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궁의 크기와 방화 화상흉터치료
아방궁은 저 멀리 번친(樊川)의 물을 아방궁 안의 광활한 연못으로 끌어 들였습니다. 아방궁의 전전(殿前)한 채만 히더라도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폭이 오십 보(步, 오십 보는 약 삼십 丈으로 한 황조의 도량형 제도는 고증이 어렵습니다)에 남북으로 그 너비가 오십 장(丈)이니, 위에는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앉을 수 있고 아래에는 오 장(丈)의 기(旗)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기장 귀한 자재를 시용해 건축하였는데, 대들보는 목란(木蘭)으로 만들어어 설치하고 그 문은 자석(磁石)을 쌓아서 만들었습니다. 전전 한 채가 이렇게 호화로웠으니 정전(正殿)과 기타 궁실의 형편이 어떠했을지는 상상이 갑니다. 그 외에도 사통팔달의 복층의 고기복도(高架複道)가 그 누각 하다 연결되어 함양까지 통했습니다. 한대 사람의 기록을 소두의 묘사와 비교해 보면, 소두의 문체가 훨씬 아름답고 기억하기 쉬울 뿐 아니라 그의 묘사가 아방궁의 실제 모습과 대단히 비슷했음을 입증해 줍니다.
게다가 더 믿을 만한 사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사마천이 사기에서 홍문(鴻門)의 연회를 서술해 놓은 대목입니다. 홍문의 연회에서 자객 항장(項莊)이 검무를 출 때 그의 뜻은 패공(沛公) 유방을 도모하는 데 있었다는 대목이 나오고 곧 이어서 사마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우는 한고조가 홍문에서 패상(壩上)으로 달아난 것을 알고는 병사를 이끌고 돌아갔는데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격하여 함양을 도륙하고 투항한 진나라 왕자 영을 죽인 다음 진나라의 궁실을 불태웠는데, 그 불길이 석 달이나 타고도 꺼지지 않았다〔引兵西屠咸陽, 殺秦降王子嬰, 燒秦宮室, 火三月不滅〕.” “火三月不滅(화삼월불멸)”이라는 달랑 다섯 글자가 그 기록과 시부 (詩賦)의 신빙성을 모두 증명해 줍니다. 1977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삼 림에 큰 산불이 나서 그 광활한 산림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숲이 빽빽해서 불길이 빨리 번졌지만 그래도 한 달 정도만 계속해서 불탔다고 합니다.
맹자와 양혜왕 孟子旁通, 남회근저 설순남 옮김, 양혜왕상 페이지 129
아방궁을 묘사하는 것은 3달정도 불탐으로 그 규모를 추정하는 것이다. 진시황은 분서갱유로 책을 불태우고 항우는 아방궁을 태우고 항복한 군사 수십만을 땅에 묻으니 모두 인자함으로 중국 황제가 될 자격 미달이다. 그래도 아방궁 불은 3달만에 꺼졌다. 하지만 사람이 화상을 입고 그 화상을 회복하는 과정이 몇달 몇년, 수십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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