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0일 금요일

방사능 백혈병으로 사망한 퀴리부인과 갑상선 암 수술 흉터

방사능 백혈병으로 사망한 퀴리부인과 갑상선 암 수술 흉터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폴란드어: Maria Skłodowska-Curie, 폴란드 바르샤바, 1867117~ 193474)는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과학자이다. 본명은 마리아 살로메아 스크워도프스카(폴란드어: Maria Salomea Skłodowska)이고, 프랑스식 이름은 마리 퀴리(프랑스어: Marie Curie)이다.
방사능 분야의 선구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이다.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로,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라이너스 폴링과 함께 노벨상 2관왕에 등극한 인물로 유명하다. 여학교를 졸업한 마리는 남학생만 뽑는 바르샤바 대학교와는 달리, 성 차별이 없는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싶어했으나 학비가 없었기 때문에, 3년간 시골의 부유한 농가의 가정교사로 직접고용되어 사용자의 딸과 아들을 가르쳤으며, 나중에는 러시아의 식민지배를 받는 폴란드 민족문제를 고민하던 사용자의 허락을 받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운영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소년감화원 사감으로 취직하여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마리는 둘째 언니 브로니스와바와 형부 카지미에시 드우스키(Kazimierz Dłuski) 부부가 의사로 일하고 있던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하였다. 브로니스와바와 마리가 교육을 강조함으로써 폴란드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려는 계몽주의자였다면, 형부 카지미에시는 자본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없이는 민중 해방이 없다는 냉철한 현실 이해를 주장한 사회주의자였다.
1891년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여 J. H. 푸앵카레, G. 리프만 등의 강의를 들었다.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며 가장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소르본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 학위를 취득한 후 1895년 과학자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였고 피에르 퀴리와의 사이에 두 딸을 두었다.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Pierre Curie, 1859~ 1906)1898년 우라늄 광석인 피치블렌드(pitchblende, 역청우라늄석)에서 염화바륨에 소량 섞여있는 형태로 염화라듐을 처음 분리발견하였고 19028톤의 폐우라늄 광석을 처리하여 0.1g의 순수한 염화라듐을 얻었다. 1910년에는 마리 퀴리가 염화라듐을 전기분해시켜 금속 라듐을 얻었다.
마리 퀴리가 살던 시대에는 방사능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방사능 물질 라듐은 미용은 물론 정신장애 치료에까지 효과가 있다는 위험한 선전이 아무런 근거없이 주장되었고,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들이 죽어갔다. 어느 화장품에 라듐이 들어간다고 쓰어져 있기만 하다면, 그것은 완판이 되었고 굉장히 인기가 있던 제품이었다.
1906년 남편 피에르 퀴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마리 퀴리는 피에르 퀴리가 근무하던 소르본 대학교에서 1906115일부터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마리 퀴리는 미리 강의 내용을 확인하는 준비를 하여 남편이 가르친 내용을 이어서 강의하는 꼼꼼함을 보여주었다.[10] 이 일로 소르본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에서는 연금을 제공하겠다고 했으나 거부했다.
라듐의 위험성이 제기된 것은,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작 포스터에 페인트질(페인트 안에 라듐 성분이 들어가 있음)을 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죽어가면서였다. 마리 퀴리도 1934년에 스위스에 있는 요양소에 입원하여 그 해 74일 과도한 방사능 노출로 인한 골수암,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으로 인해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여성으로서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며,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노벨상을 2회 수상한 기록은 라이너스 폴링과 함께 인물로서는 최다 기록이다.
1903년 라듐 연구로 마리 퀴리와 남편 피에르 퀴리가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고, 1907년에는 라듐 원자량의 정밀한 측정에 성공하였다. 1910년에는 금속 라듐의 분리도 하여, 1911년에는 라듐 및 폴로늄의 발견과 라듐의 성질 및 그 화합물 연구로 마리 퀴리 단독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공적을 기려 방사능 단위에 퀴리라는 이름이, 화학 원소 퀴륨에 이름이 사용되었다. 마리 퀴리의 딸 부부인 이렌 졸리오퀴리와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이다.
프랑스의 보수성, 가십을 좋아하는 언론의 공세, 폴란드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여성이라는 성차별적 문제로 결국 화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지 못했다.
 
안타깝고 특이한 점은 퀴리부인 딸까지도 방사능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는 점이다. 이렌 졸리오퀴리(프랑스어: Irène Joliot-Curie, 1897912~1956317)는 프랑스 파리 출생의 원자물리학자이다. 아버지는 피에르 퀴리, 어머니는 마리 퀴리이다. 성씨 졸리오퀴리는 남편과 함께 쓰는 성이다. 파리 대학에서 폴로늄의 알파 입자에 관해 연구해 학위를 취득하였고, 1926년 어머니의 조수였던 프레데리크 졸리오와 결혼하였다. 1935, '인공 방사선 원소의 연구'로 남편과 함께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1936, 어머니의 후임으로 파리 대학 교수에 취임하였으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훈하였다. 오랜 세월에 걸친 방사능 연구로 인한 백혈병으로 1956년 사망하였다.
필자는 퀴리부인과 이렌 퀴리 모두 갑상선 암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갑상선 질환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고 뾰족한 치료법도 존재하지 않았을것이며 특히 갑상선 호르몬의 재료인 요오드가 방사능으로 피폭되었다면 갑상선암을 피해가지 못했다고 본다. 마치 군인이 전쟁터에서 전사하여 훈장을 받듯이 퀴리부인과 과학자 딸은 현대에 살았다면 피폭에 대해서 피했을 것인데 안타깝다.
현대 한국인은 원인불명의 갑상선암에 노출되어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쓰나미도 문제지만 갑상선암은 2000년대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왔다. 다행이도 갑상선암 수술 환자는 검진 무용론 때문인지 조금씩 줄고 있는 추세다. 02-8432-0075 www.jahyangmi.co.kr 강남역 8번출구에 있는 자향미 한의원에서는 한방 피부과 전문의 홍성민 원장이 201744일부터 OT침이라고 불리는 수술후 흉터침으로 갑상샘암 흉터를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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