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거주 북한이탈주민 삶의 질
이은현*, 문성미**
* 이은현(연구책임자): 아주대학교 보건대학원 조교수
경기도 수원 영통구 원천동 산5번지(443-721)
아주대학교 보건대학원
** 문성미(연구원): 시간강사
I. 서 론
1. 연구배경 및 필요성
북한이탈주민이란 흔히 사용되는 ‘탈북자’와 같은 의미로,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러한 북한이탈주민의 국내 입국 규모는 1990년대 초반에는 약 10명 내외로 소수였으나, 1999년 이후 급증하기 시작하여 해마다 계속적으로 증가하여 2004년에는 1,894명에 달하여(그림 1) 2004년 12월 총 6,304명의 북한 이탈주민이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통일백서, 2005). 국내로 입국하는 북한이탈주민은 주로 남자, 군인으로 군사분계선을 통해 입국하였으나, 최근에는 외교관, 해외무역상사원, 관리직과 전문직, 유학생, 노동자, 벌목공 등 여러 계층의 사람으로 확대되었고 입국경로도 다양화 되고 있다(양영식, 2003).
그림 1. 북한 이탈주민의 국내 입국 현황
90년대 후반을 중심으로 국내거주 북한 이탈주민이 증가하자 정부에서는 이들이 안정적으로 조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등과 같은 관련법을 제정하고, 각종 지원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이탈주민을 위한 대부분의 조치들은 정착금 지원 및 사회적응기관 설립 같은 사회구조적 대책 마련에 집중되어 왔고(전우택, 2000), 보건·의료적 측면의 대책 마련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소홀한 실정이다.
중국 내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 4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서일 등, 1999)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질병을 앓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70%나 되며 특히 위장병, 심장병, 장티푸스, 파라디푸스 등의 순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옌벤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 북한 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조사 한 결과(박종연 등, 2000), 영양결핍과 그로 인한 빈혈 및 저항력이 약화되었고 결핵,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같은 전염성 질환에 쉽게 이환되었으며 위장병과 같은 만성질환과 심한 노동 및 탈북과정에서 발생한 관절통, 요통, 신경통 등이 주요 질병양상으로 나타났다. 남한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질병으로는 주로 근골격계 및 위장질환이 주를 이루고 있다(김경철, 2004). 즉, 북한이탈주민들은 전염성 질환 및 근골격계나 위장질환 같은 만성질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거주 북한이탈주민 17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실태를 조사한 연구(이윤환 등, 2000)에서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내 북한 난민들 대다수가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고 이것이 만성화 또는 장기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하였다. 주요 정신장애로는 전체의 90.0%가 불안증을 91.1%가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남한과 북한은 50여년의 분단과 각기 다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배경을 가진 채 살아왔고 이로 인해 이념체계, 규범적 가치의식, 선호되는 가치 등에 있어서 매우 이질적이다(임현진과 정영철, 1999). 따라서 남한에 이주한 북한 이탈주민은 이러한 이질적인 남한 사회 안에 적응해야하는 큰 부담을 안고 있다. 즉, 국내 거주 북한이탈주민은 남한이라는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심리사회적 고통을 겪게 된다. 연구에 의하면, 북한 이탈주민은 국내 입국 후 정체성 및 가치기준의 혼란이나 괴리감 등의 심리적 충격을 경험한다고 한다(이기영, 2003). 전우택 등(1997)이 보고한 북한 이탈주민의 남한사회에 대한 적응 문제를 살펴보면 외로움, 남한사회에 대한 지식과 이해의 부족, 심리적 적응의 어려움, 의식구조에 따른 적응상의 어려움 등이 주요 문제로 대두되었다.
지금까지 북한 이탈주민 보건·의료관련 연구는 주로 중국과 같은 재외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실시되었고, 국내 거주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한 보고는 미비한 실정이다(김경철, 2004). 따라서 국내 거주 북한이탈주민을 중심으로 연구가 실시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북한이탈주민의 건강문제는 크게 신체적, 정신적, 심리사회적 영역으로 나뉘어 연구되어왔다. 따라서 좀 더 포괄적 이해를 위한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러한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하기 위해 건강지표로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 ‘삶의 질(quality of life)’이다. 현대사회에 있어 삶의 질이란 용어는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1960년대 미국 Johnson 대통령의 Great Society Program이 실시되던 때에 미국에서 정식 상용용어로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당시의 삶의 질이란 의미는 좋은 인생은 단순히 경제적 풍요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 후 삶의 질은 사회적 정책과 건강관리에서도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고, 1978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모든 인간은 신체적 뿐 아니라 심리사회적 보호와 적절한 삶의 질을 영위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하여 삶의 질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국내 거주 북한이탈주민 삶의 질에 대한 연구는 두개가 보고 되었는데 모두 양적연구방법(quantitative research method)을 사용한 연구이다. 이와 같은 양적연구에서 삶의 질은 ‘sense of well-being(Cambell, 1981)’나 WHOQOL-BRIEF(WHOQOL group, 1998)를 이용하여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을 측정하였다. 하지만 인간의 삶의 질이란 그들이 처한 사회문화적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문화권내 사람들을 위해 개발된 삶의 질 측정도구를 다른 문화권 내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시 사용하고자 하는 문화권에서 측정도구의 신뢰도와 타당도를 검증한 이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위의 측정도구들은 남한과 북한이라는 이중적인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을 기반으로 생활하는 독특한 집단인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측정도구의 타당성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과연 연구결과가 북한 이탈주민 삶의 질을 얼마나 잘 반영하였는지가 의문이다.
북한이탈주민 삶의 질을 측정할 수 있는 신뢰도와 타당도가 수립된 도구가 없는 현 실정에서 이들이 느끼는 삶의 질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심도 있게 탐색하기 위해서는 삶의 다양한 맥락 속에서 인간의 제 현상을 포괄적으로 탐구할 수 있고, 실무에 응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질적연구방법(qualitative research method)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질적연구방법 중 특히 상징적 상호작용의 견해에 바탕을 두었으며, 인간이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문제에 초점을 두고, 사회문화적 맥락 내에서 속성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이론방법(grounded theory method)을 이용하여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삶의 질에 대한 의미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2. 연구목적
본 연구의 목적은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이 경험하는 삶의 질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며 구체적인 목표는 다음과 같음(그림 2).
1)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을 구성하는 개념(concepts)과 범주(categories)를 규명한다.
2) 규명된 범주들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패러다임 모형(paradigm model)을 제시한다.
3) 북한이탈주민 삶의 질을 설명하는 핵심범주(core category) 제시한다.
4) 북한이탈주민 삶의 질 의미를 파악한다.
그림 2. 연구의 구체적 목적
II. 연구방법
1. 연구설계
본 연구는 국내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을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파악하기 위해 근거이론방법(grounded theory method) (Strauss & Corbin, 1998)을 적용한 질적 연구이다.
2. 연구참여자 선정
본 연구의 참여자들은 남한에 정착한 성인 북한이탈주민들로서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들이었다.
○ 1990년 이후 북한에서 남한으로 귀순한 사람
○ 18세~64세의 성인
○ 남한 정부기관의 허락을 받고 현재 남한 사회에 직접 들어가 생활하고 있는 사람
○ 연구 참여 의사를 물어보아 참여할 의사가 있는 사람
○ 질문에 대하여 단순히 기계적인 응답 이상으로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표현 할 수 있는 사람
연구 참여자를 만나기 위해 한 북한이탈주민 단체를 방문하여 연구의 목적, 면담 내용과 방법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연구 참여가 가능한 사람들을 소개받았다.
연구자는 자료수집과 분석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나타난 개념과 범주들을 중심으로 이들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사건 혹은 대상자를 찾아가는 이론적 표본추출(theoretical sampling)을 사용하여 면담에서 새로운 범주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때까지 계속 새로운 참여자를 선정하였다. 선정된 참여자는 총 15명으로 남자 6명, 여자 9명이었고 연령은 20세부터 56세까지 분포하였다. 남한에 정착한 기간은 3개월부터 10년까지였다. 북한에서의 교육 정도는 전문대학이상 졸업이 6명, 대학교 중퇴 1명, 고등학교 졸업 7명, 고등학교 중퇴 1명 이었다. 현재 직업은 직장인 1명, 자영업 3명, 북한이탈주민단체 3명, 취업 준비 중 8명 이었다.
3. 자료수집
자료수집기간은 2005년 8월부터 2005년 12월까지였다. 본 연구의 자료는 연구 참여자와의 일대일 심층면담을 통해 수집되었다. 심층면담은 Spradley(1978)와 McCracken(1988)이 제시한 절차와 전략들을 이용하여 초기에는 광범위하고 설명적인 질문을 통하여 연구 참여자들이 인지하는 삶의 질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연구자의 편견이나 선입견을 최소화하였다. 연구 참여자들로부터 보다 풍부하고 생생한 자료를 얻기 위하여 “현재 남한에서의 삶이 어떠한지 말씀해 주십시오,” “남한에 정착해서 사는 동안 어려움을 경험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라는 개방적인 질문을 주요 질문으로 하였다. 면담은 현재 남한사회를 살아가는 참여자들의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추었다.
면담 진행 동안에는 되도록 개방적이고 비구조적인 질문을 통하여 연구참여자가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고 충분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이전 참여자와의 면담을 통해 나온 내용을 추가적으로 질문하여 같은 경험을 하였는지 혹은 그것에 대한 또 다른 경험이 있는지를 질문하였다. 면담 도중 연구자의 견해나 가치관이 개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연구 참여자의 말에 대해 비판적이고 해석적인 태도는 지양하였다. 면담을 진행하는 동안 연구 참여자의 반응이나 연구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내용들은 노트에 기록하여 자료분석 시 참고하였다.
면담은 참여자들의 편의를 고려하여 북한이탈주민 단체의 회의실, 직업학교 교실, 학교 세미나실 등에서 이루어졌다. 면담 시간은 60분~90분 소요되었으며 면담 내용은 참여자의 동의 하에 녹음되었다. 면담이 끝난 후 연구보조원이 녹음테이프를 그대로 녹취하였으며, 작성된 녹취록은 연구자가 다시 한 번 녹음테이프를 들으면서 확인 및 수정하여 이를 원자료로 사용하였다. 한편 하나원 건강관리담당 관계자의 면담은 녹취하지 않고 연구자가 면담 내용을 메모하였다.
4. 윤리적 고려
연구자는 연구 참여자에게 연구목적, 연구방법, 심층면접 내용, 녹음을 하는 것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또한 연구결과는 연구의 목적 이외에는 사용되지 않을 것이며 연구 참여자의 개인적인 정보는 절대 비밀이 보장됨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연구 참여자가 원할 경우 언제든지 면담을 거부하거나 중단할 수 있음을 알렸다. 연구에 참여할 것을 동의한 사람들은 연구 참여 동의서에 서명하였다.
5. 자료분석
자료분석은 Strauss와 Corbin (1998)이 제시한 근거이론방법의 절차를 따라 자료수집과 동시에 이루어졌고 개방코딩, 축코딩, 선택코딩 과정을 실시하였다. 자료분석을 진행하는 동안 연구자는 계속적으로 자료들을 서로 비교하면서 유사점과 차이점을 면밀히 검토하는 지속적인 비교 방법을 이용하였고, 면접을 진행하면서 생성된 범주들을 확인하였으며, 더 이상 새로운 범주가 나타나지 않을 때까지 면담을 계속 진행하였다.
개방코딩에서는 각 연구 참여자와의 면접에 대해 녹취록을 줄마다 읽으면서 그 의미를 파악한 후 의미에 맞는 명명화를 시도하였고 그 결과 개념들이 생성되었다. 개념은 되도록이면 연구 참여자들의 생생한 경험을 진술한 표현 그대로 도출하려고 하였다. 또한 생성된 모든 개념들을 분류, 비교하고 유사한 개념끼리 묶는 작업을 통해 범주를 형성하였다. 축코딩에서는 각 범주들 간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최종적으로 선택코딩에서 “(이 연구는).....에 관한 것인가?” 하는 핵심범주를 도출하였고, 이를 중심으로 주요 범주들을 연결 및 통합하는 절차를 수행하였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을 파악한 후 이를 정련화 하기 위해 다시 근거자료로 돌아가 확인하였다. 자료수집 및 분석 과정 동안 연구자에게 떠오른 생각들은 메모를 하여 추후 자료수집 및 분석에 활용하였다.
6. 연구의 신뢰성
연구자는 신뢰할 수 있는 질적 연구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Lincoln & Guba (1985)가 제시한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신빙성(credibility)을 높이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북한이탈주민들의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이끌어내기 위해 성별, 연령, 직업 등 인구사회학적 배경을 고려하여 참여자들을 선정하여 이들이 가진 경험을 충실하고 생생하게 서술하고자 하였다. 감사가능성(audibility)을 높이기 위해 Strauss와 Corbin (1998)의 근거이론방법의 절차를 따랐고 자료분석 시에는 개념과 범주에 대한 연구자들의 일치된 의견을 보일 때까지 논의를 하였으며, 북한이탈주민들의 경험을 잘 이해하고 있고 연구결과의 타당성을 검증해 줄 수 있는 하나원의 건강관리담당 관계자 1명을 면담하여 연구의 결과에 대해 논의하였다. 확인가능성(confirmability)을 높이기 위해 면접과 자료분석 과정에서 연구자의 주관적 편견을 배제하도록 노력하였으며 비구조적인 면접으로 최대한 참여자들의 경험을 그대로 반영하였다. 또한 연구결과를 새로운 참여자와의 면담을 통해 확인하였다. 그리고 연구결과에서 연구 참여자의 인용문들을 제공함으로써 연구결과의 정확성과 일반성에 대해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Ⅲ. 연구결과
1. 삶의 질 개념 및 범주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삶의 질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본 연구결과 48개의 개념과 7개의 범주가 도출되었다. 7개의 범주는 ‘적응’, ‘심신의 조화’, ‘의식구조 차이로 인한 갈등’,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사회적 지지’, ‘노력하는 삶’, 그리고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 이었다(표 1).
<표 1> 개방코딩에서 나타난 개념과 범주
범주
하위범주
개념
적응
언어 적응
외래어와 한자사용의 어려움
말투의 차이로 인한 스트레스
스티그마
심리적 적응
정신적 압박감
자신감 부족
정체성 혼란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
실망감
물리적 적응
자연환경변화
육체적으로 힘든 생활
심신의 조화
심리적 조화
불안
우울
분노
쫒기는 마음
신체적 조화
두통과 집중력 저하
전신통증
불면
소화불량
기운과 에너지 부족(피로)
연속되는 감기
관절 통증
의식구조 차이로
인한 갈등
집단 위주의 폐쇄적 사고방식
강한 자존심
이분법적 사고
공격적 태도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불안정한 직업
인맥 없음
사회생활에 필요한 교육내용이 충족되지 않음
수용적이지 않은 남한사람들의 태도
사회적 지지
관계적 지지
가족지지
타인의 지지
제도적 지지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요구
의료보호 지속 요구
기초생활보장지원금제도 개선 요구
교육기회확대에 대한 요구
사회적응을 위한 기본교육 강화 요구
노력하는 삶
적극적 태도
수용적 태도
긍정적 태도
자기중심잡기
자아존중
대인관계 넓히기
보람된 활동 추구하기
지식과 기술 배우기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
희망이 있는 삶
안정된 삶
융화된 삶
국내에 입국한 후 2~3개월의 하나원 교육을 마친 참여자들은 본격적으로 남한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을 시작하게 된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언어 적응이다. 남한과 북한의 말과 글은 기본적으로 같음에도 불구하고 50여년의 분단 기간 동안 사용되는 용어와 말투가 달라져 있다. 이런 언어차이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경험하고, 사회적 스티그마를 경험하였다. 심리적 적응에서는 기댈 곳 없고 경제적 자립을 해야 하며 책임이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데서 오는 정신적 압박감과 자신감 부족, 순조로울 것이라고 기대했던 남한에서의 삶이 실제로는 다른 모습이었다는 것을 느끼면서 오는 실망감 등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이 이들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리적 적응에서는 북한보다 훨씬 복잡하고 오염된 환경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한 불편감 등을 경험하였다.
적응을 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심신의 조화였다. 심리적 조화에서 참여자들이 경험하는 것은 불안, 우울, 분노였는데 이와 같은 기분 상태는 주로 언어 적응과 심리적 적응을 해 나감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탈북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은신과 도피생활을 하였는데 이 때에 공안에게 쫓기던 충격이 남아 있었다. 이와 같은 쫒기는 마음은 남한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적 조화에서 참여자들이 주로 경험하는 것은 두통과 집중력 저하, 전신통증, 수면장애, 소화불량, 기운과 에너지 부족(피로), 연속되는 감기 등이었다. 특히 관절통은 모든 참여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증상으로 나타났다. 이는 관절통은 북한에 있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신체증상으로 현재 남한에서의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자들의 삶에서 적응과 함께 심신의 조화를 잘 이끌어 나아갔을 때 이들은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된다. 희망은 삶을 이끄는 목표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하고 남한사회에 잘 융화되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적응 및 심신의 조화가 잘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가 갖추어질 필요가 있었다. 우선 참여자들은 북한에서 이미 사회화 되어, 북한체제에 맞는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의식구조는 참여자들의 삶에 고착되어 참여자들의 태도와 행동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북한과는 매우 다른 체제인 남한에서 이러한 의식구조의 발현은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어 이러한 갈등이 적응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또한 불안정한 직업, 부족한 인맥, 남한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교육내용이 충족되지 않는 등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이 적응과 심신의 조화가 이루어져 가는 과정에서 작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참여자들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등의 노력하는 삶을 살 때 적응과 심신의 조화는 성공적으로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이 서로 의지하며 지지해 주고 이웃이 도와주며 제도적으로 북한이탈주민에게 보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 또한 중요한 요소로 나타났다. 각 범주와 그에 따른 개념들에 대한 구체적인 참여자들의 진술 내용을 다음에서 제시하였다.
1) 적응
참여자들은 남한의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경험하였다. 참여자들의 진술을 통해 적응을 크게 언어 적응, 심리적 적응, 그리고 물리적 적응에 대한 경험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1) 언어 적응
남한과 북한의 언어는 문자도 동일하고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는 북한과 달리 외래어와 한자가 일상적으로 통용되고 있어 참여자들이 이를 배우거나 활용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일상적으로 흔히 쓰이는 용어를 모르는 것이 이들의 삶을 힘들게 하였다. 특히 정착 초기에 있는 참여자들일수록 언어 적응 문제가 부각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였던 어려움을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가장 힘든 건 언어죠. 외래어, 영어를 너무 많이 쓰니까. 그리고 책자 같은 것을 보려고 하면 한문이 많이 써 있고, 신문을 보려고 해도 한자가 너무 많아서 읽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게 너무 힘들어요. 세상에 우리 같은 사람은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컴퓨터 학원 들어갔다가도 영어 때문에 못 하겠어요”
“참 힘들어요. 말을 많이 모르니까. 외래어를 많이 쓰잖아요. 어떤 말은 못 알아듣잖아요. 사장님이 뭐 사오라고 그러면 몰라가지고 딴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물어보고도 잘못 사온 적도 있어요”
“가장 힘든 게, 일단 모르니까. 우선 정보에 대해서 모르잖아요. 모든 것이 새롭고 하니까. 모든 생활에서 일체 정보를 알아야 하잖아요. 직업을 구하려고 해도 뭐를 하나 사려고 해도 알아야 하잖아요. 맨 처음에 와 가지고 제가 식당에서 일을 하는데 커피를 타 오라고 그랬어요. 원두커피 무슨 커피를 타 오라고 했는데 무슨 커피인지 커피라는 말만 알아듣고 나머지는 제가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손님 쪽에서는 왜 못 알아듣느냐 이거죠. 그게 서비스가 안 좋게 받아들여지는 거예요. 그런 사소한 것부터 힘이 들더라고요”
한편 말투(발음과 억양)에서 남한과 북한이 서로 다른 부분이 많아 남한의 말투는 참여자들에게 생소하였고, 참여자들의 말투는 남한사람들에게 생소하였다. 참여자들이 사용하는 말투는 남한 사회에서 이들이 북한이탈주민임을 알게 해 주는 요소였다. 북한식 말투는 모든 생활(직장을 구하는 것, 장 보러 가는 것, 옆집사람과 상대하는 것 등 아주 일상적인 생활)에서 남한사람들과 부딪히게 하는 요소였다. 따라서 이들은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을 하는데 자신감이 없고 태도가 소극적이 되기도 하였다. 한 참여자의 말에 의하면 북한식 말투는 아무리 고치려고 노력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 것이라며 힘들어하였다. 이에 대한 참여자들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중국에서는 중국말을 잘 하니까 다 중국 사람이려니 해요. 오히려 그게 더 편하더라고요. 제가 중국말을 잘 하니까. 그런데 여기는 제가 말을 모르니까, 한국말이 북한말하고 억양이 다르잖아요. 어디를 가면 북한에서 왔어? 교포야? 이러면 기분이 없어져요. 사람은 역시 제 땅에서 자라고 제 땅에서 살아야지. 이런 생각을 여기 와서 처음 느꼈어요. 저는 중국에 있을 때는 진짜 그런 것은 못 느꼈어요.”
“언어가 잘 안되잖아요. 말을 하다보면 사투리가 금방 나와요. 상대방이 우리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상한 눈길로 보는 것이 있어요. 그런게 싫죠. 물론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 말이 이상하네!’ 하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쳐다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반응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죠. 아,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나를 쳐다보지? 내 말이 이상했나? 저도 모르게 그런 것이 있는 거예요”
“저는 한 1년 정도 지나서야 겨우 모르는 것을 물어보게 되었어요. 언어 때문에 내가 제대로 말을 하는지 상대방이 말을 제대로 이해할지 몰라서. 처음에는 동사무소에 가야 되는데 끝끝내 물어보지를 못해가지고 해 넘어서야 갔었어요. 동사무소 담당자가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막 울었어요. 엄마도 이제 여기에 온 지 반년 넘었는데 수퍼에 가게 되면 감자 1 kg 사고 이거 얼마예요 담아주세요 할 수 있는데 안하거든요. 제 뒤에서 이거 얼마인지 물어봐라 하시거든요”
또한 언어로 인해 북한이탈주민임이 드러남에 따라 남한사람들은 참여자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를 경험한 참여자들의 진술을 통해 남한사회에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스티그마가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북한사람이라는게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제가 수퍼에서 일하고 있는데 다 와서 구경해요. 저를 이상하게 쳐다본다니까요. 너무 신기해 하면서 ‘어머 어머 어머’ 하면서 막 놀라는거 있죠. 제 이마에 뿔이 안 났는데 뭐가 그리 신기한지... 그러면서 용기 좋은 사람은 별별걸 다 물어요. 돼지고기 먹냐, 닭고기 먹냐, 진짜 볏짚을 먹냐 뭐 이상한 거를 다 물어봐서 정말 기분이 없어요. 뭐 먹으려고 남한으로 온 사람처럼 취급한다니까요”
“내가 조그만 사업을 한 적이 있는데 남한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말 잘 듣고 잘 하다가 내가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이상하게 행동하더라고요. 북한 사람 말은 듣기 싫다는 그런... 자꾸 태클을 걸어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면접할 때 ‘어디서 왔어요?’ 이것부터 물어보거든요. 그러면 거기서 한 풀 꺾이는 거예요. 상대방이 일단 의심하고 들어가는 거죠. 모든 것에서 그게 안 되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과 똑같이 내 능력만큼 인정받는 것이 아니고 ‘어디서 왔어요’ 말 한마디에... 나는 무조건 할 수 있는데, 이런 일은 할 수 있는데 그 사람들은 생각이 달라지고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그렇더라니까요”
“애기 아빠가 직업학교 졸업을 했는데 취직을 못했어요. 경력도 없고, 경력같은 것 무관하다고 가게 되면 벌써 이게 말투가 틀리다고 그런는 거예요. 어디서 왔냐고, 교포냐고... 교포 아니라고 주민등록증 보여주면 말투가 이상하다고 그러거든요. 애기 아빠 같은 경우에는 더구나 한국말을 잘 못해요. 흉내도 잘 못 내거든요. 그래가지고 북한에서 왔다고 그러면 채용을 안해요. 그래서 면접 보러 정말 많이 다녔거든요. 너무 실망하고 있어요”
“점잖으신 분들은 차별을 안 하는데 한 마디로 무식한 사람들 있잖아요. 저희들이 무시당할 사람은 아닌데 무시하고 그래요.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을 깔보고 그런게 있죠. 저는 그런걸 그냥 지나치려고 하는데 그럴 때는 상처로 박혀지더라구요”
(2) 심리적 적응
적응 과정 중 심리적 적응에서 참여자들이 경험하는 것으로 우선 정신적 압박감을 들 수 있다. 참여자들은 능력, 기술, 경제력 등을 비롯해 아무런 기반이 없는 남한 사회에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것에 대한 정신적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남한에서는 인정받지 못하였고 직업을 찾기 위해 새로이 직업교육을 받아야 하는 현실도 이들에게는 정신적 압박으로 다가왔다. 특히 남한사회에 정착한 기간이 짧은 참여자들일 수록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사람이 숨을 못 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데... 탈북으로 나와서 사는 정신적 압박감에 숨을 못 쉬겠더라구요. 어릴 때부터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것도 없었겠지만 조선에서 태어나고 철들어서 한국을 보니까 이런 압박감을 받는 거예요. 북한 사람들 다 힘들어해요. 한국은 진짜 어느 구석을 가든지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만큼 못사는 사람은 잘 살게, 잘 사는 사람은 잘 사는 것을 유지해야 하니까 그만큼 피곤한 것을 계속해야 하잖아요. 그만큼 힘들고”
“내가 열심히 벌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배겨내기 힘들다 이런 생각을 항상 머릿속에 가지고 있으니까. 중국에서는 이런 생각 안했어요. 거기는 저보다 못한 사람 많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안 그래요. 내가 하루라도 못 벌고 안 그러면 남보다 입을 수 없고, 먹을 수 없고. 저는 지금 밑바닥이잖아요. 엄청 밑바닥에 살잖아요. 거기서부터 일어나야 하니까 힘들어요.
“항상 긴장을 하면서 생각을 많이 가지고 살아요. 중국에서는 지금 여기서 사는 것보다 낫다고 볼 수 있어요. 중국이 더 나아요. 잡혀가는 것만 없다면. 여기 와서는 항상 정신적으로 집중을 해야 한다,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어디서든지 안정을 안 해줘요, 사람 실력을. 잘 쓰지를 않더라구요. 컴퓨터도 잘 안 되고. 어제 저녁에는 생각이 너무 포화되어서 (직업학교에서) 배운게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북한에서 패션 디자인만 했는데 여기와서 배우는게 회계, 세무 뭐 이런 거거든요. 회계가 뭔지 그런걸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계산만 하는 거죠. 제가 그것을 계속 배워야 할지 생각하다보니 사람 미치겠는거죠”
“아직까지도 정신이 제대로 서 있지가 않죠. 생소한 땅에 오니까. 중국이나 조선에 가면 토대가 딱 잡혔으니까 어디를 가나 무슨 일이 있구나 딱 알 수가 있는데 여기서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이런걸 아주 어릴 때 겪었으면 차라리 모릅니다 할 수 있겠는데 그런데 이거는 세상을 다 알아버렸을 때 겪었으니까 또 공부하기 힘들잖아요”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자신감이 부족한 것 또한 참여자들이 심리적 적응에서 경험하는 것이었다. 한 참여자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장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문제하고 하였다. 이에 대해 참여자들이 진술한 것은 다음과 같다.
“매사에 자격지심 같은 것이라던가... 내가 말 해놓고 다른 사람이 웃으면 내가 바보가 된 것은 아닌가... 그런 자격지심 같은 것. 제가 어떤 일을 해도 제대로 한 것인지 자신이 없는 거죠. 여기 오고 나서 한 5년 정도는 그렇구요, 지금은 10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저는 제가 한 일에 확신이 좀 생기는 것 같아요”
“마음에 모든 생활을 편하게 해야 하겠는제 아직까지 그런 것이 안 되나봐요.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나를 어떻게 볼까, 상대방이 사장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런 식으로. 같이 일을 하는 직원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식으로...”
참여자들은 남한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남한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고 스스로도 남한의 주류사회에 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남한에 정착한 지 오래된 사람에게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와 같은 정체성 혼란 역시 참여자들이 심리적 적응 측면에서 경험하는 것이었다.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그래도 내가 북한에서 굉장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탈출해서 남한에 와서 뭔가 좀 해봐야겠다 하고 왔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아니다 이거죠. 북한에서 차별받으면서 살다가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남한으로 왔는데 오고 나니까 그건 네 사정이지 전혀 우리하고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런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먹고살려고 하니까 갑자기 자기 정체성이 뒤바뀌는 거죠. 뭔가 변화를 바라고 왔는데 여기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남한 사람이 아닌 것이고 그런 정체성이 굉장히 갈등을 느끼는 거죠”
“아무리 내가 적응을 했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겉돌거든요. 기름하고 물이 섞이지 않듯이. 남한에 피붙이가 있으면 제사, 명절 이럴 때 같이 하다보면 여기 문화를 완전히 알게 되거든요. 그런 경우가 아니면 거의 섞이지를 못해요. 아무리 5년 10년 있다고 해도 그냥 북한에서 가지고 있던 습관 그대로 가진 채로 고생해요. 저는 그런 것을 발견했어요”
참여자들 대부분은 북한에 배우자, 형제자매, 자식 등 남겨진 가족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북한에 두고 탈출한 것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북한에 남겨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 또한 심리적 적응에서 참여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가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말하기를 꺼려하였고 다음과 같이 짧게 진술하였다.
“북한에 제 가족들이 아직 있습니다. 굉장히 아프죠. 아프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다...”
“평화시대가 낳은 이산가족이죠. 북한에 있는 가족이 보고 싶고, 여러 가지 죄스러운 마음이 많습니다”
“할머니 손에 자식 맡겨놓고 온 사람 뭐... 마음 아픈 사람들 엄청 많아요. 다 사정이 있고 마음이 아프고 상처가 있어요. 자식을 두고 왔다던가...”
참여자들 대부분은 남한에만 오면 뭔가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고 남한에 잘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남한에 정착하게 되면서 얼마 안 있어 허물어졌고 참여자들은 남한사회에 대한 실망감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을 경유해서 온 참여자들 중에는 차라리 신분보장이 안 되는 것을 제외하면, 스트레스가 없는 중국에서의 삶이 더 나았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언어 적응’에서 ‘스티그마’에 대한 참여자들의 진술에도 있듯이 취업 시 북한사람이라고 채용을 거절당했을 때에 실망감을 느끼게 되었다. 한 참여자는 남한사회에 대한 실망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처음에 딱 왔을 때요 비행기 탔을 때 여기는 대한민국이라고 그러잖아요. 중국에 있을 때, 여기만 오면 행복이다 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왔거든요. 처음에 비행기 타고 딱 내렸을 때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남한에 왔는데 조사하고 그러잖아요. 조사하는데, 편하게 지내는 것 그거 하나는 좋은 것 같아요. 하나원에서 교육 받고 나오면서 나오기만 하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거든요. 중국에 있을 때 생각한 것들이 틀려요. 나오면 모든 것이 금방 다 해결될 줄 알았거든요. 직장도 얻고 집도 주고 살게끔 다 도와준다고. 지금도 살게끔은 도와주죠. 임대 아파트도 주고 생계금도 주고. 그거는 지속적으로 주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속적으로 줄 줄 알았는데 기대 한 것이 나쁜 건지...”
(3) 물리적 적응
참여자들은 남한에서 다양한 환경의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는 참여자들의 몸에 물리적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남한에 정착하게 된 참여자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달라진 생활여건은 바로 자연환경이었다. 공기가 북한과는 달리 맑지 않고 거기다가 혼잡한 교통으로 인해 대기오염까지 된 상태여서 이러한 물리적 환경에 대한 적응을 힘들어 했다. “북한에는 남한보다 좋은 게 뭔지 아세요? 공기가 좋고요. 그 다음에 물이 맑고요. 그렇죠. 왜냐면 그만큼 지켜진 사회다보니까 공업부분에서 많이 발전을 이루지 못해서 공기가 맑아요. 여기는 공기 오염이 많이 되었잖아요. 그리고 차가 없으니까 대기오염이 안 되어있거든요. 그래서 그거 하나는 좋아요. 거기서는 저는 멀미라는 것을 몰랐어요”
그리고 남한에 정착한 지 얼마 안 된 참여자들은 정규적인 직업이 없는 상태로 새벽부터 저녁까지 아르바이트일과 학원공부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처럼 밤낮 구분 없는 생활패턴이 참여자들에는 적응하기 힘든 물리적 상황이었다. “공부는 할 수 있는데..사람이 육체적으로 힘이 들어요. 그러니까 그게 정신적으로 가겠죠...전철 타는게 힘들어요. 두 시간이 걸린단 말이에요. 네 그러니까 마지막에서 마지막까지 가니깐. 아침에는 아침 5시부터 일어나서 6시 되서 나와야 8시 30까지인데..꼴딱 새서 가는데 아침부터 힘들어서 가는데 공부하고 힘들어서 가면 또 학원을 두개 다니거든요 그 학원은 9시에 끝나거든요. 그리고 또 집에 가면 그리고 또 아침에 5시에 일어나야 하고.”
2) 심신의 조화
적응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다양한 심리적, 신체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는데 이를 ‘심신의 조화’라는 범주 속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심신의 조화는 크게 심리적 조화와 신체적 조화로 구분할 수 있었다. 심리적 조화 측면의 경험으로는 불안, 우울, 분노, 쫒기는 마음 등이 있었고 신체적 조화 측면의 경험으로는 두통과 집중력 저하, 전신 통증, 수면 장애, 소화불량, 기운과 에너지 부족(피로), 연속적인 잦은 감기, 비만과 간기능 손상, 근골격계 통증 등이 있었다.
(1) 심리적 조화
불안은 주로 업무수행과 의사소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자신감 부족이나 언어 적응과 관련된 경험들은 참여자들이 불안감을 가지도록 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 하다 보면 이것이 옳은 것인지, 옳은 말을 한 것인지 잘못된 말을 한 것인지... 막말로 오줌똥 분간을 못하니까. 내가 일을 해 놓고도 일처리를 제대로 한 것인지, 일을 해 놓고도 너무 어설프고. 이런데서 오는 불안감이 쌓이는 거죠”
“사람들과 대화할 땐 항상 불안감이 있어요. 내가 제대로 말을 알아듣고 있는 건지... 진짜 말을 알아 못 들어서 의사소통 안 될 때에는 불안하고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우울 또한 참여자들이 정착 초기에 경험하게 되는 주요한 경험이었다. 남한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적인 시선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우울하기도 하였고 삶의 목표가 없이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우울하기도 하였다.
“(사회적 스티그마, 남한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사회생활을 도저히 못 하겠는 거예요.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조차 없었어요. 그렇게 한 2년 정도를 집에만 있었어요. 너무 힘들어 가지고. 그러나보니 이게 정신적으로 우울증이 온 거죠. 제가 바보가 되 버려요. 바보가 되어 버리는 기분이더라구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딱 목표 같은 것이 세워진 게 없으니까, 아무것도 보장된 게 없으니까 막막하죠... 사는 게 우울해지죠”
분노도 우울과 비슷하게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참여자들이 가지게 되는 경험이었다. 북한에서부터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수동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이에 대해서는 ‘의식구조의 차이로 인한 갈등’ 부분에서 언급될 것임)에 더하여 탈북과정과 남한정착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합쳐져 나타나는 분노는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이었다. 참여자들은 아래와 같이 진술하였다.
“앞이 딱 보이지 않으니 막 화가 나요. 차라리 아주 어렸으면 모릅니다 할 수 있겠는데 이거는 세상을 다 알아 버렸을 때 겪었으니까 뭘 하기가 힘든 거예요. 뭐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잘 정착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지금은 막막한 상황이죠. 집에 있으면 신경질만 나고 해서 학원도 몇 개씩 다녀요. 차라리 몸이 바쁘다보면 좀 마음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북한 사람들은 고생을 많이 했고 세상의 쓴맛, 단맛 다 겪어 봤기 때문에 굉장히 다혈질적이고 화를 잘 내요. 정신적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는 거죠. 이건 북한에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성향이라기보다는 여기에 와서 어느 한 순간에 고생을 하면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봐요”
탈북 후 남한으로 오기 전까지 참여자들은 외국에서 불법체류를 하였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거나 외국 대사관으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이 기간 동안 신분이 노출되어 북한으로 강제송환을 당했던 참여자들도 있었다. 이 기간은 참여자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나서는 안 되는 시기였고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던 시기였다. 참여자들의 탈북 과정은 생명을 위협하는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본 연구에서의 면담의 초점이 남한에서의 삶의 질이었기 때문에 탈북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였는지를 질문하지는 않았으나 참여자들이 면담 도중에 드러낸 탈북과정에서의 경험을 통해 현재 남한 생활에서도 그 당시의 쫒기는 마음이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남한에 정착한 지 5년이 지난 참여자들도 경험하는 것이었다.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그런 일(탈북과정)을 겪다보면 사람이 온전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지를 못해요. 공안... 계속 공안이 오지 않나... 지금도 경찰차만 지나가도 깜짝깜짝 놀란단 말이예요. ‘아니 이제 내가 괜찮지’ 이런 생각하고 다시 그냥 가고 그렇게 하다가도 또 보면 깜짝 놀라고. 불법체류 때문에 심리적으로 계속 쫓기는 마음이었고 항상 스트레스 받고 살고. 모든 행동을 목숨을 걸고서 했으니까요”
“아직도 악몽을 더러 꿉니다. 북한 고위부에 잡혀간다던가... 깨어나 보면 이게 아니구나 한국이구나 다행이구나 이러니까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없는 거예요”
(2) 신체적 조화
두통과 집중력 저하는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남한에서 경험하는 것이었다. 두통은 흔히 집중력 저하를 동반하였다. 두통과 집중력 저하는 ‘정신적 압박’과 같은 ‘심리적 적응’ 경험과 ‘자연환경 변화’ 및 ‘육체적으로 힘든 생활’과 같은 물리적 적응 경험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참여자들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저는 여기 와 가지고 3년 동안은 너무 힘이 들었어요. 밖에 나가지를 못하겠더라구요. 머리가 너무 아파서요. 북한에서는 멀미라는 것을 몰랐어요. 너무 멀미가 나 가지고 밖에 못 나가겠다러고요. 공기에 적응이 안 되가지고. 막 진통제를 먹고도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어요. 한 3년을 그렇게 고생을 했어요”
“북한에서는 스트레스라는 말이 거의 없었는데 그리고 그 자체도 모르고 살았는데 여기에 와서 스트레스라는 것을 알았죠. 처음에는 스트레스 받아서 가슴이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이런 것을 전혀 실감을 못했는데 한 5년 살고 나니까... 한 3년 지나서 직장생활하면서 사회생활 하다 보니까 이게 스트레스구나 하고 알았죠. 막 가슴이 답답하고 갑갑하고 거의 막 울부짖어야 하는 그러고 싶은 것이 생기더라구요. 그러면서 심한 두통 이런 것이 실제로 생겼죠”
“한 2년 동안 이유도 없이 머리 아프고 머리가 띵하고요. 그러다보니 일상생활 하나하나에서 집중이 안되서 힘들었어요”
“지금도 머리가 아파요. 저는 두통제를 가지고 다녀요. 뒷머리가 콩콩거려요. 약 먹고 15분 정도면 조금 괜찮고 그러다 또 아프고 그래요. 그래서 공부를 할 수가 없어요. 교육받고 시험보고 해야 하는데 집중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약을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처음에 여기(남한에) 왔을 때부터 신경 쓰고 그러면 두통이 굉장히 심했어요. 어깨, 목 이런데... 갑자기 머리가 띵 해지고 얼굴이 화끈화끈 해지고, 눈알이 쏟아져 나올 것 같고. 여기 와서 한 3년 동안은 진통제를 매일 하나씩 먹었어요”
그런가 하면 전신적으로 몸이 아픈 경우도 있었다. 이는 탈북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던 긴장감이 없어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증상이었는데 남한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더욱 심해졌다. 특히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현상은 두드러졌다.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여기 와서 한 2-3년 동안은 긴장이 풀려서 더 아픈 거예요. 안 아픈 데가 없었을 거예요. 계속 신변 때문에 걱정하다가 여기 와선 이젠 걱정이 없나보다 했는데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여기 와서 적응도 안 되고 돈벌이도 해야지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그러니까 신경을 더 쓰고 그래서 더 아프고. 아마 신경성으로 몸이 더 나빠지지 않았나...”
“여러 가지 일 많이 해봤어요. 식당일, 서빙일, 주방일 같은 일을 많이 해 봤는데 그게 힘이 들어서 그런 건지 집에 가서 저녁이면 막 바늘로 찍어버리는 것처럼 아파요. 게다가 옛날에 북한에서는 힘주고 무거운 것 들고 많이 다녔거든요. 그게 이제 날씨 흐린 날 온몸이 다 쑤시고 아픈 거예요. 제가 아직 젊은데 제 또래 보면 그런 애들 많아요. 친구들끼리 만나면 어디어디가 아픈지 얘기하는데 “어 나랑 똑같이 아프네” 라고 서로 그래요. 중국에서는 편해요. 여기보다 일하는 게. 월급은 낮지만 일이 그만큼 편하거든요. 여기 일은 그냥 갈비집 인데도 너무 힘이 들더라구요. 여태까지 살면서 해본 일 중에서 갈비집 일이 제일 육체적으로 힘이 들어요”
불면 또한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경험하는 것으로 특히 정착 초기일 수록 심했다. 그러나 정착 기간이 어느 정도 지난 참여자들에게서도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생각 때문에 불면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잠을 잘 못자요. 너무 생각이 포화가 되서. 배우는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생각할 게 많아서...”
“거의 술을 안 먹고는 잠을 자지 못 하는 그런 심리적, 정신적 고통이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이지...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까, 맞아 죽지는 않았을까, 잡혀가지 않았나, 이런 별 생각 때문에, 어떤 때에는 뜬 눈으로 밤을 밝힌 적이 있어요. 잠이 안 와가지고요. 그런 고통이야 뭐 사람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 고통이 있죠. 지금도 피곤해서 잠은 자고, 또 자다가 1시고 2시고 깨면 잠을 못 자는 거죠”
남한에 온 지 기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여성 참여자들은 소화불량을 많이 경험하였다. 이 또한 심리적 적응 경험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경험을 말하였다.
“여기 와서 병원에 많이 다녔어요. 내시경도 하고 그랬는데 신경성이라고 해요. 막 쓰렸다가 밥 먹으면 메스껍고 소화를 못 시키고 입에서 냄새가 올라오고 그래요. 전엔 이런 증상이 없었죠. 한국에 오고 나서 그렇더라구요. 밥 때 되면 밥 먹기 싫고 밥 안 먹으면 위가 아프고... 안 먹어도 아프고 먹어도 아프고... 신경쓰여서 다른 일이 손에 잘 안 잡히죠”
“여기 와서는 길을 다녀도 메스껍고, 약간 밥을 먹어도 메스껍고, 스트레스 받아도 메스껍고 왜 그런지 몰라요. 여기 와서 그냥 정신이 너무... 나는 내 생각인데 막 어떤 때는 다 토해 버려요”
한편 위에서 언급했던 ‘물리적 적응’ 경험 속에서 발생하는 기운과 에너지 부족(피로) 및 연속적인 감기에 대한 참여자들의 진술은 아래와 같다.
“아르바이트를 연속적으로 계속 하다보면 몸이 막 지쳐요. 그럴 때 쉬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할 때... 왜냐하면 회사 일정에 맞추어야 하니까요. 그럴 땐 정말 한국에 괜히 왔다 생각이 들어요”
“육체적으로 힘이 딸려요. 아침 5시부터 일어나서 저녁 9시에 학원 끝날 때까지 정말 기운이 없어서... 전철도 꼬박 서서 두 시간을 타야 해요. 학원도 두개 다니거든요. 공부를 한다 한들, 돈을 번다 한들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서야...”
“제가 북한에서는 백두산 밑 그 추운데서 40리 길을 걸어도 감기한번 앓지 않고 끄떡없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는 피곤해서 그런지 몸살도 많이 앓고요. 환경과 공기가 워낙 안 좋잖아요, 여기가. 그래서 그런지 목감기 자주 걸리고 추위도 잘 타게 되고 가래도 많이 나오고 몸이 오히려 더 약해진 것 같아요”
“여기 와서 크게 앓고 그런 것은 없어요. 그런데 힘이 들어서 그런지 감기 같은 것은 자주 앓고 그런데, 몸이 힘들다 보니까 편도가 부어가지고 목이 곪고 염증이 생기고 그런 건 자주 있죠”
한편 모든 참여자들이 북한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신체적 증상이 있는데 바로 관절 통증(요통 포함)이었다. 이는 지금까지 위에서 언급한 증상들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지만 남한에 정착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종종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주는 요소였다. 이에 대해 참여자들이 진술한 것은 다음과 같다.
“확실히 먹는 것, 더운 것 이런게 중요하더라구요. 조선에서는 온갖 잡병이 다 걸렸었어요. 그런데 중국에 오니까 괜찮더라구요. 그런데 관절만은 안되는 거예요. 하나원에 있을 때에도 관절 때문에 치료했어요. 약 먹고 흐린 날에는 아파가지고. 찬데서 오래 있다보니 자다가도 통증이 다리로 와요. 못 느껴 본 사람은 몰라요. 발이 쥐 나는 것 같아요. 지금도 종종 그래요”
“관절염이 특히 문제인데 북한에 있을 때부터 그랬어요. 무릎 관절이 계속 아파요. 잠도 안 올 정도로... 아직 치료를 못 받아봤는데 이제 받아야겠죠...”
3) 의식구조 차이로 인한 갈등
남한사람과 북한사람은 서로 이질적인 체제속에서 단절된 채로 살아왔기 때문에 의식구조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 참여자들의 의식은 주로 북한의 정치사상교육에 의해 형성되었다. 참여자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하게 되는 말이나 행동에는 그러한 의식구조가 반영되고 있었고 이는 남한생활에서 갈등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 중 하나가 집단 위주의 폐쇄적 사고방식이었는데 집단 속에서는 개인의 생각을 표출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를 드러내주는 참여자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체제 자체가 짜여진 틀 안의 체제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우물 안의 개구리 생활이죠. 그러다보니 자기 생각을 남한테 표출하고, 표현하고, 물어보고 그런게 없죠. 만약에 내가 남한테 물어보면 저 사람 나를 바보로 생각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지배되어 있어요”
“배웠는데 자꾸 이렇게 모르니까 창피하잖아요. 나만 모르는데 선생님께 물어보면 옆사람들이 싫어하잖아요. 그런게 또 여기하고 북한하고 다른거 같아요. 여기는 개방이잖아요. 북한은 단체생활이잖아요. 그래서 수업 시간에 사람들 많은데 나 혼자 모른다고 자꾸 물어볼 수가 없는 거예요. 옆사람들이 싫어하잖아요. 그래서 모르면서도 네 하는 현황예요“
또한 참여자들은 북한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서로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강한 자존심을 형성하여 왔는데 남한에서 자신에 대한 평가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에 대해 무시당하고 모욕당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자존심은 북한의 문화라고 보시면 되요. 그 자체가. 북한은 그래도 공동체 생활을 하니까 인정이 있는 사회예요. 여기처럼 처참해질 정도는 아니죠. 그래서 북한에서는 인격모독을 한다든지 하면 정말 큰일나요. 그런데 여기는 냉정히 보는 사회잖아요. 객관적으로 평가받는게 중요하고. 북한에서는 그런 평가는 안 받아봤기 때문에 상당히 당황해 해요. 자신이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것을 무시당하고 모욕이라고 생각하고... 특히 남자는 더 심해요. 능력부족을 인정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고 못견뎌 하는 거죠. 남한에서 살면서 모르는 것이 많잖아요. 말도 그렇고. 그런데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고 물어보는 것에 대해 상당히 자존심 상해해요.”
“북한에서도 자라고 중국에서도 자라고 한국에서도 살고..이렇게 세 나라 다 살아 보면서, 아 이 나라는 이렇구나 이 나라는 이렇구나 라는 것을 느껴요. 한국 사람들은 제 땅이니까 그런데 우리는 중국에 살면서, 인권이 없고 자유가 없고 이런 것을 목격을 했구요. 그리고 한국에 와서는 같은 민족이라도 또 이런 모욕을 겪어 봤고. 북한사람이라고 차별당하는 것,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것이 다 모욕이죠. 세상에 제 집을 떠나 아무래도 남의 집 가면 이런 대접을 받게 되나봐요”
또 다른 의식구조의 차이는 복잡한 사회현상과 인간관계를 단순화하고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참여자들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서비스 업종이기 때문에 소비자를 최고로 모셔야 하는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북한사람을 고용하면 매일 고객하고 쌈박질이나 하고 와요. 그래서 누가 잘못했는지를 떠나서 무조건 고객한테 사과하라 그러면 ‘내가 왜 빌어야 하냐, 내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이게 문화적 차이거든요. 이 사람들은 공산당식 교육을 받아서 공산당식 문화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감정 나는대로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 해야지 싫으면서 왜 좋다고 이야기하냐 이거지”
“여기 사람들은 무슨 대형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죽으면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니 정치적인 문제니 복잡하게 생각하더라구요. 그런데 그건 자기가 잘못하고 본인이 능력이 부족해서 죽은거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북한사람들이었다면 하나도 안 죽었을걸. 그런건 다 개인이 잘못해서 죽은거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다 이해하고 잘못된 사람들은 도와주고 그러더라구요. 저희는 그런거 이해 못해요”
북한 사람들은 대화할 때 공격적이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탈북과정과 남한정착과정을 겪으면서 더욱더 심해졌다. 정착한 지 오랜 기간이 지난 한 참여자는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 하려고 하면 너무 과격하고 직설적이고 그래서 대화를 하다가 말문이 탁탁 막히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남한사람들이 부드럽게 예의를 갖추고 대화하는 것을 진심이 아니라고 믿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또한 대인관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이에 대해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남한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다 거짓말 같아요. 가식으로 말하는 것 같고. 너무 부드러워가지고. 여기서는 그걸 부드럽다고 평가를 하는데 아직 적응을 잘 못한 사람들이 얘기할 때는 간사하다고 생각을 해요. 속으로는 딴생각 하면서 겉으로는 이렇게 잘 대해준다고. 저는 이제 온 지 오래됐으니까 알지만. 북한식으로 이야기하면 감정 나는 대로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 해야지 싫으면서 왜 좋다고 얘기하냐 이거지. 그래서 항상 제가 이야기 하는게 아무리 기분 나빠도 앞에서는 그걸 감추고 좋게 대하고 남한에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공산사회에서는 이야기 자체가 공격적이예요. 말 자체가 공격적으로 한다는 거죠.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해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물들어 왔고 배워왔으니까. 이건 생존방식이예요. 자기가 공격적으로 되야 하고 자기가 힘이 없으면 살지를 못해요, 사회 자체가”
“정착한지 5-6년 미만인 사람들은 체력적으로도 안 따라주고 지식적으로도 못 따라가요.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하다 보니 굉장히 다혈질적이 되거든요. 화를 막 잘 내고 한순간에는 이런 생각 했다가 다음 순간에는 저런 생각 했다가 자기가 한 말 잊고 또 다음날에 가서는 다른 생각을 하고. 대화를 하다가 보면 저 사람에 대해서 이해가 안 가는 거죠. 엉뚱해 보이고 팍팍 화를 내고. 그게 다 고생해서 그래요”
4)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참여자들의 삶은 남한 사회 깊숙이 들어오지 못한 채 주변에서만 겉돌고 있었다. 이들이 남한의 주류사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주된 이유로는 불안정한 직업, 인맥 없음, 사회생활에 필요한 교육내용이 충족되지 않음, 그리고 수용적이지 않은 남한사람들의 태도 등을 들 수 있었다. 이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인맥이 없으면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고 따라서 취업정보를 취득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게 된다. 또한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교육내용이 충족되지 않으면 취업이 어려울 수 있고 직장이 불안정하며 대인관계가 한정될 수 있기 때문에 인맥 없음으로 연결될 수 있다.
불안정한 직업은 생활을 불안정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인이었다. 생활보조금이 주어지긴 하지만 탈북과정에서 진 빚을 갚는데 사용한 경우도 있었고 취업이 되지 않아 정기적인 수입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취업이 되지 않는 이유는 ‘적응’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편견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이 받아 온 교육내용이 남한사람들에 비해서 부족하고 직업에 필요한 경력과 기술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일부러 취업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취업을 할 경우 생계보조비가 나오지 않게 되는데 북한이탈주민들은 대부분 취업 후 얼마 가지 않아 실직을 하게 되기 때문에 차라리 처음부터 취업을 하지 않고 생계보조금을 계속 타기 위한 것이었다. 취업이 되어도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적응을 못한 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적으로 솔직히 굉장히 힘이 들어요. 제대로 주어진 직장이 없으니까. 남한 사람들도 대학까지 졸업하고도, 좋은 대학 졸업하고도 취직 못하잖아요. 하물며 북한에서 고졸만 나온 탈북자들이 취직한다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일 거예요. 기껏 해봤자 공사판, 식당 서빙, 건물청소... 저희는 남한에 기반 다져놓은 것도 없고, 일가친척이 있어서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마디로 지식과 기술과 경력 면에서 남한사람들과는 출발선이 다르니까요”
“저희 같은 사람은 취업하면 대부분 짤리잖아요. 주위에서 많이 짤렸거든요. 그래서 저같은 경우는 어디 취직해서 직원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데, 차라리 생계금 나오는 거랑 아르바이트 해서 버는 거를 모아서 빚을 갚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참여자들 중에는 남한에 친척들이 있는 사람이 1명 있었고, 하나원을 졸업하자마자 남한 사람을 만나 결혼한 사람이 1명 있었다. 이들은 남한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북한이탈주민보다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참여자들은 남한 사회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정착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고 남한사회에 대한 정보를 주거나 지지를 해줄 인맥이 없기 때문에 어떤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같은 북한이탈주민들끼리 강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에 대한 참여자들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이 이해도 잘 안 되고 당황할 때가 많았어요. 3년 정도는 힘들더라고요. 많이 힘들었어요. 전화 통화할 사람 하나 없고, 얘기를 나눌 만한 그런 데가 없더라고요. 그럴 때 도움 받을 수 있는데가. 그래서 혼자서 다 해야지... 한 3년 정도 그러다가 차츰 제 주위에도 사람이 생겼던 것 같아요”
“누구한테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없다... 가족들은 가족들 나름대로의 삶이 있는 거니까. 그리고 아버지는 늙으셔가지고... 친구들한테... 아직 그런 이야기를 할 친구가 없어요. 같이 탈북한 친구들은 만나면 이야기는 하는데 자주 만나지도 못해요. 공부하고 돈 버느라고 다들 바빠요”
“지금 같으면 (대학) 자퇴를 안 하겠는데, 그 때는 모르니까 그랬어요. 마음이 급해서, 눈에 보이는 돈을 버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지금 같으면 일을 못하고 돈을 못 벌더라도 공부를 하죠.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니까요. 50대, 60대 말년까지 인생 설계를 하면서 사는 세상이니까. 그런데 그 때 제가 자퇴를 결정했을 때 저에게 진심으로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극구 반대했을 거 같아요. 진짜 저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심각하게 말렸을 텐데 그런 사람이 없었어요. 대학교를 그만두는 그런 큰 실수를 할 때 제 주위에 가까운 사람이 있었더라면...”
북한에서의 교육은 내용과 수준면에서 남한과는 차이가 있었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체노동을 하기 때문에 많은 교육을 요구하지 않았고, 학교교육도 기초학문분야 보다는 혁명역사 위주여서 남한과는 매우 달랐다. 따라서 남한에서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로 되는 기본교육이 참여자들에게는 충족되지 못하였다.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남한하고 북한하고 대비했을 때 북한에는 직장생활을 한다고 할 때 큰 재능이 필요없어요. 왜냐하면 육체적 노동이 많기 때문에. 하지만 남한에는 자동화로 되어 있잖아요. 일하는 시스템이. 그래서 컴퓨터를 몰라서도 안 되고, 또 자기 부분에 다른 어떤 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잖아요”
“북한에서 배운 거는 배운 게 아냐. 중학교 수준도 못되요. 여기는 고등학생 골든벨 하잖아요. 거기 보면 사회, 역사 뿐 아니라 뭐라고 하지... 문학 그런 과목을 하더라고요. 학생들 별난 거 다 배우더라고요. 우리는 그렇게까지 수준이 안 높아요. 거기서는 혁명역사 같은 것 위주로 배우잖아요”
“신랑은 군복무를 13년이나 했거든요. 마지막에 종말에 와서 방침이다 이렇게 내려와 가지고 만 31살까지 했어요. 그때까지 뭐 배운 것 없이 군사 복무만 했으니 배운 기술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여기는 기술이 조금 있어야 되겠는데 자동차 그런 기술 배우려고 해도 기초가 있어야 하잖아요. 수학, 물리, 전기 같은... 그런데 그런 기초가 없으니까 배우기도 힘든 거예요. 그래서 포기를 하고 중장비 운전 그런 걸 배웠다는데 어차피 그걸 배워가지고도 취직을 못해요”
“북한에 있을 때 공부 안했어요. 살기 힘들어서요. 학교 다녀도 책 같은 것도 없는데 학교 가서 있기도 그렇죠. 여기서는 기초가 없어서 많이 힘들어요”
“제일 아쉬운 부분이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다녔었으면 그런 아쉬움이 남더라구요.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았었으면 한국 사회에서 생활하는데 편하지 않았을까... 고등교육의 필요성을 많이 느꼈어요. 뭐 굳이 배워서 알고 안배워서 모르는 것은 아닌데 여기서 배우신 분들은 기본적으로 아는게 있어요. 예를 들어 혼자서 공부하는 법이라던가... ”
수용적이지 않은 남한사람들의 태도 또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을 나타내 주는 또 다른 현상이었다. 남한사람들은 남한에도 정부가 도와주어야 할 취약계층사람들이 많은데 북한이탈주민에게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러한 시선은 탈북이탈주민을 수용하지 않는 태도로 드러나 참여자들의 눈에 띄었다. 참여자들은 이에 대해 매우 서운해 하였고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이런 얘기를 하면, 남한에는 집도 없이 사는 사람 많습니다. 이러는 거에요. 그렇게 말하면 저희가 할 말이 없죠. 저희는 남한 사회에 애기로 온 것밖에 없어요.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갓 태어난 것이나, 그런 사람들한테 이미 당신들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도 집도 없이 살아갑니다 라고 말하면 그러면 그게 말이 되겠어요? 안되죠. 저는 그런 말은 좀 삼가 주시면 좋겠다 뭐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 어느 부모도 갓 태어난 아기한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모유를 먹여서 길러주고, 건강하지 못하면 병원치료를 시켜주고, 그래서 이렇게 성장을 시켜줘요. 건강한 몸으로 만들어주고, 그런데 갓 이 땅에 온 사람들한테 당신들끼리 직업교육 6개월짜리 1년 동안 받으면서 사세요 그러면 그 사람들 어떻게 살아가요. 그런 말씀 하지마세요. 집 한 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대한민국에서 몇십년씩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대한민국에 첫발을 디딘 사람들인데 그런 말을 하면, 그런 사람들하고 비교를 하면 우리가 어떤 말을 하겠어요. 어떤 변명을 하겠냐고”
“저는..제가 돈을 별로 안 쓰니까..한 달에 10만원 정도 밖에 안 써요. 저는 많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분들은 모자라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죠. 안줘도 되는데, 남한 사회에 받아주고 그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하고 그러는데... 북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 동네 사람들이 저 사람들은 뭐가 다르다고, 국가에서 돈도 주고, 집도 주고 그러냐고.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어요. 여기 사람들도 못 사는 사람들 많은데, 그 사람들은 안 도와주고 그런다고. 동네 분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우연히 듣죠”
5) 사회적 지지
사회적 지지는 참여자들이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인데 이는 크게 관계적 지지와 제도적 지지로 구분하였다. 관계적 지지에는 가족 지지와 타인의 지지가 있었는데 그 내용은 주로 정서적 지지와 정보적 지지였다. 제도적 지지는 현재 북한이탈주민을 위해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들 중에서 참여자들이 바라기에 개선이 되었을 때 훨씬 더 도움이 될 제도들을 의미한다.
(1) 관계적 지지
가족은 참여자들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열심히 살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였다. 정착한 지 오랜 기간이 지난 참여자들은 가정을 이루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였다. 특히 남한사람들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을 때에는 배우자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가족 친지들까지 든든한 지지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남한 사람들과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참여자들도 있었다. 남한 사람과의 결혼으로 인해 가장 도움을 받는 부분은 생활의 조기 안정과 더불어 정착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 북한이탈주민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만나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북한에서 결혼하여 배우자와 같이 탈북한 참여자도 있었다. 남한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는 가족이 있는 것이 정착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이 참여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이에 해당하는 참여자들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결혼하고 나서 생활이 안정이 됐죠. 자신감이 조금 생기더라고요. 생각이 여유로와지고. 혼자 사는 것은 저는 반대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덤벼서 결혼하면 안되겠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굉장히 자동차 폭주족처럼 그런거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풀었어요. 집에 있어봤자 밥 해주는 사람도 없고. 가족이 생기니까 그런 것에 관심이 딱 끊어지게 되었죠”
“좋은 상대를 만나서 지금 살면서 2년 동안 많은 도움이 됐어요. 모르는 부분도 남보다 빨리 접하게 되고 이해하는 부분에서도 많이 도와주니까. 옆에서 이런 거다 하고 다 알려주니까 아무래도 남들보다는 적응하기가 쉽죠. 그래서 환경이 중요하더라고요. 주변에서 어떻게 이끌어주고 하는가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한편 남한에서 같은 북한이탈주민끼리 결혼한 경우 혹은 기존에 북한에서 결혼하고 가족이 같이 남한으로 온 경우에 가족은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서로 의지가 되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보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한사람들끼리의 결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참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가정에서부터 북한식 사고방식이 고쳐지지 않아 남한 생활에 적응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우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정보적 지지를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는데 참여자들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녀교육이었다. 부모들이 남한교육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학습지도를 해 줄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제 동생이 결혼할 나이가 됐는데 이 사회에서 어차피 적응을 하고 살아야 하니까 남한 여자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우리는 적응을 힘들게 하잖아요. 그러다보니 2세가 많이 힘들 것이다... 애들만 똑똑하면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문제가 있더라고요. 애들이 뭘 물어봐도 내가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교과서에 있는 말을. 그러니까 2세 교육을 위해서도 한국 여자를 얻어야 한다 이거죠. 초등학교 애들 수학에 나오는 말도 모르는 말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사회, 과학... 내가 이해를 못하는 것이 많아요. 사회과목에서도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것에 대한 내 견해... 우린 그런 것은 상상도 못 하잖아요. 본인이 보는 견해가 어딨어요. 미국이 잘했는가 이라크가 잘했는가... 그래서 2세를 위해서도 여기에서 교육 좀 받고 이런 여자를 얻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 이외에 참여자들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느끼게 하는 사람은 담당형사와 직업학교 선생님이 있었다. 직업학교 선생님의 지지에 대해 참여자는 “직업학교에서 요리를 배울 때 하나하나 잘 가르쳐 주셨어요. 또 탈북자라고 일부러 조리부장이라는 직책을 줘 가지고 선생님 옆에서 보조하게 해 주셨어요. 더 많이 배우라고 일부러 그런 자리를 마련해 주시더라고요. 너무너무 고마웠어요, 그 때. 그게 제가 빨리 정착할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아요” 라고 말하였다. 또한 담당형사의 경우 “담당 형사님이 거주지도 등록해 주고 모르는 것 물어보면 잘 가르쳐 주고. 처음에 나와서는 어디 의지할 데가 없으니까 담당형사님들이 잘 도와주세요. 안 그러면 정말 막막할 거예요.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해 봤자 정식으로 남한생활을 한 건 아니거든요” 라고 하며 고마움을 표현하였다.
한편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한 한 참여자의 경험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편입시험을 3개월 남겨놓고 상황이 다급해진 거예요. 남한으로 온 지 얼마 안 된 때라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무조건 교수님을 찾아갔죠. 상황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했어요. 그랬더니 그 교수님께서 사이버강의 청강을 허락해 주셨어요. 거기 나온 내용만이라도 열심히 하라고요. 그래서 무조건 외웠어요. 이해도 못 한 채로. 문제풀이에서 처음에는 한 30점 나오더니 시험 전에는 90점까지 나오더라고요.”
(2) 제도적 지지
남한사회에서 정착한 지 기간이 어느 정도 경과한 참여자들은 북한이탈주민과 관련된 다양한 제도를 어느 정도 경험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완이나 개선 요구들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의료서비스 이용 시 불편한 점으로는 접근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이는 주로 정착 초기의 참여자들이 말한 것이었다. 참여자들은 대부분 동네 병원이나 보건소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건소에서 산전관리도 받고 자녀 예방접종이나 가벼운 감기 증상들에 대해 치료를 받기도 하였다. 보건소 이용에 대해 특별히 다른 요구는 없었는데 일반 병원을 이용할 때 불만족스러운 것은 아래에 진술한 내용과 같다.
“몸이 아파서 급여증을 가지고 병원에 갔는데 그것도 해당되는 병원이 따로 있더라고요. 아무 병원이나 되는 게 아니라. 그래서 그냥 보통 사람들이 내는 돈만큼 내고 진료를 했어요. 처음부터 어느 병원 어느 병원이 된다고 가르쳐 줘야 하는데 얘기를 들은 게 없어요. 동사무소 가서 물어봐라 하는데 우리 집이 동사무소에서 너무 멀어요. 아픈 사람이 거기까지 가서 물어보고 찾아서 그러느니 피곤해서 차라리... 어쨌든 잘 해준다고 해주는 것들이 제 상황에서는 다 짜증나더라고요”
“북한 사람들 전문으로 상담하는 거나 내과, 치과 병원이 있으면 돈을 다 주더라도 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인식 자체가 북한 사람들 다 거기에 가게 되어 있다고요. 차라리 1종 의료보호 뭐 이런 것이 없어도 그런 병원이 있으면 차라리 그만한 돈으로(의료보호 비용으로) 그렇게 했으면 더 낫지 않나... 그런데 이거는 의료보호가 통하는 병원을 찾아야 하니 얼마나 힘들어. 내 병이 의심스러워 상담을 좀 받아야겠다 할 때는 내가 어디가서... 일단 말부터 다르니까 이 말을 좀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거죠. 병원가면 벌써 묻는 말이 교포냐고 그래. 어디를 가도 말부터 통하지 않으니 말해봤자 이런다는 말이에요”
의료서비스와 관련하여 또 다른 요구는 건강에 대해 취약한 노인이나 만성병 질환자들에 대해 소득 유무에 관계없이 의료보호를 지속해 주도록 하는 것이었다. 북한이탈주민은 기본적으로 의료보호 혜택을 받게 되어 있으나 취업을 하게 되면 직장의료보험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은 남한에서의 직업 안정성이 떨어지므로 다시 미취업 상태가 되기 쉬운데 이때에는 다시 의료보호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이 때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바로 노인들이나 장기환자 등 건강 취약자들이다. 이러한 사정에 대해 참여자들이 진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을 나가게 되면 의료보호 1종 혜택이 바로 말소가 되요. 의료보호가 없어져요. 그러니까 그 다음부터는 의료보험 돈을 내야 하잖아요. 그게 굉장히 부담스럽다는 거죠. 그리고 취업보장이 안 되고 탈북자들은 오래 못 하고 금방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그게 현실인데 그럼 의료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단 말이죠. 그래서 의료보호 혜택 같은 것은 그 사람이 직장을 가졌든 안 가졌든 간에 일정 기간을 보장해 줘야 하지 않겠나... 취직했다고 월급 받으니까 바로 의료보호 자르고 이런 현상은 좀 민감한 문제죠”
“환자 아닌 사람들은 의료보호를 자르던 말던 별로 상관없는데 환자들이나 노인들은 조금 아까운 문제거든요. 젊은 애들도 결핵 앓는 사람들 많아요. 결핵, 만성질환. 이런 사람들은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도 없고. 잘려서 나오면 의료보호도 없어지는 거고. 환자가 아닌 사람들은 다행히 괜찮지만, 환자들은 직업 떨어지고 의료보호까지 떨어지면 이건 정말 큰일이거든요. 차라리 직장에 안 나가고 의료보호로 치료받고 정부에서 용돈 조금씩 주는 것 빌어먹고 사는 것이 낫지. 이런게 열심히 살아갈 의욕조차 없게 하는 거거든요. 정부에서 장기환자, 연로자를 체크해 가지고 그것만이라도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한편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지급되는 기초생활보장지원금제도에 문제제기를 하는 참여자들도 있었다. 참여자들은 돈을 주는 것 보다는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적응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만들어 주란 말이죠. 나라에서. 돈을 주지 말라는 거예요. 정착금도 주지 말고. 임대주택 줬으면 나머지 정착금은 주지 말고 자기들이 벌어서 살게끔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되요. 젊은 사람들한테 돈을 왜 주냐는 말이에요. 매달. 나이 먹은 사람들한테는 모르지만 젊은 사람들한테는 자발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해요. 돈 주는 것 말고. 탈북자들끼리의 일터를 만들어 주던지...”
젊은 사람들은 남한에서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주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저도 대학을 나왔지만, 대학을 나온 사람이, 대학을 다니는 사람이 여유롭고 적응이 빨라요. 그래서 배우는게 중요한 거예요. 젊은 사람들은 무서워하지 말고 배우는데 뛰어들어야 해요. 공부 안 하면 청소부 일이나 밖에 할 일이 없어요. 그렇다고 그런 일이라도 잘 하면 괜찮은데 그런 일은 받아들이지를 못하잖아요. 대학을 다녀야 이 나라를 알게 되고 문화를 알게 되요. 그래서 대학입학 특례는 탈북자들에게는 소중한 기회예요. 그런데 그런 혜택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그게 없어지면 점점 더 힘들어 질 거예요. 대학에 가는 사람들이 더 적어지게 되고 젊은 사람들이 더 절망하게 될 거예요.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좀 주었으면 좋겠어요. 취업교육은 받아도 사회에서 인정을 못 받잖아요, 사실"
남한적응을 위한 교육에 문제제기를 하는 참여자도 있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보다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직업교육보다 더 기본적인 교육 즉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의 흐름에 대한 교육이나 돈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는 교육 등이 중요하고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요구도 있었다. 참여자들은 이러한 교육이 정착 초기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무턱대고 준다, 정부에서 예산 나온다고 준다, 내 돈이 아니니까 하라는 대로 하면 되 이게 아니고 이 사회에 이제 탈북자들이 많아지잖아요. 그리고 어린 아이들, 청소년, 젊은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어요. 이런 사람들한테 여기 와 가지고 돈에 대한 관념, 이 사회가 어떻게 흐르고 어떻게 마련된 것인가 이런 것부터 가르쳐 줘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컴퓨터 교육, 그리고 뭐 일반 생활에 쓰는 언어 이런 것... 그런 것은 나와서 부딪쳐 봐야 공부가 되지 아무리 공부해줘도 모르겠더라고요. 오히려 생활 흐름에 관한 것, 남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가 이런 것을 많이 배워줘야 할 것 같아요. 얼마나 이 나라 사람들이 아끼고 살아요. 여기만 오면 여자들은 공주가 된 줄 알고 남자들은 이 사회가 쉽게 이루어진 줄 아는데...”
6) 노력하는 삶
참여자들은 적응과정을 겪으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나름대로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해 나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삶에 임하는 태도를 적극적이고 수용적이며 긍정적으로 취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었다. 이러한 태도들을 취하는 데에는 개인적인 성격이나 북한에서의 지위 등이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참여자들은 아래와 같이 진술하였다.
“여기 와서 1년 동안 별 일을 다 해봤어요. 적응하려면 이 나라를 좀 알아야 한다. 그래가지고 일을 막노동도 해 보려고 물탱크 만드는 데서 한 달 하고, 노가다도 해 보고 이것저것 해 보면서 아 이 나라가 노동 강도가 세구나... 노동 시간에 쉬고 담배 필 여유도 거의 없더라고요. 다 그렇게 일 하는데 혼자 앉아서 담배 피울 수도 없고. 그래서 ‘참 이 나라 사람들이 근면하다, 일하는 데에 틈이 없구나’ 생각했죠. 출퇴근 시간, 일하는 강도를 봐도 짬이 거의 없어요. 이래서 이 나라가 일어섰구나 깨달았죠. 그 후로 일도 열심히 배우고...”
“저는 여기에 와서는 여기 사는 스타일대로 한번 살아 본다 마음먹었어요. 모르는 것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물어보려고 노력 했어요”
“마음이 항상 편안하고 좋다 하는 그런 거는 없어요. 그러나 마음을 좋게 가지려고, 내가 어차피 이 사회에 왔으니까 이 사회에 적응해야 하니까 마음을 좋게 가져야지 안 그러면... 아직까지도 많이 부딪히고 속상할 때가 많죠. 많이 모르고 깜깜할 때가 많죠. 그래도 ‘이건 이렇구나, 내가 전혀 다른 곳에서 왔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해요. 받아들여야지 안 그러면 미치겠더라고요. 속상하고요”
“내 자신이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야겠더라고요. 안 그러면 맨 날 사람들하고 싸울 일 있어요? 너무나도 짓궂게 제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는 사람들한테는 ‘옷 사러 오셨으면 옷만 보고 가세요. 제가 사투리 쓰는 거랑 무슨 상관이예요’ 이렇게 넘겨요. 일일이 신경쓰다보면 살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마음을 비우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겸허하게 모든 것 다 비우고 하나하나 새롭게 받아들이면서 배우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북한에서 내가 잘 했는데 잘 나갔는데 여기 와서는 내가 못 해야 하나 이런 마음을 비우는 것이 정말 자존심 상했어요. 그래도 배우려면 내가 남보다 하나 더 닦고 더 일을 하고 섬겨주고... 그러면서 배우는 거잖아요”
“여기에서 태어난 사람도 굉장히 자기가 마음에 드는 직장 찾기가 어렵잖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한다는 것은 제가 보기에 아직도 극소수인 것 같아요. 전체 인구 중에서도. 저 역시도 아직까지 만족 못하고 맞추어 가고 있는 것이죠. 언제나”
“생각을 긍정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당기관에서 일을 했던, 행정기관에서 일을 했던 공무원 계통, 의사, 선생님 이런 사람들이 정착이 빠른 거예요. 아무 일을 해도. 저도 그런 계통에서 일을 했지만 생각을 우선 긍정적으로 가지니까 받아들이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요.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불평불만하고 그러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리고 자기중심을 잡고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도록 하며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 또한 참여자들이 하는 노력 중 하나였다. 이에 대한 참여자들의 진술은 아래와 같다.
“내가 내 생각을 가지고 중심을 딱 잡아야지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고 그렇게 하면 정말 실패죠. 저는 글쎄요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누가 뭐 좋아 보이는 것 하면 그거 하고 싶어 하고 또 다른 쪽에서 뭐 하면 그것 또 하고 싶어하고. 그러다 보니 나중에 수습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그런 것을 많이 경계를 하죠”
“내가 나를 높여 보니까 높아지더라고요. 그런 마음이 있으니까 어디 가든지 당당하고. 당신이 나를 채용 안하면 후회할 것이다 뭐 이런 마음. 그런 생각을 가지니까 여기서 나를 안 받아 주더라도 일자리 없겠냐 그런 마음이 들고. 맨날 주눅들고 이 사회에서 나는 가치가 없고 이런 생각만 하면 정말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아요”
또한 폐쇄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남한사람들과의 대인관계를 넓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는 참여자들도 있었다. “자기가 경험하지 않던 영역을 넘으려면 담이 필요해요. 담력이. 아 저기는 내가 끼면 안 되는 곳이겠지... 자기 스스로 영역을 쌓고 그러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사실 그걸 스스로 넘는 것이 힘이 들죠. 저도 대인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해요. 처음에는 온라인상으로만 만나다가... 모르는 사람들하고... 처음에는 굉장히 서먹서먹하고 어색하죠. 그렇기는 한데 그 사람들한테서 아주 작은 공통점이라도 찾아서 대화도 나누면서 친해지고 하면 이제 오프라인 상에서도 만나기도 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대인관계가 좋아지는 거죠. 탈북자들 중에는 이런 것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아는 사람도 없고 가족도 적고 하니까 제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에 대한 편견 없이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니까 그런 쪽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뭔가 보람된 활동을 함으로써 삶의 활력을 찾는 참여자도 있었다. 이 참여자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취미활동을 가질 것을 적극 권장하였는데 이를 통해 삶의 활력과 보람을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다. “취미생활을 하다보면 잡생각을 잊지 않습니까. 건강... 운동도 되고. 저도 밤마다 인라인 타러 나가고 자전거 타러 나가고 하는데, 뭐 사진찍기 좋아하는 사람은 카메라 동호회에 가입해서 취미활동 하고 애완견을 좋아하는 사람은 애완견 가지고 놀아도 되고. 여자들은 수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원래 북에서 수예를 배웠었다면 여기 사람들보다 더 수예가 높을 수도 있거든요. 가르치는 입장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 입장이 된다면 조금 더 배워가지고, 가르치는 보람 느끼면서... 그건 전혀 경험 못 했던 환경이죠. 그렇게 보람을 느낀다면 그것이 삶의 활력소가 되지 않겠습니까”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남한생활에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노력을 하였다. 이는 취업 및 생활의 안정과 직결되므로 이들이 필수적으로 기울여야 할 노력이었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정착초기에 돈을 우선 벌 것인가 아니면 돈은 좀 못 벌더라도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지식과 기술을 배울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정착 기간이 어느 정도 경과된 참여자들은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아무 일이나 하는 것보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보다 나은 직업을 가지는 것이 장기적인 투자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경험들에 대해 참여자들은 아래와 같이 진술하였다.
“처음에 여기 와서 돈에 너무 집착해가지고 무조건 돈을 벌어야지 이랬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 더 나은 부분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이런 것을 깨달았지요. 여기 와 가지고 아무런 기술도 없이 밑바닥에서 일을 할 수만은 없잖아요. 직업훈련 받을 수 있는 특례 같은 과정을 활용해서 배워야 한다... 뭔가를 배우고 자격증 같은 것을 취득하고 하면 더 좋은 부분에서 일을 하고 예전보다 더 향상된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죠. 그래서 저도 야간에 또 공부를 다녀요”
“닥치는 대로 배워두는 것이 나중에 다 쓸모가 있어요. 운전면허는 필수적이잖아요. 이 사회를 살아가려면 뭐가 필수인지를 생각해야 해요. 운전도 해야 하고 음식문화도 어떤지 배워야 하고. 저는 처음 나와서 요리학원을 다녔어요. 요리 배워서 자격증도 땄어요. 지금 그걸 이용은 못하지만 잘 못 배웠다고는 생각 안해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이 비즈니스 쪽이잖아요. 이걸 하다 보면 대부분의 사업이 식당에서 이루어질 때가 많은데 음식에 대한 지식이 있으니 그런 이야기 하면서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고 대화가 되요. 뭐든 배우면 손해는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위의 진술에서 참여자가 음식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남한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었듯이 남한의 음식문화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익숙해지는 것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웃집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참여자들에게 나누어주면 이들도 음식을 하여 대접하기도 하였다. 음식문화를 배우기 위해 요리를 배우는 참여자들도 많았다.
7)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
참여자들은 나름대로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방향이나 목적이 있었다. 희망이 있는 삶, 안정된 삶, 융화된 삶 등이 그것이었는데 이러한 삶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 속에서 살아가는 원동력을 얻고 있었다. 희망이 있는 삶에 대해 참여자들은 아래와 같이 진술하였다.
“사람이 삶의 목적이 생기고 힘들어도 희망이라는 것이 있는 삶 이런 삶이 제가 원하는 삶이죠.”
“돈도 돈이지만 뭔가 이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도대체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이 사회에서... 그게 잘 안겨 안 오니까... 희망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으니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시절이 있었어요. 탈북자에게는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어요. 지금은 목표하고 있는 일이 있고 그것이 남한사회에서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고 나름대로 자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대부분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마는 힘이 듭니다”
“북한에서 결혼을 해서 애가 둘이 있어요. 그런데 저 혼자 내려와서 여기서 다시 결혼을 한 거죠. 지금 제 처도 이야기 하는 것이 훗날에 우리가 돈을 벌었다가 그 자식들 만나면 다 해주자 이런 생각을 하고 살고 있어요. 그 아이들을 만났을 때 무엇을 해 줄 것인가... 진짜 떳떳하게 살아가지고 그 아이들 만났을 때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 아이들이 이해를 하고 그 때 그 아이들한테 무엇을 안겨줄 수 있는 것 이것이 제 희망이자 살아가는 힘입니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꼭 그렇게 될 겁니다”
정착 기간이 오래된 참여자들 중에는 “정신적으로 신경성은 많이 없어졌어요. 예를 들어서 두통 같은 거요. 한 5년 지나가면서 이제 편해지고 마음이 안정되고 하니까 그런 건 없어지더라고요”라고 말하여 ‘심신의 조화’가 이루어져 가면서 주관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은 안정된 삶 역시 참여자들이 추구하는 삶이었다. “저는 월급 50만원 주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할 겁니다. 오래 계속 할 거예요. 안정적으로 월급 50만원씩 나오면 계속 일을 하다가 추가로 여유상황이 되면 공부하면서 방향을 바꾸거나 할 수 있겠죠. 적더라도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갈 수 있는 것. 처음에는 그게 좋은 것을 느끼지 못했어요. 50만원 가지고 어떻게 사나 이런 식으로... 그런데 안정이 보장된다는 것이 삶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 절실히 느낍니다.”
참여자들은 또한 남한의 주류사회에 속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남한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들과 융화되는 것이 이들이 추구하는 삶이었다. “남한 사람들과 교류를 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지 융화를 해 나가야겠다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회에 대한 거부감, 기피하려고 하는 기피성이 없어진다는 거죠. 어느 순간에. 제 경우를 보면 남한 사람과 결혼했는데 가정에서부터 남한 생활에 익숙하게 되고 남한 친척들과 자연스럽게 왕래하게 되고 그러면서 제가 어느 새 남한사회에 융화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내가 맏사위인데요. 동서들이 많아요. 명절이나 생일이나 하면 다 나한테 오고 뭐 상의할 것 있으면 상의해요. 내가 저쪽 사람이다 그런 것이 없고 내가 뭐라고 말해 주면 거기에 다 따라주고. 동서들이 내 말대로 하면서 그렇게 하니까 좋았다고 말할 때... 저를 인정해 주는 거거든요.”
하나원 건강관리담당 관계자는 북한이탈주민이 어떤 긍정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을 때에는 “할 수 있다”,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말하여, 희망이 북한이탈주민들의 삶에서 필수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북한이탈주민이 삶에서 설정한 목표를 우리(보건의료인)의 시각이나 잣대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 그 목표는 중요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2. 패러다임 모형
북한이탈주민을 면담한 결과 도출된 범주들의 관계를 제시하는 패러다임 모형을 제시하면 그림 3과 같다.
그림 3. 성공적인 재사회화 과정을 통한 희망적 미래 추구하기
3. 핵심범주
북한이탈주민은 이미 북한에서 사회화 과정을 겪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남한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새롭게 다시 적응하여야 한다. 즉 재사회화 과정을 겪어야 한다. 따라서 북한이탈주민의 삶에서 재사회화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본 연구결과 북한이탈주민의 질적인 삶에서 또 다른 필수적인 요소는 희망이다. 적응과 심신의 조화 속에서 참여자들은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을 추구하고 있었다. 재사회화와 희망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북한이탈주민 삶의 질의 의미를 구성해 본다면, ‘성공적인 재사회화를 통한 희망적 미래 추구하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본 연구의 핵심범주(core category)이다.
4. 삶의 질 의미
북한이탈주민의 질적인 삶이란 사회적 상호작용이 원활하고,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음을 인지하며,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삶을 통해 재사회화 과정을 촉진시켜 희망적 미래를 추구하는 것이다.
Ⅳ. 논 의
본 연구결과 국내 거주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에서 필수적인 요소는 ‘재사회화’와 ‘희망’ 이었다. 북한이탈주민의 남한에서의 재사회화는 적응을 하면서 심신의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이었고, 그 결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것이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의 의미였다. 재사회화는 탈북자의 적응을 유용한 개념(한만길, 1996)이고, 희망은 Ferrell 등(1995)에 의하면 삶의 질 중 영적 안녕을 구성하고 있는 개념이다. 본 연구에서 핵심범주로 도출된 ‘성공적인 재사회화를 통한 희망찬 미래 추구하기’는 북한이탈주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반영한 삶의 질의 의미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삶에서 적응과 심신의 조화를 잘 이루어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미래에 대해 희망적으로 인지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본 연구에서 재사회화 과정과 희망은 참여자들의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의미를 두고 있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결과는 외국의 측정도구를 사용하여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을 연구한 기존의 연구들(김영만, 2004, 진용탁, 2003)과는 차이가 있었다. 가장 큰 차이는 이들 도구가 북한이탈주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본 연구결과 핵심적인 요소로 드러난 ‘재사회화’ 즉 적응과 이에 동반되는 심신의 조화에 대해 제대로 측정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희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뿐만 아니라 본 연구결과 드러난 의식구조 차이로 인한 갈등,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등도 북한이탈주민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며 삶의 질의 의미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보여주는 적응 양상이나 적응상의 문제점은 단순히 북한에서 살다 온 사람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문제라고 일반화 시킬 수 없는 다양한 측면의 원인이 있는데 이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첫째 한 국가 내에서라도 비도시화, 비산업화 지역의 사람이 도시화, 산업화된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을 때 그 적응과정에서 나타나는 양상, 둘째 타문화권 국가로 이민을 가서 적응하며 나타나는 양상, 셋째 공산체제 하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의식구조 특징과 그들의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에 따른 적응 양상, 넷째 공산주의 국가 중에서도 매우 특이하게 더 전제주의적 사회체제를 가졌던 북한체제 하에서 교육받고 살았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양상, 다섯째 북한의 특징이라기보다 남북한 출신 모두에게 해당되는 한국인 고유의 일반적 양상 등이 그것이다(전우택 등, 1997). 본 연구결과 참여자들이 보여주는 적응양상은 복잡한 생활권에 편입되면서 겪는 심리적 적응에서의 경험, 외래어나 한자가 생소하고 말투가 다름으로써 겪는 언어적응에 대한 경험, 북한 체제에서 사회화 되면서 학습된 의식구조를 가지고 남한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 등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위에서 제시한 원인들이 단독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응에서는 언어적응, 심리적 적응, 그리고 물리적 적응의 세 가지 측면이 있었다. 언어적응에서 외래어나 한자 사용으로 인한 일상생활의 어려움은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통해서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보인다. 북한이탈주민의 언어적응실태를 조사한 정경일(2002)의 연구에서도 북한이탈주민들이 비교적 남한 언어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 대상자들이 “의사소통에는 크게 지장이 없으나 말투나 억양 등이 완전히 남한 말과 같지 않다”고 진술하였듯이 말투의 차이로 인해 경험하는 스트레스와 사회적 스티그마는 일상생활에 장애를 주는 요소로서 비교적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투로 인해 북한사람임을 알게 되고 이로 인해 취업에서 차별을 경험하거나 남한사람들로부터 편견어린 시선과 차별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더욱더 적응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북한이탈주민은 언어 적응을 위해 남한 언어를 사용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방송 청취나 주민과의 대화, 특별교육 수강, 독서, 국어사전 활용 등 언어를 학습하기 위해 노력한다(정경일, 2002). 그러나 말투는 본 연구에서 참여자의 말에 의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여자보다도 남자에게서 두드러졌는데 참여자들이 “초기에는 아무래도 여자가 남자보다 적응이 빠르다”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언어적응 측면에서 남자가 더 어려움을 겪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말투가 문제가 되는 것은 남한사회의 타문화에 대한 폐쇄성에 기인한다. 다원주의적인 사회라면 새로 유입되는 문화는 잘 수용될 것이고 우세한 집단의 변화에 대한 압력 없이 이주자들이 가지고 있는 관습들이 유지가 될 수 있지만 이주자들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다른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지 못하면 이주자들의 독특한 특성은 평가 절하된다(Berry, 1984, Berry 등, 1987 에서 재인용).
심리적 적응 측면에서는 정신적 압박감이 정착 초기의 참여자들에게서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들은 “생각이 포화되었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이는 심신의 조화가 이루어지는데 영향을 주게 되었다. 두통과 집중력 저하 현상이 그 중 자주 경험하는 것이었다. 집중력 저하는 인지적 변화의 한 형태로서 이처럼 북한이탈주민은 심리적 적응 과정 인지적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 하나원 건강관리담당 관계자와의 면담에 의하면 하나원에 입소한 북한이탈주민들은 대부분 심한 두통과 함께 기억력 저하 현상을 보인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탈북과정에서 겪은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에 포화되어 정리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데 이러한 현상은 하나원 생활 동안 상담을 하고 적절한 투약을 하면서 차츰 회복된다고 말하였다. 즉 지나친 정신적 압박과 이로 인한 생각의 포화상태는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 같은 인지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고 이는 일상생활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는 요소라고 보인다. 심리적 적응 중 정체성 혼란이나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 실망감 같은 경험들은 전우택 등(1997)이 면담 방법을 통해 북한이탈주민의 남한사회 적응에 대한 연구 결과와 비슷한 것들이었다. 이 연구에서는 심리적 측면에서의 적응 양상을 자아정체성 문제, 귀순에 대한 만족감 문제 (본 연구에서는 실망감으로 개념을 도출함),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종교에 대한 태도로 보았다.
물리적 적응 측면에서는 육체적으로 힘든 생활이 참여자들의 삶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났다. 면담하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간간이 북한에서의 생활에 대해 말하는 내용을 보면 교통의 낙후로 50~60리 거리를 예사로 걸어 다니고 주로 육체적 노동을 하였다. 그러나 남한에서 경험하는 ‘육체적으로 힘든 생활’은 북한에서의 육체적 노동과는 달리 밤낮없이 돌아가는 남한 체제라는 물리적 환경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심신의 조화는 적응 과정에 동반하여 이루어져나가는 부분인데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불안이나 분노, 우울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는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남한 내 북한이탈주민의 건강상태를 조사한 김경철(2004)의 연구에서는 Beck's depression inventory에 의거한 우울증이 41.72%의 대상자에게서 나타났으며 남녀의 차이는 없었다. 최승주(2004)의 연구에서도 같은 기준에 의거해 가벼운 우울이 31.54%, 중한 우울이 18.12%, 심한 우울이 5.37%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의 다른 연구(이장호, 1997, 이기영, 1999 에서 재인용)에서 불안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가까운 증상으로 표현하는 것과 달리 본 연구에서의 불안은 남한에서 살아가면서 의사소통 과정(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탈북과정에서 경험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가까운 불안이 남한에 정착한 후에도 지속되는 현상을 본 연구에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표현인 ‘쫒기는 마음’으로 명명하였다. 한편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에서 평생 남을 미워하는 증오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조용관, 2004) 이러한 과정에서 정당화된 분노와 적개심이 남한사회에서 어떠한 위협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경우 상대방에 대한 공격이나 자신에 대한 좌절로 발전될 수 있다(조영아, 2002).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분들을 적절하게 표출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체의 조화에서 소화장애는 북한에서도 흔히 경험하는 증상이었다. 참여자들은 면담 도중 간간이 북한생활에 대해 말할 때 매일 추운데서 찬밥을 먹어 소화장애가 많다고 하였다. 하나원 건강관리담당 관계자는 북한이탈주민의 치아상태가 매우 나쁘기 때문에 저작에 문제가 있고 이로 인해 하나원에서도 소화불량이 매우 흔한 증상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하나원에서는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치아보철을 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본 연구의 현상으로 나타난 소화불량은 이전에 소화문제가 없었던 참여자들이 이유도 없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타나는 증상으로서 북한에서 굶기와 폭식, 불규칙한 식사, 질이 좋지 않은 음식으로 인한 위장병(박종연, 2002)과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연속적인 감기 역시 위의 맥락과 비슷하게 설명된다. 북한주민들의 면역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있어 호흡기 질환, 결핵, 간염 등이 많다는 것은 기존 연구보고서(박종연, 2002)에서도 밝혀지고 있다. 본 연구에서 나타난 연속적인 감기 역시 참여자들의 면역력이 낮아져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에서는 혹한에서도 면역력 저하 증상이 없던 참여자들도 남한사회에 정착하면서 힘들고 피곤한테다가 자연환경이 북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에 따른 면역력의 저하를 경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감기는 대부분 잘 낫지 않고 오래 갔으며 자주 발생하였다.
의식구조 차이로 인한 갈등은 북한의 정치사상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본 연구에서 참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구조로는 집단위주의 폐쇄적 사고방식, 강한 자존심, 이분법적 사고, 공격적 태도 등이 있었다. 북한정치교육의 주요한 내용 중 하나가 집단주의를 강조하고 있으며, 김일성 주체사상은 그릇된 자존심을 조장시킨다는 것이다(민성길 등, 2002). 남한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에도 쉽게 마음이 상하며 자신을 무시한다는 자존심을 내세운다. 남한사람과 동일한 임금을 주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 수준에서 임금을 주는 것도 기업주 입장에서는 이들의 생산력이 외국인 근로자 수준에 못 미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지 결코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그렇게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것을 자존심과 결부시켜 설명한다. 또한 탈북자들의 언어 자체가 거칠고 행동 또한 전투적이어서 남한 사람들이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접근하지만 몇 번 접해 본 다음 기피하게 된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이 같은 공격적, 비판적 행동성향 때문에 직장동료들이나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교제하기를 꺼려해 남한사회 적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는 결국 북한에서 실시한 모든 현상을 적과 우리 편으로 양분하는 이분법적 사고, 증오교육이 탈북자들의 남한 사회 적응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조용관, 2004).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실업문제이다. 실업은 경제적으로 생활능력을 마비시키고 사회화의 연결고리를 단절시킴으로써 자기 가치감을 상실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실업자가 된 경우에는 가능한 한 빨리 직장으로 복귀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에서는 기술진보가 빠르고 새로운 지식의 공급량이 많아서 실업기간이 길어질 경우 정보로부터 단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일정 기간 이상을 실업자로 있을 경우 영구적인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윤덕룡과 강태규, 1997). 본 연구에서도 드러났듯이 북한이탈주민은 일단 취업이 어렵고 취업이 되었다 할지라도 소득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장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직장을 옮기고 싶어 하였다(윤덕룡과 강태규, 1997). 또한 북한이탈주민 스스로가 직장생활에 있어서 필요한 기능 혹은 기술이 부족하고 직장에서의 인간관계가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였는데(윤덕룡과 강태규, 1997)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전반적으로 직업이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에서 나타난 또 다른 현상은 ‘수용적이지 않은 남한사람들의 태도’이다. 윤인진(2000)은 우리 국민이 북한이탈주민에 대해서 갖는 태도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전이되는 인상을 주며 북한주민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이들에게 투영되어 이들을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바라보지 개성과 개별성을 갖춘 개인으로 인식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한편 우리 국민은 북한이탈주민에 대해서 태도와 행동 간의 이중성을 보여서 관념적인 차원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의 사회정착을 위한 정부지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자신에게 어떠한 형태의 구체적인 피해나 비용이 부담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하였다. 본 연구에서 참여자들이 대하는 남한사람들의 태도는 후자에 가까웠다. 즉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지원도 지원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남한 사람)들도 빈곤계층이 많은데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이 마치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주어지는 것처럼 느끼는 정서가 참여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이럴 때 북한이탈주민들 상당수는 자신들이 남한 정부나 주민들로부터 이방인, 이등국민, 귀찮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이러한 감정은 정착 시기가 길어질수록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윤인진, 2000).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사회의 공동체로 편입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사회적 지지는 정서적 관심(호의, 사랑, 연민), 수단적 도움(재화, 용역), 주위 환경에 대한 정보,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 평가 등의 내용을 내포하는 대인적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House, 1981). 본 연구에서도 이러한 사회적 지지의 네 가지 요소가 모두 나타났다.
사회적 지지에서 정보적 지지와 관련하여 어려운 점의 하나는 자녀교육 문제였다. 자녀들이 학교교육에서 배우는 내용을 집에서 지도하고 싶어도 내용이 너무 어렵고 무슨 말인지를 몰라서 할 수 없었다. 면담 도중에 나온 참여자들이 말을 들어보면 자녀를 둔 여성 참여자들은 남한의 조기교육 및 사교육에 대한 정보를 주로 접하고 있었다. 자신은 비록 힘들게 살았지만 자식만은 남한 사회에서 떳떳하게 살아가길 바라기 때문에 가능한 한 조기교육이나 사설학원을 이용하려고 하였다. 한 참여자는 아직 두 돌도 안 된 아이에게 한글 보습교사를 신청하였는데 아이가 몇 달 지나지 않아 울면서 받아들이지를 못하여 그만두었고 4살이나 5살 정도에 다시 시키겠다고 하였다. 본 연구에서 진술된 참여자들의 경험은 이소래(1997)의 남한이주 북한이탈주민의 문화적응 스트레스 연구에서 사회적 지지의 하위영역인 정서적 지지, 물질적 지지, 평가적 지지, 정보적 지지 중 정보적 지지가 문화적응 스트레스와 가장 높은 상관관계(r=-.631, p<.001)가 있었다는 연구결과와도 일치한다. 또한 이 연구결과에서는 양부모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더 낮은 문화적응 스트레스를 나타내었다. 양부모는 정서적인 지지를 제공해 주는 존재이다. 본 연구결과에도 가족이 주는 정서적 지지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본 연구에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참여자들은 가정의 화목을 중시 여겼고 부부간의 큰 갈등이 없어 남한사회에 적응하는데 가족이 중요한 정서적 지지원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서 결혼하여 같이 탈북한 부부의 경우 갈등을 겪는 경우가 종종 보고 되고 있는데 별거나 이혼에 이르는 사례도 갈수록 늘고 있다(동아닷컴, 2004년 1월 28일). 북한은 남성위주의 사회로 여성의 지위가 매우 낮다. 결혼해도 여성은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사회활동을 하고 가정에서도 남성 우위의 봉건적 전통이 남아있어 살림을 도맡아 해야 한다. 남성들은 이러한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사고에 젖어 남한에서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높은 것에 대해 적응하지 못하는데 비해 여성은 인격적으로 대우를 받는 것을 경험하게 되어 부부간의 갈등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 한 여성 참여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남자는 부엌일에 손을 안대요. 남자가 어떻게 부엌일에 손을 대냐. 자질구레한 가정 안의 일 같은 거 신경을 안 써요. 다 여자가 하는 거죠. 빨래하고, 밥 짓고, 청소하고, 다 여자가 하는 거예요. 남자들은 하는 것이 뭐가 있는 줄 알아요? 땔감 구하는 거 그거에요. 직장에 나가고. 땔감 구해다주고 그게 다예요. 여자가 얼마나 고단하겠어요. 북한은 아직 현대화가 되지 못해가지고. 아궁이에 불 집혀서 밥 해야지, 그 다음에 세탁기도 없거든요. 손빨래 해야지 뭐 무릎 구부리고 물걸레질 청소기가 있습니까? 전기밥솥이 있어요? 그 많은걸 여자 혼자 하려니까 얼마나 지치겠어요. 거기다가 아이까지 돌봐야지. 그러다가 여기 오면 그게 하나 둘 변화가 되는 거예요. 몇 년이 지나면 그게 변화가 되가지고, 이렇게 좀 아이 엎고도 가고. 남자가 아이 엎고 가면 북한에서는 얼마나 웃는지 몰라요. 남자가 뭐하는 꼴이냐고 이런 식으로. 여기 와가지고 아기를 엎고 다니잖아요 이렇게 띠 해가지고 얼마나 우습겠어요. 이상하더라고요 오히려 그게. 이제 한동안 지나다 보니 굉장히 익숙해지고 저건 남자들도 할 수 있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고 그렇죠. 남한은 여자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세상 같더라고요. 여자가 일하기에 참 편하게 되어있어요. 세상에 청소기가 다 있지. 얼마나 좋아요. 게다가 남자들이 여자를 다 도와주지.” 이처럼 남편이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여성을 존중하려고 노력할 때 부부간에 큰 갈등 없이 서로 지지가 될 수 있다.
제도적 지지에서 참여자들은 의료서비스, 생계비 지원, 교육 등 다양한 제도의 수정 보완을 요구하였다. 이덕배(2003)는 북한이탈주민의보호및정착지원에관한법률에 대해 북한이탈주민의 효과적인 사회적응 및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제언을 하였는데 그 중 본 연구에서 참여자들이 요구한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은 일시불로 지급하는 정착금제도를 고용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설치 및 관리하는 공공시설의 식료품, 사무용품, 신문, 잡지 등 일상생활용품의 판매를 위한 매점이나 자동판매기의 사업권 기회를 현실적으로 확대하는 것, 자영업 육성을 위하여 생계형창업지원제도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사업성 있고 경쟁력 있는 북한이탈기업가들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확대하는 것 등이다. 정부에서는 2004년 7월에 정착금 지급제도를 중심으로 한 ‘정착지원제도개선방안’을 확정하여 12월에 ‘북한이탈주민으보호및정착지원에관한법률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개정하였는데 일하지 않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정착지원금은 줄고 적극적으로 취업에 나서는 사람에 대하 인센티브는 늘어나게 되었다. 여기에는 직업훈련과 취업에 따른 장려금제를 신설하고 대학지원기간을 5년으로 설정하여 전문대학 등 지원가능 대학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되었다(통일백서, 2005). 그러나 아직까지 참여자들이 요구하는 만성질환자 등 취약자들에 대한 의료보호지속 요구는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실정에 맞는 현실적인 제도의 보완 및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하는 삶은 북한이탈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요소이다. 이는 성공적인 재사회화를 촉진시키고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들 중 보람된 활동 추구하기는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서 삶의 의미와 자기존재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나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과 같은 긍정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연구된 것이 없다. 지금까지 북한이탈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앞으로 연구의 방향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요소를 밝혀내고 어떻게 활용할 지를 고안해 내는 것이다. 그와 같은 연구들이 이루어질 때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은 보다 향상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에는 개인적인 특성 또한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었다. 본 연구의 참여자들 중 북한에서의 교육수준이 높고 공무원으로 비교적 어렵지 않게 살았던 사람들은 우선 태도가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남한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려 하였으며 대인관계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였다. 반면에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남한사회에서 좌절을 많이 겪어 심리적 적응에서 더 심한 정신적 압박감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성별 또한 그러한데 전반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언어 적응 면에서나 사회적 상호작용 면에서 비교적 어려움이 덜하였다.
Ⅴ. 결론 및 제언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계속 증가될 것으로 예측되는 시점에서 이들을 위한 대부분의 조치들은 사회구조적 대책 마련에 집중되어 있고 보건 의료적 대책 마련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소홀한 실정이다. 북한이탈주민의 건강문제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국내 거주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목적은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이 경험하는 삶의 질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삶의 질의 의미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파악하기 위하여 근거이론방법을 적용한 질적 연구를 시도하였다. 연구결과 ‘적응’, ‘심신의 조화’, ‘의식구조 차이로 인한 갈등’,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사회적지지’, ‘노력하는 삶’,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 의 총 7개 범주가 도출되었으며 이들의 관계에 대한 패러다임 모형을 제시하였다. 핵심범주는 ‘성공적인 재사회화를 과정을 통한 희망찬 미래 추구하기’였다. 북한이탈주민 삶의 질의 의미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원활하고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음을 인지하며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삶을 통해 재사회화 과정을 촉진시켜 희망찬 미래를 추구하는 것이다.
본 연구결과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첫째, 남한 거주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와 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 주민들이 북한이탈주민과 비슷한 과정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를 대비한 기초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하는 개인과 단체가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을 이해할 수 있는데 본 연구결과를 사용할 것을 제언한다.
셋째, 본 연구결과 개발된 삶의 질 고유의 속성을 이용하여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 측정도구를 개발할 것을 제언한다.
넷째, 국내뿐만 아니라 재외 북한이탈주민 그리고 이들과 비슷한 경험을 하는 해외 난민들의 삶의 질을 파악하기 위해 질적연구방법을 활용할 것을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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