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심학수필
한의학 하면 아직도 무언가 신비한 것처럼 거리감을 느끼시는 독자가 많을 겁니다.
사상뿐이 아니죠, 한의학도 아직은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이즈음은 한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한약을 취급하는 일이 가능하니 그냥 들른 곳에서 간이 나빠서 그렇다는 소리를 듣고 불안해서 간 기능 검사를 받아 정상으로 나와도 무언가 찜찜한 것을 흔히 경험하셨을 것으로 봅니다. 이런 현상이 약물의 남용을 조장하고 환자의 육체적 건강을 도와준다는 구실로 정신적으로는 환자를 만드는 것이 현실인 것을 느낍니다. 또한 의사에 따라서는 임상에서 진료만 하다 보면 최신 정보나 치료법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연구를 계속하고 새로운 치료법에 밝은 의사는 대부분이 큰 병원에 근무하기에 진료를 받기 위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게 되죠. 동네의원과 종합병원은 책임영역이 다르기도 하지만 평소에 진찰 기록이 있는 경우와 처음 보는 경우가 다르기에 기본적으로 하는 검사의 정도가 많이 다릅니다. 노력 끝에 고명한 분을 만나도 당신의 질환이 그 의사의 전문 분야가 아닌 경우라면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의 건강을 맡기고 안심할 수 있는 의사는 자주보고 잘 아는 의사라는 당연한 소리밖에는 드릴 수가 없는 것이죠. 이러다 보니 스스로 건강을 돌보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과 비교라는 방법보다는 평소에 상태와 지금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 엉뚱한 건강 보조 식품이나 자연 요법으로 건강을 해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기에 오히려 병이 없이도 불안해야 한다면 최소한의 한의학 용어를 이해하시는 것도 건강에 유익한 일이겠죠. 우리가 먹는 모든 것과 활동하는 모든 환경은 건강에 밀접하지만 그 모든 것을 그 분야의 전문인에게 조언을 구해서 먹거나 활동할 수는 없기에 최소한의 기준은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현대 의학과 한의학의 기본 이론은 같지만 실제 투여되는 약의 투여 목표는 다릅니다.
현대 의학은 자연과학의 발달과 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을 제거하거나 죽이는 것을 의학의 주목표로 삼아왔죠. 따라서 원인 규명이 치료의 필수 단계이고 원인이 규명된 질환의 치료는 잘됩니다. 문제는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거나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질병의 경우는 對症 요법에 의존한다는 부분이죠. 對症 요법이라는 것은 열이 나면 열이 덜 나는 약, 기침이 나면 기침을 덜하는 약으로 우선 조절을 하는 방식으로 진통제 호르몬제 항생제 등을 막연히 지속적으로 투여하게 됩니다. 인체가 자연히 이겨낼 때까지 하지만 반복되는 투약이 오히려 인체의 회복 기능을 방해해서 병이 오래가는 경우가 있어서 어느 정도의 약물을 투여해야 하는 가하는 문제가 남는데 우리나라는 분명히 약물 남용 국가입니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거나 치료약이 없는 질환은 아직도 절반이 넘는 상황이죠. 물론 당뇨병이나 고혈압등 비교적 예후가 잘 밝혀진 질병의 경우라면 지속적으로 투약을 하는 것이 안전한 것은 상식입니다. 하지만 감기, 류마치스 관절염, 바이러스성 질환, 알러지 질환, 신경성 질환, 기능성 질환 등은 원인 제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환자마다 예후가 다른 편이죠. 이중 바이러스 종류는 예방 접종으로 전파를 막아서 균을 퇴치하려는 노력이 지속되어 왔고 천연두가 없어진 것도 이런 노력의 결실이죠. 이미 걸린 바이러스 질환의 경우도 입원을 해서 對症적으로 조절을 하면 관리가 용이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질환을 입원을 한다면 병원은 아무리 많아져도 어려울 겁니다. 정리해 보면 현대 의학은 인간의 생명력은 당연시하고 생존력에 영향을 주는 질병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여 온 것이죠. 생명력이라면 어린아이가 가장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에서 손상을 회복하거나 성장하며 살아 있을 시간이 긴 것이 생명력이 긴 것이니까. 생존력이라면 건장한 중년이 가장 강 할 수 있습니다. 평생에서 가장 외부의 환경에 싸워서 이기기 쉬운 상태죠. 한의학은 생존력을 당연시하고 생명력에 도움을 주는 對證요법으로 경험을 축적하여 온 분야입니다. 그 방법이 현대 의학의 새로운 분야인 면역학이나 유전 공학은 아니지만 음양오행 등의 인식 체계로 건강한 상태로의 조절을 지향하죠. 한의학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병의 원인이나 치료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의 관점과 하나의 조절 방법이 있는 것이죠. 인체의 외적인 영향이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병을 일으키면 六氣라는 풍․한․서․습․조․화에서 하나로 원인이 귀속됩니다. 같은 환경에서 개체만 병이 나면 인체 내부의 五藏인 간․심․비․폐․신에서 하나로 원인이 귀속됩니다. 기능적 원인은 六府인 담․소장․위․대장․방광에서 하나로 원인이 귀속되죠. 어떻게 다양한 인체의 질병이 그리 단순한 象徵으로 대신될 수 있는 가하신다면 위의 경우만 하여도 180가지나 되고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四象醫學을 도입하면 64가지의 경우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한의사가 평생을 공부해도 시간이 부족한 분야인 것입니다.
이런 상징을 통한 치료 체계의 원리를 쉽게 설명한다면 조절하기 위하여 나누는 것입니다. 한의학에서 건강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無極은 인간이 자신의 힘만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역 적인 상태라면 병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굳어져 자신의 힘만으로 변화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그 치우침과 굳어짐을 음양․오행․육기로 관찰하여 침과 약물로 조화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간이 나쁘다 중풍이다 하는 것이 현대 의학의 간염이나 뇌출혈은 아닌 것이며 부분적으로는 혼용되고 있는 겁니다. 간 검사 수치가 얼마고 항체가 있다 없다 와 한의학의 간은 같은 이야기가 아닌 것이죠. 인체 내의 병은 장으로 보면 1/5이 간입니다. 외인적 질병은 1/6이 풍이죠. 물론 인체를 전체적으로 보아서 현재의 치우침을 분석할 수 있는 진단과 그에 따른 한약의 투여는 인체의 자연 치유력을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이 분명한 질병을 원인 제거 방법이 간편하게 있어도 한약으로 인체가 원인을 제거하기까지 투약하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렇게 설명을 한다고 이것이 현대 의학의 한의학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 정도 이해를 하는 것이 의료인 아닌 일반인이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기에는 충분한 정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같은 감기라 해도 충분하게 건강한 아이가 걸려서 처음 2-3일 정도는 기침약 해열약 하는 對症요법으로 자연히 이길 확률이 높지만 1-2주를 경과해서 가래가 많아지고 혼탁해진 도시 공기와 오염된 식품으로 섭생을 하다 보면 오히려 기관지가 상해서 1-2달이 되어도 치료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한의학은 기침은 심하지만 않게 하고 가래를 삭이고 기관지에 새살이 나는 것을 도와주는 처방 구성으로 쉽게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이죠.
이처럼 용어의 혼용이 환자의 치료 방법 선택에 혼선을 주는 가운데 四象醫學이라는 체질 의학이 충분한 원리의 설명 없이 시중에 유행을 하고, 아직 일반인이 상식적으로 수긍할 만한 설명은 없이 신비한 의학으로 혼동을 가중시킨다는 판단에서 전문인으로 최대한의 설명으로 환자가 치료법을 선택할 적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벗에게 드리는 긴 편지.
벗에게 나는 아무래도 글을 써야만 할 것 같아.
그 동안은 한방 정신과학의 지평을 넓히려는 마음에서 東武 이제마 선생의 體質醫學書인 수세보원을 서양 철학에 익숙한 후배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분석 심리학' '노장' '유교 철학'을 인용해서 설명하는 글을 써 왔지. 새로 쓰기도 하고 보충하기도 하다 보니 이제는 제법 두툼해져서 강단에서 강의할 적에 큰 도움을 받고 있어.
그간의 자료 중에 사상학회 지에 실린 글이 한의 신문에 실리고 다시 보충한 자료들은 한의사 협회 컴퓨터 통신망에 공개를 하여 놓았지. 예상 못한 문제는 아니지만 비슷한 맥락의 글들이 대중을 대상으로 출판되더군. 하지만 내가 이해한 바와는 다르게들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마음에 싫더군. 생존해 있는 인물을 직접 진찰한 것도 아니면서 태양인이다 태음인이다 이건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이 四象과 전혀 상관이 없는 팔 체질에서 이야기하는 '먹어라 말아라' 하는 금기 표시가 수십 가지 쓰여진 쪽지를 들고 온 환자가 있었어. 표에 보니 '소양인'하고 동그라미가 쳐져 있더군. 나는 아무리 다시 진찰을 하여도 태음인이었어. 동그라미를 쳐준 사람도 한의사 나도 한의사 환자야 당연히 혼란스러워 하더군. 그 뿐이 아니지 태음인은 음흉하다 소음인은 옹졸하다 소양인은 경박하다 태양인은 천재다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동료 한의사가 쓴 책에 그리 쓰여있다고 하더군. 내가 아는 四象하고는 너무나 달랐어. 고민을 했지 그간 작업한 것만으로도 너무 쉬워져서 사람들이 장난을 하도록 도운 꼴이 아닌가. 어설프게 쉽게만 쓰다가 조금만 공부해서 체질을 알 수 있게 되면 가뜩이나 약사들이 한약을 다루는 현실에서 동의보감도 모자라서 수세보원까지 끌어다 장난을 하면 어쩌나.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이 이번에는 정신문화 연구원에서 나온 논문이 내 논문을 거의 그대로 표절했다고 한 선배가 전화를 주시더군. 표절 항의를 하라는 친구도 있고 그간의 글을 출판하라는 출판사의 전화도 받았지. 내가 원하는 출판사는 연구해 보겠다며 출판을 거절하더군. 글이 재미가 없다나? 하긴 정신과학을 전공하고 한의학에 조예가 있는 독자층이 얼마나 되겠어. 그리고 마음을 정했어. 일반 국민이 모두 이해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쉽고 바르게 알리면 四象을 바로 행하는 사람과 장난을 하는 사람은 분명히 구분되겠지. 적어도 내가 배운 한의학은 체질만을 안다고 바르게 행할 수는 없는 거니까. 누군가 수세보원으로 장난을 한다면 그것은 100여년 밖에 안 된 글을 이 시대의 사람이라면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지 못한 전문가의 잘못이 가장 크다.
당연한 것을 너무 대단한 것처럼 이야기했나? 글재주가 모자라서 그런 것은 아는데 그렇다고 글재주 좋은 작가가 대신 써 줄 행운만 기다릴 수도 없어서 용기를 낸 것이니 다소 재미가 없더라도 읽어 주면 고맙겠네.
이 글은 하나 뿐인 당신과 대화하는 기회이기에 우리의 만남에 감사드립니다.
1. 착한 사람이 상처만 받는 것을 보면서도 善하게만 살아야 되는 것인지.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 나는 착하니까 복 받을 꺼야. 어쩌면 나도 이런 마음이 있을 지도 모르지.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면 이상한 것이 착한 사람이 상처도 더 받고 오히려 불행한 경우가 많아.
가끔 들르던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외모는 곱살한 삼십대 초반이고 그리 궁핍해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어. 이 사람은 주로 타박상으로 침을 맞으러 오곤 하는 사람이었지. 타박상인데 심리상태는 억울해서 화병이 난 것처럼 보여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침 맞아서 다친 곳이 덜해지면 안 오곤 하니 확인할 길은 없었어. 그러기를 한 일년 되었나? 이번에는 타박상이 아니었고 가슴이 답답하고 새벽이면 숨을 못 쉬어서 죽을 것 같다는 거야. 그런데 오히려 표정은 무감동하고 멍한 것이 화난 심리상태가 아니더군. 조심스럽게 물었지 그간 자주 다친 것은 왜 그랬던 겁니까 하고. 그제야 이야기가 남편이 장난처럼 툭 치거나 실수처럼 콱 밟는데 다치더라는 거야. 그러면서 그간 다쳤던 때의 정황과 당시의 속상함을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자세히 이야기를 하더군. 나는 열심히 듣는 듯이 앉아서 속으로 이 아주머니는 태음인이군 하며 말이 잠시 멈추기를 기다렸지. 남자가 억세니까 그런가 싶어서 화는 났지만 참았다 하면서 잠시 쉬더군. 오늘은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다시 물었지. 그제야 하는 말이 이제 확실해 졌는데 아저씨가 바람이 났다는 거야. 그간은 설마 하면서 지냈는데 자기 입으로 말했다 하더군. 아픈 증세하고 말이 앞뒤가 맞았어. 태음인은 억울한 것을 꾹꾹 참고 있다가 욱하고 화를 내면서도 마음은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하거든. 그마저 기대가 없어지면 멍하니 무표정해지지.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하고 물었지. 아이들 생각해서 이혼은 절대 안된다고 했다 하더군.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서로 미워하는 부모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것은 그러내요 아주머니가 아직 아저씨를 좋아한다면 몰라도 속으로는 이 아주머니가 자식을 핑계로 우선은 현실은 인정하려 않는구나 했지. 화병인 것 같은데 우선 약을 써 봅시다. 말은 그렇게 하고 과호흡증후를 조절하는 방향으로 약을 지어 줬지. 이런 경우에 숨이 막히는 것은 답답하다는 마음이 호흡을 너무 많이 하게 해서 핏속에 산소가 지나쳐서 오는 것이 거든. 과호흡증후 같은 것은 의학 용어니 그렇다 해도 이야기하다 말고 불쑥 태음인 하는데 자주 들어본 소리이긴 한데 그게 뭐냐 싶겠지. 우선은 이 아주머니 이야기를 다하고 이야기하세. 달포가 지나서 다시 들렀더군. 먼저 약은 어땠어요 하니 많이 좋아지기는 했는데 요사이는 자꾸 늘어지기만 하고 의욕이 없다 하더군. 아저씨는 어때요 지나가는 말로 안부를 물었지 갈라섰어요 하더군. 잘 하셨어요 하고 아이들은 누구랑 있냐고 물었더니 아주머니가 데리고 있다 하더군. 내친 김에 좀 더 물었지. 그럼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그제야 나오는 이야기가 이혼해 달라며 가구를 부시고 욕설을 하는 것을 몇 번이고 참다가 참다가 이혼을 하는데 더러워서 위자료고 뭐고 다 그만 두고 갈라섰다 하더군. 참 착하지. 어째 갈라섰다는 것이 믿어지지를 않더군. 그럼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하니 우선은 가진 돈이 좀 있고 나머지는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더군. 나중에라도 아저씨가 용서를 구하시면 합치실 건가 물었더니 펄쩍 뛰면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나?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이 그만해야지 싶더군. 그래서 혹시라도 아저씨가 용서를 구하면 말이 바뀐 것 말고 행동이 바뀐 것이 확실하거든 합치라고 했지. 태음인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 마음이 풀릴 때까지 무척 힘들어하거든. 그러다 보니 잘못한 사람이 말로만 사과해도 다 용서를 해주지. 행동이야 금시 안 바뀌니 같은 실수할 수도 있겠지만 깊이 반성을 하는 것하고 말로만 미안하다 하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넘어가 주는 습관이 있어. 그래서 다짐은 해 놨지만 글쎄 염려가 되는 거야 믿어지지 않아서 아닐까. 그리고 몇 달이 흘렀는데 다시 들렀더군. 진찰을 해보니 처음 보던 때처럼 화병이더군. 아저씨는 어떻게 지내세요 하니 다시 합쳤어요 하더군. 그리고 하는 말이 '나도 이제는 독하게 살거에요, 착한 것이 이가 갈려요.'였어. 착한 것 이가 갈리겠지 싶으면서도 공감할 수는 없었어. 아주머니 스스로가 착하게 살려고 애를 많이 쓰셨으니 착한 것이 잘못은 아니거든. 생활 대책도 없이 이혼을 하고 아이들은 다 맡았으니 막막했겠지. 정말 아이들 때문에 억울하지만 다시 합친 것이겠다 싶었어. 한편으로는 매일 매일 남편을 볼 적마다 상처가 생생하게 살아날텐데 저 인생을 어쩌나 싶더군. 태음인은 비슷한 말투만으로도 지나간 상처가 생생하게 기억나거든. 심지어 그때와 똑 같이 아프기까지 하지. 또 태음인 했군 미안하네. 체질 이야기를 먼저 하지 그러고 싶겠지만 그 이야기는 조금만 있다 하세. 지금 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체질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이해가 안 갈 것 같아서 그러니까. 원래 善이라는 것은 착하다는 것은 아니었어. 적절하다 잘한다 이런 거지. 무슨 이야기 인가하면 성경이고 논어고 농사짓는 비유를 많이 하셨지. 벼농사를 지을 적에 물이 필요하면 적절히 물을 주고, 김을 매 줘야 하면 적절히 김을 매주고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이 거든. 中庸, 내가 알기로는 아마 이런 뜻일 꺼야. 나야 좋은 뜻으로 행해도 지나치면 벼가 물에 잠기고 모자라면 마르는 것이 악이지. 악이라고 독하거나 나쁜 것만은 아니거든. 모진 것이 악이라면 악이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善하라 하신 것을 착해져라 하신 것으로 생각해서 자신을 옭아매게 되었나봐. 지나치게 착한 것은 헤픈 것이고 무시당하기 마련이지. 善은 아니라는 것을 잊었다고 할까. 아주머니가 착하게 살려고 참기만 한 것이나 이제 새삼 독하게 살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도 공감은 가지만 좋은 해결은 아닌 것 같더군. 이 아주머니뿐이 아니지. 중년 주부들이 화병으로 병원에 들르는 경우가 거의 비슷하거든. 요사이야 맞벌이 부부가 늘기는 했어도 여전히 대부분의 주부들이 전업 주부이지. 중년 부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전업 주부로 살아온 분들이고 전업 주부들은 특징적인 환경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책임이 크다는 거야. 생각해 보게. 어린아이들은 잠시라도 눈을 떼면 다치기 일수이고 매일 새끼의 식사는 가족이 맛있게 먹으려면 손이 많이 가거든. 청소는 몇 번을 해도 지저분하기 쉽고 빨래도 금새금새 쌓이지. 이런 과도한 책임을 매일 매일 하다 보면 적절히 하자는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길 틈이 없거든. 그러다 보니 자신이 직접 희망하는 일을 차곡차곡 실천할 여가가 없어지게 되지. 자연히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 남편이 출세를 하는 것으로 보람을 삼으면서 지내게 되지. 여기서 보람을 못 느끼고 참지 못하는 사람 또는 여건이 되는 사람이라 하여도 자신의 희망을 직접 성취하려 나서는 것이 원래 사회 참여인데 아직은 경제적 이유로 맞벌이를 나서는 주부가 더 많다 하더군. 자기의 성취가 목표가 아니고 경제적 이유로 아니면 우선 답답하니까 바깥일을 하는 주부는 전업 주부의 마음과 차이가 거의 없지. 오히려 몇 배로 힘든 생활을 하는 차이가 있다면 몰라도 슈퍼 우먼이지. 엄마 부인 직장인 몇 배의 역할을 다 잘해야 하는. 이렇게 지내다 보면 아이들은 점점 크고 남편도 차츰 바빠지게 되지. 각자가 바쁘니까 주부에게는 인색해 질 수도 있어. 자신의 보람인 잘 나가는 남편에게 뭐라도 물어 보면 '몰라도 돼'하거든. 자신의 희망인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몇 마디 하면 '제가 알아서 하게 그냥 둬 주세요'하는 볼멘 소리나 듣지. 공부를 잘하는 것 사실은 아이들의 희망이고 자신들이 성취한 거니까. 남편이 직장일 이야기해 준다고 새삼 해결되는 것은 없으니 이야기해야 속만 상하지. 이런 마음으로 퉁명스럽게 대꾸할 수도 있겠지. 자신의 희망을 대신한다고 생각을 한들 자신이 하지 않는 일이 진정한 성취가 되지는 않는 거지. 책임감은 아이가 자랄수록 남편이 성공할수록 커지기 마련이고. 이루어 놓은 일은 제법 되고 해야 할 책임은 더 커지지. 하지만 내가 직접 할 것은 맨날 그 일이 그 일이니 마음이 답답하지. 무시당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뭘까 하면서 초조해 하겠지. 그러다 보니 마음이 급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거든. 그렇다고 화내는 것도 한두 번이지 적당히 체념하고 세월을 보내면 아이들은 자랄수록 품에서 멀어지고 결혼이라도 하면 젊은 부부들은 서로 위하는 것이 좀 났거든. 그런데 내 남편은 나이를 먹을 수록 고약해지고 잔소리 늘고 그러니 주부의 마음은 더욱 급해지지. 뭐라도 바꾸지 않으면 늙을 수록 더할 것 같고. 그렇다고 뭐를 당장 어떻게 바꾸겠어. 그러면 화병이 나는 거겠지. 이런 말을 한다고 내가 내 부인에게 자신의 성취를 위해서 사회 활동을 하라고 항시 허용하고 있냐고? 벗도 알다시피 운전도 못하게 하면서 지내고 있지. 사고도 무섭지만 잘못한 것도 아닌데 여자라고 욕을 먹는 경우를 볼 때마다 사는 동안 내가 운전기사 하지 싶어. 아이들이야 운전하겠다면 해야겠지 남겨 두고 가야 할 테니까. 난 어떤 일을 하는가, 안하는 가를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라네.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하는가를 말하는 것이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고 하면 막을 수 있는 병을 무언가 단정을 하고 자신을 속이고 지내면 병이 되더라는 것이지. 너그러운 체 양보할 것이 따로 있지 살아갈 희망을 양보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 아주머니는 어떻게 되었나 궁금하겠지. 가끔 볼 적마다 아픈 것은 더하다 덜하다 하지만 항시 우울해 보이더군. 스스로 구하지 않으면 병이 되기 전에는 간여할 수 없는 것이 의료 윤리라네. 인생을 대신이라도 살아줄 것 같이 구는 것은 의사의 교만이지. 나도 당연히 도와주는 사람일 뿐 이라네. 스스로 방법을 찾으려 할 적에 같이 모색하는 정도가 전부지. 그러한 모색도 환자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찾아야지 내가 아는 것을 가르치려는 듯이 서두르면 자신의 지나침을 반성하던가 정신과 공부는 그만 두는 것이 바른 길이지. 그런 이유로도 이 글을 쓰게 되었을 지 모르지 병을 막을 길은 아는데 전해 줄 방법은 너무 제약이 많거든. 체질은 앞에 이야기한 善을 추상적인 말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을 관찰할 수 있게 한다네. 체질을 알게 되면 자신의 모진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알게 되지. 행동은 잘못해 놓고 억울하다 남을 탓하지 않게 해주거든. 원만하게 생각하고 적절하게 행동하라는 가르침이 체질이라면 이해가 가나?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야 하겠군.
善을 타고난 부분을 好善의 재주라고 하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좋아서 잘하는 것이라는 뜻이지. 이 재주라는 것은 자연히 알 수 있고 다양하게 조절해서 행할 수 있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그 행동을 받을 대상이 원하는 만큼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까. 이것이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데 그것이 네 가지라고 하셨지. 이것을 설명하시면서 東武 이제마 선생은 仁義禮智를 例로 드셨지. 체질 이야기는 전부 東武선생 이야기라네. 나는 풀어서 설명할 수는 있어도 만들어 이야기하는 재주는 없다네. 무언가 변화가 일어날 적에 다른 사람 보다 먼저 그것이 이로운 일인가 해로운 일인가를 적절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태양인이지. 이것을 仁이라고 하셨어. 직관이라고 할까 이 재주를 天時라고 하셨거든. 하늘의 때를 안다 그런 뜻인데 하늘의 징조 뿐 아니고 처음 대하는 어떤 사람이 나를 이롭게 하려는 것인지 해롭게 하려는 것인지를 잘 알 수 있는 어린아이 같은 재주랄까. 이것과 정반대의 재주는 지나간 것 자기가 경험한 것을 자세하게 기억하는 재주이지. 이것을 禮라고 하셨어. 체험이라고 할까 이 재주를 人倫이라 하셨거든. 사람의 도리를 안다 그런 뜻인데 자기가 맞을 때 아픈 것을 기억하면 남을 때리기가 어려운 것 같은 것이지. 이 仁과 禮는 한 사람이 같이 가질 수 없는 재주로 보셨어. 왜냐하면, 새로운 것을 대하면서 항시 판단이 적절한 사람은 서둘러도 판단이 틀리지를 않거든. 자연히 기억날 만하게 억울하다거나 몹시 아픈 것은 덜 경험하게 되고 익숙하다고 특별한 애정도 없게 되지. 새로운 상황에서 판단이 잘 틀리는 사람은 생각과 다른 경험을 자주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낯선 것에 겁이 많아지지. 무슨 일을 당하면 비슷하게 아팠던 기억들이 나게 된다네. 자연히 익숙한 것을 애틋해 하게 되고 새로운 것을 대할 적마다 이전 것과 비교하면서 지나간 것을 더 잘 기억하게 되거든. 이 두 가지 재주는 말이나 글로 표현하거나 사람이 같이 느낄 수는 없는 부분이지. 그래서 天時와 人倫을 사람과 자연 사이의 재주라고 한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 재주가 두 가지 더 있지.
하나는 義로 설명하신 것인데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아는 것으로 世會라고 하셨어. 세상을 모으는 것을 안다 이런 뜻이지. 이 재주를 지닌 체질이 소양인이고 이 재주는 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그 사람의 기분을 열 사람과 같이 있으면 열 사람이 공감하는 기분을 금시 아는 재주지. 이 재주는 기분이 그때그때 변하는 것을 알다 보니 오래 생각하거나 곰곰이 되돌아보거나 하지는 않지. 자연히 소양인은 어울려 다니고 놀 때에는 기운이 나는데 혼자 공부를 하거나 꾸준히 하려면 재미없어 하지. 그리고 하나를 생각하면 그게 왜 그렇게 되는 지 몹시 궁금해하고 오래 생각하는 재주를 智로 설명하셨는데 이것을 地方이라고 하셨지. 부분을 몰두하여 안다 이런 뜻이지. 이 재주를 지닌 체질이 소음인이고 이렇게 오래 생각을 하다 보면 무엇을 보던 생각을 해야 하니 순간 순간의 기분은 잘 느끼기가 어려워지는 것이지. 자연히 소음인은 혼자 연구하거나 직접 하는 것은 좋아서 하는데 더불어 이야기하거나 같이 도와서 하는 것은 재미없어 하지. 이 義는 같이 느끼는 것이고 智는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니 두 가지 모두 말이나 글로 전할 수 있는 것이거든. 생각을 정리한 것이 철학서라면, 기분을 글로 전하는 것이 소설이라고 할까, 생각하던 것을 논리적인 글을 통하여 전하고 자신의 순간 순간의 기분을 자세하게 묘사해서 공감하게 하는 부분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지 이렇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전하는 사건의 원인이 있고 그에 따른 결과가 있지. 인간간의 문제라고 할까, '태음, 태양' 과 '소양, 소음'은 이 부분에서 크게 나누어지는 거야.
이렇게 타고난 재주가 서로 다른 것이 체질이고, 체질마다 장단점이 다른 것이지. 어느 체질이 좋은 것은 아니거든. 이 이야기만 너무하면 재미도 없고 하니까 후에 다시 이야기하세. 이 이야기들이 끝날 때쯤이면 체질이라는 것을 그대도 잘 알게 될 것으로 보거든.
2. 나는 살아 있는 君子를 가끔씩 만나곤 한다네.
요즈음처럼 각박한 세상에 무슨 君子 이야기 인가하면, 나는 어려서 배우기를 사람이 다 같은 것이 아니고 小人輩 君子 賢人 聖人 이런 차등이 있다는 것을 배웠네. 그런가 하며 살았는데 군자가 있더라는 이야기지. 내가 본 君子 한 분을 이야기해 주지. 동네에서 정육점을 하시는 아저씨가 한 분 계셨네. 봉급생활을 하시다가 다쳐서 퇴직을 하셨지. 이야기가 어째 좀 그렇다 해도 들어보게나. 내가 아무리 자네에게 거짓을 말하겠는가? 동네에 그런 정육점이 있는 것도 몰랐었어. 나는 우연히 들렸다가 ‘약에 독성 줄이려 넣을 것이니 대충 주셔도 됩니다’ 하면서 돼지고기 조금을 사려했지, 잘 다듬어진 큰 덩어리에서 떼어서 주시는 것을 보고는 놀랐지, 그리고 단골이 되었어. 시간이 가면서 알게 된 것이 이 분은 항상 자기가 먹을 고기라고 생각하면서 물건을 사다가 손질을 하시는 거였어. 조금 친해져서 알았지만 자녀들이 한참 공부할 나이라 돈 벌려고 시작하신 일이라고 하더군. 쇠고기 갈비 같으면 무게를 단 후에 일일이 기름을 손봐서 주셨지. 상상이 가나? 나는 아직도 그때의 고기를 구경을 못하고 살고 있다네. 신선한 돼지고기를 잘 손을 보아 놓으면 분홍색 플라스틱 같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 항상 그런 고기만 파시니 당연히 갈수록 바빠지더군. 몇 번 도와줄 사람을 구해서 일을 조금 편하게 해보려고 하시더니 결국은 그냥 아주머니와 하시더군. 그 집은 사려는 사람을 기다리는 고기는 거의 없었지. 오히려 고기를 사려고 기다리는 사람은 많았어. 추석 같은 명절이면 대학 다니는 자녀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일을 거들었지. 나도 저분처럼 내가 하는 일을 아이들이 기꺼이 도울 수 있게만 산다면 행복하겠다 싶었어. 명절이 지나고 들르는 길에 안부를 여쭈면 제사상에 올릴 고기 마져 다 빼앗겨서 조각 고기로 제를 올렸다며 웃으시더군. 저녁에 고기를 우선 손보느라 불을 안 끄면 계속 손님이 와서 요즘은 일찍 불끄고 새벽에 나오신다며 담배를 한대 물고 계시는 모습이 오래 기억되겠지. 몇 년을 그리 지내다 어느 날 정육점을 그만 두시려 하시더군. 무척 아쉬웠지. 집안 대소사에 고기로 선물을 하던 것이 습관이 된 후니까. 그만 하려는 이유는 간단했어. 너무 바쁘고 힘이 들어서 그만하시겠다는 거야. 조금은 대충하더라도 계속하시면 어떨까 싶었어. 기어이 그 말을 하니 그렇게 손을 본 고기는 미안해서 팔 수가 없다는 거야. 그분이 그만두시고 여러 달을 고기를 안 먹었네 아니 못 먹었지. 다른 곳에서 산 고기가 영 맛이 없었거든. 마음에 자신이 하는 일의 근본을 지키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서 그 뜻을 실천하다가 기운이 다하니 타협하기보다는 물러나시는 모습이 내가 배운 君子였어. 자신의 일에 근본을 끝까지 지키면서 때가되면 이익을 버리면서 물러나는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 자네가 생각하던 君子 보다는 시시하다고 생각되는가. 조금 더 이야기를 해야겠군. 聖人이 모든 인류를 위하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신 분이라면 영웅은 인간을 상대로 자신의 편에 유리한 일을 한 것이라네. 영웅이 일을 이루면서 사람을 죽여서 사람을 구했으니 원한도 생기고 슬픔도 생기고 모두가 흠모하는 성인과는 다르지. 君子라 해도 싸워서 소인배를 이기리란 보장은 없네. 송아지 만한 개와 초등 학교 또래의 한 아이를 같은 우리에 넣었다고 생각해 볼까. 아이가 개를 이길 수도 죽일 수도 없지. 개가 이기는 것은 당연하네. 하지만 같이 여러 시간을 지낼 수록 아이가 개를 가르치고 길들이지 개가 아이를 가르치지는 못한다네. 군자는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라네. 자신이 먼저 행하여 진심으로 따르게 한다는 것이 말로 가르치는 이즈음 사람들과 조금 다르지만. 좀 따분했나? 어디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세. 다른 일로 몇 번 들렀던 여자 분이 상담을 청하더군. 아들이 자꾸 심통을 부리고 공부도 못하고 어찌해야 할는지 방법을 모르겠다는 거였지. 자신은 형편이 어려워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는데 아이는 꼭 대학을 넣었으면 싶다는 거였어. 어머니가 태음인 중학교 다닌다는 아들도 태음인 이였지. 같은 체질이니 서로 뜻이 곡해될 일은 적은데 아들이 반항이 심한가 싶더군. 이야기를 들어보니 새벽에 일어나서 도시락 싸 주고 학교 보내고 저녁에 공부하면 간식 마련해 주고 늦도록 기다렸다 같이 잠들고, 대부분 어머니가 그렇듯이 눈물겹도록 돌보시더군. 단지 당신이 다녀보지 못한 대학에 조금은 맹목적이었고 자신은 입시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어. 여건이 된다 싶어서 불쑥 아들이 대학 가기를 바라신다면 어머님이 당장 방송 통신대학을 다니시죠 했어. 태음인은 모르는 것에 겁이 많고 자신이 체험하여 보기 전에는 비슷한 것으로 대신하는 습관이 있다고 했었지. 그러니 아들이 용기를 내려면 어머니가 먼저 용기를 냈으면 싶었어. 우리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것이 싫어서 안하나 이리 해보고 저리 해봐도 마음 같지가 않아서 저도 힘드는데 옆에서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하면 심통을 부리는 거야 조금 큰 아이들은 다 그런 거지. 다행히도 어머님이 용기를 내서 공부를 시작하더군. 그리고 얼마가 지나서 이야기를 들었지. 신기하네요. 이전에는 도시락 반찬도 심심하면 타박이나 하고 밤참을 가져다가 바쳐도 심통을 부리더니, 요즈음은 제 공부가 바빠서 미안하다 싶은 정도로 대충해 주고, 밤참은 어쩌다 차 한잔 가져다주어도 고마워해요. 공부하시기 힘들겠어요, 잘하시는 겁니다 하면서 이야기를 했지. 이전 같으면 아이 학교간 사이에 친구도 만나고 사우나도 하면서 마음으로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잘사나 궁리하시면서 말로는 공부 잘해야 된다 그렇게 된 거죠. 행동하고 말이 다르면 사람은 승복하기가 어려워요. 자신을 위하는 것은 아는데 알면서도 뜻대로 안되니 아드님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아주머니 답변이 요새는 공부하라는 말도 안해요. 제가 해보니 어찌나 힘드는지, 그런데 오히려 이전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기특해요. 감사드려요. 한 일도 없이 인사를 받아도 좋더군. 보통들 말하는 총명탕도 안 주었는데. 이런 경우는 서로 체질이 같은 경우인데 다른 경우도 많거든. 체질이 서로 다른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어. 일일이 이야기하자면 너무 이야기가 길어지니까, 간략하게 이야기하지.
好善은좋아서 잘하는 재주이고 그 다음으로 다양한 재주가 惡惡이지, 오악이라고 읽는 것인데 무언가 모진 것을 대하면 그 모진 것을 피하는 싫어하는 재주라네. 여기서 모진 것은 사람을 주로 이르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모질게 굴거나 해롭게 할 때를 이르는 것이지.
태양인은 그냥 사귀어서 자신을 보호하지. 交遇라고 하는데 친해져서 피하는 것이지. 仁을 호선으로 타고난 태양인도 소양의 義를 가지고 있어 하지만 소양인의 義만큼 다양하지는 못해서 그 마음을 友라고 하셨지.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잘 판단하니까 태양인에게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 소양인은 시비를 가려서 자신을 보호하지. 事務라고 하는데 시비를 가려서 이기는 것이지. 義를 호선으로 타고난 소양인도 태양의 仁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태양인의 仁만큼 다양하지는 못해서 그 마음을 忠이라고 하셨지. 事務라는 것은 옛날 동네 재판 같은 것인데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을 잘 아는 소양인에게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 태음인은 싫으면 피해서 자신을 보호하지. 居處라고 하는데 익숙한 곳에 숨어서 피하는 것이지. 禮를 호선으로 타고난 태음인도 소음의 智를 가지고 있어 하지만 소음인의 智만큼 다양하지는 못해서 그 마음을 孝라고 하셨지. 거처라는 것은 집안에 틀어박힌다 이런 것인데 싫으면 안보고 저 익숙한 것에서 마음이 놓일 때까지 지내는 것인데 지나간 것을 잘 기억하는 태음인이 부모가 어떻게 하면 즐거워하시더라 하는 것을 기억해 내서 즐겁게 해 드리고 저도 소일하는 것이니 태음인에게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 소음인은 싫으면 편을 갈라서 자신을 보호하지. 黨與라고 하는데 자신 편의 어른의 말을 그냥 따르는 것이지. 智를 호선으로 타고난 소음인도 태음의 禮를 가지고는 있어 하지만 태음인의 禮만큼 다양하지는 못해서 그 마음을 悌라고 하셨지. 당여라는 것은 내편은 좋은 편, 저 편은 나쁜 편 해서 내편 사람이 잘못하는 것은 덮어 주어서 자신도 보호를 받는 것인데 깊이 궁리해서 좋은 사람 믿을 만한 사람 하는 어른이 시키는 데로 무조건 따르는 것이니 소음인에게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 이러한 오악은 모진 것을 피하는 것까지는 적절한 것이지 오악을 이용해서 남을 모질게 하면 그때는 내가 악이 되지. 태양인이 아무나 마구 사귀다가 오래 동안 친했던 사람들을 소홀히 하면 지나친 것이지. 소양인이 모진 일을 당한 것도 아닌데 기분이 나쁘다고 무조건 싸워서 이기는 것에 골몰해서 꾸준히 자신이 행하여야 하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지나친 것이지. 태음인이 모진 상황도 아닌데 겁이 난다고 새로운 것을 안하려고만 한다면 지나친 것이지. 소음인이 자신의 편이 아니다 하여 당여를 이용해서 남을 억압하면 지나친 것이지. 이렇게 모진 것을 피하다 보면 태양인이 사람을 새로 사귀는 것과 소음인이 자기편에 충실한것이 서로 상반되지. 태음인이 익숙한 것에 성실한 것과 소양인이 시비를 가려서 이기려는 것이 상반된다네. 태양인과 소음인은 이해가 가는데 태음인과 소양인은 이해가 잘 안 가는가? 그것은 일이라는 것이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해도 잘되면 결실을 나누어 가져야 공이 되고 잘못되면 그 일을 한 당사자가 책임이 큰 것 아닌가. 그러니 익숙하다 싶은 일이면 태음인은 내 마음처럼 우선하려고 들고 소양인은 잘못될까봐 피하기 마련이거든. 시비를 가릴 적에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지지. 누가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는 안 따지거든. 일은 많이 할 수록 잘하지만 적게 할 수록 책임 질 일이 적다네. 어떤 일을 당장 하여야 하는데 소양인은 내가 해야 하는 일 인가를 살필 적에 태음인은 덥석 하지. 그 일이 잘되면 태음인이 공을 혼자 차지하면 인색한 것이 되고 나누어주려니 도와주지 않는 소양인이 고울 리가 없거든. 그 일이 잘 못되면 일을 한 태음인 책임이 가장 크거든. 가만있던 소양인은 거봐라 하면서 큰 소리나 안치면 모를 까 같이 책임을 지려 하겠어. 이런 일이 반복되면 태음인은 속상한 것을 모두 세세히 기억하는데 소양인은 지나가면 대충 잊어 먹거든, 아주 섭섭했거나 아주 기분 좋았던 몇 가지만 기억하니까. 이리 시간이 가다가 태음인이 참다가 욱하고 지난 이야기를 조목조목 따지고 들면 소양인이야 그런 것은 그때 따지지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 그렇게 안 봤더니 음흉하게 날 싫어하면서도 아닌 척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것이 모질게 되는 것이 사람간의 일이다 하셨지. 이런 사람간의 차이가 부모 자식이라고 다르겠어? 체질이 서로 다르면 서로 이해하기가 어려워지거든. 그러다 보니 부모는 좋은 뜻으로 시키는 것이 아이에게는 억울하기도 하고 너무 어렵기도 하지. 하긴 체질이 같아도 부모의 입장과 아이의 입장은 서로 다르거든. 아이는 무엇이든지 처음 하는 것이 많고 부모는 상대적으로 많이 알고 많이 해 봤거든. 아이들의 경우에 부모와의 차이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것은 태음인 아이들이야. 소음인 아이들은 저 관심 있는 것만 파고드니까 막상 고집을 부리거나 사고를 칠적에 부모 눈치를 안보지 그러니 야단칠 기회도 적고 야단을 쳐도 어지간해서는 막무가내지. 소양인 아이들은 야단을 맞아도 금시 잊어 먹고 또 하거든 겁도 별로 없고 활달하지. 태음인 아이들은 아무리 당연해 보여도 직접 해보지 않은 것은 머뭇거리거든. 이럴 적에 부모가 스스로 용기를 내서 하도록 도와주거나 기다려주면 차츰 방법을 터득하는데 이렇게 해봐 하고 시키면 겁나는 것은 더하지만 억지로 하게 되지 결과가 좋으면 다음에 또 방법을 가르쳐 줄 때까지 기다리게 되고 결과가 나쁘면 더욱 자신을 잃고 그 일은 안하려 하지. 그렇다면 태음인 아이가 가장 나쁜 것이냐고? 아니지 서로 다른 것이라네. 신중하고 포용력 있는 사람은 쓰임이 많다네. 키우고 가르치는 방법이 다른 것이지. 체질을 떠나서 아이들이 자신이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도록 기회를 충분히 받지 못하면 여유가 없어지고 무감동해지거든. 원하는 것을 항시 받을 수 있다는 신뢰감이 있는 아이들은 필요한 만큼 가지면 되고 없으면 달라고 이야기를 한다네. 하지만 원하는 것은 못 받기 일수이고 싫은 것 겁나는 것은 빨리 하라고 강요당하며 크는 아이들은 있어도 언제 없어질 지 모르니 욕심을 부리고 필요해도 줄지 안 줄지 눈치부터 보거든. 신뢰감이 없는 아이들은 얼굴이 무표정하거나, 바싹 긴장을 해서 어른의 눈치를 살핀다네. 그러니 모두를 생각하는 정신적 여유나 좋아서 해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기가 어렵지. 아이를 키우는 것은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늘 듣고 자란 우리들이 어쩌자고 아이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처럼 피아노다 영어다 읽기 쓰기 하면서 두루 머리에 집어넣기에 급해져서 마음을 척박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인지 정말 안타까워. 아이가 먼저 하겠다고 샘을 부릴 때까지 두었다가 조금 말리는 듯이 해서 원해서 하게 해야 오래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우선은 느린 듯해도 가장 빠른 길이고.
소아 자폐증은 그리 흔하지는 않지 하지만, 맞벌이 부부가 늘어서 그런지 맞벌이 부부가 아닌데도 무표정하면서 자극에 반응을 덜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네. 마음이 바짝 긴장을 하고 텔레비전을 많이 봐서인지 말은 나보다도 더 잘하지. 하지만 무한한 꿈을 가진 여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은 점점 드물어지더군. 좋아서 잘하고 모진 것을 피하는 마음은 聖人과 우리가 같다고 하셨는데, 우리의 내일의 희망인 聖人의 마음이 어린아이에게도 줄어드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네.
호선은 대동의 마음을 실천할 수 있거든. 오악은 사람간에 설 수 있게 한다네. 그것이 자랄 여유가 없이 모방만 배운다면 우리 몸이 마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손가락 발가락이 제각각 유리한 것을 따라 갈 터이니 무섭지 않은가. 나는 俗言에서 배울 것이 많더군. ‘없는 집에서 효부 난다‘ ’전쟁이 영웅을 만든다‘ ’사귀어 봐서 나쁜 사람은 없다‘ ’어른이 시키면 공손히 따라라‘. 忠孝友悌는 모진 상황에서 적절히 하는 것이라네. 평소에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仁義禮智이지.
3.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 있다네.
나도 공부한 기간이 거반 30년은 되니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겠지. 하지만 이 방법은 나 보다 훨씬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네. 체질에 따라 가장 적절한 공부 법이라고 할까. 우선은 한 여고생 이야기부터 하지. 예쁘장한 여고 2학년 아이가 언니와 같이 왔더군. 이상한 소리가 자신을 욕하기도 하고 무엇을 알려주기도 하는데 신기하게 맞더라는 것이 주증상 이었어. 그런 증상이 5개월 정도 되었는데 요사이는 부쩍 심해서 친구들을 모아 놓고 점쳐 주는 것도 가끔 한다 하더군. 아버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일 때문에 바쁘셔서 보호자로 왔다는 언니는 충분히 신뢰가 가는 사람이었어. 갑자기 무슨 신뢰인가 하면, 아직은 분열이다 할 수는 없지만 精神分裂樣장애의 증세이니 환자와 나만의 힘으로는 치료하기가 힘들거든. 옆에서 돌봐 줄 보호자가 중요하지. 그런 보호자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안정되어 있는가는 무척 중요한 치료 환경이 되거든. 조금 더 이야기를 하여보니 머리는 좋은 편이고 노력도 하려고는 하는데 그 이상한 소리가 방해를 한다는 것이었지. 정신 분열은 아직은 아닌 것이 기간이 그 정도는 아니고 대화도 용이하고 학교도 가려고는 하니까. 중요한 것은 왜가 아니고 어떻게 할 것인가인 경우가 더 많지. 이 경우 나야 직업이 그러니까 ‘공부 못하는 것에 핑계를 찾는구나‘ 금새 알지. 하지만 그렇다고 ’공부나 해’ 이런 다면 의사가 아니지. 환자가 수긍하고 이해하도록 해서 이겨내도록 도와 줘야 하거든. 그 아이는 진심으로 그 이상한 소리를 무서워하면서도 매력을 느끼고 있으니까. 우선은 환청 이야기는 관심이 없는 듯이 공부라는 것에 대해서만 덤덤하게 이야기를 했지. 지금하고 있는 학교 공부라는 것이 머리로 하거나 생각을 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순전히 엉덩이로 하는 것인데 많이 하면 더 아는 것이다. 머리는 나중에 박사논문 쓸 때나 한번 쓰는 거고, 지금은 남들이 다 밝혀 놓은 것을 여러 번 보면 조금 더 아는 것이다. 무조건 긴 시간만 한다고 많이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8시간 정도거든. 그런데 왜 엉덩이로 공부를 한다고 하는 가하면 앉아 있는 것이 습관이 되고 편안해야 집중이 잘되는데 머리나 마음은 금시 작정이 되지만 몸은 매일 노력해서 백일쯤 되어야 습관이 바뀌어서 편안하거든.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이전부터 습관이 되어 있고 일년 중에 적어도 삼백일 정도는 하루에 몇 시간 씩 집중해서 공부한 친구들이지. 공부 안하던 친구는 공부를 하려고 시작해서 익숙할 만하면 여름이니 더운 여름에 공부가 잘되는 사람은 없지. 그래도 앉아 있는 습관을 지키면서 지낸 친구는 늦여름에 찬바람만 나도 금시 효과를 보는데, 덥다고 돌아다닌 친구는 다시 시작하려면 초겨울은 되어야 습관이 바뀌니 다시 방학이거든. 사람이 부지런해지는 것은 어려워도 게을러지기는 쉽거든. 시험이라는 것이야 누가 더 많이 아는 가를 묻는 거지, 가르치는 선생님도 다 알지는 못하시거든. 누가 더 아는가를 알려면 보통은 다들 아는 것이 많이 나오고 그 만큼을 더 알아야 하는 것 나오고 이런 것을 난이도라고 하자나. 그러니까 다른 친구가 아는 것을 내가 아는가 모르는가가 문제가 아니고 기본적인 것을 다 아는가, 그리고 무엇을 더 아는가하는 꾸준한 노력을 계속해서 오래 한 사람이 잘하는 것이지. 이런 노력을 할 적에 나는 공부 잘해서 대학 나오고 잘먹고 잘살 거야 이런 생각은 꾸준한 노력이 어려워. 원래 잘하던 친구들이야 나는 잘해 하는 자존심으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할 수도 있지만 습관을 바꾸려면 더 힘들어. 당장 못하는데 '나는 원래 잘해'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 그래서 물었지. 대학가면 무엇을 공부하고 싶어요 하니 어학이나 문학이라 하더군. 문학을 해서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도록 좋은 글을 써야지 하는 정도는 뜻이 있어야 성적이 조금 올라도 교만해져서 게을러지지 않고 조금 성적이 나빠도 포기하지도 않고 계속 공부할 수 있다. 좋은 글이야 대학을 안 나와도 쓸 수 있다고 할 지 모르지만 특별한 재능으로 글을 잘 쓰는 사람보다는 학문을 통해서 가르치는 것을 알고 글을 자꾸 써서 잘 쓰는 사람의 글이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제부터 부지런히 공부하는 수 밖에 없고 매일 8시간 정도를 일년 중에 며칠을 했는가 하는 것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렇게 당연한 소리를 일주일에 한번 정도 그때 그때 공감이 가도록 일러주면서 증상에 맞추어서 투약을 하다 보니 환청은 점점 힘이 약해져서 무섭거나 신기하기보다는 귀찮은 증상이 되었고 차츰 시간이 갈 수록 약해져서 한참을 지나도 들리지 않게 되었어. 이 학생 뿐 아니고 사람은 무엇인가를 원할 적에 원하는 것은 많고, 당장 무엇을 자신이 몸으로 꾸준하게 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 혼란스러워지면 마음이 급해지고 갈등이 생기지. 할 수 있는 것과 되고 싶은 것의 차이가 크면 클 수록 갈등이 커져서 무언가 적당한 이유를 찾아서 자신의 갈등을 안정시키려는 자기 보호 본능이 있는 것이거든. 이럴 때에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부터 지금 실천할 것까지를 차분하게 정리하는 것이 서둘러 우왕좌왕하는 것 보다 빠른 것이 당연한 것이니 어른의 역할이지 의사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요즈음은 그냥 '공부'라고 하지만 學習은 '머리로 배우면 學, 몸으로 익히면 習'이거든. 자신이 마음으로 수긍을 해서 방법을 깨닫는 것이 學의 목표이고, 그것을 실천해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習의 목표겠지. 이것을 동무 선생은 慧覺과 自業이다 하셨어. 그러기 위해서는 사춘기 정도의 아이들이라면 자신의 뜻이 있어야 되거든. 하지만 자칫 부모가 그 때를 무시하면 엉뚱한 결과가 나타나는 거야. 어떤 기존의 역할이라는 것, 나이가 되면 자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 싸워서 빼앗는 것이 아닌데. 다 너 잘되라고 공부하라는 것이니까 대학부터 들어가라. 대학을 나와야 잘되고 잘살 수 있는 거다. 이 말은 부모인 우리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너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까지는 그렇다 해도 아이 자신을 위해서는 공부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거든.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면 몰라도. 일에 따라서는 누구나 몸으로 바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직접 하기 위해서 오래 간접적으로 연습을 해야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있거든. 중요한 일 일수록 긴 준비 기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지. 결국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 중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공부를 하는 것이니까 그 아이가 애정을 느끼는 특정한 사람들을 위하여서 공부하는 것이지. 이해가 가겠지. 우리는 가끔 아이들이 이해 못할 이유로 잘 모르는 것을 마음으로 우러나서 열심히 하라고 강요를 한다네. 가뜩이나 반항을 하는 시기인 사춘기의 아이들이 따라 하려고 하면 자신의 모순이 병을 일으키고, 아니면 엉뚱한 행동으로 반항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아이들만의 잘못은 아닌 것 같아. 이처럼 뜻을 세우고 난 후에 꾸준히 행하는 것을 獨行이라고 하셨어. 각자가 꾸준히 행하는 것도 그 방법이 체질에 따라 각각 다르다 하셨지. 독행에는 공연히 마음이 끌리는 방향이 있다고 설명을 하셨는데, 이것은 호선이나 오악처럼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매력이 별로 없거든. 알듯 모를 듯해야 우리가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노력하게 되지. 정말 좋은 것은 구체적으로 알면서도 좋은 것이지만 공연히 좋은 것은 잘 모르지만 좋은 것 이자나. 독행은 그래서 재주로는 세 번째에 해당이 되지, 조금 알지만 거의 모르는 것. 태양인은 소음의 智를 조금은 아는데, 소음인의 다양함에는 크게 못 미치지. 하지만 태양인은 무엇인가를 실천하려면 地方에 끌리는 마음이 있다네. 어떤 행동이 좋은 것으로 판단이 되면 조리 있게 설명하고 싶어지는 것이지. 그럴듯하게 꾸며서 다른 사람이 같이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을 方略이라고 하셨어. 하지만 사람들이 수긍하도록 꾸미지 못하면 게으른 것이고 詐欺가 되는 것이니, 절심이라고 하셨지. 方略은 어슴푸레 꾸미는 것이기에 소음인이 다양한 智로 알면서도 大同의 뜻을 알고 따르겠지. 하지만 절심으로 속이려 하면 소음인이 사욕인 것을 금시 알게 되지. 그래서 모두를 속이기는 어렵고 자기 욕심에 자신만 속는 것이니 그리하면 안된다 하셨지. 소양인은 태음의 禮를 조금은 아는데 태음인의 다양함에는 크게 못 미치지. 하지만, 소양인은 무엇인가를 실천하려면 人倫에 끌리는 마음이 있다네. 누군가에게 가족처럼 적절하게 해주고 싶어, 지나간 것이 잘 기억이 안나니 어렵다는 것이지. 이럴 때에는 누구든 앞에 있는 사람과 기분을 같이하는 것을 材幹이라고 하셨어. 태양인이나 소음인은 물론이고 태음인도 禮에 미치지는 못해도 기분이 통하니 덮어 줄 것이라는 것이지. 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의 기분에만 맞춰 주다 보면 자신의 기분을 전달하는 것은 덜하게 되지. 자연히 '이 사람도 좋게 해주고 저 사람도 좋게 해주지만 내 기분은 아무도 몰라주는구나' 하는 자기 비하의 마음이 생기니 이를 나심이라고 하셨지. 바로 자기 연민은 나태해지려는 핑계라는 것이네. 태음인은 소양의 義를 조금은 아는데 소양인의 다양함에는 크게 못 미치지. 하지만 태음인은 무엇인가를 하면 공감 받고 싶어하는 世會에 끌리는 마음이 있다네. 어떤 행동을 하려면 다들 공감하게 하고 싶어지는 것이지. 오래 사귀어서 아는 사람은 지나간 추억을 자세하게 기억하니 어찌할 것인지 알 수 있지. 자연히 오래 사귄 사람은 자신의 실수나 언행을 기억하는 태음인을 어려워하게 되어 무례하게 굴지를 않아서 기분이 통하니 이를 威儀라고 하셨어. 하지만 태음인이 오래 사귀지 않은 사람에게도 잘 아는 사람에게 하듯이 꾸며서 위엄 있게 보이려 하는 것은 치심이라 하셨거든. 오래 사귀는 것을 안하고도 기분이 통하기를 바라는 게으른 마음이지. 태음인이 이리 꾸며서 절친한 듯이 한들 다른 체질들이 마음에서 공감하거나 어려워하지는 않지. 오래 사귀는 것을 부지런히 하는 것만 못하다네. 소음인은 태양의 仁을 조금은 아는데 태양인의 다양함에는 크게 못 미치지. 하지만 무엇인가를 행하려면 天時에 끌리는 마음이 있다네. 어떤 행동을 하려면 모두에게 옳은 것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지. 곰곰이 생각하고 정리는 하지만 두루 듣고 보지를 않은 생각은 공허하거든. 그러니 새로운 것을 대하면 관계된 책을 읽거나 직접 체험한 사람들에게 두루 묻고 배우기를 즐겨야 하니 識見이라 하셨어. 새로 배우려고 안하고 저 아는 것만으로 궁리해서 이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탐심으로 새로 배우기를 싫어하는 게으른 욕심이지. 자신이 생각한 것을 같이하자 하면서도 공감이 안 가는 것을 설명도 못한다면 누가 마음에서 기꺼이 따라 하겠는가, 당연히 별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사람 말고는 따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지. 이해할 수 있겠지? 내가 공연히 행하고 싶은 것은 다른 사람이 같이하려 하지 않아도 나는 내가 할 것을 꾸준히 하는 것이 최선이라네. 잘은 모르면서 하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이 따를 리는 없지. 내가 항시 주의하여야 하는 것은 그 행동이 부지런한가 게으른 가하는 것이라네. 이렇듯이 方略․材幹․威儀․識見은 고유 체질의 재주이지 하지만 貪․侈․懶․竊은 그 체질이 쉽게 빠지는 욕심이지 .고유의 욕심은 아니라네. 인간이면 누구나 빠지는 게으름이지. 타고난 재주가 외부 세계를 지향하는 외향적인 태양인․소양인은 각각 내부 세계를 지향하는 행동을 막연히 하고 싶어하고 내향적인 태음인․소음인은 각각 외부 세계를 지향하는 행동을 막연히 하고 싶어하게 되지. 이런 막연한 행동은 자신의 행동을 부지런하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지나쳐서 다른 사람에게도 같이하기를 바라거나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게을러진 것이지. 다른 이유를 그럴 듯하게 둘러대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네. 어떤 이유로든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혼자 부지런히 하는 것은 항시 인류를 풍요롭게 해주었지. 설득하기 귀찮다고 속이고 자연히 알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꾸미고 자기 연민에 빠져서 아래 사람들에게 인색해지고 자신만 옳다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주장하는 것은 모두가 게으른 것이지. 태양인이 소음인을 부러워하면서 부지런히 방략을 행하고, 소양인이 태음인을 부러워하면서 부지런히 재간을 행하고, 태음인이 소양인을 부러워하면서 부지런히 위의를 행하고, 소음인이 태양인을 부러워하면서 부지런히 식견을 행하면 세상 사람의 마음이 모여 하나가 된다네.
그럼 공부를 잘하는 방법을 이야기해야겠군. 어떤 정보를 이해하여 입력하고 기억하였다가 재생을 하는 것이 공부의 과정이지. 입력과 재생의 과정에서 너무 늘어지면 효율이 떨어지고 집중을 하면 좋지만 지나치게 긴장을 하면 오히려 기억과 재생이 안되는 것은 잘 알겠지. 이럴 때에 집중이라는 것은 몸은 편안하게 정신은 약간 긴장하는 상태라는 실제 행하기에는 무척 어려운 상태라네. 태음인은 다른 체질 보다 갑자기 더 긴장하기가 쉽지. 시험을 보려고 하면 어지럽거나 가슴이 콩닥거리는 정도는 흔하고 첫 문제를 받아 들었는데 모르면 앞이 캄캄해지고, 이럴 때에 쉽게 안정이 안되고 겁이 나고 그러다가 자신이 공부는 열심히 했는데 운 없이 모르는 곳에서 문제가 나왔다는 마음이 공감 받기를 원하여 벌렁 쓰러지기도 한다네. 평소 공부는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편인데 시험만 닥치면 여기저기 아프고 항시 시험에서 망치는 경우가 많은 것이지. 그러다 보니, 태음인은 느긋하도록 유도를 해야 하는 것이지. 누가 더 아는 것인가를 알려고 보는 시험에 최선을 다하려면 내가 제일 잘하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 다른 친구 흉내로 당일 치기하고, 바짝 긴장을 하면 알던 것도 잊어 먹으니 아는 것만 쓰겠다 조금만 더 알자 하는 느긋함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 아닌가. 이것이 태음인이 공부 잘하는 방법이지. 소양인은 이해를 덜했어도 잘 외우는 편이지. 잠깐 보아도 기억을 잘하고 긴장을 해도 크게 실수하지는 않는 편이거든. 단지 소양인은 단숨에 해치우는 것이 습관이라 평소에 꾸준히 하려고 해도 엄두가 안 나는 특성이 있어. 이것을 구심이라고 하셨어. 결국 공부를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도 결국은 닥쳐서 밤새기 일쑤이고, 범위가 좁은 시험은 잘 보았어도 금시 잊어 먹으니 큰 시험이 될수록 코앞에 닥쳐서야 며칠이고 밤을 새는 것이 보통이지. 그래도 안되면 같이 시험 보는 사람들을 선동해서 재치 있게 커닝을 해서 남 보다 성적이 좋기에 급급해지지. 똑같이 커닝을 한다면 소양인의 순발력이 제일 앞서니까. 그러다 보니 소양인은 꾸준하게 노력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지. 평소에 범위가 좁은 시험을 공부할 적에 한번보고 시험 치지 말고 5-6번은 외워서 보면 평생 기억이 난다, 당장 공부를 덜하고 성적이 좋으면 다음에는 더 공부가 안된다. 이것이 소양인이 공부 잘하는 방법이지. 소음인은 열심히 읽고 쓰면서 외우려고 해도 이해가 덜 된 것은 기억이 안 난다네. 차라리 조금 외우고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해서 이해가 되면 자연히 기억이 나지, 대신 한번 기억한 것은 오래 기억한다네. 그렇다고 앉아서 생각만 해서는 많은 공부를 하기 어렵거든 공상만 하지 집중이 안된다네. 이럴 적에는 자신이 시험 볼 것을 그 내용을 모르는 친구나 어머니에게 가르쳐 준다 하는 기분으로 우선 외웠다고 생각되면 이해하기 아주 쉽도록 설명을 하라고 하지.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녹음기에라도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네. 이것이 소음인이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지. 이렇게 각자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꾸준하게 노력하면 공부는 잘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공부를 잘한다거나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좋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겠군. 하지만 공부를 하려고 애를 쓰는데 방법이 안 좋아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4. 돈을 줘야 말을 듣는 것이 이상한 것인가.
사람들은 각자가 아는 것이 다르니 생각이 같아도 하고 싶은 행동이 같기는 어렵다네. 자연히 내가 생각한 것을 네가 실천해라 하려면 예전에는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이 아니다 하며 부렸지만 우리가 얻어낸 민주주의는 그런 권위나 강압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지. 이런 지시는 내가 너 보다 훌륭하니까 너는 내 말만 들어라 하는 것이지. 설사 하라는 데로 하려고 해도 아는 것이 다르니까 행동도 같을 수가 없거든. 그렇다고 일일이 옆에서 시킨다면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을 한 들 하루 종일 시키기만 하는 사람과 하루 종일 해야만 하는 사람이 마음이 통할 수가 없어. 그러다 보니 알아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 얼마를 주겠다 하게 된 것이지.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에게 잘했다고 상금을 주고, 못했다고 벌금을 내라 한들 잘하고 못하는 기준을 정하는 것은 더 어렵거든. 매일 출근을 했으면 잘한 것인가 이것은 당연하니까 결근을 하면 손해를 보게 하자. 또는 잘할 때마다 돈을 더 줄 테니 능력대로 받아 가라. 아무리 이런들 일하는 사람의 마음이 돈을 주는 사람의 마음과 통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뜻이 달라서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더군.
종업원이 50여명 되는 기업을 하시는 분이 파리한 얼굴로 너무 피곤하다며 들르셨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규모가 적을 적에는 당신이 직접 같이 하면서 일일이 지적하고 가르치기도 하면서 지냈고, 항상 좋은 제품을 값싸게 공급해서 거래처도 점점 늘었지만 밑에 사람들은 일을 배울 만하면 돈 조금 더 준다고 다른 곳으로 가고 내가 힘들어도 신용은 지켰더니 거래처는 늘고 그럴수록 당신만 너무 힘이 들어서 보약이라도 먹어야지 싶어 오셨다고 하더군. 진찰을 하여보니 소음인이더군. 우리가 생각을 해서 아는 것은 아는 것이지 옳은 것은 아니다. 무엇인 가를 잘하려면 자신이 마음이 내켜서 자꾸 하면 잘하는 것이지 옆에서 일일이 일러준들 모를 적에야 고마워도 아는 것을 일일이 이야기하면 귀찮고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아무리 잘해 줘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려면 일단 시킨 일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간여를 덜할 수록 좋은 것이고 잘못되면 고치고 바로 하는 것이 포함된 것이 적정한 가격이지. 싸고 좋게 하려는 것도 지나치면 욕심이다. 신용은 지키되 시간을 조금 더 여유 있게 약속을 하고 비용은 남과 같이 받아서 운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업을 확장하실 수가 있는 가 하는 주제넘은 소리를 하게 되더군. 그리고 원하는 약을 지어 드렸지. 얼마 후에 요즈음은 공연히 불안해서 잠이 잘 안 오고, 이런저런 공상을 하다 보면 아침에 너무 피곤하다며 들르셨더군. 종업원 문제는 어떠시냐 물었지 간섭을 덜하고 남들만큼 월급을 주었더니 잘 붙어 있기는 한데, 여전히 일하는 것은 답답하다고 하시더군. 저녁에 보통 어떤 생각을 하시는가 물었더니 주로 하는 일에 관한 것인데 잘 못되면 어떡하나 같은 것이더군. 이 넓은 우주에 지구가 있고 거기서 우리가 사는 것은 확률로는 0도 안되는 것이기에 이렇게 우리가 만나기까지 한 것을 동양학에서는 우연이라는 표현보다는 어떤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본다. 만약 우리가 내일 죽으면 어쩌나 걱정을 한다면 죽지 않았을 적에 낭비한 시간은 돌아올 수가 없다. 어떤 일을 한 것은 잘될 것 같으니까 한 것이고, 결과가 아직 안 나왔다면 잘되겠지 하며 쉬어야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얼른 고칠 기운이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이 잘못 될까 저것이 잘못될까 한다면 차라리 당장 대비할 행동을 하던가 아니면 신경 끄고 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아무리 신경을 쓴들 예상 못한 것이 잘못되는 것이 보통이고 예상을 한 들 대비할 수 없으면 지켜보는 것이 전부인데 생각을 덜하려는 노력도 약 만큼이나 중요하다. 소음인은 어떤 생각에 골몰하면 이 일은 이렇게 되면 좋겠는데 그것은 어렵고 반대로 되면 안되고 그럼 절충해서 이리해야겠다는 식으로 생각이 다양한 반면에 막상 실천하려면 자기 고집을 부리거나 남들이 하자는 데로 해 버리는 마음이 있어서 불안정심이라 하셨지. 체력이 여유가 있으면 마음이 덜 급해서 차라리 미리 생각하는 것보다 결과가 좋거든. 이 분이야 이렇게 해서 다시 체력을 회복했지만 정말 나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어떤 일을 시키려면 돈을 줘야 하지만 돈으로 시킬 수 없는 일이나 사람이 더 많거든. 집안에서의 관계나 공익적인 일은 이런 일들이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을 하려는 노력을 博通이라 하셨어. 각 체질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려면 노력해야 할 것이 다르다 하신 것이지. 博通은 각 체질이 가진 가장 열등한 재주로 하여야 전달이 된다고 하셨어. 열등하다는 것은 다양한 것의 반대인 것이지, 다양하기 가장 어려운 재주. 이 재주로 표현을 하여야 재주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열등하지 않은 재주이니 쉽게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다는 것이지. 태양인은 자신이 판단해서 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지나간 체험 중에서 꼭 필요한 행동을 직접 실천하는 것으로 전달할 수 있으니 行儉이라 하셨지. 이런 제한된 표현으로 따르는 사람이 늘기를 바라면 계속 그 행동을 하여야 하는 것인데 자칫 따르지 않는 사람을 다 틀렸다 꺾고 싶어지면 벌심인 것이니 행하면 안되지. 빨리 하려 반대하는 사람이 따르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꺾으려 하면 하나를 꺾으면 열이 돌아서니까. 솔선 수범한다 이런 뜻이지. 소양인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전하려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척도로 표현을 하여야 전달이 되니 度量이라 하셨지. 이런 제한된 표현으로 자신의 마음이 다 전하여 지지 않는다고 과장하여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과심인 것이니 행하면 안되지. 전하려는 마음만 급하다고 금시 알게 될 거짓을 말하면 다음에는 더욱 믿지를 않을 테니까. 도량형이라고 길이, 무게, 시간 등을 정하여 같이 사용하는 것 같은 것이지. 태음인이 자신이 체험한 것을 전하고 싶으면 상대도 같은 것을 경험하도록 유도해야 전달이 되니 籌策이라 하셨지. 이런 제한된 방법으로 전하는 것을 확대해서 자신이 해보지도 않은 것을 그런 것처럼 술수를 부리려는 마음이 생기면 교심인 것이니 행하면 안되지. 아무도 속지를 않고 각자의 이익에 따라 속아 주거나 따르지 않으니까. 원하는 것을 엉뚱한 행동으로 유도하면 주책을 부린다고 하지. 뜻은 같은 것이네. 소음인이 생각한 것을 전달하고 싶으면 상대의 입장이라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하며 설명을 해야 전달이 되니 經綸이라 하셨지. 이런 제한된 방법으로 전하는 것이 답답하다고 자기 기분으로 이야기하려는 마음은 긍심이니 행하면 안되지. 상대가 공감을 못하고 지루해 하거나 돌아서 버리게 되니까. 일상에서 경륜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 四象에서는 이런 뜻으로 사용한다네. 복잡한 것 같지만 사실은 단순한 것이라네. 어떤 뜻을 가지게 되는 것은 옳다는 믿음이 있을 적이니 누구나 급하지만 그럴 수록 먼저 행하는 것이 가장 빠른 것이지. 무언가 공감을 하려면 기분으로 통하려 해야지 다른 방법이 없어. 경험한 것을 가르치려면 직접 경험하도록 하고 지켜보는 것이고, 생각이라는 것은 경험을 정리하는 것일 뿐이지. 체질에 따라 박통을 행하는 방법이 다른 것은 여러 사람과 같이하여야 하기 때문이고, 각자가 자신의 재주만으로 하려고 하면 서로 마음이 전달이 안되니 남에게 쉬운 재주로 전달하라 이런 것이지. 驕․矜․伐․夸 는 모든 사람에게 있는 욕심이고, 아까 설명한 것은 쉽게 빠지는 체질을 이야기한 것이네. 누구라고 내가 옳으면 뜻이 다른 사람은 틀린 것이니 벌하여 꺾고 싶은 것이지. 자신의 기분을 상대가 수긍을 안하면 상대가 수긍하도록 과장하고 싶은 것이네. 자신의 체험이 전달이 되면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고, 교만해 질 수 있어 일일이 공감하면서 생각을 전하기 답답하면 들어라 내가 옳다 하고 긍지를 가지고 잔소리를 하게 되지. 이것은 단지 가장 자주 그 욕심에 빠지는 체질을 설명하신 것이지. 세상이 이렇게 이야기하듯이 好善․惡惡․獨行․博通을 자신의 체질에 맞게만 하면 다된다는 것이 아니라네. 자신이 바로 살아 후회를 적게 하려면 이 방법이 있다는 것이지. 이렇게 마음을 바로 하려 애쓰면서 많이 하면 잘하게 되는 것이네. 하던 이야기를 마져 할까? 여러 사람이 자신이 말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行世라네. 行世 꽤나 한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이지. 예전에는 신분이 있어서 그랬고 지금도 권력으로 행세를 할 수 있지만 이런 행세는 근본이 박통을 통해서 하여야 민주주의고 이리되면 요순시절의 태평성대보다 더 좋은 때이지만 돌아보게. 사람들이 이런 이치를 알려면 태어나서 깨달아야 하고 깨달으면 죽는 것이 사람이니 항시 당연한 이야기를 새로 설명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 아닌가. 예수님이 라틴어 학자만 알아듣게 설교를 하셨을 리는 없지만 그 뜻이 널리 전해질 때쯤이면 그 말씀이 고전이 되니 학자가 말하는 것만 전달이 되겠지.
東武선생의 壽世保元은 말 그대로 壽는 인간의 수명이지. 몸의 주인이 마음이니 수는 인간의 마음으로 사는 시간이라면 삶의 양은 아니라네 삶의 질이지. '근본을 지키며 세상을 살아가라' 한다면 좋은 번역인가. 東武선생은 四象 哲學을 의학에 도입하여 막연한 철학이 아닌 실용적인 질병의 치료 방법으로 발전시킨 것이지. 四象은 주역에 나오는 용어이지. 동양철학에서 周易의 위치는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四象의 太陽․少陽․太陰․少陰이 주역에 기록은 되어 있지만 막상 四象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별로 없고, 복희 팔괘와 문왕 팔괘라는 八卦로 사물의 이치에 대한 서술이 주역의 대부분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어 四象에 대한 기록을 주역에서 굳이 찾는다면 元․亨․利․貞의 네 글자가 주역의 중심 언어이고 뜻 그대로는 圓滿하며 亨通하라 이롭게 하며 단정하라는 말이지. 이것이 사상에 대한 서술이 아닌가 하는 것이 주역을 읽어 본 사람의 공통적 의견이더군. 元亨利貞의 사상을 자신의 공부로 삼아서 연구하고 밝힌 분 중에 한 분이 東武 李濟馬선생이셨네. 東武 이제마 선생은 格致藁에서 四象에 대한 자신의 공부를 기록하셨고, 格致藁에서 얻어진 관점으로 壽世保元이라는 體質醫學書를 쓰셨어. 이 藁라는 것은 어떤 글을 쓰기 위한 中間發表의 글에 붙이는 것으로 논문을 쓰기 위한 중간 논문 같은 글에 붙이는 이름이라네. 격치고에 사용된 용어는 李退溪선생이 중요시하셔서 朝鮮시대 後期의 선비들이 한번쯤은 꼭 읽었으리라 생각되는 心經에 많이 사용된 用語로 서술되었는데, 아마도 당시로는 단어들의 定意가 비교적 分明하고 보편적으로 이해되던 用語였기에 그리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네. 四象의 관점으로 사물을 관찰하시다 사람들의 심리적 특성이 四類型으로서로 다름을 발견하셨고, 사람들의 건강한 상태와 병든 상태를 비교 관찰하는 과정에서 몸도 성향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것을 알게 되신 것으로 보이고, 이것을 四象體質이라 하신 것이지. 이러한 체험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고, 제자들이 壽世保元이라는 책을 발간하는 것을 감수하신 결과 우리가 수세보원이라는 민족의 문화유산을 얻은 것이라네. 이런 글이 기발하게 와전된 부분이 있다면 내가 게으른 것도 책임이 있으니 미안하네. 그래서 지금 이리 긴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읽어 주니 고마운 것이지. 언제고 이상적인 것을 바란다면 과거에서 찾기보다는 미래에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의 가치를 높여 주겠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지금부터 행동하라. 특별한 신념이나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십년을 원하여도 계속되는 행동이 없으면 십년이 지나도 원하기만 할 테니까.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의 현실은 다른 사람을 부리려면 돈을 주어야 한다네. 바꾸어 말하면 행세를 하려면 재산이 많아야 하는 것이지. 재산을 자신의 힘으로 모으려 할 때 운만 바라는 사람이라 하여도 무언가를 하기는 하겠지. 이 경우 노력하는 만큼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공부를 먼저 하여야 한다 하셨네. 공부를 하려면 부모님 슬하에서 하기가 가장 쉬우니 마음을 정하고 뜻을 바로 해서 공부하라. 東武선생 말씀이지. 부모 슬하를 떠나면 가산을 모으고 가산이 충분하면 행세를 하여야 하는 것이고. 이 모든 공부와 행세가 四象으로 바로 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대가 재미가 없다면 나의 經綸이 부족한 것이고, 이해가 안 간다면 나의 識見이 짧아서라네. 부족함을 무릅쓰고 이리 글을 쓰니 나중에 자네가 재미있게 다시 써 주기를 바라네. 하지만 지금쯤은 자네도 자신의 體質은 알 수 있을 것이네. 내가 바란 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체질을 아는 것이지. 그리고 체질 의학의 뜻을 바로 이해한다면 요사이 흔히 들리는 공연한 건강법으로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니까. 혹시 다른 사람의 體質을 알고 싶다면 그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네. 노력은 해보겠지만 공자님도 '사람을 아는 것이 가장 어렵다'하셨어. 우선은 같이 이야기할 만큼은 알았으니 東武선생의 말씀을 전하여 줄 테니 읽어보고 다른 사람의 체질을 알겠나 관찰해 보시게.
5. 주역을 공부하여 보니, 마음을 읽을 수 있다네.
東武선생이 설명하시는 周易은 아주 쉽지. 전통의 주역이 하늘 과 땅 그리고 사람의 관계를 관찰한 것이라면 東武선생의 관심은 사람의 마음이 중심을 이루지. 이 부분은 정신분석학의 대가 중에 분석 심리학을 체계 잡은 C.G.Jung선생도 일치하네. 단지 융은 주역의 설명을 따라 팔괘로 유형을 나누는 것으로 실용적인 이론까지는 정리를 못했지. 東武선생은 유형을 四象으로 하고 인간의 마음을 가장 정신적인 것에서 가장 물질적인 부분까지 事心身物이라는 四元構造로 次元化 하셨어. 事는 순수한 정신 또는 뜻이라고 할 수 있지. 心은 사람과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라면 身은 자신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행동 또는 몸이라네 物은 정신의 지배를 가장 덜 받는 몸이고 물질이라네. 인체 내에서 관찰을 하여보면 물질을 몸이 이용하고 몸에 마음이 있고 뜻은 마음에서 나온다. 좀 더 설명을 해야겠군. 심경에서 인체는 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몸의 각 부분이 원하는 상태는 각각이니 전체를 주관하는 마음이 주인이다 한 것을 발전시킨 것이지. 마음은 외부 상황에 대하여 선악을 판단하는 부분과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몸은 자체적 이치로 생명을 유지하는 부분과 마음이 부리는 것을 따라서 행동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象徵으로 주역의 팔괘를 사차원의 음양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신 것이 東武선생의 관점이라네. 기발한 이야기 같은데 그것이 어떻게 의학이 되는가 싶을 수 있겠군. 자네가 알아야 하는 것이 현대의학의 精神分析學이 거의 같은 가설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네. 모든 것은 마음이 결정한다는 심인론과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가설이지. 東武선생은 마음을 精神적 차원과 肉體적 차원으로 나누어 보신 것이지. 따라서 四象醫學은 정신 치료와 육체 치료를 같은 이론으로 행할 수 있어. 이런 이해를 토대로 東武선생이 설명하신 팔괘를 들어보세. 물론 육체의 병은 증상이라는 보이는 것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체질을 먼저 알아야 접근할 방법을 알게 되거든. 체질에 따라 증상을 해석하는 관점이 다른 것이 四象體質醫學이니까. 체질을 알려면 마음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마음을 알려면 남의 마음은 물론이고 내 마음도 바라보는 곳을 정하지 않으면 아는 것을 서로 전할 수가 없으니 모르는 것과 같지. '안다면 말할 수 있어야, 아는 것이다'하고 따로 강조하셨어.
○ 모든 뜻은 다함이 있다.
事의 始終은 乾( )으로 시작하여 兌( )로 다한다.
事라는 것은 사람의 뜻이고 판단이니, 시작은 바르나 시간이 가면 다하여 연못의 물이 되기도 하고, 종지의 물이 되기도 하여 넘치기 마련이다. 乾은 하늘을 상징하고 투명하게 보이니 아는 것이고, 兌는 연못을 상징하는 것이니 마르고 넘치는 한계가 있는 것이라네. 뜻이라는 것은 상황을 관찰해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행하겠다는 가장 정신적인 기능이라네. 이제는 필요하지 않은 것을 새로이 관찰하지 않고 계속하려고만 하면 이것이 속이는 것이니 이 또한 詐欺라 하셨지. 그 뜻이 오래가는 가 금시 다하여 없어지는 가하는 것은 그릇의 차이일 뿐 사람의 뜻이 영원할 수는 없으니, 다하면 새로이 하라 하신 거라네. 우리는 어떤 결론이나 판단을 옳다고 믿지만 사람의 머리로 깨닫고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아는 것이고 좋은 것이지 영원히 옳다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네.
○ 마음이 다하면 요란하다.
心의 緩急은 離( )의 緩慢 함에서 辰( )의 急함으로 다한다.
心은 마음의 관심이고 열정이니, 眞心일 적에는 소리가 없이 뜨거우나, 마음이 식어 지속할 생각은 없어지고, 결과를 얻으려 급해지면 소리가 요란하나 열정은 없다. 離는 불을 상징하고, 辰은 벼락을 상징하는 것이니 불은 완만하지만 뜨겁고 모든 것을 태우지만 벼락은 빠르고 요란할 뿐 실제 넓게 영향을 주지는 못하지. 마음이 식어 더는 노력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남을 탓하며 요란하지 마음이 다한 것이니, 새로운 열정이 생기지 않으면서도 관심이 있는 듯 하는 것은 스스로만 속는 것이라네. 묵묵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천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말로 요란하지도 않고 남을 탓하기보다는 공감시키려 하지. 우리가 공연히 마음이 급해지고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은 마음에 열정이 식어서이지 새삼 열정이 더하여 그리하는 것이 아니라네. 가끔은 누구나 자신에게 속기 쉽지.
○ 모이는 사람의 마음은 다 다르다.
身의 先後는 坎( )으로 先하여, 巽( )처럼 後한다.
身은 사람의 행동이고, 시작은 물처럼 힘있게 사물을 실어 나르지만, 다하면 바람처럼 어디로 간줄 모르게 제각각 흩어진다. 坎은 물을 상징하여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치와 순리를 말하고, 巽은 바람을 상징하여 기세에 비해서 큰 힘은 없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성질을 말하는 것이네. 事心과 달리 身物의 卦는 그 순서가 앞선 것이 뒤에 놓이지. 이것은 事心은 내 뜻이 시작되고 다하고 내 마음이 열렬하고 식어 가는 것이지만, 身物은 行動과 物質의 결과를 보고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니 결과가 좋다 하여도 원인이 그 전부는 아니고 결과가 나쁘다 하여 반드시 그리될 일은 아니라는 것이라네. 우하고 일어날 적에는 하나로 보이지만 흩어질 때에 제각각 이유를 보면 같은 마음으로 시작한 것은 아닌 군중심리를 상상한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네. 어떤 일을 열심히 할 적에는 모르다가 더 하기 싫을 적에 마음에 이 생각 저 생각이 드는 개인도 같은 것이지.
○ 굳어진 것은 생명이 없다.
物의 本末은 坤( )이 本이고, 艮( )이 末이다.
物은 생명이 없는 굳어진 것이나 땅처럼 부드럽고 탄력이 있으면 새것이고, 산처럼 굳어지면 다된 것이다. 坤은 유순하고 끝없이 베푸는 땅을 상징하고, 艮은 고고하게 솟아 굳어지고 딱딱한 산을 상징하지. 농사를 짓는 땅과 돌산으로 비유를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네. 物이라는 것은 조직이나 일처럼 사람이 지닌 것 중에서 變化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네. 쇠가 단단하다가 녹이 쓸면 물러지는데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쇠도 새것은 구조가 탄력이 있고, 굳어지면 녹이 슬어 다된 것이라네. 이처럼 始終․緩急․先後․本末은 陰陽일 뿐이고, 事心身物의 시간적 차이일 뿐이지. 이것으로 어떻게 체질을 관찰하는가 하면 너무 자세하면 지루할 테니 방법만 설명을 하지. 뜻이 새로우면 누구나 공감을 하지만 다한 뜻을 주장하는 사람은 설명은 그럴듯하여도 공감이 안 간다네. 일전에 이름을 이야기하면 자네도 알 만한 교수님이 '현대는 신화가 사라져서 아이들이 척박하여진다'며, 동화책으로 신화를 살리자는 출판 세미나를 하신 적이 있어. 이상하게 공감이 안 가서 후에 생각해 보니, 신화가 동화책에서 텔레비전으로 비디오로 옮겨간 것이었어. 그러니, 뜻이 다한 것을 존경하던 분이 세미나를 해도 공감이 안 갈 수밖에. 다시 말하면 유명한 분이 뭐라 좋은 소리를 하여도 공감이 안 가면 안 하면 된다는 것이네. 공감을 가게 설명을 해야 하는 사람은 뜻을 주장한 사람이지 내가 알아서 공감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 아무리 이유가 절절해도 내가 공감이 안 가서 안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없지. 어떤 이익을 준다면 할 수도 있지만 이익에의 약속만으로 따라 하는 것은 속여 주세요 하는 것이지. 태양인은 재주가 事이니 뜻을 적절하게 바꾼다네, 다른 체질은 속을 수밖에 없어. 하지만 시간을 두고 행하는 것을 보면 바른 뜻인지 아닌 지를 알 수 있는 것이네. 자연히 태양인은 뜻을 적절하게 아는 태양을 중요시하게 되니 적절함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네. 마음이 완만한 것이 열렬한 것이고 급한 것은 다한 것이다. 어찌 보면 이상하겠지, 흔한 예로 연애 이야기를 해 볼까. 한 남자가 어떤 여자를 좋아한다고 할 때,진짜 좋으면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줄 때까지 마음에 드는 행동을 부지런하게 한다네.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만 보고서 상대방은 잘 모르고 좋다고 할 적에는 스스로도 진짜 좋아한다는 자신이 없으니까 마음에 드는 행동보다는 말이 앞서고 부담스럽게 지나친 행동이 많아지지. 필요로 하는 것을 언제고 주겠다는 완만한 마음이 열렬한 것이라면 사랑한다 어쩐다 말을 먼저 해서 뭐라도 정하려는 사람은 여자가 받아들이면 오히려 싫증을 내지. 마음에 있는 것을 적절하게 전하는 것은 소양인의 재주이지. 소양인은 재주가 心이니 마음을 적절히 바꾸지. 하지만 다른 체질은 마음에 있는 것과 표현이 달라지기 쉬워서, 태음인은 마음에 있는 것을 표현을 늦게 하기 쉽고 소음인은 마음보다 표현이 앞서가기 쉽지. 자연히 소양인은 기분을 적절하게 느끼는 소양을 중시하게 되니 현명함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네. 행동을 열심히 할 때와 그만할 때를 적절하게 아는 것이 태음인이지. 태음인은 재주가 身이니 행동을 적절하게 바꿀 수 있지. 내 마음처럼 부지런히 일을 하는 것이 태음인의 습관이지. 소양인은 꼭해야 할 일, 공이 되는 일을 하려고 가려서 하기 쉽고, 소음인은 어떻게 하면 간편하게 쉽게 할까 궁리를 많이 하게 되지. 자연 행동은 태음인이 가장 잘하게 되지. 많이 하면 잘하는 것이니까. 자연히 태음인은 성실한 태음을 중시하게 되니 성실함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네.
어떤 정해진 방식이라는 것은 체험한 것을 단순화해서 궁리를 많이 해야 하는 것이지. 하기에, 새로운 체험을 하면 방식을 얼른 적절하게 고쳐야 하는 것이네. 소음인의 재주가 物이니 적절하게 정리할 수 있지. 손작업으로 복잡하던 일을 공업화해서 단순하게 만든 기계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네. 이런 변화를 포용할 수 있는 조직은 발전하지만 굳어져서 변하지 않으면 쇠퇴하기 마련이지. 자연히 소음인은 능률적인 소음을 중시하니 능히 할 수 있나 없나 하는 것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네.
이렇게 뜻을 풀어서 보고, '어떤 일이 공연히 하고 싶을 적에', '어떤 일을 공연히 하기 싫을 적에' 주역의 점을 치고, 괘효사를 읽고 東武선생의 설명대로 뜻을 풀어 보는 것이 내가 모르는 나의 마음을 알게 되는 방법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지. 좀 어렵지. 하지만 이것만을 계속 설명하려면 무척 재미가 없을 거라네. 그냥 재미있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테니 들어보게 자네라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네.
나. 체질 이야기
사람의 마음이 각각 다른 특성을 지니고, 생존의 문제가 아닌 행복의 문제에서 각자가 추구하는 방식이 다르고 만족하는 부분이 다르다는 것이 四象醫學의 진정한 가치이자 여러분이 四象醫學을 아는 것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함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은 다 같다 하는 天地人의 思想에서 같은 大同 中에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자신의 뜻을 표현하여야 전달이 되는가 무엇이 스스로를 병들게 하니 이를 병이 되기 전에 어떻게 막을 것인가 바로 四象이 가르쳐 주고자 하는 智慧이고 醫學적 정보입니다.
소양인이라 하여 당뇨병이 확실한데도 돼지고기는 많이 먹을 수록 좋다는 것이 신비한 비법이 아닌 것이죠. 소음인이라 하여 먹을 고기가 돼지고기밖에 없어도 먹지 마라 하는 것이 금기가 아닌 것입니다. 또한 조그만 체구의 태음인이 큰 체격의 소음인 보다 기운이 쎄고 강단이 없는가 하는 절대기준이 아닌 것이죠. 사상의학의 중심을 이루는 四象 哲學은 儒學의 中庸 思想의 연결 선상에 있는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가르침을 새롭게 설명한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으로 자신의 인격적 발전과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을 제시하신 것이지 이를 믿기를 자신 보다 더하라는 노예의 철학이 아닙니다. 투병 중에 같은 칼로리를 섭취한다면 체질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됩니다. 건강할 적에 자신에게 적합한 운동을 하는 것도 아주 유익하며 마음을 수양하는 것은 언제고 좋은 일이겠기에 모든 聖賢이 사랑하셨던 당신이기에 최선의 마음으로 유익한 부분을 설명 드리는 것입니다.
1. 四象 體質은 어떤 몸의 특성을 지녔는가.
인체를 하나의 모르는 원으로 본다면 그 원을 정사각으로 등분하는 것이 '만다라'이고, 四象도 같은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이 완전해야 사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자체 한계이기도 하죠. 인체에서 태음인의 특징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원은 혈류순환의 원 입니다. 피의 순환을 보면 심실에서 피가 나가서 동맥을 따라 모세혈관에 도달하고, 정맥을 통해 굵은 정맥을 돌아서 심방으로 돌아온 피는 다시 심실로 갑니다. 여기서 심실과 동맥은 수축을 반복적으로 하기 때문에 추진력이 있는 반면 모세관은 전기의 저항처럼 부하를 주고, 정맥은 추진력이 없이 굵은 정맥은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을 막아 주는 밸브만 있고, 심방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죠. 이러한 굵은 정맥의 순환은 주변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주된 추진력을 제공합니다. 태음인의 경우 이러한 혈류의 순환에서 주된 장애가 근육의 탄력이 적은 것에서 영향을 받는 것이죠. 따라서, 활동할 적에는 덜하다가도 수면을 취한 후에 아침에 일어려면 얼굴이나 손이 심하게 붓는 현상이 잘 관찰됩니다. 근육이 너무 이완이 되면 활동 중에는 정맥의 순환이 원할 한데, 가만히 누워서 잠을 자면 모세관에 피가 잔류를 하게 되는 것이죠. 반대로 지나치게 긴장한 상태에서 활동을 하거나 흥분을 하게 되면 어깨가 뭉치고 뒷목이 뻣뻣하다가 머리가 수분 깨지게 아팠다가 덜하다 가하는 긴장성 두통을 나타내고, 눈이 쉽게 충혈이 됩니다. 이런 경우 저녁에 쉬려 하면 팔다리가 쥐가 나듯이 저린 것이 관찰됩니다. 따라서 태음인은 평소에 몸에서 땀이 촉촉하게 나는 정도의 상태가 근육의 탄력이 원활한 상태로 가장 건강한 상태라 하신 것이죠.
인체에 완전한 원은 혈류순환 외에는 없으며 외부와 연계된 원은 소화기 뿐 입니다. 음식물이 입으로 들어와서 위․십이지장에서 소화되고 소장에서 영양이 흡수되고, 대장에서 수분이 흡수된 후에 대소변으로 배설되는 원은 외부와 연계된 완전한 원 입니다. 호흡기, 신경계, 호르몬 등에 대한 원의 인식도 가능한 일이지만 되먹임 제어나 중간 변화가 단순하지 않아서 四象으로 분석하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소화기 순환의 경우 태음인은 음식 자체에 의한 영향보다는 스트레스에 의한 영향을 예민하게 받습니다. 께름직한 음식을 분위기 때문에 억지로 먹고 급체를 한다. 음식을 먹고 있다가 속상하는 일을 당하면 급체를 한다. 이 경우는 위경련의 일종으로 태음인에게 현저한 증상입니다. 집에서는 배변이 원할 한데 여행을 가거나 집밖에서는 3-4일 심지어 7일도 대변을 못 보는데 음식은 잘먹는다. 이 경우는 장의 연동이 불량해서 오는 태음인의 긴장성 변비이죠. 하루에 몇 번이고 배가 살살 아프다가 무르게 변을 본다. 밥만 먹으면 바로 변소에 간다. 이 경우는 태음인의 과민성 대장 증후로 몇 달을 설사에 가까운 변을 하루에 3-4번을 봐도 체중 감소는 거의 없는 특징을 가집니다. 여기에 태음인의 심리적 특성이 가중되면 남에게 싫은 소리라도 하려면 가슴이 콩콩 뛰고 심하면 1분에 100여회를 넘기지만 혈압의 상승은 없는 심방세동이 나타나고, 깨고 나면 기억도 나지 않는 꿈을 수면 중에 끝없이 꾸기도 합니다. 팔을 조금만 베고 누워도 다리를 잠시만 접고 있어도 쥐가 나도록 저린 현상도 쉽게 일어납니다. 어쩌다 낮잠이라도 자면 게운 하지 않고 오히려 더 피곤하고 머리까지 아픈 경우도 태음인 몸의 특성입니다. 태음인은 억울하거나 속상한 것을 잊을 때까지 오래 걸리는 편이고, 이 시기에 몸을 덜 움직이고 먹는 습관이 생기면 소화기가 기능이 좋기 때문에 체중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습관적으로 먹는 것은 의지력으로 조절을 하기가 어렵고, 참다가 과식하면 자기 모멸감도 오고 좌절감 때문에도 더욱 먹게 되는 악순환이 잘 생기죠. 이런 종류의 질환은 四象醫學의 處方으로 치료가 용이합니다. 하지만, 약물을 사용하기 이전에 평소에 근육의 탄력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자아이는 마주 싸우는 태권도 보다는 혼자 몸을 부드럽게 관리하는 우슈가 태음인 성정에 적절한 운동이고, 여자아이는 무용이나 리듬체조 같은 것이 적절한 운동이죠. 어른일 경우 사우나 수영 승마 등이 좋을 수 있읍니다. 소양인은 혈류순환의 상태가 적절하게 상황에 적응을 하는 체질이고, 근육도 탄력이 좋지만 지구력은 떨어지는 편이라 쉽게 싫증을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 쉽게 지친다는 것이죠. 어느 정도 긴장된 체질이기 때문에 건강할 적에 손은 차가운 편이 정상이고 차가워도 땀이 촉촉하면 건강한 것이지만 땀이 전혀 없으면 덜 건강한 것입니다. 소화기는 많이 먹으면 많이 먹은 데로 적게 먹으면 적게 먹은 데로 조절이 잘되는 편입니다. 수렵 시절에 며칠이고 굶다가 한번 잘 먹는 사냥꾼의 소화기 같다고 할까요. 하지만 병이 나면 대체로 산이 지나치게 분비되어 아침에 속이 쓰려서 깨는 정도가 다른 체질 보다 쉽게 옵니다. 자연히 찹쌀이나 신 것은 덜 좋아하게 되는 경향이 있죠. 약간은 변이 건조한 편이고 하루만 변을 못 보아도 몹시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설사를 하면 창자가 끊어지는 듯이 쓰려 하는 경우가 많고 지속적으로 설사를 하는 경우 볕을 쏘이면 어지러워할 정도로 쇠약해집니다. 잠귀가 상당히 밝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잠시만 잠들어도 회복이 빠른 반면 전혀 잠을 안자면 다른 체질에 비하여 느끼는 피로의 정도가 심하죠. 항시 약간은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에어컨 바람이나 냉수로 세수하는 정도도 본능적으로 몹시 싫어합니다. 심리적 특성이 합쳐지면 평소에 이기기를 좋아하고 기분에 적절한 심리 때문에 지거나 섭섭한 것 가장 즐거웠던 일 가장 슬펐던 일 등은 잘 기억하지만 그 순간 이기기 위해서 이야기한 것이, 일상적인 일들은 거의 기억을 못하죠. 상황이 계속 이겨 나가야 하는 공직 큰 조직 등에서는 잘 적응을 하는 것에 반해서 가정적인 부분이나 당장 이익이 보이지 않는 일에는 소홀하기 쉽죠. 이 체질에 대한 관찰과 처방은 四象醫學 이전의 한의학에도 많은 기록이 있습니다. 약물을 사용하기 이전에 평소에 지구력을 키우는 운동이 바람직합니다. 기계를 이용한 운동 또는, 조깅 같은 것이 바람직 합니다. 소음인은 근육의 탄력은 좋지만 심동맥의 송출력이 조금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화기의 경우도 갑자기 더 먹거나 조금 덜 먹으면 그에 따른 적응이 느려서 당장 소화가 덜 되거나 배가 몹시 고프게 됩니다. 항상 적게 먹어 버릇하면 때가 되니 먹는 것이지 배가 고파서 먹지는 않는 사람도 흔하죠. 평소에 건강하면 손발이 계절에 관계없이 따듯한 체질이고, 어쩌다 속이 덜 좋으면 한두 번 설사하고 편안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 식사를 조금 많이 하면 변을 보고도 개운하지 않고 또 마려운 듯한 경우가 많죠. 평소에는 땀이 별로 없는데 갑자기 운동을 하거나 무리한 일을 하면 땀이 물처럼 줄줄 흐르면서 몹시 지치거나 어지러운 경우가 많고, 식사 후에 졸린 현상이 다른 체질 보다 뚜렷합니다. 이야기를 하여도 자기가 생각한 것을 전하려 하는 경우가 많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도 선택적으로 들으면서도 겉으로는 수긍하는 듯한 경우가 많죠. 많은 사람과 어울릴 적에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있는 경우가 두드러집니다. 일상적으로 순간적인 반응이 느린 것이죠. 예로 친한 친구의 경조사에 비슷하게 친한 사람 보다 더 많이 돈을 내거나 아예 안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비하여 기분이 양극 적으로 행동된다는 겁니다. 東醫寶鑑을 포함한 한의학에서 가장 자세히 관찰되어진 체질이기에 적절한 처방이 많습니다. 약물을 사용하기 전에 큰 체력의 소모 없이 몸에 활력을 넣어 주는 운동이 바람직합니다. 태권도 검도 같은 격투기가 지나치게 여성적일 수 있는 성격을 균형 잡아 줄 수 있지만 체력에 비하여 지나치게 되면 흥분하여 건강에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2. 四象醫學에서 보여지는 건강 기준의 변화.
이전의 한의학은 농사를 짓던 시절이 주된 환경이라 밥을 잘먹고 기운이 센 것이 건강의 기준이었습니다. 실제 病症에 따른 처방의 구성도 소양인․소음인을 태음인처럼 체격을 크게 만드는 것이 주된 치료 목표였죠. 이중에서도 소음인은 기운이 약할 뿐이지 책임감도 강하고 윗사람의 지시도 잘 지키는 편이기에 대부분의 醫書는 소음인 처방이 중심을 이룹니다. 궁중 비방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을 치료한 기록에는 소양인 처방이 많이 있는 편입니다. 태음인의 병에 대하여는 유행성 질환이나 인간이 공통적으로 이기기 어려운 질병을 제외하고는 거의 기록이 없고, 태양인은 사상의학에서도 뚜렷한 치료법을 정리하지 못하셨죠. 다시 말하면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자신의 몸으로 일을 하던 시절에는 태음인이 건강의 기준이었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부지런히 살아가던 일상에서는 가장 병이 적은 체질이었고, 태음인을 기준으로 소음인과 소양인은 허약한 체질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했던 겁니다. 하지만 현대의 생활은 농사를 지어도 기계가 많은 부분을 대신하고, 상업적 요소가 많아졌죠. 자연에 대한 적응력보다는 인간간의 적응이 더 큰 문제가 되면서 소음인과 소양인 체질이 건강의 기준으로 사회적으로는 은연중에 평가받으면서도 자녀에 대해서는 태음인 기준을 적용하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부모 자신은 어느 정도 날씬하며 강단 있고 사교적이기를 바라면서 아이들은 통통하고 잘먹고 성실하기를 하라는 것이죠. 하지만, 100년 전의 사회에서도 東武선생은 사람마다 재주가 다른 것을 관찰하고 체질에 따라 노력할 부분이 다름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아이들 키우면서 또는 사회 활동을 하면서 四象 體質을 바탕으로 타고난 재주와 노력하는 부분을 바로 알 때 그 사람이 게으름을 떠는 것인지 욕심을 부리는 것인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인지를 바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죠.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적에 서로가 신뢰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체질인 사람이 서로를 신뢰하고 이해하려면 四象 體質을 통하지 않고는 무척 어려운 것이지만 四象 體質에 대한 이해는 나의 마음을 앞세우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질책하는 편협함에서 벗어 날 수 있게 하여 줍니다.
3. 四象을 없애라.
우리가 사는 사회는 모든 사람이 주인이고 자신이 판단을 하여야 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태양인이 가장 좋은 체질인 듯한 유행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는 체질마다 장단점이 있는 것이 체질 의학입니다. 사상의학을 정립하신 東武선생의 뜻은 오히려 각자가 지닌 사상의 편벽을 벗어나서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행동,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자기 인식인 것이죠. 東武선생의 이야기를 단순히 한다면 '사상을 내가 알려 줬으니, 스스로 사상을 없애라'입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주가 달라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거나 실천하는 것으로는 체질간에 오해가 깊어지고 좋은 마음이 모진 행동이 되는 것이니, 사상을 알고 자신의 뜻을 전하려면 다른 이들이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애써라 하신 것이죠. 또한 자신의 상식적 판단을 바꾸려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설명에 따라 각자가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기에 이것이면 다된다는 이야기나 그것을 맹신하는 것은 그 대상이 종교든 학술이든 정치든 어렵게 얻은 민주주의에서 각자가 주인이 되지 못하고 각자의 권리를 새로운 우상에게 바치는 종속의 길이기에 100여년이 지난 요즈음에 사상의학을 주제넘게 다시 설명 드리게 된 것이니, 모쪼록 여러분의 건강에 도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끝으로 東武선생이 세상을 보는 마음을 담으신 壽世保元 中의 廣濟論을 전하는 것으로 사상 체질 의학에서 알려주는 평소의 건강 관리법을 보충합니다. (광제론 ; 널리 세상 사람을 구하려면 어찌하는가.)
4. 四象 體質의 건강 관리 방법.
'태어나 16, 17살까지를 유라 하니 본능에 의존하는 태양지세이며 16살에서 32살까지를 소라 하니 더불어 배우는 소양지세이며 32살에서 48살까지를 장이라 하니 꾸준히 행하는 태음 지세이며 49살에서 64살까지를 老라 하니 두루 정리하는 소음지세이다.' 사춘기까지를 본능에 따라 배우고 익히는 기간으로 보셨고, 청년기를 이성으로 새로운 것을 이해하고 익히는 기간으로 보셨습니다. 중년기를 새로운 것을 익히기보다는 자신이 아는 것을 실천하는 기간으로 보셨고, 노년기를 자신의 체험을 정리하는 기간으로 보셨습니다.
'무릇 사람은 유년에 새로운 것을 보고 익히기를 좋아하며 능히 사랑하고 삼가니 봄날에 돋아나는 새싹과 같다. 소년에 날래고 사나우며 능히 달리고 이기니 여름날 쑥쑥 자라는 어린순과 같다. 장년에 정든 것을 좋아하고 능히 꾸미고 바로 하니 가을날 열음 하는 결실과 같다. 노년에 계책을 차근히 하며 능히 은밀함을 지키니 겨울날 뿌리의 간직함과 같다.' 체질이 서로 달라도 나이에 따라 기세가 비슷한 것이니, 사춘기까지는 태양의 기세이고, 청년기까지는 소양의 기세이며 장년기는 태음의 기세이고, 노년은 소음의 기세이다 한 것입니다.
'유년에 글월을 좋아함은 유년의 호걸이요, 소년에 어른을 공경함은 소년의 호걸이요, 장년에 두루 사랑함은 장년의 호걸이요, 노년에 사람될 이를 보호함은 노년의 호걸이다. 재능이 있으며 마음의 술수를 부지런히 행하는 이는, 진정한 호걸로 거듭나며 재능이 있어도 마음의 술수를 행함에 게으른 자는 재능이 다한 것이다.' 태양은 소음에 막연히 끌리고, 소양은 태음에 막연히 끌리고, 태음은 소양에 막연히 끌리고, 소음은 태양에 막연히 끌리니, 마음이 끌리는 것을 부지런히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재능을 바로 발전시키는 길이다 하신 겁니다.
'유년 7, 8살 전에 보고 들음이 이르지 못하여 희로애락이 편벽 되어 병이 되니, 어진 어미가 마땅히 보호해야 하며, 소년 24, 25살 전에 용기가 이르지 못하여 희로애락이 편벽 되어 병이 되면 현명한 아비와 먼저 한 선배가 마땅히 보호해야 하며, 장년 39살 전에 현명한 후배와 진솔한 벗이 도움이 되며, 노년 56, 57살 전에 뜻을 받드는 자손이 도움이 된다.' 한 사람의 성숙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도움을 이야기하신 것으로, 어린아이는 어미가 돌보듯 하여야 하고, 소년기에는 모범을 보여 따르게 하고, 장년에는 같이 협조하면서 서로에게 배울 수 있고, 노년이 되면 자손이 돌보아 드려야 한다 하셨습니다. 노년에 돌봐드리는 것은 어른의 욕심에 따라 섬기는 것이 아니고, 바른 뜻에 따라 필요한 것을 하여 드리고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멀리하는 것입니다.
'덕을 지키려 하는 집안에는 덕을 추구하는 이들이 모이기 마련이고, 덕을 멀리하는 집안에는 덕을 멀리하는 이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善人이 많이 모이면 그들이 추구하는 덕이 사랑으로 나타난다. 惡人이 많이 모이면 그들의 욕심이 더욱 강하여진다. 술의 게으름, 색의 어리석음, 재물의 업신여김, 권세의 속임을 추구하는 집안은 덕을 멀리하는 이들이 많이 모이니, 그 가정을 보존하려는 젊은 이가 병이 난다.' 덕이라는 것은 서로가 존중하고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해주려는 것이고, 이런 덕을 멀리한다는 것은 각자가 편함만을 구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이르신 것입니다.
'권세를 추구하는 집안은 두루 편을 나누어 겨루니, 그 집안은 붕당이 망하게 한다. 재물을 추구하는 집안은 재물을 바라고 아부하는 이들로 자손이 교만하고 어리석어지기 쉬우니 그 집안은 자손이 망하게 한다.' 어른이 덕을 추구하지 않고 권세를 추구하면 아래 사람은 그 행동을 따라서 저희끼리 편을 가르니 집안이 화목하기 어렵다. 어른이 재물만을 추구하면 아래 사람이 재물을 추구하니 쉽게 물려받으려 하고 받은 것을 바로 쓰는 방법을 몰라 마음 데로 쓰면서 행세를 하게 되니 주변에 돈을 바라고 아부하는 사람만 생겨 바른 소리를 듣지 못하니 어리석어 져서 망한다.
'사람들의 가정이라는 것이, 하여야 할 일이 끝이 없고 질병도 끊임없고 좋아함과 싫어함이 서로 다르니 언젠가는 한 울타리가 깨어지니 명철한 사람은 처함에 바른 방법을 행한다.' 가정은 아이를 농사하듯이 키워서 한 어른으로 독립시키는 것이니 가장이 돈으로 힘으로 아이를 누르면 당장은 이길 수 없으니 따르지만 후에 독립을 하면 따르지 않게 된다. 부자유친이니 서로 마음이 통하여 같이 친하게 지내어야 기운의 강함이 바뀌고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이 바뀌어도 어른이 아래 사람을 보호할 수 있고 아래 사람이 어른을 따르는 것이다.
'사치하여 뽐내는 짓, 행함에 게으름 편벽 되이 서두름 마음의 욕심으로 탐하는 짓, 모두가 바로 사는 시간을 갉아먹는다. 사람이 사치하여 뽐내면 꾸민 화사함을 가지려 하고, 사람이 게으르면 취하여 즐기려 하고, 사람이 편벽 되이 성급하면 자기 뜻대로 하려 싸우고, 사람이 욕심으로 탐하면 재물로 죽으리라.' 멀리서 보기에 멋있는 것은 꾸며서 되지만 가까이 지내면서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사람의 참 가치이니 이는 부지런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기를 기다려 행함으로 되어질 수 있다.
'검소하고, 성실하고, 삼가고, 본 받으면 바로 사는 시간이 많아진다. 검소하니 꾸며 보임을 멀리하고, 성실하니 먹고 마심을 정결히 하고 삼가니 자기 뜻대로 함을 피하고 본받으니 재물을 바로 한다. 바로 사는 개인의 삶은 우주의 생명에 유익함이다.' 검소하다는 것은 물질을 아낀다는 것이 돈을 아낀다는 것 보다 타당하다. 돈에 인색한 것이 검소한 것이 아니고 내가 함부로 하면 쓰레기가 되는 물건을 아끼는 것이 검소함이다.
'생활이 곤궁함은 사치한 까닭이요, 행동이 게으름은 취한 까닭이요, 마음이 어지러움은 뜻대로 하려는 까닭이요, 시비가 흐려짐은 재물을 탐하는 까닭이다.' 벌은 것 보다 많이 쓰면 사치이고, 할 것은 안하면서 핑계를 대는 것은 자신의 거짓말에 자신이 취한 것이고, 마음이 안정이 안되는 것은 욕심이 각각 일어나 주인을 잃은 것이고, 경우가 바르지 않은 것은 욕심이 공정함을 흐리게 한 것이다.
'진실한 여자를 존중하면 꾸밈에 절도를 얻고, 좋은 벗을 사랑하면 취함에 밝은 덕을 얻고, 현명한 사람을 본 받으면 뜻을 펴는 바른 방법을 얻고, 노력을 다하였으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면 재물이 온전히 쓰이는 것이다.' '酒色財權은 본래가 경계할 바요, 이를 이르길 감옥의 四벽에 비하였으니, 일신의 바른 삶만이 아닌 집안의 행 불행에 연계될 뿐 아니라 천하가 화평함과 어지러움이 또한 이를 다스림에 있다. 만약 모든 당대의 酒色財權을 이지러짐 없이 쓰이게 한다면 이상적인 세상이 될 것이다.'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면 사람이 벗어 날 수 없는 가장 미혹이 심한 것이 술․이성․재물․권력이다 하셨다. 술은 좋은 벗과 즐기기 위한 것이고, 이성은 같이 가정을 이루기 위한 상대를 만나야 하는 것이고, 재물은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쓰여야 하는 것이고, 권력은 공정하여 억울함을 없애기 위하여 주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근본을 지키면 적절함을 저절로 알 수 있지만 그 자체에 미혹되면 어느 하나도 평생 다할 수 없는 것이니 마음이 평생 벗어날 수 없어 감옥과 같다.
'무릇 사람이 검소하며 성실하고, 삼가며 본받으면 원만하여 자연히 바르게 사는 시간이 늘고, 세 가지를 두루 하면 그 다음, 사치하나 성실하며 삼가나 욕심으로 탐하고, 검소하나 게으르며 모나게 급하나 본받는 두 가지를 잘하면 우러러 삼가면 바로 살고, 게으르게 느슨히 하면 바로 살지 못한다.' 元亨利貞에서 두루 본 받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치우침을 벗어남에 그 길이 있는 것이다.
'무릇 사람은 삼가고 받아들이면 바로 살고, 게으르고 함부로 하면 바로 살지 못하니, 성실하면 바로 사는 시간이 많아지고, 헛되이 탐하면 바로 사는 시간이 적어진다. 배고픈 자의 장은 너무 급하게 먹으면 소화하는 기운이 상하고, 가난한 자의 뼈는 재물을 너무 급하게 얻으면 지지하는 기운이 없어진다. 배가 고파도 너무 배고픔에 연연하지 말고, 가난해도 가난함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할 바를 두루 하여야 받아들여 내 것으로 삼는 재주와 항상 되게 유지하는 재주가 분화한다. 따라서 음식은 배고픔을 능히 참으며 배부름을 탐하지 말고 의복은 서늘함을 능히 참으며 따스함을 탐하지 말고, 근력은 능히 성실히 노동하며 안일함을 탐하지 말고, 재물은 능히 견실히 하며 구차하게 얻고자 하지 말아야 삼가고 받아들임이 된다.' 자신이 감당 못할 행운만을 구하기보다는 노력하는 만큼 얻을 수 있는 성취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운이 좋기를 기뻐하기보다는 주어지는 운을 감당할 수 있는 가를 먼저 헤아려야 한다.
'산곡 사람은 새로운 것을 자꾸 보고 듣지 않으면 삶이 이지러짐이요, 시정 사람은 검소하지 않으면 삶이 이지러짐이요, 농촌 사람은 성실하지 않으면 삶이 이지러짐이요, 학자는 삼가지 않으면 삶이 이지러진다.' '산곡 사람이 견문을 넓히면 복된 삶이니, 보람될 뿐 아니라 산곡의 호걸이요, 시정 사람이 검소하면 복된 삶이니, 보람될 뿐 아니라 시정의 호걸이요, 농촌 사람이 성실하면 복된 삶이니, 복될 뿐 아니라 향리의 호걸이요, 학자가 삼가면 복된 삶이니, 복될 뿐 아니라 사림의 호걸이다.' '만약에 "농부는 본디가 힘들여 일하여 가장 성실한 자이니, 어찌 성실하지 않다 하며 선비는 본디가 책을 읽으니 가장 삼가는 자이니, 어찌 삼가지 않는다 하는가 ?" 한다면, 이르기를 제게 주어진 농토를 다스림만으로 근심하는 농부는 선비에 비하면 진정 게으른 것이요, 항시 서책을 읽으니 마음에 헛된 자긍심만 있으니, 글자는 모르나 항시 행하는 바를 삼가는 농부에 비하여 진정 삼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항상 되게 행하되 새로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고, 새로이 배우되 항상 되게 익히며 실천하며 삼가면 재주가 두루 분화하며 신체의 기운이 튼튼하여 진다.' 사람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의 편벽도 스스로 안주하지 않아야 바른 자세이다. 또한, 산곡 사람은 소음인, 시정 사람은 소양인, 농촌 사람은 태음인, 선비는 태양인을 상징하여 비유하신 가르침이다.
'꾸며 잘난 체하는 마음은 여염 생활을 멀리서만 보아 가정을 소홀히 여기고, 안목만 높아져서 산업의 어려움은 몽매한 채 재물의 쓰임을 용렬하게 하니 이성에 취한 듯이 평생을 고치지 못한다.' '게으르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은 추하고 사나워서 조금씩 공들일 생각은 하지 않고 헛되게 거창한 꿈만 꾸니 그러한 마음은 성실하지 못하여 그 몸을 술에 의지하고, 마땅히 하여야 할 바를 피하려 하니, 무릇 게으른 자는 반드시 술을 가까이하니 술에 취한 이만 보아도, 위인이 게으르고 그 마음이 거칠고 사나움을 알 수 있다.' '술과 색이 사람을 죽임을 사람들은 술독이 장을 상하고, 방뇨가 정을 상하여 그렇다 하나 이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름이니 술에 빠진 이는 그 몸을 부지런히 하지 않으니 근심이 산과 같고, 색에 빠진 이는 이성의 깊이 취하여 근심이 칼과 같다. 마냥 엉킨 일들의 실마리와 이지러진 마음이 술독과 여로와 함께 사람을 망가트림이다.' '제정신이 아닌 남자는 음탕한 여자를 좋아하고, 음탕한 여자는 제정신 아닌 남자를 좋아하니, 어리석은 남자는 질투 많은 여자를 좋아하고, 질투 많은 여자는 어리석은 남자를 좋아하니, 사물의 이치를 보아 음탕한 여자와 제정신 아닌 남자는 배필이요, 어리석은 남자와 질투 많은 여자는 배필이니 이런 이들은 덕을 무시하고 천하게 지내는 이들의 배필이지 바로 살고자 하는 사람의 배필이 아니다.' '사람의 죄악에서 음탕함과 질투 많음이 가장 으뜸이나, 세상 사람들이 질투가 무엇인가를 잘 모르며 단지 첩을 둠을 싫어한다 하나 바로 사는 사람의 가장 중함이 삶을 온전히 갈무리함이니, 부인은 마땅히 귀인의 첩 두는 것을 싫어함이다. 집안이 어지러워짐은 모두가 남자가 다른 여자에 마음을 둠에 있으니 부인은 남편의 건강을 염려하나 첩은 마음을 사로잡음에 우선하여 남자의 건강은 차지하니 첩의 아첨하고 꾸밈을 싫어함은 현명한 덕이니, 어찌 질투라 하겠는가.' '詩經에 이르기를 “밋밋한 나무 가지 잎사귀 싱싱하네, 이 색시 시집가면 그 가정의 복 덩어리” 그 가정에 마땅한 사람이라 하니, 현명함을 부러워하고 덕을 바로 함을 즐겨함이 가정에 마땅한 사람이라 이름이요, 가정에 마땅하지 않은 자는 현명함을 그 단점으로 깎아 내려 저와 같다 하고, 제가 아니함에 능히 함을 싫어하는 자니 가정에 마땅하지 않다 이름이다.' 멀리서 보아 향기롭고 아름답기는 장미가 아름답다 하지만 보기에 밋밋하고 싱싱한 복숭아는 그 결실이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니, 작게는 가정에 크게는 나라에 다른 이의 잘함을 부러워함은 따라 익히고 배우는 노력이 있으나 단점을 핑계로 깎아 내림은 자신은 익힐 것이 없으니 사람에게 아무 도움이 안되는 것이다.
'무릇 사람들의 가정에 우환이 끊임없고 주검이 이어지고, 아이들이 미욱하고 재산이 마구 줄음은 어리석고 질투하는 부부에 있음 보다 현명함을 깎아 내리고 능함을 싫어함에 있다.' '천하의 생명을 죽이는 기운은 현명함을 깎아 내리고, 능함을 싫어함에 가장 많고, 천하의 생명을 번성하는 덕의 기운은 현명함을 부러워하여 본받으려 하고 능함을 즐겨 하여 배우려 하는 것 보다 큰 것이 없다. 질투하지 않으면 악이 많을 리 없고, 부러워 본받음을 좋아하지 않으면 선이 많을 리 없다.' '옛적의 기록을 돌아보아도 천하의 병은 질투에서 나오고, 천하를 건강히 함은 부러워하고 즐겨 좋아서 본받음에서 나오니, 질투하면 천하에 병이 많고, 好賢樂善하면 천하를 고치는 藥이다.' 체질이 서로 다르면 재주가 서로 다르고, 기운의 쓰임이 다 다르다. 이를 머리로 체질을 알아 다 이해하기보다는 다른 이의 잘하는 것을 부러워하여 배우고, 다른 이의 모질음을 내가 하지 않도록 삼가면 모든 체질의 재주를 내 한 몸에 두루 지니니 사상의 편벽이 없어져서 건강하고 행복하나, 다른 체질의 단점을 핑계로 자신의 편벽 됨에 안주하면 자연히 몸에 병이 들고 행복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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