굴의 기본적인 조건은 여성의 경우에는 모공이 거의 없고 피부가 희어야 한다. 또한 얼굴은 이마와 코와 광대뼈 입과 턱의 비율이 맞아야 한다. 또한 타지마할의 궁전처럼 얼굴이나 몸이 대칭이 되어 있어야 좋다. 요즘은 동안 열풍이 불어서 눈은 크고 이마는 넓고 턱이 좁거나 작은 것을 선호하지만 필자는 이것은 초년에 운을 집중시켜 말년을 나쁘게 가는 방법이므로 선호하지 않는다.







둘째는 아름다움은 내면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얼굴이나 몸매만 아름답다고 해서 안되며 마음이나 말 태도나 생각등도 아름다워야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디지털 사진이 발달하여 너무 시각적인 아름다움만 치우쳐 있기 때문에 아쉽다. 마의상법이란 관상책에서도 얼굴이나 몸의 형태 뿐만 아니라 목소리라든지 정신의 범주까지 관상의 범주에 넣었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아무리 지나쳐도 무리가 아니지만 남의 마음씨까지 쉽게 알수 없는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바쁜 현대 생활에서는 많이 퇴색된 느낌이다.







셋째 사람에게는 모두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필자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아름다움의 획일화와 통일화이다. 미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하게 일률적으로 존재한다면 많이 피곤할 것이다. 나의 장점을 버리고 다른사람과 똑같이 되려고 하는 것은 붕어를 닮지 못하는 붕어빵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앵무새가 사람 말을 하고 원숭이가 사람 흉내를 내지만 사람이 되지 못함과 비슷하다. 전통적으로 서양에서는 조각이나 예술등에 황금분할이란 일률적 아름다움이 존재했지만 동양학에서는 타인과 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였다. 서양의 아름다움이란 예를 들어 파바로티처럼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내가 거의 비슷하게 옥타브를 흉내낸다면 그것은 이름답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의 아름다움이란 미술의 세계에서 내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흉내낸다면 이것은 시험볼때 컨닝한 것보다 더 못한 최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차라리 조영남씨처럼 화투라도 작품의소재로 하여 독창적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낫다.







내가 서정주의 시나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암기하여 비슷하게 모방해 짓는다고 해도 쓰레기인 것이다. 왜냐하면 독창성과 창의력만이 예술의 미적인 세계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반드시 자신의 개성을 살린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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