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0일 금요일

신촌 이미지한의원 육관대사 터 명당

다음 글은 “터” 하권 중에서 한대목을 그대로 옮긴 내용입니다.

지리와 사주와 관상과의 만남


1960년 초반이었으니 30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육관(손석우)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두 사람의 기인과 양수리 근처의 매운탕집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나셔서 섭섭하지만 그분들은 각기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과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단촌 이석영은 사주풀이의 제1인자로서 장개석 총통의 사주와 1년 신수를 풀이해줄 만큼 탁월한 실력을 갖춘 분이었다. 또다른 한 분은 관상, 골상, 수상, 족상등 상을 보는 데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학의 고수였으나 박해월 선생이 그분이다. 박선생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매우 가까이 지냈던 분이었다.
사주와 관상과 지리의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이야기가 자못 흥미진진하고 점입가경이었다. 저마다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분야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분야라며 주장했던 기억이 난다. 갑론을박이 계속되니 술은 거나하게 올라 기분은 좋았으나 실제실험을 통해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주흥이 도도하여 술집을 나오는데 그때 미침 웬 초라한 총각이 지나는 게 보였다. 일행은 마침 잘 됐다 싶어서 그 청년의 뒤를 밟았다. 조금 가다보니 그 청년은 강변 다리 밑의 조그만 움막집으로 들어가는데 안에서 한숨소리와 신세 한탄하는 소리, 곡소리가 연이어 들여왔다. 일행 셋은 그를 불러내었다. 그가 누구이며 무엇하는 사람인지, 왜 울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야기를 들어보기 전에 사주와 관상을 먼저 보기로 작정하고 이선생과 박선생이 그 앞에 나섰다.
“우리들은 사주도 보고 관상도 보는 사람인데 어디 자네 것을 한번 봐주려고 하니 흔쾌히 허락해 주시게.”
이렇게 하여 박해월 선생이 먼저 관상을 보게 되었다.
총각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본 박선생 왈,
“천하에 둘도 없는 불쌍한 거지일세. 어허 이거 어쩌나, 태어나면서부터 거지고 지금도 거렁뱅이며 앞으로도 계속 걸인 신세를 못 면할 상이나 안타깝구나!”
이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손바닥도 이리저리 보고 발바닥까지 보았지만 박선생의 안색은 펴지지 않았다. 상이란 상은 다보아도 영락없는 거지였던 것이다. 박해월 선생은 혀를 끌끌 차며 물러났다.
“정말 앞으로 운이 펼 방도가 없을까?”
이석영 선생이 이렇게 말하며 그의 사주를 풀기 시작했다. 초년, 중년, 말년 운세를 다 보았건만 그가 내린 결론 또한 마찬가지였다. 원래 태어난 팔자가 걸인인 데다가 관상까지 영락없는 비렁뱅이니 그야말로 완벽한 거지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행은 이 총각이 거지인 줄을 알고 몇 마디 말을 시켜 들어보니 탄성이 절로 날 수 밖에 없었다.
“저는 아무아무개로서 올해 열아홉 살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어렸을 때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여기저기 친척집을 돌아다니며 불가피하게 신세를 지곤 했습니다만 언제부터인가는 그마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들 말씀대로 정말 거렁뱅이 생활을 하며 이날까지 이런 움막에서 어렵게 지내오고 있습니다.”
이러면서 펑펑 우는데 일행 모두가 측은한 마음이 솟아올라 마음이 아팠다. 게다가 사정을 더 들어보니 바로 몇 시간 전에 초상집에 들어가서 얻어 먹다가 몹시 혼이 난 모양이었다. 육관은 그 총각을 잘 달래면서 말했다.
“자네가 아버지를 여의었다는데 그럼 아버지묘는 있는가?”
“예, 그렇습니다만...?”
“알았네, 이 사람아. 게가 어디인가?”
“예, 여기서 얼마 안 되는 곳입죠.”
이제 비로소 육관 차례가 온 것이었다. 육관은 그때 이석영 선생과 박해월 선생에게 다시 한번 그 총각의 운명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두 최고수의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앞으로 도저히 좋아질 수가 없는 팔자요 상이니, 장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요? 그러면 제가 어디 운명을 한번 바꾸어보리다.”
이렇게 해서 그 거지 총각의 아버지묘는 이장을 하게 된 것이었다. 마침 근처의 조그만 자리가 하나 눈에 들어 점찍어 놓았기 때문에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묘를 파서 체백을 날라오는데 영구차를 빌릴 수도 없고 해서 트럭에 싣고 왔다. 물론 트럭 기사에게는 비밀로 해야만 했다. 미리 정해놓은 자리에 아버지의 시신을 다시 묻고는 육관은 총각에게 말했다.
“이보게, 옛부터 인걸은 지령이라 했는데, 자네의 사주와 관상이 비록 거지이지만 이제 선친의 체백을 좋은데 모셨으니 곧 발복이 있을 걸세. 만약에 이후로 이상한 조짐이 있으면 어디어디로 연락해주게. 내가 그때 다시 한번 와 봄세.”
이석영 선생과 박해월 선생은 그저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 말이 이장을 한 것이지 그것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새로 옮긴 터가 명당에 비한다면 형편없이 초라한 곳이요, 게다가 남의 땅이였으니 언제 무슨 불벼락이 떨어질지 모를 형편이었던 것이다.
이제서야 고백하건데 사실 육관은 그 당시만 해도 지리의 발복에 대해서 확신이 서지 않고 있었다. 산안은 열려 땅 밑이 보이는데 정작 그 정기의 발복이 후손에게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확연하게 알지 못햇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총각에게 더더욱 애착이 갔고, 실험을 통하여 잘 되는 모습을 즐겁게 보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기 이 세상에 발복이 나는 좋은 자리를 돈 많은 부자들, 권세가들만 쓰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이렇게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세상이 공평한 것 아니겠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다짜고짜 이장을 해놓고 본 것이었다. 그리고 일행은 서울로 돌아왔다. 평생토록 거지신세를 먼치 못하리라던 이 총각의 운명은 지리에 의해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모두들 자못 궁금해지기만 했다. 그러나 이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누구도 상상못할 정도로 발복이 빨리 찾아온 것이다.

묘를 옮기고 나서 바로 며칠 뒤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총각은 밥을 얻어서 자신의 움막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다리 위에서 어떤 여인이 투신하는 것이었다. 총각은 급한 마음에 물가로 달려갔으나 구할 방도가 마땅치 않았다.
“아이쿠, 새파란 아가씨가 어찌 해서 아까운 목숨을 버리려한담. 큰일났는데, 빨리 어떻게든 구해야 되겠는데....”
총각은 발을 동동 굴렀다. 아무리 거지 신세라지만 그래도 사람이, 그것도 아리따운 젊은 여인이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다급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더욱 안타까운것은 자살을 하겠다고 뛰어내린 여인이 살아보겠다고 본능적으로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애가 타는 쪽은 오히려 물 밖의 사람이었다.
총각은 두리번 거리다가 기다란 막대기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들고 물 속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데까지 전진해서는 막대기를 여인쪽으로 던져 보았다. 연신 물을 먹으며 허우적대던 여인은 자살하려던 처음의 심정은 아랑곳없이 본능적으로 그것을 잡았다.
인간이란 참으로 묘하다. 죽을 결심으로 강물에 투신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구원의 손길이 뻗쳐오면 본능적으로 잡는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단 그 여인뿐만 아니라, 대개의 경우가 그러니 이는 그 동안의 사건 보도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한강 인도교에서 투신했다가 이를 보고 구하는 사람이 뛰어들어 손을 뻗치면 본능적으로 그 손을 잡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었던가? 아무리 죽으려고 해도 모질기만 한 것이 인간의 목숨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그 여인은 그렇게 해서 거지 총각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했다.
기진맥진 밖으로 나와 한동안 쓰러져 우니, 총각은 그저 그 여인이 자기보다 더 궁휼하고 애처러워 보였다.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 물어보지는 못했다. 생김새와 차림새로 보아 귀한집 딸 같은데 무슨 곡절로 자살하려 했는지 궁금하기는 했으나, 워낙 자신의 처지가 처지인지라 말 한마디 제대로 붙여보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진심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 좋은 일을 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흐뭇한 마음을 가질 뿐이었다.
얼마 후헤 여인은 말없이 떠났다. 어찌 되었든 자신의 기구한 목숨을 구해주어서 고맙다고 머리숙여 크게 절하고 총총히 사라져간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여인은 다시 찾아왔다. 일전에 물에 빠져 파리하게 떨고 있는 모습과는 판이하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태로 그 총각 앞에 나서자 총각은 그저 눈이 휘둥그레질 뿐이었다. 게다가 부모님까지 모시고 온 것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다짜고짜로 총각의 손을 잡고 울먹이고 있었다. 딸의 목숨을 구해주어 고맙다며 연신 하례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여쁜 딸의 운명에 대해서 한탄을 하는데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그녀는 모대학 약대 재학생이었다. 당시 아주 가깝게 지내던 애인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처녀와 약혼을 하게 되었다며 통보를 해온 것이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한 그녀는 며칠간이나 고뇌하고 방황하다가 그만 자살을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니 금지옥엽 귀한 딸의 목숨을 구해준 총각이 그 부모로서는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불쌍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전세방이나 얻으라고 돈을 뭉텅 쥐어주는 게 아닌가. 이른바 발복이 시작되는 것이다. 총각은 극구 사양했으나 그녀의 부모들의 성화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는 난생 처음 만져본 엄청난 돈을 받아서는 어찌 할 줄을 몰랐다. 언제 돈으로 뭘 사보기를 했나, 다른 사람과 거래를 해보기를 했나, 말하자면 돈이 생겨도 쓸 재간이 없으니 그냥 자신의 움막 밑을 파고 독을 묻고는 그 속에 고스란히 넣어두었던 것이다.
또 여러 날이 지났다. 그들은 거지 총각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다시 한번 그를 찾았다. 그러나 여전히 거렁뱅이 신세로 지내는 것을 보고 여간 의아해 하지 않았다. 자초지종을 알아보았지만 자기는 거지 신세가 워낙 편하니 평생 그렇게 살겠노라고 대답을 듣고는 혀를 끌끌 찰밖에 없었다. 사주도 관상도 모두 거지 팔자였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후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 재력이 대단한 부호였다. 실연한 딸이 자살소동까지 벌이자 마음이 상하여 한시바삐 다른 혼처를 찾는데 여념이 없었다. 가문 좋고 장래성이 밝은 유망한 청년들을 그 딸에게 많이 거론하였지만 딸은 한사코 거부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저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몸입니다. 이 세상에 없는 목숨이 어찌 결혼을 하겠습니까? 오직 결혼을 할수 있다면 제 목숨을 구해준 그 총각밖에는 없습니다.”
딸의 말이 떨어지자, 그 부모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얼떨떨할 뿐이었다. 아무리 생명의 은인이라도 그렇지 천애고아 무일푼 거지와 어떻게 혼사를 한단 말인가? 부모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딸이 제정신이 아닌가 의심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결심은 확고하고 단호했다. 상대방 총각의 의사와는 상관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혼을 천명하니, 이 여인은 정녕 무슨 귀신이라도 씌였던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꾸며낸 거짓말같은 이 실화는 그 사건 결말이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명당의 조화란 그저 신묘할 뿐이다. 그 총각의 아비지의 묘는 자그마한 명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손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주게 된 것이다. 그녀의 부모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딸의 마음을 돌리려 애써 보았으나 허사였다. 그리하여 19세 천애고아 거지 청년과 23세의 미모의 여대생이자 부호의 딸이 결혼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 다음이야 뻔하지 않은가. 이 거지 청년의 운세는 욱일승천이요, 일취월장 발전해 나아가니, 이른바 상팔자 중의 상팔자로 변하는 것이었다. 어여쁜 아내도 생기고 재물도 생겼으며, 또한 못한 공부까지 하니 어엿한 호남아가 된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의 묘가 있는 그 일대의 땅을 자기 소유로 사버렸다. 돈없이 명당을 얻어 발복을 받은 다음, 나중에 명당을 돈으로 산 경우이니,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였던 것이다.
몇년이 지난 후 그가 다시 한번 우리들 일행을 찾아왔을때 제일 놀란 사람은 박해월 선생이었다. 상이 모두 변해버린 것이다. 관상, 수상, 족상 모두가 거지상이던 사람이 부귀겸전하는 상으로 바뀌었으니, 박선생은 천지조화의 신비에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이 거지 청년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지금도 실존하고 있는 인물이다. 양수리 일대에서는 제법 명망있는 인물이요 부자인데, 본인의 명예를 위해 이름을 밝히지 않으니 이해하기 바란다. 이들 부부는 해마다 한 번씩 육관을 찾아와서 인사를 하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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