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8일 수요일

신사임당의 포도그림은 홍수주의 일화 얼룩 화상흉터치료

신사임당의 포도그림은 홍수주의 일화 얼룩 화상흉터치료


201738일 밤 10시에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13(극본 박은령/연출 윤상호)에서 신사임당(이영애 분)은 휘음당 최씨(오윤아 분)에게 반기를 들었다.
휘음당은 중부학당에 다니는 아들 민지균이 신사임당의 아들 이현룡(훗날 율곡이이/정준원 분)에게 대통성적을 뺏기고 을 받아오자 분노했다. 마침 이현룡에게 자존심이 상한 민지균이 먼저 시비를 걸며 두 아이들 사이 몸싸움까지 벌어지자 그 모습을 목격한 휘음당은 이현룡의 따귀를 때리며 분풀이 했다.
신사임당은 아이들 공부에 꼭 필요한 종이를 만드는 일이다행색이 겉치레에 불과하다. 지난번에는 무명옷 차림이었고 오늘은 비단옷을 입었다. 박꽃은 소박하지만 그 열매로 한 가족을 배불리 먹이기 충분하다. 연꽃은 화려하지만 그 열매가 박보다 못하다며 휘음당의 화려한 차림을 일침 했다.
그러자 휘음당은 신사임당 부친 신명화가 기묘사화에 연루됐다는 과거사까지 들춰내 신사임당을 내쫓으려 했고, 자모회 투표가 시작됐다. 휘음당은 과반수가 넘으면 이현룡을 내쫓을 작정이었지만 표가 정확히 반으로 갈리자 자모들에게 처를 권하며 재투표를 선언했고 심술이 난 휘음당의 최측근은 신사임당에게 차를 쏟으려다 다른 자모에게 쏟았다.
비단옷을 빌려 입고 나온 자모가 망가진 치마에 어쩔 줄 몰라 하자 신사임당은 붓을 들고 포도를 그렸다. 역사가 기록하는 신사임당의 묵포도도가 드라마 속에서 재현됐고, 휘음당은 20년 만에 붓을 든 신사임당의 모습에 경악했다. 자모회 모두가 신사임당의 그림솜씨에 경탄했다. 여기에 신사임당은 아들 이현룡의 자퇴를 결정하며 또 한 방을 먹였다.
 
드라마처럼 치마 포도 그림의 일화가 신사임당의 것일까?
오늘날 신사임당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그림은 상당수가 18세기 이후에 나온 것들이다. 우연히 발견되었거나, 혹은 신사임당의 후손이 갖고 있었다는 식으로 등장한 작품들이다. 그림의 종류 또한 산수화, 포도, 난초, 풀과 벌레, 꽃과 풀, 물고기, 대나무, 매화 등으로 다양하다. 이 그림들에는 진짜냐 가짜냐 하는 논란이 따라다녔고, 유명한 사람들의 글을 실어서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과연 그중에 진짜 신사임당의 작품은 얼마나 될까. 신사임당의 7대손인 이언유와 이선해는, 세상에 떠도는 신사임당의 그림은 대개 가짜라고 말했다. 진본은 대개 한두 점 정도만을 명문가에서 보배롭게 소장한다고 말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신사임당하면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초충도에 관한 부분이다. 아들 이이는 어머니가 산수화나 포도 그림을 잘 그렸다고 했는데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한 초충도는 18세기 이후로 새로 나온그림이 많다. 과연 전부 사임당이 그린 그림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18세기 이후 새로 나온 사임당의 그림에는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한 것이 많다. 이와 더불어 사임당이 능한 분야가 초충도라는 인식이 18세기 미술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종휘는 우리나라 그림은 솔거의 소나무와 이정의 묵죽, 신부인의 초충이 유명하다고 했다. 또 이긍익은 사임당 신씨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데 포도와 풀벌레를 잘 그렸다고 했다. 그런데 율곡이 16세기에 쓴 '선비행장'에서 사임당이 산수도와 포도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 것을 참고하면, 18세기에 등장한 초충도에 대해서는 미술사적인 해명이 요청된다. 이들 그림 모두를 사임당이 직접 그렸다고 보기보다는, 율곡의 어머니 사임당의 정체성을 둘러싸고 초충도의 번성이라는 회화 문화가 생성되었다는 것이 적당한 해석일 것이다. (49)
 
'신사임당: 화가로 살고 어머니로 기억된 여인'
http://www.nocutnews.co.kr/news/4734339#csidx341d26ec30851158b487d115d793940 출처 '신사임당: 화가로 살고 어머니로 기억된 여인'와 기사
 
포도도 [葡萄圖]
아티스트 홍수주(洪受疇)
국적 조선출생-사망 1642~1704
제작연도 17세기경
종류 수묵화
기법 비단에 수묵
크기 126.2 x 61.2cm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네이버 지식백과] - 홍수주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
인터넷 자료를 보면 숙종실록, 호은집, 자옹집 등 선생에 관한 문헌에 나타나 있는 일화 중 하나를 들면, 선생이 취중에 선생의 따님이 남의 붉은 치마를 빌려 입었 다가 간장을 엎질러 더럽히게 되자 몹시 걱정하는 것을 보고 치마의 얼룩 위에 짙은 포도그림을 그려 중국에 나가 팔아 그 돈으로 청홍 비단 몇필을 끊어 딸에게 주니 그 따님이 대단히 기뻐하였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도승지 홍수주의 포도그림이 5백금을 받았고, 새 비단치마 열벌을 사서 홍수주는 역관들에게 두벌을 주고 나머지 8벌중에서 새것으로 한 벌을 갚고도 7벌이 남았다. 막내딸이 다시 중국에 그림을 팔자고 하지만 홍수주는 다시 그림을 팔지는 않았다.
조선왕조 실록을 보면 홍수주가 신사임당의 아들인 이이가 절에 들어갔다고 비판하는 내용도 나온다. 홍수주(洪受疇)가 상소하기를,"당초(當初)에 학유(學儒)들이 윤증(尹拯)의 사사 편지 가운데의 한 구절을 가지고 선정신(先正臣) 이이(李珥)를 무욕(誣辱)하였다고 이릅니다만, 그들이 말한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이가 산에 들어갔던 일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던 것인데 윤증(尹拯)에게서 그 사실이 처음으로 나왔다면, 무욕(誣辱)하였다는 비방을 윤증(尹拯)은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비록 사론(邪論)의 효시(嚆矢)라고 할지라도 또한 일리(一理)는 있습니다. 이이가 망령된 것으로 슬픔을 막으려 하였다.[以妄塞悲]는 말을 스스로 진술(陳述)하였을 뿐 아니라, 선배(先輩)들이 그 전말(顚末)을 갖추어 기술(記述)하였음을 눈 있는 자는 모두 함께 볼 수 있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 www.itkc.or.kr데이터 베이스를 보면 https://goo.gl/gBB6sB
유명한 이긍익(李肯翊) 연려실기술 별집 제14권 문예전고(文藝典故) 화가(畫家)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의 딸이고, 율곡 이이(李珥)의 어머니인데 포도와 풀벌레를 잘 그렸다.
여기에는 포도에 대한 일화가 없다.
그런데 홍수주 일화에는 분명히 포도 치마에 대한 일화가 드러나 있다.
승지 홍수주(洪受疇)는 포도를 잘 그렸으나 아울러 매화도 잘 그렸다. 어느날 소녀가 남의 붉은 비단 치마를 빌려 입었다가 잘못하여 장을 쏟아 더럽혀서 근심하고 번민하여 어쩔 줄 몰랐다. 수주는 걱정할 것 없다 하며 그 치마를 화본(畫本)으로 하여 진한 먹으로 한 그루의 포도를 그린 다음, 역관(譯官)에게 부탁하여 중국 사람들의 시장에서 팔게 하였더니, 과연 푸른 비단과 붉은 비단 몇 감을 얻어 돌아왔다. 소녀가 크게 기뻐하여 빌렸던 치마를 되갚고 나머지를 차지하고서 또 전과 같이 하기를 청하였다. 수주는 웃으면서, “이런 일은 항상 할 수 없다.” 하였다.
 
필자는 신사임당 포도 치마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고전 원문에 등장한 신사임당 일화 단 하나라도 가져오기 바란다. 증거가 없이 일제가 조선시대 역사를 왜곡하고 국가에 충성하게 만드는 현모양처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홍수주 일화가 신사임당 일화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물론 신사임당이 홍수주보다 선대이긴 하지만 아무리 교훈을 위해서라지만 근거 없는 역사 날조는 당장 그만둬야 한다.
위 드라마 내용을 보면 뜨거운 차를 쏟았는데, 먹물이라고 된 부분도 있고, 또 홍수주는 간장 같은 장을 쏟았다. 이와 같이 뜨거운 물에 의해서 화상을 입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데 이미지 피부과 한의원 www.imagediet.co.kr 에서는 BT침 화상흉터침, , 한약 재생약침등으로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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