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일 월요일

어린아이와 같아지기 오세암 화상 흉터 치료

어린아이와 같아지기 화상 흉터 치료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종교개혁자 장 칼뱅은 단순성이라고 했다. 어린이는 단순하며 몸이 부드럽고 오래갈 수 있다고 노자가 말했다. 또한 어린아이는 하루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




오세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백담사에서 약 6㎞ 떨어진 곳에 있으며, 영시암을 지나 마등령으로 가는 길에 있다. 647년(신라 선덕여왕 13) 자장(慈藏:590~658)이 이 곳에 선실(禪室)을 지은 뒤, 관세음보살이 언제나 함께 있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관음암(觀音庵)이라고 하였다. 1445년(조선 세조 1)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이 곳에서 출가하였고, 1548년(명종 3) 보우(普雨)가 이 곳에서 기도하다가 문정왕후에 의해 선종판사로 발탁되었다. 1643년(인조 21) 설정(雪淨)이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름을 바꾼 데 따른 전설이 전하고 있다.





설정이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암자에서 키웠는데, 어느 날 월동 준비를 하기 위해 혼자 양양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 동안 혼자 있을 4세된 어린 조카를 위하여 며칠 동안 먹을 밥을 지어놓고, 조카에게 밥을 먹고 난 뒤 법당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에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면 잘 보살펴줄 거라고 일러주고 암자를 떠났다. 그러나 설정은 밤새 내린 폭설로 이듬해 눈이 녹을 때까지 암자로 갈 수 없게 되었다. 눈이 녹자마자 암자로 달려간 설정은 법당에서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 조카를 보게 되었다. 어찌된 연유인지 까닭을 물으니 조카는 관세음보살이 때마다 찾아와 밥도 주고 재워 주고 같이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그때 흰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관음봉에서 내려와 조카의 머리를 만지며 성불(成佛)의 기별을 주고는 새로 변하여 날아갔다. 이에 감동한 설정은 어린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암자를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물론 이 내용은 전설이라 사실은 아니겠지만 이와 같은 어린이의 마음처럼 간절한 믿음을 가져야 병이 낫는다. 노인은 지혜롭기는 하지만 의심이 많기 때문에 질병이 잘 낫지 않는다. 또한 어린아이의 몸은 완전무결하여 흠이 없다. 즉 태어날 때 완벽한 몸을 가지므로 몸에 흉터가 없다. 하지만 그만큼 호기심이 많고 마음가는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어린시기에 아궁이를 들어가거나 뜨거운 물에 데이는 흉터가 많다. 그래서 어릴때 가진 상처를 어른이 되어서까지 지니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지한의원의 흉터 치료로 어릴때 태어난 상태 대로 돌아가게 하는 화상흉터 치료 프로그램이 있다. 물론 완벽하게 복구가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까지는 치료가 된다. 또한 10회가 기본이나 시술을 10회이상 더 연장할수록 더 치료효과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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