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일 월요일

환자를 대하는 의사[필자]의 이중적인 태도

환자를 대하는 의사[필자]의 이중적인 태도





사암침법에 등장하는 樂浪老父 施針歌(낙랑노부 시침가)란 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대귀빈자극경(對貴賓者極敬), 박맹수자무사(搏猛獸者無私). 즉 환자는 귀빈을 대접하듯이 지극히 공경하고, 병치료는 맹수 때려잡듯 사사로운 감정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즉 환자에게는 친절해야 하기도 하지만 엄준한 스승처럼 냉엄하게 대할 필요도 있다는 말이다.





<논어>제11편 선진(先進)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子路問聞斯行諸잇가 子曰有父兄이 在하니 如之何其聞斯行之리오 (자로문문사행저잇가 자왈 유부형이 재하니 여지하기문사행지리오?





冉有問聞斯行諸잇가 子曰聞斯行之니라 (염유문문사행저잇가 자왈 문사행지니라)





公西華曰由也問聞斯行諸어늘 子曰有父兄在라하시고(공서화왈 유야 문야문사행저어늘 자왈 유부형재라 하시고) 求也問聞斯行諸어늘 子曰聞斯行之라하시니 赤也惑하여 敢問하노이다 (구야문문사행저어늘 자왈문사행지라 하시니 적야혹하여 감문하노이다.)





子曰求也는 退故로 進之하고 由也는 兼人故로 退之호라. (자왈 구야는 퇴고로진지하고 유야는 겸인고로 퇴지호라.)





자로[由] 었다. “의를 들으면 바로 행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형이 계시는데 어찌 들었다고 바로 행할 수 있겠는가.”




염유[求] 었다. “의를 들으면 바로 행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들으면 바로 행해야 한다.” 공서화가 말하였다. “由[자로]가 들으면 바로 행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부형이 계시다.’고 하시고, 求[염유]가 ‘들으면 바로 행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들으면 바로 행해야 한다.’고 하시니, 저는 의혹이 생겨 감히 묻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求[염유]는 자꾸 뒤로 물러서기 때문에 나아가게 한 것이고, 由[자로]는 실천에는 남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한발 물러서게 한 것이다.”




필자는 논어중에서 이 말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여기에 교육의 원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예전의 고전을 즐겨 읽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즉 교육은 평준화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장점을 알고 단점을 교정하는 데에 있다. 즉 태과한 사람은 좀 깍고 모자란 불급의 사람은 채워주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필자는 튼살이나 화상과 사고나 수술 흉터 때문에 환자가 많이 방문한다. 필자가 중시하는 것은 몇 퍼센트가 되어야 만족해 하느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필자 치료는 대다수가 미용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완벽한 치료는 없다. 예를 들어서 성형외과 의사가 쌍꺼풀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냈을지라도 환자는 만족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퍼센티지를 보고 시술을 결정한다. 즉 실천가인 나서기 좋아하는 자로처럼 너무 만족 기대심리가 높으면 시술을 유보한다. 왜냐하면 장밋빛 환상을 가지고 치료를 하면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크기 때문이다. 또 너무 지나치게 의기소침하고 치료효과에 대해서 기대치가 떨어진 사람은 바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즉 튼살이 치료가 안된다는 사실을 설득하려고 온 힘을 기울인다.





튼살은 난치성이나 치료효과가 분명히 있는 치료가 되는 질병이다. 너무 지나친 실망이나 기대 모두 좋지 않다. 특히 과유불급이란 말처럼 치료 효과의 지나친 예상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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