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의 성공과 송곳 찌르기 찔린 상처 흉터치료
소진(蘇秦, ? ~ 기원전 317년?)은 동주(東周)의 낙양(洛陽)에서 태어났고 자는 계자(季子)이다.『자치통감』 제2권 주기(소진의 합종책) 편에 따르면, 하산후 소진은 각국을 돌아다니며 유세했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고향에 돌아와 병법과 독심술에 관한 책을 읽으며 1년간 공부한뒤 주나라 현왕을 찾아갔으나 왕은 소진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이에 소진은 진(秦)나라로 갔으나 당시 상앙을 처형한 직후 유세객을 미워하던 분위기에 밀려 다시 조(趙)나라로 갔는데 거기서도 역시 환영받지 못했다. 이에 연(燕)나라로 떠나 겨우 문후(文侯)를 만날 수 있었다. 이때 소진은 연나라 왕에게 합종의 전략을 주장했다. 합종이란 가장 강력한 진(秦)나라를 막기 위해서는 서로 힘을 합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소진은 이렇게 말했다.“ "연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진나라와 가까이할 것이 아니라, 먼저 가까이에 있는 이웃인 조나라와 친해져야 합니다. 천 리나 떨어져있는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는 것과 백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조나라가 연나라를 치는 것 중 어느것이 더 쉽겠습니까? 그러므로 연나라의 걱정은 진나라가 아니라 바로 조나라입니다. 조나라와 합종하십시오. 천하와 하나가 되면 연나라는 우환이 없게 될 것입니다". ”
문후는 소진의 말을 칭찬하면서 그에게 많은 예물을 주며 조나라와의 동맹을 채결하도록 했다. 당시 조나라는 소진을 미워하던 재상 봉양군(奉陽君)이 죽고난 직후라 소진은 조나라 왕 숙후(肅侯)를 만날 수 있었다.
“ "지금 천하의 형세를 살펴보면 한, 위, 제, 초, 연, 조 여섯 나라의 영토는 진나라의 다섯 배나 되고 여섯 나라의 병사는 진나라의 열 배가 됩니다. 여섯 나라가 힘을 합쳐 서쪽의 진나라를 공격한다면 반드시 격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왕께서는 진나라를 섬기며 진나라의 신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신하라고 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신하라고 부르는 것이 어찌 같겠습니까? ”
조나라 왕은 소진의 말에 기꺼이 동의하며 많은 수레와 황금, 비단 등을 주면서 다른 주요 제후들을 설득해 합종에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임무를 맡겼다. 다음으로 소진은 한나라로 가서 선왕(宣王)을 만나 유세했다.
“ "천하의 강한 활과 좋은 칼은 모두 한나라에서 생산되며 수십만 명의 무장 병력은 용맹하기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강대한 군사력을 갖춘 현명한 대왕께서 진나라에 굴복하신다면 이야말로 천하의 웃음거리입니다. 이보다 더 심한 모욕이 어디 있습니까? 바라건데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한나라가 진나라에게 굴복한다면 진나라는 계속해서 대왕에게 영토를 요구할 것입니다. 달라는 대로 계속 주다 보면 대왕의 영토는 종시에는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속담에 '차라리 닭의 부리가 될 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대왕께서 진나라는 섬기시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소의 꼬리가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언변으로 한나라 역시 합종에 참여시킨 소진은 위(衛)나라의 양왕(襄王)을 찾아갔다.
“ "위나라는 천하의 강국이고, 대왕은 천하의 현명한 임금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 진나라에 투항해 스스로 진나라의 속국이시라고 한다면, 이는 치욕입니다. 신하들 중에서 진나라에 복종하자는 사람들은 모두 간신이지 충신이 아닙니다. 《주서》에서 이르길 '처음에 싹을 자르지 않아 덩굴이 기다랗게 얽히는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작을 때 베지 않으면 장차 도끼를 사용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리 깊이 생각하지 않다가 나중에 큰 화가 생기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왕께서 저의 의견을 받아들이셔셔 여섯 나라가 합종해 전심전력으로 뜻을 통일하면 진나라는 결코 침입해 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조나라 왕께서 저의 어리석은 계책을 위나라에 전하고 대왕의 뜻을 받아오라고 하셨습니다. ”
위나라 왕 역시 소진의 의견에 따랐고 이어서 제나라의 선왕(宣王)을 찾아가 설득하기를
“ "제나라는 남쪽의 태산, 동쪽의 낭야, 북쪽의 발해, 서쪽의 청하 등으로 둘러 싸여진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토는 종횡으로 2천리에 달하며 수십만의 갑병들은 천하에 이름이 높습니다. 거기에 수도인 임치는 백성이 부유하며 성곽은 튼튼하며 백성들의 수는 많고 그 뜻을 높은 곳에 두며 의기양양합니다. 그리고 대왕의 어진 마음과 제나라의 강성함은 천하의 어느 나라도 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대왕께서 서쪽을 바라보며 진나라를 받들려고 하니 신은 가만히 대왕을 위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한나라와 위나라가 진나라를 두렵게 생각하는 것과 제나라가 진나라를 두려워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연나라와 위나라의 땅을 뒤로 하고 양진의 길과 항보의 험지를 지나야 하는데 이 두 곳은 10명의 군졸이 요해처를 지키면 1000명의 군졸이라도 감히 통과하지 못하는 곳입니다. 더군다 진나라가 비록 제나라 깊숙이 침입하려고 하나 한나라와 위나라가 후방을 교란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런 까닭에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진나라를 섬기자는 신하들의 계책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강국의 면모를 갖고 있는 제나라가 오히려 진나라에 신하로써 받드는 것은 오명을 남기는 일이기 때문에 대왕께서 그 점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제나라 역시 합종을 성사시킨 소진은 마지막으로 초나라 위왕(威王)을 찾아갔다.
“ "무릇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나라로 천하를 집어삼킬 야심을 품고 있습니다. 진나라는 곧 천하의 원수입니다. 연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나라의 토지를 나누어 진나라에 바치려고 하는데, 이것은 원수를 존경하고 적을 공경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대개 신하된 사람으로서 포악한 호랑이나 늑대와 같은 진나라와 교섭을 벌여 다른 나라를 침략하게 하는 사람은 자신의 국가가 갑자기 진나라의 침입을 받았을때에는 오히려 자기 나라의 재앙을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합종하게 되면 모든 나라가 초나라를 섬길 것이고, 연횡하면 초나라는 진나라를 섬겨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책략은 그 계책의등급이 확연히 다릅니다. 이 둘 중 대왕께서는 과연 어느 쪽에 서시겠습니까? ”
이에 위왕역시 소진의 의견에 따르기로 하였다.
이렇게 하여 여섯 나라는 합종을 이루고 굳게 단결하였으며 소진은 합종의 책임자가 되었고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임하였다. 조나라로 돌아간 소진에게 숙후는 무안군(武安君)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여섯 나라의 합종 이후 진나라는 감히 함곡관 밖으로 군대를 보내지 못하였으며 그런 상태는 15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소진의 성공 비결
좋습니다. 지금부터는 당시 소진이 분발하고 노력하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그는 자기 미음을 아프게 하는 여러 상황에 맞닥뜨렸습니다. 하지만 하늘을 원망하거나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거기다 그는 착실히 자아 검토를 했습니다. 그는 치욕을 참고 연일 밤을 새워 가면서 지신의 장서를 살펴보다가 강태공이 쓴『음부경(陰符經)』11과 관련된 모략(謀略)의 학설을 찾아냈습니다. 그는『음부경』의 모략을 다시 연구하기 시작하여 자세하게 그 핵심을 골라냈습니다. 밤중까지 읽다가 졸리면 송곳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찔러 스스로를 일깨웠습니다. 옛사람들이 청년에게 학문을 하라고 권면하는 명언 가운데 이른바 “머리카락을 대들보에 묶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 르다〔頭懸樑, 錐刺股〕”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중에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는 전고(典故)가 바로 소진에게서 나왰습니다. 다행히 강인한 신체를 지니고 있었던 소진은 스스로를 학대하는 그러한 각고의 분투를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송곳에 찔린 허벅지에는 늘 피가 흘러 내렸지만 그는 참아냈습니다. 만약 신체가 건강하지 못했다면 일찌감치 그만뒀을 것입니다.
*음부경: 도가 사상을 수용한 병법서이다. 원래 병가에 속하는『주서음부(周書陰符)』와 도가에 속하는 『황제음부(黃帝陰符屬)』의 두 종류가 있었는데, 현재는『도장(道藏)』27권에 후자만이 전한다. 황제(黃帝)가 저술했다고 하는데, 북위 시대의 도사 구겸지(寇謙之)가 명산에 감추어 둔 당나라의 이전(李筌)이 승산의 석실에서 발견하여 후세에 전했다고 한다. 음양 이론과 생사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맹자와 양혜왕 孟子旁通, 남회근저, 부키 출판사, 설순남 옮김, 57 페이지
고시 수험생 수기등을 보면 칼날을 갈아놓고 졸지 않기 위해 책상에 세워두고 경계를 하거나 잠을 쫒기 위해 정말 송곳등 뾰족한 도구로 사용해 학업에 대한 결심이 흐트러지지 않기도 했다. 혈서를 쓰기 위해서 면도날로 피를 빼낸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소진은 노력을 해서 한번 왕에게 쫓겨났다가 다시 6나라의 재상이 되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송곳으로 자주 찌르다보면 상처가 나고 흉터도 생길수 있다. 지방흡입수술을 보면 가는 관을 넣어서 빼내는데 동글게 찔린듯한 모양이 존재한다. 이런 여러가지 찔리거나 베인 상처로 생긴 흉터를 치료하는 한의원이 있다. 02-8432-0075 www.jahyangmi.co.kr 강남역 8번출구에 있는 자향미 한의원에서는 한방 피부과 전문의 홍성민 원장이 2017년 4월 4일부터 흉터침, 침, 한약 재생약침등으로 치료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