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0일 금요일

좋은 아버지가 되는 방법 신촌이미지한의원

'싸가지' 를 실천하라
김갑재(청소년 활동 지도자)
꽃씨를 심고 정성을 다해 가꾸어야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듯이 아이도
바르게 정성으로 키워야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 방긋 웃는 어린이들
의 환한 얼굴에서, 쌔근쌔근 잠자는 모습에서, 아장아장 걷는 모습에서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돌 때쯤이면 어린아이와 의사소통이 되는 시기이므로 이때부터 바른 언어 습
관을 길러 주어야 한다. 초기의 언어 습관은 아이가 어떤 인격을 지닌 인간으로
성장하느냐 하는 기본 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외
동이인 민철이가 어릴 때부터 존대어를 썼다.
"민철이 이리 오세요."
"밥 먹어요."
민철이가 말을 알아들을 7개월무렵부터는 언제나 동네 어른들께 인사하고, 어디
를 가더라도 고마움을 표시하게 했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감성적으로 성장할 시
기에 우리 부부는 서로를 아끼며 다정한 대화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노력했
다. 혹시 아내와 다툼이라도 생기면 아이가 잠자리에 든 후 밖으로 나가 다툼을
가라앉히곤 했다. 이러다 보니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마음이 풀리는 경우도
많아 싸우는 일이 줄어들었다.
부모의 언어 습관이나 생활 모습은 자녀에게 그대로 보여지고 전달된다. 초등
학교 3학년인 민철이가 "아버지", "어머니"라 호칭하면서, 어른을 공경할 줄 아
는 마음을 갖고 동네 어른들께 인사 잘하는 아이가 된 것은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힌 예절 때문일 것이다.
민철이도 가끔 자신의 의견이 관찰되지 않을 때면 성질을 부리기도 한다. 그
럴 때면 아이의 입장에 서서 옳고 그름을 알려주고 내 어릴 때의 이야기를 들려
주며 아이가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가르치는 것보다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하
여 많이 대화하고 주변의 어린이들과 문화유적지나 미술관, 전시장, 인형극제에
도 함께 다니며 즐기도록 한다. 민철이만 데리고 가지 않고 동네 아이들까지 데
리고 가는 것은 더불어 사는 삶을 일깨워주고 싶어서이다. 특히 방학 때가 되면
민철이와 시골 친척집도 방문하고 조상의 얼이 깃든 고향도 찾아 보면서 부자간
에 격의 없는 정을 나누기도 한다.
요즈음 부모들은 아이들을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에 짜 맞추려고 해 아이들이
마치 공산품이 되는 느낌이다. 또한 아이가 귀엽다고 요구하는 것을 "오냐, 오
냐" 하며 받아 주고 아이한테 쩔쩔(?)매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투정부린다고 모
든 것을 생각없이 받아 주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버릇 없는 아이로 키우는 결과
를 낳고 말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이 어려서 잘못 길들여진 버릇은 평
생을 간다. 잘못된 행동이나 습관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려서부터 좋은
습관을 갖는 것은 더 중요하다. 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좋은 습관을 길러
주고 싶은 마음에서 '일상의 다섯 가지 마음'-'고맙습니다'라는 감사(感 )의 마
음, '미안합니다'라는 반성(反省)의 마음, '덕분입니다'라는 겸허(謙虛)한 마음, '제
가 하겠습니다'라는 봉사(奉仕)의 마음, '네 그렇습니다'라는 유순(柔順)한 마음-
을 담은 붓글씨를 인쇄하여 만나는 소년소녀들에게 전해 주고 있다.
기쁜 마음으로 생활하며 밝은 미소로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부모의 모습 속
에서 작은 사랑이 자녀의 마음으로 이어진다면 착한 마음을 갖는다거나 예의를
지키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공부하라고 백 번 말하기보다 성실하고 알차게 살아가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혼자만 잘사는 법이 아닌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
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부모 먼저 모범을 보여 자녀가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이웃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한다면 이 사회는 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어릴 때 습관을 올바르게 만들어 줘야 한다는 내 생각은 사실 톨스토이의 말
에서 연유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랑의 말 한마디, 친절한 행동 하나하나가 세상을 아름답게 바꿔 준다. 사랑
과 친절은 어려운 일을 쉽게 해결하고,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변하게 하는 아주
좋은 것이다."

김갑재(1952년 생) 씨네 가족
장애를 탓하지 않고 도리어 장애인들이 불편하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어
려서의 꿈이었고 지금은 자녀 교육상담과 언론출판에 관한 일들을 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 지도를 통해 청소년들을 밝고 건강하게 키우는 일에 가장 큰 중점
을 두고 있으며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무료 배포하는[사랑의 종이연]을 만들 계
획도 있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과는 1993년 6월 <외부인
토론>으로 만나게 되었지만 아버지라는 공통 주제가 잘 맞아 활동하기 시작하
여 1995년에는 '좋은 아버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모임의 모든 회원들이 서로
가 하는 일을 중시할 뿐 그 직급을 따지지 않는 따뜻한 시선을 특별히 자랑한
다. 1995년부터 모임 회보의 편집 책임을 맡고 있다.
통장인 남편의 직무대행 활동을 성실히 수행하는 부인 이순이(1952년 생) 씨
는 걸어 다니는 119 구급대라고 불릴 정도로 동네의 해결사이자 적극적인 조력
자이다. 특히 아들 민철(1986년 생)이의 친구들을 모두 인솔해 문화행사 등의 참
석해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다. 서로가 바쁜 활동가들이라 서로의 건강을
가장 염려하여 일도 좋지만 스스로를 챙겼으면 하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다.
민철이는 인사성이나 기본 예절이 매우 바르고 아버지의 불편한 다리가 낫기
를 기도하는 활발한 '날다람쥐'. 그러나 부모님의 일찍 들어오고 주의의 다른 사
람들보다 자기를 더 아껴 주기를 바라는 외동이기도 하다. 편식을 하고 글씨는
날아가지만 틈만 나면 책을 읽고 벌써 태권도의 '품띠'를 섭렵한 미래의 유능한
'형사님'이다.

안 아픈 손가락을 만들지 마라
김연옥(회사원)
큰딸, 승주가 태어나고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집안 어른들
과 주변 사람들은 둘째 아이를 바랬고, 이왕이면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재촉했
습니다. 더욱이 나는 장남이고 결혼한 남동생도 첫딸을 낳아 더 그랬는지도 모
릅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우리 부부는 주변 사람들만큼 조급하거나 염려하지 않
았습니다. 그것은 아이를 낳는 것이 우리의 계획에 따르기도 하겠지만 하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린 맞벌이 부부로 첫아이를 낳은 지 두 달 만에 여수에 있는 누님댁에 아이
를 맡겨야만 했습니다. 그곳에는 조카인 승주의 오빠와 언니가 있어서 아이들끼
리 노는 즐거움을 배울 수 있었고, 누님 가족이 승주를 매우 예뻐해 주어서 안
심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전화를 해 딸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또 수시로 찾아가
서 달아이를 어루만지는 그 기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환경 속
에서 우리 부부는 딸아이의 외로움을 알 수 없었고, 동생이 필요하다고 느낄 수
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살고 싶은 열망 때문에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을 서울로
모셔 한 살림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승주도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
때서야 우리 부부는 둘째에 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게 되었고, 아내의 특수한
생리적 조건 때문에 의사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임신
후반기에 나타난 천지 태반으로 죽을 고비를 수 차례 넘겼음에도 결국 둘째 아
이를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우린 아이를 진정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도 하
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딸 승주를 꼭 껴안고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 하나만이라도 괜찮다. 꼭 훌룡한 아이로 키우겠다."
나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다짐하며 딸을 꼭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
니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갔고 우린 행복한 삶으로 다시 돌
아갔습니다. 회사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딸 승주에게 예전에 갖지 못했던
관심과 사랑스러움이 새록새록 솟아났습니다. 피곤하고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
고 늦은 시간에 귀가해도 아이와 함께 한글 공부도 하고 색칠놀이와 인형놀이를
했습니다. 승주는 졸린 눈을 붙잡고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 동안 부모와 떨어져 지내느라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도 건강하고 착하게 자
라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보상이라도 할 것처럼 많은 시간을 승주와 같이 보냈
습니다. 승주에게 맞는 영화, 연극, 무용, 뮤지컬을 골라 보여 주고, 큰 서점을 찾
아가서 보고 싶은 책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읽게 하기도 하고, 같이 여행도
가고.
그러던 중 하늘은 아내에게 다시 건강한 아이를 갖게 해주었습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승주가 다섯 살이 되던 해 가을에 힘찬 울음소리를 내며 태어났
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들 민우는 우리 가족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습
니다. 민우가 웃으면 모두가 따라 웃고, 울면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아프면
모두가 가슴을 졸입니다. 그 아이는 어느새 우리 가족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승주가 자기 방에서 아무 말 없이 인형놀이에 열중하는 모습
을 보았습니다. 무언가 불만에 가득 차 있는 듯한 모습이었죠. 난 살며시 그 옆
에 앉아 "승주야,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나 보구나! 뭔지 말해 볼래? 아빠
가 도와 줄게" 하고 물었습니다. 한참 후 승주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습
니다. "난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 아빠 모두가 민우만 예뻐하는 게 싫
어! 나도 할머니 할아버지 손자고, 엄마 아빠 딸이에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무
척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서 이렇게 화가 나 있었구나,
미안하다 승주야!' 그리고 한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아내
에게도 승주의 소외감을 전했습니다. 민우를 돌봐야 하는 부모님과 아내에는 어
렵더라도 나 혼자만이라도 이전에 승주에게 대했던 모습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다
짐하였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항상 작은아이 위주로 생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
은아이의 투정은 받아 주어도 큰아이의 투정은 허용하지 않고, 항상 큰아이에게
양보와 이해를 요구합니다. "동생은 어린아이잖니!", "누나니까 참아야지!", "형이
양보해야지!" 하지만 두 아이 모두 아직은 어린아이입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편파적인 관심과 사랑은 비뚤어진 성격의 아이로 키우기 쉽습니다.
요즘 퇴근을 하면 민우보다도 승주를 먼저 찾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안부를
묻습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예전처럼 색칠공부와 학습지를 같이 하기도 하고, 내
가 지도하고 승주가 따라하던 모습에서 때로는 역할을 바꾸어 승주가 지도하고
내가 따라하는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풍부한 상상력을 기르고 경
험을 쌓을 수 있도록 예전처럼 한 달에 한 번 이상 어린이 뮤지컬이나 연극, 만
화, 영화를 같이 보러 가기도 합니다. 그곳에 가면 모두 엄마와 손잡고 오는 아
이들 뿐이고 아빠와 같이 오는 아이는 승주 혼자일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승
주는 아빠와 같이 있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나 역시 즐겁습니다. 저녁이면 승주
방에 들어가 옆에 누워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아버지라는 의무감에 책을 읽어
주고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마음이 되어 같이 놀고, 웃는 것입니다.
민우 때문에 속상해 하던 승주도 이제는 많이 자라서 여덟 살이 되었고 동생
을 매우 예뻐하고 귀여워해 줍니다. 두 아이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더욱더 잘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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